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이것이 염불이다

수선님 2022. 6. 5. 13:51

이것이 염불이다

 

오직 아미타불만 생각하면서 다른 생각 없으면 손가락 튕길 수고도 없이 극락세계에 왕생한다.

一句阿彌陀無別念 不勞彈指到西方 - 육조六祖慧能선사

 

믿음과 발원이 견고하면 임종 시 열 번 혹은 한 번만 염불해도 역시 반드시 왕생합니다.

若信願堅固 臨終十念一念亦決得生 - 우익藕益대사

 

만일 때가 되어 숨이 끊어지려 할 때 한 생각이면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국토에 왕생할 수 있습니다. 소리를 내지 않고 부처님을 그저 기억하고 생각하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 남회근南懷瑾선생

 

확고한 신심信心만 있다면 업을 지닌 채 반드시 왕생할 수 있습니다.

- 남회근선생

 

오역십악五逆十惡을 지은 죄인이라도 임종순간에 지옥의 모습이 보일 때 정신과 의식을 놓지 말고, 선지식이 염불을 가르쳐 주거든 큰 두려움과 부끄러움으로 살아온 날들을 깊이 참회하면서 간절하게 염불하십시오. 그러면 고작 몇 번의 염불소리와 함게 목숨이 끊어질지라도,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피력으로 극락왕생할 수 있습니다.

五逆十惡之人臨終地獄相見若心識不迷有善知識敎以念佛其人生大怖畏生大愧悔雖念數聲卽便命終亦可仗佛慈力接引往生 - 인광대사

 

믿음과 발원만 갖추면, 비록 아비지옥에 떨어질 극악무도한 죄인이라도 오히려 열 번의 지극하고 간절한 염불 공덕에 의지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피를 받아 극락에 왕생 할 수 있습니다.

信願若具 雖罪大惡極 將墮阿鼻地獄之流 尙可以仗十念之力 逕蒙佛慈接引往生 - 인광대사

 

부처님의 한편생 가르침인 3장12부 자체가 방대한 염불법문이다.

總佛一代時敎 三藏十二部得非總一大念佛法門耶 - 철오徹悟선사

 

* 철오선사는 「이따금 무지한 무리들이 “선종 문중의 수행인들은 염불해서는 안된다.” 고들 말하는데, 이는 단지 염불이 뭔지 모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선종이 뭔지도 진짜로 안다고 할 수 없다. 단지 선종과 교종의 두 법문만 이러한 것이 아니라, 온 천하의 사농공상과 제자백가의 어느 누구라도, 설령 염불을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심지어 부처님을 전혀 모르는 자라 할지라도, 그 역시 염불법문 밖으로 벗어날 수가 없다.[往往無知之輩謂宗門中人不宣念佛此不雖不知念佛豈眞知宗哉不雖宗敎兩門如是卽普天地下士農工商諸子百家縱不欲念佛不知佛者亦不能出於念佛法門之外]」라고 하였다.

 

아미타불이라는 명호에 대장경의 가르침이 조금도 빠짐없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一句佛號包括一大藏敎 罄無不盡 - 인광대사

 

 

아미타불 명호를 한번 부르면 부처님께서 한평생 설하신 모든 경전을 다 읽은 것과 같다. - 정광법사

 

산란한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한번 염불하거나, 서방 극락세계가 있음을 믿고 그곳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깊은 마음 하나만을 갖추었더라도 임종 시에 반드시 왕생할 수 있습니다. - 남회근 선생

 

만일 여러분이 꿈속에서도 낮과 같이 부처님 명호를 생각할 수가 있다면, 이것이 항상 염불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마음이 지금도 어지럽지 않고 임종 순간에도 어지럽지 않으면, 틀림없이 정토에 왕생할 것입니다. -감산憨山대사

 

오역五逆이나 십악十惡 등의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질 운명이다. 그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그렇다. 단 하나의 호흡만 남아 있어도, 참회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진정으로 부끄러워하고 진실로 공경하며 두려운 마음을 내어 자신의 지은 죄를 깊이 후회하면서 정토왕생을 발원하라. 그리고 아미타불을 한번 내지 열 번만이라도 간절하게 부르면 확실히 정토에 왕생한다. - 정공淨空법사

 

아미타불 넉자는 최상승最上乘의 법이며 무량한 법문을 포괄한다.

一句阿彌陀佛最上乘法包括無量法門 - 담허倓虛대사

 

아미타불이란 명호는 부처님의 실다운 공덕이 다 들어가 지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명호는 만겁이 지나도 다함이 없다.

阿彌陀者含實德之所立萬劫無盡之名 – 원효元曉대사

 

아미타불 네 글자가 바로 일체 불법佛法의 대총지법문大總持法門이다. 불법이 최후에 이르면, 부처님의 한평생 교화는 바로 아미타불의 명호이다. 그러므로 일심으로 이 명호를 붙잡으면, 부처님께서 49년간 설하신 일체 법문이 모두 이 한마디 부처님 명호 안에 포함된다. 아미타불 명호는 여래의 매우 깊은 법장法藏이다. - 정공淨空법사

 

* 대총지(大總持) :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음. 즉, 아미타불 명호 안에 시방삼세불(十方三世佛)과 일체보살(一切菩薩)과 일체의 성문 · 벽지불과 팔만사천법문(경전, 다라니)과 일체의 공덕과 육바라밀과 육신통(六神通)과 아누다라삼먁삼보리 등 모든 것들이 있다는 뜻이다.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은 아미타불이 갖고 계신 공덕을 자신의 공덕으로 바꾸는 것이다. - 정공법사

 

* 정공법사는 「염불은 아미타불의 공덕을 자신의 공덕으로 바꾸는 것인데, 그 이유는 아미타불은 자성미타(自性彌陀)이며 유심정토(唯心淨土)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아미타불이든 서방극락이든 모든 것이 자성(自性)이 변하여 나타난 것이며, 내 마음이 만든 것이라는 의미이다.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는 윤회를 반드시 벗어나게 하는 지름길이다.

阿彌陀佛六字法門定出輪回之捷徑也 -서산西山대사〈선가귀감〉

 

* 「부처님께서 설하신 일체의 법문은 마음을 밝혀 구경(구경)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니라, 도(도)에 들어가는 문(문)은 많지만, 염불이 가장 빠르니라.[佛說一切法明心乃究竟入道有多門念佛是捷徑]」라는 말씀이 있다.

 

부처님 이름은 그 자체가 불가사의하다.

- 청화靑華스님

 

* 원영법사는〈아미타경요해강의(阿彌陀經要解講義)〉에서 「한 분 한 분 부처님의 이름이 지닌 공덕은 다함이 없어, 무량한 세월동안 설하려 해도 모두 다 설하지 못한다.[一一佛名所詮功德無盡卽以劫石之壽說之皆不能悉悉卽盡也]」라고 하였다.

 

아미타불 넉 자는 최대의 비밀입니다.

阿彌陀佛四字 是個最大秘密 – 남회근 선생

 

* 남회근 선생은 「염불을 오래해 가다 보면, 자성(自性)의 마음 빛이 발하여 아미타불 무량수광(無量壽光)과 맞닿아 융합하면서,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광명을 발현하여 빛납니다. 이러한 경계는 상상으로 얻을 바가 아닙니다.[念久了 自性心光發出 與阿彌陀佛的無量壽光融接了 在黑暗中也自發現光明照輝這種境界不是想像所得]」라고 하였다.

 

* 남회근 선생은 「아미타불의 무량수광(無量壽光)은 바로 우리들 자성의 마음 빛[自性心光]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면 자성심광(자성심광)이 나타납니다. 아울러 빛과 소리는 동시에 두루 가득합니다. 마음의 빛은 불성(불성)과 통하며, 불성은 스스로 마음의 빛 속에 있습니다.[阿彌陀佛 無量壽光 卽是我們的自性心光念南無阿彌陀佛 自性心光就出現了 竝且光與音聲都同時遍滿 心光通於佛性 佛性自在心光]」라고 하였다.

 

어떠한 경경이나 진언도 모두 아미타불 넉자 명호 속에 들어 있다.

- 정공법사

 

* 진언(眞言) : 진언은 신주(神呪), 비밀주(秘密呪), 총지(總持), 다라니(多羅尼)라고도 한다. 보통 주문(주문)이라고도 하는 다라니 안에는, 모든 불보살이 사바세계 온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원력과 심오하고 비밀스러운 뜻이 숨어 있다. 그러므로 이 다라니의 참뜻은 아무나 함부로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다. 다라니에 들어 있는 미묘한 뜻과 신비한 힘은 말로 이루 다 설명할 수 없고, 중생의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 하여 ‘신주’ 또는 ‘비밀주’라 하고, 또 온갖 이치가 다 갖추어져 있다는 뜻으로 ‘총지(總持)’라고도 하며, 참되고 거짓 없는 말이라는 뜻으로 ‘진언(眞言)’이라 하기도 한다.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소리가 다라니 즉, 진언이라고 하셨다. 진언 중에서 관세음보살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觀世音菩薩本心微妙六字大明王眞言)인 ‘옴마니반메훔’ 이나 능엄주(능엄주), 준제주(준제주)등이 유명하다.

 

* 진언의 기본음으로서 세 가지로 옴/아/훔이다. 남회근 선생은 「‘옴(唵)’의 뜻은 영원히 항상 머물러 있음[永恒常住], 생겨나지도 소멸하지도 않음[不生不滅],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음[不垢不淨],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음[不增不減], 법계에 두루 가득함[遍滿法界]의 의미입니다. ‘아(阿)’의 뜻은 헤아릴 수 없음[無量無邊], 끝없고 다함이 없음[無際無盡], 끊임없이 이어짐[生生不息], 광명을 열어 발함[開發光明]입니다. ‘훔(吽)’ 은 끝없는 위신력과 공덕[無邊威德], 무루과(無漏果)가 원만함[無漏果圓], 최고의 성취[無上成就], 빠른 성취[快速成就]의 뜻입니다.」라고 하였다.

 

진실로 부처님 한평생 설법이 모두 염불법문의 주석註釋이나 다름없다.

誠所謂一代時敎 皆念佛法門之註脚 - 인광대사

 

* 정공법사는 「‘아미타불’이란 명호에는 무량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허공과 법계의 다른 명칭이기 때문에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명호가 내포하는 의미를 안다면 무량수경 전체가 이 명호에 대한 해석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화엄경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전체 대장경이 바로 화엄경의 주석(註釋)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화엄경은 무량수경의 안내서입니다. 무량수경이 전체 화엄의 귀착점이고 화엄의 정수(精髓)입니다. 이처럼 천천히 체험하다 보면 이 명호의 공덕이 진실로 불가사의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미타불이라는 명호는 곧 부처님의 가르침의 전체이고, 이 한 구절의 명호가 전체 허공과 법계이며, 모든 일체의 법을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한 구절의 명호를 읽으면 모든 것을 다 읽은 것과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 인광대사는 「석가여래께서 한편생 설법하신 일체의 법문은, 비록 대승/소승/돈교/점교가 같지 않고, 권교/실교/편교/원교의 가르침이 각각 다를지라도, 일체의 중생들로 하여금 고향으로 돌아가 본래의 심성을 회복하게 할 따름이다. 그러나 (정토법문을 제외한) 모든 법문은 모두 자력(自力)에 의한 수지(修持)에만 의지할 뿐이어서, 견사혹(見思惑)을 끊고 진리를 증득해야 생사윤회를 마칠 수 있다.

 

타력(부처님의 자비력)에 의한 섭지(攝持)에는 절대 의지하지 않으며, 금생에 견사혹을 끊어야만 범부의 지위에서 벗어나 성인(聖人)의 지위에 들어가 자신의 원(願)을 성취하게 된다. 오직 정토법문만은 부천님의 서원과 섭수(攝受)의 힘에 의지하니,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위로는 부처의 과위(果位)를 이루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공덕을 가진 총지(總持)법문이라 가히 부를만 하다.[如來一代所說一切法門雖則大小頓漸不同權實偏圓各異無非令一切衆生就路還家復本心性而已然此諸法皆須自力受持斷惑證眞了生脫死絶無他力攝持令其決于現生入聖超凡成就所願也唯淨土法門仗佛誓願攝受之力誠可謂十方三世一切諸佛上成佛道下化衆生成始成終持總持法門」라고 하였다.

 

* 인광대사는 「염불이라는 한 법은 현생에 부처를 짓고, 어리석은 중생을 성인으로 탈바꿈시키는 힘이 있고. 그런데 이것은 부처님이 한평생 설하신 모든 가르침을 훨씬 초월하는 것이오.[念佛一法卽生作佛轉凡成聖其功能力用超過一代時敎一切法門之上]」라고 하였다.

 

* 설법(說法) : 불법(佛法)을 설명(說明)함. 불교(佛敎)의 교의(敎義)를 풀어 밝힘.

 

오직 아미타불의 명호만 부르는 것이야 말로 크게 신령스러운 주문이며 크게 밝은 주문이고 가장 높은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다.

專持名號卽大神呪大明呪無上呪無等等呪 -연지蓮池대사

  

 

아미타불이라는 명호는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법장法藏의 총 강령이다. 아미타불을 한 번 부르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모든 경전을 다 읽은 것과 같으니, 아미타불이라는 명호가 지닌 공덕은 진실로 불가사의하다. -정공법사

 

* 우익대사는 〈아미타경요해〉에서 「‘불가사의(不可思議)’에는 대략 다섯 가지 뜻이 있다. 첫째, 횡(橫)으로 삼계를 초월하고 미혹을 끊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둘째, 극락은 횡으로 사토(四土)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점차로 닦아 증득할 필요가 없다. 셋째, 오로지 부처님 명호만을 지니고 참선이나 관법(觀法)등 다른 방편을 빌리지 않는다. 넷째, 1일에서 7일 동안을 기한으로 정할 뿐 다겁, 다생, 다년의 세월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섯째, 하나의 부처님 명호만 불러도 모든 부천님들이 호념해주시기 때문에 일체의 모든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과 같다. [不可思議 略有五意 一橫超三界 不俟斷惑 二卽西方橫具四土 非由漸證 三但持名號 不假禪觀諸方便 四一七爲期 不藉多劫多生年月 五持一佛名 卽爲諸佛護念 不異持一切佛名]」라고 하였다.

 

* 정공법사는 「어떤 사람은 정토법문이 이처럼 좋다면, 부처님께서 무엇 때문에 다른 많은 법문을 말씀하신 것인가라고 의심한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 법문은 기연(機緣)이 성숙하여 장차 성불할 사람에 대해서만 말씀하신 것이며, 만약 아직 성불할 단계에 이르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이 넓고 크고 자세하고 깊이가 있는 다른 대승법문들을 배우게 하셨던 것을 말이다. 나는 이전에 이 염불 법문에 대해 신심(信心)을 일으켰다. 그 이유는 화엄경에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과 선재동자가 각자 서방의 정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하였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후로 나는 진지하게 반성을 하고 자세하게 생각하여 고개를 돌려 모든 경교(經敎:경전)를 버리고서 성실하게 이 법문을 수학(修學)하였다. 만약 이 분들이 나에게 준 계시(啓示)가 아니었다면, 비록 스승이 입이 닿도록 간절하게 권하고 이끌었다고 해도 여전히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 「정토법문은 맨 처음에는 깨달음의 법문을 구하는 게 생략되고, 나중에는 지혜가 터지길 기다릴 필요도 없으며, 모름지기 업장을 깨끗이 참회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번뇌를 말끔히 끊을 필요도 없으므로, 지극히 간단하고 명료하면서도 지극히 곧고 빠른 길입니다. 그러나 증득해 가면, 지극히 넓고 크면서도 원만한 구경(究竟)의 경지입니다.」라는 말씀이 있다.

 

* 법장(法藏) : 부처님 가르침인 불경(佛經)을 말함. 부처님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그에 알맞은 가르침을 펴셨으므로 부처님의 설법을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 하고, 또는 병에 맞추어 약을 쓴다 하여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고도 한다.

* 총강령(總綱領) : 모든 강령(큰 줄기, 근본)을 합친 것, 또는 모든 강령들의 우두머리.

 

아미타불이라는 명호는 믿음, 발원, 수행의 삼자량三資糧과 계율, 선정, 지혜의 삼학三學과 문혜聞慧, 사혜思慧, 수혜修慧의 삼혜三慧를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한마디의 아미타불 명호 속에 삼학, 삼혜, 삼자량이 원만히 갖추어져 있다. 이 삼자량과 삼학과 삼혜를 전개하면 바로 석가모니불께서 49년 설하신 일체법이 된다.

一句阿彌陀佛 具足三資糧 具足三學 具足三慧 一句佛號當中圓滿具足 三學三慧三資糧把它展開來就是釋迦牟尼佛四十九年所說一切法 -정공법사

 

 

* 남회근 선생은 「무엇이 「선정(禪定)일까요. 선(善)을 행하는 것이 선정입니다. 선정에 이르면 생각 생각마다 선(善)을 행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 선성(禪定)의 힘이 있는지 없는지 보려면 당신에게 선(善)을 행하는 일이 있는지 없는지 보면 알게 됩니다. 반드시 부지런히 선근(善根)을 모으고 난 후라야 진정으로 선정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영원히 산란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여 선(善)을 행함이 선정(禪定)에 드는 인(因)임을 밝혔다.

 

* 남회근 선생은 「진정한 대승불법은 마음이 전일하여 정(定)을 얻는 것이 바로 계율입니다.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는 일이 없는데 계율을 가질 필요가 있겠습니까. 정(定)을 얻지 못하면 진정으로 계율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정(定)을 얻지 못하면 참다운 지혜가 아닙니다. 그것은 산란한 마음이요 망상입니다. 정(定)을 얻으면 망상은 곧 반야지혜로 전환될 수 있으며, 그 행위는 자연히 규범에 맞고 자연히 계율 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리를, “먼저 여래의 사마타행(奢摩他行 : 온갖 망념을 쉬고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는 일)에 의지하라.”고 했습니다.

 

먼저 지(止)를 구하여 마음이 정(定)의 상태가 된 뒤에 계율을 얘기하라고 하십니다. 계율이란 단지 외면의 행위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일어나고 생각이 움직임은 모두 계율입니다. 정(定)을 얻은 뒤에는 계율을 범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역시 범(犯)할 수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실념(失念)하여 잠시라도 정(定)을 떠난다면 바로 계율을 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定)을 얻은 다음에 계율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 담허대사는 「참선은 깨닫지 못하면 삼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선정(禪定)을 얻으면 단지 사선천(四禪天)에 태어날 수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 고덕께서 「염불은 곧 문사수(聞思修) 삼혜(三慧)를 갖추고 있다. 부처님 명호를 설함을 듣고 의심함이 없이 확실하게 믿으므로 문혜(聞慧)가 되고, 부처님 명호를 기억하고 마음속에 품어 항상 잊지 않으므로 사혜(思慧)가 되며, 부처님 명호를 생각하는 것을 지녀 그치지 않아 중단됨이 없으므로 수혜(修慧)가 된다.[念佛卽具聞思修三慧 聞設佛名 諦信不疑 爲聞慧 記憶在懷 恆不忘失 爲思慧 持念不輟 無有間斷 爲修慧]」라고 하였다.

 

* 정공법사는 「많은 사람들이 정토종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 정토종은 일심불란(一心不亂)을 구하기 때문에 선정(禪定)은 있지만 지혜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한 마디의 ‘아미타불’의 명호가 계율과 선정과 지혜 삼학(三學)을 모두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없는 최상의 지혜라는 사실을 자못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 문혜(聞慧) : 부처님의 설법이나 경전의 가르침을 듣고 생기는 지혜.

* 사혜(思慧) : 도를 스스로 사유(思惟)해서 생기는 지혜.

