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 선사의 인과법문
양(梁)나라 무제(武帝)의 이름은 소연(蕭衍)이며, 성품이 착하고 불법을 믿어 당시의 고승 지공(志公) 스님을 국사로 모셨다.
황후 치(眼)씨는 불법을 믿지 않고 타고난 성격이 질투가 심하여, 왕궁 안의 사람을 학대하고 여러 가지 악을 지어 죽은 후 구렁이가 되었다.
어느 날 밤, 무제는 잠이 오지 않아 서늘한 누각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갑자기 전각 아래에서 ‘스스스’ 하는 소리가 들려, 보니 한 마리의 구렁이가 배회하고 있었다. 무제가 크게 놀라워하자 구렁이가 사람의 말을 하였다. “주상! 놀라지 마세요. 신첩은 황후이옵니다. 궁인을 괴롭혀 뱀의 몸으로 떨어졌습니다.”
뱀의 몸은 엄청나게 커서 몸을 숨길 구멍이 없었다. 배는 고프고 온 몸의 비늘마다 독충이 빨아먹으니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며, 무제에게 은혜를 베풀어 구제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무제는 뱀의 말을 듣고 혼비백산하여 쓰러졌다가 한참 후에야 깨어나서 탄식하며 말하였다. “사람이 선을 행하지 않으면 악한 과보를 면하기 어렵구나. 급히 지공 스님을 모셔와야겠다.”
무제가 지공 스님께 물었다.
“황후는 어찌하여 뱀의 몸을 받았습니까?”
스님이 말씀하셨다.
“황후는 부처님을 공경하지 않고 선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인과를 믿지 않고 육궁의 궁녀들을 괴롭혔으며, 악독한 마음을 품고 나쁜 업을 한량없이 지었습니다. 다 인과응보이며 스스로 지어 스스로 받는 것〔自作自受〕이니, 추호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천지(天地)가 벌을 내리는 것은 사실은 스스로가 초래하는 것입니다. 만약 죄를 범하지 않으면 염라대왕이 어떻게 벌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무제는 스님께 구제해주실 것을 청하였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려면 반드시 대왕은 성심으로 왕비들과 함께 재계를 지니고, 고승을 청하여 도량을 지어(법석을 만들어) 친히 예배하면서 참회를 해야 비로소 구제될 희망이 있습니다.”
무제는 즉시 진실한 마음을 내어 여러 왕비들과 함께 재계하면서 오백 명의 고승(高僧)을 청하여 참회의 법을 닦았다〔후에 이것을 양황보참(梁皇寶懺)이라고 칭하였다〕. 무제는 친히 부처님께 예배하면서 황후의 천도를 간절히 빌었다. 스님들이 예배 송경할 때 단 아래의 구렁이가 몇 번 몸을 선회하더니, 황후는 이미 천도되어 구름 속에서 천인(天人)의 몸을 나타내면서 감사의 예를 올리고 떠나갔다.
부처님의 가피력(加被力)은 불가사의하며, 무제는 그 후로 수행에 정진하고 경전을 연구하면서 불법의 오묘한 이치를 이해하였다.
무제가 지공 스님께 여쭈었다.
“부인은 이미 제도되어 고통에서 벗어났으니, 선악의 업보는 과연 어둡지 않습니다. 짐(朕)은 금생에 한 나라의 주인이 되었는데 무슨 공덕으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답하셨다.
“대왕의 전세(前世) 인연은 대왕께서 듣고 부끄러워할까봐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무제는 다시 간절히 청하면서 “제자는 과거의 인연을 매우 알고 싶습니다.”고 하였다.
지공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은 전세에 나무꾼이었습니다.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벨 때 오래된 절이 있어 보니, 낡고 허물어져 산문(절)이 몰락한 것이었습니다. 지붕도 다 허물어져 절 안에 오래된 불상이 비바람에 젖어 있었으며 공양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당시 나무꾼은 착한 마음을 발하여 자기의 대나무 삿갓을 벗어 불상의 머리에 덮어주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보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나무꾼이 자신의 삿갓을 부처님께 공양한 것은 어렵고도 고귀한 행위입니다. 그 덕분에 인간이 되고, 왕의 몸을 얻게 된 것입니다. 대왕께서 전세에 이렇듯 착한 일을 지었기 때문에 금생에 이러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무제는 과거 생에 매우 작은 일을 했는데 오히려 임금이 되었으니, 마음이 매우 기뻤다. 무제는 금생에 다시 큰 복을 짓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고, 성지를 내려 나라 안 5리(五里)마다 하나의 암자를 짓게 하고 10리마다 절을 짓게 하였다. 날이 갈수록 짓는 절이 매우 많아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제는 중병을 얻게 되었으며, 지공 스님께 가서 여쭈었다. “저는 이 즈음 크게 착한 일을 하고 나라 안에 많은 절을 지었는데, 어째서 큰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까?”
지공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께서는 큰 선을 지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대왕께서 큰 악을 지었다고 말하렵니다.”
무제가 말하였다.
“저는 과거 생에 삿갓을 부처님께 덮어주고 임금의 자리를 얻게 되어, 금생에 착한 마음을 크게 내어 나라 안에 절을 많이 짓게 하였는데 어찌하여 악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왕은 전세에 부처님께 삿갓을 드린 것은 지성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큰 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금생에는 아래에 하달하여 널리 절을 짓게 하였으며, 또 자기는 돈을 보내지도 않고 힘을 보태지도 않으면서 천하의 백성들에게 절을 지으라고 하였습니다. 백성의 신음소리는 하늘에까지 닿았는데 당신은 오히려 복을 얻기를 생각하십니다. 세상 사람을 괴롭혀 천하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합니다. 당신이 비록 천자일지라도 만백성의 원성을 막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이 악업을 지은 게 아니고 무엇입니까?”
무제는 듣고 보니 매우 부끄러웠다. 또 묻기를 “태자가 최근 온 몸에 부스럼이 나서 밤낮으로 고통스러워하는데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대왕께서 지은 악업(惡業)이 태자에게까지 연루된 것입니다.”
무제가 놀라서 말하였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액난(厄難)을 소멸시킬 수 있는지 자비로써 가르쳐 주십시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느 곳에서 넘어졌으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이전에 절을 지을 때 주지 않은 노임을 하루 빨리 내려 보내 보상해 주어서, 백성이 빈손으로 일하지 않게 하면 자연히 평안하게 될 것입니다. 마땅히 고아, 장애인 등을 불쌍히 여겨 도울 것이며, 노인을 사랑하고 어린이를 귀여워하며, 스님들이 와서 시주를 청하면 성심으로 보시하여야 할 것입니다. 수행하는 스님은 중생의 복전(福田)인데 (복을) 심지 않으니 정말 애석합니다.”
무제가 또 물었다.
“사람이 보시하지 않고 복을 닦지 않으면 선망(先亡) 조상들이 어찌하여 괴로워합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망 조상들이 살아생전에 선을 닦지 않아 죽은 후 저승에서 고통을 받고 있으니, 자손들이 복을 지어 그 공덕으로 인해 죄를 가볍게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집안을 지키는 신, 조왕신(鋤王神), 지신(地神) 등도 세상 사람들이 선을 지어 함께 착한 힘을 받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무제가 물었다.
“스님들의 수행은 좋은 일인데 어찌하여 밖으로 가서 시주를 받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대자대비로 중생을 아들과 같이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절을 나와 빈부를 가리지 않고 순서에 따라 걸식하였습니다. 부처님은 부처의 눈으로 세간을 봅니다. 비록 사람이 되어 단지 은애만 알고 연연해하면서 복을 지으려 하지 않으며, 업을 지을 줄만 알지 참회할 줄을 모릅니다.
목숨이 다하여 죽으면 저승세계로 들어가는데 큰 고뇌를 받게 됩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 도솔천(兜率天)에서 인간세상으로 하생하여 제왕가에 태어났으나, 출가하여 도를 닦아 정각(正覺)을 이루었습니다. 44년 동안 300여 회의 설법을 하였으며, 중생을 교화하여 악을 떠나 선으로 향하게 하고, 허망한 번뇌를 끊어 본래 구족한 불성(佛性)을 회복하게 하였습니다.
만약 출가한 스님이 불경(佛經)을 연구하지 않고, 좌선 참선을 하지 않으며 염불수행을 하지 않고, 나무하고 물을 긷지 않고(즉 일을 하지 않고) 절을 돌보지 않으면, 신도들의 보시를 헛되이 소비하는 것이며, 네 가지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니 그 죄가 가볍지 않습니다. 좋은 스님은 마땅히 열심히 배우고 참선에 노력합니다. 만약 도심(道心)이 있는 스님이라면 용맹정진의 마음을 발해야 할 것이며, 만약 절의 당우와 불상이 허물어진 것을 보면 마땅히 시주를 모금하여 수리해야 할 것이며, 시주받은 물건은 사사로이 써서는 안 됩니다. 시주가 보시한 것은 모두 절의 소유로 귀속되며 시주의 복과 지혜가 증장됩니다.
이와 같으면 바야흐로 출가한 불제자, 도를 배우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천하에 착한 남자, 여자는 매우 많습니다. 만약 출가한 스님이 (그들을) 교화하지 않으면, 그들이 비록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복을 심을 곳이 없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스님들의 책임입니다.
스님들이 와서 시주를 모으는데 제왕께서 만약 인색하여 보시하지 않으면, 그것은 제왕께서 빈궁한 업을 심는 것이며, 또한 복을 심을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스님들은 열심히 수행하지 않고 무리를 지어 장난치며 세월을 보내면서, 절의 이름을 빌어 시주자를 소원하게 하면(즉 신도들에게 불법을 가르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스님께서 답하였다.
“만약 스님들이 절을 짓고 불상을 조각하고 그리며, 시주금을 모집하는 것은 그 곳 백성들에게 부처님을 뵙게 하고 불법을 듣게 하는 것이니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길을 뚫고 다리를 놓으며, 부처님께 공양하고 스님께 재를 베풀며 도량을 세우고 폐관하여 참선하며, 모든 것을 함께 사용하면 공덕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게으르게 세월을 보내고 우매하여 삿된 견해를 가지고 불경의 법문을 믿지 않으며, 스승의 말을 듣지 않고 고기, 오신채, 술 등을 사사로이 먹고 마시면 그 허물은 무량합니다.
밝은 스승의 가르침을 구하지 않고, 가르침과 경서, 계율을 배우지 않으며, 선악의 인과를 알지 못하고, 삼악도의 괴로운 과보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진실로 스승과 부처님을 가슴 아프게 합니다.
비록 총림에 머물면서 절을 돌보지 않고 단지 자기의 안락만 추구하며, 손에 시주의 장부를 들고 곳곳으로 화주를 모집하면서 시주를 속이면, 부처님과 하늘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인과를 속여 시주의 재물을 속인에게 보내 사용하게 한다든지, 혹은 친척, 권속에게 주면서 삼보의 재물을 사사로이 사용하면, 소가 되고 말이 되어도 다 갚을 수 없습니다.
혹은 정재(淨財)를 가지고 세속의 여자와 사귀고 삿된 마음이 치성하여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면, 더러운 이름이 나서 신도들의 믿음과 보시의 마음을 물러나게 하며 스승을 상심시키게 됩니다. 이런 것이 스님들이 삼악도의 업인을 심게 되는 것이며, 괴로운 과보가 다할 기약이 없으니, 하루 빨리 가사를 벗고 산문(절)을 나가느니만 못합니다.
그리고 어떤 속인들은 승려인 체 속여서 불상을 조성하고 절을 짓는다고 하면서 돈과 쌀을 모읍니다. 그것으로 처자를 먹여 살리는 이러한 어리석은 사람은 귀신도 용납하지 못할 것입니다. 슬프고 탄식할 일입니다. (그들은) 순간의 즐거움을 누리다가 천년, 만년의 고통을 초래하며, 부모와 친척에게까지 누를 끼쳐 함께 삼악도(三惡道)의 고통을 받게 합니다. 임종 때는 (악도에 떨어져) 끓는 솥에 떨어진 게와 같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만약 착한 마음의 스님이라면 반드시 인과를 알고 마음에 사사로움이 없이 공평 정직하여, 절을 짓는 화주를 위하여 선(善)의 인(因)을 심고 반드시 선(善)의 과(果)를 얻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불법을 널리 펴 중생을 제도하면 부처님의 깊은 은혜를 갚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스님에게 시주들이 널리 공양하면 후일 함께 바른 과를 증득하게 될 것입니다. 올리는 공양물이 비록 작은 과일 하나라도 재를 올리는 당에 놓아야 하며, 이러한 공평한 마음을 가지면 불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무제가 또 물었다.
“세상 사람이 돈과 쌀로써 부처님께 공양하고 스님께 재를 올리면 어떠한 공덕이 있습니까?”
지공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과 스님께 공양하면 그 공덕은 매우 많습니다. 미래세상에서 반드시 무량한 수승한 과보를 얻게 됩니다. 절에 양식이 충분하면 스님들이 안심하고 수도를 할 수 있습니다. 출가인은 속진을 벗어나 계율을 지키고 밝은 스승께 법을 구하며, 전심으로 노력하면 머지않아 마음을 밝혀 견성(見性)할 수 있으며, 부처를 이룰 것이 틀림없습니다.”
무제가 물었다.
“사람이 죽은 후 스님을 청하여 천도(薦度)하면 죽은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나 천상으로 오를 수 있습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황후가 이미 구제되지 않았습니까?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단지 가족들이 성심성의껏 해주기만 하면, 그리고 천도해 주는 스님이 계행(戒行)이 있는 분이면 구제될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독경(讀經)하고 예참(禮懺)하면 재와 공양이 청정해지며, 절대로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백천 사람도 모두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정말로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 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살생하여 깨끗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은 인과를 알지 못하여 술 마시고 고기 먹는 사람을 청하여 천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염불송경이 경건하지 않기 때문에 망자(亡者)에게 공덕이 없습니다. 생명을 살해하고 또 주육(酒肉)으로 도량(道場)을 더럽히면, 돌아가신 부모는 구제를 받지 못하고 도리어 살생의 업이 더 증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천도재에는 반드시 고기와 오신채가 들지 않은 깨끗한 음식을 써야 합니다.
도산(刀山)지옥, 검수(劍樹)지옥이 모두 살생의 업으로부터 옵니다. 경에서 이르기를, ‘악업의 연을 맺으면 더욱 깊고 중해진다.’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청정하지 못한 불사(佛事)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제도코자 하면 먼저 반드시 자신을 제도해야 합니다. 고인이 이르기를, ‘한 사람이 도를 얻으면 아홉 조상이 승천한다.’라고 합니다. 마을에 억울하게 죽은 원혼이 그의 착한 힘을 타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탄승게(嘆僧偈)에서 이르기를, ‘덕이 있는 스님이 도량을 지어 엄정하게 재계하고 경문을 염송하며 성심으로 예불하면 많은 공덕이 있으며, 살아있는 사람과 망자가 모두 이익을 받고 길상함을 얻게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훈승송(訓僧頌)에서 이르기를, ‘손에 바라(징)를 들고 치면서 술 마시고 고기를 먹으며 도량을 만들고 불경(佛經)을 더럽히는데, (이건) 정말로 애석하며 망인(亡人)에게는 오히려 더욱 재앙을 초래하게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물었다.
“어떤 사람은 잘 입고 잘 먹고 하며 많은 복을 누리는데, 이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답하셨다.
“전세에 보시를 많이 한 복입니다. 경에 이르기를, ‘인과응보이며 자작자수(自作自受)’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복을 누리는 사람은 복을 다 누리면 안 되며, 복을 아끼고 늘려야 합니다. 복이 있으면 복을 짓기도 쉬우며, 도를 닦기도 편리합니다. 돈이 없으면 보시하려고 해도 매우 어렵습니다. 만약 복이 있어도 수행할 줄 모르고 이전의 복을 다 써버리면 괴로운 날이 다시 올 것이니, 하루빨리 깨달아 복을 아끼고 복을 닦으며 선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무제가 탄식하며 물었다.
“어떤 출가인은 절에서 수행하지 않고 도리어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 절의 스님에게 손해를 끼치는데, 이것은 무슨 원인입니까?”
지공 스님이 답하였다.
