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교입문
勝友俊敎 著
慧 能 譯
머리말
근래에 밀교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저는 이전에 춘추사(春秋社)에서 전후 5회에 걸쳐 밀교에 대한 줄거리를 강연한적이 있습니다. 그 때의 강연 내용을 토대로하여 다소 수정을 가한 것이 이 책이고, 「밀교입문」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밀교의 입문서로 그 내용을 어떻게 집약하면 좋을까 생각을 했으나, 시간의 제약 때문에 쫓기면서 정리해 본 것이 불충분한 것이긴 하지만 본서의 목차와 같은 내용을 같게 되었습니다.
「제1부 밀교의 줄거리」는 널리 밀교란 어떤 의미의 가르침인가, 또는 밀교발전의 역사와 전해진 지역, 그리고 밀교경전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하는 문제 등, 밀교를 외면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제2부 진언밀교의 사상」은 진언밀교의 사상을 약간 조직적으로 생각하도록 했습니다. 밀교의 사상은 인도에서 성립한 밀교경전을 고찰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으로는 밀교를 한 사람의 종교체험자의 사상으로서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밀교를 하나의 종교로서 스스로 종교체험을 하고 그 밀교사상의 체계를 조직적으로 이해하고 체계를 세운 유일한 사람이 홍법대사 구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2부에서는 홍법대사의 진언밀교사상을 하나의 종교
사상의 기본형태를 나타낸 것으로 보고 그 줄거리를 논술하면서, 홍법대사의 진언밀교사상이 현대인들에게도 <진실하게 사는 길>로서의 빛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하였습니다.
본서의 출판에 대해서는 춘추사의 사장 간다 메이(神田明)씨의 각별한 배려가 있었습니다. 또한 본서의 편집.교정 등 세부적인 일에 있어서 편집부 사또오 세이세이(佐藤淸靖)씨의 적지않은 협력을 받았습니다. 깊이 고마움을 표합니다.
1991년 1월 좋은 날.
勝友俊敎
제 1 밀교란
1. 밀교.진언종의 의미
밀교 - 불교의 한 유파
흔히 「밀교 密敎」란 어떤 특수한 종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 속의 한 흐름으로서, 즉 대승불교의 철저한 후계자로서 오히려 대승불교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밀교입니다.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밀교가 힌두교 등 인도의 제종교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불교의 흐름 속에서 특수한 발전을 보아온 하나의 「비밀불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밀 密」이란 비밀을 의미합니다. 「비밀」이라는 말의 산스크리트어(梵語)는 구햐 guhya라는 말이 흔히 쓰이는데 그것을 번역하여 비밀, 또는 밀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밀교」 또는 「비밀불교」는 그 의미하는 바가 종교적 체험의 깊이를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밀교라든가 비밀불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깊고 오묘한 가르침」이라고 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밀교라고 할 때는 곧 현교(顯敎)라고 하는 말이 대조적으로 말해집니다. 사실, 홍법대사(弘法大師) 쿠카이(空海) 이후의 일본의 진언밀교에서는 상대적인 의미로 현교와 밀교라고 하는 말이 쓰여지고, 현교에 대하여 밀교가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를 강조하려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 관계된 것으로 쿠카이가 저술한 것, 또는 그 이후의 천태종의 학자들이 쓴 것, 그리고 헤이안(平安) 말기에 가꾸반(覺종;興敎大師)이 현밀차별을 논한 것 등 대단히 많이 있는데 그러한 것을 통하여, 현교에 대한 밀교의 특색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 상당히 폭넓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이점은 밀교사상편에 들어가서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인도에 있어서의 유파의 명칭
밀교는 인도에서 발달하여 중국과 한국, 일본에 전해지고, 또한 티벳(西藏)에도 전해져서 각자 독자적인 전개를 보이고 있습니다. 먼저 인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호칭은 「바즈라.야나 vajrayana」라고 하고 금강승(金剛乘)으로 번역합니다.
또한 자신들이 대승의 발전 속에 더욱 깊고 크게 발전한 것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바즈라.마하야나 vajra-mahayana」, 즉 금강대승(金剛大乘)이라고 과칭하기도 합니다. 밀교의 근본경전인 ��대일경��에도 대승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대승은 ��대일경��이전의 대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보다 발전한 형태로서의 「우리 대승」이라는 의미의 대승입니다. 또한 진언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강조하여 「만트라야나 mantrayana」, 진언승(眞言乘)이라는 호칭도 있습니다.
그리고 밀교를 서양에서는 「탄트릭 부디즘Tantric Buddhism」, 「에소테릭 부디즘 Esoteric Buddhism」이라고 하는데, 7세기 이후부터 밀교 최후의 무렵(12세기경)까지의 밀교문헌을 탄트라Tantra라고 하는 것에 근거하여 밀교를 탄트라의 불교, 탄트릭 부디즘이라고 한 것 입니다.
인도에서 성전을 나타내는 언어 수트라 sutra(팔리어;sutta)를 불교에서는 경(經) 또는 계경(契經)이라고 번역합니다. 본래 그것은 「날실(縱絲)」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탄트라도 본래는 「씨실(橫絲)」이라는 의미입니다. 탄트라란 <넓게 한다>는 의미의 탄tan으로 부터 나온 말이라 하여 「그것에 의하여 지혜가 넓혀지는 것」 또는 「모든 것을 한데 모은 것」, 「한 번 만들어진 것이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것, 이것이 탄트라」라고 확대 해석하기도 합니다.
불교성전에서 수트라라고 하면 불설(佛說)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논사(論師)가 설한 것은 논서(論書)라고 합니다. 그것에 대하여 탄트라는 역시 수트라와 같이 경전이지만 「불설」이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르침에는 다름이 없지만 수트라는 사상적(思想的)인 내용이 풍부한 데 비하여 탄트라는 실천적인 면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으로 특징 짓기도 합니다. 아무튼 수트라든 탄트라든 진리를 문자로 기록하여 남기는 것을 기계로 옷감을 짜는 것에 비유하여, 씨실과 날실의 교차에 의하여 우주의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하는 발상이 깔려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좀더 부연한다면 밀교는 독특하고 복잡한 수법(修法)과 관법(觀法)을 하고 있는 것이 현교(顯敎)의 수트라와 다른 점이라 하겠습니다. 그에 관한 의례(儀禮;修法의 規則과 方法)을 설한 문헌을 「의궤(儀軌)」라고 하는데, 그러한 여러 가지 종교적인 실천을 내용으로 하는 불교문헌이라는 의미로 탄트라라고 하는 말이 사용되게 된 것 입니다. 이와 같이 탄트라는 본래 사상이나 철학을 설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대우주 즉 절대 세계와 소우주 즉 인간 세계가 본래 일체 (一體)라는 생각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지향하는 실천의 도(道), 즉 수도의 방법(修法)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읽거나 듣거나 하더라도 혹은 내용을 안다든가 이해한다고 해도 전혀 의미를 지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탄트라는 오로지 그것에 따라 행동하고 실천함으로써 비로소 본래의 의의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같은 불설(佛說), 즉 경전이면서도 수트라라고 하지 않고 탄트라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쿠카이(空海)의 용어
홍법대사 쿠카이는 밀교의 대성자(大成者)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밀교에 대한 용어의 사용방법이 대단히 풍부합니다. 홍법대사의 저작을 통하여 어떠한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습니다.
「진언종」이라고 하는 말은 쿠카이가 일본에 개창한 종파의 종명(宗名)입니다. 그런데 쿠카이의 저술 속에는 이밖에도 진언밀교(眞言密敎), 진언비교(眞言秘敎), 진언승교(眞言乘敎), 진언비밀장(眞言秘密藏), 진언법교(眞言法敎) 등의 말이 자유자재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또한 쿠카이는 「밀교」라고 하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그 밀교라고 하는 계열의 말로는 비밀승(秘密乘), 비밀불승(秘密佛乘), 비밀일승(秘密一乘), 비밀금강승(秘密金剛乘), 비밀진언장(秘密眞言藏), 비밀만다라교(秘密曼茶羅敎) 등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강일승 金剛一乘」이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일승불교라고 할 때는 법화일승, 화엄일승이라고 하듯이 여러 종파에서 제각기 자신의 종파의 우위를 내세우기 위해 강조했던 표현 가운데 하나입니다. 즉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쿠카이는 금강일승, 그것이 우리 진언밀교이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쿠카이는 그야말로 밀교의 대성자로써 밀교를 철저하게 자신의 것으로 한 실천가였던 것인만큼 밀교를 나타내는 데에 여러 가지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사용하는 단어에 대해서도 제각기 밀교의 특성을 나타내는 깊은 의미를 간직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진언종
앞에서 언급한 대로 밀교가 특히 일본에서 하나의 종파로 정착하고 있는 명칭은 진언종입니다. 그렇게 진언종이라는 이름으로 정착하기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불공삼장 (不空三藏)이 번역한 ��분별성위경(分別聖位經)��이라고 하는 작은 경 속에 「진언다라니종(眞言多羅尼宗)」이란 어떤 의미인가 하는 문장이 있습니다. 그 「진언다라니종」이라는 말에 주목하여 쿠카이는 힌트를 얻은 것입니다. 「다라니」를 빼고 「진언종」이라는 말을 할 수 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쿠카이는 종명을 「진언종」이라 한 것인데, 다시말하면 헤아안 초기에 중국에서 가지고 온 밀교를 일본불교의 여러 종파 속에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명칭을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천태종이라 한 것에 대하여 자기 쪽은 밀교라 하지 않고 진언종이라 한 것입니다.
산스크리트어 「만트라mantra」를 「진언(眞言)」이라고 번역합니다. 만트라는 오래된 의미로는 신들에게 바치는 찬가, 신을 찬미하는 짧은 말입니다. 그것은 베다veda 등의 종교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들에게 바치는 찬가라는 의미를 가진 말을 쿠카이는 「진실어 眞實語;진실한 말」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의어 如義語」라고도 하는데 「뜻과 같다(如義)」고 하는 것은 진리의 말, 진실의 말을 뜻합니다. 법신 대일여래(法身大日如來)의 자내증(自內證;스스로 깨달은 내용) 그 자체를 설명한 진실의 가르침, 진실의 말씀, 그것을 「진언」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쿠카이는 누구나 믿어서 의심이 없는 우주의 진리 그 자체,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 그 자체를 가르침 속에 나타내고 있다고 하는, 그러한 법신설법(法身說法)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종파를 「진언종」이라고 한 것입니다.
2.밀교의 분류
지역별로 본 밀교의 분류
밀교를 지역적으로 볼 때, 인도에서 중국 한국 일본 또는 티벳 몽고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 있고, 시간적으로도 긴 역사적 발전과 변천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단히 밀교의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으며, 따라서 밀교라고 할 경우는 어디의 밀교인가를 한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흔히 말합니다. 우선 지역적으로 분류하여 인도에서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도의 밀교는 1,300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밀교는 근본불교시대부터 13세기의 초기까지, 처음에는 미미한 정도였지만 7세기 이후는 급속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도의 밀교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뒤에 중국에 전해진 밀교는 한역경전에 의한 밀교입니다. 처음은 3세기 무렵이고 역경에 의해서 그 밀교의 사상이 겨우 보급되는 정도였는데, 8세기 중당(中唐)무렵이 되면 밀교 경전의 전역도 왕성하게 되고 밀교라는 한 종파가 여러 종파 사이에 독립하여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계열의 밀교가 그대로 일본의 밀교로 된 것입니다.
일본의 밀교는 중국밀교의 전래에 의한 것이지만, 나라(奈良)시대에는 아직 하나의 종파로 독립을 보지 못하고, 헤이안 시대의 초기에 홍법대사 쿠카이에 의해서 비로소 한 종파로 독립한 진언종이 성립한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전교대사 사이쵸(傳敎大師最澄)가 전한 일본의 천태종에는 천태밀교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일본의 천태종은 ��법화경�� 뿐만 아니라 밀교를 겸해서 배우고 있는데, ��법화경��과 밀교는 똑같이 높은 사상적 입장에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을 흔히 「원밀일치(圓密一致)」라고 합니다.천태밀교는 「태밀(台密)」이라 하고 진언밀교는 「동밀(東密)」이라고 합니다.이 경우 동은 교또(京都)의 동사(東寺)를 가리킵니다. 고야산의 밀교라고 해도 좋지만 어느 시대에 동사가 진언종의 가장 중심으로 되고 동사의 쵸쟈(長者)가 진언종의 대표이고 다른 큰 본산(本山)을 통제한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동사가 진언종을 대표하는 의미에서 동밀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의 밀교는 동밀과 태밀의 두 가지 흐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티벳에 전해진 밀교의 흐름도 있고 많은 경전의 티벳역과 밀교의 홍통, 그리고 티벳밀교의 발달 변천이 있습니다.