* 수혜(修慧) : 선정(禪定)을 닦는 것에 의해 얻어지는 지혜로, 모든 망상과 번뇌와 집착이 없어진 경지를 말한다.

 

무량수불이라는 명호는 헤아릴 수도 없고, 끝도 없으며 불가사의한 공덕이 담긴 명호이다. 무량수불 무량무변 불가사의공덕명호 -《칭찬정토불섭수경稱讚淨土佛攝受經》

 

* 《칭찬정토불섭수경稱讚淨土佛攝受經》 : 중국 당나라 때 현장(玄奘)법사께서 한역(漢譯)하신 경전이다. 우리가 흔히 독경하는 구마라집 법사의 한역본인 《불설아미타경》보다 길며, 직역(直譯)위주로 되어 있다. 《불설아미타경》보다 길지만 내용상에는 차이가 없다.

 

* 원영법사는 〈아미타경요해강의〉에서 「대저 정토의 가르침은 모든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해탈법문이고 대승의 불이(不二)법문이다. 고로 일체의 법신보살의 본행(本行)이 모두 발심(發心)에서 시작하여 정토(염불)에서 끝난다.[夫淨土之敎 是諸佛不思議解說 大乘不二法門 故一切土本行 皆始於發心 終於淨土]」라고 하여 정토법문을 찬탄하고 선양(宣揚)하였다.

 

* 무량수불(無量壽佛) : 아미타불의 다른 이름. 《무량수경》에는 아미타불의 별칭(別稱)으로 무량수불외에 무량광불(無量光佛), 무대광불(無對光佛), 염왕광불(焰王光佛), 청정광불(淸淨光佛), 환희광불(歡喜光佛), 지혜광불(智慧光佛), 부단광불(不斷光佛), 난사광불(難思光佛), 무칭광불(無稱光佛), 초일월광불(超日月光佛)의 12개 이름이 나와 있다.

 

* 불이법문(不二法門) : 절대적이고 차별이 없는 평등한 진리의 세계(경지)

* 본행(本行) :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근본수행. 사무량심(사무량심), 육바라밀 등이 여기에 해당함.

* 연지대사는 〈왕생집〉 서문에서 「위대하도다, 정토법문은 말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신효(神效)한 영약이라 할만하다.[大矣哉 淨土法門之爲敎也]」라고 하였다.

 

* 동국역경원에서 발간한 한글대장경 〈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외(大唐大慈恩寺三藏法師傳外)에 보면, 「도선율사가 신(神)에게 현장법사에 대해 물었더니, “예로부터 제사(諸師)들의 지해(知解)와 수행에는 서로 장단점이 있어 일괄적으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현장법사 한 분만은 구생(九生)이래로 복혜(福慧)의 양업(兩業)을 갖추어 닦았고, 태어나는 곳마다 많이 듣고 박식하며, 총명하고 지혜롭고 변재가 있음은 섬부주(贍部洲)의 지나국(脂那國)에서 항상 제일인자였습니다. 복덕 또한 그러했습니다. 그가 번역한 글의 내용은 범본(梵本)원본과 틀림없습니다. 그는 선업의 힘으로 말미암아 지금은 도사다천(都史多天)의 자씨(慈氏)의 내중(內衆)에 태어나 법을 듣고 깨달아서 다시는 인간으로 내려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이미 미륵을 따라서 법을 듣고 깨달아서 성인(聖人)이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만약 염불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바로 사람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다.

若念佛者 卽是人中最勝人 - 선도善導화상

 

엎드려 바라건대, 출가자와 재가자,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할 것 없이 이 간단하고 쉽고 직접적이며 빠르고 위없는 원돈법문圓頓法門인 지명염불持名念佛에 대하여, 어렵다고 생각하여 문들 물러나 번거롭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말고, 쉽다고 생각하여 마음대로 힘쓰지 않으려고 하지 말고, 얕다고 생각하여 망령되이 경시하지 말고, 깊다고 생각하여 감히 하지 않으려고 하지 말 것이다.

 

대저 부처님 명호를 지는 것은 진실로 불가사의하다. 부처님 명호를 한 번 부르면 그 한 번이 불가사의하며, 열 번이나 백 번이나 천 번이나 만 번이나 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부르면 소리 소리마다 모두 불가사의하다.

 

伏願緇素智愚 於此簡易直倢無上圓頓法門 易視爲難而輒生退諉 勿視爲易而漫 不策勤勿視爲淺而妄致藐經 勿視爲深而弗敢承任 蓋所持之名號 眞實不可思議 持一聲則一聲不可思議持十百千萬無量無數聲聲聲皆不可思議也 -우익藕益대사〈아미타경요해阿彌陀經要解〉

 

* 우익대사는 7세부터 채식을 하였으며 유학을 배우면서부터는 영원토록 불교와 도교를 멸할 것을 스스로 다짐하였다. 그리고 마늘, 파 등의 강한 냄새가 나는 채소와 술을 마시면서 수십 편의 논(論)을 지어 불교와 도교를 이단시(異端視)하고 배척하였다. 그런데 17세가 되어 연지대사의 〈자지록서(自知錄序)〉와 〈죽창수필(竹窓隨筆)〉을 읽은 후로는 불교를 비방하지 않게 되었으며 그동안 자신이 지은 글을 모두 불태워 참회를 드러내었다. 부친상을 당하여 《지장보살원경》을 읽은 후에 출가할 뜻을 세웠다.

 

57세에 영봉(靈峯)에서 입적하셨는데, 3년 후 제자들이 다비(茶毗)하기 위하여 대사의 육신을 안치한 감실(龕室)을 열어 보았더니 대사의 육신은 외연(巍然)히 가부좌를 하고 계셨으며 머리카락이 자라 귀를 덮어버렸고, 얼굴은 생시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다비 후에 보니 대사의 치아는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 이는 구마라집 법사의 혀가 다비 후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과 같은 증표라 할 것이다.

 

* 우익대사는 24세에 감산대사를 꿈에서 세 번 뵈었다. 살아생전에 한 번도 감산대사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음에도, 우익대사는 그의 문인(門人)에 들어갔다.(法屬이 되었다는 의미). 우익대사는 49세 때 〈아미타경요해〉를 지으셨고, 여기에 스스로 발문(跋文)을 썼는데, 이 발문에서 「염불삼매가 위없는 보왕(寶王)임을 비로소 알았다.[始知念佛三昧 無上寶王]」라고 하였다.

 

* 지명염불(持名念佛) : 부처님 명호를 소리 내어 부르거나 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칭명염불(稱名念佛)이라고도 한다. 수많은 염불법 중에서 단연 최고이며 가장 쉬운 염불법이다. 말법을 살아가는 우리 중생들은 오직 지명염불에 의지하고 지명염불만 수행해야 한다.

 

2. 염불을 찬탄하다

 

설령 천하의 모든 중생이 모두 정각正覺을 이루고 광장설廣長舌을 내어 신통력과 지혜력으로 한 티끌 한 찰나마다 쉬지 않고 염불의 공덕을 치열하게 말씀한다 할지라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소. 이것은 정토법문이 본래 진실로 불가사의하기 때문이오.

 

縱饒盡大地衆生 同成正覺 出廣長舌 以神通力智慧力 塵說刹說熾然設無間說 又豈能盡良以淨土本不思議故也 -인광대사

 

*광장설(廣長舌) : 넓고 긴 혀를 말하는데, 우익대사는 〈아미타경요해〉에서 「보통 사람이 삼세(三世)동안 망어(妄語)를 하지 않으면, 혀가 코까지 이를 수 있다. 장교(藏敎:소승교)의 부처님은 삼대 아승기겁 동안 망어(妄語)를 하지 않아 혀가 얇고 넓고 길어서 얼굴을 덮을 수 있다. 이제 대승 정토의 미묘한 법문을 증득하셨기에 삼천세계를 두루 덮을 수 있다. 이것은 이치가 진실하여 도(道)에 부합되며 사실이며 거짓이 아님을 나타낸 것이다.[常人三世不妄語 舌能至鼻 藏果頭佛三大僧祇劫不妄語 舌薄廣長可覆面 今證大乘淨土妙門所以遍覆三千表理誠稱眞事實比謬也」 라고 하였다.

 

* 《아미타경》에는 「넓고 긴 혀를 내밀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다.[出廣長舌相 遍復三千大千世界]」는 구절이 여섯 번이나 나온다. 이는 석가세존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육방(六方)의 부처님들이 재차 확인하고 보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씀 뒤로 「육방(六方:동방/남방/서방/북방/하방/상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님들께서 모두 간곡하고 진실하게, ‘너희 중생들은 모든 부처님들께서 한결같이 찬탄하시고 호념하시는 불가사의한 공덕이 있는 이 경(아미타경)을 마땅히 믿어야 하느니라.’」라고 부촉하고 당부하는 말씀으로 이어진다.

 

* 인광대사는 「정토법문은 불법 가운데에서 가장 평범하면서 가장 심오한 법문이다. 숙세에 선근을 심지 않으면 바른 믿음을 내기가 실로 어렵고 심오한 법문이다.[淨土法門 爲佛法中最平常 最高深之法門 若非宿具善根 實難深生正信]」 라고 하였다.

 

* 인광대사는 「한 중생이 서방정토에 왕생하면, 이는 곧 한 중생이 성불하는 것이니, 이들 공덕이 어찌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成就一衆生往生西方 卽是成就一衆生作佛 此等功德 何可思議」 라고 하였다.

 

* 인광대사는 「윤리를 돈독히(깊고 진실하게)하고 맡은바 일에 최선(정성)을 다하며, 그릇됨을 막고 진실을 간직하며, 성실하게 염불하고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시오.[敦倫盡分 閑邪存誠 老實念佛 求生淨土]」 라고 하였다.

 

* 남회근 선생은 「신통(神通)이란 사람이 정신으로 통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수행하여 정신이 물질을 초월하고 육체를 초월할 정도에 이르게 되면, 그의 정신은 우주법계의 관념과 서로 통하게 되고 자연히 각종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라고 하였다.

 

* 천하의 모든 중생 : 시방중생(十方衆生)을 말한다. 부처님을 제외한 구법계(九法界)의 모든 중생이다. 성인이나 범부, 선한 자나 악한 자, 출가자나 재가자, 지혜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 귀한 자나 천한 자 등 근기가 어떠한 지를 불문한다.[聖凡善惡僧俗智愚貴賤不論任何根機].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아미타불을 부르는 염불삼매에 들어 정각을 이루셨다.

三世諸佛念彌陀三昧得成正覺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

 

염불 한 번으로 80억 겁 동안 나고 죽으면서 지은 죄가 소멸하고 도리어 80억 겁의 미묘한 공덕을 얻는다.

念佛一口滅八十億劫生死之罪還得八十億劫微妙功德 -《관무량수경》

 

* 원효대사는 〈무량수경종요〉에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기 때문에 생각하고 생각하는 가운데 팔십억겁 생사의 죄를 깨끗이 하고 목숨을 마친 후에는 곧 정토에 태어나느니라.」 라고 하였다.

 

* 성현께서 「오탁악세에 사는 중생들은 모두가 악인이다. 삼독(三毒)을 가지고 있기 때무에 착한 행을 닦아도 다 진실하지 않다.[五濁惡世 皆是惡人 以有三毒故 所修善行 皆不眞實]」 라고 하였다.

 

 

 

* 《지장경》에 「중생이 날마다 하는 행동거지와 날마다 일으키는 생각들이, 악업이 아닌 것이 없고 죄 아닌 것이 없다.[擧止動念 無不是業 無不是罪]」라고 하였다.

 

* 《정도보살경(淨度菩薩經)》에서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이 하루에 8억4천 가지 생각을 하는데, 하는 생각 생각들마다 삼악도에 태어날 업을 짓지 않음이 없다.[一人一日中 八億四千念 念念之所爲 無非三塗業]」라고 하였다.

 

* 담란법사는 〈왕생론주(往生論註)〉에서 「범부인 중생들과 천인들이 짓는 모든 선(善)은 ,인도(人道)와 천상에 태어나는 과보를 얻는다. 인(因)이 있으면 과(果)가 있는 것인데, 모두 전도(顚倒)된 것이고, 모두 거짓이다. 그러므로 이를 실답지 않은 공덕이라 말한다.[凡夫人天諸善 人天果報 若人若果 皆是顚倒 皆是虛僞 是故名不實功德]」라고 하였다.

 

정토법문은 원돈대법圓頓大法이며 불가사의하고 미묘한 법문이다.

淨土是圓頓大法不可思議之微妙法門 -규기窺基대사

 

* 규기대사 : 중국 당나라 법상종(法相宗)의 개조, 자은(慈恩)대사라고도 불린다. 17세에 출가, 현장법사의 제자가 되었으며, 28세 때 스승을 도와 〈성유식론(成唯識論)〉을 번역한 중국의 고승이다. 〈성유식론〉을 계속 연구,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장중추요(掌中樞要)〉 등을 저술하였다. 그 밖에 〈유가론약찬(瑜伽論略纂)〉 〈법화현찬(法華玄贊)〉 〈대승법원의림장(大乘法苑義林章)〉등 50부(部)를 저술하자 사람들이 그를 ‘백본소주(百本疏主)’, ‘백본론사(百本論師)’라고 불렀다. 《아미타경》의 ‘4대소(疏)’ 중의 하나로 꼽힌다.

 

* 대법(大法) : ① 대승의 심오하고도 불가사의한 법을 말한다. 중생을 널리 구제하는[大乘深妙之法 度人廣者]법이다. 반대는 소법(小法)인데, 소승의 가르침을 말한다. ②위대한 진리 ③ 출세간법(出世間法)을 말한다. 세간법(世間法)은 소법(小法)이라 한다. 위 본문에서는 ①번의 뜻이다.

 

* 원돈대법(圓頓大法)이라는 말 속에는 위로는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과 같은 대보살도 정토법문 밖으로 벗어날 수 없고, 아래로는 오역십악을 지은 중죄인도 단지 열 번의 염불만으로 극락에 업장을 짊어진 채 왕생하여 단박에 성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음을 함축하고 있다. 하품하생(下品下生)이라 하더라도 일단 왕생하면 삼불퇴(三不退)를 원만히 증득하고, 사토(四土)에 원만히 오르며, 삼신(三身)을 원만히 보게 된다.

 

* 남회근 선생은 「불법에서 말하는 ‘불가사의(不可思議)’란 말은 수행 증득 면에서 보통의 의식과 생각을 가지고 추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범부의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토론하고 연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인간세상의 지식이나 습관적인 의식을 가지고 멋대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 불교를 공부하면서 중생의 얕은 알음알이와 천박한 지식으로 광대하고 현묘한 불법을 멋대로 추측하거나 함부로 단정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예컨대, 찬불게(讚佛偈)에 나오는 ‘아미타불신금색(阿彌陀佛身金色, 아미타불의 몸은 황금빛이라네)’ 이라는 구절이나, 《아미타경》에 나오는 ‘황금위지(황금위지)’,라는 구절에서 금(金)은 우리 인간 세계에 존재하는 금(金)을 말하는게 아니다. 극락세계에만 존재하는 금을 가리키는 것으로, 우리는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보석이기도 하고, 혹은 아미타불께서 방편을 빌려 변화하여 나타내신 것일 수도 있다. 불경에 나주 나오는 칠보(七寶)도 마찬가지다.

 

원영(圓英)대사가 〈아미타경요해강의〉에서 「칠보는 다만 그 이름만 사바세계에서 취하였을 뿐 실인 즉, 그 낱낱의 것은 사바세계의 그것보다 백 천 만 배나 뛰어나다.[如上七寶 但取名同此方 實則一一超勝百千萬倍]」라고 말한 것이 이를 잘 말해 준다. ‘불가사의(不可思議)’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불가사의(mystery)’라는 말과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 불경에 등장하는 ‘해(解)’라는 글자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해(understanding)’라고 번역하거나 , ‘공(空)’을 무조건 ‘없음’이라고 이해하거나 가르치는 것도 안 된다. 요컨대, 우리의 얕은 지식과 생각으로 불경(佛經)이나 불보살의 경계(境界)를 멋대로 추측하거나 단정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연지대사도 〈죽창수필〉에서 「부처님의 몸을 금색이라고 찬탄하는데, 이는 비슷하게 표현한 것일 뿐, 인간세상의 소위 금(金)을 두고 한 말은 아니다. 천상(天上)의 금으로도 오히려 부처님의 몸을 표현 할 수 없거늘, 하물며 인간세상의 금이겠는가.[讚佛身曰金色 蓋取其彷佛近似 非眞若人世之所謂金也 蓋天金尙未足以儗佛 況世金耶]」라고 하였다.

 

여산廬山 혜원법사慧遠法師는 마하반야摩訶般若의 깊은 뜻을 깨달아 동방의 호법보살護法菩薩이라 불렸다. 종일토록 염불하여 세 번 성상聖像을 친견하고 극락에 왕생하였다. 천태天台지자대사智者大師는 《법화경》을 깊이 깨달아 일가一家의 교관敎觀일뿐더러 만대의 종조宗祖이기도 하였다. 태어날 때부터 서방을 향하였고 〈변십종의辯十種疑〉 〈소십육관疏十六觀〉 등의 저술을 남겨 정토를 드러내어 밝혔다.

 

백장대사百丈大師는 마조馬祖에게서 도道를 전해 받은 적자嫡子로서 천하 총림叢林의 공종共宗이었다. 병든 스님을 위해 기도하거나 혹은 죽은 스님을 천도遷都할 때는 언제나 정토로 돌아가게 하였다.

 

청량국사淸凉國師는 화엄조사華嚴祖師의 자리를 이었던 분으로 문수보살의 후신後身이라고도 불린다. 아미타부처님이 바로 노사나盧舍那부처님이라고 지적했으며, 또한《관무량수경》을 해석하여 서방정토를 널리 선양宣揚하였다.

 

영명영수선사永明延壽禪師는 막힘이 없는 변재辨才를 얻어 종문宗門의 초석礎石이기도 한 분이다. 〈사료간四料簡〉을 지어 유독 서방정토를 예찬하였고, 상상품上上品에 왕생하여 명부冥府에서까지 공경의 대상이 되었다. 사심신선사死心新禪師는 황룡선사黃龍禪師의 법석法席을 이어받아 종품宗風을 크게 떨쳤다. 정업淨業에 뜻이 간절하였고 권념염불〈勸念佛文〉을 저술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슬픔과 믿음을 일으키게 하였다.

 

진헐료선사眞歇了禪師는 단하순공丹霞淳公의 법을 이어 조동종曹洞宗의 문하門下가 스님에 이르러 크게 드러나게 되었다. 보타산普陀山에 암자를 짓고 염불에 전념하였다. 〈정토설淨土說〉이 세상에 전한다.

 

자수심선사慈受深禪師는 염불에 전념하여 수행의 첩경은 정토만한 것이 없다 하고 서방도량을 세워 입이 쓰도록 대중에게 권고하니, 그를 따르는 자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원조본선사圓照本禪師는 도道는 천의天衣를 이었고, 종宗은 설두雪竇를 본받아 법의 우레가 천지를 진동했으며, 송나라 신종神宗과 철종哲宗의 사표師表가 되기도 했던 분이다. 선禪과 정업淨業을 겸수兼修하여 이름이 상품上品에 표시되었다. 中峰本禪師는 고봉高峰화상에게서 법을 받아 배우는 자들이 마치 태산泰山이나 북두北斗처럼 우러러 보았는데, 「선禪이란 정토의 선禪이요, 정토란 선禪의 정토다.」 라고 하였다. 정토를 사모思慕하는 시詩 백수百數를 남겨 사람들에게 염불을 권장하였다. -연지대사〈往生集〉

 

* 혜원법사는 나태한 제자들을 보면 이렇게 말했다고 〈세설신어世說新語〉에 전한다. 「석양의 빛은 멀리 비출 수 없다. 다만 아침에 솟아오르는 해처럼 찬란하게 시대를 밝히기를 바랄뿐이다.」

 

* 원효대사는 〈무량수경종요〉에서 「부처님이 설하신 정토는 모두가 여래의 원(願)과 행(行)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저 정토에 왕생한 이들의 자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예토(穢土) 등의 기세계(器世界)가 오직 중생의 공업(共業)만으로 이루어지는 것과는 다르다.[所說淨土 皆是如來願行所成 非生彼 者自力小辨 不如穢土外器世界 唯由衆生共業所成]」라고 하였다.