“이러한 무리들은 모두 성도(成道)를 막는 요사스런 마의 무리로서, 마음에 의심이 많고 한(恨)을 품어 스님의 모습을 지어 불법을 파괴하러 온 것입니다. 말법(末法)의 시대에는 사마(邪魔), 외도(外道)들이 스님의 옷을 입고 불법의 용어를 사용하면서 술 마시고 고기 먹으며 돈을 긁어모으는데, 갖가지의 방법으로 불교를 파괴하려고 올 것입니다. 이러한 무리들은 절을 집으로 삼고 청정한 부처님의 땅을 더럽히며, 불법의 참된 모습을 파괴할 것이니, 죽어서는 아비지옥에 떨어져 무량한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무제가 또 물었다.
“불법은 미묘하여 능히 생사의 고해를 건널 수 있으며,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릴 때 출가하여 이미 스승의 은혜를 깊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라서는 열심히 도를 배우지 않고 사중(寺中)의 돈과 쌀, 재물을 가지고 가서 환속하여 아내를 얻기도 하는데, 이러한 사람은 이후 어떻게 됩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이러한 무리는 죄의 뿌리가 매우 깊고 두터우며, 복력(福力)이 천박합니다. 또한 출가하는 것이 해탈(解脫)의 길이라는 것을 믿지 않지만, 진실로 참회하면 안락을 얻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사람은 축생에서 몸을 바꿔 처음으로 인간의 몸을 얻게 된 무리로서 삿된 마음이 쉽게 생기며, 또 불법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잘못이 있으면 참회하여 고쳐야 하며, 작은 잘못이 큰 잘못으로 자라지 않게 해야 합니다.
불문(佛門)의 돈, 쌀, 재물은 시방의 시주들이 먹을 것, 입을 것을 절약하여 보시한 돈으로서, 원래 절의 스님들이 안심하고 도를 닦게 하는 자량입니다. 스님들이 정진 수도하지 않으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데, 도리어 그것을 가지고 나가서 환속하여 처를 얻고 머리를 기르는 것은 (축생의) 꼬리가 생기는 원인이며, 아내와 같이 하는 잠자리는 (지옥의) 쇠 침대입니다. 그때가 되면 염라대왕의 심판에서 도망가기 어렵습니다.
절에는 사왕(蛇王)보살이 불법을 보호하고 지키는데, 그때 가서는 육친 권속까지 연루되어 편안하지 못하며, 자신은 바로 지옥으로 들어가 천백만 년이 지나도 벗어날 기약이 없습니다.
이전에 양(陽)씨 스님이 계셨는데 덕행이 단정하고 산에서 수행을 하던 좋은 스님이었으며, 수행에 성취한 바가 있어 하루는 선지식을 참방하러 가려고 하였습니다. 막 떠나려고 하는데 호법신장인 사왕(蛇王)이 가로막고는 비단 한 필을 돌려주어야 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양씨 스님은 말하였습니다. ‘나는 산에 있으면서 무슨 비단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사왕이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여기 처음 계실 때 종이 한 장으로 과자를 싸서 어머니에게 보낸 적이 있는데, 오늘 계산해 보니 비단 한 필을 돌려주어야 이 절에 빚이 없게 됩니다.’
양씨 스님이 말하였습니다. ‘지금 절에는 도를 수행하지 않고 함부로 나쁜 짓을 하는 자들이 많은데, 당신은 그들에게는 참견하지 않고 왜 나에게만 막고 빚을 받으려 합니까?’
사왕이 말하였습니다. ‘그들이 수행을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지었으므로, 스스로 (그 과보를) 받을 것입니다. 일단 그들의 나쁜 악업이 가득 차면 목숨을 마칠 때 내가 그들에게 결판을 낼 것입니다. 그들은 죽어 지옥에 들어가 죄를 다 받고 나면 다시 축생의 몸이 되어 이전의 빚을 갚을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지옥에 들어가기를 원하면 나도 당신을 막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이전에 부처님 앞에서 큰 서원을 발하기를, 무릇 절의 재물은 금은보화, 기타 기물, 쌀 등 크고 조그마한 것을 막론하고 모두 보호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양씨 스님이 말하였습니다. ‘종이 한 장을 가져갔는데, 왜 비단 한 필을 갚아야 합니까?’
사왕이 말하였습니다. ‘나는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 절의 재물을 관리합니다. 시주의 보시를 기록하는데, 하나를 보시하면 만 배의 과보를 얻습니다. (절의 재물을) 낭비하고 손해를 끼치는 것을 일일이 기록하여 밤낮으로 그 이자를 계산하여 상환 받습니다. 나는 서원을 발하기를, 절의 벽돌과 기와가 재로 변해야 비로소 관여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까지 계산해보니 당신은 비단 한 필을 갚아야 합니다.’
양씨 스님이 듣고는 몹시 놀라고 걱정되어 연이어 땅에 대고 절을 하며, 너그러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빌면서 즉시 방법을 강구하여 갚겠다고 하였습니다. 양씨 스님은 은 석 냥을 모아 절의 스님에게 돌려주고는 후인을 경계하는 게(偈)를 지었습니다.”
낮에 열심히 일하고 밤에 좌선하며
가람(절)의 밥값을 면하고자 하네.
만약 나의 경계하는 말을 듣지 않으면
천년, 만년을 지옥에 떨어질 것이네.
지공 스님이 이어서 말씀하셨다.
“양씨 스님은 게를 읊고는 구름을 타고 가버렸습니다. 산문(절)을 침해하는 사람은 후손이 끊어지며, 절의 재물을 도둑질하면 화(禍)가 서로 잇따릅니다. 사왕보살도 게를 지어 경계하였습니다.”
옛날 영산회상에서 일찍이 서원을 발하여
절의 조그마한 풀 하나라도 지키려고 하네.
승려와 속인이 인과의 법칙을 지키지 않으면
한 치의 오차 없이 보응을 받으리라.
절의 재물을 침해하면 지옥의 인이며
재물을 도둑질하면 화가 서로 따르리라.
종이 한 장 가져가서 비단으로 갚고 공중으로 올라갔으며
빚의 업은 윤회에 떨어지게 하네.
양무제가 또 물었다.
“어떤 스님은 돈을 많이 저축하고는 비록 전도됨이 없고 바르지 못한 행을 하지는 않으나, 보시하지 않고 법을 널리 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후 어떻게 됩니까?”
지공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들은 스님의 본분사인 홍법이생(弘法利生)의 일을 망각하였으니 속인과 다름이 없으며, 재물을 지키는 수전노가 되어 탐심이 중하기 때문에 죽으면 아귀가 될 것입니다. 절에 재물이 남으면 절대로 이익을 꾀하여 사람들에게 빌려주지 말고 마땅히 홍법이생에 사용해야 하며, 자선보시를 하여야 비로소 불법과 시주에 대하여 떳떳합니다.
같은 수행자들이 나쁜 과보에 얽혀든 것은 숙세의 업장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고, 예배하고 송경하며 선을 지어야 합니다. 우리 불법 문중의 사람은 절대로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수행해 나가야 합니다. 향을 올리고 물을 바꾸는 데 편케 하기 위하여, 잠을 잘 때에는 옷을 벗지 말아야 합니다. 부지런히 참구하고 예불할 것이며, 제때 종과 북을 쳐야 하며, 정진 수행해야 합니다.
염불, 송경, 예참의 일은 빠뜨리지 말고 위로는 사은(四恩)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삼악도의 중생을 구제할 것이며, 원력(願力)에서 물러나지 말고 수행함에 나태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공(功)이 쌓이고 덕(德)이 모이면 마침내는 도과(道果)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인과를 믿지 않고 경·율을 보지 않으며, 스스로의 편견에 집착하여 삼보를 훼방하고 스승과 어른을 업신여기며, 상주재물을 파괴하고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이러한 사람들은 만약 잘못을 고쳐 자신을 새롭게 하지 않고, 악을 버리고 선을 닦지 않으면 장래 반드시 고통의 세계에 떨어져 받는 고(苦)가 다함이 없을 것입니다. 소위 말하기를 ‘무간업(無間業)을 초래하지 않으려면 여래의 정법(正法)을 비방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무제가 또 물었다.
“재보(財寶)를 보시하여 불보살의 형상을 조성하면, 어떠한 공덕이 있습니까?
지공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장 수승한 무루(無漏)의 공덕입니다. 『조상공덕경(造像功德經)』에 이르기를, ‘말법시대에 불상(佛像)을 조성하는 사람은 미륵보살이 성불한 후 첫 법회에서 해탈을 얻을 것이다. 이것은 32상(相)의 인(因)이며 능히 성불하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부처님께서 우전왕(優塡王)에게 말씀하시기를 ‘불상을 조성하는 사람은 세세생생 악도에 떨어지지 않으며, 즐거운 복을 받으며, 신체가 단정하고 금빛이 나며,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된다. 만약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항상 제왕이 되거나 대신, 장자, 현명하고 착한 가문의 아들, 부유하며 존귀한 사람이 될 것이다. 이들은 무수겁을 지나면 성불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불상을 조성하고 그림을 그리려면 정통하고 우수한 장인(匠人)을 선택하여, 함께 공경심을 일으키고 최상의 심혈을 기울이면 최상의 묘한 과보를 얻게 됩니다. 만약 장엄스럽지 못하면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불상을 조성하고 경을 간경할 때 공인(工人)과 함께 발심하여 청정하게 재계를 지켜야 합니다. 만약 술을 마시고 오신채를 먹으면 비록 조성하는 것이 많을지라도 공덕은 매우 적습니다. 만약 공경심과 재계를 지니면 복의 과보가 무량합니다.”
무제가 또 물었다.
“스님들이 폐관(閉關)하여 좌선(坐禪)하면 그 공덕은 어떻습니까?”
지공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스님들이 재계(齋戒)하고 예배·송경하면 그 복덕은 헤아리기 어려운데, 하물며 일심으로 좌선하는 것이야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심불란(一心不亂)하고 만법(萬法)이 모두 공(空)하면, 머지않아 공(功)을 이루며 반드시 성불(成佛)할 것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좋은 호법(護法) 거사가 있어 결연히 폐관수행을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불법을 닦는 데 절대로 아만심을 가지지 말고 고요하여 어지럽지 않아야 합니다. 경에 이르기를, ‘만약 사람이 잠시라도 정좌하면 항하사의 칠보탑을 쌓는다.’라고 하였습니다. 보탑은 필경에는 먼지로 변하지만, 청정한 일념은 정각(正覺)을 이룹니다. 그리하여 인천(人天)의 공양을 받으며 세간의 깨끗한 복전이 될 것입니다. 사사(四事)공양에 감히 노고를 아끼면 만 냥의 황금도 소멸하게 될 것이며, 시주가 재물을 보시하여 성심으로 공양하면 그 공덕을 어찌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무제가 또 물었다.
“송경(誦經)의 공덕은 그 복이 어떠합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송경의 공덕은 불가사의하며, 그 복도 상·중·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무제가 물었다.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불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상·중·하의 높고 낮음이 있다고 하십니까? 해설하여 주십시오.”
지공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불법은 평등하나 복을 짓는 데에는 상·중·하가 있습니다. 스님을 속가의 집으로 청하여 송경하는 것은 하품(下品)이며, 산과 들에서 송경하는 것은 중품(中品)이며, 절에서 송경하는 것이 상품(上品)입니다. 왜냐하면 속가의 집은 청정하지 못하며, 산과 들은 비교적 청정하며, 절은 청정한 곳이라 제불(諸佛)이 상주하기 때문에 상품이 됩니다.
경은 법보(法寶)로서 평범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 천룡이 보호하며, 삿된 마(魔)도 합장합니다. 따라서 향과 꽃과 등과 과일 등으로 공양하여 부족함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부족하면 공경스럽지 못한 것입니다. 봉공하는 사람은 거칠고 침착하지 못한 행동으로, 경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놀라게 하거나 움직이게 하여 전심하지 못하게 하면 안 됩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한 번 생각이 동하면 천 리나 벌어진다.’라고 하였습니다. 비유하면 길을 가는데 동반자를 잃는 것과 같으며, 스님들이 히히덕거리면 성심이 없으며 위의(威儀)를 갖추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경속의 이치를 신해(信解)하지 못하고 마음이 원숭이나 말같이 달리면, 이것은 경을 읽는 사람의 과실이며 다른 사람과는 무관합니다.
만약 성심으로 재계하고 여법하게 예송(禮誦)하면서 자구를 분명하게 독경하는 사람은 단지 몇 권만 송하여도 공덕이 매우 많으며, 만약 웃거나 하면서 읽으면 많이 읽어도 이익이 없습니다.”
게송(偈頌)으로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경을 읽는데 공경스럽지 못하면
설령 많이 읽더라도 헛되며,
경건히 위의를 갖춰 읽으면
바야흐로 큰 복전(福田)이 되네.
무제가 또 물었다.
“스님들이 재계를 지니지 않고 예불·송경하면 그 복덕은 어떠합니까?”
지공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재계를 지니지 않고 예불·송경하면 공덕이 전혀 없습니다. 경에서 이르기를, ‘복을 구하려면 재계를 지켜야 하며, 재계를 지니면 복을 얻을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불사(佛事)의 문중에서는 또 경에 이르기를, ‘입으로 오신채, 술, 고기를 먹으면 49일간 더럽고 깨끗하지 못하니, 불전과 보탑에 감히 오르지 못하는데, 하물며 예불하고 송경함에 있어서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능엄경』에서는 ‘오신채를 먹는 사람은 귀신이 와서 입술을 핥으며,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날로 복덕이 소멸하고 죄장이 증가되게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스님들이 재계를 지니지 않으면, 큰 공덕이 있는 불사에 시줏돈을 헛되이 쓰게 되는 것입니다.
경에 이르기를, ‘옛날에 세 사람이 동해를 건너가는데, 한 사람은 매우 총명한 사람으로서 한 척의 큰 배를 만들어 바다를 건너갔으며, 다른 한 사람은 큰 물소를 이용하여 꼬리를 잡고 건너갔다. 또 다른 한사람은 배나 물소를 이용하지 않고 단지 한 마리의 돼지를 이용하여 돼지의 꼬리를 잡고 바다를 건너가려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사람과 돼지 모두 바다에 빠졌으며, 도리어 사람들의 비웃음을 초래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비유는 불사를 하는 데 있어서 상·중·하 세 등급의 계행이 같지 않은 스님을 청하면, 얻는 복도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불사를 하여 복전(福田)을 구하는 데, 시주는 공경심과 공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스님은 재계와 위의를 가지고 경건하게 예배·송경하면서, 시주를 위하여 재난을 소멸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게송으로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대장경(大藏經)의 공덕은 산보다 크며
그대에게 권하노니 절대로 경솔하게 다루지 말라.
만약 신심과 공경심이 없고, 재계와 정성도 없으면
헛되이 경을 읽는 것이네.
삼승(三乘)의 묘법을 고금에 전하여
인간과 천상을 널리 제도함은 큰 인연일세.
생사의 바다를 건너는 데는 염불이 가장 수승하며
인간과 천상의 길에서는 복을 짓는 것이 우선이네.
무제가 물었다.
“탑에 절하며 예불하는 공덕은 어떠합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반드시 먼저 목욕재계해야 합니다. 예불 일 배는 무량의 죄업을 소멸시키며, 절을 많이 하는 공덕은 무량합니다. 한 번 예불하면 한 번 전륜왕위로 오르게 되며, 이러한 예불공덕의 인연으로 온갖 복을 갖춘 상호(相好)의 몸을 얻게 됩니다.
예배 시에는 오체투지를 하여 세 가지〔身口意〕 업을 항복받으며, 일신을 단정하게 하여 불보살을 직접 대면한 것과 같이 해야 합니다. 비뚤어지고 삿되이 고개를 돌리고 히히덕거리며 이야기하고 가래를 뱉어 부처님의 땅을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단정하고 장엄스럽게 공경해야 하며, 예불 예탑 모두 같습니다. 탑에는 불보살 또는 고승의 사리를 공양하거나 불경과 불상이 있습니다. 이것은 삼보가 장엄한 승지(勝地)이니, 예배공양하고 탑을 돌면 큰 공덕이 있습니다.”
무제가 물었다.
