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

의상조사법성게 - 청화 스님

수선님 2022. 5. 22. 13:20

의상조사법성게

義湘祖師法性偈

법성원융무이상

法性圓融無二相

법성(진리)은 원만히 융통하여 오직 한 모습

제법부동본래적

諸法不動本來寂

모든 것은 변함 없는 본래 그자리

무명무상절일체

無名無相絶一切

이름도 모양도 모두 여의어

증지소지비여경

證智所知非餘境

깨달은 지혜와 분별지(知)가 다르지 않고

진성심심극미묘

眞性甚深極微妙

참다운 성품은 깊고 미묘하여

불수자성수연성

不守自性隨緣成

제자리에 있지않고 인연따라 나투네.

일중일체다중일

一中一切多中一

하나에 모두 있고 많은 데도 하나 있어

일즉일체다즉일

一卽一切多卽一

하나가 바로 모두요 많은 것 또한 하나이니

일미진중함시방

一微塵中含十方

한티끌 작은 속에 세계를 머금었고

일체진중역여시

一切塵中亦如是

모든 티끌마다 우주가 가득하네.

무량원겁즉일념

無量遠劫卽一念

한량없는 긴세월이 바로 한생각

일념즉시무량겁

一念卽是無量劫

한생각이 또한 바로 한없는 세월

구세십세호상즉

九世十世互相卽

九세와 十세가 서로 한줄기

잉불잡란격별성

仍不雜亂隔別成

그러나 섞지 않고 따로 나투네.

초발심시변정각

初發心時便正覺

첫발심 했을 때가 바른 깨달음

생사열반상공화

生死涅槃常共和

생사와 열반이 서로 어울려

이사명연무분별

理事冥然無分別

본체와 현상이 구별이 없는

십불보현대인경

十佛普賢大人境

불보살이 나투는 부사의 경계로다.

능인해인삼매중

能仁海印三昧中

부처님이 드시는 해인삼매 가운데

번출여의부사의

繁出如意不思議

부사의한 여의공덕 한량이 없고

우보익생만허공

雨寶益生滿虛空

중생 위한 보배가 허공에 가득하니

중생수기득이익

衆生隨器得利益

중생들 근기따라 이익을 얻네.

시고행자환본제

是故行者還本際

그러므로 수행자가 본고향에 돌아가면

파식망상필부득

叵息妄想必不得

쉴새없는 망상인들 얻을 길 없고

무연선교착여의

無緣善巧捉如意

걸림없는 방편으로 여의보배 찾았으니

귀가수분득자량

歸家隨分得資糧

본집에서 자재롭게 공덕을 얻네.

이다라니무진보

以陀羅尼無盡寶

한량없는 지혜공덕 무진보배로

장엄법계실보전

莊嚴法界實寶殿

온누리에 보배궁전 한껏 꾸미고

궁좌실제중도상

窮坐實際中道床

중도의 실상자리 사무쳐 앉았으니

구래부동명위불

舊來不動名爲佛

본래로 변함없는 부처님일세.

 

 

[출처] 법수선원 - http://www.bssw.or.kr/gboard4/bbs/board.php?bo_table=board1&wr_id=4143


 

청화스님(1923-2003).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유학(메이지대학)하고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24세에 백양사 운문암을 찾아 송만암 스님의 상좌인 금타스님을 은사로 출가. 하루 한 끼의 공양과 40여년간의 장좌불와 그리고 청빈과 원통불교사상을 평생의 신조로 삼아 수행했다. “스스로의 마음을 부려 부처로 살 것”을 가르치다 2003년 11월 12일 곡성 성륜사에서 세수 80세, 법랍 56세로 입적하였다. <정통선의 향훈> <원통불법의 요체> 등의 법문집과 <육조단경> 주해서 등 30여 종의 문집을 남겼다. 사진=성륜사 제공

평생 대중 목욕탕 싸우나 한번 안 가신 분이 있다.

청화스님께서 대흥사 진불암에서 정진할때이다.

수좌스님이 말했다.

"시내가서 목욕좀 하고 오겠습니다."

"청정한 법신을 더러운 목간통물에 담글라 하십니까?절에서 그냥 깨끗한. 물로 닦으시지요."

나는 태안사 선원에서 큰스님을 2년간 모시고 지냈다.

미국 캘리포니아 카멜에 금강선원 개원할때도 한철을 모실수 있었다.

김포에서 LA까지 가는길에 송석구총장댁에서 차한잔과 다과를 대접받았다.

LA도착하니 오랜 비행시간으로 모두 지쳐있었다.큰스님만 정정했다.‥

"스님 시차없으신가요?"

"장좌하는 사람은 시차도 못 느낍니다."

건강에 좋다고 신도들이 가져오는 보약을 일체 입에 대지 않으셨다.

차도 들지 않으셨다. 손님이 와도 차대접보다 원비하고 과일정도로 대접하였다.

차도 안드시냐 물었다.

"차는 선비들이나 마시는 거지요.수행자들은 오직 공부뿐입니다."

스님의 짧은 답변이었다.

스님께서는 24살때 출가한 이후로 하루 한때만 드시고 밤에도 눕지않고 정진하는 장좌불와의 수행을 이룬분이다.누가 찾아와도 그냥 절을 받지 않고 맞절을 하시고 당신은 무릎을 꿇고 않으셨다.

사람들 얘기가 나오면 한사람도 나쁘게 얘기하는 법이 없었다.

청화스님께서는 대중 목욕탕가지 않고 어떻게 목욕 하셨을까? 태안사 시절 스님의 토굴방에는 그 흔한 샤워실도 없었다.

대야에 물을 떠와서 수건으로 문지른 것이 스님의 간소한 목욕법이었다.

육신을 위해서 최소한의 소비생활을 하면서 가장 높은 정신을 성취했던 것이다.

성륜사 조선당에 계실때이다.대원사에서 티벳스님 두분을 모시고 큰스님께 인사드렸다.

큰스님께서 티벳스님께 말씀하셨다.

"이곳에서 함께 정진합시다."

"우리는 함께 지낼수 없습니다. 스님 눈을 보니 참선 너무 마니해서 함께 지내기 힘듭니다."

티벳스님의 답변이었다.

조선의 밀라레빠로 추앙받는 큰스님이었지만 조계종단에서는 화두선 안하고 염불선한다고 푸대접하였다.

"출가한 스님들은 50까지는 어떻게든 수행에 힘써야 하지만 50이 지나면 자기의 모든 것을 이웃들을 위해 내어 놔야 합니다."

내게 해주신 말씀이다.

출처 : 대한불교조계종 대원사 현장스님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hyunjang0

 

 


 

유철주 지음, 상상출판 펴냄. 304쪽, 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