인도밀교의 분류
인도에서의 밀교의 발생.발달.변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인도의 문헌에 의해 밝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것은 넓은 의미에서의 인도불교에 대해서도 사정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도문헌으로서의 불교문헌이든 밀교문헌이든 어느것도 거의 현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충분하긴 하지만 중국에 전역된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인도불교 또는그 일부문으로서의 밀교경전의 성립사를 추정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도밀교경전의 성립사에 대해서는 뒤에 중국밀교의 성립사를 개관하면서 함께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인도밀교에 대해서 내용적으로 구분하여 중국.일본과 티벳이라고 하는 두 가지 방향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중국.일본에서의 분류방법
먼저 중국.일본의 사람들이 생각하거나 약속한 것으로는 밀교를 「잡부밀교(雜部密敎)」와 「순수밀교(純粹密敎)」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 경우 인도밀교의 흐름 속에 초기밀교에서부터 650년 경까지의 사이에 성립된 것을 경전의 내용으로 보아 이들을 일괄하여 잡부밀교라고 합니다. 그리고 현장삼장 현장삼장이 인도에 갔다 돌아올 무렵, 또는 그 직후, 650-700년경에 ��대일경��과 ��금강정경��이 성립하는데, 그들 경전은 그 내용으로 보아 순수밀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우선 ① 성불(成佛), 즉 부모에 의하여 생긴 이몸 그대로 부처님의 경지를 체현한다고 하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을 강조하고, ② 마하비로자나불(摩訶毘盧遮那佛;大日如來)이라고 하는 부처님이 등장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되며, ③ 석가모니불이 설하신 것이 아니고 법신 대일여래가 설하신 경전이라고 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경전입니다.
여기서 순수(純粹)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 순수하다는 것인가. 밀교라고 하면 자칫하면 정통의 불교에서 벗어난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러나 밀교는 석존 이래의 불교의 흐름, 즉 대승불교의 역사적인 발전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오히려 대승불교의 철저한 후계자로서 가장 훌륭하고 우수한 것이 밀교의 정통적인 흐름이라고 평가하여 순수밀교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잡부(雜部)라고 하는 것은, 좀 순수하지 않다든가 여러 가지의 것이 포함되어 있다든가 하여, 언어적으로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으나 그쪽에도 밀교의 한 특징은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중국이나 일본의 학자들이 인도밀교를 「잡부밀교」와 「순수밀교」로 구분한 방식은 그다지 엄밀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전혀 구별하지 않고는 웬지 모르게 좀 이상하게 보일 경우에는 요즈음도 이러한 구별 방법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2) 티벳불교에서의 분류방법
그러나 티벳에서의 인도밀교에 대한 관점은 상당히 진보된 방법을 보이고 있습니다. 티벳의 전승으로는 1,300년 정도의 인도밀교의 역사를 구분하여 제1기에서 제4기까지 네 가지의 시기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 제1기는 작(作)탄트라(kriya-tantra)라고 합니다. 크리야(作)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종교적인 행위, 다시 말하면 수법(修法)에 대한 작법(作法)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그러한 것을 쓴 탄트라가 성립한 시대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내용적으로 말하면 이 속에는 밀교의 중요한 것이 거의 들어 있습니다. 주법(呪法), 다라니, 인계(印契;mudra) 등 여러 가지 수법의 작법, 만다라 등도 이미 자세히 설해져 있습니다. 다만, 즉신성불 또는 속질성불(速迭成佛)이라고 하는 것은 아직 그다지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수법(修作)한다는 것은 현세이익적인 내용, 즉 사람들의 바램은 어느 것이라도 이루어 준다는 기원적인 수법을 말합니다. 주문이나 다라니를 외우면 모두 구해진다든가 재난으로부터 구원된다고 하는 밀교입니다. 그것이 제1기의 밀교라고 합니다.
제2기가 행(行)탄트라(CAriya-tantra)입니다. 챠리야는 「행 (行)」으로 번역합니다. 대승불교의 여러 가지 수행이라고 하는 의미에서 수법만이 아니고 넓은 의미의 수행도 하고 이론화(理論化)도 합니다. 이론화란 대승불교를 근거로 하여 거기에다 여러 가지를 생각해 간다는 것입니다. 경전의 내용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행과 이론의 양방면을 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일경��등을 읽어 보면 잘 알 수 있는 것인데, 그래서 구체적으로는 ��대일경�� 등을 가리킵니다. 밀교의 티벳 전승이라고 하면 이것이 제2기 입니다.
제3기가 유가(瑜伽)탄트라(Yoga-tantra)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요가를 중심으로 하는 밀교입니다. 요가 또는 삼마디 (samadhi)라고 하는데, 이른바 선정(禪定)을 닦아 정신통일을 하고 그 속에서 부처님과 내가 합일한다고 하는 것을 강조하는 그것을 「요가밀교」라고 합니다. 그것의 대표적인 것이 ��금강정경��입니다. 그러므로 ��대일경��과 ��금강정경��의 성립은 연대적으로도 조금 다릅니다. ��금강정경�� 쪽이 조금 후대에 성립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대일여래가 설법하고 즉신성불을 설하는 등의 의미로는 순수밀교(純密)에 속하지만 순밀을 전반과 후반으로 나눈다면 ��금강정경��은 그 후반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큰 문제로 되는 것은, 중국.일본의 불교에서는 ��대일경��과 ��금강정경��을 「양부(兩部)의 대경」 또는 「양부불이(兩部不二)」라 하고 그것이 지금까지의 진언종의 전승인데, 티벳 불교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 전과 후, 이를테면 챠리야 탄트라와 요가 탄트라에 차이가 있다를 것을 티벳의 학자는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의 밀교연구자는 이러한 문제를 매우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고, 일본의 밀교 쿠카이의 밀교도 다시 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학문적으로는 저도 거기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대일경��과 ��금강정경��이 일본불교에서는 순수밀교라고 하는 하나의 틀 속에 넣어져 있는 것입니다.
제4기가 무상유가(無上瑜伽)탄트라(Anuttarayoga-
tantra)입니다. 이것은 후기밀교(後期密敎)라고도 하는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변천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후기밀교의 분야는 중국이나 한국, 일본밀교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은 소위 탄트리즘(tantrism) 이라는 것인데, 인도와 구미의 학자가 연구하는 영역은 거의가 이쪽입니다. 750년부터 1,000년 정도까지의 경향을 모아서 무상유가 탄트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쾌락사상이라든가 좌도밀교(左道密敎)라고 하는 여러 가지 발달.변천도 그 최후의 후기밀교 속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국, 한국, 일본의 밀교에서는 전혀 수용한 흔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상유가탄트라가 인도에서 융성하였던 것은 9세기 이후의 일로 홍법대사 쿠카이 및 그 제자가 유학했던 시대에는 그것이 아직 중국 불교계에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인도밀교의 긴 역사를 보면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잡부밀교와 순수밀교라는 비교적 단순한 구분만이 있으나, 티벳의 네 가지 시기로 구분하는 쪽이 인도밀교를 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연유에서 저는 밀교를 분류할 때에는 어디의 밀교를 가리키는가 라고 하는 것을 반드시 전제로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 것입니다.
제2 밀교경전의 성립과 특색
밀교의 경전은 어느 정도 있으며, 어느 시대에 성립한 문헌이 가장 많은가 하는 문제는 전문적으로 연구하면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므로 여기서는 그 대강의 줄거리만을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1. 밀교의 원류 �������� 인도 고대의 베다종교
밀교경전의 성립을 고찰할 경우, 맨 먼저 밀교의 기원이라고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밀교는 석존이 설한 것이 아니다 라든가 석존시대에 있었는가 없었는가 하는 논의가 최초에 대두되게 되는데, 이 단원에서 말하고자 하는 밀교의 원류라는 것은 실은 인도의 고대 베다(Veda) 종교 속에 나타나고 있는 밀교의 한 요소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하나의 특징은 만트라(mantra;呪文)를 외우고, 신들에게 양재초복(攘災招福), 즉 재앙을 없애고 행복을 가져올 수 있도록 기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베다가 후에 네 가지 베다로 발전한 것 가운데 특히 아타르바베다(Atharva-veda)에 식재(息災).주저(呪詛) 등의 주법(呪法)으로 신들에게 기도하는 것이 설해져 있습니다. 더우기 바라문교의 성립시대가 되면 그런 신들에 대한 기원이 한층더 왕성하게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다신교(多神敎) 시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들에게 기원할 때에 만트라를 외우는 것은 나중에 불교 속의 밀교에서도 형식상으로는 그와 같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다종교나 바라문교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되는 신과, 불교의 흐름 가운데 있는 밀교에서 신앙되고 있는 제존(諸尊)과는 당연히 차이가 있지만, 자신의 생활 속에서 원망(願望)을 이루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정은 시간을 초월하여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특히 인도인들은, 불교 이외의 사람들도 당연히 현세이익적인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있었던 것이고, 그러한 의미에서 공통적인 원류를 갖습니다.
다른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화천공양(火天供養)의 호마법(護摩法)도 그 기원은 바라문교에 있습니다. 그것이 밀교 속에 받아들여져서 마침내 진언종에서도 호마법이 성하게 수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2. 불교 속에서의 밀교의 발전과정
원시불교
다음에 밀교가 발전하는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면, 밀교는 석존시대부터 손제자의 시대(근본불교시대)에 그 싹이 있었다고 지적할 수가 있습니다. 근본불교경전 속에 이미 석존은 세속적인 주술이나 주법. 주문을 외우거나 해서는 안된다고 금지한 부분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 속에서는 재난을 없애고 행복을 구하는 현세이익적인 마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독을 없애거나 아픔을 치료하는 것, 예를 들면 이빨이 아플 때 치통을 낫게하는 주문을 외운다든지 또는 독사나 독충을 쫓기 위해서 방호주(防護呪;parita)라고 하는 주문을 외워서 재해를 면하는 것은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어느 시대이든 무언가에 의존해서 몸의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무언가에 의존하고 싶어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정도를 넘지 않도록 한다든가 또는 그러한 형태를 견지하면서 정신적으로 안정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 원시불교의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밀교의 기원을 원시불교에서의 주법이라든가 방호주(파리타)의 존재 등 다만 이와같은 주술의 개재(介在)에서만 찾고 후에 발달된 고도로 정신적인 밀교를 다만 「순화」의 한마디로서만 설명한다면 그것은 자가당착이라고 학계에서 지적하고 있으며, 따라서 밀교의 기원을 주술적인 요소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밀교가(密敎家) 자신이 대승불교도로서 자인하고 있듯이, 역사적으로든 교리사상적으로든 철저하게 대승불교를 후계하고 발전시킨 것이 곧 밀교이다고 하는 것이 최근의 학계에 정설로 되어 있음을 아울러 밝혀 둡니다.������������ 譯者>
부파불교에서 대승불교.밀교에로
부파불교에서 대승불교의 중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지만 그 시대에 밀교경전은 점점 많이 성립되었습니다. 경전이 성립했다는 것은 그것이 널리 보급되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들어지기만 한 것이 아니고 만들고 보급되어 밀교를 믿는 사람, 실천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불교의 후기가 되면 더욱더 급속히 밀교경전이 많이 성립되어 인도불교사에 있어서 이른바 밀교시대에 돌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밀교경전의 성립과정
밀교경전의 성립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경전의 수, 번역연대를 기준으로 하여 도표를 만들어 보는 것이 이해하기 쉬우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인도의 밀교이지만 인도의 자료든지 인도의 문헌에서는 대단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부득이 중국에서 번역된 한역불전(漢譯佛典) 속에 있는 밀교경전을 분류하여 역으로 인도밀교의 성립과정을 추측하는 방법입니다.
