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 혈맥론血脈論
1. '마음 밖에 불성 없다心外無佛性.'
“삼계三界가 어지럽게 일어나지만 모두가 한마음一心으로 돌아간다.
앞 부처나 뒷 부처 모두 마음으로 마음을 전하는 것이지以心傳心 문자에 의지하지 않는다不立文字.
어떤 이가 묻기를, “만약 문자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마음을 표현합니까?” 하였다.
이렇게 대답했다. "그대가 나에게 묻는 그것이 그대의 마음이고,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는 이것이 바로 나의 마음이다."
"만약 내게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그대에게 대답할 수 있으며, 그대가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내게 물을 수 있겠느냐? 내게 묻는 그 자체가 바로 너의 마음이다.
끝없는 옛날부터 활동하고 살아온 모든 시간과 장소들이 모두 그대의 본래 마음本心이며, 그대의 본래 부처本佛이다. 마음이 곧 부처卽心是佛라 함도 역시 이와 같아서이다."
"이 마음을 떠나서는 달리 부처를 찾을 수 없으니, 마음을 떠나 보리와 열반을 구한다면 옳지 못하다. 자성自性은 진실하므로 인과因果에도 구애받지 않으며, 법法 자체가 마음이다. 자기 마음이 바로 깨달음菩提이요, 자기 마음이 바로 열반涅槃인 것이다.
만약 마음 밖에 부처가 있고 깨달음을 얻는다 한다면 옳지 않다. 도대체 부처와 깨달음이 모두 어디에 있는가?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손으로 허공을 잡을 수 있겠는가? 허공은 다만 이름이 있을뿐 모양이나 형상이 없으니 잡을 수가 없다. 이렇게 허공을 잡을 수 없듯이 이 마음을 떠나서 부처를 찾는 것도 모두 헛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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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론血脈論은 선종 불교의 법맥法脈이 스승과 제자 간에 서로 계승된 논서라는 뜻이라 할 수 있다. 곧 달마조사가 중국 선종 제2조인 혜가조사에게 법을 전한 핵심사상을 담은 경론이다. 5세기 경에 등장한 달마는 전설적인 인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학계에서 그의 유일한 저작으로 보는 혈맥론을 근거로 하면 깨달음의 진수를 중국에 직접 전한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법화경에서 모든 불보살은 일대사인연을 위해 세상에 나온다고 하는데, 바로 모든 중생에게 부처의 지견을 열어 보이고, 이를 깨달아 불도에 들어가도록開示悟入 인연으로 탄생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본래 모든 인간이 불보살인 점을 모르고 특별한 사람만이 불보살이 될 수 있다는, 그릇된 차별관을 낳게 한다. 달마 자신도 모든 중생이 본래 부처임을 알리기 위해 동쪽으로 왔으니, 자신의 마음, 자신의 부처만 알면 될뿐, 여타 불보살을 우러러 보는 등 어리석은 견해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달마가 혈맥론에서 설했다고 하는 첫 마디, 바로 '마음 밖에 불성은 없다心外無佛性.'는 이 한 마디로 깨달음에 대해 모두 말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중생이 전부 하나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생각하고 감정을 드러낼 줄 아는 인간외에도 축생, 아수라 등의 중생들도 모두 천성적으로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이 깨달음의 성품佛性 그 자체이다.
마음은 본래 허공과 같이 아무 모습이 없기 때문에 보려 해도 볼 수 없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 마음은 보이지도, 찾을 수도 없지만 마음이 없으면 중생의 오장육부, 팔, 다리를 움직이지 못한다. 중생의 모든 활동을 관장하는 것이 바로 마음이다. 그것이 외부로 드러나 보이는 것을 성품이라고 말하니, 바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등의 성품이 곧 불성이다.
삼계三界는 욕계, 색계, 무색계를 말하는데, 마음 측면에서 보면 탐욕스런 마음이 일어나면 욕계에 있고, 화나는 마음이 일어나면 색계에 있으며, 어리석은 마음이 일어나면 무색계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탐욕을 떠나고, 성냄이 없어지며, 어리석은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바로 불보살의 한마음一心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불보살은 탐욕을 탐욕으로 보지 않고, 성냄을 성냄으로 보지 않고, 어리석음도 어리석음으로 보지 않고 모두 불성으로 본다. 탐욕과 탐욕 없음, 성냄과 성냄 없음, 어리석음과 어리석음 없음의 상대법은 바로 절대 자리인 한마음이 마음대로 부리는 노릇이다.
이것은 절대 자리인 불성에는 본래 이러한 상대적인 것이 없지만 인연 따라 자유자재로 이분법적 상대성을 굴린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불보살은 탐욕이 탐욕이 아님을 알고, 성냄과 어리석음도 성냄과 어리석음이 아님을 안다. 세상의 모든 이름자와 모습에 속아서 끌려다니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앞 부처나 뒷 부처 모두 마음으로 마음을 전하는 것이지以心傳心 문자에 의지하지 않는다不立文字.'
