코로나19 팬데믹의 교훈 / 곽병찬
특집 | 포스트코로나 시대와 불교
1. 멈춰라, 돌아보라, 성찰하라
코로나19의 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중국이나 한국 등 일부 국가에서만 관리 상태로 들어갔지, 대다수 국가는 여전히 국민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찬바람이 불면서 2차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조짐마저 보인다.
이 때문에 인류는 더 이상 몇 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고, 몇 명이 사망했는지 묻지 않는다. 인류가 과연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제 인류는 어떻게 하면 코로나19와 공생할 수 있는지 묻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미국,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올해 안에 백신을 출시할 것이라고 한다. 한국도 백신 연구의 선도국 가운데 하나다. 치료제 개발도 막바지 단계라고 한다. 그러나 백신이나 치료제가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얼마나 효과를 보일지는 미지수다. 이 바이러스는 유전물질이 RNA여서 변이가 쉽고 이미 여러 변종이 나타났다.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했다고 해도, 이 바이러스는 변이를 통해 백신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인류를 위협하는 10대 감염병 가운데 에이즈, 스페인독감, 아시아독감, 홍콩독감, 신종플루, 에볼라, 홍역, 사스 등 8개 감염병이 RNA 바이러스다. 홍역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확실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이성은 신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인류 문명을 발전시켰다지만, 이 작은 바이러스 앞에선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인류가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가장 원시적인 처방을 이용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마스크 쓰고, 접촉하지 말고, 거리를 두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인류는 국가나 지역 간 인적 · 물적 교류를 제한하고, 공동체 안에서도 비대면 비접촉 나아가 봉쇄를 단행하고 있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높이’를 향한 인류의 무한 질주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앞에서 중단됐다. 일단 인류는 이 바이러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비록 타의이지만 이런 멈춤은 인간에게 성찰의 시간을 부여했다. 도대체 인간은 어떤 짓을 해온 것인가. 인류가 어떻게 문명을 쌓아 올렸고, 인류가 어떻게 살아왔길래 이런 자연의 역습,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위기를 자초한 것일까. 가축이나 야생동물에 기생하던 저 바이러스를 불러온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은 어떤 관계이며, 사람은 이 우주 속에서 아니 이 자연 속에서 어떤 존재인가. 과연 인간은 이 역습을 이겨낼 수 있을까? 인류는 비로소 자신을 성찰하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19는 인류에게 사회경제적 혼란과 고통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판도라의 상자에 욕심, 질투, 시기, 질병 등 인류에 대한 고통 외에 희망도 담겨 있었듯이, 코로나19도 인류에게 성찰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인류 역사의 발전은 성찰을 통해 이루어졌다. 인류는 거대한 재난 앞에서 성찰하고 반성했고, 새로운 길과 새로운 삶을 모색했고, 도약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4세기 유럽에서의 페스트 대유행이었다. 페스트는 불과 3년여 만에 유럽의 인구를 7,300만 명에서 5,100만 명 수준으로 떨어트렸다. 3명에 한 명꼴로 페스트에 죽임을 당했다. 당시 지구 반대편인 중국(원나라)에서도 인구의 30%가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거대한 죽음 앞에서 인류는 신과 인간, 삶과 죽음, 신앙과 이성, 믿음과 욕망, 교회와 공동체, 신권과 왕권 등 기존의 질서와 사상 전체를 비판적으로 성찰했다. 이런 집단적 성찰은 유럽의 르네상스로 이어졌고, 왕정을 거쳐 시민사회로 나아가게 했다.
2. 14세기 페스트 팬데믹의 교훈
장미꽃 주위를 돌자, 꽃이 주머니에 한가득, 에취 에취 우리 모두 넘어진다
— 14세기 유럽의 동요 〈링 어라운드 더 로즈〉
끔찍하다. 여기서 장미꽃은 페스트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검붉은 발진을 상징한다. 환자 주위를 도는 것만으로도 페스트에 감염돼 죽는다는 내용이다. 오갈 데 없이 버려진 아이들의 비극이 눈에 선하다.
몽골군의 공격을 받던 흑해의 항구도시 카파(오늘날 우크라이나의 페오도시야)에서 발생한 페스트가 서유럽에 처음 상륙한 것은 1347년 10월이었다. 카파를 출발한 제노바 상선 10척이 시칠리아 메시나 항구에 입항했다. 상선에는 상품 대신 시체가 가득했다. 배가 부두에 접안하자, 쥐들이 육지로 쏟아져 들어왔다. 메시나를 시작으로 시칠리아는 곧 생지옥이 되었다. 페스트를 피해 시칠리아를 떠난 일부 상선들과 함께 페스트는 이탈리아 북부의 제노바, 베네치아에 상륙했다. 페스트는 삽시간에 피렌체, 밀라노 등 롬바르디아 지방 전역으로 확산했다. 공교롭게도 롬바르디아는 21세기 코로나19로 말미암아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이었다.
롬바르디아에서도 페스트의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은 피렌체. 금융업 등으로 번영했던 피렌체는 남부 유럽의 돈과 상품이 모이는 곳이었다. 쥐들도 덩달아 그곳에 모여들었다. 1351년 불과 3년 만에 피렌체의 인구는 11만여 명에서 4만5천여 명으로 줄었다. 피렌체에선 개와 고양이가 병을 옮긴다는 가짜뉴스에 따라 개, 고양이를 닥치는 대로 죽이기도 했다. 죽은 이들 사체는 다시 쥐가 더 맹렬하게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고, 페스트는 더 강력하게 인간을 공격했다.
로마와 프로렌스 등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산한 것은 1348년 5월이었다. 북아프리카엔 1348년 1월 튀니스를 통해 상륙했고, 비슷한 시기 마르세이유항을 통해 프랑스에 상륙했으며, 3월엔 중부 지방, 6월엔 파리 보르도 리옹 등 북부지방까지 집어삼켰다. 이때쯤 영국의 런던에도 퍼지기 시작했다. 7월엔 스위스와 헝가리 등 중부유럽으로 확산했다. 페스트가 이렇게 퍼지면서 1351년 유럽 인구는 7,300만여 명에서 5,100만 명 대로 급감했다.
당시 유럽은 봉건영주와 함께 가톨릭 교권이 지배하던 신정체제였다. 질병의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사람들은 오로지 교회와 하느님에 매달렸다. 교회도 이 괴질이 인간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이라며 참회를 요구했다. 사람들은 교회나 수도원에 모여 매일 참회의 기도를 올렸다. 심지어 참회의 적극적 방법으로 자신의 몸에 채찍질하며 순례를 하는 ‘채찍질 고행단’도 등장했다. 이들은 떼로 몰려다니며 자신을 학대했다.
