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록(達磨錄)

'달마 혈맥론血脈論 3'

수선님 2022. 5. 22. 12:37

달마 혈맥론血脈論 3

3. "옛날에 선성善星이란 사람은 12부경을 다 외웠으나 여전히 윤회를 면치 못했으니, 이는 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선성도 그러하거늘 요즘 사람들은 겨우 서너 권의 경전을 읽고 불법을 알았다고 하니 참으로 어리석다. 만약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하고 부질없이 문구나 외운다면 이는 아무 소용이 없다.

만일 부처를 찾으려 한다면 모름지기 견성見性해야 한다. 성품이 곧 부처이다性卽是佛. 부처는 곧 자유인이며, 일이 없고, 짓는 게 없는無事無作 사람이다. 만약 견성하지 못하면 종일토록 분주히 밖을 향해 구하면서 부처를 찾아도 얻지 못한다.

비록 한 물건도 얻을 것이 없다고는 하나 만약 깨닫지 못했다면 선지식을 찾아가 간절히 물어서 마음이 열리게 해야 한다. 생사 문제는 큰 것이니 헛되이 보내지 말라. 스스로 속이는 것은 아무 이익이 없다. 진기한 보물이 산 같이 쌓이고 권속이 항하의 모래처럼 많다 해도, 눈을 떠야 보이지 눈을 감으면 보이던가? 그러므로 유위법有爲法은 꿈이나 허깨비 같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서둘러 스승을 찾지 않으면 헛되이 일생을 보내리라. 그러므로 불성을 스스로 지니고 있으나 스승에게서 배우지 않으면 끝내 밝게 깨달을 수 없다. 스승 없이 깨닫는 사람은 만에 하나도 드물다. 만약 스스로 인연따라 깨달아서 성인의 뜻을 얻은 사람은 선지식을 찾을 필요가 없으니,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알아서 뛰어난 학문을 갖춘 것이고, 만약 깨닫지 못했다면 선지식에게 배워야 한다. 가르침을 받아야 깨닫는다.

만약 스스로가 분명히 깨달았다면 배우지 않아도 되며, 미혹된 사람과는 같지 않다. 그리고 검고 흰 것을 분간치 못하면서 불법을 편다고 헛된 말을 한다면 부처님을 비방하고 법을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런 부류는 빗줄기같이 설법을 하더라도 모두 악마의 소리요, 부처님의 말씀은 아니다.

이런 스승은 마왕이요, 제자는 악마의 백성이 되며, 미혹된 사람은 그의 지휘에 따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생사의 바다에 헤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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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성善星은 석가의 제자로 출가하여 삼장 12부경을 다 외울 정도로 열심히 수행했으나 나중에 외도의 길에 빠져 삿된 견해를 일으켜 부처를 비방했기 때문에 산 몸으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하는데, 달마대사는 그가 성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윤회를 면치 못했다고 말한다.

성품을 알아채어見性 확실하게 깨닫기 전에는 대부분의 수행자가 길을 오락가락 하기 마련이다. 말도, 생각도 끊어진 경지에서 참 성품을 보아야 모든 의심이 사라지고 본래 부처임을 깨닫는데, 꿈에도 본 적이 없고 상상도 해볼 길 없는 이 일을 문자를 보고 입맛대로 그림을 그려서는 잘못된 길로 빠지기 십상이다.

경전은 말로써 가리킬 수 없는 마음, 성품을 말로써 가장 가깝고 비슷하게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설명, 곧 방편方便은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절대로 성품 그 자체일 수는 없다. 자기 마음, 성품을 알지 못하면 생사를 벗어날 수가 없으므로 달마는 12부경을 달달 외운 선성을 한 예로서 들었던 것이다.

달마는 겨우 서너 권의 경전을 읽고, 세존의 말씀을 몇 가지 외워서는 불법을 알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참으로 어리석고 가련하게 바라본다. 그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고, 말씀 그 자체가 되어 실천을 해야 깨달을 분수라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부처가 되려면 모름지기 견성見性해야 한다'고 대못을 박는다. 성품이 곧 부처이고, 부처는 곧 확 트인 성품이니, 이것을 눈앞에 스스로 체감해보지 않고서는 아무리 박학다식하다 하더라도 결코 부처를 찾지 못한다. "부처가 눈앞에 휘영청 밝구나!"