'이심전심 불립문자以心傳心 不立文字', 선禪의 모토라고 할 수 있는 한 구절이다.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고, 문자, 글자를 세우지 않는다는 말의 참뜻만 알아도 이미 깨달은 사람이다. 그런데 마음은 아무 모습도, 소리도, 냄새도, 맛도 없는데, 어떻게 마음을 전한다는 말을 하는가? 이것은 전하려고 해도 전할 수 없는 것을 전한다는 뜻이니 침묵으로 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눈만 끔벅해도 알아채야 하고, 혜가처럼 삼배를 올리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모습만 보고도 그 전함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니 여기에 말이나 글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전혀 문자나 글은 본래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뜻이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침묵만으로는 이치를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에 이 혈맥론이라는 것도 있고, 팔만대장경 보다 많은 조사, 선사들의 말들이 있다. 이것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달마에게 묻기를, “만약 문자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마음을 표현합니까?” 하였다. 달마는 대답한다.
"그대가 나에게 묻는 그것이 그대의 마음이고,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는 이것이 바로 나의 마음이다. 만약 내게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그대에게 대답할 수 있으며, 그대가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내게 물을 수 있겠느냐? 내게 묻는 그 자체가 바로 너의 마음이다. 끝없는 옛날부터 활동하고 살아온 모든 시간과 장소들이 모두 그대의 본래 마음本心이며, 그대의 본래 부처本佛이다. 마음이 곧 부처卽心是佛라 함도 역시 이와 같아서이다."
달마도 쓸데없는 말을 많이 붙인다. 줄이면 단 한 마디면 족하다. "나에게 묻는 그것이 그대의 부처이다." 이것만 알아채면 된다. 지금 나에게 묻는, 곧 말하는 그것이 부처인데, 그 부처를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 이것만이 문제이다. 사느냐, 죽느냐는 것도 여기에 달려 있다. 생사가 이 가까운 곳에 달려 있는데, 날마다 말을 쓰면서 이것을 무시하고 그냥 모르는 대로 흘려 버릴 것인가?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나머지 모든 법문이나 해설, 강연 등등은 이것에 다가가게 하기 위한 온갖 수단일뿐이다. 말하는 그 자리를 찾는 것일 뿐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미 깨달음은 발견되었다. '말하는 그 자리'가 깨달음의 자리라는 것이다. 이것을 여래의 땅如來地이라고도 하고, 깨달음의 성품佛性이라고도 부르고, 진리로서 한결같은 것眞如이라고도 말한다.
이것이 진리이니, 진리는 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변함 없이 한결같은 자리에서, 곧 진리가 말을 하니 이것보다 큰 신통은 세상에 없다. 진리는 바로 말씀이다. 말을 하면 할수록 더욱 더 미묘한 뜻으로 변해 가나 이 자리는 본래 절대라서 변함이 없다. 그렇게 변함이 없는 것이 변하는 차별상을 마음대로 부리고 있다.
이 마음은 누구 말대로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자리라서 육신 안팎으로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는 없다. 그래서 없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없다고 하자니, 이렇게 보고 듣고 말하는 놈이 있음은 도대체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니 또한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있다고도 하지 못하고, 없다고도 하지 못하니 이대로 있고 없음을 초월한 자리이다.
그래서 선지식들은 모두 이것을 허공에 비유한다. 허공은 눈앞에 있는듯 하나 만져 보거나 찾으려 하면 그 어디에도 없다. 그렇지만 지구나 태양, 별들이 허공에 떠 있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마음과 똑같이 허공은 유무를 벗어나 있다. 그래서 백봉거사는 '허공으로서의 나'를 항상 명상하라고 했다.
마음이 부처이니, 부처가 깨달음이고, 진리이고, 깨달음이 열반이다. 그러므로 마음=부처=보리=진리=열반은 모두 동의어이다. 그러나 마음은 허공처럼 찾으려 하면 없으므로, 부처, 깨달음, 진리, 열반도 얻을 수 없다는 뜻을 잘 간파해야 한다.
달마도 오직 이것만을 본래 부처인 중생의 마음에 심어 주기 위해 열심히 입을 연다. 곧 진리, 법法 자체가 마음이요, 자기 마음이 깨달음菩提요, 열반涅槃이라는 것이다. 마음을 떠나서 부처를 찾는 것은 모두 헛일이니, 말하는 이것을 갖추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으므로 모두 이대로 부처임을 믿어 알고 부처의 행위만 하면 된다. 마음만 고요히 하고 가라앉힐 줄만 알면 저절로 불도에 나아갈 것이다.
'마음 밖에 달리 불성 없으니
내게 물어오는 그것이 아미타 여래 아니겠나.
자기 부처로 대답하고선, 어리둥절,
어디서 자신을 찾는 여정을 끝맺을꼬.'
[출처] '달마 혈맥론血脈論 1'|작성자 Su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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