年��222 �� 280 �� 316 �� 420 �� 581 �� 618 �� 716 �� 800 �� 960 �� 1030
國��吳 �� 西晋�� 東晋 �� 南北朝 �� 隋 �� 初唐 �� 中唐 �� 後唐 �� 宋 ��
譯�� 4 �� 2 �� 18 �� 27 �� 10 �� 63 �� 200 �� 37 �� 120 ��
經��
數��
현재 ��대정신수대장경��(100권)이라고 하는 방대한 대장경에서는 4권(제18,19,20,21권) 속에 밀교부로 수록되어 있고, 그밖에 반야부 보적부 대집부 등에도 밀교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경전들이 편집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는 아주 많은 부수를 밀교경전이라 하고 그 경전과 번역자, 년대를 분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경전의 번역년대와 경전의 수를 기준으로 하여 인도불교사를 추정해 보면 위와 같은 표가 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삼국시대의 오吳 시대에 네 가지 정도의 밀교경전이 역출되고 있습니다. 결국 중국에 소개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그들의 밀교경전이 성립되어 있다는 것이 됩니다. 그로부터 서진 시대에 두 가지, 동진 시대에 18, 남북조 시대에 27, 수 시대에 10, 당의 초기부터 중기 무렵이 되면 밀교경전의 수는 급격히 많아지게 됩니다. 현장(玄 ?)도 의정(義淨)도 밀교경전을 역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초당 시대에 많은 번역자에 의해서 역출된 밀교경전의 수를 세어보면 63종류 정도 됩니다.
당의 중기 무렵(中唐時代), 700년대가 되면 선무외(善無畏)삼장에 의해서 ��대일경��이 번역되고, 금강지(金剛智)삼장에 의해서 ��금강정경��이 번역됩니다. 그리고 조금 늦게 불공(不空)삼장이 거듭 금강정계의 밀교경전을 많이 번역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들에 의해서 비로소 중국밀교가 중국불교의 한 종파로써 성립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시대의 역경은 거의 200가지에 달합니다. 더군다나 당의 말기(後唐) 무렵에도 아직 밀교경전의 역경이 계속되어 37종류 정도의 경전이 더 역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대시대(五代時代)라고 하는 혼란의 시대가 있고 뒤이어 송나라가 됩니다. 그 송대의 초기에 밀교경전이 120종류나 번역되고 있습니다.
한역(漢譯)은 1030년 쯤에 끝나버리지만 인도밀교는 그 후에도 계속됩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인도밀교는 이슬람교도에 의해서 무참하게 전부 파괴됩니다. 비크라마시라사(Vikramasira寺)라고 하는 밀교의 가장 큰 사원이 그때 철저히 파괴되어, 밀교가 완전히 인도에서 소멸되어 버리는 때가 1203년쯤이고, 이것을 인도밀교의 종말이라고 합니다.
한역경전을 통해서 본 인도밀교라는 것은 대략 이런 과정으로 발달.변천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강물의 흐름에 비유하면 좁은 개울이 흘러흘러서 점점 크고 넓은 강물이 되듯이 인도불교의 최후는 밀교시대로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불교는 점점 쇠퇴해져서 마침내 밀교 속에 흡수되어져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밀교는 대승불교의 철저한 후계자로서 불교의 오랜 흐름과 함께 하는 이러한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들 많은 밀교문헌을 총칭하여 특히 「밀교경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3. 밀교경전의 분류
밀교경전의 분류는, 한 가지 시안(試案)이긴 하지만 다음과 같이 구분하면 좀더 이해하기 쉬우리라 봅니다.
⑴ 태장법부(胎藏法部)
태장법부는 엄밀히 말하면 금강계.태장법이라고 할 때의 태장법의 부문이고, 그 대표적인 것은 ��대일경��입니다. 그리고 그밖에 ��광대의궤(廣大儀軌)�� 등이 있는데 역시 ��대일경�� 계통의 경전을 의미합니다.
⑵ 금강정부(金剛頂部)
��금강정경�� 계통의 경전입니다. 여기에는 ��금강정대교왕경(金剛頂大敎王經)��, ��약출염송경(略出念誦經)��, ��반야이취경(般若理趣經)��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전을 금강정부라고 하는데, ��금강정경�� 계통의 경전으로는 작은 경전까지 포함하면 숫자가 매우 많습니다.
⑶ 제경부(諸經部)
세번째는 제경부 입니다. 하나하나 따로 부를 정하면 매우 다양하고 많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한데 묶어서 제경부라고 합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경전은 ��소실지경(蘇悉地經)��, ��소바호동자경(蘇婆呼童子經)��, ��공작명왕경(孔雀明王經)��, ��대운청우경 (大雲請雨經)��,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 ��수호국계주다라니경 (守護國界主陀羅尼經)��, ��대승이취육바라밀경(大乘理趣六波羅蜜經)��, ��대승밀엄경(大乘密嚴經)�� 등이 있습니다. 제경부에는 이런 종류의 경전이 매우 많이 있습니다.
이상 세 가지가 전체적인 커다란 구분인데 다음은 밀교의 부처님 속에는 보살이나 명왕(明王), 천(天) 등의 신앙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나누어 보면 보살부, 명왕부, 천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⑷ 보살부(菩薩部)
보살부 가운데 먼저 관세음보살은 종류가 다양하여 성관음(聖觀音=正觀音),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천수천안관음(千手千眼觀音), 불공견삭관음(不空 ? 索觀音),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마두관음(馬頭觀音) 등이 있습니다. 이른바 변화관음이라고도 부르고 관음계통의 부처님은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관음부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일여래의 다음 자리에 있다고 하는 금강살타 (金剛薩 ?)를 중심으로 한 것, 또는 대승불교에서 이미 설해져 있는 문수보살, 보현보살, 미륵보살, 허공장보살, 지장보살, 8대보살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보살을 중심으로 각각의 보살에게 기원하는 데에 필요한 경전류가 있습니다.
⑸ 명왕부(明王部)
명왕은 산스크리트어 비드야 라쟈(vidya-raja)의 번역인데, 명(明)은 우암(愚暗)을 깨뜨리는 지혜의 광명을 의미하고 진언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명왕은 명을 지닌 명의 주(主)로서,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분노(忿怒)의 상을 나타낸 존(尊)이므로 지명왕(持明王), 분노존(忿怒尊). 위노왕(威怒王)이라고 하고 삼종륜신(三種輪身) 가운데 대일여래의 대지(大智)로부터 현신(顯身)한 교령륜신(敎令輪身)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명왕부에는 부동명왕(不動明王), 항삼세명왕(降三世明王),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대위덕명왕(大威德明王), 금강야차명왕(金剛夜叉明王) 등 오대명왕이 대표적이고, 그밖에 명왕부의 제존을 공양하는 방법이 쓰여져 있는 경전들이 여기 명왕부에 해당됩니다.
⑹ 천부(天部)
천부에는 범천(梵天), 제석천(帝釋天), 비사문천(毘沙門天), 대길상천(大吉祥天), 환희천(歡喜天), 마리지천(摩利支天), 기타 많은 천(天)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밀교는 다채로운 제불 제보살 제명왕 제천에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밀교에서는 단지 신앙하는 것만이 아니고 각각의 신앙의 대상과 일체화(合一)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그 신앙의 대상에 어떻게 예배하고 신앙하고 기원하여 성불에 이를 것인가를 밝혀 놓은 경전이 있습니다. 다음 장에서 밀교경전의 특색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4. 밀교경전의 특색
여러 가지 경전이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외면상으로 본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경전과 의궤
다채로운 밀교문헌의 특색이라고 하면 우선 「경전(經典)」과 「의궤(儀軌)」의 두 가지 구분이 있습니다. 밀교경전에는 보통 ��대일경��이라든가 ��금강정경�� 등이 있으나, 경전의 이름 끝 부분에 「의궤」라고 되어 있는 것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의궤란 범어 깔빠(kalpa)의 번역으로 밀교의 경전에서 설한 불.보살.명왕.천.신 등을 염송.공양하는 의식이나 궤범을 말합니다. 즉 교리 사상을 가르치는 경전으로서만이 아니고, 그 경전을 수행과 실천적인 행법으로서의 「의궤」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600종류 이상의 밀교문헌 가운데 제목에 「의궤」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이 106종류 정도 있습니다. 또한 「공양법供養法」이라든가 「염송법 念誦法」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 것도 20종류 이상이나 됩니다. 이와 같이 밀교의 경전에는 다른 종파의 경전과 크게 다른 것이, 신앙의 대상을 향하여 적극적으로 어떤 방법을 행하여 갈 것인가 하는 수법의 방법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경전을 의궤화하거나 의궤로 된 것이 매우 많다는 것이 특징
입니다.
밀교경전은 다라니장(陀羅尼藏)
밀교경전을 「다라니장」이라고도 합니다. 「다라니장」이란 다라니(dharani)의 곳집(藏)이라는 것입니다. 장(藏)은 산스크리트 피타카(pitaka)의 번역으로, 용기(容器), 곡창(穀倉), 암기된 것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삼장(三藏)이란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의 셋을 말하는데, 불교성전을 이 세 가지로 나누어 모았다는 뜻으로 불교성전을 총칭하여 「삼장」이라합니다. 그런데 그 뒤 밀교가 발전하여 밀교경전이 늘어나게 되자 그것을 하나의 장으로 모아서 「다라니장」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밀교경전에는, 여러 가지 좋은 법을 가져 잃지 않고, 온갖 무거운 죄장을 소멸하여 열반을 속히 깨닫게 하는 미묘한 힘을 가지고 있는 「다라니」에 관한 것이 아주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다라니집경(陀羅尼集經)��(12卷 唐 阿地瞿多 譯), ��다라니잡집(陀羅尼雜集)��(10卷 失譯)이라는 경전이 있습니다. 그밖에 「0 0 0 다라니」 라든가 「다라니 0 0 0」라는 식으로 제목 속에 다라니라는 말이 반드시 나오는 것이 200종 이상이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밀교경전 속에는 「다라니장」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다라니가 많다는 것이 두번째의 특징입니다.
밀교경전에 설해진 밀교적인 것
밀교경전에 설해져 있는 내용의 특징으로는 우선 「진언(眞言)」 또는 「다라니」가 많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진언은 산스크리트어 「만트라 mantra」의 번역으로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말이란 뜻입니다. 어원적으로는 <사념한다>는 뜻의 「만man」과 <그릇(器)>의 뜻을 지닌 「트라tra」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에 의해 신神의 덕을 사념할 수 있다든가 사념을 표현하기 위한 그릇, 즉 신성한 문자 또는 언어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라니는 산스크리트어 「다라니dharani」의 음역으로 총지總持, 또는 능지能持라고 번역합니다. 정신을 통일하고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지니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언과 다라니는 엄밀히 말하면 서로 구별이 되는 것이지만 흔히 「0 0 의 진언」, 「0 0 의 다라니」라고 하고, 명(明;vidya 學問.知識의 뜻)이라든가 명주(明呪)라고 하기도 합니다.
다음은 「인계(印契)」를 들 수 있습니다. 인(印)은 산스크리트어 「무드라 mudra」의 번역인데, 표시.증거.상징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보살 등 제존의 깨달은 내용을 손이나 손가락으로 나타내는 것을 수인(手印)이라 하고, 칼.지팡이 연꽃 등 제존이 지물(持物)로 나타내는 것을 계인(契印) 또는 상인(相印)이라 합니다. 그리고 불.보살이 깨달은 내용을 나타내기 위하여 인을 맺는 것이지만, 밀교의 수행자가 수법과 수행을 행할 때에도 반드시 인을 맺게됩니다. 수행자가 인을 맺는 것은, 사실 부처님에 대한 단순한 외형적인 모방이나 흉내의 영역을 뛰어넘어, 진리의 어느 한 면 바로 그 자체로 되어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인계가 매우 다양하고 많은 것도 밀교경전의 특징입니다.
또한 「만다라(曼茶羅)」가 있습니다. 만다라는 범어 「만달라(mandala)」의 음역으로 단(壇), 단장(壇場), 윤원구족(輪圓具足) 등으로 번역합니다. 원래는 비법을 닦을 때 마중(魔衆)의 침입을 막기 위해 그려놓은 원형(圓形)이나 방형(方形) 으로 구획한 지역을 「만다라」라고 합니다. 그러나 밀교에서는 주로 「취집(聚集)」의 뜻을 취하여, 제불.보살 등의 성중이 모이는 곳을 말합니다. 인도에서는 토단土壇을 쌓고 그 위에다 제존을 그려 놓고 행사가 끝나면 부수어 버리는데, 중국. 일본 등지에서는 주로 종이나 천(帛)에 그려 놓기 때문에 그런면에서 조금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단을 쌓아서 그 위에 제불을 그려 모시고 만다라의 제불을 예배하는 방법이 상세하게 쓰여져 있는 것이 밀교경전의 한 특징이라고 할 것입니다.
