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이야기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 이야기 (4)

수선님 2022. 2. 27. 12:47

당나귀가 빚을 독촉하다


장(蔣) 여사는 금년 70여 세로 자주 ‘일주일 염불정진(打佛七)’에 참가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마음에 한 가지 걱정이 있어 염불에 집중할 수 없었다. 17세 된 손자가 자주 팔십이 가까운 할아버지에게 고함을 지르며 그들 노부부를 못살게 굴면서 이것저것을 해달라고 하기 때문이다.


옷은 매일 한 번씩 갈아입어야 하고, 식성도 매우 까탈스럽고, 심지어 할머니인 장 여사한테 그의 동급생 집에 가서 물건을 가져오라고까지 한단다. 아들의 집은 경제적인 사정이 매우 좋아서 현대화된 아파트에 살고 도요다 승용차도 있는데, 손자가 할머니 집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해서,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그러나 손자는 매일 두 노인을 화나게 만들었다. 잘 대해주는데도 불구하고 자주 사이가 틀어지며, 성질이 한번 나면 발로 가구를 차고 문을 차고 하는데, 조금 지나면 또 조용해진다. 장 여사 말에 의하면 손자가 집에 있으면 두 노인은 염불심도 안정이 안 된다고 한다. 들어보니 그들의 처지가 매우 안타까워 묘법 노스님에게 가르침을 청하였다.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두 노인네는 전생에도 부부로서 농촌에 살았다. 그들은 한 마리의 당나귀를 길렀는데, 이 당나귀는 평소 그들이 밭을 갈고 연자매를 돌리는 것을 도와주었으며, 장날에 물건 사러갈 때도 짐꾼노릇을 하였다. 그러나 당나귀가 먹는 것은 거친 풀 사료이며 하는 일은 힘들었고, 주인에게 자주 맞고 욕을 얻어먹었다. 당나귀가 늙어 일을 하지 못할 때 그들은 도살장에 팔아 죽게 하였다.

금생에 그들의 손자가 바로 그 당나귀로서 몸을 바꿔 빚을 받으러 온 것이다. 빨리 그들 노부부에게 불전에서 전생에 당나귀를 학대한 죄업을 참회하게 하고, 매일 그 당나귀를 위하여 『지장경』을 독송하여 회향하면 반드시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 노부부는 장래 이 손자 때문에 멀쩡한 채 화가 나 죽게 될 것이다.”

나는 스님의 말씀을 장 여사에게 그대로 전달하였다. 그녀는 스님의 말씀을 깊이 믿으며 말하기를, 손자는 확실히 머리가 당나귀같이 생겼으며 매우 변덕스럽다고 하였다. 자기 남편은 그 녀석 때문에 화가 나 혈압이 많이 올라갔으며, 며칠 전에는 심장병이 발작하였다고 한다. 만약 그대로 사태가 발전되면 반드시 두 노인의 목숨은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이번에 번뇌의 원인을 알았으니 그들은 반드시 스님의 지시대로 행할 것이다.

한 달 보름 후 장 여사가 전화를 걸어와 말하였다.

“당신과 스님께 좋은 소식을 전하려고 합니다. 우리 부부는 그날부터 과거에 지은 잘못을 참회하기 시작하였으며, 매일 『지장경』을 지속적으로 독송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미 39번을 독송하였으며, 이 기간 동안 손자는 단지 한번 성깔을 부렸을 뿐입니다. 그때도 한두 번 고함을 지르고는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학교 선생님이 제 손자에게 의복을 검소하게 입고 남을 즐겨 돕는다고 칭찬을 하였다고 합니다. 정말 우리 노부부는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쁩니다. 불법은 정말로 신묘합니다. 우리들은 현재 신심이 더욱 견고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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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탕(迷魂湯)


술, 여자, 재물의 기(氣)로 사방이 막힌 벽 속에


미혹된 수많은 사람들 그 속에 갇혀 있네.

마음의 눈이 재물에 미혹되니 기가 몸을 상하게 하고

주색은 마치 미혼탕과 같네.

만약 높은 담장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으면

그런 사람은 바로 여래 자재왕(自在王)이네.

 

이십여 세 된 학생 차림의 젊은이가 묘법 스님께 자기의 의혹을 털어놓았다.

“전생과 후세의 일에 대해서는 어려서부터 할머니에게서 들었습니다. 염라대왕이 판결하여 태(胎)에 들어갈 때 먼저 삼신할머니의 ‘미혼탕’을 마셔야 하며, 마신 뒤에는 곧 전생의 일을 잊게 된다고 합니다. 스님! 정말로 그렇습니까?”

스님께서 대답하였다.

“나는 있다고도 말하며 없다고도 말하네. 그 모두 자네에게 증명해 보여줄 수 없으니. 자네 한번 생각해 보게. 지금 세상사람은 ‘오로지 돈만 추구하는’ 바람에 과거의 원한을 잊어버리고 서로 손을 맞잡으니 적이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또 본래의 친구는 형제처럼 친해도 돈 때문에 반목하여 원수가 될 수도 있지. 심지어 필사적으로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한다네. 이 모두는 ‘돈’노파의 미혼탕을 마셔서 과거를 잊어버린 것이지.

전세(轉世) 후의 생명은 단지 몸뚱이만 바꾼다네. 이 사대가 화합한 몸 속에 의탁한 신식(神識)은 과거에 대하여 명백하게 알고 있다네. 누구에게 가서 은혜를 갚아야 할지, 누구에게 가서 빚을 받아야 할지를 안다네. 업력의 끌어당김으로 와야 할 것은 반드시 오며, 가야 할 것은 반드시 간다네. 결코 좋고 나쁨에 따라 취하고 버리거나 늘거나 줄지 않는다네. 따라서 소위 말하는 ‘미혼탕’은 바로 탐진치의 습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佛性)을 덮어서 전도하게 하여 생사를 윤회하게 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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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의 죽음과 해원(解寃)

불교를 깊이 신봉하는 한 쌍의 젊은 부부가 있는데, 신자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행복한 불자가정을 이루었다. 결혼 후 두 사람의 생활은 즐거움이 충만하였으며, 계를 지키고 독경하며 수행에 정진하였다.


아내인 종홍(鍾紅)보다 일찍 결혼한 몇 명의 여자친구들은 『지장경』과 「관세음보살보문품」을 꾸준히 염송하며, 아울러 가족들에게 살생하여 보신하는 것을 금하였기 때문에 다들 예쁘고 귀여운 아기를 낳았다. 이들 아기의 공통된 특징은 키우는 과정에서 영리하고 잘 웃으며, 거의 울지 않으며 병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 부부도 아기를 임신한 후 아기를 위하여 『지장경』을 염송하면서 선근이 깊은 아기를 낳게 되기를 기원하였다.

임신 기간 내내 아내는 입덧이 매우 심했다. 메스껍고 구토하며, 몸이 붓고 좌골신경통이 생겼고, 음식 맛도 모르겠고 밤에 잠도 편히 못 자고 하면서 처음으로 엄마가 되는 고통을 다 맛보았다. 하지만 낳기 전에 마지막 임신검사까지 줄곧 태아는 모든 게 정상이어서 위안을 받았다.

출산 예정일은 정월 초하루, 이것은 더욱 전 가족을 기쁘게 하였다. 납월 30일 집집마다 모두 모여 설 떡을 먹고 폭죽소리가 대지에 울려 퍼졌다. 아내의 뱃속 아기도 특별히 힘을 주며 발로 찼다. 시어머니가 “이 아기는 아마 마음이 급한가 보다. 빨리 나와 폭죽을 터뜨리고 싶은가봐.”라고 말하자 모두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나 세상일은 무상한가 보다. 아이는 태어날 때 ‘탯줄이 목을 감아’ 죽은 것이다. 죽은 때가 설 하루 전날 저녁이었다. 태아가 움직인 후 온 가족이 행복의 동경 속에 빠져있을 때 죽은 것이다. 아기가 죽었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그들 부부의 곤혹과 고통은 물론이고, 나도 그 소식을 듣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 부부의 일 때문에 나는 그 해의 설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해산하는 방문 앞을 지키고 있던 아빠 맹위(孟偉)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엄마는 아들의 체온을 영원히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몸부림쳤다.

나는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왜 하늘은 이렇게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불제자에게 이와 같은 횡액을 만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일은 그들이 불교를 믿지 않는 부모와 친척들에게 ‘불교를 믿는 것은 미신이다’라는 구실까지 주게 되었고, 크게 보면 그들 부부의 도심(道心)을 잃게 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묘법 노스님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스님은 이 소식을 듣고 결코 애석해하는 반마디의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직설적으로 “좋아, 잘 됐어!” 하고 말하셨다. 예상을 벗어난 말씀이셨다. 아울러 맹위의 할아버지가 도살장의 백정을 하면서 많은 돼지를 죽인 적이 없느냐고 알아보라고 하셨다.