 

* 중국 명대(明代)의 4대 고승중의 한 분인 감산덕청(憨山德淸)대사는 연지대사를 아미타불의 후신(後身)이라고 하였다.

 

* 연지대사는 〈왕생집〉 서문(序文)에서 「들리는 이야기로는 예전에는 왕생했다는 자가 많았다고 하나, 세월이 오래되어 이젠 보기도 듣기도 어렵게 됐다. 그동안 여러 문헌을 본 것 중에서 그 인과가 분명한 것만을 발췌하고 보니, 어느덧 11년 동안에 천여 가지의 이야기를 모으게 되었다. 이에 나는 산자락에 한 칸 초옥을 얽은 뒤 문을 닫아걸고 왕래를 끊었다. 그리고 이 얘기들 중 166가지의 사실을 정리하고 찬(贊)을 붙여 왕생집이라 이름 붙였다.」라고 하였다.

 

* 청량국사(淸凉國師) : 중국 당나라 때의 화엄종의 고승. 이름은 징관(澄觀). 화엄뿐 아니라 계율을 익히고, 열 가지의 서원을 세우는 등 수행을 철저히 했다. 내전(內典)은 화엄 이외에 법화, 천태학, 우두선, 남종선, 북종선, 삼론교학을 배웠으며, 외전(外典)은 경전자사(經傳子史)를 비롯한 중국의 구류이학(九類異學)은 물론 인도의 4베다, 5명(明)등을 두루 섭렵했다. 그의 박학다식함은 대흥선사에서 진행된 역경장에 참가하여 6년간 경전 77부를 번역하는데 기여하였다.

 

저서는 총 42종 600여권 가운데 현재 21종 400여권이 남아 있다. 〈임간록(林間錄)에 「조백(棗栢)」거사와 청량징관(淸凉澄觀)국사는 모두 화엄경을 널리 밝히신 분으로 그들의 논소(論疏)는 천하에서 으뜸이었다. 그러나 두 분의 몸가지음은 전혀 달랐다. 조백거사(이통현 장자를 말함)는 거리낌 없이 맨발로 다니며 호탕하고 자유자재하여 모든 일에 걸림 없는 마음을 지녔지만, 청량국사는 꼼꼼하고 엄숙하여 옥을 깎아 다듬듯 하였으며, 오욕번뇌(五慾煩惱)를 두려워하고 10가지 서원[十願]으로 몸가짐을 지켰다.〉」 라고 하였다.

 

* 사심신선사 : 중국 송나라 때의 고승

* 진헐료선사 : 중국 송나라 때의 고승

* 자수심선사 : 중국 송나라 때 운문종(雲門宗)의 고승.

 

* 원조본선선사 : 중국 송나라 때 운문종의 고승. 〈인천보감〉에 「원조 종본(圓照宗本)선사는 상주 사람인데 타고난 성품이 순박하여 겉치레를 하지 않았다. 천의의회(天衣義懷)선사에게 귀의하여 헤진 옷에 때 묻은 얼굴을 하고, 물 긷고 방아 찧고 밥 짓는 일을 맡아 보았다. 낮에는 스님네들 뒷바라지에 밤이면 새벽까지 좌선하며 고생을 무릎 쓰고 정진하였는데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수행하면서 대중의 일도 맡고 있으니 정말 수고가 많습니다.” 하니 선사는 “한 법이라도 버리면 원만한 공부라 할 수 없다. 결단코 이 생에서 이 몸으로 깨치려는데 감히 고단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라고 하였다.

 

* 중봉본선사 : 중국 원나라 대 고승. 《원각경》 《능엄경》 등을 비롯한 경론은 물론 〈전등록〉을 비롯한 선서(禪書)에도 해박했고 , 유교와 도교를 비롯한 제자서(諸子書), 나아가 시(詩)와 부(賦)에도 뛰어 났다. 「요즘 수행하는 사람들이 영험(靈驗)을 얻지 못하는 데에는 세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옛날 사람과 같은 진실한 지기(志氣)가 없고, 둘째 생사(生死)와 무상(無常)에 대해 철저히 파고들지 않으며, 셋째 오랜 세월 익혀온 버릇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을 남겼다.

* 위 경문에서 “서방을 항하였다” 라든지 “정토로 돌아가게 하였다”, “정업에 뜻이 간절하였다”는 모두 염불수행을 하였다는 의미이다.

* 위 경문의 “선(禪)과 정업(淨業)을 겸수(兼修)하여”는 참선과 염불수행을 아울러 닦았다는 의미다.

 

요즘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지혜가 선인先人들에게 미치지 못함에도, 아만공고我慢貢高하고 세지총변世智聰辯하여 도리어 선인先人을 비방하면서 염불도 하지 않고 극락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나같은 깊은 학식을 갖춘 자가 만약 불법佛法을 닦는다면 적어도 선禪을 공부하거나 유식唯識 정도는 되어야 겨우 분分에 맞을 것이다. 이런 정토소법淨土小法 따위는 그저 늙은이들에게나 설해야 옳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이런 견해는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대세지보살은 등각보살이었으니, 《무량수경》에서 말하기를, 「그는 최존제일最尊第一이니 위신광명이 널리 삼천대천세계를 비춘다.」 하였고, 《관음경》에서는, 「그가 걸어갈 때 에는 시방세계가 모두 진동하며, 앉을 때에는 칠보국토가 한꺼번에 요동하며, 아래로 금강불찰金剛佛刹로부터 위로는 광명왕불찰光明王佛刹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한량없는 분신의 무량수불과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모두 운집하였다.」 하니, 그의 위신력과 복덕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분이 능엄회상에서 도리어 스스로 말씀하기를, 「염불로 말미암아 극락에 태어났다.」하였다.

 

또한 보현보살도 등각보살이었으니, 백옥과 같은 몸에 육아六牙의 코끼리를 타고 있었다. 《화엄경》에 그가 선재善財를 위하여 십대원왕을 설하여 널리 선재와 화장해중華藏海衆으로 하여금 서방정토에 회향왕생하여 원만불과圓滿佛果를 기약하게 하였던 것이다.

 

용수보살은 능히 용궁에 들어가 《화엄경》을 가져왔으며, 철탑鐵塔을 열고 비밀장秘密藏을 전했던 분이다. 그리고 〈대지도론〉 〈회정론〉 〈중론〉 〈십주비바사론〉 〈대승이십론〉 등을 지었으니, 그의 학문에 대한 조예는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입능가경》에서 석가세존이 미리 수기授記하시기를, 「대혜여, 너는 잘 알아야 한다. 부처는 열반 후 미래세에 반드시 나의 법을 부지扶持할 자는 남천축국의 대명덕 비구이니 그의 이름은 용수龍樹이다. 능히 유무종有無宗을 깨뜨리고 세간중에 나의 무상대승법無上大乘法을 드러내며 초환희지初歡喜地를 얻어 안락국에 왕생할 것이다.」하셨다.


또한, 세친보살은 오백부의 소승론小乘論과 오백부의 대승론大乘論을 지었으므로 그를 천부논사千部論師라고 부르기도 하니, 그의 학식의 깊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지은 〈왕생론〉중의 첫머리에서 「세존이시어, 저는 일심으로 온 시바의 무량광여래에게 귀명하옵고 안락국에 태어나기를 원하옵니다.」 하였다. 이와 같은 대보살들도 도리어 모두 극락국에 태어나기를 원하였는데, 우리들은 생각해보면 저들의 몸에 난 한 올 털만큼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오히려 교만하여 정토법을 우습게 여길 뿐만 아니라, 극락국에 태어나기를 원하지도 않으니 어찌 해괴한 일이 아니겠는가. - 방륜方倫〈정법개술淨法槪述〉

 

* 아만공고(我慢貢高) : 공고아만(貢高我慢)이라고도 한다. 자만심이나 아상(我相)이 높아 남을 없신여김. 자기만 선법(善法)을 알고 남들은 그러하지 못하다고 여김. 자기만 불법(佛法)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여기면서 남들을 무시함.

* 〈무량수경〉에 「교만하고 삿되고 게으른 자들은 정토법문을 만나도 믿지 않는다.[驕慢弊懈怠 難以信此法]라고 하였다.

* 세지총변(世智聰辯) : 세속의 지혜가 뛰어나고 총명함.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기억력이 뛰어나고 박학다식함. 자만심이 강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려 하지 않음. 팔난(八難)에 들어감.

 

* 연지대사는 〈죽창수필〉에서 「잔에 담긴 물로는 한 수레 섶 더미의 불을 끄지 못하고, 반딧불로는 깊은 골짜기의 어둠을 밝히지 못한다. 조그만 지혜로 업을 얼마나 줄일 수 있겠는가.[杯水不能熄車薪之火螢光不能破幽谷之昏今之小智滅業幾何]」라고 하였다.

* 남회근 선생은 「우리 중생들은 모두 허환(虛幻)한 망상으로 부처님을 배우고 도(道)를 닦습니다. 그 결과 부처님을 배우지 않았으면 오히려 더 나앗을 것인데, 부처님을 배울수록 망상이 많아집니다. 모두 자기의 주관적인 선입견으로 불법을 해석하기 때문에, 배울수록 불법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말할수록 멀어집니다. 심지어는 마구니의 길을 걸어가도 자신이 모릅니다.」 라고 하였다.

 

* 남회근 선생은 「불법에 귀의한 사람들 중에는 다른 신(神)에게는 절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절해도 잘못이 없습니다. 이것은 덕 있는 자에 대한 일종의 완전히 자연스러운 존경입니다. 왜 그럴까요. 총명하고 정직한 사람이 죽어서 신(神)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로서 내가 꼭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반 범부들에게 대해서도 우리는 사람으로서 그를 존경해야 합니다. 존중하고 예의에 맞아야 합니다. 우리가 삼보(三寶)에 귀의하고 난 다음, 갑자기 스스로 위대해져서 “저런 작은 신(神)에게 뭐하려고 절을 해” 한다면 이것은 공고아만의 심리입니다.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은, 우리가 자존자중(自尊自重)하는 것이지, 도리어 남을 얕잡아 보라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마을 수호신인 토지신(土地神)을 깔보아서는 안됩니다. 착한 일을 많이 해야 죽어서 토지신(土地神)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토지신은 말할 것도 없고 토지신의 아들이라도 될 자격이나 있습니까. 오만해서는 안됩니다. 일체중생을 공경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부처님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라고 하였다.

 

* 육조 혜능선사는 「항상 자기의 허물만 보고 남의 시비, 선악은 보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 오조(五祖) 법연(法演)선사는 「20년 동안 죽을 힘을 다해서 공부하니, 이제 겨우 내 부끄러운 줄 알겠다. 라고 겸손해 하면서, 뒷날 선가(禪家)의 보물인 〈벽암록(碧巖錄)〉을 쓰게 되는 제자 원오(圓悟) 극근(克勤)선사에게 법연사계(法演四戒)를 내려 주어 경책(警責)했다. 법연사계는 이렇다. 세력을 다 쓰지 마라. 복을 다 누리지 마라. 법(규율)을 다 행하지(지키지) 마라. 좋은 말이라고 다 하지 마라.[勢不可使盡福不可受盡規矩不可行盡好語不可說盡]」

 

* 위 경책(警責)의 글을 제자에게 내려준 오조 볍연선사는 부연설명하기를, 세력을 다 쓰지 말라는 이유는 만일 세력을 다 쓰면(행사하면) 반드시 화(禍)가 생기기 때문이요, 복을 다 누리지 말라는 뜻은 만일 복을 누리면(받으면) 반드시 궁(窮)하게 되기 때문이요, 법(규율)을 다 행하지(지키지)말라는 이유는 규율을 하나도 빼지 않고 모조리 지키기를 강요하면 사람들이 반드시 귀찮게 여기기 때문이요, 좋은 말이라고 다 하지 말라는 뜻은 좋은 말이라고 해서 다하면, 들은 사람은 반드시 소홀히 여기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 유식(唯識) : 유식이란 말은 ‘오직 마음’이란 뜻으로, 정신과 물질 등 안팎의 모든 것들은 오직 마음[心識]이 만들어 내는 것이고, 따라서 심식(心識)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즉, 부처나 만법이 모두 자성(自性)이 변하여 나타난 것이라 본다. 유식학(唯識學)은 중국의 현장법사와 그의 제자 자은대사에 의해 법상종(法相宗)으로 체계화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원측버사가 대표적인 학승이었다.

 

우익대사께서 집지명호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정토법문은 심오하고 미묘하여 일체의 희론을 다 소멸시키며, 일체 의견을 다 베어버린다.」라고 하였다. ‘희론戱論’은 바로 연구하고 토론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하는 것과 같아서 한마디도 진실한 것이 없다.

 

마음이 청정해질 때까지 염불하여 일체 법문을 초월하게 되면,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법한 것이 모두가 희론에 속한다는 말을 할 수가 있다. 오직 한 번의 부처님의 명호만이 일체를 포함하며, 그 나머지 마음을 관觀하거나 화두를 참구하거나 법어로 대화하는 것은 모두 희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염불법문은 오로지 마명馬鳴, 용수龍樹, 지자智者, 영명永明만이 감당할 수 있었으며, 그 나머지 그와 동등하거나 그보다 못한 사람들은 정성을 다해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중국의 8대 종파의 조사이며, 옛날 인도의 대보살이시다.

 

지자대사는 천태종의 조사이며, 영명연수대사는 참선으로 대철대오하여 명심견설 하였다. 그러나 만년에 고개를 돌려 오로지 정토를 넓혀 정토종의 6대 조사가 되었다. 그는 아미타불의 화신이다.

이 이야기는 체한諦閑의 후계자 보정寶靜법사가 지은 〈미타요해친문기彌陀要解親聞記〉중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지명염불은 지극히 원만하고 단박에 깨닫기 때문에, 어떠한 법문도 모두 부처님의 명호 안에 들어가 있다.

 

그러므로 법상종의 조사인 규기窺基대사 역시 염불법문을 ‘위 없는 대법大法’이라고 말한 것이다. 염불은 하루 내지 칠일이면 성공할 수 있다. 이러한 법문은 다른 일체의 경론經論과 논論에는 없는 것으로, 오직 계속해서 염불해 나가기만 한다면 다른 방법에 의지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리게 된다. - 정공법사

 

* 철오선사는 집지명호에 대해 「이른바 ‘집지명호’란 두 손으로 꽉 받들어 가슴에 새기고 지키는 걸 가리키며, 마음에 굳게 새기고 지녀 잠시도 잊지 않는다는 뜻이며, 혹 한 생각이라도 끊어진다면 이는 집지(執指)가 아니다. [所謂執指名號者 卽拳拳服膺之謂 謂牢持於心 而不暫忘也 稍或一念間斷 則非執持] 라고 하였다.

 

* 우익대사는 〈아미타경요해〉에서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지명염불은 원래 간단하고 쉽고 곧바로 질러가는 길이며, 누차 말하지만 지극한 원돈(圓頓)의 법문이다. 생각 생각마다 곧 부처를 이루기 때문에 관상(觀想) 수행을 하지 않아도 되고, 이치(교리)를 참구할 필요가 없다. 바로 이 자리에서 당장 원융해지고 밝아져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다.[當知執持名號 旣簡易直捷 仍至頓至圓 以念念卽佛故 不勞觀想 不必參究 當下圓明 無餘無欠] 라고 하였다.

 

* 희론(戱論) : 세속의 쓸데없는 말장난. 언어유희. 진리와 동떨어진 말.

 

정토 염불이 가장 뛰어난 수행법임은 마명보살이 〈대승기신론〉에서 보여주었소. 또 정토 염불이 가장 쉽고 가장 빨리 도달하는 길임은 용수보살이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서 밝히고 있소. 석가모니불의 후신인 지자대사가 〈십의론十疑論〉을 설하면서 오로지 서방극락에 초점을 맞추었고, 아미타불의 후신인 영명선사는 〈사료간〉을 지어 종신토록 염불을 행하며 가르쳤소. 담란대사가 지은 〈往生論註〉는 고금에 둘도 없이 미묘한 저술이오. 도작대사는 정토삼부경을 이백 번 남짓 강론했으며, 선도화상은 《정토삼부경》에 주석을 달아 대중들에게 염불수행에 전념할 것을 적극 권장하였소. - 인광대사

 

* 용수보살은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서 「불법의 바다에 들어가는 데에는 수많은 문이 있다. 마치 세상의 길에 어려운 길이 있고 쉬운 길이 있는 것과 같다. 육지의 길에서 걸어가는 것은 힘들고, 바다의 길에서 배를 타는 것은 즐거운 것이니 보상의 길도 역시 이와 같다. 부지런히 행하여 정진하는 길이 있고, 혹은 믿음이라는 방편으로서 행하기 쉬운 길로 속히 아비발치에 이르는 길이 있다. 만약 사람이 속히 불퇴전지에 도달하려면 응당 공경심으로 부처님 명호를 꽉 잡고 불러야 한다.」 라고 하였는데, 믿음이라는 방편으로써 행하기 쉬운 길이 바로 이행문(易行門)이며 염불이 이행문인 것이다.

 

 

* 용수보살의 〈광대발원송(廣大發願頌)〉의 일부를 소개한다.

「부처님의 정법 가운데 설하신 바와 같이 원력이 견고하고, 또 진실하게 저는 항상 모든 세존께 공양드리며 최후에 성불하기를 원하나이다. 저는 태어날 때마다 깊은 지혜 갖추어 항상 묘길상(妙吉祥)보살 같기 기원하옵니다. 자비심으로 고통 없애고 세간의 중생 구하는 관자재보살 같기 원하옵니다. 어질고 선한 사랑의 눈으로 중생 돌보는 보현보살과 다름없기를 원하옵니다.[如佛正法中所說 願力堅固復眞實 我常供養諸世尊 願我最後得成佛 願我生生具深智 常如妙吉祥菩薩 悲心息苦救世間 願如觀自在菩薩 賢善愛眼視衆生 願與普賢存無異 慈意善觀諸情品 願我常如慈氏尊]」

 

* 인광대사는 「옛 사람이, “다른 법문으로 도(道)를 배우는 것은 개미가 높은 산에 기어오르는 것과 같지만, 염불로 극락왕생하는 것은 순풍(順風)에 돛단배가 물살 따라 나아가는 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신 비유가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하겠소.[昔人謂餘門學道 似蟻子上於高山 念佛往生 如風帆揚於順水 可謂最善形容者矣]」라고 하였다.