교황은 1350년을 ‘성년’으로 정해,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과 바오로 성당을 순례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고 선포했다. 그해 100만여 명의 인파가 로마로 몰려들었다. 교황과 교회의 대처는 페스트가 더 빨리, 더 멀리 확산하고, 더 빨리 더 많이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게 했다. ‘신의 징벌’은 신부나 수도자에게 먼저 내려졌다. 모여서 열심히 기도할수록 더 확실하게 감염돼 죽었다. 교회와 수도원은 아예 무덤이 되기도 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이 괴질이 신의 징벌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고, 죄가 원인도 아니라는 것을. 신부도 수녀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가 결국 처참하게 죽어가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교회에 대한 회의가 커졌다. 중세를 떠받치던 교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교권과 결합해 유지되던 봉건체제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믿을 게 없어진 이들이 선택한 것은 봉쇄와 도피였다. 환자가 발생한 집을 태워버리거나 밀봉했고, 환자가 발생한 마을을 봉쇄했다. 인구가 급감하면서 소득이 줄어든 봉건영주들은 소작료를 더 걷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농촌에서 탈출했다. 도시에선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임금이 올랐다. 농촌 탈출은 더 빨라졌다. 농업 기반이 무너졌다. 농지에 의지하던 봉건제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도시로 모여든 사람들은 새로운 질서를 원했다. 자유로운 생산과 유통을 추구했다. 이와 함께 생명과 재산, 영리활동을 보호해줄 새로운 체제를 추구했다. 자본주의가 싹트고, 절대왕정의 틀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권력이 강해진 국왕은 로마 교황청과 맞섰다. 프랑스는 교황을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납치해 감금했다. 로마와 별도의 교황을 국왕이 낙점하기도 했다. 교권은 점차 세속의 왕권에 예속되고, 교회는 왕권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구실을 하게 됐다.
1) 피렌체의 역설
형제여, 아아,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디로 눈을 돌려야 할까? 사방팔방이 온통 비탄과 공포에 휩싸여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것을. 아니 이런 세상이 오기 전에 차라리 죽었어야 할 것을. 남아 있는 것이라곤 빈집과 폐허가 된 도시뿐. 사람은 그림자조차 볼 수 없고, 들판은 너무 좁아 시체를 다 묻을 수도 없고, 온 세상은 정적으로 뒤덮여 두렵기만 하구나.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들이.
— 이탈리아의 시인 페트라르카의 편지, 1348년 5월, 피렌체에서
중세 신정체제를 지배한 것은 신과 신을 대리한다는 교부였다. 대리인은 하느님의 뜻과 섭리를 앞세워 권력을 행사했다. 교구민은 오로지 교부의 말을 믿고 따라야 했다. 의심을 해서도 안 되며, 이의를 제기해서도 안 됐다. 예술은 신성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장식품이었으며 과학은 신의 섭리를 증거하는 광대 역할을 수행해야 했고, 철학은 교부의 메시지를 정당화하는 변사였다.
교회와 교부의 권위가 흔들리면서 기존의 관념이나 신앙, 질서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믿음의 자리에 이성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신과 신앙, 현세와 내세, 지옥과 죽음, 인간과 욕망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과학은 섭리가 아니라 인과관계를 따졌고, 철학은 신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을 탐구하기 시작했으며, 예술은 인간의 욕망을 표현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기라)”.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따온, 고대의 이 경구가 1400여 년 만에 중세로 소환됐다. “~현명하시라, 와인도 마시고, 멀고 먼 희망은 떨쳐 버리라, 생명은 짧다. ~오늘을 잡으라(즐기라), 내일에 대한 믿음은 할 수만 있다면 접으라.” 내세를 향한 소망은 빛을 잃었고, 내세를 위한 금욕은 힘을 잃었다. 세속주의 혹은 쾌락주의가 중세의 억압적 금욕주의의 균열 사이로 싹트기 시작했다.
조반니 보카치오는 페스트가 창궐하던 1349~1351년 피렌체에서 소설의 효시 《데카메론》을 썼다. 이 책은 페스트의 대재앙 속에서 급속히 퍼진 그런 풍조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피렌체의 세 청년과 일곱 숙녀가 페스트를 피해 피렌체 교외 별장에 머물면서 10일 동안 하루에 한 편씩 했다는 이야기는 구성부터 파격적이다. 내용은 더 파격적이다. 성직자, 왕족, 귀족부터 도둑, 강도, 거지까지 각계각층이 등장해 외설, 비극, 풍자, 만담 등 다양한 형식으로 고귀한 자들의 위선과 타락, 성직자의 성적 욕망과 일탈을 가감 없이 전했다. 소설이 현실의 반영이라고 할 때 당시 피렌체 시민의 억압된 욕망은 이 소설을 통해 일거에 분출했다.
이런 현상은 문학만이 아니라 회화, 조각, 음악 등 예술의 모든 장르로 퍼졌다. 그것이 폭발적으로 나타난 지방이, 역설적이게도 페스트로 피해가 가장 컸던 피렌체였다. 피렌체는 《데카메론》의 무대였으며,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다. 르네상스 3대 거장 가운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무대였으며, 로마에서 활동하던 라파엘로 산치오가 동경하던 곳이었다.
다 빈치는 미술뿐 아니라 물리학, 광학, 군사학, 지리학, 천문학, 해부학 등 자연과학에서도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의 메모 속에는 비행기, 낙하산, 전차, 잠수함, 증기기관 등이 있었다. 그는 팔방미인을 소망했던 르네상스 인간의 전형이었다. 미켈란젤로는 15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조각가 화가 건축가였으며, 라파엘로는 그리스 로마의 고전적 정신을 되살려냈다. 열에 너덧 명이 희생당한 대재앙은 사람의 생명만 흔든 게 아니라 기존의 사유, 기존의 질서, 기존의 이데올로기까지 뒤흔들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세상을 모색하고,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됐다. 그 시작이 피렌체였다.
2) 욕망의 해방
사람들은 높은 산, 깊은 바다, 세찬 격류, 대양의 파도, 하늘의 별의 운행을 보면서 감탄한다. 하지만 저 자신(인간)을 보고는 감탄할 줄 모른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10장
교부철학을 완성한 성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 정신의 덕성을 찬탄했다. 신앙, 자비, 관용 등 인간의 덕성은 신에게 받은, 신을 표상하는 신의 은총이라고 보았다. 덕성이야말로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증거라고 하기도 했다. 인간은 욕망에 얽매이고 눈이 멀어 그 덕성을 잃고 죄의 굴레에 빠진다고 생각했다. 욕망은 죄의 근원이고 인간을 멸망으로 이끄는 수레였다. 따라서 사람들이 욕망의 지배에서 벗어나 온전한 덕성의 지배를 받을 때 ‘신국’은 실현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런데 인간 덕성을 신국의 열쇠로 찬양한 이 대목은 공교롭게도 인간 중심의 문학과 예술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이 열쇠를 비밀의 문을 딴 이는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다. 그는 신에 대한 사랑이 아닌 인간(연인)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다. 그가 개척한 르네상스 서정시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신앙의 굴레에 갇혀 있던 인간의 자연적인 요소들을 해방했다.
자연적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욕망,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렇게 위험시했던 몸과 욕망이었다. 그는 ‘내 안에서 신의 덕성’을 찾으려던 아우구스티누스와 달리 ‘내 안에서 나’ 곧 ‘나의 욕망’을 발견하려 하였다.