스님은 또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번에 태에 든 신식은 특별히 빚을 받으러 온 원수이다. 따라서 그가 태에 들면서부터 산모를 괴롭히며 가족들에게 편안한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 부부가 성심으로 염불하며 아침, 저녁으로 예불을 지속하자 그 태아는 점점 불법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특히 『지장경』은 그를 대신하여 숙세의 업장을 없애게 하였으며, 그로 하여금 진실한 이익을 얻게 하였다. 맹위의 할아버지에 대한 원한을 소멸하면서 다시는 자손들에게 보복하기를 원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 왜 출산 때 죽었느냐? 그것은 첫째 모자의 인연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둘째 그가 경법(經法) 듣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최후까지 머물다가 간 것이다. 그는 지금 이미 천계(天界)로 수행하러 올라갔으며, 다시는 인간세계에 와서 원수를 찾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들 부부가 불경을 염송하지 않았더라면 그 아이는 반드시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집안에 태어나서 성장함에 따라 그들 가족에게 많은 고통을 주면서 최후에는 그 애의 손에 패가망신하게 될 운명이었다. 따라서 아이의 죽음은 겉으로 보기에는 큰 재앙이나 사실은 화(禍)로 인하여 복을 얻은 셈이다. 그러니 기쁘고 축하할 일이지.”

나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깜짝 놀랐다. 즉시 비통에 빠져있는 아기 아빠에게 사실을 확인해 보았다. 알고 보니 확실히 그런 일이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정말로 돼지 잡는 일을 하였으며, 죽기 전 이상한 병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가족들이 할아버지를 묶어 놓지 않으면 쉬지 않고 주먹으로 두드렸으며, 그래야 그의 몸이 편안해졌다. 그분은 죽을 때 매우 고통스러워하였으며 또한 보기에도 흉측스러웠단다(이 일은 아직까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한 적이 없으며, 이 일 또한 그로 하여금 불교를 열심히 공부하게 한 원인이기도 하단다).

그분의 몇몇 자녀도 모두 병으로 고생하였다. 맹위의 부친은 허리디스크에 걸려 고생했으며, 큰아버지는 반신불수가 되어 누워서 10년을 지냈다고 한다. 맹위의 대에 이르러 그의 형은 사십도 못 되어 정신이 이상하여 하루종일 이것저것 의심하고 다른 사람이 뒤에서 그를 욕한다고 생각하여 직장에 출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맹위와 그의 누나는 앞뒤로 척추디스크를 앓았으며, 누나는 수술을 해도 완치되지 않았다.

묘법 노스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만약 맹위가 불법을 배우며 채식을 하고 불력(佛力)의 가피에 의지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결혼하면 안 되며, 설령 결혼하더라도 자식이 없을 운명이다. 왜냐하면 그의 집안은 살생의 업이 매우 중하여 후대 자손들이 몰락하고 병이 많을 것으로 정해졌다.”

스님의 법어는 마치 한바탕 때맞춰 내리는 단비와 같이 여러 사람의 마음에 삿된 불을 껐으며, 모든 사람의 의혹을 해소하였다. 더욱이 맹위와 종홍 부부는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으며, 부부는 지금 더욱 용맹 정진하고 있다. 나는 그들 부부의 노력이 헛되지 않고 제불 보살께서 그들을 가호하여 빠른 시일 내에 귀한 자식을 낳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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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 수행자의 참회(懺悔)

어느 날 오후 스승 묘법 스님께서 자리에 막 앉자마자 머리가 회백색인 노인 한 분이 앞으로 와 꿇어앉아 입도 열기 전에 눈물을 비같이 흘리면서 말을 하지 못하였다. 여러 사람이 위로하여 간신히 마음을 안정시킨 후 자기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분한 듯 이야기하면서 내심으로부터 진정한 참회를 분출하는 것 같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 눈물을 글썽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가 말하였다.


그는 아내와 아들, 딸과 함께 불법을 배우는 길에 들어서고부터 일체의 비린내가 나는 음식을 끊었으며, 여가시간을 모두 홍법이생(弘法利生 : 법을 널리 알리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과 송경(誦經)하면서 보내며, 스스로는 정진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였다.

불법을 배우기 전에 산 비디오는 단지 몇 개의 테이프만 볼 뿐 지금까지 10년이 지나도 다시는 보지 않았으며, 텔레비전은 중앙TV의 뉴스 외의 오락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보지 않는다. 불법을 배우면 가족에게 가져오는 이점이 매우 많으며, 근 10년이 되어도 아직 별다른 사고가 발생한 적이 없으며, 최대의 이점은 전 가족이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불교신자와 함께 모여 있을 때 자기는 항상 불법을 배우고 채식을 하는 이점을 이야기하며 부처님에 대하여 믿음과 공경심이 충만하다고 하였다.

작년에 의사가 그에게 말하기를 “10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으면 영양결핍이 되며, 자신이 병이 없다고 생각해도 병이 없는 것이 아니니,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를 하여 세 가지 항목에 문제가 없으면 우리들도 당신을 따라 채식하며 염불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같은 수행자들의 격려하에 그는 20원을 들여 세 가지 항목을 검사하였다. 검사결과표를 들고 검사원에게 물었다.

“혈액이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올해 60세인데 혈액은 오히려 이, 삼십 세 연령의 혈액이니 정상이 아니죠.”

이 말을 듣고 그는 처음에는 멍하다가 뒤이어 웃었다. 그는 검사결과를 수행자들에게 알리면서 말하기를 “육식하는 사람의 표준에 따르면 나의 혈액은 당연히 비정상입니다. 혈액의 청춘화는 좋은 일이 아닙니까? 10년 동안 술, 담배, 비린내 나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혈액은 정화되었으니 이 수치는 정상이라고 생각할 수 없죠. 언제 신생아의 표준에 도달하면 정상이라 부를지! 따라서 우리들이 채식하는 것은 바로 자기의 혈액을 정화시켜 노인을 아이로 돌아가게 하며, 소박하고 참됨으로 돌아가게 하며, 금생의 이 몸이 병의 고통을 받지 않게 하여 자기의 유한한 인생을 더욱 아름답게 살게 합니다.”

노인은 지금까지의 일을 열거한 후 갑자기 또 눈물을 흘리면서 최근 자기 집에 불어닥친 한바탕의 재난을 이야기하였다. 그가 애지중지하는 딸이 갑자기 연 이틀 간 음식을 먹으면 구토를 하여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예기치 않게 위암이었다. 즉시 수술을 해보았으나 이미 확산되어 종양을 제거할 수 없다고 하며,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단지 식도를 바꿀 수밖에 없는데, 이건 음식을 먹는 문제를 잠시 해결할 뿐이며, 이후 악화되면 길어야 반년의 시간밖에 안 남았다고 한다.

이것은 그야말로 머리를 한방 얻어맞은 격으로 온 가족은 매일 눈물로 지새우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단다. 의사가 말하기를, 딸의 병은 섭취하는 것은 적고 해야 할 일은 많아 피로가 누적되어 병이 생겼으며, 너무 힘에 부칠 정도로 몸을 사용한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그 노 거사는 의심쩍어 하며 말하였다.

“『지장경』에 이르기를 지장보살의 형상에 예배하고 『지장경』을 염송하는 사람은 ‘가택이 평안하고’ ‘수명이 늘며’ ‘질병에 걸리지 않고’ ‘모든 횡액이 소멸되며’ ‘악업이 소멸되는’ 등의 좋은 과보를 얻게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가 『지장경』과 각종 경전을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독송했는데도 왜 이러한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되었습니까?

그리고 또 제 아내가 말하기를 ‘만약 불법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딸이 이런 병에 걸리지 않았을텐데.’ 하고, 불교를 믿지 않는 친척, 이웃들은 사방에서 이상한 말을 해대며, 심지어 저의 견고한 신심을 흔들어놓으려고 합니다. 스님, 저는 무슨 업을 지어 이런 악보를 받게 되었습니까?”

노스님은 넓은 의자에 앉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조용히 듣고 계셨다. 노 거사가 묻자 천천히 대답하였다.

“부처님은 진어자(眞語者)며, 실어자(實語者)며, 불망어자(不妄語者)로서 결코 사람을 속이는 거짓말은 하시지 않습니다. 그럼 왜 당신 집에 갑작스럽게 이러한 큰 어려움이 있게 되었느냐? 이것은 당신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당신이 방금 이야기한 것과 같이 딸이 피로가 누적되어 병이 생긴 것 외에 당신 혼자 불법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여 불법과 세간법이 근본적으로 차별이 없는 것을 알지 못하며, 당신은 오히려 불법을 세간법과 대립시켰습니다.