 

석가모니께서 질문을 받지 않고 설하신 정토법은 그 분의 위대한 자비심을 나타낸다. 극락세계의 장엄한 경계와 아름다움은 《아미타경》에 잘 설해져 있다. 시방 세계의 모든 부처님들이 정토법을 칭찬하셨고, 많은 보살과 조사들이 이 법을 수행했다. 예부터 위대한 보살들인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모두 정토법을 옹호하고 수행했다. 불법佛法이 중국에 전파된 이래, 수많은 선승과 위대한 조사들이 정토를 권장하였다. 석가모니부처님이 가르치시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이 칭찬하신 경이로운 정토법이 얼마나 완벽하고 숭고한 법인가. 반면에 우리는 단지 미망迷妄과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한 범부에 불과하다. 이러함에도, 이 법을 깔보는 거만하고 건방진 사람들이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화엄경》에 53선지식들을 찾아 여행길에 오른 선재동자에 관한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선재동자가 처음 만난 덕운德雲 비구가 이 귀중한 정토법을 소개했다. 그로부터 선재동자는 마지막으로 53번째 선지식인 위대한 보현보살을 만날 때까지 여행을 계속했다. 이 보현보살도 또한 경이로운 정토법을 가르쳤다. 따라서 이 말세의 수행자들에게 정토법이 절대적으로 중요함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부처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이 법의 수행을 될수록 빨리 시작해야 한다.

 

요컨대, 선禪과 정토는 서로 보완한다. 과거에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이 이 법들에 의지하고, 수행하여 성불하셨다. 현재의 모든 부처님들도 마찬가지로 이 법들에 의지하여 수행하고 성불한다.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두 법은 다른 많은 경들도 있지만, 특히 《화엄경》《법화경》《능엄경》에서 사람들에게 공부하고 수행하도록 간곡히 설해져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많은 수행법이 있고 이들 모두가 생사의 윤회를 끊을 수 있다. 정토에 왕생을 발원하면서 부처님 명호를 외우는 것이 지름길이다.」

 

경이롭고 완전한 《화엄경》《법화경》의 가르침과 보현보살의 장엄한 행은 모두 정토를 가리키고 정토로 이끈다. 마찬가지로 마명, 용수조사로부터 위대한 스님인 천태, 영명, 연지, 중팽대사까지 모두 정토를 선호하셨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계를 지키고,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업들을 청정하고 깨끗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마음이 자연스레 청정해진다. 만일 여러분들이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사음하지 않으면, 몸으로 짓는 업이 청정해진다. 만일 여러분들이 거짓말하지 않고, 비단결같이 꾸며 말하지 않고, 두 가지 다른 말 하지 않고,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 마음으로 짓는 업이 청정해진다. 여러분들이 마음을 청정히 하려면 이 점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일단 여러분들의 마음이 청정하고 깨끗해지고, 사바세계의 모든 고통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켰으면, 극락세계에 왕생하려는 원願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생사의 윤회를 끊기 위해 염불을 바르게 수행해야 한다. 밖에서 오는 모든 어수선한 일들에 마음을 닫아버리고, 24시간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생각 생각마다 일심으로 부처님 명호를 외워야 한다. 걸을 때나, 서 있을 때나, 앉아있을 때나, 누워있을 때나, 움직이거나 조용히 있거나, 바쁘거나 한가하거나, 여러분들은 어지러운 생각 없이 항상 맑은 마음을 지녀야 하고, 외부의 상황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석가모니부처님이 말씀하셨지만, 어떤 사람이 염불과 정토왕생을 말로만 하고 끊임없이 청정하지 않은 생각과 악업을 지어가며, 계를 지키지도 않고 번뇌를 끊지도 않으면 이 사람은 결코 도道를 이룰 수 없다. 이러한 까닭으로 모든 수행자들은 계戒 지키는 것을 바른 관법觀法과 염불수행을 위한 토대로 삼아야 한다. 누구라도 이렇게 수행하는 사람은 정토왕생이 확실히 보장된다. - 감산대사

 

* 〈대지도론〉에 「묻는다. 시방에 한량없는 부처님과 보살들이 계시다면 지금 이 중생들은 삼악도에 빠진 이가 많거늘 어찌하여 오시지 않는가. 답한다. 중생들의 죄가 무거운 까닭에 비록 부처님과 보살들이 오신다 해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또한 법신의 부처님은 항상 광명을 놓으시고 항상 법을 설하시지만, 죄 때문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비유하건대 해가 떴어도 눈이 먼 이는 보지 못하고, 우레가 천지에 진도하여도 귀가 먹은 이는 듣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법신은 항상 광명을 놓고 항상 법을 설하건만 중생들의 한량없는 겁의 죄가 두텁고 무겁다면 보거나 듣지 못하는 것이다. 밝은 거울과 맑은 물에 비추면 곧 보이고, 때가 가리거나 맑지 못하면 보이지 않듯이 중생들의 마음이 청정하면 곧 부처님을 뵙게 되고, 마음이 맑지 못하면 부처님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이제 실제로 시방의 부처님과 보살들이 와서 중생을 제도하시지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 불경에 「모든 죄 중에 살생업이 가장 무겁고, 잔인하고 재물과 음식에 탐닉한 자들은 집안이 대부분 끊겼으며, 어질고 자비와 사랑으로 만물을 구제해준 자들은 반드시 창성하였소. 진실로 비린내(육식)와 매운맛(오신채)을 영원히 끊어야 바야흐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진리에 부합한다고 일컬을 수 있겠소.」라고 하였다.

 

* 번뇌(煩惱) : 불교에서 번뇌라는 단어는 무척 중요한 용어다. 마음속에 있는 아집(我執)을 중심으로 하는 그릇된 생각이나 성격을 모두 번뇌라 한다. 번뇌의 근원은 무명(無明)이다. 번뇌를 다른 말로 결박(結縛)/ 결사(結使)/ 더러운 티끌(垢塵)/ 객진(客塵)/ 진로(塵勞)/ 전박(纏縛)이라 한다. 불교에서는 ‘번뇌가 곧 보리이다.[煩惱卽普提]’라는 말이 있다.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과 같은 말인데, 이는 마음이 미혹(迷惑)하면 번뇌(煩惱)이고, 번뇌를 해탈(解脫)하면 보리(菩提)라는 것으로, 즉 번뇌와 보리가 따로 있지 않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깨치지 못한 중생의 어리석은 견해로 보면 미망(迷妄)의 주체인 번뇌와 깨달음의 주체인 보리(菩提)가 다른 것이지만, 깨친 입장에서 보면 번뇌와 보리가 하나여서 아무런 차별이 없다는 말이다.

 

* 서산대사는 〈선가귀감〉에서 「사익경(四益經)에서 부처님은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 아니라, 생사(生死)와 열반이라는 두 가지 견해에 집착하는 것을 바로잡아주기 위해서이니라.”」라고 하셨다.

 

* 남회근 선생은 「번뇌가 곧 마구니입니다. 유마경은 “번뇌가 곧 보리이다.[煩惱卽菩提]”라고 했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일념(一念)사이에 팔만사천가지의 번뇌가 있다고요. 운동을 하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다른 생각뿐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도 얼마나 다른 생각들을 합니까. 마음이 온통 산란하여 선정(禪定)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번뇌입니다.」라고 하였다.

 

진헐眞歇 료了선사의 〈정토설〉에 「(선禪을 닦는) 조동종의 스님들이 모두 은밀히 정토법문을 수행하기를 힘쓰고 있으니 무슨 까닭인가. 진실로 염불법문이 지름길로 질러가는 수행이요, 대장경의 가르침을 바로 따르는 것이며, 상상 근기를 접인하는 것이요, 중하근기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하였고, 또 말하되 선종의 대사들이 텅 비지도 않고 있지도 않은 법을 이미 깨닫고도 정토법문에 뜻을 세워 정업淨業에 힘쓰는 것은 정토에 가서 부처님 뵈옵는 것이 선종에서보다 훨씬 간단하고 쉽기 때문이 아니겠는가.」하였다.

 

또 말하기를, 「부처님이나 조사들이 교에서도 선에서도 모두 정토법을 닦아 한 근원으로 돌아가셨으니, 이 문에만 들어가면 부량법문을 모두 증득할 수 있다.」하였다. 천의회선사, 원조본선사, 자수심선사, 남악혜산선사, 법조선사, 정애선사, 정자대통선사, 천태회옥선사, 양나라 도진선사, 당나라 도작선사, 비릉법진선사, 고소수눌선사, 북간간선사, 천목예선사 등 여러 대덕들이 다 선문禪門의 종장宗匠들로서 은밀히 수행하고 드러나게 교화하여 정토를 선양한 뜻이 일찍이 같이 약속한 일이 없었음에도 같았다.

 

어찌 특별히 대덕大德뿐이랴. 내 일찍이 노덕 스님께 들으니, 오가五家의 종파와 천하의 선승으로서 깨달은 이나 깨닫지 못한 이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정토에 돌아가지 않은 이가 없다고 하였다. 그 까닭을 물으니 이내 말하기를, 백장 회해선사는 마조선사께서 도를 전한 적자嫡子로 천하의 총림에서 옛날부터 지금까지 한 가지도 그의 법을 어기는 이가 없었다. 그가 병든 스님을 위하여 염송할 적에 한 게송을 선양하여 아미타불을 찬탄하고, 다시 같은 음성으로 백번 천 번 염불하고는 회향하면서 엎드려 발원하기를,「모든 인연이 다하지 못하였으니, 어찌 일찍이 가벼이 볼 것인가. 죽음을 피하기 어려우면 극락으로 질러가라.」하였으니, 이는 정토를 가리켜 귀의함이 아니던가.

 

또 죽은 스님을 봉송할 적에, 「혼령이 정토에 오르면 업은 번뇌를 물리치고, 상품上品의 연꽃이 피면 부처님으로부터 일생에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을지라.」한 것은 정토를 가리켜 귀의함이 아니던가. 다비할 적에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오직 유나維那를 시켜 「나무 서방 극락세계 대자대비 아미타불」을 소리 높여 제창하며, 이렇게 열 번 제창하면 대중이 열 번 화답하였다. 이것이 정토를 가리켜 귀의함이 아니던가. -천여 유칙선사〈정토혹문〉

 

정토법문의 일승요의一乘了義의 가르침입니다. 만선萬善이 함께 한 가지로 돌아가는 귀착점이고, 법부凡夫와 성인聖人을 가지런히 거두어들이며, 이근利根과 둔근鈍根 모두에게 가피加被를 주고, 단박에 팔교八敎를 갖추며, 원만히 오종五宗을 거두고, 횡橫으로 삼계를 초월하며, 지름길로 사토四土에 올라 한 생만 지나면 성불하니, 가히 구품九品의 연대蓮臺로 올라가는 사다리입니다.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께서 함께 찬탄하시고, 천경만론千經萬論에서 한결같이 가리키고 있습니다. 염불삼매는 삼매중의 왕이자 불가사의하고 미묘한 법문입니다. -하련거夏蓮居거사〈淨修捷要〉

 

* 정공법사는 「하련거사는 선(禪)/ 밀(密)/ 교(敎)에 대해 모두 깊이 연구를 하였지만, 말년에는 이것들을 전부 내려놓고 부처님 명호가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게 부처님 명호에 미혹되어 있다고 말할 정도였지만, 그는 그들의 말을 듣고도 듣지 않았다. 이는 그야말로 좋은 본보기다.」

 

* 성철스님은 「법화경은 부처님이 49년 동안 설법한 말씀의 총 결산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가장 골자가 되는 것이 바로 방편품(方便品)입니다. 거기에 보면 ‘시방세게 국토 중에 오직 일승법만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승법(一乘法)이란 이 세상에 부처님 아닌 것이 없고, 극락세계 아닌 곳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중생을 교화하고 구원하기 위해 이승(二乘), 삼승(三乘)의 방편을 설하셨습니다. 그리고 방편설은 사실 그대로의 참말은 아니지만 수단으로서 인정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결국 일승(一乘)을 말하시기 위해 이승과 삼승을 설하신 것입니다. 또 육조스님은 “부처님은 아직 지혜가 성장하지 못한 사람들을 상대하였기 때문에 방편설을 쓰셨지만, 나른 지혜가 발달한 사람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방편을 쓰지 않는다.”고도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 사토(四土) : 극락에는 네 국토[國土]가 있다고 천태종에서는 말한다. 범성동거토(凡聖同居土)/방편유여토(方便有餘土)/실보국토(實報國土)/상적광토(常寂光土)가 그것이다. 범부가 업장을 짊어진 채 극락에 왕생하면 범성동거토에 거주하고, 견혹과 사혹을 끊으면 방편유여토에 거주하며, 무명까지 타파하면 실보국토에 거주하고, 무명(無明)이 깨끗이 사라지면 상적광토에 거주한다.

 

* 정공법사는 「서방에는 사토(四土)가 있다. 상적광토를 제외하고 다른 세 국토에는 모두 삼배구품(三輩九品)이 있는데, 이는 모두 업(業)을 가지고 왕생한다. 기타의 다른 모든 부처님 세계에도 사토(四土)와 삼배구품이 매우 분명하여 각 계층마다 서로 장벽을 갖고 있으나, 오직 성방정토의 사토(四土)와 삼배구품에는 장애가 없다.」라고 하였다.

 

* 천경만론(千經萬論) : 수많은 경전과 수많은 논(論). 참고로, 경(經)을 풀이한 것을 논(論)이라 한다. 용수보살의 〈대지도론〉, 마명보살의 〈대승기신론〉, 무착보살이 선정(禪定)중에 도솔천에 올라가 미륵보살의 설법을 듣고 기록했다는 〈유가사지론〉, 원효대사의 〈금강삼매론〉등이 대표적인 논(論)이다.

 

* 구품(九品) 연대(蓮臺) : 《무량수경》에 보면, 극락에 왕생할 때 생전의 수행정도나 염불의 깊이 또는 계율을 얼마나 지켰는지에 따라 왕생의 품위(品位)에 차등이 생기는데, 이를 구품이라 한다. 상품상생(上品上生)은 금강대(金剛臺)를 타고 왕생하고, 상품중생(上品中生)은 자마금(紫磨金)을 타고 왕생하며, 상품하생(上品下生)은 금련화(金蓮華)를 타고 왕생한다. 이것을 연대(蓮臺) 또는 연화대(蓮華臺)라고 한다. 자세한 것은 ‘관무량수경의 구품왕생’ 편에 있다.

 

염불법문은 율律과 교敎와 선禪과 밀종密宗 등 모든 종宗의 귀착점이자 사람과 천인, 범부와 성인이 부처가 되는 지름길이다. 일체법문이 이 법문으로부터 흘러나오지 않는 것이 없고, 일체의 수행문이 이 법문으로 돌아가지 아니함이 없다.

 

이로써 염불법문이야말로 실로 시방삼세 모든 부처님께서 우리로는 부처를 이루는 도道이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도道임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모든 것을 다 갖춘 총지법문이다. 고로 구계九界가 함께 귀의한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함께 찬탄하는 법문이며, 모든 경經에서 아울러 드러내고, 온갖 논서論書들이 고르게 드날리는 법문이다. -인광대사

* 인광대사는 「정토법문을 진짜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선가(禪家)의 깨달음의 법어(法語)조차 쓸모가 없다오.[眞修淨土人 用不得禪家開示] 라고 하였다.

 

* 당나라의 규봉종밀 선사는 「‘선(禪)’ 이란 무엇인가. 선(禪)은 인도 말이다. 즉, ‘선나(禪那)’를 줄인 말로서 중국에서는 ‘생각으로 닦는다.[思惟修]’ 또는 ‘고요히 생각한다.[靜慮]’로 번역하였는데 모두 선정과 지혜를 함께 부른 것이다. 일체의 중생이 갖고 있는 본래의 성품을 불성(佛性), 또는 심지(心地)라고 하는데, 이를 깨닫는 것을 지혜라 하고 닦아가는 것을 선정이라 한다. 그러므로 선정과 지혜를 통틀어 선(禪)이라 부른다. 중생들이 참된 것에 미혹하고 번뇌에 합하는 것을 산란하다 하고, 번뇌를 등지고 참된 것에 합하는 것을 선정(禪定)이라 한다. 만일 본래의 성품을 논한다면 이는 참된 것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며 등지는 것도 없고 합하는 것도 없다.

 

또 고요한 것도 없고 산란한 것도 없는데 누가 선(禪)을 말하겠는가. 이 성품은 선문(禪門)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만법(萬法)의 근원이 되는 까닭에 법성(法性)이라 하고, 또 중생이 미혹하고 깨닫는 근원이 되므로 여래장장식(如來藏藏識)이라 하며, 또 모든 부처님의 여러 가지 덕의 근원이 되는 까닭에 이름을 불러 불성(佛性)이라 한다. 또 보살의 온갖 행의 근원이 되는 까닭에 심지(心地)라 부르기도 한다. 《범망경(梵網經)》 심지법문품(心地法門品)에 “이것은 모든 부처님의 근본 원리며, 보살도를 행하는 근본이고 대중 여러 불자(佛子)의 근본이다.” 하였다. 온갖 행(行)이 보시(布施) ∙ 지계(持戒) ∙ 인욕(忍辱) ∙ 정진(精進) ∙ 선정(禪定) ∙ 지혜(智慧) 등 육바라밀(六波羅蜜)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선문(禪門)은 단지 이 여섯 가운데 하나로서 다섯 번째에 해당한다.

 

그러니 어찌 선행만을 가지고 참된 성품을 한꺼번에 닦아나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선행은 매우 싱그럽고 묘하여 일체의 지혜와 묘한 작용과 온갖 덕행과 덕을 일으키고, 신통 광명이 모두 선정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들이 도를 구할 때는 반드시 선정을 닦아야 한다. 이것을 여의고서는 문이 없고 길이 없다. 심지어 염불하며 극락세계에 나기를 원할 때에도 생각이 다른 데로 흩어지지 않게 삼매(三昧)를 닦아야 한다. 또 참된 성품은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라서 성인이나 범부에게 차별이 없지마는 선에는 얕고 깊음이 있어서 계급이 같지 않다.

 

말하자면 이상한 계교를 부려 위로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싫어하여 마음을 닦는 것을 외도선(外道禪)이라 하고, 인과를 믿되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으로 닦는 것을 범부선(凡夫禪)이라 하며, 나는 공(空)하지만 법은 있다고 주장하여 닦는 것을 소승선(小乘禪)이라 하고, 나와 법이 모두 공하다는 진리를 깨닫고 닦는 것을 대승선(大乘禪)이라 한다. 마음이 본래 청정하여 번뇌가 없으며, 지혜의 성품이 스스로 갖추어져 이 마음이 곧 부처라는 사실을 깨달아, 이 마음을 의지하여 닦는 것을 최상승선(最上乘禪)이라 하고 또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이라 하고 또 일행삼매(一行三昧), 진여삼매(眞如三昧)라 한다. 이것은 모든 삼매의 근본이 되므로 생각 생각에 닦고 익히면 자연히 백 천만의 삼매를 얻을 것이다. 달마(達磨)문하에서 새로 전해온 것이 바로 이 선(禪)이다.」 라고 하였다.

 

* 규봉종밀 선사는 또 「교(敎)는 모든 부처님이 말한 경론이고, 선(禪)은 모든 선지식들이 지어 놓은 글귀다. 그러므로 불경은 삼천대천세계를 향해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것이고, 선의 글귀는 경(經)의 뜻을 뭉쳐서 간략히 해놓은 것이다. 부처님이 세상에 나와서 교를 세우고, 스님들이 상황에 따라 사람을 제도하는 일은 각기 다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한없는 미래세까지 의지해야하기 때문에 이치를 자세히 밝히신 것이고, 스님들의 교훈은 상황에 따라 제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뜻이 깊어야 통할 수 있다.