'만약 깨닫지 못했다면 선지식을 찾아가 간절히 물어서 마음이 열리게 해야 한다.'

달마가 처음 중국에 건너왔을 때에는 참된 선지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만약 석가가 처음 깨닫고 난 뒤에 대대로 전승되지 않았다면 선禪이 세상에 남아 있을지도 의문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지금 세계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는 것처럼 무엇보다도 첫 발견이 아주 중요하다. 뒷사람은 앞사람이 걸은 길을 따라가면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므로, 앞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말로는 다할 수 없다.

지난 수천년 동안 달마와 같은 세존의 후손이라고 할 선지식들이 세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지금도 그 과정은 계속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진리를 모르긴 해도 진리란 없어질 수가 없다. 이처럼 불법도 항상 드러나 있기 때문에 사실 선지식들도 끊어질 염려는 없다. 그러나 세상에 몇몇 선지식들이 명맥만 이어가는 현실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 사람의 근기에 따라 빠르고 느림이 있겠지만 문명의 힘으로 머리가 깬 현대인들을 깨우치기 위한 보다 혁신적인 방편이 필요하다.

달마가 '진기한 보물이 산 같이 쌓이고 권속이 항하의 모래처럼 많다 해도, 눈을 떠야 보이지 눈을 감으면 보이던가?' 했는데, 중생은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눈을 감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한 생각만 바꿔버리면 마음의 눈을 뜨는데, 이것이 그렇게 어렵고 멀고 먼지 모르겠다. 이렇게 글을 보고 읽는 놈이 바로 자기 부처인데, 이것을 달리 가리킬 필요는 있는가? 눈은 그냥 부처가 사용하는 도구이고,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부처는 아무 지각이 없는 눈을 통해서 이 글을 보고 읽고 있는 그것임을 알아채기만 하면 바로 깨달음이다. 이보다 더 간단하고 빠른 지름길은 없다.

'스승 없이 깨닫는 사람은 만에 하나도 드물다'지만 지금 시대는 한 순간에 세상 전체 일을 알고 볼 수 시절이라 그 옛날과는 다르다. 고도로 발달한 인간의 지력智力이 깨달음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만 한 생각만 고쳐 먹으면 그만큼 더 빨리 깨치는 근기로 변한다.

우선 사람 몸이나 산하대지, 곧 모습이 있는 모든 것은 유위법有爲法으로서 일시적으로 나서 없어지는 것이므로, 꿈, 환상 같이 헛것임을 항상 스스로 각인시켜야 한다. 우리 몸뚱이의 세포는 과학, 의학적으로 한 순간에도 수백, 수천 개씩 죽었다가 다시 생겨나고 있으니, 이렇게 죽고 사는 세포들의 뭉치를 나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하루에도 수천, 수만번씩 죽는 놈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은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양자과학적으로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의 입자는 쿼크quark 라는 극초미립자極超微粒子로서, 몸의 세포는 쿼크가 쌓이고 쌓여서 모인 것인데, 그렇다면 쿼크가 거의 무한대로 모인 뭉텅이가 바로 나인가? 이또한 그럴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세포, 나아가서 쿼크로 구성된 몽뚱이는 전혀 나일 수가 없고, 참된 나라고 한다면 모습은 없지만 이렇게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이것임을 바로볼 줄 알아야 한다. 자기 부처는 무형무색무취無形無色無臭의 허공과 같다. 허공과 똑같은데 다만 이렇게 아는 지혜를 갖고 있다.

이것만 진실로 알아챈다면 그만이라서, 좋은 선지식을 찾을 필요도 없고, 스스로 좋은 선지식이 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이렇게 간편하게 자기 부처를 발견한 뒤에 수많은 세월 동안 쌓인 습관만 차츰 똑바로 돌리면 지레 겁을 먹고서 보통 사람은 깨달을 수 없다고 뒷걸음치는 바보 노릇을 그만둘 것이다.

'깨달음이 어렵다고 겁먹고 뒷걸음치나

겁먹는 그놈이 자기 부처임을 알라.

글을 보고 읽고 아는 것도 그놈이니

그놈을 알아채면 스스로 절을 올리리.

자기 말이 바로 부처의 음성인데

성품 보기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손가락 까딱, 발가락 까딱

짖궂은 성품의 장난질 아니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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