당신은 한편으로는 불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하여 법을 듣고 이익을 얻게 하며,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이고득락(離苦得樂)하게 합니다. 이것은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또한 한편으로는 불법을 몸을 얽어매는 밧줄로 여겨서 아내와 자녀를 (불법으로) 꽁꽁 묶어 속박하기 시작하였으며, 심지어 아내와 딸이 외출할 때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까지 책망하며, 자녀가 가끔 유행하는 음악을 듣는 것도 금지하고, 당신이 정한 금기를 그들이 범하면 크게 훈계하고 엄하게 꾸짖습니다. 만약 이때 약간이라도 불복하면 당신의 음성은 8도까지 높이 올라가고, 펄쩍 뛰며 노발대발하면서 자기를 한 점 오차가 없는 불교 속의 법관, 호법과 근위병으로 여기며, 마치 천하에 오직 자기만이 진정한 불법을 배우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불교사원 내에서 여법하지 못한 일을 들으면 늘 마음에 두고 온갖 비평을 해 댑니다. 비록 당신이 바른 지견이 있을지라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시비분별이며 곳곳에 모두 외도(外道)만이 보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인과임을 알려면 수행인은 진실로 세간의 잘못은 보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이 만약 시비를 분별하는 지견을 가지고 있으면 자기 마음에 먼저 마(魔)가 들게 되어 마의 경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진정으로 외부의 마를 알게 되면 두려울 게 아무것도 없으며, 마를 당신의 성불을 돕는 선지식으로 삼아야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전생에 인욕선인으로 계실 때 가리왕에 의하여 신체가 잘려도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없었기 때문에 원한심을 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장래 자기가 성불한 후 제일 먼저 가리왕을 제도하겠다고 발원하였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지견이며, 도량이며, 경계입니다.

당신이 처자식에게 화를 내면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압니까? 그들은 당신에게 억눌려 마음속 분노를 풀지 못하여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러한 무명(無明)의 화는 바깥 사회에서 안 좋은 일이 많아질수록 더욱 왕성해졌으며, 가족은 화를 푸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의 당신은 양면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면은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의 얼굴이며, 다른 한 면은 험상궂은 얼굴을 한 마(魔)에 홀린 사람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마음가짐과 가정을 다시 창조해야 합니다.

지금 딸의 병이 위중하니 당신은 자기의 잘못은 반성하지 않고 도리어 불보살이 당신을 돕지 않는다고 원망심을 일으킵니다. 불보살이 아무리 큰 신통을 가지고 있다 해도 당신의 업력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자동차 정비기술을 보유하고 있을지라도 당신이 제멋대로 못 쓰게 망친 자동차는 수리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의 딸은 매우 강하고 좋은 사람이며, 업무상 일 처리를 완벽하게 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그녀는 자기 체력의 한계를 초과하여 일을 하며, 심지어는 밥 먹는 것도 자주 잊어버립니다. 자기가 가지고 온 채식용 도시락은 호기심 많은 동료들이 다투어 맛보니, 정작 자기는 배불리 먹지도 못하며 바깥 식당 음식은 먹기를 꺼립니다. 저녁에 집에 오면 시장기를 넘겨 먹고 싶지 않게 되며, 이렇게 오랜 시간을 지나니 위가 상하여 병이 된 것입니다. 위에 통증이 있어도 업무 열정에 묻혀 느끼지 못하게 되었으며, 병이 깊이 들게 되었을 때 병원에 가보니 이미 늦은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상황이 맞습니까? 당신은 여전히 불보살을 탓하고만 있겠습니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신도들은 노스님의 법문에 빨려 들어가 가르침을 청한 노 거사를 잊은 것 같았다. 스님의 말을 듣고 옆 눈으로 보니 그는 눈물로 옷을 적시고 있었다. 스님의 물음에 그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며 힘없이 말하였다.

“스님, 제 딸이 설마 구제될 수 없는 것은 아니겠죠? 제발 비오니 딸을 구해주십시오. 딸은 아직 한창 때입니다.”

“당신은 아직 내가 말한 정황이 맞는지 안 맞는지 답하지 않았습니다.”

“전부 맞습니다. 저는 정말로 불법 속으로 뚫고 들어가서는 나오지 못했습니다. 제가 애지중지하는 딸을 해쳤습니다. 딸이 만약 가버리면 저도 살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죽으면 당신 부인도 살 수 없습니다. 부인의 뱃속에도 10년 전 당신으로 하여금 만져보게 한 딱딱한 덩어리가 있지 않습니까? 맞죠!”

이 말을 듣고 노거사는 대경실색하였다. 갑자기 큰 울음소리를 내면서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자기의 머리를 치며 비통한 말투로 말하였다.

“관세음보살님! 제가 지은 죄이오니 딸 대신 제가 죽게 해주십시오. 제가 무간지옥에 들어가 영원히 나오지 못하더라도 좋으니 딸의 생명과 바꾸게 해주십시오.

관세음보살님! 현숙한 제 아내에게도 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녀는 10년 전 저보고 자기의 뱃속에 있는 딱딱한 덩어리를 만져보게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을 지금껏 생각하지 못해 아내의 생명을 앗아가게 되었으니, 저는 정말로 어리석습니다. 저는 스스로 한 점 착오도 없는 정확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일찍이 ‘나를 지도할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는 말까지 한 적이 있습니다. 한번이 아닙니다. 저는 몹시도 오만 방자하였습니다. 엉…엉….

저는 아직도 제가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라고 생각해 왔는데 알고 보니 그들을 해치는 마귀였습니다. …아…아!

제 아내는 30년 동안 줄곧 부창부수(夫唱婦隨)하는 현모양처입니다.… 제가 불교를 배우면 그녀가 따라하고, 제가 채식을 하면 비록 마음속으로는 원하지 않아도 저를 따라 여러 해를 채식만 하였습니다. 나중에 제가 방을 따로 사용하여 음욕을 끊으려고 제안하자 바로 동의해 주었습니다. 아직까지 저는 다른 사람의 정감을 생각하지 않았으니, 그녀도 오욕칠정을 가진 사람인데….

저는 줄곧 제가 매우 정진을 잘하는 것으로 생각해왔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이게 어디 불법을 배우는 것이었습니까? 그야말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마귀였습니다. 단지 자기만 돌아보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으니, 저는 육십 년을 헛살았습니다. 아… 아…. ”

나는 옛날에 할머니, 어머니들이 울면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있으나 그날 평생 처음으로 60세 된 남자가 울면서 참회하는 소리를 들어보았다. 만약 진심으로 하는 참회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 자기의 체면을 돌보지 않겠는가! 응접실 한편에서 여신도들의 우는 소리가 들렸으며, 흐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 때 스님은 다만 단정히 앉아 두 눈을 가볍게 감고 움직이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나는 갑자기 의문이 솟구쳤다. ‘이렇게 감동적인 장면에서 스님은 어째서 조금도 동요하지 않으신가? 앉아있지만 그래도 이미 무엇을 간파하고 계실 거야.’

홀연히 스님께서 입을 여셨다. 여전히 눈은 크게 뜨지 않은 채. 비록 음성은 크지 않았지만 즉시 여러 사람의 울음소리와 흐느낌은 멈추었다.

“나는 당신 딸이 반드시 죽는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어째서 딸의 생명을 구할 방법을 묻지 않습니까?”

아?! - 응접실의 공기가 응결되었다. - 쥐 죽은 듯이 고요하였다. 법을 청한 노 거사는 갑자기 스님의 발 아래 무릎을 꿇고 연달아 절하였다. 같이 있던 사람들도 모두 꿇어앉았다. 스님은 마치 이 감동적인 모습을 보지 못한 듯 여전히 조용하고 천천히 말하였다.

“불법은 묘법(妙法)이며,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 것입니다. 마음은 당신을 지옥에 빠뜨리기도 하고, 마음은 당신을 성불하게도 하며, 마음은 당신에게 병이 들어 죽게도 하며, 마음은 당신에게 한빙(寒氷)을 녹이게 하며, 위기를 벗어나 편안하게 하기도 합니다. 「대비주(大悲呪)」는 만능의 양약이며, 팔만사천 가지의 질병을 낫게 합니다. 다만 진실한 참회를 해야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의 딸이 좋아지면 여전히 성깔을 부릴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다시는 성깔을 부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새롭게 올바른 사람이 되겠습니다.”

“맞습니다. 성불을 하려면 먼저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에게 자비희사(慈悲喜捨)하시며, 대각자(大覺者)이시며, 무상의 지혜와 신통을 갖추고 계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제자에게 화를 내어 질책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설하는 법은 당신으로 하여금 이치를 밝히게 하는 것입니다.