그와 함께 중세의 복음주의, 내세주의와 결별한 인간관과 자연관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인간과 자연의 재발견을 통해 비로소 르네상스는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신의 중력(지배)을 거부하고 자연의 중력을 인정하는 자연과학이 발달하고, 인간의 욕망과 감정, 상상력을 탐구하고 해방하는 인문학이 개화했다. 예술은 인간 신체를 악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최고 형식으로 그렸다. 신체와 가슴, 머리의 균형을 추구한 고대의 이상이 소환됐다. 당시는 여전히 ‘채찍질 고행단’이 떼로 몰려다니는 등 속죄와 구원을 위한 신체에 대한 가해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육체에 대한 탐구 나아가 찬양은 위험천만했지만, 채찍질도 ‘인간성’의 분출을 막을 수 없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인간의 몸이야말로 아름다움의 기준인 황금비율이 완벽하게 적용되는 모델이라는 것을 실증했다. 그는 신과 천사 이외에는 등장하지 않던 화폭에 일반 여성을 주제로 등장시켰다. 〈모나리자〉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 등장하는 마리아는 신적인 여성이 아니라 고통에 떠는 평범한 어머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은 그리스 시대를 대표하던 철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자연과학자 등을 중세로 소환해, 고대 그리스 로마의 정신을 되살렸다.
이런 작품 가운데 〈모나리자〉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중세 화가들은 평범한 인간을 화폭에 담지 않았다. 그런 그림은 가치를 인정받기는커녕 의심만 받았다. 아무도 그런 화가를 후원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화가들은 오로지 예수를 형상화하거나 성경 속의 인물 혹은 오로지 신의 뜻에 따른 신적인 인간을 극화 형태로 그렸다.
〈모나리자〉는 이런 경향을 깬 그림이었다. ‘모나리자’는 상인 조콘다의 부인 리자였다. 게다가 그림 속에서 리자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띠고 있다. 앞선 중세의 회화와 조각들엔 표정이 없다. 표정이라면 예수나 성인들의 고통이나 비탄뿐이었다. 그림 속 웃는 표정은 금기였다. 그러나 다 빈치는 리자의 입꼬리를 살짝 올림으로써, 인간의 감정을 완벽하게 화폭에 담아냈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단순한 웃음이 아니라 억압된 인간 감정의 해방이었다. 〈모나리자〉가 르네상스 회화의 백미로서 예술품 시장에서 최고가로 꼽히는 이유다. 이후 예술은 신성을 표현하고, 인간의 신앙심을 자극하는 등 신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스폰서인 왕과 왕족에 충성하고 돈 많은 중산층에 봉사하는 역할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문학적으로 인간 욕망을 종교적 억압에서 해방시킨 《데카메론》은 더 파격적이다. 〈모나리자〉보다 100년 앞선 이 작품엔 성직자의 부패, 지배계급에 대한 불만뿐만 아니라 당시엔 최고의 금기였던 섹스 이야기가 많다. 아홉째 날의 두 번째 이야기는 대표적이다. 청년과 사랑에 빠져 섹스를 즐기는 수녀 이사벨, 신부와 사랑을 나누는 수녀원장이 등장한다. 수녀원장은 섹스 현장을 들키자 ‘음욕은 억누를 수 없으니 남몰래 즐기는 환희를 허용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이런 이야기는 단지 성직자의 위선과 이중성에 대한 고발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성직자도 보통 인간과 똑같은 육체와 욕망을 가진 존재라는 점, 따라서 일반인의 욕망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몸과 욕망을 금기시한 중세의 사고와 믿음 체계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3) 성찰과 시대 전환
“죽음의 자로 매일매일의 삶을 재는 이는 지혜롭다.”
이런 변화를 촉발한 것은 다름 아닌 거대한 재난, 참혹한 죽음이었다. 페스트 이전까지 삶은 신의 세계로 가기 위한 도정에 불과했다. 잘 살면 천국으로 가고 못 살면 지옥에 떨어지는 시험장에 불과했다. 죽음은 가상의 공간에서 실제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페스트 이전까지 누구도 죽음을 진지하게 사유하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삶의 의미, 존재의 의미도 사유 대상이 되지 않았다.
페스트는 그런 사유체계를 통째로 전복했다. 죽음은 영원히 빛나는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 아니었다. 죽음은 그야말로 삶이 이룬 모든 것을 재로 만드는 것이었다. 인간의 주검은 쥐와 구더기에 파먹히다가 썩어서 없어지는 아무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도대체 그런 주검이 어떻게 부활해 하늘나라에 간다는 것인가. 교부도 그런 주검을 피할 수 없었다. 도대체 신성 혹은 성스러운 존재란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신은 우주 만물의 주재자인가. 전지전능하다면서 왜 인간을 페스트에서 구하지 않는가. 왜 죄 없는 이들을 죽이는가. 교회는 생명이 아니라 죽음으로 이끌었다. 교회에 가서 기도하던 사람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그러면 신의 몸이라는 교회는 무엇이며, 성직자는 과연 신의 뜻을 전하고, 인간의 뜻을 알리는 대리인이 맞는가.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비로소 이 모든 것을 뿌리부터 성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 아니었다. 죽음은 그야말로 끝이었다. 쥐나 벌레들이 파먹는 한낱 썩은 고깃덩어리였다. 어떻게 죽음이 내세로 들어가는 관문인가. 어떻게 저 끔찍한 모양으로 천국을 간다는 것인가. 죽음이 저렇다면 삶이란 무엇인가. 존재조차 의심스러운 내세를 위해 온갖 금기의 고통과 억압과 절제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인가. 왜 육체를 범죄시해야 하는가. 왜 보고 듣고 먹고 느끼는 모든 것을 억압과 통제 아래 두어야 하는가. 왜 사랑하고 즐기는 것을 해서는 안 되는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에 비해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인간의 신체를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으며, 인간의 몸을 가꾸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리스 로마의 철학과 예술 그리고 과학을 소환하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리스 로마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 르네상스였다.
4) 욕망의 시대
비로소 사람의 눈에 자연이 들어왔다. 자연은 결코 신의 장신구가 아니었다. 신의 뜻을 세상에 알리는 상징이 아니었다. 자연은 자연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이어나가고 있었다. 물론 자연은 때론 두려운 존재였다. 쥐 한 마리가 한 가족을 몰살시킬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벌과 나비는 끼리끼리 사랑을 나누며 종족을 번식시키고 삶을 즐기고 있었다. 식물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세상을 먹여 살렸다. 인간도 저런 자연의 일부,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적인 것 아닌가. 왜 욕망을 비틀고 억눌러야 하는가.
분출하기 시작한 욕망은 세상을 바꿨다. 천하게 여겼던 상공업이 발전하고, 금지 대상이던 금융업이 활성화됐다. 신의 이름으로 교부가 장악하던 권력을 세속의 영웅들이 가져갔다. 안전한 사회에 대한 욕구는 중앙집권적 왕정체제를 성립시켰다. 시장을 확장하고 부를 늘리기 위한 대발견의 시대가 열렸고, 정복의 시대가 시작됐으며, 약육강식의 질서가 자리 잡았다.