 

뜻이 깊어야 통할 수 있다는 것은 언어를 잊어버리고 언어의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하고 단지 문자에 집착하여 불도(佛道)를 구하는 이는 알아야 할 것이다. 글자를 알고 경을 외우는 것, 그 자체는 깨달음이 아니요, 문자를 알고 뜻을 해석하는 데에만 그친다면 오히려 삿된 견해만 발달하게 될 것이다. 많이 듣고 많이 아는 아난(阿難)을 보아라. 아난은 총명하여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오랜 세월 깨달음을 알지 못하다가 어느 날 한 순간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부처님이 교를 세우시고 한량없는 이익과 사람을 제도하신 방법은 각기 그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니 구태여 문자만을 숭상할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 불보살께서 중생을 교화하시는 데에는 절복(折伏)과 섭수(攝受)라는 두 가지 문(門)이 있다. 절복은 중생을 강제로 굴복시켜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을 말하고, 섭수는 불보살이 자비심으로 중생을 포용하여 가르쳐서 인도하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사섭법(四攝法)이 있다. 보시섭(普施攝), 애어섭(愛語攝), 이행섭(利行攝) 그리고 동사섭(同事攝)이 그것이다. 섭수(攝受)가 상대방의 입장이나 생각을 고려해서 싸우지 않고 완만히 설득해서 점차로 정법으로 이끄는 방법인데 반해서, 절복(折伏)은 상대방의 입장이나 생각을 용인하지 않고 그 잘못을 철저하게 깨뜨려서 정법(正法)으로 이끄는 엄격한 방법이다. 《승만경(勝鬘經)》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반하는 자는 결코 지나쳐 버리지 않고, 절복할 자는 절복하고, 섭수할 자는 섭수하겠다.」라는 구절이 보인다.

 

* 인광대사는 「일체의 모든 사람을 모두 보살로 보고, 오직 나 한 사람만 참으로 범부로 여기시오. 내가 말한바 대로 과연 수행하면 반드시 서방극락에 왕생할 수 있소.」라고 하였다.

 

* 달마대사의 〈관심론(觀心論)〉에 「만약 진여(眞如)의 마음을 깨쳐서 더러움에 물들지 않음을 깨달으면 성인(聖人)이라고 하고, 만일 물든 마음을 따라 악한 짓을 지어 그 업에 얽히고 덮이게 되면 이를 범부라 한다.」라고 하였다.

 

* 논(論) : 경(經)을 풀이한 것을 말한다. 참고로, 논(論)을 풀이한 것을 ‘소(疏)’라 하고, 소(疏)를 풀이한 것을 ‘초(鈔)’라 한다.

 

* 율(律)은 율종(律宗)을, 교(敎)는 교종(敎宗)을, 선은 선종(禪宗)을 가리킨다. 율종은 계율을 닦고 지키는 것을 중시하는 종파(宗派)이고, 교종은 경전이나 교리(敎理)를 중시하는 종파이며, 선종은 자성(自性)을 보거나 화두(話頭)를 참구하거나 좌선(坐禪)을 통해 불성(佛聖)을 깨닫고자 하는 종파이다. 우리나라 최대 조계종(曹溪宗)은 선종(특히, 임제종)에 속한다.

 

정토법문은 상중하 세 근기에게 두루 가피를 주고, 율律과 교敎와 선禪을 포함한다. 두루 만물을 윤택하게 하는 단비와 같고, 모든 강물을 다 받아들이는 큰 바다와 같아서 성인과 범부를 이끌어 함께 정토에 이르게 한다. 고로 구계九界가 모두 정토법문에 귀의하고 시방세계가 함께 찬탄하는 것이다. 경전마다 정토법문을 밝히고 수많은 논마다 고르게 정토법문을 드날리니 가히 부처님 한평생 설법의 최고봉이자 위없는 일승一乘의 큰 가르침이라 이를 만하다. - 인광대사

 

* 구계(九界) :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수라/ 천상/ 성문/ 연각/ 보살을 말한다. 구법계(九法界)라고도 한다. 이중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수라/ 천상을 육도(六道)라 하고, 성문/ 연각을 이승(二乘)이라 부른다. 중국 위앙종의 개조인 위산(潙山)선사는 「육도(六道)의 도(道)는 선을 떠난 악이요 악을 떠난 선이고, 이승(二乘)의 도는 유루(有漏)를 떠난 무루(無漏)이며, 보살의 도는 치우친 견해를 떠난 중도(中道)이고, 부처님의 도는 떠남도 없고 도달할 곳도 없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온갖 법이 곧 부처님의 도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 담허대사는 「부처님의 일념(一念한 생각)은 십법계(十法界)를 빠짐없이 갖추어 있고, 중생의 일념도 십법계를 구족하고 있다. 만약 중생의 일념이 탐심이라면 곧 아귀도이며, 일념이 성내는 일념이면 곧 지옥도이며, 일념이 어리석음이라면 곧 축생도이며, 일념이 의심과 게으름이라면 곧 아수라도이며, 일념이 오상(五常)과 오계(五戒)에 귀착되면 곧 인도(人道)에 태어나고, 일념이 상품십선(上品十善)에 귀착되면 바로 천상에 태어난다. 만약에 사성제(四聖諦)를 관(觀)하거나 생각하면 곧 성문(聲聞)이고, 12연기(緣起)를 관(觀 )하거나 생각하면 곧 연각(緣覺)이며, 육바라밀을 관(觀)하거나 생각하면 곧 보살이고, 자리이타(自利利他)와 만행평등(萬行平等)을 관(觀)하거나 생각하면 곧 부처이다.」라고 하였다.

 

* 원효대사는 〈대승기신론소〉에서 「‘바다[海]에는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매우 깊음이요[甚深], 둘째는 광대함이요[廣大], 셋째는 온갖 보배가 끝이 없음이요[百寶無窮], 넷째는 온갖 형상이 비취어 나타남이요[萬物影現]」라고 하였다.

 

* 바다는 열 가지 덕(德), 즉 십덕(十德)을 갖추었다. 바다의 십덕은 ①점점 깊어지는 덕 ②죽은 것은 받아들이지 않음 ③어떤 물도 바다에 들어오면 본래의 이름을 잃어버림 ④모두 한 가지 맛임 ⑤보배가 많음 ⑥지극히 깊어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없음 ⑦넓고 크기가 한량없음 ⑧몸이 큰 중생이 많음 ⑨들어오고 나가는 물이 때를 어기지 않음 ⑩비가 아무리 내려도 넘치는 일이 없음.

 

* 정공법사는 「밀종(密宗)은 지혜를 열어야만 비로소 배울 수 있다. 밀종은 최고의 불법이며, 또한 가장 수승한 불법이다. 게다가 마음이 청정해야 하고, 티끌만큼도 오염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배우게 되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팔지보살만이 밀종을 배울 자격이 있다.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는 지극히 얕고 지극히 깊다. 지극히 원융하고 지극히 편벽되거나 걸림이 있다. 가장 평범하고 가장 현묘하다. 수지受持는 가장 쉽지만 해오解悟는 가장 어렵다.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는 석가세존께서 이 오탁악세에 출현하신 근본목적이며, 부처님의 본회本懷이자 위없는 대법을 펼쳐놓으신 법문이고 3장 12부의 정화이다.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는 일체의 선禪과 교敎와 율律과 밀密을 훨씬 뛰어넘고 이들을 모두 포함한다. -원인圓因법사

 

* 해오(解悟)는 신해해증(信解行證)에서 신해(信解)에 해당한다. 깨달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해오(解悟)이고, 또 하나는 증오(證悟)이다. 해오(解悟)란 이치로 깨달은 것이고, 증오(證悟)란 이치로 깨달은 것을 증명(證明)하는 것이다. 해오는 견해(見解)또는 지해(知解)라고도 한다. 청화스님은 「해오는 반야지혜가 아니고 그냥 범부지견(凡夫知見)인 셈입니다. 해오를 했을 때는 어느 경전을 보든지 문자만 좀 알면 ‘아 그렇구나’하고 짐작이 되어 교상(敎相)면에서는 걸림이 없는 자리입니다.

 

증오(證悟)는 체험적으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를 현관(現觀)해서 깨닫는 자리입니다. ‘이 마음이 본래 청정하고 원래 번뇌가 없고, 때 묻지 않은 지성(智性)이 본래 갖추어 있으니까 이 마음이 바로 부처고 이 마음이 범부나 또는 석가모니나 일반 성자나 다름이 없다.’ 이렇게 알면 해오(解悟)인 것입니다. 즉, 알기만 알면 해오이고, 닦아서 번뇌를 여의고서 금강불심(金剛佛心)을 증명해서 깨달을 때는 증오입니다.」라고 하였다.

 

* 영명영수 선사는 〈종경록〉에서 「만약 깨달음으로 인하여 닦는다면 이는 곧 해오(解悟)요, 닦음으로 인하여 깨닫는다면 이는 곧 증오(證悟)이다.」라고 하였다.

* 정공법사는 「해오(解悟)하면 바른 믿음이 나타나고, 증오(證悟)하면 진실한 믿음이 나타납니다.」라고 하였다.

 

* 인광대사는 「말법시대의 중생들의 근기는 형편없이 낮소. 선종이나 교종의 모든 법문은 오직 자기 힘에만 의지하기 때문에, 해오(解悟)조차 오히려 어렵다오. 하물며 증득(證得)하는 것은 말할 나위가 있겠소.」라고 하였다.

 

* 해오(解悟)/ 증오(證悟) : 해오란 시각(視覺)으로서 ‘일체 모든 것[凡所有相]’이 허망하다 것을 깨달아 참됨을 통달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 견도위(見道位)라고도 한다. 깨달음 가운데서 수행자의 지견(知見)이 바뀌고 그에 따라 행위가 바뀐다. 해오(解悟)의 단계에서는 일체의 사견(邪見)과 악지견(惡知見)이 모두 끊어지고, 경전의 심오한 뜻을 모두 알게 된다. 한편, 증오(證悟)란 견사혹(見思惑)과 습기(習氣)는 물론 무명(無明)까지 완전히 끊어진 경지를 말한다. 구경각(究竟覺) 또는 증도위(證道位)라고도 한다.

 

* 수지(受持) : 처음으로 받아들여 마음이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을 ‘수(受)’라 하고, 끝까지 기억하며 잊지 않는 것을 ‘지(持)’라 한다.[始則領受 在心曰受 終則憶而 不忘曰持], 또는 스승에게는 배우는 것을 ‘수(受)’라 하고, 뜻을 이해하여 닦는 것을 ‘지(持 )’라 한다.[從師所學曰受 解義修行曰持].

 

* 남회근 선생은 「수지(受持)란 도를 깨우친 후 다시 수행을 계속하고, 수행을 통해 그 열매를 얻은 것을 말합니다.」라고 하였다.

 

 

 선禪과 교敎와 율律의 삼승三乘이 모두 정토의 바다로 돌아간다. 일체법이 모두 정토법문에 들어가니, 이것이야말로 위없는 보문普門이다. -〈서방합론 西方合論〉

 

* 인광대사는 「율(律)이란 부처님의 행(行이)고, 교(敎)란 부처님의 말씀이며, 선(禪)이란 부처님의 마음이오, 부처님이 부처님인 까닭도 이 세 가지 법에 있으며,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시는 방편도 바로 이 세 가지 법일 따름이오.」라고 하였다.

 

* 보문(普門) : 보(普)는 골고루 널리 미친다는 뜻이고, 문(門)은 아무 걸림 없이 활짝 열려 있다, 또는 능히 통한다는 뜻이 있으니, 보문은 일체 법에 들어가는 문, 또는 널리 모든 사람들에게 두루 열린 문이라는 의미다. 도(道)가 너무 크고 한계가 없어, 일체중생들의 근기와 성품에 따라 각자 적합한 귀향(歸鄕)의 길을 두루 열어주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한 두 개의 법문만 세우지 않는다는 뜻이다.

 

* 일체법(一切法) : 선법(善法) ∙ 악법(惡法) ∙ 불선불악법(不善不惡法) ∙ 세간법(世間法) ∙ 출세간법(出世間法) ∙ 유위법(有爲法) ∙ 무위법(無爲法) ∙ 공통된 법[公法]과 공통되지 않은 법[不共法]을 망라한다.

 

정토법문이야말로 시방삼세 모든 부처님들께서 위로는 부처가 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함에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법문을 포괄한 총지법문임을 알 수 있다. -인광대사

 

상상근上上根인 중생도 정토법문의 바깥으로 나갈 수 없으며, 하하근下下根인 중생도 역시 정토법문의 안으로 들어 올 수 있으니, 정토법문은 상상근기와 하하근기를 모두 원만히 초월한 것이다. -원영圓英대사

 

* 원영대사는 「정종(정토종)은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 늙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냐를 묻지 않는다. 사람들로 하여금 오직 아미타불 명호만 지니게 한다. 생각 생각마다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이 계속 이어져 중간에 끊이지 않고 생각으로 생각을 그치면 마음속에 오직 부처님밖에 없고, 부처님 밖에는 다시 마음도 없다. 생각이 사일심불란(事一心不亂)에 이르면 곧바로 왕생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참선은 오직 상근기만 거두어들이지만, 염불은 세 근기 모두를 두루 거두어들인다. 참선은 오직 자력(自力)에만 의지하지만, 염불은 자력과 불력(佛力)을 아울러 받는다.」 라고 하였다.

 

* 원영대사는 만약 보살행을 닦아서 널리 중생을 제도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염불하여 정토왕생을 구해야할 것이다. 정토에 왕생하면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들어서 무생법인을 얻게 된다. 그런 후에 시방세계로 두루 들어가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발하고 육바라밀을 닦아 모든 중생을 다 유익하게 하며, 함께 고해를 벗어나 극락정토에 왕생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염불법문이다. 비록 자신의 이로움을 먼저 구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이를 이롭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승(小乘)에서 삼계를 벗어나 열반을 구하는 것과 염불법문은 감히 비교될 수 없다.」 라고 하였다.

 

* 원영대사는 「염불법문은 한 마음으로 염불함으로써 정토에 왕생하여 이고득락(離苦得樂)하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소승법인 듯하지만, 먼저 나를 이롭게 한 연후에야 남을 이롭게 할 수 있으므로 대승법이다. 왜 그러한가. 염불하여 극락왕생하면 연꽃 위에 화생하여 부처님을 친견한다. 불법을 배워 무생법인을 증득하면, 몸과 말과 마음의 불가사의한 업의 바퀴의 업을 얻게 된다. 이 삼륜(三輪)을 얻은 후 널리 시방세계에 두루한 중생을 제도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 원영대사는 「목숨을 마칠 때까지 오직 염불수행에 온 마음을 기울여, 안으로 내 마음의 염하는 힘에 의지하고, 밖으로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지하라. 그러면 두 힘이 한꺼번에 모여 일념으로 성취하여 정토에 왕생하게 된다. 정토에서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들어 무생법인을 증득한 후에 큰 원력의 바퀴를 타고 사바세계로 돌아와 시방세계 곳곳에 여섯 신통으로 사섭법(四攝法)을 행하여 널리 중생을 제도하여 함께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 극락과 사바세계를 자재(自在)로 오가며 널리 불법을 펴서 네 가지 은혜를 갚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

 

* 원영대사는 「부처님께서는 무량겁 이래로 일찍이 우리 중생을 버리지 않으셨다. 내가 미혹할 때는 나를 연민히 보셨으며, 내가 삼악도에 빠졌을 때는 나를 구제하셨다. 이러한 부처님의 은덕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염불수행에 정진하여 자기를 제도하고 남도 제도하여 널리 정토법문을 펼쳐서 부처님을 대신하여 중생을 교화해야 할 것이다. 중생이 염불로 왕생하여 횡으로 삼계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 참으로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 남회근 선생은 「불법을 배우는 많은 사람들이 왕왕 정토종을 어리석은 사람들이나 믿는 것으로 여기는데, 정말 사람을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듭니다.」 라고 하였다.

 

가령 박지범부縛地凡夫가 업장을 짊어진 채 극락에 왕생할 수 잇다는 정토법문을 보고 듣는 것은 정말로 행중의 막대한 행운이오. 무량겁 이래로 선근善根 깊이 심어온 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처럼 불가사의한 법문을 들으며, 나아가 단박에 진실한 믿음을 내어 극락왕생을 발원할 수 있겠소. 정토법문은 부처님의 본래 회포를 궁극까지 다 털어놓으신 것으로 일체의 선禪과 교敎와 율律을 훨씬 초월할 뿐 아니라 이들을 모두 망라한다오. -인광대사

 

* 박지범부(縛地凡夫) : 번뇌와 업장에 얽매인 어리석은 중생을 가리키는 말임.

 

* 교(敎) : 교종(敎宗)을 말한다. 교종은 부처님 말씀인 경전에 의지해 경전을 읽고 외우고 참구(參究)하여 대개원해(大開圓解)를 종지로 삼는 종파(宗派)다. 교종에는 화엄종(현수종), 천태종, 법상종(자은종), 법성종 등이 있다. 교(敎)에 밝은 스승을 법사(法師)라 부른다. 경전을 읽는 것을 독경(讀經) 또는 간경(看經)이라 하는데, 남회근 선생은 「‘경전의 글자에만 의지해서 그 의미를 이해하면 삼세의 부처님이 원통해하신다. 고 하셨습니다. 진정으로 부처를 배우는 자들은 경(經)에 정통해야 합니다. 즉, 교리(敎理)에 정통해야 합니다. 오늘날 불학(佛學) 논문을 쓴 사람들은 모두 문자에 의해서만 의미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정말 삼세의 부처님들보고 모두 억울하다고 소리치게 합니다.」라고 하였다.

 

* 인광대사는 「반드시 염불이라는 한 문(門)에만 전념하는 것을, 천 번 만 번 온당하고 타당한 위없는 제1의 법칙으로 삼길 바라오.」라고 하였다.

 

* 인광대사는 「염불이라는 한 법은 믿음 발원 수행이라는 세 가지에 주안점을 둔다오. 단지 염불 할 줄만 알고 믿음 발원을 내지 않는다면, 설사 일심불란을 얻더라도 반드시 왕생한다고는 말 할 수 없소. 참으로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을 갖춘다며, 일심불란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또한 부처님의 자비력에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왕생 할 수 있다오.」 라고 하였다.

 

* 달마대사는 〈혈맥론〉에서 「흑백을 분별하지도 못하면서 망령된 말로써 불법을 알린다면, 부처를 비방하고 법을 속이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무리는 법을 말하는 것이 내리는 빗물처럼 유창하더라도 모두 마구니의 말일 뿐 부처님의 말은 아니다. (이런) 스승은 마구니의 왕이고 제자는 마구니의 백성이니, 어리석은 저 백성을 떠 맡아 이끌어 모르는 사이에 생사(生死)의 바아에 떨어진다.」 라고 하였다.

 

    

* 당대 세계 최고의 석학이자 대보살의 화현이라 할 만한 남회근 선생은 글이나 강연에서 누차 다른 학문도 경시하지 말고 배우라고 권한다. 그는 엄격한 아버지처럼 늘 엄중한 목소리로 불자(佛子)들을 경책(警責)하고 있는데, 「송나라와 명나라의 이학(理學:성리학)은 불교의 율종(律宗)에 해당하고, 노장(老莊)은 불교의 선종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시방삼세의 일체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모두 염불을 배우셔서, 속히 위없는 깨달음을 증득하셨다. 고로 알라.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이 다 염불로 마땅히 성불하셨느니라.

-《월등삼매경月燈三昧經》

 

* 남회근 선생은 「증득(證得)이란 온 몸과 마음을 던져서 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비워버림에 도달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 증득(證得)은 ‘일체 경계는 본래 일심(一心)’ 또는 ‘일체 경계가 아미타불의 화신(化身)’임을 철저히 깨달은 경지를 말한다고도 볼 수 있다.

 

삼근보피三根普被의 이 염불법문은 사람마다 배울 수 있고 사람마다 유익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소홀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회근 선생

 

* 삼근보피(三根普被) : 불보살님께서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 모두에게 두루 가피(加被:불보살이 중생을 이롭게 함)를 줌. 가피에는 현증(顯證)가피/ 몽중(夢中)가피/ 명훈(冥熏)가피의 세 가지가 있다.