도리를 이해한 후에 일상생활에서 일을 하는 가운데 불법을 실천하면, 이것을 ‘명리즉사(明理卽事)’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상치 못하는 많은 일들을 만나게 되는데, 당신은 이치에 밝기 때문에, 즉 이미 불법을 이해하기 때문에 당신은 경계에 흔들리지 않고 여법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불법의 정확함을 검증하는 것이 바로 명리즉사(明理卽事)입니다.

화를 내는 것은 수행인의 큰 금기이며, 화가 공덕의 숲을 태운다는 것이 결코 헛된 말이 아닙니다. 만약 이러한 나쁜 성질을 못 고치면 매일 많은 경전을 독송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법을 전파하여 불법을 배우게 하여도 당신 자신은 삼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화를 내는 것은 본래 무명(無明)의 표현이며, 무명은 바로 불법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당신 자신이 불법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원만하게 사람을 제도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젊은 남자와 여자가 단지 정지(正知), 정견(正見)을 갖고 오계를 지키며, 십선을 닦고 심지어 장기간 채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귀한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출가승에 대한 계율을 재가자에게 강요한다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새싹이 빨리 자라지 않는다고 억지로 뽑아 자라게 하는 것과 같아 그들로 하여금 불법을 배우게 하기는커녕 불법에서 멀리 도망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불법을 ‘공경하나 멀리하는(敬而遠之)’ 괴물로 변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육조 혜능 대사께서 말하시기를 ‘만약 세간을 떠나 깨달음과 성불의 길을 찾는다면 토끼의 머리에서 뿔을 찾는 것과 같이 영원히 찾을 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딸이 외출할 때 약간의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고, 혹은 유행하는 음악을 듣는 것은 단지 내용이 건전한 것이면 모두 유익한 것이며, 반드시 하루 24시간 염불만 해야 비로소 정진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법을 알고 자기의 언행을 규범에 맞게 제어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염불입니다. 세간에서 생활하면서 각종의 일에 직면하여 명리즉사(明理卽事)하고 취사선택할 수 있는 법안을 가지고, ‘머무름 없이 그 마음을 내면(應無所住而生其心)’ 되는 것이며, 매일 저녁 잠자기 전에 40분 정도 시간을 내어 염불 혹은 송주(誦呪)하면, 정심(淨心)이 되어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으며, 이것으로 매일 저녁의 과제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우리는 우주의 진실된 모습을 이해하였습니다. 이건 바로 간파하는 것입니다. 간파했으면 놓아버려야 합니다(放下). 만약 간파하고도 놓지 못하면 당신은 간파하지 못한 속인보다 더욱 부자유스럽습니다. 왜냐하면 당신 마음속에는 세간의 팔만사천의 번뇌 외에 또 하나의 불법이 누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일체를 모두 놓아버리세요. 그러면 대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자기 신변의 당신과 인연이 있는 모든 사람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우리 불제자는 동물에 대해서도 자비심을 일으키는데, 하물며 어찌 자기의 가족을 해칠 수 있겠습니까?

당신 자신은 언제부터 불교를 믿게 되었습니까? 언제부터 계를 지니게 되었습니까? 어떤 거사는 불교를 믿은 지 몇 십 년이 되어도 지금껏 아직 삼정육(三淨肉)이라면서 고기를 먹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무슨 옳고 그름을 따질 것이 없으며, 단지 시기의 문제입니다. 기연(機緣)이 도달하면 물이 흘러 자연히 도랑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한 가족이 식탁에 앉아 고기 먹고 술 마시는 사람이 있으며, 채식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식탁 두 제도, 이게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본래 한 식탁 다제도(一腋多制)인 것입니다. 육조 대사도 특수한 시기에 여러 해를 고기탕에 담근 채소를 먹었습니다. 그 채소에는 고기맛이 물들지 않았습니까? 그런 일들이 결코 육조 스님이 일대의 조사(祖師)가 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불법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스스로 불법 위에 서서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불교의 경찰이 되지 않습니다. 악한 과보가 형성되면 후회해도 늦습니다.

천주교와 기독교도 박애를 중시하는데 이것도 불교의 관점입니다. 우리들은 불보살의 박애심으로 중생을 감화시켜 불법의 대문으로 들어가게 해야 하며, 투쟁과 꾸짖음, 비난의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좋습니다. 이분의 딸이 위험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되기를 도와주고 싶은 분들은 내일 오전 8시 대웅전에서 『대비참(大悲懺)』 일곱 번을 절하면서 법계중생에게 회향할 것입니다. 당신은 딸에게 내일 집에서 『지장보살본원경』을 독송하게 하여 병이 완전히 나을 때까지 지속하라고 하세요. 이후 그녀는 『지장경』을 전심으로 염송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내일 『대비참』을 한 후 『양황보참』 3번을 해야 할 것이며, 참회시 심혈을 기울여 절해야 합니다. 당신이 조금 전에 그렇게 하는 것이 참된 참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슨 참회나 송주를 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마음에 깊이 간직하여 명심하고 심금을 울려야 비로소 천지가 감동할 것입니다. 여러 거사님! 이런 공덕 짓기를 원하지 않으십니까?”

“원합니다.” 하는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스님은 아이와 같이 천진스럽게 웃었다. 연륜을 가득 담은 스님의 얼굴 모습은 마치 봄날의 활짝 핀 연꽃같이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사람들에게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였다. 제자들은 모두 노스님이 허망한 말씀을 하시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단지 그분의 말씀대로 따라하면 이고득락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믿는다. 법문을 마치기 전 스님께서 게송 한 수를 읊으셨다.




“공(空)은 색(色)이며 색은 공이니,

불법의 묘용은 무궁하구나.

몸으로 실천하여 사람을 일깨우기 위하여

보살은 항상 고해 가운데 몸을 나타내네.

만약 성불하려면 먼저 올바른 사람이 되어야

자기도 제도하고 남도 제도하고 중생도 제도하네.

항상 미륵보살의 웃는 모습을 배우고

마음을 열어야 진허공계를 포용할 수 있네.

말도 타지 않고 소도 타지 않는 것처럼

서두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는 게 가장 적당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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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아버지가 제도를 구하다

모 병원의 황씨라는 의사가 갑자기 이상한 병을 앓게 되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두 눈이 초점을 잃고 멍하니 바라보면서 말도 하지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며,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고 하다가 날이 새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여섯 분의 전문가에게 진찰을 받아보았으나 모두 속수무책이었다. 그의 아내가 당시 유행하던 기공치료를 받아보게 하려고 하였으나 황 의사가 믿지 않아 아예 가지 않았다.

그 후 황 의사의 아내는 열성적인 이 선생을 만났는데, 이 선생이 우리 집에서 묘법 노스님을 뵌 적이 있었기 때문에 황씨 아내에게 묘법 노스님에게 그녀의 남편을 보여 볼 것을 제의하였다.

그녀는 기공조차도 믿지 않는 남편이 스님을 뵈러 갈 리가 없다고 하였다. 황 의사는 그 모든 것을 미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집으로 돌아와 시험삼아 남편에게 스님 이야기를 하였는데, 생각지도 않게 황 의사가 두 눈을 부릅뜨고 급하게 묻기를 “당신 무슨 스님이라고 했지?”라고 하였다. 아내가 묘법 스님이라고 하자, 그는 한시도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이 선생이라는 분께 연락하여 노스님을 만나 뵙겠다고 이야기하라고 하였다.

며칠 후 나와 이 선생은 황 의사 부부를 모시고 차를 타고 오대산으로 가서 노스님을 찾아 뵙게 되었다. 내가 사전에 스님께 전화를 했기 때문에 스님은 미리 준비하고 계셨다.

“당신 부친은 돌아가셨습니까?”

황 의사의 아내가 대신 대답하였다.

“돌아가신 지 2년 정도 되었습니다.”

스님이 물었다.

“남편에게 두 분의 형님이 있지요? 그리고 시아버님이 당신 남편을 가장 좋아하셨죠!”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자 황 의사는 두 눈이 멍하니 되면서 줄곧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가 대답하였다.

“스님 말씀대로입니다. 시댁은 농촌이었는데, 그이가 군대에서 전역할 때 도시로 와서 살게 되었지요. 어릴 때부터 시아버님은 남편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시아버님이 생전에 살생의 업이 비교적 중하여 돌아가신 뒤 악도에 떨어져 고생하고 있습니다. 아들에게 불연(佛緣)이 있어 자기를 구해 줄 수 있음을 알고 일찍부터 꿈을 통하여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그는 도리어 믿지 않았습니다. 고해를 벗어나기 위하여 부득이 몸에 붙는 방법을 택하여 그를 핍박하여 불문(佛門)에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의 지금 눈빛은 비교적 정상이지요?”라고 스님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말하였다.