권력과 시장은 인간 욕망을 끊임없이 부추겼다. 더 많이 더 많이 갖고 더 빨리 더 높이 가도록 채근했다. 물질문명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왕정은 중세의 신정체제의 대안이었지만, 생산력의 발전과 욕망의 확장을 담을 수 없었다. 욕망이 이끌어가는 시장은 통제를 기본으로 하는 절대왕정과 함께 갈 수는 없었다. 시장과 욕망은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정으로 체제를 바꿔버렸다. 재화를 무제한 소유하고, 자연을 무제한 개발하며, 그리하여 강자에 의한 약자의 착취가 제도화되는 자유주의 시장경제로 나아가도록 했다.
페스트 팬데믹 속에서 중세의 금욕적 질서가 붕괴하고, 욕망이 해방된 결과였다. 욕망이라는 에너지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나아가 신자유주의는 그 정점이었다.
3. 코로나19 팬데믹의 빛과 그림자
14세기 페스트 팬데믹 이후에도 감염병은 계속 유행했고, 대참사도 있었다. 16세기 대항해 시대에 유럽인들이 전염시킨 천연두로 인해 중남미 대륙의 아스테카, 잉카 문명이 절멸했다. 17, 18세기엔 역시 유럽인들이 전염시킨 천연두로 북미의 원주민이 사실상 멸종됐다.
유럽인이 도래하기 전까지 남북미 대륙엔 천연두란 바이러스가 없었다. 따라서 원주민에겐 항체가 없었다. 그 때문에 원주민은 천연두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침입자들은 감염된 사람이 쓰던 담요를 원주민에게 보내 한 촌락을 몰살시키기도 했다.
21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 때에도 스페인독감이 유행했다. 세계적으로 2,500만여 명을 사망케 했다. 1차대전의 서두른 종결은 이 감염병 덕분이었다.
20세기엔 가축은 물론 야생동물에서 옮겨온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인간을 공격했다. 말라리아, 에볼라, 에이즈, 신종플루 등이 그것이다. 학질모기나 과일박쥐, 원숭이, 돼지에 기생하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와 발생한 감염병이다. 21세기 들어서는 조상(코로나바이러스)이 같은 사스,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간을 공격했다. 사스는 풍토병으로 정착됐고, 메르스는 백신 개발과 함께 힘을 잃었지만, 코로나19는 2019년 12월 처음 발생이 보고된 이래 지금까지 전혀 수그러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인류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코로나19의 문제는 치명률보다 감염력 때문이다.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류가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전략은 봉쇄 혹은 비대면 접촉이 유일하다. 국가 간에는 인적 · 물적 교류를 제한하고, 국내에서는 접촉을 억제하거나 금지한다. 출퇴근도 제한하고, 등교도 막는다. 돈과 재화가 돌 수 없으니 경제는 침몰하고 있다. 세계 경제는 지금 1930년대 대공황만큼이나 심한 불황에 빠졌다.
바이러스도 진화한다. 치명률이 높으면 숙주를 빨리 죽이기 때문에 바이러스 자체도 소멸할 수 있다. 치명률이 낮으면 전염이 잘되지만, 숙주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바이러스는 숙주를 괴롭히면서 최대한 많이 증식할 수 있는 상태로 진화한다. 그런 상태가 치명률 2.0명에서 2.5명 수준이라고 한다. 숙주 집단을 공포에 몰아넣어 총체적인 혼란에 빠트리면서도, 숙주의 생명은 유지해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증식할 수 있는 치명률이다. 바이러스는 그렇게 진화했다.
코로나19는 그런 진화의 대표적 사례다. 코로나19의 치명률은 2.0~4.0이다. 14세기 페스트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 된다. 하지만 무증상 감염이나 공기 전파 등 강력한 전파력은 사람을 공포에 빠트리고, 실업 빈곤 절망에 빠트리기에 충분하다.
코로나19의 애매한 치명률, 강력한 전파력은 지구촌을 일시에 멈춰 서게 했다. 국가 간이건 공동체 안이건 교류와 접촉은 제한됐다. 생산과 소비는 위축됐고, 실업은 급증했으며, 시장은 제대로 가동하지 않았다. 인류는 지금 코로나19 독성이 아니라 고립과 단절 그리고 경제난으로 파괴되고 있다.
이제 인간은 돌아보기 시작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왜 이런 일이 닥쳤을까. 인류는 14세기 페스트 팬데믹 이후 7세기 만에 다시 전면적인 성찰을 되살렸고, 인류 문명을 뿌리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박쥐 등에 기생하던 것이었다. 이 바이러스는 수천수만 년 동안 자신의 서식처와 숙주를 바꾸지 않았다. 인간과 이 바이러스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서로 간섭하지 않고 제각각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면 둘 사이의 이런 거리를 없앤 것은 누구일까. 답은 뻔했다. 인간의 욕망이었다. 신정체제를 뚫고 나와, 신정체제를 전복시킨 바로 그 욕망이었다.
욕망 덕분에 인류의 물질문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그와 더불어 자연은 급격히 파괴됐다. 자연의 복원력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트렸다. 열대우림이 광범위하게 사라지고, 화석연료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지구는 급격히 더워졌다. 남북극의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아버리고, 해수 온도가 높아지고, 해수면도 높아져 기상이변이 속출한다. 자연재해와 함께 감염병은 더욱더 자주 그리고 심각하게 인류를 공격한다. 기상이변, 자연재해, 감염병은 함께 움직이는 3형제다.
이제 인류는 바로 그 욕망에 대해 묻는다. 욕망을 이대로 놔둬도 되는 것일까. 폭주하는 욕망의 기관차는 인류를 그야말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끌고 가고 있다. 기관사 중에는 정치인, 종교인까지 포함돼 있다. 중세 가톨릭의 정치화된 사제들과 같은 부류다. 그들은 이런 재난 속에서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코로나19의 숙주를 자임하기도 했다.
1) 성찰, 욕망[貪]
14세기 페스트 팬데믹은 욕망을 해방시켰다. 욕망의 해방은 인류에게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소유를 추구하게 했다. 욕망은 경쟁을 자극했고, 경쟁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고도화시켰으며, 욕망과 경쟁을 에너지 삼아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산업혁명을 이룩했다. 이제 4차산업혁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인류는 총량에서 유례없는 풍요와 편리와 여유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돌아보니 바로 그 욕망은 인류를 생존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발생 원인은 비교적 간명하다. 박쥐 등에 기생하던 코로나바이러스가 변이에 변이를 거쳐 인간에게 옮길 수 있는 지금의 바이러스로 진화했다. 박쥐는 수만 년 동안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고유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인간과 박쥐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는 동안 바이러스는 인간을 넘볼 이유가 없었다. 인간이 다른 생명의 서식지를 자신의 소유로 점유하면서 그 거리는 좁혀졌고, 심지어 박쥐를 음식으로 섭취하면서 바이러스와 인간의 거리는 무너졌다. 박쥐의 생체가 인간 공동체의 심장인 시장에서 판매되면서 박쥐의 코로나바이러스는 새로운 숙주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적응 즉 변이의 결과가 사스코로나바이러스였으며, 지금의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였다.