신앙의 대상
밀교의 특징적인 신앙의 대상에 「태장계의 만다라」와 「금강계의 만다라」가 있습니다. 이들 만다라에는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하여, 제불.제보살, 제명왕, 제천 등 지극히 복잡하고 다채로운 신앙의 대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밀교에서는 불타관(佛陀觀)의 통일적인 견해가 진행되어, 대일여래는 「보문(普門:samantamukha無量門이라고도 하며, 모두에 골고루 미치는 보편적인 門戶라는 뜻)의 부처님」이고, 그밖의 제불.제보살.명왕.천 등은 일지(一智).일덕(一德)을 나타내는 「일문(一門)의 부처님」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밀교경전을 보면 신앙의 대상이 전체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와 개개의 것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 수가 매우 많습니다. 이것은 밀교에 있어서 불타관의 문제입니다. 밀교에서는 불타관이 이처럼 복잡하게 되어있으나 그 복잡함 속에 매우 교묘하고 정교한 통일성이 있습니다. 그것도 밀교경전 속에 설해져 있는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관법과 기원
다음에 밀교경전 속에는 관법(觀法)과 여러 가지 기원(祈願)에 관한 내용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두 가지 예를 들어보면, 보리심(菩提心)을 관하는 방법[菩提心觀]이 있습니다. 우리들 마음 속에 근본자성인 정보리심(淨菩提心)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도록 하기 위한 관법인데, 여기에는 월륜관(月輪觀)과 아자관(阿字觀)이라는 관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월륜본존도(月輪本尊圖)나 아자본존도(阿字本尊圖)를 걸어두고 그 앞에 정좌하여 호흡을 조절하고 정신통일을 하여 「월륜」 또는 「아자」로 상징된 정보리심이 본래 내 마음 속에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관법입니다.
또한 「삼밀가지(三密加持)」의 묘행도 설해져 있습니다. 「삼밀」이란 비밀의 삼업(身密.語密.意密)이란 뜻이고, 「가지」는 범어 아디스타나(adhisthana)의 번역으로, 상응하여 관계하는 것, 호념(護念).가호(加護)를 나타내는 의미에서 부처님과 중생이 상응하여 일치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과 중생이 서로 명합하는 유가(瑜伽)의 경지에 들어가서, 행자(行者)가 몸에 인을 맺고[身密], 입으로 진언을 외우고[語密], 뜻으로 본존을 관하여[意密], 행자의 삼업 위에 부처님의 삼밀이 더하여 섭지(攝持)되는 것을 「삼밀가지」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여 행자와 본존은 일체(一體)로 되고, 이몸 그대로 부처가 되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의 깨달음을 이룬다고 하는 밀교의 독특한 수행방법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진언이나 주문.다라니를 설한 경전이 많고, 특히 ��다라니집경��이라고 하는 경전도 있습니다.이들 진언이나 주문.다라니는 양재초복(攘災招福)의 기원, 즉 병을 낫게 하고, 연명(延命)하여 오래 살게 하고, 비가 오도록 기우를 하고, 재보(財寶)를 얻게 한다는 등 이른바 현세이익적인 기원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현세이익적인 기원의 신앙은 진언밀교에서 뿐만이 아니고 천태종이나 기타 불교의 모든 종파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 3 중국밀교의 성립
1. 밀교경전의 역출 ������������ 삼국시대에서 초당시대까지
인도에서 성립한 밀교경전은 다른 일반적인 불교경전과 함께 일찍부터 중국에 전해져서, 삼국시대부터 서진, 동진, 남북조시대(200-600년경)까지 많은 역경자에 의해서 50여 종류의 밀교경전이 역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隋)에서 초당시대(600-700년)까지 거의 100년 사이에 급격히 인도밀교경전이 성립한 듯이 그들 밀교경전이 많은 번역자에 의해 역출되어 그 경전의 수는 거의 60여 종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밀교경전에 의해서 밀교적인 불타관의 다양성과 의궤에 의한 수법, 진언.주(呪).다라니의 지송과 그 공덕의 신앙 등 밀교의 특색있는 제양상이 중국불교계에 나타난 것입니다. 따라서 초당시대에는 그 새로운 밀교에 주목하는 경향도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 밀교라는 한 종파가 성립하기에는 미흡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밀교의 수행법 등을 구체적으로 지도할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2. 중국밀교의 성립 ������������ 中唐以後
그러나 중당이후(700년대)가 되면 즉신성불의 사상과 실천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순수밀교의 경전이 중국에 전해져 역출되고, 또한 밀교의 실천적인 수행방법이 전해집니다. 그것이 많은 문제(門弟)에 전해지게 되어, 비로소 중국사회 속에 새로운 밀교라고 하는 한 종파가 성립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중국밀교라는 한 종파를 탄생시키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분들은 다름과 같습니다.
⑴ 선무외 善無畏(637-735)
먼저 첫번째가 선무외 삼장입니다. 선무외는 「슈바카라싱하Subhakarasimha」의 번역인데 동인도 마갈타국 왕가(王家)의 출신이며, 나란다(Naianda) 절에서 달마국다(達磨 ? 多)에게 ��대일경�� 계통의 밀교를 배워 인도에서 이미 밀교의 아사리(阿舍梨 acarya;軌範師. 正行이라 번역하며, 제자를 敎授하고 제자의 행위를 바르게 하여 그 궤범이 될 수 있는 스승을 말하는데, 밀교에서는 만다라 및 제존의 印明에 통달하여 傳法灌頂을 받은 자를 말함.������譯註)로써 유명했던 분입니다. 80세의 고령으로 개원4년(716)에 중앙아시아를 거쳐 장안에 도착했습니다. 그후 장안과 낙양의 두 곳을 왕래하면서 그사이에 ��대일경�� ��소바호동자경�� ��소실지경��등 20여 종류의 밀교경전을 번역하고 또한 밀교의 수법 등을 많은 문제(門弟)들에게 전한 것입니다.
⑵ 금강지 金剛智(671-741)
다음이 금강지 삼장입니다. 원명은 바즈라보디(Vajrabodhi)라고 하는데 중인도 왕가(王家)에 태어나 나란다 절에서 대승불교를 배우고 남인도에서 용지(龍智)보살(密敎付法相承의 第4代 祖師)을 만나 밀교를 배웠습니다. 바닷길로 해서 중국의 남쪽지방에 도착하고, 개원7년에는 중국에 이르러 그 익년 개원8년(720)에 장안까지 온 것입니다. 선무외보다 4년 정도 늦었으나 선무외와 거의 때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강지는 ��금강정약출염송경(金剛頂略出念誦經)��(4卷) 등 ��금강정경�� 계통의 20여 종류의 밀교경전을 번역했습니다.
선무외와 금강지 두 사람은 모두 인도에서 이미 밀교의 아사리로서 밀교를 수법하여 밀교의 의식을 모두 체득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이 중국에 와서 바로 제자들을 기르고 밀교의 수법과 관정의식, 그리고 만다라를 그리는 방법 등을 제자들에게 가르쳤기 때문에 중국밀교의 성립에 제1기는 선무외와 금강지에 의해서 그 기초가 다져졌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⑶ 일행 一行(683-727)
또한 이무렵에 일행선사가 나와서 중국밀교의 수용과 성립에 커다란 업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중국의 학자로서 금강지와 선무외의 양쪽에서 배웠는데, 특히 선무외에 대해서 ��대일경��의 번역을 도왔고, 더우기 진언밀교의 대표적인 주석서인 ��대일경소(大日經疏)��(20卷)를 저술했습니다. 그러나 일행선사는 선무외, 금강지보다 빠른 727년에 45세의 아까운 나이에 입적한 수재였습니다. 일행선사는 원래 천태의 학자로서 밀교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동시에 천문학. 역법학(曆法學)에도 정통하여 유명한 ��개원대연력(開元大衍曆)��을 만드는 등 이 부문에도 매우 많은 저작을 남기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에서는 일행선사를 종교가보다도 과학자로써 커다란 엄적을 남긴 사람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고, 북경의 역사박물관에 가면 「과학자 일행(一行)」이라고 한 동상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것이 중국밀교성립의 제1기에 해당됩니다.
⑷ 불공 不空(705-774)
제2기는 불공삼장입니다. 불공은 범어 아모가바즈라(Amoghava-
jra)의 역명인데 바라문의 혈통을 이은 인도 사자국 사람으로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를 따라 남양의 여러 나라로 다니다가 쟈바에서 금강지삼장의 제자가 되고, 개원8년 16세 때 스승을 따라 중국에 왔습니다. 금강지삼장을 모시고 역경에 조력하고, 밀교를 배워 양부(금강계와 태장계)의 대법과 밀교의 깊은 뜻을 계승하여 부법(付法)의 조사가 되었습니다. 개원19년(731) 금강지가 입적한 뒤에 그의 뜻을 이어 인도의 아릉국(阿陵國)을 거쳐 사자국의 불아사(佛牙寺)에 있으면서 보현(普賢)아사리에게 밀교의 대법을 전해 받고, ��금강정경�� 계통의 여러 경과 논을 가지고 다시 중국에 돌아와서 밀교를 전하고 경론 번역에 종사하게 됩니다. 700년대 후반은 오직 이 불공삼장이 중심이 되어 밀교경전의 번역과 수법을 성하게 하여 많은 제자를 두고, 또한 밀교의 사찰을 여러 곳에 건립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불공삼장의 시대에 비로소 중국의 다른 종파와 비교하더라도 불공의 밀교쪽의 세력이 우세하게 되고, 당의 후반에 밀교가 왕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데에는 밀교와 당의 왕실과의 밀접한 관계도 있었지만, 그 외호에 힘입어 중국밀교는 급격히 발전해 가게 된 것입니다.
⑸ 혜과(慧果) (745-805)
그 불공의 법을 이은 제자 가운데 가장 우수한 제자가 혜과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혜과 화상(和尙), 또는 혜과 아사리라고 하는데 이사람이 바로 쿠카이의 스승입니다. 혜과아사리는 장안의 청룡사 동탑원에 있었고 당조(唐朝)의 신임을 얻어 밀교를 크게 홍포하고 많은 제자를 두었습니다. 60세가 되었을 때 32세의 쿠카이가 이 스승을 만나 밀교의 비법을 전해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밀교는 거기서부터 시작되는데, 중국밀교는 그 뒤에도 발달.변천을 하여 800년대 후반 무렵까지 의연히 인도밀교의 경전을 가지고 와서 번역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공이나 혜과의 문하가 왕성하게 활동하여 각각의 밀교를 발전시켰던 것입니다. 중국밀교의 성립은 이정도로 살펴보고, 그 중국밀교가 일본에 전해져서 어떠한 양상을 띄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다음장에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제4 나라(奈良)시대의 밀교
아스카(飛鳥), 하꾸호오(白鳳)부터 나라(奈良)시대까지 중국불교는 급속히 일본에 전해졌는데 밀교경전도 널리 불교경전 속에 포함되어 전해졌습니다.
밀교경전의 전래
나라(奈良)시대에 밀교경전은 거의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잡부밀교의 경전이었고 순수밀교의 ��대일경��이나 ��금강정경�� 계통의 경전은 극히 조금밖에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나라(奈良)의 정창원(正倉院) 문서에 엄청나게 많은 사경(寫經)의 기록이 남아 있고, 학자들이 여러 가지 경전에 대해서 정리하고 있는데 밀교경전에 대해서도 정리가 이미 되어 있습니다. 나라시대의 정창원 문서를 보면 잡부밀교경전의 거의 전부와 극히 일부의 ��대일경��과 ��금강정경�� 계통의 경전이 전해졌고, 다소간 연구가 되었던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라시대에 겐보오(玄昉 ?-746)라는 법상종(法相宗)을 전한 유명한 스님이 있었는데, 이분은 중국에 십수년간 유학을 하고 덴헤이(天平)7년(735)에 일본으로 돌아올 때, 번역된 「일체경(一切經)」 5,000여권이나 되는 엄청난 경론을 가지고 왔다고 하는데, 이는 덴헤이 시대에 이미 중국어로 번역된 경전류는 거의 가지고 왔다는 것이 됩니다. 그 속에 잡부밀교의 경전이 대부분 들어 있고, 그래서 나라(奈良)시대의 학자가 그것을 서사(書寫)하고 공부하는 것도 비로소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밀교홍통의 상태
그렇게 전해진 밀교의 보급 형태를 살펴보면 첫째로 사경(寫經)이 행해졌습니다. 그리고 밀교의 불상(佛像)이 매우 많이 조성되었습니다. 이것도 전문학자들이 통계적으로 조사한 것에 의하면, 140-150체(體) 정도 있는 나라(奈良)시대의 불상 가운데 40체 정도가 밀교의 불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한 다라니를 외우면 병이 낫는다든가 재난을 면할 수 있다고 하는 「다라니신앙」이 상당히 보급되어 있었습니다. 헤이안 초기의 ��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라고 하는 책을 보면 그러한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다라니신앙이 상당히 보급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와 같은 양상이 쿠카이 이전의 밀교의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쿠카이도 젊은 나이에 출가하여 수행했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알고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앙에 역시 쿠카이가 만족할 수 없었고, 자신이 중국에 가서 배워 전해야겠다는 결의를 하기까지에는 그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헤이안 초기가 되면 드디어 쿠카이가 등장하게 됩니다.