“염불(念佛)의 공덕은 어떠합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염불의 공덕은 비할 바 없이 광대합니다. 만약 사람이 지성심으로 (아미타불) 염불 일 구를 염하면 팔십억 겁의 죄업을 소멸합니다. 경에 이르기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아미타불의 명호를 듣고 명호를 염하여 1일 내지 7일 동안 끊어짐이 없이 일심불란하면, 그 사람은 임종 시에 아미타불의 극락국토에 왕생하게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경에 이르기를, ‘성심으로 아미타불을 염하면 팔십억 겁의 생사중죄를 소멸하며, 염불인이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하면 반드시 왕생하게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묻기를 “방생(放生)의 공덕은 어떠합니까?”
스님께서 답하셨다.
“그 공덕은 매우 큽니다. 무릇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불성(佛性)이 있으며 성불할 수 있습니다. 단지 미혹 망상으로 인하여 축생 등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생사에 윤회하면서, 각자의 마음씨와 행위에 따라 갖가지 모습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전에 자기의 가족이었을지라도 (모습이 바뀌면) 알아볼 수 없습니다. 만약 자비심을 발하여 재물을 들여 방생하면, 현생에서는 병을 없애고 수명이 늘어납니다. 왜냐하면 단명하고 병이 많은 고통은 모두 과거의 살생을 한 나쁜 업 때문입니다.
방생은 천지간의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덕에 합치되며, 부처님의 자비심이며, 관세음보살의 고난구제의 마음이며, 중생을 널리 제도하는 것입니다. 방생하는 사람은 천지간에서 불보살의 자비를 대신하여 세상을 구제하는 것이며, 이와 같은 사람은 필연적으로 흉함이 길함으로 변하며, 병이 없고 고뇌가 없으며, 자손이 창성(昌盛)하고 가문이 길상(吉祥)할 것입니다.
방생하는 사람은 방생되는 자의 감사의 은혜를 받게 되며, 살생하는 사람은 살해되는 자의 원한을 받게 됩니다. 눈앞의 은혜와 원수는 바로 미래의 복(福)과 화(禍)의 원인이며, 그 과보는 거울과 같이 밝습니다.”
무제가 물었다.
“세간의 부유한 사람은 선(善)을 행하려고 하는 사람이 적은데 무엇 때문입니까?”
스님께서 답하셨다.
“이 사람들은 전생에 일찍이 보시를 많이 하였으며, 금생에 복을 누리는 것은 과거의 착한 인연이 성숙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금생에 전세의 인연을 잊고 보시함에 인색한 마음을 내며, 부득이하여 보시를 하게 되면 마치 자신의 살을 베어내는 것처럼 애석하게 느낍니다.
이 사람들은 복을 누리면서 복을 늘릴 줄을 모르며, 복이 다 할 때 인색한 마음 때문에 반드시 빈궁한 과보를 받게 됩니다. 마치 사람이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빈궁한 사람이 배고픔의 고통을 깊이 알고 가난한 사람에게 먹을 것을 보시하면(더욱이 스님에게 공양하면), 이 사람은 마치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가는 것과 같으며, 고가 다하면 반드시 복이 오게 됩니다.”
게송으로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보시는 마치 우물 속의 샘물과 같아
아침에 가서 길어오면 저녁에 보충이 되며
삼 일 아침을 길러 가지 않으면
우물물이 어찌 가득 솟아나오겠는가!
무제가 또 물었다.
“세간의 사람 중에는 불공평한 것이 많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매우 가난하고 부자는 매우 부유하며, 괴로운 사람은 매우 괴롭고 즐거운 사람은 매우 즐겁습니다. 이것은 무슨 인연입니까?”
지공 스님이 답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연과보는 조금도 차이가 나지 않으며, 만약 사람이 부지런히 착한 일을 행하면 금후에는 반드시 안락하고 부귀하다고 하였습니다. 금생에 가난하고 괴로운 사람은 전생에 선행을 닦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괴로워도 선행을 닦을 줄 알고, 어떤 사람은 괴로움을 받고도 여전히 선행을 닦을 줄 모르니, 괴로움이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나한게(羅漢偈)에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부귀하고 빈궁함에는 각각의 원인이 있으며
숙세의 인연으로 정해진 것이니 억지로 구하지 말라.
봄에 종자를 뿌리지 않았으면서
빈손으로 황무지 밭에서 가을의 수확을 바라네.
무제가 또 물었다.
“부귀한 사람은 복을 누리면서 도리어 수명이 짧으며, 가난하고 괴로운 사람은 생활이 곤란하면서도 팔십여 세까지 장수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지공 스님이 답하였다.
“부귀는 보시(布施)로부터 온 것인데, 그가 구복(口腹)을 탐하여 널리 살생을 하고 생명을 해치므로 원결(怨結)을 맺어 병이 많고 수명이 짧게 됩니다. 선악의 업연(業緣)과 죄와 복의 과보는 추호도 틀림이 없습니다. 선을 찬양하고 악을 벌하는데, 모든 것은 ‘스스로 지어 스스로 받는 것’입니다.
금생에 마침 복을 누릴 때, 전생에 갚아야 할 생명의 빚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따라가야 합니다. 오래 장수하면서 고독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은 전생에 보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보시한 것은 없지만 살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생에 오래도록 살지만 빈궁하고 괴로운 것입니다.”
게송으로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인과는 분명하여 조금도 오차가 없다.
콩을 심었는데 어찌 팥이 나겠느냐!
선악에 복과 죄의 과보가 없다면
성인들이 어찌 그들을 믿고 따르게 하겠느냐!
무제가 다시 물었다.
“스님에게 공양〔식사〕을 올리면 그 복은 어떠합니까?”
스님께서 답하셨다.
“이와 같은 적선(積善)은 큰 이익이 있으며, 신심이 오래도록 물러나지 않아야 합니다. 스님은 공양을 받고 부끄러움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그 공이 얼마인지 그 밥이 온 곳이 쉽지 않음을 헤아려야 하며, 우리가 먹는 한 톨의 쌀은 농부의 땀이 배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금생에 도를 깨닫지 못하면 축생이 되어 갚아야 하니, 반드시 송경·예불하며 부지런히 수행하여 위로는 네 가지 은혜를 갚고, 시주와 함께 복을 쌓고 재난을 소멸하여 불도(佛道)에 올라야 합니다.”
게송으로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불법(佛法)의 문을 열려면
부처님을 공양하고 스님께 재(齋)를 베풀어야 하네.
여래의 가르침에는 수많은 방편이 있으니,
인간 천상에서 복을 심어야 하네.
한 방울의 물이 모여 강을 이루듯 복을 많이 쌓고
조그마한 보시가 감은(感恩)의 파도를 이루네.
믿기지 않거든 양무제를 보시게.
과거생에 삿갓 하나 보시하여 왕이 된 것을.
나한게에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조정의 재상과 왕후(제후)
부귀한 자 모두 전세에 복을 닦아 온 것이며
과거생에 사람이 되어 보시를 하고
단정한 모습 불법문중에서 구했네.
수행이 아니면 무엇을 얻겠는가?
부처를 이루는 것은 다 겁의 수행에서 온 것이네.
석가모니도 원래는 황궁의 태자였으며
관세음보살도 역겁(歷劫)의 수행으로 이루셨네.
아육왕(阿育王)은 왕궁의 즐거움을 연연해하지 않고
왕위를 버리고 산에 들어가 청정한 수행을 하였네.
여러 남녀와 현명한 분들에게 널리 권하노니
절대로 좋은 인연 짓는 것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지공 스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그대에게 권하노니 마음속의 심화(心火)를 식히고 관리들에게 화풀이하지 마십시오. 나쁜 돈 천 관(貫)은 구하기 쉽지만, 좋은 돈 한 푼은 구하기 정말 어렵습니다. 자비희사(慈悲喜捨)를 닦는 것을 끊지 마시고, 도를 이루면 재난과 장애를 면하는 길이 있습니다. 한가로이 놀기 위하여 육친을 끊으면, 훗날 재난과 횡화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에 미혹되어 수행하지 않으려 하며, 재물과 여자에 연연하여 그치지 않습니다. 산중에서 정좌하면 즐거움이 유유한데,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도처에서 구하려고 합니다. 지렁이도 불법을 들어 아는데 사람은 불법을 배우지도 않고 부끄러워할 줄도 모릅니다. 백년 인생을 헛되이 지내면 다시 사람 몸 얻기는 어렵고도 어렵습니다.
당신이 청산에게 어느 때 늙는가를 물으니, 청산은 당신에게 어느 때 한가한지를 묻습니다.”
무제가 물었다.
“세상사람 중에 복과 수명을 다 같이 갖추고 모습이 원만한 자는 무슨 인연입니까?”
지공 스님이 답하였다.
“이런 사람은 과거세상에서 불법을 믿고 재계하며 여러 착한 일을 지었기 때문에, 금생에 장자나 부귀한 집안에 태어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모습이 단엄하고 육근이 청정하고 신체가 건강하며, 병이 없고 재앙이 없으며, 주변 환경이 아름답고 복을 향유함이 자재합니다. 사람들이 공경하고 좋아하며, 처자·노복 등 모든 것이 여의하며, 재보가 풍요하여 수용에 다함이 없습니다.
이것은 전세에 보시하여 좋은 인연을 맺어온 복이며, 다른 사람이 빼앗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이와 같이 복을 누릴지라도 때에 맞춰 머리를 돌려야 합니다.”
게송으로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복을 누림에는 다할 때가 있으니
사람의 수명이 얼마나 되겠느냐!
부귀는 일장춘몽과 같아서
잠깐 사이에 없어지고 마네.
만약 제때에 수행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없어진 후에는 슬퍼지리라.
지공 스님께서 또 부귀게를 읊으셨다.
차가운 바람, 살을 에이며 눈꽃이 휘날리는데
따뜻한 누각, 붉은 화로의 석탄불이 달아오르네.
얼마나 많은 대갓집의 부귀한 객이
금병에 든 술, 향기로운 음식 맛보았는가!
몸에는 비단옷에 솜저고리를 입고
날마다 고기와 과일 먹으니 입이 향기롭네.
숙세에 선의 싹을 심었으니
금생에 부귀하여 영화를 누리네.
선을 지음에 인과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
금생에 장자의 집에서 복을 누리네.
만약 복을 누리면서 다시 복을 지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로구나.
무제가 다시 물었다.
“어떤 사람은 생산에 힘쓰지도 않고, 가계를 관리하지도 않고, 별 착한 일도 닦지 않으며, 오히려 당을 만들어 도적이 되는데 그 과보는 어떠합니까?”
스님께서 답하셨다.
“이 사람은 과거 이래로 선근을 심지 않고 많은 악업을 심었으며, 또 선량한 사람을 모욕하였습니다. 금생에는 반드시 빈곤한 집에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잘못을 고쳐 착해질 줄을 모르며 도리어 더욱 나쁜 짓만 일삼습니다. 마치 설상가상과 같아서 하루아침에 악이 가득 차면 관가에 체포되며, 죽어서는 지옥에 들어가 나올 기약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악하고 악독하며, 도처에서 사람들에게 재물을 약탈하면서 자신의 부(富)만 도모합니다. 남들의 고통은 돌보지 않으니, 죄업이 산처럼 높습니다. 죽으면 지옥에 들어가 염라대왕전 업경대에서 죄장이 모두 드러나며, 부모와 육친 권속까지 연루되어 함께 고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죄를 마치고 사람이 되면 남은 죄업이 있으므로 빈궁하고 곤란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몸을 가릴 옷이 없고 배를 채울 먹을 게 없으니, 갖가지 고난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지공 스님이 또 탄식하며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손에는 밥그릇을 들고 거리에서 동냥하며
머리에는 두를 모자도 발에는 신발도 없이
밤에는 다리 밑과 차가운 집에서 묵으며
낮에는 자루를 들고 남의 집 문을 기웃거리네.
차가운 한풍에 눈이 휘날리면
얼마나 많은 가난한 사람이 이맛살을 찌푸리는가.
땔나무와 쌀이 없어 아이들은 배고프다 소리치며
아내는 남루한 옷을 입고 추위에 괴로워하는구나.
전생의 죄를 한탄하지 않고 금생에 다시 게으르며
천지를 원망하며 마음씨 또한 비뚤어져
집에는 벽도 없고 신발은 낡아 바닥이 없으며
찢어진 옷은 몸조차 가리기 어렵구나.
헝클어진 머리는 얼굴을 덮고
손가락은 생강마냥 울퉁불퉁하구나.
이러한 빈궁한 모습을 보니
모두 전생에 (부처님께) 향을 사르지 않았구나.
지공 스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유주(幽州) 사람 모간(毛侃)은 집이 가난하였으나 살 궁리를 찾지 않고 게으르게 지냈습니다. 인과를 믿지 않고 각지에서 스님들을 속여서 쌀과 돈을 얻어와 생활하였습니다.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그러지 말 것을) 힘써 권하면서 남편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모간은 죽기 전 어느 날 밤 축생의 형상으로 변하였습니다. 다음날 돼지머리에 당나귀 발, 코끼리 귀에 사자코의 형상으로 어느 절로 들어가 청소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놀라며 무슨 괴물인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모간이 입을 열어 말하기를 ‘나는 괴물이 아니며, 절을 속여 돈과 쌀을 편취한 모간입니다. 어젯밤 사왕보살에게 잡혀와 벌을 받아서 이러한 형상으로 변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산의 절에서 마당을 쓸면서 이러한 추한 과보를 받으며, 그 후에는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라고 말을 마치고는 다시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과보록(果報錄)』에 실려 후세에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게송으로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유주지방의 모간이라는 사람은
절을 속여 재물을 취하면서 그 빚을 갚지 않으니
고기 같은 두 뺨에 큰 코끼리의 귀
당나귀 모습의 두 다리에 돼지 머리를 달았구나.
이전부터 지어온 악업이 끝이 없으니
절에서 땅을 쓸며 쉬지 못하는구나.
절을 왕래하는 객에게 권하노니
절의 물건은 절대로 탐하면 안 되노라.
무제가 다시 물었다.
“산문(절)의 인과가 이와 같이 매우 크면, 감히 무서워 오는 사람이 없으면 곤란한 것 아닙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인과가 매우 크다는 것을 사람들은 깊이 믿고, 절대로 스님의 재물은 속여서 취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불법은 착한 사람은 절에 와서 함께 권하여 선을 행하고, 악한 사람은 삿됨을 고쳐 바름으로 돌아와 악을 없애고 선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항상 착한 일을 하면 바로 선인(善人)입니다. 어떤 사람은 착한 사람인 양 가장하여 절의 재물을 탐하여 취하는데, 착한 일을 빌어 거짓을 행하면 마치 사람을 잡아먹는 나찰귀신과 같은 것입니다.”
무제가 또 물었다.
“가사(袈裟), 계의(戒衣, 장삼)와 종·북 등 법구(法具)를 보시하면 그 복은 어떻습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가사를 보시하면 일곱 생 동안 사람의 몸을 잃지 않으며, 계의를 보시하면 세세생생 배부르고 따뜻할 것입니다. 법기(法器)를 보시하면 음성이 우렁차고 좋은 명성을 얻게 되며, 양말과 신발을 보시하면 하인이 되지 않을 것이며, 짚신을 보시하면 길에서 돕는 사람이 있게 되며, 놀라고 위험한 경우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제가 물었다.
“스님들께서 사람들을 교화하는데, 우리들이 많은 재물을 보시하면서 도처로 시주를 구하러 가지 못하게 하면 어떻습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그건 좋지 않습니다. 스님들이 시주를 구하는 것은 시주자에게 복을 심고 좋은 인연을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반드시 한 사람만 교화해서는 안 됩니다. 널리 세상 사람을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발심하여 복과 지혜를 닦아 함께 고해를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경에 이르기를, ‘차라리 천집의 공양을 받을지언정, 한 집의 은혜를 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스님들의 원입니다. 보시자는 자기의 힘에 따라 하고 싶은 대로 복을 지을 것이며, 보시는 마음에 있지 재물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떨어지는 낙숫물도 그릇에 가득 차게 됩니다. 조그마한 선도 모으지 않으면 어찌 성인이 되겠으며, 조그마한 악도 그치지 않으면 자기 몸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합니다. 어떤 사람이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보았을 때, 환희심을 발하여 말로써 칭찬하면 그 복을 함께 얻을 수 있습니다. 하물며 인연 따라 보시하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따라서 마음씨를 잘 쓰는 것이 가장 뛰어납니다.”