코로나바이러스의 내습을 경고하는 경보음은 21세기 벽두부터 잇따랐다. 2002~2003년 치명률 10%에 이르는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유행했다. 원인균은 박쥐에 기생하던 것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조상이 같았다. 2015년엔 메르스가 지구촌을 강타했다. 낙타에 기생하던 메르스코로나바이러스가 변이돼 인간을 공격한 것이었다. 메르스는 치사율이 41%나 됐지만, 다행히 백신 개발과 함께 잠복했다. 2009년엔 돼지에게서 유래한 신종플루가 유행했다. 삽시간에 전 세계 214개국으로 퍼졌지만, 치명률이 낮아 감기처럼 토착화됐다.
이런 경고음에도 욕망 기관차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신종 감염병이 유행할 때만 잠시 긴장했을 뿐, 잠복하고 나면 다시 개발과 파괴의 폭주를 계속했다. 그 속에서 나온 것이, 치명률은 사스보다 낮지만, 전염력은 월등한 코로나19였다. 코로나19는 어쩌면 반성하지 않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마지막 경고일지도 모른다.
코로나19는 가을로 접어들면서 다시금 대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나 남미에선 대규모 확산세가 계속되고 있고, 잠시 수그러들던 유럽에서도 확진자가 폭증하고 있다. 2차 대유행의 원인을 날씨 탓으로만 돌릴 순 없다. 오히려 한동안 움츠러들었던 욕망과 시장이 다시금 가동하기 시작한 것에 주목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시장은 욕망의 순환을 생명으로 한다. 더 많은 상품이 생산되고 더 많이 소비돼야 하며, 돈이 더 빨리 유통돼야 한다. 속도가 일정해서도 안 된다. 그건 정체이고 후퇴다. 가속도(성장률)가 항상 플러스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자면 욕망은 더 분출해야 하고, 경쟁은 더 강화돼야 하며, 개발은 더 격렬해야 한다. 코로나19는 이런 폭주를 멈추라고 했지만, 인간의 욕망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인류는 지금 진퇴양난에 빠졌다. 욕망의 기관차를 더 빨리 가속할 것인가, 아니면 생존을 위해 기관차를 멈추고 지속 가능한 새로운 프레임을 창출할 것인가.
“그동안 우리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끈 결정적 단계로 믿었던 농업의 도입은 사실 여러 면에서 도무지 회복할 수 없는 수준의 재앙적 선택이었다.” 베스트셀러 《총균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실수〉라는 글에서 한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감염병 때문이었다.
인류를 치명적으로 위협했던 감염병은 대부분 가축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적응하며 생긴 것이었다. 천연두나 홍역은 모두 소에게서 옮겨왔고, 끊임없이 변종을 쏟아내는 인플루엔자는 돼지에게서 건너왔다. 모기에게서 옮겨온 말라리아와 뇌염, 쥐에게서 옮겨온 페스트나 티푸스 등은 인간이 경작지를 넓히기 위해 이들의 서식처를 파괴하면서 나타났다.
감염병은 인간의 성취를 일거에 없애버렸다. 사람이 사라졌는데 농기구, 공장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감염병은 마을이나 도시 나아가 인종 자체를 아예 소멸시키기도 했다. 다이아몬드의 인용문 가운데 ‘농업’을 ‘산업혁명’으로 바꾸면,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2) 성찰, 무지[癡]
인과율에 대한 무지와 기후 재앙
코로나19가 재확산 조짐을 보일 때 마침 지구는 기상이변으로 극심한 재난을 겪었다. 한국은 70일 가까운 역대 최장의 장마, 기록적인 폭우, 잇따른 태풍을 겪었다. 이웃 나라 중국에서도 지난 6월부터 석 달 넘게 폭우가 계속돼 세계 최대인 싼샤댐 붕괴를 걱정하기도 했다. 양쯔강 하류 창사 등 중남부 지방에서는 5,000만 명 이상이 터전을 잃었다. 일본에선 7월 13일 규슈에 하루 1,000㎜ 이상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고, 주택 1만 3,957채가 침수됐다.
동북아의 이런 기상이변은 북극과 시베리아의 이상 고온 현상 때문이었다. 극지방 찬 공기의 남하를 막는 제트기류가 약해져 대륙성 고기압이 강해지고, 남쪽에서 올라온 열대성 저기압과 한반도 주변에서 대치하면서 역대급 폭우가 쏟아졌다. 시베리아의 경우 지구에서 가장 추운 마을이라는 베르호얀스크의 지난 6월 20일 최고 기온이 38℃에 달했고, 북극 얼음은 관측 사상 가장 많이 녹아내렸다. 폭염 탓에 시베리아에선 7월에만 산불이 300여 차례 발생했다.
유럽도 폭염과 가뭄으로 시달렸다. 코로나19로 괴멸적 타격을 입었던 이탈리아는 14개 도시, 프랑스는 101개 구역에 폭염 비상경보가 발령됐다. 스페인 북부 지역인 산세바스티안은 7월 30일 기상 관측 이래 최고치인 42℃를 기록했다. 지난해 가뭄 속 산불로 1,700만 헥타르가 불에 타, 12억 5,000만 마리 이상의 야생동물이 희생됐던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지역에는 올해 기록적인 폭우가 휩쓸고 지나갔다. 미국의 남서부 데스밸리는 지난 6월 관측 사상 가장 높았다는 54.4℃를 기록했다.
세계은행은 지금 속도로 지구 온도가 더 더워진다면 2050년 기후 난민이 1억 4,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물 부족, 식량 부족, 해수면 상승, 해일, 홍수 등 자연재해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인류를 덮치리라는 것이다.
기상이변의 원인은 기후 온난화. 온난화는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메탄, 이산화질소 등 온실가스 때문이다. 이들 온실가스는 지구의 성층권을 에워싸 우주로 나가는 열을 가둔다. 1760년 산업혁명부터 1960년까지 지구 온도가 1℃ 올랐다면, 1960년 이후 1℃ 상승하는 데는 불과 6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금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면 앞으로 10년 뒤인 2031년엔 지금보다 0.5℃ 더 상승한다고 한다.
1℃ 상승이 무슨 대수이겠냐고 생각하지만, 북극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며 초원지대가 사막으로 변하고, 이상 한파로 작물이 죽고, 이상 난동으로 해충이 들끓는다. 빙하의 해빙과 함께 남태평양의 작은 섬들은 물속으로 가라앉고, 바다의 이산화탄소 저장고인 산호가 대부분 소멸해 온난화는 더 빨라진다. 2℃ 상승하면 생물종 50%가 소멸하고,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 밀림이 파괴된다.