 

* 남회근 선생은 「정토법문에서는 부처님 명호를 한 번 부르면 ‘삼근을 보피한다’고 부릅니다. 이 말은 최대의 교의(敎義: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적인 뜻/일체경전의 근본 뜻)입니다. 게다가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데, 여러분들은 매우 경시합니다.」라고 하였다.

 

* 청화스님은 「부처와 나와 둘이 아니고, 천지가 나와 더불어서 둘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하셔야 참다운 가피를 받습니다.」라고 하였다.

* 위 말씀은 〈불교수행입문강의〉(원환선ㆍ남회근 공저, 송문찬 번역, 마하연 출판사)에서 인용함.

 

나무아미타불은 문자로 말하자면 단지 여섯 자에 불과하지만, 그 쓰임을 가지고 논한다면 3장12부의 교리가 모두 그 속에 갖추어져 있고, 석가모니부처님의 49년의 설법이 한자도 남김없이 모두 그 속에 갖추어져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어떤 교의敎義든이 여섯 자를 넘어서지 못한다. -방륜〈정법개술〉

 

* 선화상인은 「부처님께서 말로 가르치신 것은 경장(經藏)이며, 제자들의 주해(註解)는 논장(論藏)으로서 삼장십이부경은 바로 진리의 가르침, 진실한 교의(敎義)입니다. 진리가 있는 곳은 시방제불이 보호하고, 진리가 있는 곳은 시방의 제보살이 보호하며, 진리가 있는 곳은 천룡팔부가 와서 보호합니다.」라고 하였다.

 

석가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신 본회本懷는 오로지 정토법문을 널리 펼치시기 위함에 있다.

-선도화상

 

* 본회 : 본래 품은 뜻. 근본 목적.

* 선도화상은 비슷한 표현으로 다시 말하였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오신 이유는, 오직 아미타불의 본원해(48대원)를 설하시기 위함이다.

* 선도화상은 ‘나무아미타불’만이 염불이고, 그 외의 부처님 명호나 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것은 염불이 아닌 ‘찬불(讚佛)’이라고 격하(格下)했다.

 

* 선도화상은 염불사덕(念佛四德)을 말했다. 첫째, 부처님의 명호만 불러도, 이는 아미타불에 대하여 최고무상의 찬탄이다. 둘째, 부천님 명호를 부르고 또 부르면 이것이 항상 참회하는 것이다. 셋째, ‘나무(南無)’는 곧 ‘귀명(歸命)’의 뜻이고, 이는 또 발원회향의 뜻이다. 아미타불하고 부르면 이것이 곧 발원회향하는 것이다. 이런 뜻이 있기 때문에 (염불하면) 반드시 정토에 왕생한다. 넷째, 아미타불은 인위(因位:보살로 있으면서 수행하는 자리)상의 만 가지 행(行)과 과지(果地:인위에서 수행을 하여 마침내 정각을 이룬 자리)상의 만 가지 공덕이 모두 다 아미타불 명호 안에 섭수된다. 이 육자명호(나무아미타불을 말함)로 인하여 모든 선법(善法)이 갖추어지고 모든 공덕의 뿌리를 거두어들인다. 그러므로 단지 부처님 명호만 불러도 일체의 선근을 저절로 얻고 장엄정토를 스스로 이룬다.

 

무엇을 일러 복중의 복이라 하는가. 아미타불의 명호는 만덕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연지대사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은 수많은 공덕을 한꺼번에 갖추는 것이며, 아미타불의 명호에만 집중하는 것은 백가지 모든 수행법을 한꺼번에 갖추는 것이며, 아미타불의 명호에만 집중하는 것은 백가지 모든 수행법을 한꺼번에 갖추는 것이어서 한 수행법도 빠뜨리지 않는다. 즉, 일심으로 염불하면 백가지 수행법을 모두 닦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복중의 복이요, 복이 많다고 하는 것이다.

-원영대사〈阿彌陀經了解講義〉

 

* 〈정토법어〉에 「일심으로 염불하여 정토왕생을 구하라. 이 여덟 글자야말로 위없는 법문이니 다른 말이 필요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아미타불이라는 명호는 만 가지 덕을 가진 위대한 명호이며 일체법문을 원섭圓攝한다. 우익대사는 「삼장 십이부경의 교敎와, 선禪의 1,700가지 공안이 모두 아미타불 명호 속에 다 들어 있고,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과 삼취정계三聚淨戒도 모두 아미타불 명호 속에 들어 있다.」라고 하였으며, 연지대사는 「아미타불 넉자가 팔교八敎를 해라該羅하고 오종五宗을 원섭한다.」 하였다. -〈연종집요蓮宗集要〉

 

* 우익대사는 「석가여래께서 아미타불은 극락으로 중생을 인도하시는 분이라고 하셨다. 48대원으로써 깊은 믿음과 발원으로 중생을 맞이하여 극락세계에 왕생케 하고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불퇴전(不退轉)의 지위에 오르게 하는 분이다.」라고 하였다.

* 우익대사는 「아미타불은 만 가지 공덕을 갖춘 위대한 명호이다.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 부처님의 만 가지 공덕을 갖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아미타불을 부르는 그 공덕은 아무리 다해도 다함이 없다.」라고 하였다.

 

* 달마대사는 〈관심론(觀心論)〉에서 「해탈을 구하는 이가 삼독(三毒)을 돌려 삼취정계로 삼고, 육적(六賊)을 돌려 육바라밀을 이루면 자연히 모든 고통을 여의게 된다.」라고 하였다.

* 삼취정계(三娶淨戒) : 착한 법을 모두 행하라는 섭선법계(攝善法戒), 계율을 잘 지키라는 섭률의계(攝律義戒),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라는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함.

 

* 원효대사는 「섭률의계와 섭선법계만 있고 섭중생계가 없다면 오로지 자리행(自利行)만 있는 것이 되어 이승(二乘)에 머물 뿐이며, 섭중생계만 있다면 이타행(利他行)만 있고 자리행이 없게 되는 까닭에 범부와 다를 바 없는 것이 되어 보리(菩提)의 싹을 돋아나게 할 수 없다. 삼취정계를 다 갖추면 무상보리(無上菩提 : 위 없는 깨달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어서, 이 삼취정계야말로 불사약(不死藥)인 감로(甘露)이다. 따라서 섭률의계는 단(斷)의 덕목이고, 섭선법계는 지(智)의 덕목이며, 섭중생계는 은(恩)의 덕목이기 때문에, 이 삼덕(三德)의 과(果)를 얻으면 그것이 바로 정각(正覺)을 이루는 길이다.」라고 하였다.

 

* 남회근 선생은 「선종을 보면, 임제종으로부터 위앙종, 조동종, 운문종, 법안종 등에 이르기까지 교리(敎理)에 통달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경전의 교리에 전부 통달하고서, 마지막으로 그것을 버리고 선(禪)을 배운 겁니다. 지금 사람들은 경전도 연구하지 않고 입만 떼면 선종을 말합니다.」라고 하였다.

 

* 화두(話頭)라고도 불리는 공안(公案)에는 1,700가지의 공안이 있다. 이 수는 〈경덕전등록〉에서 1,701선사의 수행 이력을 수록했기 때문에 유래되었다. 연지대사는 그의 저서 〈선관책진(禪關策進)〉에서 이러한 공안이 무려 1,700가지나 된다고 하고, 이 숫자는 〈경덕전등록〉에 실린 조사(祖師)의 수가 1,700인 것에 근거한다고 밝혔다.

 

* 남회근 선생은 「위의(威儀)란 사나운 모습이 아닙니다. 또 혐오스러운 모습을 띠는 것이 아닙니다. 공덕이 성취되어 어디에 가더라도 기개(氣槪)와 도량(度量)이 있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 원섭(圓攝) : 원만히 끌어들이다. 원만히 거두어들이다. 원만히 거느리다.

* 해라(該羅) : 모조리 포함하다. 죄다 망라하다.

 

염불은 귀로 듣고 입으로 외우기 때문에 성스러운 공덕이 끝이 없다. 아뢰야식에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부처의 씨앗이 되어 억겁의 중죄를 단박에 없애고 위없는 깨달음을 증득한다.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은 소선근小善根이 아니라 다공덕多功德임을 믿어 알지니라. - 대지율사〈阿彌陀經義疏〉

 

* 인광대사는 「무량겁 이래로 선근(善根)을 깊이 싶어온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처럼 불가사의한 법문을 들으며, 나아가 단박에 믿음을 내어 극락왕생을 발원할 수 있겠소.」라고 하였다.

* 정공법사는 「옛날 조사(祖師)들께서는 부처님 명호를 염송할 적에는 마음으로부터 나와야 하고, 입에서 나와야 하고, 귀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쉽게 마음을 모을 수 있어서 잡념이 쉽게 들어오지 못한다고 가르쳤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염불하는 중간에 스스로 끊어지게 해서는 안된다.」라고 하였다.

 

* 〈인천보감(人天寶鑑)〉에 「영지사(靈芝寺) 원조율사(元照律師 : 대지율사 지칭)는 전당(錢塘)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숙세의 인연이 익어져 나이 열여덟에 경에 통달하여 출가하였으며, 사미로 있을 때 이미 대중을 위해 경을 강의하였다. 계율을 배우면서는 배울만한 스승이 없다고 늘 탄식하였다. 당시 신오처겸(神悟處謙)법사는 천태(天台)의 도를 깊이 터득하고 있었다. 율사가 찾아뵙고는 “참으로 나의 스승이시다.”하고 청을 해서 문하에 있게 되었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춥거나 덥거나 날마다 몇 리 길을 걸어와 배웠다. 처겸법사는 강론을 할 때마다 반드시 율사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어쩌다 조금 늦어져 대중들이 시간이 지났다고 강론을 청하면 언제나 “강을 들을 사람이 아직 오지 않았다.” 고 말했으니 그는 이토록 율사를 사랑하였다.

 

율사가 익혀왔던 것을 버리고 법사를 따르려 하니 법사가 말하였다. “요즘 들어서 율(律)의 가르침이 점점 약해지는데 그대는 뒷날 반드시 종장이 될 것이니 꼭 법화(法華)를 밝히고 사분율(四分律)을 널리 펴도록 하여라. 나의 도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율사는 마침내 많은 종파를 널리 연구하고 그중에 율을 근본으로 삼았는데 단지 말로만 하지 않고 실천에 옮겼다. 일찍이 남산도선(南山道宣)율사에게 귀의하여 하루 여섯 차례씩 예배를 드리고 밤낮으로 도를 닦았다. 발우를 들고 걸식을 다녔는데 옷이라고는 큰 베옷 하나만 걸쳤을 뿐이었고, 정오가 지나서는 밥을 먹지 않았다. 발우 하나와 옷 세벌 뿐 바랑 속에 쓸데없는 물건은 없었다. 기도를 하면 언제나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아 메뚜기를 없애달라고 빌면 메뚜기가 경계 밖으로 떠나고, 비가 오게 해달라고 빌면 장맛비가 내렸다. 술고방공(術古龐公)이 율사에게 비를 빌도록 명하였는데, 축원이 입에서 끝나기도 전에 천둥이 치며 소나기가 쏟아지니 공이 말하였다.

 

“우리집안은 대대로 불법을 섬기지 않았는데 지금 율사를 만나고 보니 귀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태사(太師) 사월왕(史越王)이 율사의 비(碑) 뒷면에 이렇게 썼다. “유학을 하는 사람은 유학으로 자기를 묶고, 계율을 하는 사람은 계율로 자기를 묶는 것이 공부하는 이들의 큰 병통이다. 그런데 유독 율사만은 3천 가지 몸가짐과 8만 가지 세세한 행을 갖추어 흠잡을 데 없는데도 늘 정혜(定慧)의 테두리를 껍질 벗듯 초탈하였으니 율장 중에 진짜 법왕의 아들이었다.

 

그러므로 수백 년 뒤까지도 사람들을 분발케 하니, 그를 남산율사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평가하나 그 공은 배가 된다고 하겠다. 만일 지난날 율사에게 하여금 승복을 입게 하지 않았더라면 반드시 유교의 우두머리로서 특출한 조예를 가진 사람이 되었을 터인데, 아까운 일이다.” 율사가 돌아가신지 26년이 되도록 그 남긴 향기가 없어지지 않자 조정에서는 ‘대지율사(大智律師)’라는 호를 내리고 탑을 ‘계광(戒光)’이라 이름 지어 시호를 하사하는 은혜를 주었다. 이 일은 유공(劉公)의 글에 언급되지 않았기에 비의 뒷면에 써둔다.“」라고 하였다.

 

만약 임종하는 사람의 집안 권속 중의 한 사람이라도 병든 사람을 위하여 큰 소리로 한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면, 임종하는 사람은 오역죄를 제외한 나머지 업보는 모두 소멸 될 것입니다. 오역죄를 지어 무간지옥에 들어갈 죄가 비록 지극히 무거운 것이어서 억겁을 지나도 결국 벗어나지 못하지만, 이 사람이 임종할 때 다른 사람이 그를 위하여 염불을 해주면 오역죄도 점점 소멸할 것입니다. 하물며 중생들이 스스로 염불하는 것이겠습니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복덕을 얻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죄업도 소멸하게 될 것입니다.

 

* 원영대사는 「극락정토 왕생을 구하면서 일생 동안 정진하는 염불 수행자의 공덕은 바로 임종의 순간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임종 자리에서는 일념이라도 어긋나면 정토에 왕생하기 어렵다. 바야흐로 임종에 다다랐을 때 성인과 범부로 나뉜다.」라고 하여 임종순간의 중요함을 역설했다.

 

* 남회근 선생은 「지장경(地藏經)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신이고 할머니들이나 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장경은 아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쓴 능엄대의금석(楞嚴大義今釋)이라는 책에서 지옥에 관한 단락은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중생들이 믿기 어려우니까요. 만약 지옥을 철저하게 이해한다면 수행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이 자리에서 부처를 배우는 여러분은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정말 삼세인과를 믿습니까. 정말 지옥을 믿습니까. 불법은 대소승을 막론하고 모두 삼세인과와 육도윤회의 이론 기초 위에 건립된 겁니다.」라고 하였다.

 

* 정공법사는 「지장경은 우리에게 불법에 입문하여 가장 먼저 수확해야 할 것이 ‘효친(孝親)’과 ‘존사(尊師)’임을 시사합니다. 부처님의 교육은 사도(師道)에 있고, 사도는 효도를 기초하여 세워집니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하는 이가 어떻게 스승을 존경할 수가 있겠습니까. 스승을 존중치 않고 스승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그 스승에게 학문과 능력이 있다한들 그에게 전수할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승을 존경하고 도를 중히 여길 때, 학업의 성취를 이룰 수 있습니다. 지장경은 불가(佛家)의 효경(孝經)입니다. ‘효도’는 ‘대원만(大圓滿)의 뿌리이자 근본이어서 모든 대원만이 이로부터 시작됩니다.」라고 하였다.

 

* 《지장보살원경》에 「만약 미래나 현재의 모든 세계에서 육도중생이 명(命)을 마치려 할 때, 지장보살의 명호를 들려주어 그 한소리만 귀에 들어가게 하여도, 이 중생들은 영원히 삼악도의 고통을 겪지 않으리라.」라고 하였다.

 

* 《지장보살원경》에 「이때, 결뢰지신(堅牢地神)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예부터 오면서 한량없는 보하마살을 우러러 정례하였사온데, 모두가 불가사의한 큰 신통력과 지혜로서 널리 중생을 제도하시지만, 이 지장보살마하살은 저 모든 보살들보다 서원이 더 깊고 무겁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지장보살은 염부제에 큰 인연이 있나이다. 저 문수, 보현, 관음, 미륵보살도 역시 백 천 가지 몸으로서 육도중생을 제도하시지만 그 원(願)은 오히려 끝이 있사오니, 이 지장보살은 육도의 일체 중생을 교화하시어 서원을 발한 겁수가 천백억 항하사와 같나이다.”」라고 하였다.

 

* 《지장보살원경》에 「부처님께서 다시 지장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미래세에 만약 어떤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불법 가운데 혹은 보시 공양하고, 혹은 탑과 절을 보수하고, 혹은 경전을 잘 꾸며서 선근을 심되, 비록 한 터럭, 한 티끌, 한 모래, 한 물방울, 한 착한 일이라도 다만 능히 법계에 회향하면, 이 사람은 그 공덕으로 백 천생에 으뜸가는 묘락(妙樂)을 받으리라. 다만 자기 집 권속이나 자신의 이익으로만 돌린다면, 이런 과보는 삼생의 낙이 될 뿐이니라. 하나로써 만 가지 복을 얻게 되나니, 지장보살이여, 보시의 인연이 이러하니라”」라고 하였다.

 

* 《지장보살원경》에 「일체중생이 임종할 때, 만약 한 부처님 명호나 한 보살님 명호만 들어도, 혹은 대승경전의 한 구절 한 게송만 들어도, 제가 이 사람들을 관(觀)하여 보니, 오무간지옥에 갈 살생죄도 없어지고, 소소한 악업으로써 악도에 떨어질 자는 해탈케 되나이다.」라고 하였다.

 

* 《지장보살원경》에 「장자(長者)여, 미래 현재의 모든 중생들이 임종할 때에, 한 부처님 명호나 한 보살님 명호나 한 벽지불의 명호만 들어도 죄가 있고 없고를 물을 것 없이 다 해탈하게 됩니다. 만약에 어떤 남자나 여인이 살아 있을 적에 착한 인연을 닦지 않고 여러 가지 죄만 잔뜩 지었더라도, 명을 마친 뒤에 대소권속들이 그를 위해 온갖 거룩한 일을 닦아 복되게 하며, 그 공덕의 7분의 1은 망인(亡人)이 얻고 나머지 공덕은 산 사람에게로 돌아갑니다. 이러하므로, 미래와 현재의 선남자 선여인들은 이 말을 잘 듣고 스스로 닦아야 그 공덕을 모조리 얻게 됩니다. 죽음의 귀신이 기약 없이 닥쳐오면, 어둠 속을 헤매는 혼신이 자신의 죄와 복을 알지 못하고 49일 동안을 바보처럼 귀머거리처럼 되었다가, 중생의 죄업을 심판하는 곳에서 그의 업과(業果)를 변론하고 결정한 뒤에야 그의 업대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앞길을 예측 할 수 없는 그 사이에도 근심과 고통이 천만 가지인데, 하물며 저 악도에 떨어졌을 때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 연지대사는 「부모님이 홍진(紅塵 : 사바세계)의 더러움을 떠날 수 있을 때, 자식의 효도가 바야흐로 성취된다.」라고 하였다.

* 정공법사는 「지장경에 이르기를, “염부제의 중생이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는 것은 죄가 아닌 것이 없다.” 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시작 없는 겁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혹하고 전도(顚倒)되어 한량없고 끝이 없는 죄업을 쌓아 악한 습기(習氣)가 너무 많고 너무 무겁습니다.」 라고 하였다.

 

* 「현재 얻은 것은 과거에 만든 것이고, 미래에 얻는 것은 지금 만든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 고덕께서 「온갖 일들 중에 나고 죽는 일보다 더 큰 일은 없다고 보아라. 그러면 만사가 다 급하지 않은 일이니라. 일체의 모든 순간을 임종하는 순간으로 여겨라. 그러면 매 시간 시간이 다 염불해야 할 때 이니라.」라고 하였다.

 

* 《지장경》은 한국에서 홀대받는 대표적인 경전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승불교를 공부한다고 하면서 《화엄경》이나 《법화경》 《금강경》 등만 중시할 뿐 《지장경》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불교를 제대로 공부하려면 《지장경》부터 보아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다.