고덕의 게송에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얼굴에 성냄이 없는 것이 참 공양이며
입에 성냄이 없으면 묘한 향기가 나오네.
마음에 성냄이 없으면 가치를 알 수 없는 보배이며
걸림이 없고 막힘이 없는 것이 참된 진리이네.
삼보의 문중에서는 복 닦기가 쉬우며
한 푼의 희사로 만 배의 보답을 받네.
그대와 더불어 견고한 창고에 맡기면
세세생생 복이 그치지 않으리라.
지공 스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세상사람 중에서 선을 짓고 복을 쌓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을 넉넉하게 가져야 합니다. 먼저 행하고 나서 후에 집의 아내에게 말하는 게 좋습니다. 아내가 원하지 않으면 서로 번뇌를 더하게 될까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어떤 큰 부자가 있었는데, 선을 좋아하고 보시를 좋아하였습니다. 선인(仙人) 여동빈(呂洞賓)이 감동하여, 그를 제도하기 위해 노인으로 변화하여 부자 앞에서 짚신을 팔려고 하였습니다. 그 장자는 짚신이 매우 좋은 것을 보고 사려고 가격을 물었습니다. 노인이 한 켤레에 황금 석 냥이라고 말하자, 그 부자는 돈을 가지러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자기 부인이 알고는 나무랐습니다. ‘당신 미쳤어요. 짚신 한 켤레에 어떻게 황금 석 냥이나 주고 사려고 합니까?’ 장자는 아내의 소리를 듣고 노인의 짚신이 너무 비싸다고 사지 않았습니다. 여동빈 도사는 한 수의 게송을 읊고는 가버렸습니다.
황금 석 냥의 가격 높지 않으며
짚신은 매우 튼튼하게 만들었네.
장자는 아내의 말을 듣지 말아야 하는데
선인(仙人)으로 하여금 빈손으로 가게 하였으니!
부자가 게송을 듣고 급히 바깥으로 나왔으나, 노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로소 그는 신선이 와서 시험하였다는 것을 알고는 가슴을 치며 크게 후회하면서, 복의 인연이 천박한 것을 탄식하였습니다. 세간에는 어질지 못한 부인들이 많이 있어 남편이 좋은 일 하는 것을 물러나게 하며, 남편으로 하여금 착한 일을 지을 인연을 놓치게 할 수 있습니다.”
게송으로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과거생에 이미 복을 심었으면
금생에도 자연히 큰 인연 있으나,
인색하여 놓지 못하니 신선은 가버렸으며
가슴을 치고 크게 후회해도 소용없구나.
무제가 또 물었다.
“어떤 사람은 절과 스님을 관장하면서 생사대사(生死大事)를 위하지 않고 오로지 불사(佛事)를 하여 돈을 모읍니다. 여러 대중들에게는 각박하게 하고 자기에게는 후하게 하며, 스스로는 재계를 지니지 않으면서 도리어 다른 사람을 비방합니다. 권세에 의지하여 공평하게 하지 못하고 여러 대중을 욕하여 신심(信心)을 잃게 하는데, (그런 사람은) 이후 어떻게 됩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절을 관장하려면 사람들의 사표가 되어야 하는데 어찌 쉽겠습니까? 자기의 행위가 전도(顚倒)되니 남을 가르칠 정법이 없으며, 계율과 청규(淸規)를 알지 못합니다. 잘난 체하여 남들의 공경을 받으려고 하며, 아만심이 높고 삿됨을 행하는 것이 위험할 지경입니다. 염치도 모르고 술 마시고 고기 먹으며, 여럿이 모여 시끄럽게 굴면서 세상의 나쁜 소리를 지껄입니다. 이것은 바로 맹인이 여러 사람을 이끌고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날 복이 다하고 악이 가득차면 재난과 횡화가 몸에 덮치게 됩니다. 불법을 오염시킨 죄가 가볍지 않으니, 현재생에서도 고통스런 과보를 받지만 임종 후에는 지옥에 들어감이 화살과 같을 것입니다.”
무제가 물었다.
“조정의 문무백관 중에는 세력을 믿고 백성을 괴롭히는 자가 있습니다. 일처리가 공평하지 못하면서 혹독한 형벌로써 백성의 재물을 탈취하는데, 이런 자들은 뒷날 그 과보가 어떠합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이러한 사람이 관리가 된 것은 전생의 복 덕분입니다. 복이 다하고 목숨을 마치면, 염라대왕의 업경대에 그가 저지른 모든 죄악이 비춰져서 법에 따라 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죄가 가벼운 자는 축생이 되어 밭을 갈면서 빚을 갚을 것이며, 죄가 무거운 자는 교룡(蛟龍)이 되어 사천하에 비를 뿌리면서 빚을 갚게 될 것입니다. 오래도록 풍백(風伯), 우사(雨師)의 쇠몽둥이를 맞고, 온몸의 비늘에 온갖 독충이 살면서 선혈이 길게 흐르며, 주야로 온갖 고통을 받으면서 쉬지 못할 것입니다.
무제가 다시 물었다.
“청렴한 관리는 어떻습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공정하고 청렴한 관리는 임종 후 성황신(城隍神)이 되든지, 명산(名山)이나 신선이 사는 곳의 신(神)이 됩니다. 위로는 하늘의 칙명을 받고 아래로는 백성의 공양을 받으며, 그 중에서 음덕(陰德)이 성한 자는 저승을 주재하는 관리가 되든지 혹은 염라대왕이 되기도 합니다.”
무제가 또 물었다.
“지방의 아문(衙門) 중에는 모든 것을 지방 관리들이 관장하면서 공평한 도리에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의 권세에 의지하여 선량한 백성의 재물을 갈취하는데, 어떠한 과보가 있습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관리들이 관의 권세를 믿고 재물을 속여 취하며 백성을 해치는 자는 죽은 후 산중의 들짐승이 되어 사람만 보면 놀라 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백성을 위협하고 속였기 때문에, 금생에 놀라게 되고 살해되는 과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방의 경찰이나 토호들이 사람들의 재물을 사사로이 속여 취하는 자는 소, 말, 돼지, 양 등 육축이 되어 과거의 빚을 사람들에게 갚습니다. 빚을 다 갚은 후에 다시 가난한 사람이 되어 남들의 멸시를 받으며 자유롭지 못합니다. 선악의 과보는 사람들이 스스로 지어 스스로 받는 것으로서,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무제가 물었다.
“황후는 구렁이의 몸으로 떨어졌는데, 나는 그녀가 생전에 무슨 악업을 지었는지 아직 알지 못합니다.”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황후는 궁중에 있으면서 음험하고 악독하였습니다. 『묘법연화경』을 찢어 훼손하였을 뿐 아니라, 대왕이 불법을 배우고 수행하는 것을 시기하였습니다. 육궁의 비빈들을 질투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혔으며, 삼보를 경멸하고 모욕하였습니다.
그녀는 거짓으로 스님에게 재를 베풀면서, 안에 고기를 넣어 스님의 청정한 계를 파괴하였습니다. 다행히도 산승이 마음이 밝아 그녀의 나쁜 계략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여러 스님들에게 스스로 먹을 것을 준비하여 몸에 숨기라고 분부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녀의 더러운 음식은 옷 속에 감추고, 자신이 가져온 깨끗한 음식을 먹게 하였습니다.
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 황후는 입을 가리고 크게 웃으며 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도리어 마음속으로 즐거운 마음을 내었습니다. 산승은 암자로 돌아오면서 더러운 음식을 밭에 버렸습니다.
파, 마늘, 부추 등 오신채를 먹고 예불 송경하면, 호법신장이 보호하지 않으니 이익을 얻지 못합니다. 황후의 갖가지 죄악은 삼계의 선신, 악신들이 모두 보았으며, 지옥의 업경대에 더욱 분명하게 비춰졌습니다. 그녀는 작은 선량함도 없고 악업이 천 가지나 되니 뱀의 몸이 된 것입니다. 만약 대왕이 선을 닦지 않았으면 황후는 영원히 축생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악에는 모두 과보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불법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불법을 비방하고 허물기 때문에, 스스로 허물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나라의 국모(國母)가 존귀한데, 어찌 하필 구렁이 같은 무리에 떨어졌겠습니까?”
무제가 또 물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과를 믿지 않고 갖가지 악업을 저지르며, 삼보(三寶)를 공경하지 않고 불교를 믿는 사람을 보면 훼방을 합니다. 나중에 잘못을 깨닫고 선(善)으로 향하면 어떻습니까?”
지공 스님께서 답하셨다.
“업(業)의 바다는 망망하나 머리를 돌리면 피안(彼岸)입니다. 죄를 알고 참회하며, 허물을 알고 고칠 줄 알아야 합니다. 선을 행하고 복을 닦으며 깨끗한 마음으로 수행하면 성불도 또한 어렵지 않습니다.”
무제는 미소를 머금고 말하였다.
“오늘 향을 피우고 스님께 전생과 미래의 선악에 대한 인과응보를 물어서, 일일이 다 알게 되어 마음이 밝아지고 즐거움이 끝이 없습니다. 제가 미처 물어보지 않은 것이 있다면, 원컨대 스님께서 말씀하여 주십시오. 여러 대중들에게 스님의 가르침을 듣게 함으로써 부처님의 은혜를 갚고자 합니다.”
지공 스님께서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대왕이 물은 일을 대중들이 믿지 않을까 걱정인데, 하물며 대법(大法)은 어떻겠습니까? 나는 악업을 참회하는 몇 가지 법을 말하여 사람들에게 믿음을 일으키고자 합니다.
대중들은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선(善)과 악(惡)의 두 바퀴는 원인에서 결과가 생기는 것이며, 결과 가운데서 또 원인이 생겨서 끊임없이 순환합니다. 부귀와 빈천은 모두 선악의 업력(業力)으로부터 생깁니다.
경에 이르기를, ‘국왕과 제후 등 권세가 있고 부귀한 사람은 삼보(三寶)를 예경함에서 온다. 큰 부자는 보시에서, 장수(長壽)하는 것은 살생하지 않고 방생함으로써, 용모가 단정함은 인욕에서 오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성취가 있음은 정진함으로써 생기며, 총명하고 재능이 있는 것은 지혜에서 생깁니다. 음성이 맑고 투명한 것은 삼보에 노래함으로써 오는 것이며, 병이 없음은 자비한 마음에서 옵니다. 그리고 용모가 아름다운 것은 공경에서 오며, 키가 작은 것은 남을 경멸하였기 때문이며, 못 생긴 것은 화를 내고 질투함으로써 생긴 것입니다.
지식이 없는 것은 배우지 않기 때문이며, 태어나면서부터 어리석은 것은 과거생에 기술이 있어도 남에게 가르치지 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벙어리는 사람을 욕하였기 때문에, 하천한 것은 트집을 잡고 빚을 갚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용모가 추하고 검은 것은 사람에게 광명을 가린 연고이며, 의복을 갖추지 못한 것은 (불전에서) 살을 드러내고 불경하였기 때문입니다. 코끼리 다리와 당나귀 발은 행동이 경만하고, 다른 사람의 다리에 병이 있다고 조소하였기 때문입니다.
복을 받는 가운데 불안한 마음은 보시한 뒤 후회하며 아깝다는 마음을 내었기 때문이며, 사슴이 된 것은 사람을 놀라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는 것이 마치 새장에 갇힌 것처럼 부자유스러운 것은 사람을 희롱하였기 때문이며, 몸에 악창이 생기는 것은 중생을 채찍으로 때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고 좋아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보고 기뻐하였기 때문이며, 살아서 궁형(宮刑)을 받는 것은 다른 사람을 우리 속에 가두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법 듣는 것을 어지럽게 하면 개의 무리에 빠지며, 무심히 법을 들으면 당나귀의 무리에 태어납니다. 먹을 것을 아까워하면서 혼자 먹으면 아귀세계에 떨어지며, 사람이 되어서는 빈궁하여 배고픔에 허덕이게 됩니다.
상하고 나쁜 냄새가 나는 것을 사람에게 먹이면 후에 돼지, 개의 무리에 떨어집니다. 그리고 속이고 사기치고 기만하여 남의 물건을 빼앗으면, 후에 양의 무리에 떨어져서 껍질이 벗겨지고 고기를 먹히는 과보를 받게 됩니다. 재물을 도둑질하면 후에 소와 말로 태어나 사람의 부림을 받게 되며, 거짓말로 남에게 전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끓는 구리물을 마시고 혀를 빼 밭을 가는 발설지옥에 빠지게 됩니다. 죄를 다 받고 나면 까마귀로 태어나, 사람이 그 소리를 들으면 그가 죽기를 저주합니다.
술 취하는 데 탐닉하면, 후에 끓는 똥물지옥 가운데 떨어집니다. 죄를 마치고 나면 원숭이 가운데 태어나며, 후에 사람이 되어서도 미련스럽고 사리에 어둡습니다. 무지하고 힘을 탐하는 자는 후에 코끼리의 무리에 태어납니다.
부귀한 사람이 도리에 맞지 않게 아랫사람을 채찍으로 때리고 괴로운 일을 시키면, 나중에 물소의 무리에 태어나 코가 뚫려서 밭을 갈고 수레를 끌면서 묵은 빚을 갚게 됩니다.
사람이 깨끗하지 못한 것은 돼지무리에서 온 것이며, 간탐하는 사람은 개의 무리에서 온 것입니다. 그리고 잔인하고 흉악한 것은 양의 무리에서 온 것이며, 침착하지 못하고 참지 못하는 사람은 원숭이의 무리에서 온 것입니다. 몸에서 나쁜 냄새가 나는 것은 고기와 자라 가운데서 온 것이며, 화를 잘 내고 독한 사람은 뱀의 무리에서 온 것이며, 사나운 사람은 호랑이 무리에서 온 것입니다.
모든 중생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마음을 깨끗이 하고 행동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경에 이르기를, ‘믿음은 도의 근원으로 가는 공덕의 어머니이며, 모든 선근을 자라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믿지 않는 허물은 모든 죄 중에서 최상입니다. 무간업(無間業)을 짓지 않으려면 마땅히 불법을 믿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무제가 찬탄하며 말하였다.
“오늘 스승님의 법문을 들으니 태양이 하늘을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달이 호수에 비치는 것처럼 투철하고 분명하니, 깊이 믿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스님의 설법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가르침을 들음이 감로와 같습니다. 신하들에게 천하에 유포하게 하여, 즐거이 듣고 깊이 믿으며 경건히 받들어 행하게 할 것입니다. 모든 인간, 천상의 사람이 믿고, 불법의 대해 속으로 들어가 신수봉행하기를 널리 원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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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무제와 양황보참(梁皇寶懺)
양무제는 착한 일 하기를 좋아하고 수행을 열심히 한 사람이며, 지공(志公) 선사를 국사로 모셨다. 양무제의 황후 치(眼)씨는 인과를 믿지 않고 궁인들을 질투하였다. 또한 양민을 괴롭히고 삼보를 공경하지 않았으며, 지은 업이 매우 무거웠다. 황후는 죽은 후 양무제의 꿈에 나타나 “저는 구렁이의 몸을 받아 몸을 감출 곳도 없으며, 배가 고파 죽을 지경입니다. 또한 온몸의 비늘 속에 독충이 피를 빨아먹으니,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양무제는 부부의 옛정을 생각하여 지공 선사에게 가르침을 청하여, 어떻게 하면 황후를 천도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귀중한 법문을 얻게 되었다. 양무제는 마음으로 참회를 구하고, 참회도량을 세웠다. 아울러 500명의 고승을 청하여, 경전에서 찾아 10권의 참회문을 기록하였다. 이것을 ‘양황보참’이라 한다.
양무제는 삼보의 가피를 받아, 황후의 영혼이 현신한 구렁이를 이끌어 참회 천도도량의 단 아래 오게 하였다. 스님들이 단에 올라 예불, 송경하면서 단을 돌았다. 과연 황후는 삼보의 은혜를 받아 구렁이의 몸을 벗고, 천인(天人)의 몸을 얻어 구름 속에 몸을 나타내면서 감사의 예를 올리면서 사라졌다.