모두들 황 의사를 다시 보니 그의 얼굴에는 홍조가 퍼져 있으며 두 눈은 더 이상 멍해지지 않았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먼저 불전에 가서 예불하고 기다리세요. 내일 지장전에 천도위패를 세우고 스님들의 독경의 힘을 빌려 도우면 그의 부친은 이고득락할 것입니다.”

갑자기 황 의사는 묘법 노스님 앞에 꿇어앉아 부끄러워하면서 결연히 말하기를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저를 받아 주십시오.”

그 아내는 그 말을 듣고 초조해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지 몰랐다. 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좋습니다. 당신은 불문의 재가제자가 되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황씨 아내에게 재가제자가 무엇인지 설명하자 그녀는 그제서야 한숨을 돌렸다. 그녀는 혹시 남편이 출가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 것이다. 스님과 작별을 고한 후 우리들은 가지고 온 공양품을 불전에 올리고 함께 예불을 드렸다. 절 밖 초대소에서 하루 밤을 잤는데, 반년 이상을 고생한 황 의사는 마침내 편안한 잠을 자게 되었다.

현재 황 의사는 재가 수행자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칭찬할 때마다 말이 적은 그는 얼굴을 붉히면서 한결같이 말하기를 “나는 이번에 화(禍)로써 복을 얻은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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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병의 원인

60여 세 된 여신도 한 분이 묘법 노스님에게 묻기를, 자기는 수십 년 동안 가슴이 답답한 것을 느껴왔는데 많은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보아도 병의 원인을 알 수가 없었으며, 중약, 양약 등 적지 않게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여 아예 지금은 치료를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스님의 불법(佛法) 강의를 듣고 믿음이 깊어졌다고 하면서 스님에게 자기는 무슨 업을 지어 이런 병을 얻게 되었는지 봐달라고 부탁하였다.

묘법 스님께서 물었다.

“예전에 농촌에 살았습니까?”

“저는 원래 농촌 출신입니다. 군대를 전역한 남편을 따라 도시로 오게 되었습니다.”

“농촌에 살 때 혹시 부엌 부뚜막 위 처마 밑의 제비집을 막대기로 쿡쿡 찌른 적이 없습니까?”

“그래요. 그런 일이 있습니다. 제비집이 솥 위에 있어 자주 똥을 싸고 해서 막대기로 쿡쿡 찔러 없앴습니다.”

“그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비가 돌아온 후 자기 집이 없어진 걸 발견하고 괴로운 듯이 부엌 위를 오르락내리락 하였으며 집 앞에서 울어대다가 얼마 지나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묘법 노스님께서 법문하였다.

“당신은 다른 방법으로 제비들에게 집을 옮기도록 할 수도 있었는데, 사납게 갑자기 제비가 거처할 곳을 없애버렸습니다. 불교는 모든 중생이 평등하다는 사상을 선언하였으며, 지금 사회에서도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상생을 제창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비들에게 해를 끼친 것이 바로 당신의 가슴이 답답한 병의 원인입니다.”

그 여신도는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이 고개를 끄떡이며 그렇다고 수긍하였다. 스님께서 또 물었다.

“당신은 근검절약하며 재물을 아낄 줄 아는군요. 길을 갈 때 만약 다른 사람이 버린 깡통 혹은 기타 폐품들을 발견하면 모두 주워 모아 파는군요. 그렇지요?”

여신도가 반문하기를 “훔친 것도 아니고 빼앗은 것도 아니며 폐품을 주워 파는 것도 죄가 됩니까?”

“나는 당신에게 죄가 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가정형편을 살펴보면 생활이 부유한 편입니다. 그런 폐품들은 생활이 진짜로 곤란한 사람들이 주워가게 해야 합니다. 생활이 곤란하지도 않으면서 그런 조그마한 재물을 주워 가는 것은 바로 탐심입니다. 불교를 배우는 사람은 자비희사(慈悲喜捨)를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내가 말하는 도리를 인정합니까?”

여신도는 부끄러운 듯이 말하기를 “스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저는 단지 그런 물건은 기왕 다른 사람이 버린 것이고, 또 팔아서 돈을 만들 수 있기에 줍지 않으면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깊이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다음부터는 다시는 줍지 않겠습니다.”

묘법 스님은 웃으면서 “당신이 범한 과실은 비록 작지만 당신의 청정한 수행을 장애하여 기로(氣路)가 원활하게 통하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의 느낌은 어떻습니까?”

여신도는 잠시 체험하더니 기쁜 기색으로 말하기를 “아이고 정말 좋아졌습니다. 온몸이 가볍습니다. 숨을 쉬는 것도 정말 가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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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와 봉신방

그 후 나는 스님에게 말씀드릴 기회가 있었다.

“스님, 이전에 이야기하신 『백사전』의 고사를 듣고 매우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법해 노스님에 대한 왜곡과 희화화는 바로 불법에 대한 공격이며, 허선(許仙)과 백낭자의 인간과 축생과의 사랑에 대한 동정과 찬미는 사실상 말법시대의 전도된 행위인 것입니다. 우리 불제자는 서적과 각종 전달매체를 통하여 전도된 것을 다시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저는 현재 몇 가지의 문제로 가르침을 청하고자 합니다.

『서유기』는 역대 대중들이 읽기 좋아하는 역사적인 명저이며, TV연속극으로 제작된 후 더욱 대중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릴 때부터 이 연속극을 보면서 당승(唐僧)이 매우 무능하다고 생각했으며, 관음보살이 어떻게 손오공의 스승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당승으로 하여금 권선징악으로 손오공을 특별히 다스리는지 궁금했습니다. 당승은 아무런 재주도 없이 제자에게 어떻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습니까? 이 고사는 불교의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묘법 노스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생각에 불법을 이해하는 사람은 『서유기』를 마땅히 이렇게 이해해야 할 것이라 생각하네. 당승이 원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만 구제하기 위하여 수행하는 소승불교로는 무상보리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침이네. 따라서 관세음보살이 노스님으로 화현하여 당승에게 서방으로 가서 불조(佛祖)를 참배하고 대승경전을 구하라고 지시하였던 것이지. 서천(西天)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길은 사실상 바로 당승이 자기도 구하고 다른 사람도 제도하는 수행의 길이라네. 수행의 길은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니며 고난과 장애가 첩첩한 길이지.

당승을 따르는 세 명의 추종자는 사실상 중생의 탐욕, 성냄, 어리석음 세 가지 악습의 구체적인 체현이라고 할 수 있다네. 저팔계(彬八戒)는 탐욕이 중한 사람을 대표하며, 재물을 탐하고, 색을 탐하고, 명예를 탐하고, 이익을 탐하고, 음식을 탐하고, 수면을 탐하는 등… 따라서 그를 ‘팔계’라고 이름한 것이네.

그리고 단지 계를 지키면 탐욕을 소멸시킬 수 있으며, 계를 지키면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지. 따라서 ‘오능(悟能)’이라 이름하였다네. 손오공은 그런 재주를 가지고 능력은 있으나 성격이 급한 사람을 대표하여 ‘오공(悟空)’이라 이름하였다네.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일체 무상과 만법개공의 도리를 알도록 일러 주었지.

사오정(沙悟淨)은 성품이 정직하고 무던한 ‘착실한 사람’을 가리키는데 불법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중생을 죽이고 고기를 먹는 죄업을 저지르게 되었지. 그는 일찍이 유사하(流沙河)에서 사람을 잡아먹으며 살았다네. ‘오정(悟淨)’이라 이름한 것은 그에게 깨끗한 행을 닦아 삼계를 벗어나려면 자비의 마음으로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네.

그리고 스승인 당승은 사대(四大)가 모두 공함을 알고 재(財), 색(色), 명(名), 이(利)에 이끌리지 않으며, 생사존망의 시기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차라리 서방극락세계에 왕생을 원하며 사바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았다네. 그는 손오공이 불살생계를 파계하고 가르침을 듣지 않았을 때 테를 씌우는 주문을 외어 그를 벌하였다네. 이는 계율로써 그를 구속하여 그로 하여금 잘못을 고쳐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네.