제5 쿠카이의 입당구법과
진언종의 개종
1. 젊은날의 수행
쿠카이(空海 774-835)는 시꼬꾸(四國)의 사누끼(讚岐), 지금의 젠추우지 시(善通寺市)에서 호우끼(寶龜)5년(774)에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사하끼 아타이타(佐伯直田公), 어머니는 아또우지(阿刀氏), 어릴 때의 이름은 마오(眞魚)라고 합니다. 15세 때 백부 아또노(阿刀大足)를 따라 상경하여 백부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18세 때 대학에 들어가서 널리 중국의 학문을 배웠는데 그 공부는 대단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쿠카이 자신도 ��삼교지귀(三敎指歸)��의 서문에서 자신은 대학에 들어가서 잠이 오면 송곳으로 다리를 찔러 졸음을 쫓으며 공부를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쿠카이는 중국의 학문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고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교를 배우고 수행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껴 미련없이 대학을 중도에 퇴학하고 불교 수행의 길에 들어간 것입니다. 처음에 우연히 한 스님에게서 ��허공장구문지법(虛空藏求聞持法)��(1卷, 善無畏 譯;허공장보살을 염하여 기억력이 견고해지기를 구하는 수법.������譯註)이라고 하는 밀교의 수법을 전해받고 먼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시꼬꾸에 가서 아와(阿波)의 오오타키다께(大瀧嶽)와 토사(土佐)의 무로토미사끼(室戶岬) 등지에서 구문지법을 닦으면서 혹독한 수행을 계속했습니다. 또한 시꼬꾸의 산야를 두루 순레하기도 하고, 나라(奈良)에 가서 요시노(吉野)의 남쪽지방에서 엄격한 산악수행의 나날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나라불교의 연구에도 정진하여 당시 나라에는 법상종, 삼론종, 화엄종, 율종 등의 학문이 성했으므로 그들 제종의 불교문헌을 독파하고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20세 무렵에 출가득도하여 이름을 쿠카이(空海)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쿠카이의 불교연구와 수행은 크게 진전되어 24세 때 유교와 도교와 불교의 우열을 밝힌 ��삼교지귀��를 저술했습니다. 이것은 쿠카이의 출가선언서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마침 그 무렵 쿠카이는 야마토의 구미사(久米寺)에서 ��대일경��을 발견하고, 그 경전에 「자기의 탐구와 깨달음에의 진실한 삶의 길」이 설해져 있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 그 이후 ��대일경�� 등의 밀교경전연구에 전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밀교경전은 단지 읽는 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고 반드시 밀교의 아사리에게 비법을 전수받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쿠카이는 가만히 입당구법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24세부터 입당(入唐)하는 31세까지의 쿠카이를 「울지않고 날지않는 7년간」이라고 흔히 말하는데, 그동안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는 지금의 자료로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 중국에 가서 공부할 충분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합니다. 이리하여 쿠카이는 입당구법의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 입당구법(入唐求法)
쿠카이 31세 때 견당사(遣唐使)의 배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때 견당사의 배는 네 척이었는데, 첫번째 배는 견당대사 후지와라(藤原葛野 ?)와 쿠카이가 타고, 두번째 배에는 전교대사 사이쵸(最澄)가 탔습니다. 난바(難波=大阪)를 출발한 것이 5월이고 7월 6일에 큐슈(九州)의 타노우라(田浦)를 출항하였는데 바로 폭풍우를 만나 한 척은 침몰하고 다른 한 척은 되돌아 갔지만 제1선과 제2선은 항해를 계속했습니다. 그때의 견당사의 일정과 동향 등은 ��속일본후기(續日本後紀)��에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신용할만한 사료(史料)입니다.
그래서 표류하여 8월 10일에 중국 복주(福州) 근처의 적안진(赤岸鎭)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해적선으로 오해를 받아 상륙하기가 어려웠던 일 등은 쿠카이 자신의 문장 속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고충을 겪은 끝에 11월 3일에 간신히 복주를 출발하여 긴 대륙의 여행을 계속하여 12월 23일에 당의 수도 장안에 다다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익년 2월 견당대사의 일행은 중책을 완수하고 귀도에 오르고, 유학생인 쿠카이와 타찌바나(橘 逸勢)는 장안에 머물러 처음으로 서명사(西明寺)에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2월부터 5월까지 장안의 큰 사원을 방문하거나 중국의 문화인들을 만나기도 하고, 인도에서 와 있던 반야(般若)삼장과 모니실리(牟尼室利)삼장을 만나서 인도의 사정을 듣기도 하고 범어를 배운 것도 이 시기였다고 봅니다. 이 삼개월을 쿠카이는 매우 유효하고 정력적으로 듣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5월 말에 청룡사의 혜과아사리를 찾아가서 밀교의 비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때 혜과아사리는 60세, 쿠카이는 32세 였습니다. 혜과아사리는 불공삼장의 문하에서 당시 밀교계의 제일인자로 추앙받던 사람입니다. 이 스승과 제자의 만남의 정경은 쿠카이 자신이 써서 남긴 문장 속에 자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스승은 기뻐하며 외국에서 온 젊은 학승을 맞이하여 자신의 여명이 얼마남지 않음을 알고 밀교상승의 가장 중요한 의식인 관정(灌頂)을 빠른시기에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이때의 사정을 쿠카이는 「나에게 발보리심계를 주시고, 관정도량에 드는 것을 허락하시어 수명관정(受明灌頂)을 받은 것이 세 번에 이르고, 아사리위阿舍利位를 받은 것이 한번이었다」(��고쇼라이목록御請來目錄��)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수명관정이란 밀교를 수학하고 제자가 되는 것을 허가하는 의식의 작법으로, 인연있는 일존(一尊)의 인(印)과 명(眞言)을 주게 되며, 허가관정(許可灌頂)이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사리위를 받는다는 것은 밀교 교수(敎授)의 자격으로 금강계 태장계 양부의 비법을 관정단(灌頂壇)에서 받는 것인데 전법관정(傳法灌頂)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보리심계를 받는 것과 태장계와 금강계의 양부의 관정을 받는 것은 진언밀교의 최고비밀의 법을 상승하는 것입니다. 쿠카이는 이 최고의 의식을 수반한 비법의 전수에 의해서, 혜과아사리 만년의 가장 우수한 제자가 되었고 일본에 돌아가서 밀교를 보급시킬 자격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후 더욱 밀교의 여러 가지 비법을 전수받기도 하고 밀교경전의 서사에 침식을 잊기도 하고, 또한 양부의 대만다라와 밀교 법구(法具)의 제작을 의뢰하여 밀교상승(相承)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12월 15일에 스승 혜과아사리는 60세로 입적합니다. 쿠카이가 유학생으로서 스승에게 배운 것이 겨우 반년이었습니다. 쿠카이의 슬픔이 얼마나 컸었던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때 쿠카이는 스승을 추모하고 그 덕을 칭송하여 「혜과화상비문」을 썼습니다(��성령집(聖靈集)��卷2). 그 문장에는 스승과의 만남, 스승의 따뜻한 지도에 대한 감사, 스승의 높은 학덕, 민중의 교화에 커다란 업적을 남기고 있는 것을 찬탄하는 내용으로 쓰여져있습니다. 스승에 대한 추모와 경앙을 잘 드러낸 명문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승이 입적하신 그 익년 1월에 장례가 끝나고 2월에는 귀국의 길에 오릅니다. 그것은 마침 장안에 와 있던 견당대사 타카시나(高階遠成)가 귀국하기 때문에 함께 귀국하기로 한 것입니다.
4월에는 월주(越州)에 도착하여 거기서도 널리 중국의 문헌을 모집하고 8월에는 명주(明州)를 출항하여 10월 초에 무사히 큐슈에 도착한 것입니다. 이 입당구법은 출발에서 귀국까지가 불과 2년 8개월, 장안에 체재한 것이 1년 2개월, 혜과아사리에게 사사한 것은 반년으로 됩니다.
큐슈에 도착한 쿠카이는 다자이후(太宰府)에 머물면서 10월 20일부로 ��고쇼라이목록��을 조정에 올렸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입당구법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입니다. 그 가운데 쿠카이가 혜과아사리로부터 관정을 받은 것, 혜과아사리에게서 배운 밀교라는 것은 ① 불교 가운데서도 가장 우수한 가르침이고, ② 즉신성불의 가르침이고, ③진호국가(鎭護國家)의 가르침이고, ④ 민중의 양재초복의 가르침이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밀교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그 핵심을 잘 파악하여 정리한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쿠카이가 그 후, 일본에 진언종을 열고 사상 교화 활동을 전개 함에 있어서 그 근본이념이 되었던 것이 바로 이 네 가지 조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쇼라이목록��에 의하면 가지고 온 문헌에는 일본에 전해지지 않았던 불공삼장역의 새로운 경론의궤와 범자진언 등을 비롯하여 그밖의 많은 경론장소(經論章疏)가 있고, 또한 양부의 대만다라와 밀교법구 등 중요한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참으로 얻은 바가 많은 입당구법의 여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쿠카이가 처음 들여온 것 가운데 많은 경론은 「삼십첩책자(三十帖策子)」라 하여 처음에 동사東寺와 고야산에 각각 비장되었다가 후에 인화사로 옮겼는데, 현재 인화사에 국보로 비장되어 있고, 법구의 일부도 동사에 국보로 비장되어있습니다.
3. 새로운 밀교 �������������� 진언종의 개종
고웅산사(高雄山寺)시대
쿠카이는 귀국하고나서 당분간 다자이후의 관세음사에 머물렀다가 다이도오(大同)4년(809) 36세 때 교또의 고웅산사에 주석하게 됩니다. 이 절은 와께시(和氣氏)가 창건한 것으로 전에 천태종의 전교대사 사이쵸가 법화십강(法華十講)을 열었고 또한 사이쵸가 일본에서 최초로 밀교의 관정의식을 행했던 곳이기도 합니다.이제는 쿠카이가 이 절에 들어와서 진언밀교의 제일성(第一聲)을 놓게 된 것이니다.
고우닌(弘仁) 원년(810) 10월에 ��인왕경(仁王經)��과 ��수호국계경(守護國界經)��에 근거하여 진호국가의 비법을 닦아 후지와라 야쿠시(藤原藥子)의 반란 직후의 국내평화를 위한 기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우닌 3년 11월과 12월에 고웅산사에서 금강계와 태장계의 양부관정을 행하고, 천태종의 사이쵸와 그 문하의 사람들, 그리고 남도(南都)의 학승들이 관정을 받았는데 이것을 고웅의 관정이라고 하고 쿠카이의 진언밀교가 높이 평가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때 쿠카이 자신이 관정을 받은 사람들을 기록한 것이 현존하는 ��고웅관정기��(국보)입니다.
또한 이무렵 천태종의 사이쵸와 쿠카이는 친밀하게 교제를 하여 사이쵸가 자주 쿠카이에게 밀교의 경론을 빌려가기도 하고 양사양사가 몇 번이나 서간을 주고받고 있는데, 쿠카이가 쓴 유명한 ��풍신첩(風信帖)��(국보) 등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이쵸의 제자인 타이한(泰範)이 사이쵸를 떠나 쿠카이의 문하에 들어오는 일도 있었고, 쿠카이는 밀교경론을 널리 각지에 서사하도록 권하는 서간을 보내면서 밀교와 현교가 어떻게 다른가를 밝혀 밀교의 특색을 크게 선전하는 일에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쿠카이는 서도(書道)에도 뛰어나서 사가(嵯峨)천왕과 친분을 맺게 되어 사가천왕의 외호로 새로운 진언밀교를 제종파 사이에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야산의 개창
고우닌 7년(816) 쿠카이 43세 때 고야산에 수선(修禪)의 일원(一院)을 건립하기를 발원하고 그것이 허락되어 드디어 고야산 개창의 대사업에 착수하게 됩니다.