최근 각 사찰에서는 매년 ‘양황보참〔자비도량참법〕 법회’를 거행하는데, 그 목적은 과거세의 부모 친지들을 천도하여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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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안의 인연 이야기
양무제 때 지공 스님이 계셨는데, 스님은 오안육통을 갖춘 고승으로 과거·현재·미래의 인과에 모두 밝았다. 어느 날 어떤 부자가 스님께 독경을 청하였다. 스님이 그 집에 들어서자마자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기이하고 괴상하구나. 손자가 할머니를 아내로 맞이하고, 돼지와 양이 솥 옆에 앉아 육친을 솥에 삶고 있구나. 딸은 어머니의 고기를 먹고, 아들은 아버지 가죽으로 된 북을 두드리며, 여러 사람이 와서 축하하고 있구나. 나는 (이것이) 정말로 고(苦)라고 말하노라.”
스님이 말하는 “손자가 할머니를 아내로 맞이한다.”는 것은 옛 일에서 비롯된다. 원래 이 할머니가 임종할 때, 어린 손자를 돌볼 사람이 없는 것을 애석해 하면서 손자의 손을 꼭 잡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애착심 때문에 손자의 처로 태어난 것이다.
“돼지와 양이 솥 옆에 앉아 육친을 삶고 있네.”라는 것도 역시 과거생에서 비롯된다. 사람에 의하여 도살된 돼지와 양이 지금은 사람으로 태어났으며, 이전에 돼지와 양을 잡아먹었던 육친 권속이 지금은 축생으로 태어난 것이다. 솥에서 삶아져 사람들에게 다시 먹히니, 묵은 빚을 갚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딸은 어머니의 고기를 먹고 있다.”는 것은 딸이 돼지 족발을 아주 맛있게 먹고 있는데, 이 돼지 족발이 이전의 모친인 것을 누가 알겠는가? 지공 스님은 또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 가운데 북을 치고 있는 사람을 보니, 그가 치고 있는 북은 놀랍게도 그의 부친이 몸을 받은 당나귀 가죽으로 만든 것이니, “아들이 아버지 가죽으로 된 북을 치네.”라고 말한 것이다.
사람들이 즐거워하며 놀 때, 누가 이와 같이 복잡다단하게 얽힌 인과관계를 어찌 알겠느냐! 그 가운데의 괴로움은 단지 지공 스님 같은 눈 밝은 분이라야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중생은 인과에 밝지 못하여 종종 전도되어 고를 낙으로 여기며, 살생하고 고기를 먹으면서 미래의 재앙을 도리어 구복을 누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성인(聖人)께서 매우 불쌍히 여기며 길게 탄식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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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의 응보
열 가지의 불선업(不善業) 가운데 살생과 사견(邪見)의 죄가 가장 크다. 경에서 이르기를, “살생보다 더 큰 죄는 없으며, 열 가지 불선업 가운데 사견의 죄가 가장 중하다.”라고 하였으며, ‘계살방생문(戒殺放生文)’에서 이르기를, “세간에서 지중한 것은 생명이며, 천하에서 가장 비참한 것은 살상이다.”라고 하였다. 화지(華智) 린포체는 불경에 근거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약 하나의 유정을 죽이면, 오백생을 갚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큰 중생을 죽이든지 작은 중생을 죽이든지간에 반드시 오백 번의 생명으로 갚아야 한다. 살생의 업이 중한 사람이라면, 내생에 얼마나 많은 고귀한 자신의 생명으로 상환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보라. 당신은 그래도 함부로 살생을 할 수 있겠는가?
『정법염처경(正法念處經)』에서 말씀하셨다.
“만약 한 유정(有情)을 살해하면 일 중겁(中劫) 동안 지옥에 떨어져 있게 된다.” 이와 같다면 일 중겁은 얼마나 긴 기간이며, 이 사람은 어느 때 바야흐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연지(蓮池)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하늘 가득한 악업을 지으면, 만세에 깊은 원수를 맺게 된다. 일단 죽음에 이르면 즉시 지옥에 떨어져 끊는 물, 뜨거운 불, 검수(劍樹), 도산(刀山)에서 고통을 당하게 된다. 죄를 마친 후에는 여전히 축생이 되어 원한을 서로 보복하기를 목숨으로 갚으며, 축생에서 벗어나 사람이 되면 병이 많고 단명하게 된다. 뱀에 물리고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며, 칼이나 병기에 죽음을 맞는다. 혹은 형벌을 받아 죽으며, 독약을 마셔 죽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은 살생의 업이 불러오는 것이다.”
우리들이 어떤 한 중생을 죽이면, 자신이 죽은 후에 이러한 중생으로 변하여 같은 액난을 받게 될 것이다. 『능엄경(楞嚴經)』에서 이르기를, “사람이 양을 잡아먹으면, 사람은 죽어 양이 되고 양은 죽어 사람이 되어 이를 반복한다. 이와 같이 열 가지 종류의 중생은 세세생생 서로를 잡아먹으면서 악업이 갖춰지는데, 미래세가 다하도록 끝이 없다. 이러한 인연으로 백 천 겁을 지내도 항상 생사 속에 있게 된다.”라고 하였다.
『보적경(寶積經)』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이전에 한 사람의 부자가 있었다. 그는 양고기를 먹고 싶었으나 아들이 반대할까 두려워 거짓을 꾸몄다. 그의 집 풍수가 좋은 것은 밭가에 있는 큰 나무의 수신(樹神)이 보호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반드시 양을 잡아 신에게 공양을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아들은 그 말이 진짜인 줄 알고, 나무 옆에 작은 사당을 지어 양을 잡아 수신에게 공양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부자는 죽었으며, 거짓말을 하고 살생을 한 과보 때문에 축생에 떨어져 양이 되었다. 그 다음해 그의 아들은 또 양을 잡아 신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데, 마침 그의 부친이 변한 양이 선택되었다. 그 양은 울부짖으며 한사코 묶이려고 하지 않았다. 양이 땅에 엎드려 있을 때 문 밖에 한 분의 나한(羅漢)이 와서, 전세의 인연을 설명하고 그의 아들로 하여금 그의 부친이 양으로 변한 경과를 알 수 있게 하였다.
그때 아들은 매우 괴로워하고 후회하면서, 당장 사당을 허물고 그때부터 악을 끊고 선을 행하였다. 그리고 영원히 살생하지 않고 방생을 하였으며, 아울러 삼보에 귀의하고 인과를 깊이 믿게 되었다.
그리고 불경 가운데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목건련과 덕생 비구가 일찍이 해변가에 이르렀을 때, 온몸이 화염에 타면서 크게 우는 사람을 보았다. 주위에는 무수한 아귀들이 그에게 불화살을 쏘고 있었다. 목건련이 신통으로 인연을 관찰해보았다. 이 사람은 전생에 사냥꾼으로 살면서 살생을 많이 하였기 때문에 살아생전에도 여러 해를 고통 받았으며, 죽은 후에는 지옥에 떨어져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그 밖에도 다른 이야기가 있다.
옛날 사위국 비로택가 왕이 군대를 이끌고 석가족이 사는 곳을 침략하여, 팔만 명의 석가족을 살해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 그 인연을 관찰해보니, 이전에 석가족이 어부로 살면서 많은 물고기를 죽인 과보였다. 비로택가왕과 그 대신은 당시 두 마리의 큰 물고기가 전세하여 사람이 된 것이었다. 따라서 비록 우리들의 육안으로는 전생과 후생의 인연을 볼 수 없지만, 자기가 살생한 악업은 항상 따라다닌다. 일단 인연이 성숙할 때 그 과보가 현전한다. 만약 천안통을 얻으면 인과를 알 수 있다.
『백업경(百業經)』에서 이르기를,
“유정의 모든 업은 백겁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인연이 모일 때 그 과보가 성숙된다.”라고 하였다.
여러 경과 율에서도 모두 말씀하시기를,
“모든 업은 백겁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지비광(智悲光)의 『공덕장론(功德藏論)』에서 이르기를,
“하늘의 금시조가 높이 날 때 비록 그 몸을 볼 수 없을 지라도, 유정의 모든 업과 같이 인연이 모일 때 반드시 나타난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말씀하신 뜻은 비유하면 금시조가 높이 날 때 우리들은 비록 그 몸을 볼 수 없을지라도 결코 금시조의 몸이 없는 것은 아니며, 단지 우리들이 줄곧 그 금시조를 따라가면 금시조가 내려앉을 때 그 몸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생한 악업이나 방생한 선업은 현재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없을지라도, 없어지지 않고 인연이 성숙될 때 그 과보가 현전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동물은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두려워한다.
『공덕장석(功德藏釋)』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아주 이전 석가세존이 국왕이었을 때, 그 권속은 날이 가물어 기우제를 지내면서 동물을 살생하여 신에게 공양하였다. 그때 국왕은 불쌍한 마음을 내어 그렇게 하지 말도록 권하면서 말하였다. ‘남염부제에 천지가 가물어 내가 공양할 여력이 없으니, 내 권속 중에서 천 명을 죽여 신에게 공양하여 비를 구하려고 한다.’
이때 모든 신하와 백성은 죽는 게 두려워, 신에게 바쳐지지 않기를 원하였다. 그때 왕이 ‘그대들과 나는 본래 자신의 목숨을 아낀다.’라고 말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은 도살을 기다리는 가축들의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동정의 연민을 가지는 게 아니라, 도리어 크게 분노하면서 꼭 죽이려고 한다. 이러한 사람은 죽으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 모든 작은 동물도 마찬가지로 생명을 가지고 있다. 고와 낙의 느낌을 갖고 생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니, 함부로 상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전에 중국 강소성 양주성(揚洲城) 밖에 ‘사육(四六)’이라고 부르는 농민이 있었는데, 그는 논밭을 개간하고 꽃과 나무 심기를 좋아하였다. 어느 날 땅을 팔 때 무수한 개미들이 살고 있는 개미굴을 발견하였다. 그는 흉악하고 죽이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집에서 한 통의 끓는 물을 가져와서 직접 개미굴에 부어넣어 무수한 개미들을 전부 죽게 하였다.
그해 8월의 어느 날, 그는 꿈속에서 갑자기 무수한 개미들이 그의 몸에 기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깨어나서 보니 온몸의 살에 무수한 붉은 반점이 생긴 것을 발견하였다. 다음날 조그만 반점은 붉은 물집으로 변하여, 그 속에서 개미들이 살을 물어뜯으니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그는 고통으로 울부짖으면서 며칠 후 사망하였다.
이것은 인간으로 살아있을 때의 과보이며, 죽은 후에는 삼악도의 한량없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마땅히 살생의 불가사의하며 두려운 업보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본래 세상의 모든 중생은 자기의 생명에 집착한다. 지옥의 중생 외에는 모두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지옥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빨리 죽기를 바란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총살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를 여러 가지 방편으로 구출해 준다면 진정한 생명의 은인이 될 것이다. 구출된 사람은 온갖 상념이 끓어오르면서, 은혜가 산같이 중하고 바다같이 깊은 것을 느끼면서 감격해 마지않을 것이다. 같은 이치로 만약 유정이 살해되는 것을 보고, 비록 한 마리의 작은 물고기일지라도 방생하면 이러한 덕이 있게 될 것이다.
『구사론(俱舍論)』에 따르면, 만약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살생하든지 혹은 다른 사람이 살생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면, 이 업은 ‘축적되나 아직 저지르지 않은 업’이라 칭하며, 이 사람은 직접 도살한 사람과 동등한 죄가 있다고 한다.
만약 꿈속에서 죽이든지 혹은 벌레나 개미 등을 모르고 밟아 죽였다면, 이것은 살해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지었지만 축적되지 않는 업’이라 칭하며, 큰 죄는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살생하여 얻은 재물로 스님께 공양한다든지 혹은 사원과 불상을 짓거나 하면, 공덕이 없을 뿐 아니라 큰 과실이 있게 된다.
그리고 불경과 『구사론』에서 말씀하시기를, 무릇 칼, 창, 그물 등 살생의 도구를 사거나 팔거나 하면 매매 쌍방은 모두 지옥에 떨어지며, 아울러 그러한 공구가 없어지기 전에는 나날이 무량한 죄업이 증가하게 된다고 하였다.
가르침에 의하면, 만약 가족 중 한 사람이 도살자, 사냥꾼 등 살생의 업을 꾸려나가면, 그 집안 사람은 모두 각자 지옥에 한 번은 떨어진다고 하였다. 그리고 만약 산골짜기에 살생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모든 산골짜기는 길상함을 얻을 수 없다. 아울러 한 찰나도 그런 사람과 접근하거나 교제하면 안 된다. 그들이 다른 집에 가면 많은 불길한 일을 가져올 수 있으며, 그들의 물품을 몸에 지니면 자기 몸의 삼보(三寶)의 가피력이 소멸될 수 있다.
따라서 마땅히 불살생계를 지켜야 하며, 그러면 큰 공덕이 있다. 설령 영원히 살생을 끊을 수 없을 지라도 일 년, 혹은 일 개월, 심지어 하루라도 살생 끊기를 발원해야 한다.
이상에서 서술한 살생의 과실을 명백히 이해한 후, 우리들은 마땅히 삼보전에서 견고한 서원을 발하여 어떠한 경우를 당하더라도 중생을 살해하지 않겠다고 맹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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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하면 도를 성취할 수 없다
삼보에 귀의한 신도 중 보살계와 밀승계를 지니는 자는 절대로 살생하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계율을 잃게 된다. 불경에서 이르기를, “부처님께 귀의하는 진실한 신도는 여러 하늘에 의지하지 않고, 법에 귀의하는 자는 해로운 마음을 떠나며, 승에 귀의하는 자는 외도를 따르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대원만전행인도문(大圓滿前行引導文)』에서 이르기를, “계(戒)에 귀의하는 것은 세 가지를 끊는 것이다. 부처님께 귀의하면 외도와 여러 하늘에 귀의하면 안 되며, 법(法)에 귀의하면 중생을 해치는 마음을 끊으며, 심지어 꿈속에서도 중생을 해치면 안 된다. 승(僧)에 귀의하면 외도에 의지하면 안 된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살생하면 귀의계를 잃고 파괴하게 되며, 만약 삼귀의계가 없으면 어찌 거사, 사미, 비구, 비구니 등의 계가 있을 수 있겠는가?
『칠십귀의송(七十歸依頌)』에서 이르기를, “비록 모든 율의가 있을지라도, 만약 삼귀의가 없으면 계가 없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만약 중생을 살해하면 반드시 보살계를 잃고 파괴하게 된다. 경론에 근거하면 모든 보살계의 근본은 발보리심(發菩提心)이기 때문에, 만약 고의로 중생을 다치게 하거나 죽인다면 어찌 보리심이 있다고 하겠는가? 만약 보리심의 종자가 없으면 그 밖의 착한 법을 어디에서 증장할 수 있겠는가?
『화엄경』에서 이르기를, “선남자에게 보리심은 일체의 불법 종자와 같다.”라고 하였다.
불제자들이 무슨 법을 닦든지 불문하고 만약 중생을 살해하면 제불보살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며, 영원히 가피와 성취를 얻지 못할 것이다.
적천 보살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누군가 안락하면 제불은 기뻐하며, 누군가 괴로움을 당하면 부처님 마음도 즐겁지 않다. 중생이 기뻐하면 제불도 기뻐하고, 중생을 해치고 괴롭게 하면 여래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만약 사람의 몸에 맹렬한 불이 타면, 모든 욕망의 묘함도 마음을 편안하게 할 수 없다. 만약 사람이 중생을 괴롭게 하면 또한 이와 같으며, 더욱 부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다른 법은 없다.”라고 하였다.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에서 이르기를, “중생은 자신의 생명을 지극히 사랑하며, 모든 부처님은 중생을 지극히 사랑한다. 중생의 목숨을 구제하면, 제불의 심원(心願)을 성취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많은 수행인들이 성취를 얻지 못하고 본존(本尊)을 보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아마도 전생 혹은 금생에서 유정을 해친 까닭일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살생의 업을 참회하고, 다시는 부처님이 기뻐하지 않을 일은 하지 않겠다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적천 보살의 말씀과 같다. “이러한 까닭으로 내가 유정을 상해하여 모든 대비자들이 기뻐하지 않은 일 모두를 지금 각각 참회하오니, 모든 죄를 부처님께서 살펴 용서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니다. 모든 여래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지금부터 세간을 위하여 종이 되기를 서원하옵니다. 가령 중생이 내 머리를 밟고 지나가도 심지어 죽어도 보복하지 않으며, 부처님을 기쁘게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대은(大恩) 근본상사(根本上師), 현밀원융(顯密圓融), 중생의 의지처, 법왕(法王) 여의보금강아사리(如意寶金剛阿舍梨) 진미팽조(晋美彭措) 용렬길상현(勇列吉祥賢) 존자도 금년 근 5회나 승속제자들에게 석가모니전을 강의하였다. 중생을 슬퍼하는 데 이르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눈물을 흘리며, 설령 목숨의 위난을 만나더라도 어떠한 중생도 해치지 않을 것을 발원하였다. 이때 우리들 많은 제자들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영원히 중생의 생명을 해치지 않을 것을 발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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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업의 참회
우리들은 지금부터 최대한 어떠한 중생도 해치지 말아야 할 것이며, 과거생으로부터 지금까지 지은 살생의 업을 열심히 참회해야 한다. 주요한 참회의 방법은 ‘삼십오불참회문(三十五佛懺悔文)’을 이용하든지, 『백자명주(百字明呪)』와 『금강살타심주(金剛薩狎心呪)』 등 수승한 다라니를 이용할 수 있다.