기상이변은 감염병 발생에도 영향을 끼친다. 20세기 후반 지구 기온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감염병 발생 역시 많아졌다. 기원후 몇백 년에 한 번씩 발생하던 감염병이 20세기 1백 년 동안 스페인독감, 아시아 독감, 홍콩 독감, 에이즈가 발생했고,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에볼라, 코로나19 등이 잇따랐다. 인간에 의한 야생동물의 서식지 파괴 외에 기후 변화에 따라 각 생물이 생존에 알맞은 지역을 찾아 나섰고, 그 결과 인간과 접촉할 가능성이 커졌다. 열대지방의 토착병이 온대 지방으로 확산했다. 온난화로 영구동토층에 냉동돼 있던 바이러스가 해동되면서 야생동물과 인간에게 감염되기도 한다.
삼림파괴, 온실가스 방출, 지구 온난화, 감염병은 하나로 얽혀 있다. 인간의 환경 파괴는 온난화로 이어지면서 동시에 새로운 감염병을 생성하고, 온난화는 새로운 감염병의 출현과 확산을 재촉한다. 인간 욕망이 촉발한 파괴의 악순환은 하나의 인과 사슬로 이어져 있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은 이런 간단한 인과론도 부정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온난화 자체도 인정하지 않았다. 코로나19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존슨 영국 수상도 오만을 부리다가 코로나19에 감염돼 사경을 헤맸다. 유럽의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지도자도 그런 오판으로 나라를 위기에 몰아넣었다.
그들이 인과론을 외면한 것은 권력과 경제 곧 돈 때문이었다. 트럼프에게는 연말 대통령선거가 더 중요했고, 영국의 존슨이나 일본의 아베 등은 경기 침체를 우려했다. 선택된 무지였다. 몇몇 지도자의 무지 외에 인류의 집단적 무지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성장의 신화다. 페달을 밟지 않으면 자전거가 쓰러지는 것처럼, 국민경제 역시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빨리 성장하지 않으면 쓰러진다는 것이다.
3) 성찰, 광기[瞋]
욕망이 무지와 결합하면 광기가 된다. 톨스토이의 우화 중엔 파흠이라는 농부가 나온다. 100루블만 내면 쉬지 않고 달려간 만큼 땅을 갖게 해준다는 말에 끊임없이 달리고 달리다가 지쳐서 죽었다는 인물이다. 더 이상 먹을 게 없으면 자신을 꼬리부터 몸통까지 먹어치우는 우오로보로스라는 신화 속 뱀도 있다. 욕망과 무지가 결합해 광기로 발전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상징하는 것들이다.
파흠이 죽으면서 갖게 된 땅은 제 한 몸 들어갈 곳뿐이었다.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인간이 그것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광기에 사로잡히면 모두 망각한다. 우오로보로스는 제 심장까지 먹은 뒤에야 멈추고, 파흠은 쓰러지고 나서야 멈춘다.
사실 인간은 스스로 이런 파멸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어쩌면 인류 역사는 질주하는 욕망을 이용해 한편에서는 바벨탑(물질문명)을 쌓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멸로 가는 욕망의 질주를 통제하려는 지혜의 축적 과정이었다. 인류가 그나마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지혜 덕분이었다.
사람은 모르기 때문에 무지한 것이 아니다. 욕망의 달콤함에 취해 지혜가 성가시고 귀찮아 외면하고 무시할 뿐이다. 선택된 무지는 지혜의 싹을 잘라버린다. 코로나19라는 지구적 재난 속에서 사람들은 그런 지혜를 되살리려 했다. 욕망을 억제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본주의 시장질서를 성찰하며, 새로운 일상과 새로운 기준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과도한 속도, 과도한 접촉을 조절하려 했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나와 함께 공동체를, 소유보다는 행복을 추구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한국민이 선도적으로 코로나19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쉽게 사라질 광기가 아니다. 특히 우리 사회엔 광기로 충만한 정치와 종교가 있다. 중세 가톨릭이 그랬던 것처럼 정치와 종교가 결합하면 신념이나 신앙은 그 자체로 폭탄이다.
한국에서의 코로나19 1차 대유행은 개신교 일파인 신천지에 의해 촉발됐다. 신천지의 종교적 광기는 이 종교집단을 감염병 전염의 거대한 숙주로 만들어버렸다. 국민적 노력으로 겨우 극복하는 듯할 때 다른 개신교 집단은 2차 대유행의 숙주 노릇을 했다. 후자에 비교하면 신천지의 광적 신앙은 양순한 편이었다. 정치와 결합한 후자는 종교적 구원은 명분이고, 실제로는 세속적 권력에 탐닉했다. 이들은 성조기를 앞세운 대규모 집회를 통해 우리 공동체를 위기에 빠트렸다.
다시 일어서려던 자영업자들을 무너트리고, 재가동을 준비하던 공장들을 멈춰 세우고, 취업준비생들을 하늘만 쳐다보게 했으며, 비정규직 등 취약한 노동자들을 일자리에서 내쫓았다. 하다못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조롱할 정도로 우리 공동체를 다시 위기로 내몰았다.
이들만이 아니다. 아파트 투기꾼도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초저금리를 악용해 은행 돈으로 아파트 투기에 나서, 아파트값을 천정부지로 올렸다. 전통적인 투기꾼 이외에도 30대까지 뛰어들었다. 불로소득을 노린 탐욕과 우오로보로스의 무지가 결합한 광기였다. 그 결과 코로나19 재난으로 생계가 한계상황에 몰린 이들은 설상가상 집 문제로 절망에 빠졌다.
안정된 수입과 안정된 지위가 보장된 의사들도 그랬다. 이들은 코로나19 2차 유행을 제 밥그릇 지키는 데 악용했다.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파업으로 저지했다. 연봉 수억 원에 이르는 이들의 수입이 의사 증원으로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코로나19 1차 유행 때 대도시를 제외한 각 지자체는 감염병 전문의는 물론이고 일반 의사 부족으로 몸살을 앓았다. 2000년대 들어 우리는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에 시달렸고, 그때마다 공공의료 자원 확충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래서 이명박 · 박근혜 정부 때부터 감염병 전문가와 공중보건의 확충 방안을 모색했던 터였다. 광기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4) 성찰, 세계일화(世界一花)
인간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숙주로 만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대로 인간의 탐욕이었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다른 생명의 서식처를 파괴하여 바이러스를 인간의 마을로 불러들였다. 또 다른 원인은 인과론에 대한 의도된 무지였다. 다른 생명을 위태롭게 하면 인간 생명 또한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무시했다. 코로나19이 극복을 가로막는 것은 탐욕과 무지가 결합한 광기였다.
인간의 욕망은 페스트 팬데믹을 계기로 기독교의 통제에서 해방되기 시작했다. 욕망의 해방은 기독교로부터 인간 해방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해방된 욕망은 시장을 확장하고, 시장은 욕망 추구의 장애를 없애버렸다. 시장은 하나의 종교가 되어 모든 사람이 욕망을 마음껏 추구해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절된다고 설교했다.
시장은 욕망을 에너지로 질주했다. 욕망과 시장의 상승작용은 물질문명을 빠르게 발전시켰다. 욕망은 더 커졌고, 시장은 더 빨리 가동했다. 상품은 더 많이 생산되고, 더 빨리 소비됐으며, 성장 속도는 더 빨라졌다. 더 커진 욕망의 충족을 위해선 자연의 영역을 파괴해야 했다. 자연은 욕망 충족의 원재료였다.