고야산의 개창에 대해서는 고야산의 토지신인 니우츠히메(丹生津姬)가 나타나서 그 토지를 쿠카이에게 주었다든가, 또는 네 마리의 개를 거느린 사냥꾼의 모습을 한 고야묘오진(高野明神)을 만나 안내를 받고 고야산에 올랐다고 하는 전설도 있습니다.
어쨌던 고야산의 개창은 나라(奈良)의 도시불교의 부정을 상징하고, 또한 산악불교(山中佛敎)의 부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쿠카이가 소년시대 이래 체험하고 사색해 온 본래의 불교의 모습에 대한 확신과 그 실현의 제일보를 보인 것입니다.
고야산 개창의 칙허를 얻어 그 익년에 개창사업에 착수하고 먼저 제자 타이한(太範)과 지쯔에(實慧) 등을 고야산에 파견하여 실지조사를 시키고 그 후에 쿠카이가 산에 올라, 고우닌 10년 산상(山上)에 가람(伽藍)을 건립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수도인 교또에서 멀고 산이 높은데다 산속의 공사였기 때문에 건축자재나 인부의 식료 등이 부족하여 쿠카이는 유지의 사람들에게 서간을 보내어 원조를 의뢰한 것 등이 ��고야잡필집(高野雜筆集)��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덴죠(天長) 년간이 되면 고야산상에 다보탑, 강당, 승방 등이 건립되어 금강봉사(金剛峯寺)라고 하였습니다.
덴죠 9년에는 고야산에서 만등회(萬燈會)가 처음으로 열리고, 쇼와(承和) 원년에는 대탑, 서탑도 건립되어 쿠카이의 만년에 고야산은 확고한 진언종의 근본도량으로 된 것입니다. 고야산의 개창이야말로 쿠카이의 생애에 있어서 최대의 사업이었습니다.
헤이안 초기의 불교를 상징하는 것은 사이쵸의 비예산(比叡山)과 쿠카이의 고야산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남도의 여러 큰 절들은 대부분 관사(官寺)이거나 유력한 씨족들의 절이었고, 또한 도시불교의 성격을 띄고 있음에 비하여, 비예산의 일승지관원(一乘止觀院)과 고야산의 금강봉사는 함께 구도자의 수행도량이고 산악불교의 성격을 가지고 있것이 특색입니다. 여기에는 학문불교, 종교의례 중심의 불교에서 구도수행의 불교라고 하는 반성이 불러일으켜지고, 불교 본래의 모습에로의 자각이 높여지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후의 일본불교 속에서 고야산이 완수한 종교적인 역할을 생각할 때 쿠카이의 고야산 개창의 의의는 지극히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동사(東寺)의 경영
쿠카이의 교단활동 중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동사를 칙사 받아 교또에서의 진언종 근본도량으로 한 것입니다. 동사와 서사(西寺)는 엔랴꾸(延曆) 13년(794), 헤이안 천도 후 곧 착공한 것입니다. 고우닌 14년(823) 쿠카이 50세 때 이 절을 칙사 받아 여기에 쿠카이의 많은 제자가 모여들어 진언종의 유력한 종단이 성립한 것입니다. 그래서 덴죠2년에 강당이 건립되어 동사에서 인왕경법을 닦아 진호국가, 전화수복의 기원을 한 것입니다. 이어서 덴죠3년에 5중탑의 건립에 착수하게 되는데, 그 5중탑은 쿠카이의 재세 중에는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관정당, 종루, 경장 등이 완성되어, 동사를 교왕호국사라고 칭하고 진호국가의 근본도량으로 한 것입니다.
사회적 활동
이보다 앞서 쿠카이는 고우닌 10년 고야산개창의 대사업이 한창일 때 공사를 제자들에게 맡기고 하산하여 한 때 나까쯔까사쇼(中務省)의 관리직에 종사했는데 이것은 쿠카이의 정치적인 수완을 엿볼 수 있는 일면입니다. 고우닌 12년에는 시꼬꾸 사누끼(讚岐)의 만농지(萬濃池)의 수축사업을 완성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덴죠 5년에는 사꾜꾸죠(佐京九 ?)에 있는 후지와라(藤原三守卿)의 토지를 기증 받아 여기에 서민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고 종예종지원(綜藝種智院)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이 학교의 교육이상과 교육방법, 교육조건 등을 서술한 것으로 「종예종지원식병서(綜藝種智院幷序)」가 있습니다(��성령집��권10). 여기에서 쿠카이의 교육사상을 엿볼 수가 있는데, 아쉽게도 이 학교의 경영은 쿠카이의 뜻을 계승하지 못하고 겨우 20년 후에 폐교하게 됩니다. 그러나 쿠카이가 보인 서민교육에의 열의와 그 실행력, 그리고 교육이념은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문예방면의 활동
쿠카이는 위대한 종교가이고 사상가인 동시에 또한 문예방면에도 다채로운 활동을 남기고 있습니다. 먼저 서도의 방면에는 사가천왕과 타찌바나(橘 逸勢)와 함께 삼필(三筆)이라고 불려지고, 현재 쿠카이의 진필이 많이 남아 있는데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시문(詩文)에도 능하여 쿠카이의 입당구법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계속 쓴 시문과 서간, 비문, 원문, 상소문 등은 ��변조발휘성령집(遍照發揮聖靈集)��(줄여서 성령집이라고 함.)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시문의 이론을 기술한 것으로 ��문경비부론(文鏡秘府論)��과 ��문필안심초(文筆眼心抄)��가 있고, 일본에서의 최초의 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전예만상명의(篆隸萬象名義)��라고 하는 것도 있습니다.
다음에 쿠카이의 사상활동에 대해서는 이것이 밀교사상의 조직 대성(大成)이라고 하는 중요한 측면이기 때문에 제2부 진언밀교사상(眞言密敎思想)의 단원에서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제2부 진언밀교의 사상
제1 밀교사상의 조직화
여기서부터는 밀교사상의 가장 특징적인 것에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 보겠습니다. 밀교사상은 긴 밀교의 사상사의 흐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많은 밀교문헌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그들 밀교문헌에는 여러 가지 사상이 설해져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하나로 정리된 사상을 포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정은 중국밀교를 봐도 마찬가지 입니다. 선무외와 일행, 금강지, 불공, 혜과 등 뛰어난 밀교의 학자들은 중국밀교라는 하나의 종파를 성립시키기 위해 종단의 조직이나 여러 사원의 건립에는 현저한 성과를 보이고 있으나 밀교사상을 조직화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두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밀교를 보는 것만으로는 밀교사상의 특징적인 것을 파악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밀교사상을 조직적으로 받아들이고 밀교사상의 특징을 밝히는 일은 홍법대사 쿠카이에 의해 비로소 이루어지게 됩니다. 쿠카이의 수많은 저작들을 보면 밀교를 진언종 또는 진언밀교로 받아들이고 그 한 종파의 성립역사와 교학사상의 특징을 밝히고자 노력한 흔적
이 많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진언밀교의 상승과 홍통의 대강을 보이기 위해 ��비밀만다라교 부법전(秘密曼茶羅敎付法傳)��과 ��진언부법전(眞言付法傳)��을 저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밀교의 특색을 현교와의 비교에서 밝힌 것으로 ��변현밀이교론(弁顯密二敎論)��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사상계나 불교의 소승(성문과 연각)과 대승의 제종(법상종.삼론종.천태종.화엄종)과의 대비 속에서 밀교의 특색을 밝히고, 한편으로 보리심의 전개 순서로도 볼 수 있는 ��비밀만다라십주심론(秘密曼茶羅十住心論)��과 ��비장보약(秘藏寶 ?)��이라고 하는 중요한 저작을 남기고 있습니다.
또한 진언밀교의 가장 중요한 사상이고 인도밀교, 중국밀교에서도 강조된 즉신성불사상을 받아들여 그 이론과 실천의 양면에서 상세히 논술한 것이 ��즉신성불의(卽身成佛義)��입니다. 그리고 법신설법(法身說法)이라고 하는 밀교 독자의 사상을 종래 대일여래의 설법이라고 하는 전승의 영역을 넘어서, 진언과 표현된 문자가 진실한 것이라 보고 법신설법의 실상을 밝힌 ��성자실상의(聲字實相義)��와, 자상(字相). 자의(字義)를 설하여 진언다라니의 본질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해명한 ��훔자의(훔字義)��라고 하는 저작도 있습니다. 그리고 보리심의 사상과 삼매야계의 사상에 대해서도 그 참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더우기 현대적인 문제로 생각되는 인간관이나 불타관의 문제, 진실한 삶의 길 등이 쿠카이의 사상에 의해서 밝혀지고 있는 것입니다.
쿠카이의 저작활동은 밀교사상의 재검토와 조직화에 집중되어 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또한 밀교의 일본적 전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제 2 밀교사상의 교판
1. 진언밀교의 교판
밀교사상의 교판이라고 하면 좀 어려운 것 같지만, 「교판(敎判)」이라고 하는 말은 불교용어로 흔히 사용되고 있는 「교상판석(敎相判釋)」을 말합니다. 가르침이 여러 가지 있을 경우 그것을 비교하고 구별하여 우열을 명확히 하는 것을 교판사상이라고 합니다. 천태종, 화엄종, 법상종 등 중국의 불교에서는 교판이 활발하게 행하여졌습니다. 따라서 쿠카이도 진언종을 열면서 교판이라고 하는 하나의 방법론을 사용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것과 비교해서 어디가 어떻게 우수한가, 또는 어떤 점에서 밀교가 뛰어난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를 논증하는 것이 교판입니다. 진언밀교의 특질을 밝히기 위해 여러 가지 사상, 여러 가지 종교와 비교를 하고 그리고 그 비교속에서 밀교가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밀교는 확실히 우수한 가르침이다 고 하는 것을 논증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쿠카이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현교와 밀교를 비교해서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십주심의 사상(십주심의 교판)이라고 하는 주심(住心)사상을 근저로 하면서 여러 가지 사상과 종교를 나열하고 그 위에 밀교의 특징을 명확히 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입니다. 결국 쿠카이의 교판사상은 첫째는 현밀이교의 교판이고, 둘째는 십주심의 교판이라는 방법을 써서 밀교의 특색을 밝히려 한 것입니다.
2. 현밀이교의 교판
먼저 첫째로 현밀이교의 교판에는 중요한 문헌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 하나는 고우닌 6년(空海 42세)에 쓴 밀교경론을 옮겨적는 서사(書寫)에 대한 의뢰의 서간입니다(��성령집�� 권9). 그 내용은 밀교의 경전을 각지에 보급시키도록 하기위해 밀교경전을 서사해 줄 것을 의뢰한 편지를 여러 지방에 보낸 것입니다. 그 편지의 전단에 밀교는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는 것을 매우 간결하게 밝힌 문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를 쓴 시기와 거의 비슷한 무렵에 ��변현밀이교론��을 쓰고 있습니다.
이 서간과 ��변현밀이교론��과는 내용적으로 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데, 결국 서간 쪽은 취의만을 쓴 것이고 ��이교론��은 자료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경론을 인용하여 비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편지와 자료를 중심으로 한 ��변현밀이교론��을 살펴보면 쿠카이가 밀교를 명확히 하기 위해 현교와의 비교라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에 쿠카이가 현밀이교론의 교판 속에서 무엇을 밀교라고 말하고 있는지 그 요지를 파악하여 다섯 가지로 들어 보겠습니다.
⑴ 능설(能說)의 불신(佛身)
첫째로 가르침을 설한 능설의 부처님에 대한 차이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설한(佛說) 경전 가운데 현교는 보신(報身)과 응신(應身)의 부처님이 설한 것이고, 밀교는 법신(法身)의 부처님이 설했다는 것입니다.
