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바라밀다의 실천
“무엇이 반야바라밀다의 모습입니까?”
“허공과 같은 모습이 반야바라밀다의 모습이다. 수보리야, 반야바라밀다는 모습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마하반야바라밀경》 제18권 한글장203책 492쪽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향하여 갈 때에 색이라는 의미는 끝내 얻을 수 없는 것이고, 수, 상, 행, 식이라는 의미도 끝내 얻을 수 없는 것이며, 나아가 지을 것이 없다는 의미도 끝내 얻을 수 없다고 하면 이것을 반야바라밀다를 배운다고 한다.(중략)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향하여 갈 때 모든 법에 있어서 보는 바가 없다. 또한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고 마음이 침몰하지도 않고 후회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색, 수, 상, 행, 식을 보지 않기 때문이고 내기 무명과 늙고 죽음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마하반야바라밀경》 제2권 한글장203책 55쪽
반야바라밀다의 자성은 얻을 수 없는 까닭에 행함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품으로서 있는 바가 없는 것이 반야바라밀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향하여 가는 데에 행함 또한 받아들이지 않고 행하지 않음도 받아들이지 않으며(중략)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모든 법에 대해 받아들일 바가 없는 삼매라고 하니, 넓고 큰 작용은 성문이나 벽지불이 함께 하지 못합니다. 이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를 행하여 떠나지 않으면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경》 제3권 한글장203책 74쪽
보살이 보시 바라밀을 허공처럼 수행함에는 네 가지 법을 성취해야 하니, 첫째 나 자신이 청정함으로 중생이 청정하고, 둘째 중생이 청정함으로서 보시가 청정하고, 세째 보시가 청정함으로서 회향이 청정하고, 네째 회향이 청정함으로서 보리가 청정하게 되는 것이다.(중략)
보살이 그 계율 바라밀을 허공처럼 수행함에 있어서도 네 가지 법을 성취해야 하니, 몸뚱이를 그림자처럼 아는 것이 첫째이고, 음성을 산골의 메아리처럼 아는 것이 둘째이고, 마음을 눈홀림처럼 아는 것이 세째이고, 지혜를 허공처럼 아는 것이 넷째이다. (중략)
보살이 인욕 바라밀을 수행함에 있어서 그 누군가 나를 헐뜯고 모욕할 때에 보살이 참고서 받아들이되 만약 ‘이것이 나의 인욕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인욕 바라밀이 아니며, 또 모욕하는 자와 그 모욕하는 방법이 어떻든 간에 보살이 다 참고서 받아들이되 ‘이것이 나의 인욕이다’라고 생각한다면,(중략) 그 생각하는 자체가 곧 인욕 바라밀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선남자야, 도무지 그 수행한다는 것을 보지 않아야 하나니, 마치 어떤 사람이 날카로운 도끼를 갖고 저 사라수(娑羅樹) 숲속에 들어가서 그 나무의 가지와 잎을 베더라도 저 나무 자체는 ‘누가 나무를 벤다’라거나 또는 ‘자르기 때문에 밉고 자르지 않기 때문에 좋다’라는 생각을 끝내 조금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살 마하살이 인욕바라밀을 수행함에 있어서도 그와 같이 미워하거나 사랑함이 없을뿐더러 무엇을 분별하거나 분별되어지는 것이 없어야만 그 보살이 수행하는 인욕 바라밀을 허공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보살이 그 정진 바라밀을 허공처럼 수행함에 있더라도 네 가지 법을 성취해야 하리니, 첫째 자신의 선근(善根)을 부지런히 닦음은 일체 법을 아직 성취하지 못했음을 알기 때문이고, 둘째 모든 부처님께 큰 공양을 올림은 여래 몸의 그 평등함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고, 세째 항상 중생을 성취시키기를 좋아함은 그 중생들의 아무런 얻을 바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고, 네째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바른 법을 받아 간직함은 그 법을 싫어하거나 여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보살이 그 선정 바라밀을 허공처럼 수행함에 있어서도 네 가지 법을 성취해야 하리니, 마음을 안으로부터 안정시켜 그 안 마음으로 하여금 아무런 소견을 일으키지 않게 하는 것이 첫째이고, 마음을 바깥으로부터 억제시켜 그 바깥 마음으로 하여금 아무런 소득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둘째이고, 자신의 마음이 평등함으로 말미암아 일체 중생의 마음도 본래 평등할 것임을 아는 것이 세째이고, 자타의 마음이 다 평등함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의 자체가 눈흘림 같음을 증득하는 것이 넷째이다. …(중략)
보살이 그 지혜 바라밀을 허공처럼 수행함에 있어서도 네 가지 법을 성취해야 하리니, 허공의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일체 중생의 청정함에 들어가는 것이 첫째이고, 지혜의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일체 알음알이의 청정함에 들어가는 것이 둘째이고, 법계에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아(我), 사람, 중생, 수명의 청정함에 들어가는 것이 세째이고, 이치의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일체 문자의 청정함에 들어가는 것이 네째이다.
《대집대허공장보살소문경》 제1권과 제2권 한글장54책. 축약.
비유하면 넓은 바다에서 배가 난파당했을 때 배 안에 있던 사람이 만약 나무토막이나 기물을 잡지도 않고 또는 부낭(浮囊)을 잡지 않고 심지어는 시체라도 잡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피안에 도달하지 못하고 바다 속에 빠져 죽을 것이다. 또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제대로 구워지지 않은 병을 가지고 물을 퍼올리면 그 병은 오래지 않아 흩어지고 무너져 버린다. 왜냐하면 이 병은 아직 덜 구워졌기 때문이니 흙으로 돌아가 버린다. 또 나이 120세 된 노인이 감각기관은 노쇠해졌고 온갖 병이 있으면 이 사람은 부축을 받지 못하면 일어서지 못한다. 이와 같이 수보리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는 마음이 있고 신앙이 있고(내지) 정진이 있다고 해도 반야바라밀다라는 방편의 힘에 수호되지 못하고 다섯 바라밀에 수호되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중도에서 지쳐서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떨어져 버린다.
《마하반야바라밀경》 제15권 한글장203책 405-407쪽. 축약.
비유하면 남편이 없는 부인은 다른 사람이 침입하여 범하기가 쉬운 것처럼 다섯 가지 바라밀다도 그와 같아서 반야바라밀다를 멀리 떠나지 않으면 악마나 또는 천마가 이것을 무너뜨릴 수가 없는 것이다.
《마하반야바라밀경》 제21권 한글장204책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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