감염병이 인간 사회에 퍼졌고, 자연의 영역이 좁아질수록 새로운 감염병이 더 많이 더 자주 출현했다. 농경 및 축산의 발달과 함께 시작된 감염병은 19세기까지 7~8종이었으나 20세기에만 4~5종이 새롭게 출현했고, 21세기 들어서 불과 20년 만에 4종이 출현했다.
대규모 산림 훼손 등 자연 파괴는 지구의 자정 능력을 떨어트렸고, 급증하는 화석연료 사용은 온실가스를 대량 방출했다. 지구는 거대한 비닐 이불을 덮어쓰기 시작했다. 태양의 열기는 이불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했다. 지구 대기와 바닷물 온도는 급속히 뜨거워졌다. 남북극 빙하의 해빙 속도가 빨라지고, 해수면 상승과 함께 태풍, 해일, 홍수, 가뭄, 산불, 이상 저온과 이상 고온 등의 기후위기가 폭발적으로 커졌다. 거기에 감염병까지 덮쳤다.
코로나19는 다행스럽게도 지구의 생물, 무생물이 하나의 끈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했다. 중국 우한의 한 시장에서 박쥐의 생체가 거래되던 중 발생한 이 감염병은 지금 동남아를 거쳐 미국과 유럽 그리고 전 지구에 거대한 폭풍이 되었다. 내가 오늘 버린 비닐봉지 한 장이 남극의 빙하를 녹게 하고, 밍크고래를 죽게 하고, 해수 온도를 높여 태풍을 일으키고, 남반구엔 가뭄, 북반구엔 홍수를 일으키는 것과 같다.
지금은 ‘초연결사회’라는 이름으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불교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이런 진리를 가르쳐왔다. 세계는 하나의 생명, 하나의 꽃이라는 가르침(세계일화)이 그것이다. 지구를 ‘생물과 무생물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변화하고 진화하는 하나의 생명체’로 바라보는 가이아 이론은 세계일화(世界一花)를 과학적으로 풀이한 이론이다. 가이아 이론이 세상에 나온 것은 1972년이었다. 부처님의 염화시중(拈華示衆) 설법으로부터 2,500여 년이 흐른 뒤였다.
세계일화는 한국불교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게송 가운데 하나다. 2,600여 년 전 부처님께서 인도 영축산에서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며 우주의 실상을 설파한 데서 유래했다. 이것이 ‘세계일화’로 정리된 것은 중국에서 선불교를 꽃피운 육조 혜능 대사의 비명이었다. “세계일화 조종육엽(世界一花 祖宗六葉, 세계는 하나의 꽃이요, 조종의 선풍은 여섯 잎이다.)”.
만공 스님은 ‘세계일화’를 해방된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로 제시했다. 그는 수덕사 작은 암자에서 광복 하루 뒤에야 해방 소식을 듣고는 선시 한 편을 썼다. “세계는 하나의 꽃/ 세계는 한 송이 꽃/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산천초목이 둘이 아니요/ 이 나라 저 나라가 둘이 아니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 ……”. 어리석은 자들이 세계일화를 모르고, 너와 나를 분별하고, 내 것 네 것을 구분하며 피아를 나눠 다투고 빼앗고 죽인다.
스님의 게송은 이렇게 이어진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이라는/ 이 생각을 바로 지니면 세상은 편한 것이요/ 세상은 한 송이 꽃이 아니라고 그릇되게 생각하면/ 세상은 늘 시비하고 다투고 피 흘리고/ 빼앗고 죽이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세계일화의 참뜻을 실현하려면 “지렁이 한 마리도 부처로 보고/ 참새 한 마리도 부처로 보며/ 심지어 원수들마저 부처로 봐야 한다.”
5) 성찰, 인드라망의 세계
부처님의 수행을 외호하는 제석천의 궁전은 유리구슬 코로 이어진 무한한 크기의 그물로 이루어져 있다. 유리구슬은 이음새일 뿐 아니라 제각각 다른 모든 구슬을 비춘다. 모든 구슬 속에는 모든 구슬이 비쳐 있다. 비추고 있는 것까지 비친다. 하나의 구슬엔 모든 구슬이 있고, 모든 구슬엔 모든 구슬이 있다. 하나이면서 전체이고 전체이면서 하나다. 중중무진, 모두가 연기적 존재이다.
인드라망은 세상 만물이 개별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서로에게 존재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상징한다. 세상 만물이 하나의 유기체를 형성하는 구성요소라는 뜻의 세계일화에서 한 걸음 더 나갔다. 인드라망은 불교 교리의 핵심 개념인 연기, 중도, 인과론 등 불교적 세계관을 함축한다.
멜로드라마에 많이 애용되지만, 사랑하는 사람 사이는 흔히 ‘내 안에 네가 있고, 네 안에 내가 있다’는 말로 표현된다. 연인 관계만이 아니다. 인간 나아가 모든 생명의 존재 실상도 표현한다.
실제로 ‘나’는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도움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산과 바다의 생물은 나를 먹여 살린다. 먹고 사는 문제만이 아니라 나의 꿈이나 생각 역시 다른 사람의 영향 속에서 이루어졌고, 그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변해간다. 인도의 부처님 가르침과 팔레스타인의 예수님 가르침은 내 신념을 형성하는 자양분이 됐고, 간디나 슈바이처의 삶은 내 삶의 지표가 됐다. 나의 생각 신념은 누군가의 생각이고 신념이다. 우리는 모두 네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네가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는 그렇게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과 이웃을 돌아보게 했다. 인간의 탐욕에 의해 파괴되는 자연과 이웃을 돌아보게 했으며, 나와 이웃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성찰하게 했다. 나아가 모두가 서로에게 의지한다는 존재의 실상과 마주하게 했다. 이런 성찰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진실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했다.
성찰은 그 자체로 그치지 않는다. 참된 성찰은 실천으로 이어진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고, 실천을 통해 구현되지 않는 깨달음은 거짓이다. 성찰은 나눔과 자비의 실천을 낳았다. 코로나19 대구 유행 때 우리 공동체는 성찰-깨달음-실천의 전형이었다. 의료진과 119대원, 자원봉사자들이 대구로 몰려갔고, 아이와 노인들이 긴 기부행렬에 섰으며, 주부와 농부는 음식을 만들어 전했다. 《정의론》의 저자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이런 모습을 보고 ‘한국이 코로나19를 선도적으로 극복한 것은 특유의 공동체 의식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지구적 분업과 초연결사회에서 나는 중국의 옷과 남미의 과일과 동아시아의 곡류를 먹고 입고 산다. 그들은 한국의 스마트폰을 이용해 정보를 획득한다. 먹이사슬 속에서 어떤 생명이건 다른 어떤 생명의 밥이 되고 생명이 된다. 다른 생명이 오염되면 나의 몸도 오염되고, 내 몸이 오염되면 다른 생명도 오염된다. 중중무진, 모든 생명은 그렇게 서로 의지하여 존재하며 생멸하고, 생멸하며 존재한다. 연기론이다.