느닷없이 이렇게 말해서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인도의 대승불교에서는 부처님에 삼신(三身;법신.보신.응신)이 있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법신(dharma-kaya)이 가장 근원적인 부처님이고 다음이 보신(vipaka-kaya)이고 응신(nirmana-kaya)의 순서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응신을 변화신(變化身),또는 응화신(應化身)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석가모니부처님을 말합니다. 그리고 보신은 수행을 하여 부처가 된 부처님인데 석가모니부처님이 아니고 아미타여래나 약사여래 등 대승불교의 제불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석존은 역사적인 부처님이지만 초기 대승불교부터 제불의 신앙이 대두되게 되는데, 이 부처님을 보신의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두 부처님(보신불과 응신불)의 가장 근저에 있는 부처님 그 자체를 법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삼신설에서 현교는 보신.응신의 부처님이 상대의 근기(이해력)에 따라 이해하기 쉽게 설한 가르침이라고 쿠카이는 본 것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밀교의 경우는 법신인 대일여래가 자내증의 경지(깨달음의 내용 그 자체)를 설한 심원하고 심비(深秘)한 가르침이며, 그 가르침이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교화할 수도 있는 것 그것이 밀교라고 한 것입니다. 즉 법신이 설법한 가르침이 밀교라는 것입니다.
대승불교에서의 법신은 부처님 그 자체로서, 구체적인 설법 등의 활동을 하지 않음에 대하여, 밀교에서의 법신은 <대일여래>라고 하는 새로운 불타관을 내세우면서 그 법신 대일여래가 설한 것이 밀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교와 밀교는 첫째 그 능설의 불신(佛身)에 대해서 상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⑵ 소설(所說)의 교법
두번째의 차이는 소설의 교법, 즉 설해진 가르침의 내용에 대한 차이를 들고 있습니다.
현교의 가르침의 내용은 인분의 가르침이라고 하여 인분가설(因分可說)의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인(因)이라고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의 단계, 수행의 프로세스(過程)입니다. 그러므로 미혹한 사람에 대하여 이러이러한 수행을 하라든가, 또는 수행이 조금씩 나아지면 이번에는 이 수행을 하라는 식으로 수행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가르침입니다. 그것을 「권(假)의 방편(수단)」이라고 하는데, 이와 같이 이해하기 쉬운 수행의 방법을 설한 것이 현교의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하여 밀교는 과분가설(果分可說)이라고 하여 깨달음의 내용, 깨달음의 경지 그 자체를 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내증의 법이라고도 합니다. 법신의 깨달음의 경계 그 자체를 설하고 있다는 의미이고, 이것이야말로 진실.심비한 가르침이다고 쿠카이는 이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밀교는 설해진 가르침의 내용도 매우 깊이가 있는 것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밀교의 심비성(深秘性), 또는 신비성(神秘性)이라고 하는 의미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⑶ 수행의 방법
수행의 실제 방법에 있어서 현교는 기본적으로 대승보살의 「육바라밀의 수행」입니다. 이것은 ��반야경��에서 시작되어 대승불교에서 널리 실천되고 있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여섯 가지의 피안에 이르는 수행으로서 육바라밀이라고 합니다.
그것에 대하여 밀교에서는 「삼밀가지(三密加持)의 수행」이라고 하는 독특한 수행이 있습니다. 이것은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요컨대 삼밀가지란 부처님과 내가 하나가 되고, 가지감응(加持感應)하여 부처님이 내게 들어오고 내가 부처님에게 들어가서(入我我入) 일체(一體)가 되는 수행방법입니다.
그밖에 밀교에서는 수법과 관법을 중시하여 아자관(阿字觀), 월륜관(月輪觀) 등 밀교적인 수행방법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밀교에는 현교에서 설해지지 않은 새로운 밀교적인 수행방법이 있다는 것이 특색이기도 합니다.
⑷ 성불의 빠르고 드딤
성불의 지속(遲速)에 대해서 현교의 가르침에는 무한히 긴 시간 동안 수행을 하여 비로소 부처가 된다고 하는 「삼겁성불(三劫成佛)」을 주장합니다. 겁(kalpa)은 셀 수 없는 긴 시간, 무한히 긴 시간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셀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긴 세월에 걸쳐 수행한다는 것은 결국 이 세상(現生)에서 수행하더라도 바로 부처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수행은 쉬운 것이 아니므로 보살도는 꾸준히 실천하지만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 최종 목적인 성불에 이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밀교는 성불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고 이 몸 그대로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 깨달아 성불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하는데, 그것을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성불(成佛)을 둘러싸고 「삼겁성불」이냐 「즉신성불」이냐 하는 성불의 지속에 대한 문제는 현밀차별의 사상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특히 즉신성불에 대해서는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빠른 지름길임을 혜과아사리에게서 배우고, 쿠카이가 귀국 후 바로 쓴 ��쇼라이목록��에도 현교는 삼겁성불을 설하지만 밀교는 즉신성불을 설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우닌 6년경에 ��변현밀이교론��을 저작하고 거기에서 ��대일경��과 ��금강정경��에 있는 현생에 바로 성불한다는 증문(證文)과, 용맹(龍猛)보살이 지은 ��보리심론(菩提心論)��에 「보리심을 일으키고 보리심계를 지키고 삼마지(三摩地;定)에 들면 부처님과 일체가 되어 부모에게서 태어난 육신 그대로 속히 위대한 각자(覺者)인 부처님의 경지를 증득할 수가 있다」고 한 것에 근거하여 즉신성불이라는 말이 비로소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설해져 있는 사상만으로는 즉신성불사상이 충분히 해명 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쿠카이는 그 후 ��삼매야계서(三昧耶戒序)��와 ��즉신성불의(卽身成佛義)�� 등을 저작하여 즉신성불하는 가능성의 원리와 실천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정립하였습니다.
그 요지를 살펴보면, 사람들에게는 본래 청정한 깨달음의 마음(淨菩提心)이 있기 때문에 그 보리심이 있는 것을 잊지 않고 항상 자각하여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의 움직임과 몸의 동작, 말하는 언어를 모두 올바르게 하고(十善戒), 또한 손으로 부처님의 인(印)을 맺고 입으로 부처님의 진실한 말씀인 진언을 외우고 마음을 삼매의 경지에 두어 부처님과 일체가 되는 수행(삼밀가지의 행)을 하면, 부처님의 자비심이 수행자의 마음 속에 비치고 불심을 체득하여 부처님과 일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삼밀가지하면 속히 성불한다」고 설한 것입니다.
⑸ 교익(敎益)의 우열
마지막으로 교익의 뛰어남과 열등함(勝劣)을 들고 있습니다.
교익이라는 것은 불교에서는 이익이라고도 합니다. 교익의 승열이란 가르침의 이익이나 감화력 등의 효과가 우수한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 차이를 말합니다.
현교에도 교익에 대하여 더 말할 나위없이 훌륭하게 설해져 있지만, 극악한 사람이라든가 무불성(無佛性)의 사람(一闡提;icchantika 斷善根.信不具足.極欲 등으로 번역하며, 成佛하는 印을 갖지 못한 이를 말함����������譯註) 등 어떻게도 손을 쓸 수 없는 사람까지를 구한다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고 하는, 즉 구제나 교화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하여 밀교는 어떠한 악인이라도 죄가 깊은 사람이라도 모두 포용하고 구제할 힘을 가지고 있는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밀교의 문헌 속에는 이러한 사실을 자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다라니신앙에 마지막 부분을 보면 다라니의 공덕(이익)이 쓰여져 있습니다. 이 다라니를 외우면 여러 가지 것, 무엇이든지 구해지는 것으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한 그 공덕은 엄청난 것이고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교익의 승열이라는 것도 이런 것에서 나오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쿠카이는 현교와 밀교를 끝까지 알고 비교하여 그 결론으로서 자신이 지금 보급하고 있는 진언종, 즉 진언밀교는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감히 보급시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그러기 위한 한 가지 방법론으로 당시 유행한 교판사상을 도입하여 이로써 한 종파의 독립을 선언한다는 방법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쿠카이는 만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저작 속에서 현교와 밀교의 차이를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현교와 밀교의 차이라는 것을 통하여 밀교의 우월성과 밀교를 보급하고자 하는 쿠카이의 태도가 전 생애를 통해 일관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제 3 십주심(十住心)의 사상
1. 십주심 사상의 구성
열 가지의 주심(住心)
다음에 쿠카이는 십주심이라고 하는 사상으로 밀교의 특징을 밝히고자 했습니다. 이것을 쿠카이의 십주심 사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심(住心)사상은 이미 쿠카이가 가장 존중했던 ��대일경��에 있습니다.
��대일경��의 제1장이 「주심품(住心品)」이라는 것인데, 쿠카이는 그 「주심품」에 주목하여 사상적 영향을 매우 크게 받고 있습니다. ��대일경��「주심품」에는 미혹한 사람이 보리심을 일으켜 최후에 밀교의 신앙에 들어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쿠카이는 당시의 사상계, 또는 불교계에 적용시켜서 헤이안 초기에 있어서의 현대적인 사상 문제로서 명확히 하고 한편으로 일상적인 우리들의 마음이 차제로 향상하여 본래 마음의 자태를 찾아내어 가는 과정을 열 단계로 나눈 것이 십주심의 사상으로 된 것입니다. 이것도 쿠카이의 근본적인 사유의 체계로 한다면 열 가지로 한정시키지 않아도 좋고, 좀더 수를 늘여도 좋은 것입니다. 결국 어떠한 사상이라도 그 시대의 사상이나 주장을 전부 문제로 하게 되고, 그리고 비교사상론적인 정리를 하면서 특정의 사상을 명확히 하여 그 중에 어느 것이 가장 좋은가 하는 방향성도 세우게 되는 것이 비교사상연구의 학문하는 방식인 것입니다.
쿠카이가 24세 때 쓴 것으로 일종의 출가선언서라고도 말하는 ��삼교지귀��가 있습니다. 그것은 유교.도교.불교에 대한 비교사상론의 책입니다. 쿠카이는 유학을 공부하고 도교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교사상의 깊이에 도저히 견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참으로 깊이 궁구하기 위한 가장 뛰어난 사상과 행동은 불교에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 ��삼교지귀��입니다. 이 ��삼교지귀��는 방법론적으로 말하면 이미 비교사상론적인 연구서라고 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쿠카이가 젊은 시절에 익혔던 비교사상론적인 방법론이 만년에 쓰여진 십주심의 사상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 십주심의 사상을 쓴 것이 ��비밀만다라십주심론(秘密曼茶羅十住心論)��(10권)과 ��비장보약(秘藏寶약)��(3권)입니다. 이것은 덴죠 7년경(830)의 원숙한 쿠카이의 만년의 대표적인 저작이었다는 것과, 또 하나는 이 책이 덴죠의 「육본종서(六本宗書)」의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쥰나천왕(淳和天皇)이 당시 불교의 여러 종파 속에 가장 우수한 학자에게 여러 종파의 사상을 써서 제출하라고 하는 칙명에 의해 제출된 책을 「덴죠의 육본종서」라고 합니다. 여섯 명이 제각기 자신의 종파의 사상을 정리하여 제출하였고, 진언종은 쿠카이가 칙명을 받아 써 낸 것인데, 서문에도 그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쿠카이가 가장 원숙한 시대에 가장 심혈을 기우려 쓴 것이 이 책입니다. 그리고 진언종에서는 10권본을 광본(廣論)이라하고 3권본을 약본(略論)이라고 하는데, 내용적으로는 모두 십주심에 대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십주심이란, 제1 이생저양주심(異生저羊住心), 제2 우동지재주심(愚童持齋住心), 제3 영동무외주심(영童無畏住心), 제4 유온무아주심(唯蘊無我住心), 제5 발업인종주심(拔業因種住心), 제6 타연대승주심(他緣大乘住心), 제7 각심불생주심(覺心不生住心), 제8 일도무위주심(一道無爲住心), 제9 극무자성주심(極無自性住心) 제10 비밀장엄주심(秘密莊嚴住心)입니다. 이 제10의 비밀장엄주심이 밀교의 수행을 완성한 사람의 주심(住心)이고 자못 밀교적인 말입니다.
① 이생저양주심
첫째의 「이생저양주심」이라는 말은 ��대일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생(異生)이란 범부라는 말과 같이 「미혹한 사람」이라는 의미이고, 저양(저羊)이라는 것은 숫양을 말합니다. 결국 동물과 같이, 동물적인 욕망 그대로 살고, 미혹에 미혹을 거듭하고 있는 사람, 종교나 도덕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인간성이 최저인 사람들이 꽤나 있다고 하는 것은 쿠카이의 두 가지 저작을 읽어보면 놀랍게도 오늘날 우리사회에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양상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표현방법입니다.