당승이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 줄 모르며, 변화를 부릴 줄도 모르고, 단지 일심으로 염불하는 것만 아는 것은 수행의 목표가 신통을 가지려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이라네. 신통이 대단한 손오공이 요괴(妖怪)의 신통이 그보다 더 나았을 땐 속수무책이지 않던가? 그러나 삿됨은 바름을 이기지 못한다네. 일심으로 염불하는 당승이 생명이 위험할 때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주며 전화위복으로 변하는 것을 보지 않았는가? 손오공은 순식간에 십만 팔천 리를 내달리지만 오히려 부처님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었어. 만약 부처님이 대승경전을 당승에게 주려고 한다면 그것은 매우 쉬운 일이 아닌가? 혹은 손오공에게 가서 가져오게 하면 힘을 더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 『서유기』는 우리들에게 수행의 험난함을 일러주면서 모든 불법 수행의 단체에서 각양각색의 사람이 불도를 구하고 있는데, 불교의 단체는 바로 대용광로로서 전부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네. 불법은 지극히 강한 것으로 아무리 견고한 것도 다 부술 수 있으며, 또한 불법은 지극히 부드러운 것으로 순조롭지 않은 것이 없다네. 다만 모두가 수행의 정념을 가지고 있기만 하면 대업을 함께 이룰 수 있다네.

따라서 천신만고의 고행을 겪고 난 후 스승과 네 명의 제자는 마침내 불조를 참배하게 되었지. 그러나 장경각에 가서 경서를 가지려고 할 때 또 장애를 만나게 된다네. 이것은 사실상 성불하기 전에는 무명(無明)이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며 또한 무명을 버려야만 비로소 성불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네.

돌아오는 도중에 모든 불경을 모두 물 속에 버리고 최후에 단지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를 남기게 되는데, 부처님께서 『금강경』에서도 일찍이 법문하신 ‘만약 사람이 여래가 설한 법이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네. 동시에 또한 말법의 후기에 이르러 『능엄경』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경전의 문자는 점점 소멸되어 최후에 단지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만 남게 된다고 하셨다네.

사실 나의 이러한 해석은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 부득이한 일이라네. 왜냐하면 『서유기』와 『봉신방』은 본래 불교와 도교의 다툼에서 서로를 공격하기 위한 부산물이라네. 근세 선종의 태두이신 허운(虛雲) 노스님께서 일찍이 이 두 책의 내력을 말씀하신 적이 있지.

‘당시 북경 백운사(白雲寺)에서 백운 화상이 『도덕경』을 강의하였는데, 많은 도사들이 운집하여 스님의 강의를 듣고는 장춘관(長春觀)의 도사들이 장춘관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소송이 붙게 되어 조정에서 화해시키기 위하여 장춘관은 장춘사라고 이름을 바꾸고 백운사는 백운관으로 이름을 바꾸라고 하였다. 도사들은 이에 불복하여 『서유기』를 지어 불교를 비방하였다. 『서유기』를 보는 사람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 그 진실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심한 것은 소설 가운데 당승이 경을 가지고 돌아오면서 통천하(通天河)에 이르러 모든 불경이 물에 젖은 후 문자가 모두 없어지고 단지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를 남긴 것이라네. 이것은 현장 법사가 번역한 불경 전부가 거짓이라는 것을 암시한다는 것이네. 애석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서유기』를 잘못 믿어 사실(史實)로 기록된 『서유기』의 진실이 묻혔다는 것이지.

『서유기』에 맞춰 창작된 소설 『봉신방(封神榜)』은 스님이 도사를 욕하는 것이네. 이러한 관점에서 그것을 보면 곳곳에서 도사를 욕하는 것을 알 수 있지. 비유하면 도사가 선도(仙道)를 수행할 때 반드시 겁수(劫數)가 있어야 하며 칼날을 맞아야 한다는 것 등이라네.

이 두 부의 소설을 보고 만약 그것이 불교와 도교의 서로 다투는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가짜를 진짜로 잘못 알게 될 것이네. 따라서 책을 볼 때 시비를 밝히고 사정(邪正)을 가려내야 한다네.”

이상이 묘법 노스님의 서유기에 대한 해석이다. 노스님은 또한 우리들에게 『능엄경』을 숙독할 것을 권하였는데, 능엄경을 보면 법안을 갖출 수 있으며 대덕 고승의 저작을 많이 보면 자기의 지혜를 계발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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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장소멸게(業障消滅偈)

선과 악은 때가 되면 과보가 있으며

삼세인과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네.

전생의 원수가 금생에 모이고

현세에 나타나는 고액(苦厄)은 전세에 지은 것이네.

원한을 서로 갚으면 어느 때 끝나며

한생각 깨달으면 업이 모두 소멸하네.

원수를 덕으로 갚는 것이 불교이며

극락에 왕생하면 도업(道業)을 마치리.


악연이 재생하고 정연(情緣)이 재생한 이야기는 우리들 주변에 많이 있다. 우리들 자신을 포함하여 처자, 부모형제들이 언제 은원(恩怨)이 서로 모이지 않은 것이 있었는가? 동료와 이웃도 은원이 서로 모인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생에는 8가지의 고통이 있다고 하였다. 생·노·병·사·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 원수와 서로 만나는 것, 오온(五蘊)이 치성하는 고(苦) 등이다.

사람마다 다 이런 여덟 가지 고통을 가지고 있으며,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막론하고 우리의 번뇌는 끝이 없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기를 “섭심(攝心)을 계(戒)로 삼고, 계로 인하여 정(定)이 생기며, 정으로 인하여 혜(慧)가 생긴다. 이것을 세 가지 무루학(無漏學)이라 한다.”고 하셨다.

단지 마음을 한곳에 모아 산란치 않게 하고, 계를 받아 지키는 섭심수계(攝心受戒)하는 것이야말로 번뇌를 제거하는 최상의 양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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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는 대자연의 법칙


기문동(紀文東)이라는 마흔 살 남짓 된 한 남자가 몸에 상복을 걸치고 눈에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방금 땅에 묻힌 이웃에 사는 장(張) 아주머니의 무덤 앞에 꿇어앉아 오랫동안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몸집이 우람하고 풍채가 당당한 이 대장부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만약 장씨 아주머니의 보살핌과 도움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일찍이 인간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친척도 아니면서 친척보다 나았던 장씨 아주머니 지금 그녀가 돌아가셨으니 그에게 남은 것은 회고하기 싫은 지난 일뿐이었다.

문동의 부모는 문동이 다섯 살 때 일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연달아 돌아가셨다. 문동의 아버지는 임종 전에 눈물을 머금고 자기가 신임하는 큰 형님, 큰 형수에게 문동의 뒷일을 부탁하면서 세 칸짜리 기와집과 한 마리 소 그리고 삼백 원의 저금과 문동 엄마의 예물 장식 등 모든 재산을 문동을 대신하여 관리하도록 건네주었다. 큰형님과 형수는 굳게 명세하며 하늘을 가리켜 서약하면서 “네 아이가 바로 우리 아이 아닌가. 네가 남긴 이렇게 많은 재산은 말할 필요도 없이 한 푼도 모자라지 않게 문동이 클 때까지 우리가 지켜줄게. 남도 돌봐야 할텐데 하물며 우리들은 본래 한 집안 한 형제가 아닌가!”라고 말하였다.

문동의 아버지는 이 말을 들은 후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편안하게 두 눈을 감았다. 당시 현장에 있던 마을의 간부와 이웃들도 모두 감동되어 울었다. 그러나 장례를 치른 후 며칠이 되지 않아 이웃의 장씨 아주머니는 문동이 매를 맞으며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며칠을 사이에 두고 문동의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애를 꾸짖으며 때리는 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는데, 마음씨 좋은 장 아주머니는 그들을 달래려고 여러 차례 건너갔으나 모든 게 변함이 없었다. 나중에 그녀는 아이가 놀러 나오는 게 매우 드물다는 것을 느꼈으며, 가끔 아이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지만 아이의 웃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장 아주머니가 물어도 아이는 놀라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아주머니는 또 아이가 무척 수척해졌을 뿐 아니라 몸과 얼굴에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런 것을 볼 때마다 선량한 장 아주머니는 눈물을 흘리곤 하였으며, 이런 사정을 마을 친척들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촌간부가 그들 부부에게 질문하였을 때에도 그들은 모르는 척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들은 말하기를, 아이 아버지의 부탁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아이를 가르칠 권리가 있으며, 또 그를 해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신들이 제 삼자의 입장에서 걱정한다고 애 교육이 되겠느냐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들이 아이를 학대한다는 물증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누구도 그들을 간섭할 권리가 없었다. 모두들 비록 수군거리며 그들을 욕하였지만 (문동을) 도와주려고 해도 힘이 미치지 못하였다.

해가 가면서 아이는 점점 장성하였다. 장 아주머니는 그들 부부가 없을 때를 이용하여 아이에게 자주 먹을 것을 갖다 주곤 하였다. 비록 한 개의 옥수수 찐빵과 반 토막 고구마지만 그녀는 아이가 큰 입으로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서 안도의 미소를 짓기도 하였다.