그러나 이윤만을 추구하는 시장은 이런 연기론을 외면하기 일쑤다. 특히 시장 만능주의는 인간은 물론 모든 생명과 자연을 생산의 대상이자 수단으로 취급한다. 인간은 노동력으로, 자연은 개발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모두가 한 생명이라는 인과론은 발붙일 수 없다. 시장은 경쟁을 신앙처럼 떠받든다. 최고의 효율과 최고의 이윤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쟁 구조 속에서는 모든 이웃은 이기고 극복해야 할 상대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피할 수 없다. 네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네가 있다는 연기론은 무시당할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 연기론은 불온한 사상이다.
코로나19는 인간의 욕망으로 가동되는 시장 만능주의의 실상을 드러냈다. 아울러 인과론과 연기론을 되살려내고 있다. 남은 것은 사람들이 그것을 존재의 실상으로, 우리 삶의 원리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시간도 별로 없다. 감염병 위기, 기후 재앙은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문제다. 그동안 이를 막아준 자연의 복원력은 한계에 도달했다. 순환, 인과, 연기의 고리는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4. ‘베살리로 가는 길’과 자비 공동체
코로나19가 경험적으로 우리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결코 나 혼자 잘한다고 재난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나 혼자 잘산다고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다. 코로나19는 심지어 떠들어대는 감염자 곁을 스치기만 해도 감염될 수 있다.
이런 감염병이 우리 마을에 창궐하면 나 혼자 아무리 방역을 잘 한다 해도 나와 내 가족이 안전할 수 없다. 직장이나 거래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나 어린이집, 종교 시설, 시장 등이 안전해야 나도 우리 가족도 안전할 수 있다.
나라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유행에 휩싸인 대구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볼 수 없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전 국민이 함께 나서서 진화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의 대유행은 피할 수 없었다. 국가 간에도 그렇다.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것이 전 지구로 번지는 데는 불과 1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청정국이라 하더라도 이웃 나라들에서 유행하면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우리는 이웃 나라들과 경제적으로 한 몸처럼 얽혀 있다. 이웃들이 어려움을 겪으면 우리도 고통을 피할 수 없다. 누군가의 질병, 누군가의 고통에 함께 맞서야 하고, 함께 협력하고 극복해야 하는 이유다. 인드라망의 세계가 자비 공동체인 이유이기도 하다.
부처님은 멀리 떨어진 베살리에 감염병이 돌자 굳이 먼 길을 걸어가 병든 이들의 치유를 도왔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죽림정사에 머물 때 밧지족 상업도시 베살리에 전염병이 창궐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 베살리의 시민들이 부처님에게 도움을 청했고, 부처님은 비구들과 사흘을 걸어 비사리성에 도착해 《보배경》을 설했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내용의 경전이다. 부처님은 베살리 사람들에게 함께 《보배경》 게송을 외우게 했고, 제자들과 함께 발우에 물을 담아 밤새 거리와 환자들에게 뿌렸다. 시신을 치우고 거리를 청정히 하는 일을 7일 동안 계속하자 전염병은 사라지고 베살리 사람들은 다시 행복을 누렸다.— 중아함 《보배경》
재난 앞에서 인간은 두 가지 극단적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광기에 사로잡히는 인간형이 하나고, 헌신하고 상부상조하는 인간형이 다른 하나다. 전자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의 ‘홉스형 인간’이라면 후자는 ‘상부상조하고 협력하는’ 크로포트킨형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로는 일본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들이 조선인 이주자들에게 저지른 학살, 방화, 강간 등을 꼽을 수 있다. 유고 내전 때 세르비아계가 이웃인 이슬람들을 학살하고 인종청소 한 것도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보다는 재난 속에서 오히려 인간성의 아름다움과 선함을 꽃피운 사례들이 더 많다. 이번 코로나19 대유행 때 대구에 보낸 대한민국 시민들의 지원과 헌신은 그 좋은 실례다. 1980년 공수부대의 거대한 폭력에 맞서면서 광주 시민들이 보여준 공동체 정신도 거기에 포함될 것이다. 고립돼 있던 일주일 동안 광주 시민들은 서로 나누고 위로하고 돌보는 전혀 새로운 공동체를 이뤘다. 약탈, 폭력 등 일반 범죄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평소 약자를 괴롭히던 이들도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앞장섰다.
문명비평가 리베카 솔닛은 그래서 이런 상투적인 분류를 거부한다. 솔닛은 재난 앞에서 야수성을 드러내는 것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소수의 상층 엘리트들이었지 평범한 시민들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상층 엘리트들은 재난 상황에서 시민들의 사소한 범죄나 일탈을 폭력 난동으로 과장해 선동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누려왔던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2004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때 권력자들은 숱한 경고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재난을 키웠다. 모든 것을 잃은 빈민들을 지원하고 구호하기는커녕 이들을 방치하고 억압했다. 고립과 굶주림 속에서 발생한 일부 폭력을 폭동으로 내몰아 무력진압 했고, 이를 통해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고 한다. 당시 뉴올리언스의 빈민가에서는 생필품이 없어 상점을 터는 경우보다 가진 것을 나누고 더 힘든 처지에 있는 이들을 도와주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도 신군부는 폭도들이 광주를 장악했으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무력을 동원했다고 거짓말을 늘어놨고, 이런 거짓 선전을 이용해 권력을 장악하려 했다.
솔닛의 이런 분석은 우리가 경험한 현실에 가깝다. 광주민주화운동 이외에도 세월호 사태, 태안 기름유출 사고, 태풍 매미 사태 때 우리 평범한 시민은 위로하고 나누고 헌신했다. 시민들은 재난의 지옥 속에서도 공포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약자를 배려하며 연대와 사랑을 확인했다. 이기주의 대신 이타주의, 생존경쟁 대신 상호부조가 공동체 운영의 원리가 되는 기적을 보여줬다.
대만의 불교단체 자제공덕회는 코로나19 재난을 맞아 참회와 성찰 운동을 펼쳤다. 살아온 삶을 반성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며, 이웃을 돌보고 위로하며, 헌신하자는 운동이다. 결국 이웃과 슬픔을 같이하고 가진 것을 나눠, 자비 공동체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제 우리 공동체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탐욕과 무지 그리고 광기의 삶인가, 아니면 욕망의 절제와 이타심의 발현을 통한 자비의 삶인가. 욕망의 기관차에 올라타고 벼랑으로 직행할 것인가, 성찰과 절제의 수레를 타고 느리지만 지속 가능한 길을 갈 것인가.
결론은 명확해 보인다. 누가 죽음의 길을 택할 것인가. 누가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할까. 탐욕에서 절제, 인간 중심에서 생명 중심, 개인주의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 소유에서 존재로, 경쟁에서 협력은 피할 수 없다. ‘베살리로 간 부처님의 선택’에 담긴 뜻이다. ■
곽병찬 / 언론인. 서울대 인문대 미학과 졸업. 한겨레신문에 근무하며 정치 · 사회 · 문화부장, 논설위원, 대기자, 편집인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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