헤이안 초기의 사회도 역시 혼란스러웠던가 하고 생각하게 하는 문장입니다. 요컨대 거기에는 도덕도 종교도 없고 사람이 마치 동물적인 욕망 그대로 노닥거리고 더우기 물건을 빼앗고 사람을 죽이고 도무지 어떻게 구제할 수 없는 인간들의 집단이라고 써고 있습니다. 쿠카이는 이러한 인간의 가장 낮고 저열한 밑바닥의 정신 생활을 참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이생저양주심입니다.
② 우동지재주심
둘째는 「우동지재주심」으로 우동(愚童)이란 어린아이와 같이 그다지 지혜가 발달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지재심(持齋心)은 불교의 용어인데, 인도의 재가신자는 한 달 중에 6일간은 음식을 먹지 않고 절약하여 그 몫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그것을 지재(持齋)라고 합니다. 요컨대 자기가 먹을 음식을 줄여서라도 가난한 이웃에게 베푼다고 하는 베푸는(布施) 마음을 일으킨다는 의미입니다.
쿠카이는 여기에서 도덕적으로 눈을 뜬 사람의 모습을 여러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나쁜 사람이 마음을 고쳐먹고 부모에게 효도하여 후세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착한 사람이 된 중국의 실예를 들고 있는 것이 두번째의 마음입니다. 불교적으로 말한다면 5계 10선을 잘 지키고 있는 사람입니다. 5계와 10선을 지킨다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첫번째의 이생저양심에서 전혀 구제할 수 없던 사람이라도 언제까지나 구제할 수 없는 불가능의 존재가 아니고, 두번째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두번째의 우동지재심의 문장도 매우 격조 높고 첫머리의 몇줄만 읽어봐도 대단한 문장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③ 영동무외주심
세째의 「영동무외주심」의 영동(영童)은 갓난아기라는 뜻이고, 무외(無畏)라고 하는 것은 두려움이 없고 마음이 평온함을 말합니다. 이것은 인도의 여러 가지 종교(天乘)의 사람들이 수행하고 신앙하여 마음의 평온을 얻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인도의 여러 가지 종교의 신앙이나 중국의 도교, 그밖의 신앙에서도 일시적인 평안은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편안해 하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④ 유온무아주심
제4주심에서 제10주심까지에서는 불교적 신앙의 여러 가지 양상을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구분한 것입니다. 먼저 네번째의 「유온무아주심」이라는 것은 현상계의 모든 개체적 존재는 오온(五蘊)이 가화합하여 존재하고 있는 것이어서 거기에 고정적인 자아(自我)는 인정될 수 없다는 사상입니다. 불교에서는 몸을 색(色;rupa)이라 하고, 마음의 활동을 분석하여 수(受;vedana;감수작용), 상(想;samjna;표상작용), 행(行;samskara;의지작용), 식(識;vijnana;의식작용)의 네 가지로 하여 이 다섯 가지가 일시적으로 화합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오온(panca skandha)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거기에 변하지 않는 고정적인 자아(常.一.主宰性을 띠는 것)는 없기 때문에 무아(無我;anatman)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유온무아를 자각하고 있는 것은 소승 가운데 성문승(聲聞乘;sravaka)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⑤ 발업인종주심
다섯째 「발업인종주심」이라는 것은 소승 가운데 연각승(緣覺乘;pratyeka-buddha)의 주심으로 12인연을 관찰하여 무명과 업의 종자(因)를 제거하고, 괴로움을 소멸하여 적멸의 평안을 실증하는 경지를 말합니다.
이상의 두 가지 주심은 불교 가운데 성문과 연각의 주심이지만 구체적으로 원시불교에서 부파불교시대의 불교사상과 수행법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성문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듣고 수행하여 번뇌를 모두 꾾어서, 부처는 될 수 없지만 그 아래의 아라한(아라한)의 지위까지 나아가기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연각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고 12인연, 제법연기(諸法緣起)라고 하는 연기관(緣起觀)을 스스로 조용한 곳에서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은 이로, 적정한 고독을 좋아할 뿐 아무에게도 설법교화하지 않으며 그 결과를 혼자서 누리려 하는 사람들을 가리킴니다. 그래서 이 성문과 연각의 소승인들은 대승의 보살승에 비하면 이타의 대비심이 없는 것입니다.
⑥ 타연대승주심
여섯째의 「타연대승주심」이라는 것은, 특정한 사람들에 대해서만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없이 평등하게 자비심을 일으키고 이타(利他)의 행을 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대승불교에 공통적인 특색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일체 사물은 환상과 그림자와 같이 실체가 없고 다만 마음의 움직임만이 존재한다고 하는 유식(唯識)의 입장을 나타내는 법상종(法相宗)의 가르침을 배워 깨달음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⑦ 각심불생주심
일곱째의 「각심불생주심」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 사물의 본성은 상대를 떠난 공(空;sunya), 즉 불생불멸이라고 깨닫는 마음을 말합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반야공관과 팔부중도(八不中道)를 설한 중관사상(中觀思想) 즉 삼론종(三論宗)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말합니다.
⑧ 일도무위주심
여덟째의 「일도무위주심」이란, 일도(一道) 즉 일불승(一佛乘)에 의해서 진여무위(眞如無爲)를 깨닫는 마음을 의미하는데, 때로는 여실일도심(如實一道心), 여실지자심(如實知自心), 공성무경심(空性無境心)이라고도 합니다. 요컨대 모든 사람들에게 불성이 있고 심성은 청정하며, 그리고 모든 사물도 대립을 떠난 본래적 입장에서 보면 하나요 청정이며 자기와 남의 구별도 없다고 자각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이 주심은 천태종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⑨ 극무자성주심
아홉째의 「극무자성주심」이란, 일체 사물은 고정된 성질을 갖지 않는다고 하는 일체법의 무자성(無自性)의 이법을 통달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 주심은 화엄종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상의 제6주심부터 제9주심까지는 차례대로 법상종.삼론종.천태종.화엄종의 주심이고, 거기에 교판적인 구별이 되어 있는 것인데, 그러나 또한 밀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순차적으로 미륵보살, 문수보살, 관세음보살, 보현보살의 삼매이고 함께 대일여래의 보문총덕(普門總德)을 부분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⑩ 비밀장엄주심
그런데 마지막의 「비밀장엄주심」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신.구.의 삼밀(三密)을 가지고 부처님의 자증(自證=깨달음)의 극위(최고위)를 장엄하는 마음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심의 근원적인 자리를 깨달은 마음, 또는 자기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아는 마음(如實知自心)으로 일체의 것에 본래 갖추어져 있는 가치에 눈 뜨고, 세계의 진실한 모습을 깨닫는 가장 궁극적인 경지입니다. 이것은 진언종의 가르침을 배워 진언종의 수행을 완성했을 때에 도달하는 마음입니다. 또한 만다라에 완전히 합일된 마음, 또는 마음의 만다라(心曼茶羅)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현교는 표면적으로 티끌을 털어버리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밀교는 깨달음(成佛) 그자체에 직접 부딪쳐서 그 비밀의 장(藏)을 여는 것이므로 이 비밀장엄주심이야말로 최고의 주심이고 앞의 아홉 가지 주심은 제10주심에 도달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상의 열 가지 주심(주심)을 좀더 이해하기 쉽게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비밀만다라십주심
제 1주심:이생저양심-삼악도(조금도 善心이 없는 자리)---------윤리이전의 세계 ������
제 2주심:우동지재심-人 乘(오계.십선을 지키는 자리)-------------윤리적 세계 ��������세간도 ����
제 3주심:영동무외심-天 乘(四禪.六行을 닦는 자리)-------------종교심의 자각 ������ ��
제 4주심:유온무아심-성문승(四聖諦를 관하는 자리)------------------無我를 앎 ������ 소 승 ��
제 5주심:발업인종심-연각승(12因緣을 관하는 자리)-----자기자신의 무지를 제거 ������ (二乘) ����현교
제 6주심:타연대승심-법상종(萬法唯識을 관하는 자리)---사람들의 고뇌를 구제함 ������ 권대승 ��
제 7주심:각심불생심-삼론종(八不中道를 관하는 자리)------------일체는 空이다 ������ (三乘) ��
제 8주심:일도무위심-천태종(一念三千.智境不二를 관하는 자리)-모두가 진실이다 ������ 실대승 ����
제 9주심:극무자성심-화엄종(事事無碍法界를 관하는 자리)------대립을 초월한다 ������ (一乘)
제10주심:비밀장엄주심-진언종(三密妙行을 닦아 卽身成佛하는 자리)-무한의 전개 ����비밀불승 ���� 밀교
구현일밀(九顯一密)과 구현십밀(九顯十密)
이와 같이 제1주심부터 제10주심까지 열거하고, 1에서 9까지를 현교라 하고 제10만을 밀교라고 하여, 현교와 밀교라고 하는 커다란 구분을 한 것이므로 십주심의 사상은 「구현일밀」의 사상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고 1에서 10까지는 결국 보리심의 전개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마음의 상태가 그대로 밀교 아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구현십밀」이라고 합니다. 이 두 가지 의미에서 밀교가 지닌 포섭과 융화의 사상, 그리고 현실긍정의 철저한 형태를 십주심 사상은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십주심 사상은 교판 사상만이 아니고 결국 보리심의 전개와 그 위치, 그 사상 체계로서의 주심사상인 것입니다. ��대일경��의 「주심품」에 보리심의 전개라고 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쿠카이도 십주심을 설하면서 9현1밀보다도, 9현10밀의 사상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십주심사상의 특징
십주심사상의 장점은 어떤 면에 있는가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인간 마음의 여러 가지 모습
십주심 가운데 제1에서 제3까지는 세간의 주심(住心)이라 하고 제4, 제5의 주심은 소승의 주심, 그리고 제6에서 제9까지는 사가(四家)의 대승주심, 제10이 밀교의 주심입니다.
십주심의 사상은 사람들의 마음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제1주심 제3주심 제10주심의 세 가지로 구성하여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결국 제1주심의 욕망 그대로 살아서 도덕도 무엇도 되는대로 마구하는 인간의 마음, 제2주심과 같이 도덕적으로는 어느 정도 눈을 뜨고 있지만 종교로서는 불교의 깊은 신앙에 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사람, 제10주심의 불교 특히 진언밀교의 깊은 신앙을 회득하여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우리들 마음의 여러 가지 모습으로서 십주심 사상을 생각하면서 생각나는 것은 나 자신의 정신생활이라는 것도 1에서 2로, 그리고 2에서 10에로 왔다갔다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비밀장엄주심의 아득하고 훌륭함을 우러러 보면서도 내 마음은 1에서 2를 왔다갔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1주심의 부분을 읽어보면 인간의 죄악이라고 하는 것이 자세히 표현되어 있는데, 제2주심이 되면 어렴풋이 구원이 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겨울의 마른 나무숲도 언제까지나 마른 숲이 아니고 봄이 되면 싹이 트고 꽃이 피듯이, 그리고 깊은 산의 얼음도 언제까지나 얼음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여름이 되면 얼음이 녹아 시원한 물이 되어 흘러가는 것처럼 인간도 언제까지나 악인 것이 아니고 어떤 동기가 있으면 반드시 마음이 선으로 향하여 구원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1과 2와 10을 한데 묶어서 그 속에서 밀교적인 신앙을 어떻게 형성하고 살릴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비교사상론적 고찰
또한 여러 가지 사상과 종교라는 것을 구조론적으로 고찰해 보는 일, 그리고 그것을 비교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것은 헤이안 초기의 쿠카이의 방법론이기도 하지만 오늘날에도 그러한 방법론은 당연히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음의 만다라
마지막으로 비밀장엄주심의 핵심은 대체 무엇이며, 어떤 마음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십주심론��과 ��비장보약��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보면 거기에는 역시 즉신성불한 때의 마음이 곧 비밀장엄주심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쿠카이는 그것을 「마음의 만다라」 또는 「자심(自心)의 불(佛)」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만다라」라든가 「자심불」이라는 생각은 언제나 쿠카이의 사상에 근저를 이루는 것이라고 봅니다. 쿠카이의 사상에서는 그러한 「인간의 마음의 깊이」라고 하는 것을 항상 강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밀교가 목표하는 것도 바로 그곳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와 같이 쿠카이는 밀교의 진실을 밝히고 진언종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밀교의 장점과 우수성.우월성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그렇게 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현밀이교론」 및 「십주심」 사상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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