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관련

'진제와 속제(이제설) - 김성철

수선님 2022. 7. 3. 15:03

모든 상념을 타파하고 이분법을 타파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제(眞諦)', 또는 '승의제', 또는 '제일의제'라고 부릅니다.

최고의 진리, 참된 진리란 의미입니다.

그러나 모든 분별을 타파하는 '진제, 최상승법, 반야바라밀' 등은 부처님 가르침의 반쪽에 불과할 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에는 엄연히 '속제'가 있습니다.

길장 스님은 "진제를 모르면 영원히 해탈하지 못하고, 속제를 모르면 사견(邪見)에 빠진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불교신행자의 삶은 진제와 속제가 균등하게 조화를 이루는 삶이어야 합니다.

진속이 균등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육바라밀의 삶입니다.

예를 들어 단순한 보시는 세속적 행위일 뿐이지만 보시바라밀이 되면 무주상보시가 되어 진제와 속제가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여기서

'보시'는 남에게 무엇을 베푸는 속제의 행위이고, 바라밀이라는 말에는 "보시라는 법이 공하다"는 진제적 조망이 들어있습니다.

진제적 조망과 속제의 행위가 함께 하는 것이 육바라밀의 보살행입니다.


용수보살의 <중론>에는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습니다.

24-8) 諸佛衣二諦 爲衆生說法 一以世俗諦 二第一義諦

24-9) 若人不能知 分別於二諦 則於深佛法 不知眞實義
24-10) 若不依俗諦 不得第一義 不得第一義 則不得涅槃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二諦에 의거하여 중생을 위해 설법하신다.

첫째는 世俗諦로써, 둘째는 第一義諦로써. 만일 사람이 二諦를 분별함을 알 수 없다면 심오한 佛法에서 진실한 뜻을 알지 못한다.

만일 俗諦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第一義諦를 얻을 수 없다. 第一義諦를 얻지 못하면 열반을 얻을 수 없다.

 


공 사상에 대한 오해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실재론적 관점에서 공 사상을 비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 사상을 수용하는 대승불교도이지만 진제인 공 사상에만 빠져서 속제를 무시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용수보살은 후자와 같은 사람들을 '대승불교 내의 사견인(邪見人)'이라고 부르면서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13-9) 大聖說空法 爲離諸見故 若復見有空 諸佛所不化
부처님께서는 갖가지 세계관[견해]에서 벗어나게 하시려고 공의 진리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만일 공을 다시 자신의 세계관으로 삼는 자가 있다면 어떤 부처님도 그런 자를 구제하지 못하신다.

또 다음과 같이 경고하기도 합니다.

24-11) 不能正觀空 鈍根則自害 如不善呪術 不善捉毒蛇.
둔근기는 공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해서 자기 스스로를 해친다.
주문을 잘못 외거나 독사를 잘못 잡는 것처럼 ….

말법시대에 사는 우리 모두는 둔근기(하근기)이기에 불교의 공사상, 반야바라밀을 추구하다가 자기 자신을 해치기 쉽습니다.


 

우리 불교계, 또는 동아시아 불교계의 문제점은

속제를 무시하고 진제만을 추구하는 분들이 가끔 있었다는 점입니다.

속제를 무시하는 분들의 증상은 ‘막행막식’입니다.

"아무 행동이나 막 하고, 아무 것이나 막 먹고 마신다"는 의미입니다.

계율을 지키지 않는 삶입니다.

그 이유는 공만 추구하다가 세속적 가치판단이 상실되었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 불교계에서는 이렇게 막행막식하는 분을 ‘깨달은 도인’으로 착각하는 풍조 역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은 공병(空病)에 걸린 분들일 뿐입니다.

사견(邪見), 공병을 유식(唯識)불교에서는 악취공(惡取空)이라고 합니다.

티베트의 불교계에도 그런 분들이 가끔 출현했는데,

그런 분을 '광(狂)라마(Lama)', 즉 '미친 스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분들은 계율을 어겨도 전혀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선과 악의 분별을 내지 않는다.”고 자기 합리화 합니다.

그러나 ‘선과 악의 분별을 내지 않는 분’은 ‘비윤리적인 일을 하고도 그런 식으로 태연한 분’이 아니라

‘너무나 선하기 때문에 선하다는 생각도 없이 착하게 사는 분들’입니다.

공자님 나이 70의 경지를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라고 하는데 바로 이것이 선악을 초월한 경지입니다.

“마음에서 욕구하는 바가 세속의 윤리적 잣대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너무나 착하기 때문에 “착하게 살자!”라는 다짐을 할 필요가 없는 경지입니다.

공자님 나이 70의 삶이 지계바라밀의 삶이고, 육조혜능스님께서 가르치신 무상계(無相戒)를 실천하는 삶입니다.

우리 불교인들은 '최상승법', '반야바라밀', '공성'이

"철저한 윤리적 삶과 삼매 수행을 닦는 분들에 한해 제시되는 가르침"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반야 공사상이나 최상승의 파격을 공부하다가가 '가치판단이 상실되어 막행막식행을 하는 분'의 경우 불전에서는 일반적으로 구제불능이라고 가르치지만

그런 궁지에서 헤어나오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철저한 속제의 실천입니다.

부처님의 속제의 가르침 그대로 '착하고 올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공이나 최상승에 대한 추구는 잠시 미루고

 

 

 

 

 

 

 

 

 

'진제와 속제(이제설) -김성철

모든 상념을 타파하고 이분법을 타파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제(眞諦)', 또는 '승의제', 또는 '제일의제'라고 부릅니다. 최고의 진리, 참된 진리란 의미입니다. 그러나 모든 분별을 타파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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