아이가 장성함에 따라 키가 컸는데도 몸에 걸친 것은 여전히 일, 이년 전 짧고 작은 다 떨어진 바지였다. 봄, 여름, 가을 세 계절은 그런 대로 지낼 만하나 겨울이 되면 얼마나 추울지 안쓰러워 장 아주머니는 낡고 헤진 옷을 입고 있는 문동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났다. 장 아주머니는 자기 집 아이가 입었던 무명옷과 면바지를 찾아 깨끗이 빨고 헤진 곳을 기워 밤을 새워 만든 후 억지로 웃으면서 문동의 큰아버지댁에 보내면서 이 면옷을 자기 집 아이는 보기 안 좋다고 싫어하니 당신네 문동에게 입히라고 말하면서 손수 문동에게 옷을 걸쳐 주었다.

아이가 장성하기 전 장 노인은 모두 세 벌의 면옷을 수선하여 주었으며, 때때로 먹을 것, 마실 것을 보냈으며, 어떤 때는 그에게 약간의 용돈을 호주머니에 넣어주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생활환경 속에서 문동은 마침내 장성하여 인재가 되었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트랙터를 끌면서 수리도 잘하였다. 그를 따르는 아가씨가 많았다. 혼담이 오고가면서 그는 마침내 아주머니에게 자기가 단독의 가정을 꾸릴 일을 이야기하였다. 비록 그의 큰아버지네는 원하지 않을지라도 동네 청년들과 친척들의 여론에 밀려 그의 큰아버지는 감히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집의 경제사정이 어려움을 핑계로 단지 세 칸의 부서지고 오래된 기와집을 문동에게 돌려주고 집안의 가재도구들은 이미 옮겨 놓은 빈집이었다. 그들 부부는 20여 년의 세월 속에서 6명의 아이를 낳아 두 명의 아들에게 새집을 장만하여 분가시켰다.

문동은 이에 대하여 한마디의 원망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마을사람들이 그를 대신하여 불평하면서 소송을 걸라고 말하자 그는 말하기를 “큰아버지가 저를 키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만약 그들이 나를 받아주지 않았더라면 어찌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물건과 돈은 제가 벌면 되는 것입니다. 좋은 남자는 논밭을 다투지 않고 좋은 여자는 시집갈 때 입는 옷을 다투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만약 기술을 배우지 않고 바른 생활(직업)에 힘쓰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재산도 보존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제가 반드시 기술을 잘 배워 우리 마을을 위해 일하면 우리 마을사람들의 면목을 서게 하는 것이며, 큰아버지, 큰어머니의 양육의 은혜를 갚는 일일 것입니다.”라고 하자, 마을 사람들은 문동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문동은 향진기업의 공장장이며, 그의 아들은 도시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으며 일가족 모두 행복이 충만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신의를 저버린 문동의 큰아버지집을 보자. 그는 모두 2남4녀를 낳았는데, 큰딸은 29세 때 신장결석을 앓아 죽었으며, 작은 딸은 29세 때 또 같은 병에 걸려 죽었다. 두 부부는 몹시 놀라고 얼이 빠져 이후 또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인가 주야로 노심초사하고 있다.

6명의 자녀 중 셋이 죽고 얼마 안 있어 작은 아들이 무리를 지어 싸움을 하고 강도 짓을 하여 10년 징역형을 살게 되었으며, 그는 이미 감옥소의 단골손님이 된 지 오래 되었다. 그가 법정에서 선고받는 당일 노모, 즉 문동의 큰어머니는 갑자기 뇌일혈이 발생하여 침상에 누워서 지내는 신세가 되었으며, 자기 아들로부터 백안시와 책망을 다 받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여 항상 옷이 오줌에 젖어 있어도 어떤 때는 하루 종일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러한 삶을 3년여 살다가 처량하게 생을 마쳤다. 큰어머니가 죽기 전에 큰아버지는 노인성 치매에 걸려 고생하게 되었다. 아내가 죽은 지 반년 후 큰아버지는 길을 걷다가 넘어져 머리를 다쳐 그 이후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다.

이웃 사람이 나에게 그녀들 고향의 두 가지 이야기를 한 후 이게 인과응보가 아닌지 물었다. 내 대답을 기다리기도 전에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 고향 사람들 모두 이것은 하늘이 그들에게 내리는 징벌이라고 말하더군요.”라고 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곡식을 심는 것과 같이 어떤 종자를 심으면 그 열매를 거두는 것이 대자연의 법칙입니다. 부처님께서 인간에게 법을 설하시기 전에 인과율(因果律)은 대자연에 적용되고 있었으며, 단지 우리들 범부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 고해(苦海)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제불보살이 자비로 다시 원력에 따라 인간 세상에 와서 우주의 섭리를 말씀하시고 아울러 우리들로 하여금 고통의 바다를 벗어나는 방법을 일러주셨으니, 우리들은 반드시 이번 인간의 몸을 얻었을 때 여법하게 수행하여 조속히 보리(菩提)를 증득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 가야 할 바른 길입니다.”라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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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齋)를 베풀어 염불하면 재난을 예방한다


부처님께서 『법화경』에서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산란심으로 탑묘에 들어가 나무불이라고 염하면 불도를 이룬다.”

3년 전 요표사(凹彪寺)에서 3년 만인재(萬人齋)를 설치하여 불법의 흥성과 세계평화, 수륙 무주고혼의 천도, 국민의 평안을 기원하였다. 그 때 재에 참가한 사람이 10만 명이 넘었으며, 불보살이 크게 방광하였다. 재에 참여한 선남선녀들이 모두 먹을 밥이 있어 불법을 듣게 되었으니 정말로 불가사의하였다.

한번의 재는 5일을 기한으로 매일 40분간 관세음보살을 염불하였으며, 법당 아래에서 일만여 명이 따라서 염불하였다. 왜 이번 사스(SARS)라는 전염병이 확산될 때 ‘삼단일주(三檀一呪)’의 힘이 이렇게 컸느냐? 이것은 바로 3년 전 우리들 많은 사람들의 무리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였기 때문에 중요한 시기에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십수만의 사람이 와서 염하니 관세음보살을 어찌 감동시키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제 3년째 해에 초로 만든 관음상이 크게 방광하였으니, 촬영이 조금 늦어 단지 남은 일부분만 사진으로 남게 되었다. 또한 매년 재를 설치할 때마다 한 분의 대보살이 와서 공양하였으나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중생이 박복한 탓이다!

모두들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목이 마를 때를 기다려 우물을 팔 수 없다는 것을. 지금 말하는 것은 일반적인 법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마하반야바라밀다’는 일체의 고를 없애며, 가정의 불안과 사람의 불순(不順)을 포함한 일체의 재난을 녹이며, 진실로 헛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모든 부처님의 심주(心呪)인 것이다.

전염병세가 약해져 가는 이때의 시간이 매우 중요하니 아픈 곳이 좋아졌다고 그 고통을 잊으면 안 된다. “삼단일주(三檀一呪)” 법 외에 만약 재를 설치하여 관세음보살을 염하고 재난이 소멸되기를 기도하는 것도 매우 좋다. 요즘 조금도 부주의할 수 없다. 시간을 들여 재난을 녹이는 방법을 널리 전하여 모두로 하여금 전염병이 어떻게 오는 지를 알게 하여 자신과 친지의 안전을 위하여 마땅히 모두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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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를 잘 다스려야 한다

사스(SARS)가 전염을 멈추었다. 이 전염병에 대하여 현대 과학계는 동물이 보균한 세균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였으며, 병균의 생성과 급속한 번식의 근원에 관하여는 정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였다.

우리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살생이 불러일으킨 것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최근 몇 년이래 사람들은 돈이 많아지고 생활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먹는 욕구가 다양해지고 높아지게 되어, 동물의 고기와 피를 먹으면 크게 보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살생도 백 배, 천 배 증가하게 되었다.

사스는 어떻게 온 것인가? 모두들 내 설명을 들어보기 바란다. 결코 미신이 아니다.

사람들 각자 모두 꿈을 꾼다. 따라서 사람마다 모두 신식(神識)을 가지고 있다. 모든 동물도 생각이 있으며 또한 신식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살해될 때 원한심을 가지게 되는 것과 같이 동물도 살해될 때 원한심을 가지게 된다. 단지 방법이 없을 뿐이다. 동물이 사람에 비하여 약하니 약육강식이라 대량으로 살해되는 것이다. 결과는 어떠한가?