『묘비청문경(妙臂請問經)』에서 이르기를, “마치 봄 숲의 불이 맹렬히 타올라 모든 초목을 남김없이 태워버리는 것과 같이, 계(戒)의 바람이 (다라니) 염송(念誦)의 불을 불어 모든 업장을 태우며, 대정진이 모든 악을 태운다. 그리고 마치 태양이 설산을 녹이면 쉽게 녹듯이, 만약 계의 해와 염송의 빛으로 악의 설산을 비추면 녹아 없어진다. 마치 암흑 속에 등불을 켜면 어두움이 남김없이 없어지듯이, 수많은 세월 동안 자란 모든 악의 암흑도 염송의 등불로 빨리 없앨 수 있다.”라고 하였다.
『대원만전행인도문』에서 이르기를, “매일 백자명주 21번을 외우면 모든 죄장을 없애고 삼악취를 벗어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금강살타수법여의보주』에서는 “만약 네 가지 대치력을 구족하여 여법하게 금강살타심주를 40만 번 염송하면 근본서언(根本誓言)을 파괴한 죄도 청정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금생에 일체의 소원을 이룰 수 있으며, 내세에는 극락세계 등 자신이 원하는 정토에 결정코 왕생한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참회하는 자는 죄를 깨끗이 하는 모습을 얻을 수 있다. 그 모습은 『준제다라니(准提陀羅尼)』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만약 꿈속에서 나쁜 음식을 토하거나, 낙유(酪乳)를 마시거나, 낙유 등을 토하거나, 해나 달을 보거나, 허공을 노닐거나,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보거나, 모든 물소를 보거나, 흑인(검은 사람)을 제압하거나, 비구 또는 비구니 스님을 보거나, 우유를 내거나, 나무, 소의 왕, 산, 사자좌, 미묘한 궁전을 보거나, 설법을 듣거나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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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에는 대비심이 중요하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 이르기를, “자비는 불도의 근본이다.”라고 하였으며, 『보리도차제광론(菩提道次第廣論)』에서 이르기를, “최초에 대승(大乘)의 가르침?들어가는 데 있어서는 오직 자비심을 발하여 안립하며, 후에 대승에서 나오는 것도 이 마음을 내어 안립한다. 그러므로 대승자(大乘者)는 이 자비심이 있고 없느냐에 따라 나아가고 물러선다.”라고 하였다.
법왕 여의보가 지은 『승리도가천고묘음(勝利道歌天鼓妙音)』에서 말씀하셨다. “악도에 빠져 윤회하는 중생이 구경의 안락지(安樂地)를 얻기 위하여, 이타심(利他心)과 행을 짊어지고 애욕(愛欲)을 버리기를 독약과 같이 하면, 이것은 능히 악도의 문을 막고 선도의 복락을 이끈다. 또한 구경해탈지(究竟解脫地)를 얻게 되나니, 이러한 요점을 많이 생각하고 수행해야 한다.”
우리들은 방생을 겉으로 드러내는 착한 일로 여겨서는 안 되며, 대비심을 근본으로 하여 방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제로 이치에 상응할 수 없다.
송나라 대학자 소동파의 애첩은 경건한 불교도로서 방생에 열중하였다. 어느 날 산에서 새들을 방생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 정원에 한 무리의 개미들이 사탕을 빼앗으려고 다투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발로 개미들을 밟아 죽였다. 소동파가 그것을 보고 말하였다. “네가 방생하는 것은 자비를 위한 것으로서 원래 좋은 일인데, 왜 새들에게는 후하게 대하고 개미에게는 박절하게 대하는가? 이것은 진실한 자비가 아니다.”
『권발보리심문(勸發菩提心文)』에서 이르기를, “이전에 입도(入道)의 요문은 발심(發心)이 으뜸이라고 들었는데, 수행에서 급선무는 원(願)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다. 원이 서면 중생을 제도할 수 있으며, 마음을 발하면 불도(佛道)를 성취할 수 있다. 만일 광대심을 발하지 않고 견고한 원을 세우지 않으면, 항하사 겁을 지나도 여전히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비록 수행이 있을지라도 언제나 헛되이 고생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도리로 아주 작은 중생에 대해서도 경시할 수 없는 것이다. 『현우경(賢愚經)』에서 말씀하시기를, “비록 극히 작은 죄악이라도 해가 없다고 가벼이 여기지 마라. 불은 아무리 작아도 능히 산천초목을 다 태울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입보살행(入菩薩行)』에서도 이르기를, “한 찰나에 하나의 죄를 저질러도 다겁을 아비지옥에 머물게 되는데, 시작이 없는 아득한 시절부터 쌓아온 죄는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들로 하여금 선도(善道)에 태어나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중국의 어떤 대덕이 이르기를, “만물이 상해를 입고 죽을 때는 언제나 아픈 정을 느끼며, 비록 작은 벌레, 개미들도 삶을 탐한다.”라고 하였다. 만약 중생에 대하여 대비심을 갖추지 못하면 비록 승려나 거사일지라도 또한 겉으로의 형상일 뿐이지 진정한 불교도는 아니다.
현재 중국뿐 아니라 외국에서까지 사람들이 저지르는 살생의 업은 너무나 무겁다. 식당의 메뉴판에는 갈수록 새로운 음식이 등장하면서 식용동물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만드는 수법도 갈수록 잔인해지면서 식탁 위에는 수많은 생명들의 시신이 진열되고 있으니, 정말로 인간지옥과 같은 비참한 세계가 연출되고 있다. 그렇게 살생을 하여 째고, 삶고, 태우고, 지지고, 볶고 하는데, 만드는 사람은 언제 그러한 무거운 빚을 다 갚을 수 있을런가?
티베트의 설원은 부처님의 대비와 관세음보살이 화현한 도량인 까닭으로, 98%의 사람이 어릴 적부터 염불하고 선을 행하면서 살생을 하는 것이 아주 적다. 만약 한 집에서 소 한 마리를 잡으면 전 집안사람들이 그 소를 위하여 진언(眞言)을 염송하고 발원하며, 아울러 사원의 스님을 청하여 경을 읽고 천도한다.
토끼, 고양이, 까마귀 등이 죽은 것을 발견하면, 스님을 청하여 송경하며 천도하고 매장해 준다. 그리고 고기를 먹기 전에는 습관상 관음심주(觀音心呪)를 7회 내지 108회 염한다. 어떤 사람은 돈을 내어 도살될 소와 양들을 사서 방생을 한다. 이때는 파는 사람도 가격을 깎아주면서 방생에 대한 일종의 함께 기뻐하는 수희(隨喜) 공덕을 짓는다.
따라서 불문에 귀의한 모든 사람은 자신을 자세히 관찰하여, 만약 대비심을 갖추지 않았으면 이름뿐인 불교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대비심을 발하여 힘을 다해 방생하여, 고통 받고 있는 중생을 이롭게 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이 설령 한 달에 하나의 생명을 구제할 수 있더라도, 중대한 의의와 공덕이 있는 것이다. 제불보살과 고승조사들은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기 위하여, 자신의 신체 내지는 생명을 희생하는 것도 아끼지 않았다.
『대지도론』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옛날 설산에 신선 비둘기가 있었는데, 생활이 유유자적하였다. 비둘기는 어느 날 눈이 많이 내려 어떤 사람이 길을 잃고 조난을 당하여, 배고픔과 추위에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음을 보게 되었다. 비둘기는 이 사람을 보고 대자비심을 발하여 즉시 날아가서 불을 구하고 나무를 모아 그 사람을 따뜻하게 하였으며, 스스로 불에 뛰어들어 자신의 몸을 그 사람에게 보시하였다.
그 비둘기는 이 공덕으로 후에 성불하였으니,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다. 이러한 대보살과 비교하면 우리들은 방생하는 조그만 돈조차도 아까워하니, 어찌 대승의 보리심을 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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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과 채식
부처님께서는 『능엄경(楞嚴經)』 등 대승경전에서 살생을 금하고 육식을 끊게 하시며, 나아가 채식의 공덕에 중점을 두고 설하셨다. 『능가경(楞伽經)』에서 설하신 것과 같다. “범지(梵志)의 종에 태어나고 나아가 모든 수행처, 지혜 있는 부귀한 집안에 태어나는 것은 고기를 안 먹었기 때문이다.” 또한 『불설십선계경(佛說十善戒經)』에서 이르기를, “고기를 먹으면 병이 많으며, 큰 자비심을 행하려면 불살생계를 받들어 지녀야 한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양나라 무제도 『열반경』 등 불경의 교의에 근거하여, 자비의 마음을 내어 고기 먹는 것을 반대하는 ‘단주육문(斷酒肉文)’ 네 편을 지어, 스님들은 일률적으로 고기, 물고기 등을 먹는 것을 끊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무제는 또 세 분의 율사를 불러, 궁중회의에서 스님들로 하여금 고기를 끊고 채식을 하게 하였다. 그로부터 중국의 불교도는 채식하는 것이 불가의 법제로 정해졌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중국의 절대다수의 사원에서 법사(스님)와 신도들은 모두 채식을 견지하고 있으며, 불경에서 말씀하신 ‘고기를 끊는 무량한 공덕’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육식의 문제에서 밀교를 신봉하는 티베트와 상좌부 불교를 봉행하는 동남아 지역에서는 중국과는 서로 다른 전통습관을 가지게 되었으며, 다 같이 교리상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해석하고 불경의 심오한 이치를 유추하여 알려면, 마땅히 덕을 구비한 상사의 가르침과 청정한 전승, 나아가 광대한 지혜에 근거해야 비로소 갖가지 경론의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티베트에서 고기 먹는 것을 밀종(密宗)의 종풍으로 여기는데,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확실히 밀종 최고의 견지에 기초하면 육식은 쌍운(雙運), 강복(降伏) 등과 같이 밀종 최고의 행위에 속한다. 하지만 이것은 깨달아 증득하여 경지가 매우 높은 유가사(瑜伽師)들이 행할 수 있는 것이지, 일반 범부들이 함부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로빠는 대성취자 띨로빠가 항상 살아있는 물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도 그것에 대하여 삿된 견해를 내지 않았으며, 이치에 의지하여 수행한 후 그도 궁극의 성취를 얻었다. 그리고 중국의 제공(濟公) 스님도 일생 동안 고기 먹고, 술 마시고 하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성자(聖者)로서 중생교화를 시현하였다고 숭배하고 있다. 티베트 불교도들이 고기를 먹는 풍습은 고원지구의 지리여건상 곡식이 자라지 않는 객관적 현실에 기초하고 있으며, 본사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별해탈계(別解脫戒) 가운데서 방편으로 허락하신 것이 근거가 되었다.
인도의 율종조사 공덕광(功德光)과 석가광(釋迦光)은 각자 저술한 『율경근본율(律經根本律)』과 『비내야삼백송(毗奈耶三百頌)』에서 모두 삼정육(三淨肉) 먹는 것을 허락하였다.
종합하면 고기를 끊고 채식을 하면 무량의 공덕이 있으며, 고기를 먹는 것은 커다란 과실과 우환이 있다. 하지만 티베트에서는 불교도가 ‘세 가지 청정한 고기(삼정육)’를 먹는 것은 보살계와 별해탈계에서 파계한 것이 아니며, 더욱 살생과 외도의 행위와는 같지 않다.
따라서 티베트, 중국을 위주로 한 모든 불교도는 마땅히 단결 화합하여 서로 존중하고 비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두 석가세존께서 전하신 청정한 가르침임을 알아야 하며, 모두 해탈의 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널리 배워 실제로 증득한 사람은 이에 따라 티베트와 중국이 서로 통하고, 현교와 밀교가 서로 어긋나지 않으며, 각각의 교파가 원융함을 증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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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스러운 날에는 살생을 금하고 방생해야 한다
방생은 많은 공덕이 있어 모든 일을 길상하게 할 수 있다. 연지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살생을 금하는 집은 선신이 보호하고, 재난과 횡액을 소멸하며, 수명을 늘린다. 자손이 어질고 효순스러우며, 길하고 상서로운 일이 많으니 다 열거하여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살생은 널리 원한의 업을 쌓는 것이며, 아울러 숙세에 쌓아온 복과 수명을 점점 소멸하고 감소하게 한다. 그러므로 매년 해가 바뀌는 때, 경사스러운 생일, 결혼일, 개업날 등 손님을 청하는 경사스러운 날에는 마땅히 널리 방생을 행해야 하며, 이때 살아있는 목숨을 죽이거나 자연계의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될 것이다.
원래 경사스러운 날은 친지, 친구들이 한 곳에 모인다. 설날은 오곡이 풍성하고 가족들이 흥륭하며 모든 일이 길상하기를 희망하는데, 왜 이때 반대로 생명을 살해하여 갖가지 화근을 묻어두는가? 세상 사람이 함부로 생물을 죽이면 원한이 쌓이며, 하늘도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재, 화재, 기근 내지는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생일 축하는 부모와 자기의 복과 수명이 늘어나고 이고득락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니, 마땅히 부모와 자기를 위하여 방생하고 재계를 지녀야 복과 수명이 늘어나는 것인데, 어찌하여 도리어 이때 부모님의 길러주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생명을 죽여 죄업만 늘어나게 하는가? 위로는 부모님께 누를 끼치고 아래로는 자기에게도 불리하다. 본래 생을 구하려고 하면서 반대로 생을 해치며, 본래 긴 수명을 원하면서 도리어 수명이 줄어들게 한다.
옛날에 어느 대관(大官)의 부인이 생일날이 임박하여 많은 손님을 청하기 위하여 닭과 오리, 돼지, 양, 물고기, 새우 등을 많이 샀다. 그러나 닭을 잡고 양이 도살될 때, 그녀의 영혼이 이런 살해되는 동물의 몸에 붙게 되었다. 그녀는 고통스러워 큰소리로 고함치며 침상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하였는데, 죽는 것보다 더 참기가 어려웠다. 이때 그녀는 짐승이 도살될 때의 고통과 원한을 느끼게 되었다. 짐승들은 단지 말을 못하고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었다. 마침내 그녀는 이와 같은 것을 깨닫고는 이후로는 살생을 금하고 방생하며, 다시는 축생을 잡아 구복(口腹)의 즐거움을 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그 후에 부인은 오래도록 장수하였으며, 이 모두 그녀가 한 생각의 자비심으로 악을 고쳐 선을 행한 까닭이다.
결혼하는 날은 원래 미래에 가정이 화목하고 귀한 자식을 낳기 바라는데, 왜 이치와 상반되게 자녀를 낳기 전부터 살생하여 결혼 후 많이 싸우고 번뇌가 오게 하는가? 심지어 혼인관계가 깨지는 지경에까지 가게하며, 후에 태어난 자식도 흉폭하고 질병이 많으며 요절하게 하는가? 이런 결혼이 길상한지 아닌지 묻고 싶다.
자수(慈壽)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세상에 살생이 많으면 결국에는 도병겁(刀兵劫, 전쟁)이 오게 되며, 목숨을 빚지면 너의 몸이 죽게 된다. 재물을 빚지면 집이 타거나 허물어지게 되며, 처자식이 흩어지게 되는 것은 일찍이 중생의 집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각각 그에 상응하는 과보를 받게 되나니, 귀를 씻고 부처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장사를 하는 사람은 개업하여 대길하기를 기원하면서 재물이 풍성하기를 바라는데, 왜 이때 생령을 도살하여 원한의 소리가 길에 가득하게 하는가? 재물이 생하는 날에 널리 살생의 업을 지으면, 개업이 길할지 흉할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살생하지 않으면 어떤 이익을 얻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대지도론』에서 말씀하셨다.