 

아미타불을 한 번 부르면 80억겁 동안 생사윤회를 거듭하면서 지은 죄를 멸할 수 있고, 팔십 억겁의 훌륭한 공덕을 성취할 수 있다. 한 번 염불이 이럴 진대, 하물며 열 번 ㆍ 백번 ㆍ 천 번 ㆍ 만 번은 어떠하겠는가. 이와 같이 하루, 한 달, 일 년, 일생 동안 가거나 멈추거나 앉거나 눕거나 항상 주야로 정근精勤하면, 어떤 죄가 소멸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공덕이 증장增長하지 않겠는가. 어떤 인因이라도 극락국에 나게 할 것이며, 어떤 연緣이라도 아미타불을 뵙게 하리라. 비유하면, 어린 아이가 두려운 것이 있어 소리 내어 그 부모를 부르면, 부모가 자비로운 마음으로 자식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모든 일을 제쳐두고 급히 와서 구하여 보살피는 것과 같다.

 

지금 오탁악세의 중생들이 항상 생로병사와 삼악도三惡道와 같은 고통의 핍박이 심하여 이미 이것을 알고 곧 경악해 하고 놀라며 두려워하여 진실한 마음으로 소리 높여 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서 구제하여 보살펴 주기를 구하면, 아미타불께서는 천이통天耳通으로 반드시 멀리서 들으시고, 천안통天眼通으로 반드시 멀리서 보시며, 타심통他心通으로 반드시 멀리서 아신다. 부처님의 자비로우심은 인간 부모들의 어리석은 사랑과는 달라서 중생을 보시기를 평등하게 한 자식처럼 대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몸소 오셔서 자비를 베푸시어 인도해 주신다. 그런 까닭으로 서방의 아미타불의 원력願力이 깊고 무거워 항상 광명명호로써 중생을 섭화攝化하시는 것이다. 우리 불자는 이제 이미 부처님의 본원本願에 상응相應하였다. 이치가 반드시 이와 같으니 의심하는 생각을 내지 말라. 만약 모든 중생이 지성스런 마음으로 일념一念 십념十念을 하루 또는 칠 일간 부처님의 원력願力을 받아 모두 왕생하리라.

 

- 왕자성王者成〈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

 

* 〈예념미타도량참법〉 :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게 예배하면서 모든 악업(惡業)을 참회하고, 보리심(菩提心)을 내어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불교의식을 미타참법(彌陀懺法)이라고 하는데, 〈예념미타도량참법〉은 이 의식(儀式)의 절차를 수록한 경전으로 원래 총 10권이다. 중국 금(金)나라의 거사(居士)인 왕자성이 집록(集錄)하였다.

 

* 남회근 선생은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직 성불하지 못했다면 먼저 사람들과의 연을 맺으라.[未曾成佛, 先結人緣]” 여러분이 도(道)를 얻고 나서 중생을 제도하려 해도, 만약 공덕 ∙ 법연(法緣)이 부족하면 사람들을 제다할 길이 없습니다. 부처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연이 부족하고 공덕이 갖춰지지 않았다면 선지식을 만나지 못합니다. 만났다 할지라도 자연히 떠나게 되거나 장애가 있곤 합니다.」라고 하였다.

 

* 정공법사는 「정토(淨土)의 인구는 셀 수 없다. 비록 우리가 이 세계의 모든 컴퓨터를 동원해도 정토에 사는 사람들의 수를 계산해 내지 못한다. 이들 각자는 모두 아미타부처님과 같은 능력을 가진다. 모든 것을 보는 천안(天眼)과 모든 것을 듣는 천이(天耳)를 가지며, 온 우주의 모든 존재의 과거 ∙ 현재 ∙ 미래의 모든 생각을 아는 능력을 갖는다.」라고 하였다.

 

* 서산대사는 〈선가귀감〉에서 「몸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이 있고, 법계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으며,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무상함이 있다. 이러한 덧없는 고통의 불길들이 다함께 사방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다. 구도자(求道者)들이여, 세월을 헛되게 보내지 말라.」라고 하였다.

 

석가여래께서 이 세상에 머무시면서 삼백차례 넘게 설법을 하셨는데, 모든 경이 다 정토로 귀결되었다. 대저 중생은 이 세상을 탐내고 그리워하여 고통을 낙으로 삼고 스스로 기꺼이 구렁텅이에 빠져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이 정토법문에서 간곡하게 가르침을 주시기를 그치지 않으셨고, 갠지스 강의 모래처럼 많은 부처님께서 광장설상廣長舌相을 내시면서 진실하고 간절하게 한 목소리로 소위 모든 삼매중에서 오직 염불삼매가 가장 바로 질러가는 지름길이라고 찬탄하셨다.

 

* 정토지귀집(淨土指歸集) : 중국 명나라의 대우(大佑)선사께서 정토에 관해 쓴 문집.

* 인광대사는 「염불수행을 꾸준히 계속하여 공부가 순수해지고 힘이 지극히 붙으면, 결국 ‘온 마음이 부처이고 온 부처가 마음이 되어, 마음과 부처가 둘이 아니고 마음과 부처가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되오.」라고 하였다.

 

* 청화스님은 「삼매(三昧)는 풀어서 말하면 정(定)이라, 선정(禪定)이란 뜻입니다. 우리 마음을 한 곳에 딱 머물러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잡념이 없이 하나의 것에만 몰두하는 것, 우리 마음을 한 곳에 머물게 해서 산란한 마음이 없게 하는 것이 삼매입니다. 보다 더 확실히 말하면 우리 마음을 정법(正法) 즉, 바른 법에 머물게 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삼매입니다.」라고 하였다.

 

* 철오선사는 「정토지귀집은 많은 훌륭한 글을 발췌 편집하면서도, 사(事)와 이(理)에 원만히 회통(會通 : 서로 모순 없이 두루 원만히 통함)하였다.」라고 하였다.

 

염불삼매에 들면 곧 일체의 모든 선근善根이 나온다. - 《보살염불삼매경菩薩念佛三昧經》

 

* 혜원법사는 〈염불삼매시집서(念佛三昧詩集序)〉에서 「대저 삼매란 생각을 한 곳에 집중하고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이다. 생각을 한 곳에 모으면 곧 심지(心志)가 하나로 뭉쳐 분산되지 않으며, 마음을 적정(寂靜)하게 하면 심기(心氣)가 청허(淸虛)해져서 정신이 밝아진다. 심기가 청허하게 되면 지혜가 그것을 비추고 정신이 밝아지면 유미(幽微 : 심오)한 것까지도 꿰뚫게 된다. 삼매는 여러 가지 이름이 많으나 염불 삼매가 가장 공덕이 높고 나아가기가 쉽다.」라고 하였다.

 

* 중국 청나라 성일대사는 「삼매를 증득하게 되면 왕생극락하는 것은 필연지사이니, 조금의 의심도 할 여지가 없는 것이며, 삼매를 얻기 위해서는 문을 걸어 잠그고 바깥 모든 사람들과 대면을 끊고 말을 일체하지 아니하고, 일심(一心)으로 염불에 전력을 하지 않고는 결코 삼매를 얻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 《대집염불삼매경(大集念佛三昧經)》에 「이와 같이 염불삼매는 일체의 모든 법을 모두 거두어들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염불삼매는 능히 모든 번뇌와 선세先世의 죄업을 없애 준다. 다른 모든 삼매는 음심淫心만 없앨 뿐 성내는 마음은 없애지 못하고, 혹은 성내는 마음만 없앨 뿐 음심은 없애지 못하며, 혹은 어리석은 마음만 없앨 뿐 음욕淫慾과 성내는 마음은 없애지 못하고, 혹은 삼독三毒은 없앨 뿐 전생의 죄없은 없애지 못한다. 염불삼매야말로 능히 모든 번뇌와 숙세의 모든 죄업을 없애 준다. 또, 염불삼매에는 대복덕이 있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 있기 때문에, 실로 모든 보살께서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다른 모든 삼매 중에서 이 염불삼매만큼 복덕을 지니고 속히 모든 죄를 없애줄 수 있는 삼매는 없다. 또, 부처님은 법의 왕이시고 보살은 법의 장수이시니 (보살은) 오직 부처님을 높이 여기고 존중하신다. 고로 마땅히 늘 염불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대신大臣이 특별히 왕의 은총을 입어 늘 왕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가지가지의 공덕과 무량한 지혜를 알아 모두 부처님을 따라 부처님의 은혜가 무겁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늘 염불하는 것이다.

- 용수龍樹보살〈대지도론大智度論〉

 

* 용수는 제2의 석가로 불렸으며, 8종(宗 : 율종/ 연종(염불)/ 유식종/ 천태종/ 화엄종/ 선종/ 밀종/ 삼론종)의 조사이자 대승불교의 이론적 완성자로서 보살로 격상되어 흔히 용수보살로 불린다. 방대한 《화엄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지은 〈화엄경약찬게華嚴經略纂偈〉의 저자이기도 하다.

 

* 〈대지도론〉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실려 전한다. 「설사 부처님을 멀리에 이고 진겁(塵劫)을 보내거나, 내 몸이 의자가 되어 부처님을 모시고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다녀도, 불법을 전하여 중생을 제도하지 못하면, 끝내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 아니라네.」

 

* 역시 〈대지도론〉에 「음욕(淫慾)을 끊고 출가한 이는 응당 아누다라사먁삼보리를 얻겠지만, 음욕을 끊지 못한 자는 그렇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음욕은 모든 결(結 : 번뇌)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말씀하시되 “차라리 날카로운 칼로서 몸을 베고 자를지언정 여인은 만나지 말라.”라고 하셨다. 칼로 베면 괴롭기는 하더라도 악취(惡趣)에는 떨어지지 않지만, 음욕의 인연은 한량없는 겁 동안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된다.」라고 하였다.

 

* 〈연종집요〉에 「관세음보살은 지금 극락세계의 보처(補處)보살로 계셔서 중생을 접인(接引)하여 극락에 왕생케 하신다. 그러나 아미타불은 그 48원(願)중에 중생이 아미타불의 명호를 염하면 죽을 때에 극락에 왕생하게 하기를 발원하셨는데, 관세음보살은 이러한 원(願)이 없다. 또 부처님은 법왕(法王)이시고 보살은 법신(法臣)이시므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공덕은 아미타불을 염하는 공덕만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 서산대사는 〈선가귀감〉에서 「고통스러운 사바세계를 벗어나 즐거움이 가득한 피안(열반)에 오르는 것은 모두 부처님의 자비로운 큰 은혜 덕분이니, 그렇다면 갠지스 강 모래알만큼 많은 목숨을 바친다 할지라도, 그 은혜는 만분의 일도 갚기 어렵다.」라고 하였다.

 

 

* 인광대사는 선도화상을 가리켜 「선도화상은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위대한 신통력과 지혜를 겸비하셨다.」라고 하였다.

* 연지대사는 〈왕생집(往生集)〉에서 선도화상을 가리켜 「선도화상은 세간에서 아미타불의 화신이라 전한다.」라고 하였다.

 

* 선도화상은 〈왕생예찬게〉에서 「설사 삼천대천세계가 불에 다 타더라도, 부처님 명호를 귓가에 스치듯 듣고, 명호 들은 것을 기뻐하면서 찬탄하면 모두 다 극락에 왕생한다.」라고 하였다.

* 선도화상은 〈왕생예찬게〉에서 「부처님 계신 세상은 만나기가 매우 어렵고, 사람에게는 믿음과 지혜가 있기도 어렵지만, 희유법(希有法)인 이 정토법문을 만나거나 듣기가 가장 어렵다.」라고 하였다.

 

* 선도화상은 〈왕생예찬게〉에서 「정토법문을 자기도 믿고 남도 믿게 하는 것은 어려움 중에서도 더욱 어려운 일이다. 대자대비를 세상에 전하여 중생을 두루 교화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선도화상은 「원컨대, 모든 사람들은 잘 생각하여 다니거나 머물 거나 앉거나 눕거나 언제나 마음을 잘 다스려 밤낮으로 쉬지 않고 염불하라. 그러면 임종에 다다랐을 때 한 생각에 목숨을 마치고 다음 생각에 정토에 왕생하여 영겁토록 무위(無爲)의 즐거움을 누리며, 곧 성불에 이르게 되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하였다.

 

* 북송(北宋)의 자운(慈雲)대사는 〈서방약전(西房略傳)〉에서, 택영(擇瑛)대사는 〈수증의(修證儀)〉에서, 용흠(用欽)법사는 〈백련기(白蓮記)〉에서 한결같이 「선도화상은 아미타불의 화신이다.」라고 하였다.

불법佛法이 중국에 전파된 이래, 수많은 선승과 위대한 조사들이 정토를 권장하였다. 석가모니부처님이 가르치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이 칭찬하신 경이로운 정토법이 얼마나 완벽하고 숭고한 법인가. 반면에 우리는 단지 미망과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한 범부에 불과하다. 이러함에도 이 법을 내려다보는 거만하고 건방진 사람들이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 감산대사

 

일체의 모든 공덕이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면 두루 갖추어지고, 부처님 공덕의 바다도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면 두루 갖추어지며, 극락의 의보장엄과 정보장엄 역시 아미타불을 부르면 남김없이 두루 갖추어진다. 아미타불이라는 명호는 만 가지 공덕을 갖춘 명호여서, 한 원願도 망라網羅하지 않음이 없고, 한 행行도 갖추지 않음이 없으며, 한 부처님도 비켜나가지 못한다. 아미타불이라는 명호는 만 가지 공덕을 갖춘 명호이므로, 명호를 부르자마자 모든 공덕이 원만해지고, 복덕을 구하지 않아도 복덕은 명호 속에 이미 갖추어져 있다. - 연지대사

 

* 옛 고덕께서 「모든 부처님들은 다 아미타불로 돌아가고, 아미타불을 염하면 모든 부처님을 염하는 것이다. 극락에 왕생하면 모든 정토에 왕생하는 것이기에, 경에서 “일향전념으로 염불하라.”라고 이르셨다.」라고 하였다.

 

* 정보(正報)는 중생이 과거의 업장으로부터 받은 마음과 몸을 말하고, 의보(依報)는 그 마음과 몸이 의지하여 거주하는 환경이나 사물, 음식 등을 말한다. 《아미타경》에는 정보장엄과 의보장엄이 수없이 설해져 있다. 예컨대, 「아미타불의 광명은 한량이 없어서 시방세계의 모든 나라를 두루 비추어 걸림이 없고‧‧‧」, 「아미타불의 수명과 그 나라 사람들의 수명이 한량이 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겁이니‧‧‧」,

 

「저 아미타불에게는 무수히 많은 성문(聲聞) 제자들이 있는데 모두 아라한의 깨달음을 성취하였고‧‧‧」,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들은 모두, 다시는 미혹되지 않고 보리심(菩提心)에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不退轉)의 경지에 있는 이들이며‧‧‧」는 정보장엄을 설하신 말씀들이고, 「그 나라의 중생은 아무런 괴로움이 없고, 다만 즐거움만 누리므로 극락이라 하느니라.」,

 

「극락세계에는 일곱 겹의 난간이 있고, 일곱 겹의 그물이 드리우고, 또한 일곱 겹의 가로수가 무성한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 금 ‧ 은 ‧ 유리 ‧ 파려 등의 네 가지 보배로 이루어져‧‧‧」, 「극락세계에는 칠보로 된 연못이 있는데, 여덟 가지 공덕을 갖춘 청정한 물이 그 안에 가득하며, 그 보배 연못 바닥은 순전한 금모래가 깔려 있고‧‧‧」, 「보배 연못 가운데에는 큰 수레바퀴만한 연꽃이 수없이 피었는데, 푸른 꽃에서는 푸른 광채가 나고, 누른 꽃에서는 누른 광채가, 붉은 꽃에서는 붉은 광채가, 흰 꽃에서는 하얀 광채가 나는데, 지극히 미묘하여 향기롭고 정결하느니라.」,

 

「극락세계에는 항상 천상의 음악이 청아하게 울려 퍼지고, 황금으로 이루어진 땅 위에는 밤낮으로 끊임없이 천상의 만다라 꽃이 비 오듯이 흩날리고 있느니라.」, 「극락세계에는 여러 빛깔의 기묘한 새들이 있는데, 백조와 공작과 앵무새 ‧ 사리새 ‧ 가릉빈가 ‧ 공명새 등이 밤낮없이 항상 평화롭게 청아한 노래를 하느니라.」 등은 의보장엄을 설하신 말씀들이다.

 

《무량수경》 등에는 중생이 극락에 왕생하면 아미타불과 똑같은 32상(相) 80종호(種好)를 갖추고, 수명도 아미타불과 같이 한량이 없으며, 아미타불과 같이 무수히 많은 세계에 부처의 몸을 있다고 설해져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 정보장엄에 해당한다.

 

마명馬鳴과 용수龍樹가 조사祖師이면서 모두 분명한 가르침을 내려 극락왕생을 간절히 권하였는데, 내가 무엇이라고 극락왕생을 마다하겠는가. - 서산대사〈선가귀감〉

 

* 〈선가귀감〉은 한국 스님이 저술하신 책으로는 드물게 중국 대장경에 편입된 명저이다. 중국 대장경에 편입된 저서를 지으신 한국 스님으로는 원효대사와 지눌선사가 있다.

 

* 용수(龍樹) : 대승불교의 모든 학파에서 제2의 부처로 추앙될 만큼 불교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로, 공(空)의 논리를 체계화한 중관파(中觀派)의 시조다. 용궁에 가서 《화엄경》을 가져왔다. 천성이 총명하고 깨달음이 기이하여 문제를 다시 생각하는 법이 없었다. 갓난아이였을 때, 여러 바라문이 각 게송이 32자로 이루어진 4베다(Veda)경전 각 4만 게송을 외우는 것을 듣고는 그 문장을 모두 읊고 그 뜻을 이해했다고 한다. 약관의 나이에 여러 나라에 이름을 떨친 독보적인 인물이었고, 천문/지리/도위(圖緯)/비참(秘讖) 및 여러 도술에 통달하였다. 처음 대승선을 제창하고 대승불교를 일으켜 세운 사람으로 대승불교의 소의(所依)경전이라 할 수 있는 《화엄경》 《반야경》 《금강경》 《금강삼매경》 등이 그의 손을 통해 세상에 전해졌다.

 

* 철오선사도 「게다가 이 염불법문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등 여러 대보살로부터 마명 ‧ 용수 등 여러 대조사들과, 천태 ‧ 영명 ‧ 초석 ‧ 연지대사 등 여러 대선지식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결같은 마음으로 귀의한 가르침이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귀의하지 않는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염불법문은 상중하 세 근기에게 두루 가피를 준다. 위로는 지혜가 있는 자로부터 아래로는 어리석은 사람, 날카로운 근기를 가진 사람과 둔한 근기를 가진 사람 모두를 거두어들인다. 또 늙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 모두에게 다 좋다. 위로는 석가세존이 이 세상에 계실 때의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그리고 세존께서 멸도하신 후에는 마명보살과 용수보살 등 모든 대보살들 어느 누구도 극락세계 왕생을 발원하지 않는 분이 없었다. 백정이나 여자 노비와 같은 하하지下下智라도 일념으로 생각을 한 곳에 모으고 염불하면 모두 왕생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아미타불의 자비하신 원력의 섭수攝受덕분이다. - 문수文殊법사

 

* 문수법사 : 현재 대만의 스님으로 1930년대에 출생하였고, 세 살에 출가하였다. 1973년 미국에 미서불교회(美西佛敎會)를 세웠다. 《능엄경》과 《법화경》에 밝아 여러 저서를 남겼다.