비유를 들어보면 열 사람이 함께 있는데 만약 그 가운데 8, 9명이 즐겁지 않으면 전체 분위기가 자연히 가라앉아 긴장하게 된다. 이것은 바로 신식이 일으킨 작용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동물의 형상은 구별이 있으나 신식은 구별이 없다고 하셨다. 만약 대량의 동물이 강제로 살해되면 그 분노와 진한의 신식은 무량무변으로 허공에 가득 차게 된다. 이에 따라 우리 사람들의 신식은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만약 분노, 진한의 신식이 허공 중에 단지 증가하기만 하고 감소하지 않는다면 우리 인류의 공포와 두려움과 그로 말미암아 초래되는 질병, 전염병, 각종 사고와 전쟁 등도 그에 따라 격화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이미 현재 우리들 눈앞에 나타나고 있다.

영지(靈知)에 대하여 우리가 보지 못했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신식도 이와 같이 만약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을 죽이면 그 주변의 영지는 곧 공포와 두려움으로 변한다. 이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살해된 사람의 신식에서 오는 것으로 살해된 자가 공포와 두려움 가운데 목숨을 잃어 그 반작용으로 살해한 자도 공포와 두려움의 심정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적지 않은 사례를 들은 적이 있다.

도망 다니던 살인범은 잡힌 후 도리어 마음의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동물도 사람과 같은 것이다. 사람이 만약 살생하는 것이 많으면 공포, 두려움이 이 사람의 머리 위에 내려오게 된다. 이에 따라 운(運)이 안 좋게 되고, 성을 잘 내며, 병이 잘 나고, 악몽을 자주 꾸게 된다. 심하면 정신이상을 가져오기도 한다. 또한 세상 사람들은 인간만이 조상이 있고 동물들은 조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신이 동물의 후손을 다치게 하면 공업(共業)이 눈앞에 나타날 때, 그의 조상이 당신에게 빚을 독촉할 것이다.

지금 이 사회는 거의 매일 동물을 죽여 매일 고기를 먹으니 무수한 분노, 공포, 두려움의 신식이 허공에 충만하여 인류에게 공포, 두려움의 생존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만약 우리들이 다시 노력하여 현재의 생활환경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바로 재난에 직면하게 된다.

노자(老子)께서 말씀하였다. “사람이 착하면 하늘이 와서 보호하고, 사람이 악하면 하늘이 내려와 재앙을 준다.”

이 말 속에서 우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화(禍)와 복(福)은 모두 자기 자신이 조성하는 것이며, 천신(天神)은 단지 세상의 법관과 같다. 형벌을 판결하여 처분하는 것은 당신 자신이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류를 주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며 어떤 천신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모두들 만약 우리들의 집이 큰 수재에 잠긴다면, 염불이 물을 빠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큰 미신이다. 마땅히 물길을 만들어 물을 내보내면 집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이치로 무수한 공포, 두려움의 신식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을 때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은 그들을 해방시키고 그들을 감소시켜야 비로소 편안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번의 사스 병독이 전 인류를 위협하고 두려움에 떨게 하였으며, 감염자에게 고통을 받게 하였다. 병의 근원에 대하여 나는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에게서 “삼단일주법(三檀一呪法)”으로 이 온역이 사라지게 하였다. 하지만 모두들 영원히 평안하고 건강하기를 원한다면 마땅히 우리 모두 공동으로 살생을 금하고 방생하여 공포와 두려움의 신식이 우리 인간에 대한 위협을 감소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양심에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면 그들이 찾아와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살생하지 않으면 재난이 와도 두렵지 않다.

만약 살생과 악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 인류는 아마도 더욱 큰 재난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에게 권하노니, 살생을 하지 말고 선량하고 도덕이 있는 마음가짐으로 생활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사스가 조용해졌지만 빚을 다 돌려 갚지 못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들이 만약 자기와 남의 안전과 건강을 위하려면 자기 자신이 살생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다른 사람을 시켜서도 살생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살아있는 동물을 사서 요리한다고 끓는 물 속에, 불 속에 넣지 말 것이며, 칼산에 올려놓지 말아야 하며, 먹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 마음은 선량하고 자상함이 충만하게 될 것이며, 공포와 두려움의 환경은 자연히 녹아질 것이며 재난은 반드시 소멸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하기를 청한다. 삼단(三檀 : 단목, 녹단, 자단)을 황색 천에 ‘마하반야바라밀다’주를 써서 붉은 천 혹은 황색 천의 조그만 주머니에 넣어 몸에 지니며 매일 아침 일어나 ‘마하반야바라밀다’를 세 번 외운다. 이렇게 하면 당신은 모든 재난을 물리치며, 다시는 공포, 두려움이 없게 되며, 운이 안 좋다거나 질병, 집안 불안, 가족의 불화 등이 없어지며, 모든 것이 좋게 바뀌어질 것이다. 만약 모두가 이와 같이 하면 이 세상에 전쟁, 온역과 지진, 화재, 수재, 풍재 등의 재난이 없어져 전 인류가 평화로워질 것이다. 이것은 방법은 간단하나 위력은 매우 크다. 모두들 안심하시고 단지 실천하기만 하면 결코 그 해를 받지 않게 될 것이다. 모두들 마음을 모아 행하면 그 이점을 다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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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노스님과 인과 이야기를 마치며

 

이 작은 필사본의 유통에 대하여

묘림 스님은 원래 일생 동안 절하며 전 중국을 한 바퀴 돌면서 큰 필사본을 써서 후인들에게 물려주고 갈 계획을 하셨다. 하지만 지금 사정으로 인하여 이 작은 필사본을 앞당겨 유통하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은 중국 사대 불교성지 중의 하나인 오대산(五台山) 배향을 배경으로 하였으며, 세 가지 방면으로 이야기하였다.

첫째, 인류의 재난을 없애기 위하여 먼저 ‘호흡오음염불법’을공개한 것이다. 이 가운데는 법을 청한 과정과 수행의 방법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둘째, ‘삼단일주(三檀一呪)’ 소재법(小災法)을 전수하고자 한 것이다. 불교의 관점에서 모든 재난이 발생하는 원인과 근본적인 소멸의 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셋째, 스님이 불교를 배운 과정(경력)을 일부분 소개하면서 모두에게 참고가 되게 하였다.

우리들이 볼 때 스님이 삼보일배로 배향하며 참학하고 구사일생하면서 인간이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다 맛보았다는 것이다. 이렇게스님은 절절하게 진리를 시현하셨다. 불법을 배우고 닦아 증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온갖 고생을 겪어야 한다. 아무런 대가 없이 온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한다.

우리가 비록 스님과 같이 여러 해를 하루같이 배향하며 탁발하고 풍찬노숙은 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들은 매일 일천 배 혹은 이, 삼백 배 절하며, 염불 일만 성 혹은 몇 백 성은 할 수 있으며, 적게 먹고 적게 잠자는 것은 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들은 위법망구(爲法忘軀)하는 스님의 고충과 자비심을 볼 수 있다. 스님은 종남산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그것을 계기로 ‘호흡오음염불법’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고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자기와 자신의 수행법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세상에 공개하였다.

그리고 사스 병독이 인류에게 주는 재난을 녹이기 위하여 스님은 ‘삼단일주법(三檀一呪法)’을 전수하였으며, 또 한번 자기의 맨 처음 소망과 고행승의 큰 금기를 어겨가면서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아끼지 않았으니 스님은 재차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 때문에 스님은 매우 부자유스럽게 되었다. 스님은 거듭 말씀하시기를, 정말로 필사본 노트를 대중에게 바칠 생각이 없었으며, 이름을 낼 생각이 없었지만 방법이 없다고 하셨다. 지금 단지 모두가 그를 알아보지 않기를, 기억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며, 그로 하여금 배향을 완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스님은 당연히 “중생이 어려움에 처할 때 반드시 도와야 한다. 중생을 위하여 죽을 수 있어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살지 말아야 한다.”는 자기 은사스님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스님은 이와 같은 방편을 택한 데 대하여 조금도 후회가 없으시다.

스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이미 돌아가는 길을 잘 택하였으니, 모두들 나를 보려면 염불하라. 염불 일천만 성을 하면 정말로 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필사본 노트는 스님의 다년간에 걸친 고생과 실천, 과증(果證), 지혜를 함축하고 있다. 현재 스님은 이 모든 것을 중생에게 주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소중히 여기고 이해하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다. 스님은 노트를 우리들에게 맡기고는 곧 다시 배향의 길로 사라졌다.


2003년 음력 납월(臘月) 초파일

하북성(河北省) 석가장(石家庄) 호흡오음염불회 일동


회향(廻向)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 이상은 오대산 노스님과 인과 이야기  일부 글입니다

전문은 아래에 소개된 출판사에서 간행된 도서를 구입하여 보시기를 ~~

 

 
[오대산 노스님과 인과 이야기]에서
저자 과경.각산/ 번역 정원규 / 불광출판사 간행
구입처 불광출판사☎ (02-42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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