“살생하지 않으면 두려운 바가 없게 되고 안락하여 공포가 없어진다. 내가 중생을 해치지 않기 때문에 그 또한 나를 해침이 없게 된다. 살생을 좋아하는 사람은 비록 그 지위가 왕이 되어도 스스로 편안하지 못하게 된다.
만약 살생을 좋아하지 않으면 일체 중생이 모두 의지하기를 좋아한다. 살생하지 않는 사람은 목숨을 마칠 때, 그 마음이 안락하고 의심이 없고 후회가 없다. 만약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나면, 항상 장수하게 되고 이것은 득도(得道)의 인연이 된다. 또는 부처님께서 머무는 정토에 왕생하여 수명이 무량함을 얻게 된다.
살생하는 사람은 금생과 내생에 갖가지 몸과 마음의 고통을 받게 되며, 살생하지 않는 사람은 이러한 여러 액난이 없으니 이것이 큰 이익이다.” 아울러 망령을 천도하고 장례를 치르거나 재난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모두 살생을 금하고 방생하는 것으로 복을 구해야 하며, 도와 배치되게 행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헛되이 망자에게 업장을 더하게 된다.
『지장경』에서 말씀하셨다.
“염부제 사람은 동물을 죽여 귀신에게 제사지내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망자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죄의 연을 맺어 업만 더 깊고 무겁게 증가시킨다. 설령 망인이 살아생전에 선을 닦아서 마땅히 좋은 세계로 오를 것인데, 권속들이 살생을 함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악도에 떨어지게 된다. 하물며 선을 닦지 않은 사람은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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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은 복을 증가시키고 수명을 늘린다
만약 오래 살고 싶으면 방생을 해야 한다.
『방생찬(放生贊)』에서 이르기를, “네가 생을 연장하고 싶으면 내 말을 들어라. 모든 일은 현명하게 자신에게서 구해야 한다. 네가 오래 살고 싶으면 방생을 해야 한다. 이것은 우주의 순환하는 진실한 도리이다. 중생이 죽을 때 그를 구해주면, 네가 죽을 때 하늘이 너를 구해준다. 수명을 연장하고 아들을 구하는 데는, 다른 방법이 없고 살생을 금하고 방생하는 것이 가장 좋다.”라고 하였다.
또 미륵보살께서 게송으로 이르시기를, “그대에게 열심히 방생할 것을 권하노니, 방생하면 장수하게 되며, 만약 보리심을 발하면 큰 재난을 만나도 하늘이 너를 구제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불경에서 인간과 하늘의 일곱 가지 덕으로 “고귀한 종성, 단정한 모습, 장수, 무병, 연분의 우수함, 부유함, 광대한 지혜”라고 말씀하셨다. 그 중에서 장수와 무병의 근본 원인은 살생하지 않고 방생하는 것이며, 방생은 또한 나머지 다섯 가지 덕을 이루는 조연(도와주는 인연)이다.
세친(世親) 논사께서 말씀하셨다.
“죽음을 당하는 중생을 구제하여, 생명을 살리고 유정을 해치지 않으면 장수하게 된다. 의사, 간호사가 약을 보시하여 중생을 살리면 병이 없게 된다.”
병자는 전생 혹은 금생에 저지른 살생의 과보를 받는 것으로서, 의사도 치료할 방법이 없다. 만약 방생하면 곧 치유되는 경우가 있다. 중국 항주(杭州)에 새를 잡아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등에 갑자기 종기가 자라났다. 의사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 이 사람은 종기가 금생에 살생을 많이 한 과보인 것을 깨닫고는, 다시는 살생하지 않겠다고 발원하고 아울러 방생을 많이 하였다. 그 후에 치료를 하니 곧 효과가 있으면서 점점 완치가 되었다.
티베트에서도 가족이 방생을 하고 경을 읽어, 병원에서 반드시 사망할 것이라고 진단을 받은 환자가 점점 생명이 회복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더욱이 의사가 진단할 수 없는 이상한 병은 모두 자기의 전생 혹은 금생에 살생한 업이 현전하는 것이다. 이때는 오직 방생하는 것이 좋다.
중국 청나라 도광(道光) 연간에 한 분의 태수가 있었는데, 몸에 중병이 들어 생명이 위급한 지경이 되었다. 그는 서원을 발하여 지금부터 일체의 중생을 이롭게 할 것을 맹세하고, 자기의 업장을 참회하면서 일체의 세간 일을 놓아버렸다.
그날 밤 꿈에 관세음보살께서 나타나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전에 살생의 업이 중하여 금생에 단명보를 받게 되었다. 다행히도 이때 견고한 서원을 발하였으니, 오직 방생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으며 또한 복록을 증가시킬 수 있다.”
그는 꿈에서 깨어난 후 크게 느끼고 깨달아, 전 집안에 살생을 금하게 하고 자주 방생하였더니 병이 마침내 완쾌되었다.
우리 주변에서 방생을 통해 현생의 수명이 연장되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최근에 티베트 어느 지방에 한 사람의 유목민이 있었는데, 여러 해 동안 질병을 앓아 매우 고통스러웠다. 많은 병원에 가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후에 어떤 스님 한 분이 그녀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전생에 살생한 것이 매우 많아서, 만약 방생하지 않으면 병이 많고 단명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녀가 발심하여 방생을 많이 하자, 곧 고통이 없어지게 되었다. 지금 그녀는 인과를 믿고 매년 방생하는 데 돈을 기부하고 있다. 만약 중한 병에 걸려 수명이 다하려고 할 때 방생하면, 병이 없어지고 수명을 늘릴 수 있다.
이전에 소주에 왕대림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대자비심으로 자주 방생하였다. 마을에서 어린이들이 물고기나 새 등 동물을 잡아서 노는 것을 보면, 그는 힘써 말리면서 돈을 주어 방생하게 하였다. 그는 평소에 사람들에게 권하여 말하기를, “소년 때는 반드시 물건을 아끼고 생명을 사랑하는 인자한 미덕을 배양하여, 생명을 해치는 나쁜 습관에 물들게 되면 안 된다.”라고 하였다.
그는 이와 같이 평생 사람들에게 권하여, 선을 행하고 악을 끊게 하였다. 나중에 중병에 걸려 죽게 되었는데, 성스러운 한 분의 존자가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너는 평생 방생하여 큰 공덕이 있으니, 복이 증가하고 수명이 36년 늘어날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 후 그는 다시 살아나게 되었으며, 97세 때까지 살다가 병 없이 임종하였다.
마찬가지로 최근에 ‘과재’라고 부르는 장족의 사람이 있었는데, 미래를 아는 사람이 말하기를, “너는 단지 31세까지 살 수 있으며, 만약 방생하고 진언을 염송하면 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즉시 방생을 많이 하였다. 매년 방생하고 중생의 생명을 보호하였더니, 수명이 자기도 모르게 늘어나 금년에 이미 나이가 50세이다.
또한 비슷한 일이 하나 있다. 이전에 어떤 분이 도시에 가서 붉은 색 잉어 한 마리를 사서 방생하였다. 후에 그분이 병이 들었을 때 꿈에 용왕이 나타나, 그를 청하여 용궁으로 모시고 가서 말하였다. “선생은 본래 수명이 다할 것인데, 용의 아들의 생명을 구하였기 때문에 수명이 12년 늘었습니다.” 그가 잉어를 구해주었을 때는 48세였는데, 60세까지 살다가 죽었다. 따라서 인간 세상에서 수명이 길지 않은 사람은 마땅히 발심하여 방생하면 복과 수명을 증장시킬 수 있는 것이다.
불교신자는 인과를 깊이 믿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방생에 대한 감응도 매우 기이하다. 최근 이름이 널리 알려진 많은 의사들은 방생에 의지하여 병을 치료하고 있다. 사천성 수녕시(遂寧市)에 한 분의 의사가 있는데, 그녀는 국내외에 영향력이 매우 크다. 그녀의 집에는 국내외에서 치료받고 완치된 환자들이 봉헌한 감사패와 깃발들이 많이 걸려 있다. 현재 그녀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한 은인이다.
내가 완치된 몇몇 분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들은 모두 말하기를, “병원치료가 효과가 없을 때, 그 분은 방생과 불경을 독송하라고 권하였다. 그 분의 분부대로 널리 방생 등의 선행을 행하였더니 병이 완쾌되었다.”고 하였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듣고 부처님 말씀에 대하여 더욱 깊은 이해와 믿음이 생겼다. 따라서 방생은 일종의 특이한 효능을 가진 병 치료의 방편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면 살생은 병에 걸리고 수명이 짧아지는 직접적인 원인이며, 본래 오래 살 수 있는 사람이 살생을 좋아하면 수명을 단축하게 된다.
티베트의 아사리 아왕자빠가 말씀하시기를, “만약 생명을 구하는 방생을 하게 되면 단명자도 수명을 연장할 수 있으며, 만약 물고기, 뱀 등 중생을 죽이면 장수할 사람도 단명하게 된다.”
자고로 방생으로 인해 단명할 사람이 수명을 늘린 사례는 말할 수 없이 많다. 우리들이 만약 때때로 자비심을 축생, 미물에게까지 펼쳐 살생을 금하고 방생하든지,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권하여 살생을 끊고 방생하게 하면, 모든 일은 반드시 길상여의하게 될 것이다.
전지화지 린포체가 말씀하시기를, “항상 선을 행하고 방생하는 자는 호법지신이 항상 그를 도와주고 지켜준다.”라고 하였다. 또 『호생의 고사(故事)』에서 이르기를,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듯이, 고금에 선악의 보응은 명명백백하고 분명하며 감응의 사적은 너무나 역력한데, 그대는 아직도 의문이 남아있는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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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의 이익은 무변하다
모든 유루(有漏)의 선법(善法) 가운데 방생의 공덕보다 큰 것은 없다. 무릇 기타의 선법은 자기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공덕이 없으나, 방생은 그 마음이 깨끗하든 깨끗하지 않든 그 일은 모두 직접 중생에게 혜택이 미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불가사의한 선의 과보가 있으며, 비록 한 마리의 생명을 방생해도 그 공덕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방생된 중생은 참을 수 없는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생하면서 부처님의 명호와 다라니를 염하여 가피를 주면, 마침내 그들 중생도 불퇴전의 과위를 얻게 된다.
『불퇴륜경(不退輪經)』에서 이르기를, “무릇 본사 석가모니불 명호를 들은 자는 모두 불퇴의 과를 얻으며, 축생이 부처님의 명호를 들으면 무상보리(無上菩提)의 종자를 심게 되어 결국에는 불퇴의 과를 얻는다.”라고 하였다. 다른 불경에서도 이르기를 “부처님 명호를 듣거나 부처님 상을 보면, 무량의 덕이 생기며 장래 해탈을 얻게 된다.”라고 하였다.
또한 『석가불전(釋迦佛傳)』에서 이르기를, “이전에 큰 자라가 있었는데, 자라를 먹고 싶어 하는 많은 상인들 중에서 어느 분이 부처님 명호를 염하였다. 부처님 명호를 들은 공덕으로 그 자라는 사람의 몸으로 바꿔 태어나, 석존의 가르침 하에 아라한과를 얻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방생할 때는 부처님 명호를 염하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방생은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는 것도, 중생으로 하여금 잠시 이고득락하여 인간, 천상의 복보(福報)를 누리고 결국에는 생사윤회를 해탈하게 하는 것이다. 방생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공덕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출가인이든 재가불자든 막론하고 방생을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로 대보살이며, 우리들은 응당 무상의 행위(즉 방생)를 함께 기뻐하고 배워야 할 것이다. 비유하면 우리 불학원의 어느 대캄포는 천성적으로 방생을 좋아하였다. 다른 사람이 그에게 공양하는 돈은 전부 방생을 위해 사용하였다.
지금은 말법의 시대로서 진정으로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대덕을 보기 어렵다. 재물이 있는 스님과 신도들이 거금을 들여 절을 짓고 장식하기는 한다. 하지만 안으로는 문(聞)·사(思)·수(修)의 행을 들어본 승중(僧衆)이 없다. 외관은 멋지게 꾸미나 불경에서 말하는 규범을 지키지 않고, 안에는 복장물이 없는 불상도 있다. 이는 비록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만약 이러한 돈을 방생에 사용한다면 직접 무량의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데, 어찌 더욱 무변의 공덕을 갖추려 하지 않는가?
용수 보살께서 『대지도론』에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죄 중에서 살생이 가장 중하며, 모든 공덕 중에서 방생이 제일이다.”라고 하셨으며, 티베트의 근상취짜 대사가 말씀하시기를 “마땅히 살생을 끊고 방생하면, 일체의 몸과 입의 선법 중에서 방생의 공덕이 가장 크다.”라고 하셨다.
『지장십륜경(地藏十輪經)』에서 이르시기를, “만약 모든 살생을 금할 수 있으면, 모든 중생이 공경하며 무상보리를 이룬다. 항상 병이 없고 수명이 늘어나며, 안락하고 편안하여 손해가 없다. 세세생생 여래의 행을 깊이 믿고 현생에서 불법과 승중을 보고 속히 무상보리의 과를 얻게 된다.”라고 하셨다.
티베트의 유명한 공행모(空行母) 근상띠엔진께서 중음계(中陰界)를 유행(遊行)하며 가르친 『심도총집공행이전심의연화심적』에서 말씀하셨다. “일체의 고귀하고 비천한 중생에게 금생과 내세의 안락법으로 방생보다 더 수승한 것은 없다. 남염부제를 돈 공덕은 한 마리의 송아지를 방생한 공덕과 같으며, 관음주(觀音呪) 칠억 번을 염송한 공덕은 한 마리의 작은 소를 방생한 공덕과 같다. 내가 염라국에 이르러 그것을 보았으니, 오늘 이 공행어(空行語)를 망실하지 말고 송아지 등을 힘써 방생하면 무량한 공덕을 얻게 된다.”
『구사론(俱舍論)』에 근거하여 말하면 방생하는 몸이 클수록 그 공덕도 더욱 크며, 도살하고 죽이는 유정의 몸이 클수록 그 과실과 우환도 더욱 크다. 왜냐하면 신체가 크면 받는 고와 낙이 크기 때문이다.
인광 대사가 총괄하여 방생의 열 가지 공덕을 말씀하셨다.
1. 도병겁(전쟁)이 없으며,
2. 모든 길상함이 모이며,
3. 건강하고 장수하며,
4. 자식이 많고 훌륭한 아들을 얻으며,
5. 모든 부처님께서 기뻐하며,
6. 중생이 은혜에 감사하며,
7. 모든 재난이 없으며,
8. 천상에 태어나며,
9. 악업을 소멸하고 사계가 안녕하며,
10. 세세생생 끊이지 않고 선심이 서로 감응한다.
고금에 많은 고승 대덕들이 방생에 힘을 다하였다. 옛날 지자(智者) 대사는 바닷가 모래해변 400여 리를 사서 방생지로 만들었고, 당나라 숙종은 온 나라에 명하여 방생연못을 만들라고 하였으며, 안노공은 방생비문을 지었다.
송나라 진종도 천하에 방생지를 건립하라고 명하였으며, 아울러 항주 서호(西湖)를 방생의 용도로 사용하도록 계획하였다.
명나라 연지 대사는 여러 곳에 방생지를 만들었으며, 『계살방생문』을 지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무릇 방생하는 사람은 네 가지의 공덕을 얻는다.
첫째는 방생의 이숙과(異熟果)로서 삼악도의 고통에서 해탈한다. 하등(下等)의 발심과 방생의 수량이 적으면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고, 중등(中等)의 발심과 방생의 수량도 중간이면 욕계의 하늘에 태어날 수 있으며, 만약 상등(上等)의 발심과 방생의 수량이 많으면 색계와 무색계의 하늘에 태어나며, 점차 윤회의 고해에서 벗어나게 된다.
둘째는 방생의 등류과(等流果)로서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장래 세세생생 무병장수하며, 둘은 미래에 사람의 몸을 얻었을 때 살생을 끊고 방생을 좋아하며 자비선심을 구족하고 수승한 보살도를 행하게 된다.
셋째는 방생의 증상과(增上果)로서 방생자가 후세에 위험한 험지에 태어나지 않으며, 태어나는 곳이 전부 즐겁고 아름다운 경계이며, 음식, 꽃, 과일 등을 구족하게 된다.
넷째는 방생의 사용과(士用果)로서 태어나는 곳마다 방생의 착한 덕이 증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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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하면 해탈, 왕생을 얻는다
만약 방생하면 금강지옥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대장경 가운데 한 가지 이야기가 있다.
옛날 인도에서 ‘적건’이라고 부르는 외도가 있었는데, 고기 먹고 피 마시기를 좋아하여 살생한 것이 거의 만에 이르렀다. 이 과보로 죽은 후 18지옥에 떨어졌으며, 그 후 금강지옥에 태어나 매 찰나 중에 백번 죽고 백번 사는 무량한 고통을 받았다.
이때 아난이 그 중생의 고통을 관하고는 부처님께 이 일을 이야기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은 세상에서 고기와 피를 먹기 좋아하였기 때문에, 현재 그 살생의 과보를 받고 있다.”라고 하였다.
아난은 다시 염라왕에게 “이 사람이 해탈할 수 있는 어떤 방편이 없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염라왕은 “만약 이 사람을 악도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이 세상에서 많은 방생을 하면 될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 그 후 아난이 그 사람을 위하여 널리 방생을 행하였기 때문에, 금강지옥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전에 어느 시주(施主)는 자주 관음탑이라고 부르는 탑에 공양하였다. 시주는 아들이 없었는데, 하루는 탑 아래에서 서원을 세우기를, “만약 나에게 아들을 점지해 주지 않는다면 이 탑을 무너뜨리겠다.”고 하였다. 탑 안의 신은 매우 두려웠으나, 그에게 아들을 점지해줄 방법이 없어 제석천에게 청하였다. 제석천은 곧 죽으려는 천인(天人)을 태에 들게 하였다.
이 하늘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출가하려고 하였으나 부모는 허락하지 않았다. 천인이 전세(轉世)한 그 어린이는 생각하기를, ‘이 고귀한 인간세상에 태어나 출가하여 수행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자살하려고 하였다. 강에 뛰어들었을 때 강물이 거꾸로 흘러 죽지 않았으며, 절벽에서 뛰어내렸을 때도 또한 죽지 않았다.
그 당시 국가의 법률은 매우 엄하였기 때문에, 고의로 강도가 되어 죽고자 하였다. 하지만 형을 집행하는 화살이 모두 되돌아와서 죽지 않았다. 국왕은 매우 놀라 그에게 사과하였으며, 그 후 국왕의 도움으로 마침내 부모로부터 출가의 허락을 받았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제자에게 이 사람의 전생인연을 말씀하셨다. “옛날에 그는 곧 죽게 될 사람을 구제해 준 적이 있기 때문에 오백 세 중에서 두려움을 받지 않고 지수화풍(地水火風)도 그를 해치지 못하였으며, 아울러 금생에 아라한과를 얻게 되었다.”
방생은 무외(無畏)의 보시이다. “무외보시는 즉 방생이다.”
『염주경(念住經)』에서 이르기를, “일체의 율의 가운데 선도(善道)에 태어나는 수승한 인연은 즉 생명을 보시하는 계이다.”라고 하였다. 또 『방생공덕론』에 이르기를, “만약 선도의 즐거움을 얻으려면, 방생하여 인간과 천상의 복보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스스로 적멸을 얻으려면, 방생하여 성문, 나한의 과를 얻을 수 있다. 만약 보리심으로 섭수하려면, 방생은 성불의 과를 이루는 인(因)이다. 만약 스승〔上師〕이 세상에 머물기를 원하면 방생하라. 스승이 오래도록 세상에 머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만약 자기의 긴 수명을 얻으려면 방생하라. 수승한 장수(長壽)의 방편이 될 수 있다. 방생은 무량한 공덕이 있다.”라고 하였다.
방생은 또한 정토왕생(淨土往生)의 주요한 인(因)이다. 『무량광수공덕장엄경(無量光壽功德莊嚴經)』은 열 가지 왕생의 인을 말씀하셨다. 이 열 가지 인은 비록 서로 다른 해석법이 있지만, 두 가지의 인, 즉 자기가 직접 하는 방생과 다른 사람에게 방생을 권하는 것으로 많이 해석되었다.
그리고 『중음교언론(中陰敎言論)』에 근거하여 말하면, 금생에 방생하면 죽은 후 중음의 시기에 그에 의하여 방생된 중생이 길을 인도하며, 자기가 원하는 정토에 왕생할 수 있도록 이끈다. 만약 살생하면 그에 의하여 살해당한 중생이 나타나 극히 분노하고 원망하며, 강력히 지옥으로 이끌게 된다.
자주 방생하는 사람은 즉시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 마치 티베트의 치아메이 린포체가 평생 사람들에게 방생을 권하여 원적(圓寂)시 바로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한 것과 같다. 중국 송나라 영명연수 대사는 평상시 물고기, 새우 등을 사서 방생에 힘썼으며, 후에 이러한 공덕력으로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상품상생을 증득하였다. 이러한 이야기는 모두 역사에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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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어
바다와 같이 방대한 불경과 논전 가운데 ‘방생의 공덕과 살생의 과실’에 관하여 많은 가르침과 이야기가 있으나, 그 이론을 다 논할 수 없다. 본문에 언급한 것은 단지 대해(大海) 중의 한 방울의 물에 불과하며, 지면관계상 쓸데없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을 수 없었다.
이 글을 빌어 지혜를 구비한 사람은 반드시 하나를 보고 많은 것을 미루어 알 것이며, 득실을 명백히 알아 신중하게 취사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성자 법왕 진메이펑쵸 금강상사께서 극력 주창하신 법문에 따라 널리 방생의 사업을 행하여 여러 중생을 이익되게 하려고 한다.
과학이 고도로 발전함에 따라
마음속의 번뇌 또한 더 늘어나고
자비심은 감소하여 살생이 늘어나니
지금의 이 세상 정말로 슬프구나.
우리 대사 석가모니부처님은
중생을 위하여 버린 목숨 한량이 없으며
만약 이러한 인(因)이 없고 단지 정진만 하면
마치 공중에서 꽃을 찾는 것과 같네.
일체 유루의 착한 법 가운데
살생하지 않고 방생하는 것이 가장 수승하며
내 여기에서 재삼 기도하면서
이러한 수승한 도(방생) 행할 것을 권청하네.
이러한 선은 삼세의 선을 위주로 하며
허공법계 삼계의 중생에게 회향하여
원컨대 그들이 잠시 인간, 천상의 복을 얻고
마침내 극락세계에 왕생하길 비네.
이 글이 만약 중생을 이익되게 한다면
상사와 공행 등 모든 호법선신은
항시 이 (방생의) 묘법을 수호하여
장차 염부제에 두루 퍼지기를 원하옵니다.
- 이 ‘방생공덕 감로묘법’은 중국의 경건한 신도들이 권청하여, 쇼다지캄포께서 바쁜 와중에서도 인도, 티베트, 중국의 여러 경론에 의거하여 오명불학원(五明佛學院) 남방마니보주에서 지으셨다. 참으로 좋구나! -1997년 5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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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가?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 즉 부처님과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법과 그 법에 따라 수행하고 법을 전하는 스님들을 믿는 것이 아닌가! 그 중에서 인과(因果)의 도리를 믿어야 하는 것은 불자라면 가장 기본적인 전제이기도 하다.
2,500여 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중요하게 설하신 인과응보(因果應報)는 많은 경전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말법시대로 접어들자 과학이 고도로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은 인과에 대한 인식과 믿음이 희박해지고 있으며, 인과응보의 이야기를 신화나 전설같이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나는 세상 모든 것이 인연에 의해 전개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깊이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은 최근에 일어났던 실제 사례를 통하여, 우리가 만나고 겪는 모든 일들이 알고 보면 결국은 ‘자기가 지어 자기가 받는다〔自作自受〕’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이 모두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묘법 노스님의 혜안으로 간파하시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들려주신 것이다.
인과는 과거·현재·미래를 통하는 도리이기 때문에 그러한 삼세를 꿰뚫어 보는 안목이 없는 우리들이 믿기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교를 믿는 불자라면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핵심적인 사상인 인과의 이치를 이해해야만 비로소 현생의 고통뿐 아니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불보살께서는 인과의 도리로써 중생을 제도하시며 중생들은 인과에 의지하여 성불(成佛)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인과를 따르는 것은 바로 고통을 뛰어넘을 수 있는 지렛대이자 악도를 막는 방패이며, 천상으로 향상할 수 있는 길이며, 생사의 바다를 건너가는 배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주선이 하늘로 날아가기 위해서는 발사대가 튼튼해야 하듯이, 우리가 생사(生死)의 고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계(戒)의 몸이 튼튼하게 갖춰져야 할 것이다. 계란 바로 인과를 기초로 하기 때문에 수행자는 인과에 대한 철저한 인식하에 과거의 업장을 참회하고 새로운 나쁜 업을 짓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불성(佛性)을 가로막고 있는 망상과 업장은 점차 엷어질 것이며, 인연이 도래할 때 불보살(佛菩薩)의 가피로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던 불성이 현현할 것이다.
인과를 무시하면 결코 불보살의 가피를 입을 수 없을 것이며, 결국 자기의 업대로 살다보면 삼악도에 빠져 생사의 고통 속에서 벗어날 날을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말법시대로서 우리들의 근기가 약하기 때문에 단번에 불성을 깨달아 들어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러므로 먼저 염불이나 다라니에 의지하여 자기의 무거운 업장을 녹여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때가 되면 최상승의 공부를 할 수 있는 기초가 형성될 것이며, 근기가 뛰어난 사람은 단박에 자기의 성품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 이야기』 전편을 읽고 많은 분들이 고기 먹는 문제에 대하여 한번쯤은 생각하면서, 고기를 먹을 때 다소 죄책감 같은 것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지금 우리는 오직 영양학적으로만 생각하고 아무런 의식없이 고기를 먹고 있다. 고기 먹는 것이 이미 굳어진 생활습관이 되어 이를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님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기 내면에 들어있는 고통 받는 생명(영혼)을 생각하고 식습관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고통과 생사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 다른 생명을 고통스럽게 하면, 이는 생사에서 해탈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더욱 업만 짓고 윤회의 고통에 빠져드는 길이다. 자비의 마음으로 고기를 먹지 않는 것 자체가 커다란 공덕을 짓는 것이라고 하였다.
요즘은 심지어 스님들조차 고기와 오신채 먹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대승불교에 속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남방불교에서 고기를 먹는다고 그걸 따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스님은 우리 불자들의 의지처인데 스님들이 고기와 오신채를 먹으면 더 이상 중생들이 공덕을 지을 수 있는 청정하고 성스러운 의지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전편에서 다 소개하지 못한 사례를 통하여 인과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음욕심을 끊지 못하면 절대로 생사에서 해탈할 수 없으며, 구복(口腹)을 채우기 위하여 고기를 먹고 살생을 많이 하면 수많은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호소하면서, 지금이라도 잘못을 깨닫고 깊이 참회하고 수행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묘법 노스님께서 말씀하시길,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고기와 오신채를 끊고 열심히 참회, 수행하라고 하셨다. 지금 우리가 노스님을 뵙고 싶어도 찾아 뵐 수 없다. 하지만 그분의 고구정녕한 말씀의 일부분이나마 접할 수 있어서 다행이며, 우리가 그분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수행하면 그분을 직접 만나 가르침을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르침을 따라 행하지 않으면 지금 노스님을 직접 만나뵙더라도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 이야기』에는 없지마는 인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양무제의 스승이신 지공 선사(志公禪師)의 인과법문을 추가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티베트의 고승이자 역경사인 쇼다지캄포의 방생공덕에 대한 감로법문을 첨부하여, 살생의 해악과 방생의 공덕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고자 번역 소개하였다.
이러한 실제 사례와 고승대덕의 법문을 통하여 인과를 이해하고 살생을 하지 않으며, 또한 방생 등 여러 공덕을 지어 우리 모두 하루빨리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바란다. 첨단과학이라는 미명 아래 불법을 무시하고 인과를 역행하면 그에 대한 과보가 조만간 자기에게 미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여 고통에 빠지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인과의 무서움과 생사의 무상함을 느끼고 모두가 마음을 돌려, 지난날의 허물을 깊이 뉘우치고 널리 공덕을 짓는 일에 힘쓰며 불도(佛道)수행에 매진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번역을 마무리하면서 묘법 노스님과 과경 거사에 대한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게 되어 기쁘며,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 이야기』에 보내주신 독자님들의 성원과 관심에 대하여 이 글을 통하여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아울러 이 책이 세상에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출판해주신 불광출판사에 대하여 다시 한번 감사드리면서,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생사의 고해에서 벗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빈다.
정해(丁亥)년 화창한 봄날 재가불자 각산(覺山) 삼가 씀.
인과이야기 번역한 정원규님 | 인과이야기 2006/05/23 07:27
놀라워라! 신기한 중국불교의 세계
번역서 낸 정원규(49, 경남 산동 대외경제무역)사무소장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북경에서 연수시 주말이면 가끔 북경 근교의 팔대처(팔대 사찰이 있다고 하여 이렇게 부름)라는 곳에 참배하러 가곤 하였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사찰인 영광사의 불교서점에 들려 불교서적을 사 두었다가 귀국 3개월을 앞둔 여름방학 때 이 책을 읽어보고 너무나 감명을 받아 번역하여 한국에 소개하기로 마음먹었으며, 한국불자들이 이 책을 통하여 인과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기를 발원하면서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정원규 소장은 '인과 이야기'(과경 엮음, 불광출판부, 2006)를 번역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말했다. 오대산 노스님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인과 이야기'는 중국이라는 무대지만 보통 사람들이 거창한 철학지식보다 소박한 현실이야기에서 더 감동하듯이 주변의 흔한 일을 소재로 다룬다. 그런데 높은 도를 이야기하기 전에 도를 얻는 데 기초를 다지는 길은 마음을 돌이켜 참회하고 어떻게 행해야 지금 당장 겪고 있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겠다. 정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구나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참회하면 업장은 점점 소멸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례는 불경 속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중국 양무제가 자기 부인을 천도한 이야기며, 주변 스님들이나 신도들의 기도 경험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마음이 간절하면 누구나 업장이 소멸되며 만약 병이 있으면 치유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근세에서 이름이 높았던 인광스님도 '한푼의 정성을 들이면 한푼의 결과를 얻으며, 열푼의 정성을 들이면 그만큼의 결과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참회와 수행은 자기의 정성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씨가 번역한 책에 등장하는 묘법스님은 중국 오대산에서 오랫동안 수행하면서 과경 거사를 만나 세상에 내려와 법을 펴기 시작했다. 지금도 가끔 중국의 여러 불학원에 다니며 법문하고 있다고 하고 묘법스님의 스승 선화상인은 이 책을 통해 알기 전에 북경 광제사에서 중국의 어느 노거사로부터 선화상인 법문집을 몇권 주어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선화상인은 중국 근세의 큰스님으로
중국 동북지방에서 수행하여 견성한 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기 전 1960년대 초에 미국으로 건너가 법을 폈으며,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불린다. 이 스님들은 채식과 계율에 대한 신조가 뚜렷했다.
"채식을 잘 지키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저자신도 불교를 믿는지 오래되었지만 지키지 못하다가 이 책을 번역하면서 비로소 육식을 금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사회생활 속에서는 더욱 지키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키기 힘들다고 포기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이 이 책을 통하여 채식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채식이후 더욱 건강해졌으며 잔병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정씨가 불교를 믿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지만 본격적으로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 1학년 때부터였다. 한때는 정씨도 스님과 같이 생활한 적도 있었지만 직장생활을 하고부터는 불경을 읽으며 염불수행을 주로 했다. 1990년대 초 해인사선우회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신행생활을 해오고 있다
~~~ 이상은 오대산 노스님의 그 다음 이야기의 일부 글입니다
전문은 아래에 소개된 출판사에서 간행된 도서를 구입하여 보시기를 ~~
[오대산 노스님의 그 다음 이야기]에서
저자 과경.각산/ 번역 정원규 / 불광출판사 간행
구입처 불광출판사☎ (02-420-3200)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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