* 문수법사는 「보현보살께서는 십대원왕으로 극락을 이끌어 귀의하셨고, 마명보살은 염불이 최고의 방편법문임을 설하셨으며, 용수보살께서는 염불법문이 도(道)에 빨리 이르는 이행도(易行道)임을 밝히셨고, 연지대사께서는 아미타불 넉자가 팔교(八敎)를 빠짐없이 망라하고, 오종(五宗)을 원만히 거두어들인다고 하셨다.」라고 하였다.

* 하하지(下下智) : 최하의 지혜를 가진 자로서, 가장 어리석고 못난 범부를 가리킴.

 

오직 아미타불의 명호만 부르는 염불의 공덕이 왕생정토주往生淨土呪를 외우는 수행의 공덕보다 훨씬 뛰어나며, 또한 다른 여타의 주문을 외우는 수행 및 일체의 다른 행법을 닦는 공덕보다 뛰어나다.

 

아미타불의 명호를 지니는 공덕이 왕생정토주를 지니는 공덕보다 뛰어나다 함은 무슨 뜻인가. 왕생정토주는 30만 편을 외워야만 아미타불을 친견할 수 있지만, 부처님의 명호를 오로지 지니는 수행은 단 하루 동안의 수행으로 곧 아미타불을 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주문을 외우는 사람은 밤낮으로 하루 종일 21편의 주문을 외우면 능히 오역五逆 등의 죄를 소멸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미타불의 명호를 지닌 즉 지극한 정성을 다한 한 생각의 염불로 80억겁 동안 윤회를 거듭하면서 지은 무거운 죄를 소멸 시킬 수 있다.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수행의 공덕이 기타의 모든 주문을 외우는 수행의 공덕보다 훨씬 뛰어나다. 오직 아미타불의 명호만 부르는 것은 크게 신령스런 주문이며 크게 밝은 주문이며 가장 높은 주문이며 비교할 수 없는 주문이다. 왜냐하면 지극정성으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열 번 염불하면, 곧 극락에 왕생하여 불퇴전지지에 오르게 되어, 그 위엄과 신령함을 가히 측량할 수 없으니 이것이 크게 신령스런 주문이라는 뜻이며, 염불심이 일심불란一心不亂에 이르면 무명無明을 끊고 자성自性을 보게 되니 이것이 크게 밝은 주문이라는 뜻이며, 부처님의 명호를 불러 극락에 왕생하여 끝내 부처를 이루게 되니 이것이 위없는 주문이라는 뜻이며, 극락에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하고 다시 사바세계에 되돌아 와서 널리 일체중생을 제도하니 이것이 가히 비교할 수 없는 주문이라는 뜻이다.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수행의 공덕이 다른 모든 수행의 공덕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다른 모든 수행, 즉 육도만행六度萬行과 팔만사천법문이 오직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염불 속에 다 들어가 있어 어느 하나라도 거두어들이지 못함이 없고 一心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컨대, 정업을 닦는 제자들은 오직 믿음과 발원으로 염불하되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아야 한다. 고덕古德가운데서 다른 수행문에 들어섰다가 그것을 바꾸어 염불수행을 한 분이 많았거늘, 하물며 처음부터 염불공부를 하던 사람이 어찌 감히 처음부터 먹은 마음이 변하여 다시 다른 수행문을 닦는단 말인가. - 연지대사

 

지명염불은 모든 근기를 거두어들이고 착수하기가 가장 쉽다. 그러기에 석가세존께서 어느 누가 묻지 않았음에도 특별히 지혜제일인 사리불에게만 지명염불을 설하신 것이다. 지명염불은 방편方便중의 제일방편이요, 요의了義중의 무상요의無上了義이며, 원돈圓頓중의 최극원돈最極圓頓이라 할만하다. - 우익대사

 

* 방편(方便) : 수행자 각자의 근기에 맞게 베풀어진 법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제법(諸法)을 공교(工巧)하게 써서 중생들의 근기(根機)에 맞고 중생을 두루 이롭게 하는 수단을 말한다. 《화엄경》에 「부처님의 지혜는 부사의(不思議)하셔서 중생들의 마음을 모두 아시고, 가지가지 방편의 힘으로 저 중생들의 한량없는 고통을 없애주시네. 라는 게송이 있다.

 

* 《치문경훈》에 「사바세계 중생의 지혜와 견해는 가지가지로 차별이 있어 하나의 법으로써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닌 까닭에 부처님의 방편으로써 가지가지의 법문을 베풀어 동서남북과 대소종횡(大小縱橫)으로 모두 수행할 수 있게 하였고, 모두 증득하여 들어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화엄회상에서 문수사리보살이 일찍이 각수(覺首)보살에게 묻기를. “마음과 성품은 하나인데 어찌하여 가지가지의 차별이 있음을 보게 됩니까.”하였고, 덕수(德首)보살에게 묻기를, “여래가 깨달은 바는 오직 한 가지 법인데 어찌하여 ‘무량한 법’이라 말합니까.” 하였으며,

 

지수(智首)보살에게 묻기를, “부처님 법 가운데 지혜를 가장 우두머리로 여기는데 여래는 어떤 까닭으로 혹은 보시함을 찬탄하고 혹은 계를 지킴을 찬타하며 혹은 감내함을 찬탄하거나 혹은 자비하고 희사함을 찬탄하기까지 함으로써 결국에는 하나의 법으로써 벗어남을 얻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하여, 방편의 뜻을 적절하게 보여주었다.

 

* 불교에서는 십(十)바라밀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 바라밀 가운데 ‘방편바라밀(방편바라밀)’이 있는데, 이는 불보살께서 방편으로 수만 가지의 모습을 나타내어 중생을 제도하는 일을 말한다.

* 불교에 「자비를 근본으로 삼고, 방편을 삼는다.」 라는 말이 있다.

 

* 남회근 선생은 「중생을 교화하는 것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어떤 중생은 현고(顯敎)의 근기입니다. 오직 현교에 한정될 뿐 밀교(密敎)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밀교의 근기여서 현교를 얘기해주면 듣기조차 않으려 합니다. 소승(小乘)의 근기를 가진 사람은 대승(大乘)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외도(外道)근기인 사람은 불법으로 믿고 들어갈 방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외도를 이용해서 유혹해야 합니다. 교육은 유도(誘導)입니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선근을 배양해서 외도에서 전환하도록 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보살의 교화방편입니다.」라고 하였다.

 

* 청화스님은 「아미타불은 소박하니 방편적으로 저 서방정토의 극락에 계신다고 생각합니다만, 방편을 떠나 제일의(第一義)로 해석할 때는 천지우주가 바로 아미타불입니다.」라고 하였다.

 

* 우익대사는 「부처님께서는 미혹한 중생을 불쌍히 여겨 중생들을 교화하셨다. 참으로 다양한 근기에 따라 가르침을 베푸셨다. 비록 한 근원에서 나왔으되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수없이 많은 방편들이 있는 것이다. 이 방편들 중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완전한 것을 찾는다면 염불을 통하여 정토왕생을 구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또한 염불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간다하고 가장 믿을만한 것을 찾는다면 믿음과 서원을 내어 오로지 부처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무문자설(無問自說) : 제자가 묻지도 않았는데도, 부처님이 스스로 먼저 설하신 경전을 말한다. 《아미타경》은 무문자설로 설해진 경전이다. 부처님께서 무문자설로 설하시는 이유는 부처님께서 설하고자 하는 내용이 너무 믿기 어렵거나, 또는 내용이 제자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아미타경》에서 지명염불을 ‘믿기 어려운 법[難信之法]’이라 하셨다.

 

정토법문은 세 근기를 널리 아우르며, 절대원융하며 불가사의하다. 일체법문을 원만하게 거두고 원만하게 초월하며, 매우 심오하여 믿기 어렵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지혜 제일인 사리불 존자에게 「지혜 제일이 아닌 사람은 정토법문을 들어도 바로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가 불가능하다.」라고 하신 것이다. - 우익대사〈아미타경요해〉

 

염불법문은 최고의 방편이며 최고로 쉽고 최고로 간단하며 최고로 원융한 수행법문이다. - 선화상인宣化上人

 

* 선화상인은 「만약 사람이 간절하고 지성스럽게 염불을 할 수 있다면, 이 광명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며, 삼천대천세계의 허공의 기운을 길상(吉祥)하게 하여, 오염과 포악 그리고 재난으로 허공의 기운이 변하여 온갖 허물이 오는 것을 막는다.」라고 하였다.

* 상인(上人) : 《유마경》에 처음 보인다. 스승을 존칭하며 가리킬 때 상인(上人) 또는 화상(和尙) 또는 상사(上師)라 표현한다. 상인(上人)은 ‘사람위의 사람’ 또는 ‘일등인(一等人)’을 의미한다.

 

염불은 생사윤회의 흐름을 횡橫으로 끊고, 빨리 위없는 바른 깨달음에 이르는 원도圓道의 뛰어난 법문이다.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으며, 범부에서 벗어나 성인이 되고자 하는 이는 누구든지 마땅히 지명염불이 위없이 뛰어난 유일한 법임을 알고 목숨이 다할 때까지 힘써 수행해야 할 것이다. - 원영대사

 

* 지명(指名)염불 : 칭명염불을 말한다. 즉, 부처님의 명호를 소리 내서 부르는 것과 마음속으로 부르는 것(이를 ‘묵송’ 이라 한다)을 합쳐서 지명염불이라 한다.

* 정공법사「모든 부처님들께서 중생을 제도하셨으나, 생사윤회를 마치고 삼계를 벗어나게 하여 생(生)에 원만하게 위없는 보리(菩提)를 증득하는 것으로 오로지 이 염불만이 있을 뿐이다. 만약에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비록 불법(佛法)에 정진(精進)한다 해도 어느 생에 득도(得道)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금생에 인연이 있어 불법을 만난 것은 무량겁 동안 쌓아온 선근과 복덕이 깊고 두텁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만약 이 생에서 그냥 지나쳐 버린다면 아마도 무량겁 이후에나 다시 이 법문을 만날 것이다. 생사윤회는 너무 고통스럽거늘, 어째서 이러한 원통한 벌을 받을 필요가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 정공법사는 「보살과 범부의 다른 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바로 한 생각에 있습니다. 한 생각 깨달아 일체 중생을 위한다면 불보살이고, 한 생각 미혹하여 자기를 위한다면 곧 범부인 것입니다. 불가에서 선악의 기준은 뭘까요. 무릇 자기만을 위한 것은 모두 악(惡)이고,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은 모두 선(善)입니다. 이러한 것은 초심자가 알아듣기엔 어렵습니다. 사람은 왜 자기를 위해서는 안 되는가. 여러분! 알아야 합니다. 범부가 성불하지 못하는 데에는 두 가지의 집착으로 인한 장애 때문입니다. 하나는 아집(我執 : 나에 대한 집착)이고, 다른 하나는 법집(法執 : 사물이나 경계에 대한 집착)입니다.

 

아집을 없애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게 되고, 법집까지 다 없애면 부처가 됩니다. 항상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매일 아집이 늘어나는데, 설사 모든 선법(善法)을 닦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저 집착만 증장시킬 뿐입니다. 집착을 없애지 못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이를 악(惡)이라 하신 것입니다. 당신이 삼계(三界)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다면 상관이 없지만, 삼계를 벗어나려 한다면 반드시 아집과 법집을 없애야 합니다. 아집은 번뇌장(煩惱障)이라 번뇌의 근원입니다. 법집은 소지장(所知障)의 근원입니다.」 라고 하였다.

 

* 정공법사는 「법집(法執)이란 일체법이 진짜라는 것에 집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금강경에서 “일체의 유위법은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와 같다.」 라고 하였다.

* 《장아함경》에 「유위(有爲)라는 것은 혹은 생겨나고 혹은 머물고 혹은 다르게 혹은 사라지는 것이다. 무위(無爲)라는 것은 생겨나지 않고 머물지 않고 다르게 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 역시 《장아함경》에 「무엇이 무위법인가. 이른바 탐욕을 영원히 다하고 성냄과 어리석음을 영원히 다하여 일체번뇌를 영원히 다한 것을 무위법이라고 하느니라.」 라고 하였다.

* 남회근 선생은 「만약에 닦을 법이 하나라도 있고 얻을 법이 하나라도 있다면 법집(法執)이 아직 있어 불법에 갇혀 있으므로 진정한 해탈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생사(生死)를 두려워한다면 아직 해탈하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열반을 좋아한다면 아직도 법집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원도(圓道) : 원교(圓敎)와 같은 말. 원융원만(圓融圓滿)하고 완전무결한 가르침을 말함. 예로부터 《법화경》이나 《화엄경》이 대표적인 원도(圓道)인데, 그 둘을 뛰어넘는 것이 바로 염불법문(정토법문)임.

 

오로지 지명염불이 그 수용하는 근기의 폭이 가장 넓으며, 시작하기가 가장 수월하다. 그러므로 석가자존께서는 제자들 중 누구도 묻지 않았음에도 제자들 중 지혜가 제일인 사리불을 향하여 지명염불을 들어 펼치셨다. 지명염불은 가히 모든 방편중의 제일의 방편이며, 요의了義중 가장 높은 요의이며, 원돈圓頓가운데 최극最極의 원돈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우익대사〈아미타경요해〉

 

* 인광대사는 「우익대사의 아미타경요해는 이(理)와 사(事)가 모두 지극하고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신 이래 최고 제일의 주행이다. 지극히 미묘하고 정확해서, 설령 옛 부처님들께서 다시 태어나 이 경(經)에 주석을 단다고 해도 이 요해를 능가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 정공법사는 「우익대사는 아미타불이 다시 오신 분이 아니라면, 반드시 관세음보살의 부류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세지보살(인관대사를 지칭함)께서 이와 같이 찬탄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 우익대사는 「염불하여 정토왕생을 구하는 것이야 말로 모든 법문을 원만히 거느린다. 염불이라는 한 법문만 수행한다고 하여 다른 모든 법문을 폐(廢)하는 것은 아니다.(어떤 법문이든지) 단지 한 문(門)으로만 깊이 들어가되, 염불을 정행(正行 : 주된 수행)으로 삼고 계정혜(戒定慧) 등 일체의 법문을 조행(助行 : 보조 수행)으로 삼는다. 정행과 조행을 합행(合行)하면 순풍에 배가 가듯 순조롭다. 여기에 판자와 동아줄을 대면 더 빨리 언덕에 이를 수 있다. 염불하는 방법이 비록 많다 하나 지명염불이 간단하고 편리하다.」 라고 하였다.

 

 

* 원영법사는 「지명(指名)염불 한 가지 법은 생각 생각이 부처 그대로이므로 삼승(三乘)의 여러 가지 행법의 폐단에 떨어지지 아니하니 방편중의 제일 방편이라고 하는 것이다. 도한 요의(了義)라는 것은 대승의 최고 높은 진리라는 뜻인데, 역시 지명일법(指名一法)은 생각생각이 그대로 부처이므로 최상이 아닌 차위(次位)의 문에 떨어지지 아니하므로 위없는 요의[無上了義]라고 하는 것이며, 원돈(圓頓)이라는 것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원융하며 즉각 깨닫는다는 것을 말하는데, 역시 지명일법은 염념이 그대로 부처이므로 한 곳에 치우치거나 점차의 순서를 거쳐야 하는 폐단이 없으므로 가장 지극한 원돈[最極圓頓]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 〈대지도론〉에 이런 게송이 있다. 「부처님들은 먼저 관찰하시어 어떤 방편으로도 제도치 못할 이와 제도하기 어려운 이와 교화하기 쉬운 이와 더딘 이와 빠른 이를 다 아신다. 혹은 광명과 혹은 신통과 갖가지 인연으로 중생을 건지시고 거역하려 해도 가업이 여겨 제도해 주시고 혹은 거역하는 자라도 막지 않으시네. 억센 이는 거친 말로 교화하시고 유연한 이는 부드러운 말로 제도하시니 비록 그 마음은 자비롭고 평등하나 때에 맞춰 지혜로써 방편을 쓰시네.」

 

석가세존께서 《아미타경》에서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지니는 염불법만을 가르치셨다. 이것은 네 가지 염불중에서 지명염불이 가장 간편하고 쉬우며 지극히 안전하기 때문이다. 왜 「간단하고 쉽다.」고 말하는가. 이 지명염불은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만 지니면 되나니, 이보다 더 간단한 것이 어디 있는가. 또 한 번만 가르치면 누구나 다 알아 듣고 실행할 수 있나니, 이 보다 더 쉬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굳이 화두를 들고 의단疑團을 일으켜 참구할 필요가 전혀 없으며, 부처님의 공덕이나 相好를 보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으니, 이 얼마나 간단하고 쉬운가. - 원영대사〈아미타경요해강의〉

 

* 인광대사는 「지명염불을 버리고 관상(觀像)염불이나 관상(觀想) ‧ 실상(實相) 등의 염불법을 닦겠다고 나서지 마시오. 무릇 네 가지 염불 가운데, 오직 명호를 지송하는 방법이 말법시대 우리 중생의 근기에 가장 잘 들어맞기 때문이오.」 라고 하였다.

 

* 원영법사는 「‘아미타(阿彌陀)’는 시간적으로는 끝없이 무한한 생명[無量壽]을, 공간적으로는 온 우주에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없는 무한한 광명[無量光]을 의미한다. 이미 앞에서 수명(壽命)과 광명(光明) 두 가지 뜻으로 아미타의 의미를 설명한 바 있으나, 요컨대 아미타불께서는 ①공덕(功德)의 면에서는 진성(眞性)에 맞는 갠지스 강 모래알 수와 같이 무수한 공덕을 모두 갖추고 계시며, ②지혜의 면에서는 이미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증득하셨으며, ③신통(神通)의 면에서는 삼명육통(三明六通)을 모두 갖추고 계시며, ④도력(道力)에 있어서는 십력(十力)과 사무소외(四無所畏)와 18불공법(十八不共法)을 모두 얻으셨으며, ⑤의보정보(依報正報 : 환경과 신체)에 있어서는 아미타불께서 건립하신 극락세계는 그 환경과 수행 조건이 온 우주법계에서 가장 수승하며, 아미타불의 보신(報身) ‧ 화신(化身)과 그 나라 중생들의 신체가 모두 수승하고, ⑥설법(說法)에 있어서 아미타불께서는 일체법륜(一切法輪)을 굴리시어 설법하시고, ⑦제도(濟度)에 있어서는 일체중생을 모두 제도하신다. 이렇기 때문에 아미타불의 공덕 ‧ 지혜 등이 낱낱이 무량하다고 하셨다.」 라고 하였다.

 

* 정공법사는 「화엄경과 법화경에서는 단지 상상근기의 사람만을 구제할 수 있을 뿐, 하근기와 중근기는 해당되는 몫이 없다. 아함경에서는 중근기와 하근기의 사람을 제도하여, 상상근기의 사람은 근기에 맞지 않는다. 오직 아미타경만이 세 근기를 두루 받아들이며 절대적이고 원융하다. 화엄경과 무량수경을 비교하면 무량수경이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무량수경 가운데 제 6장의 제 48원이 제일이다. 다시 48원 중, 고덕(古德)들은 제 18원이 제일이라고 공인하였다. 아미타경은 48원 중 18원을 해석한 것이다. 아미타경은 법문은 모든 대경(大經)과 대론(大論)을 능가한다.」 라고 하였다.

 

* 정공법사는 「아미타경은 경문이 길지는 않지만 담고 있는 내용이 아주 풍부하여 공부가 얕은 사람은 결코 알아볼 수 없습니다. 반드시 재래인(再來人)에게 의지하거나 고대덕(古大德)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을 안내자로 청하여 해석과 설명을 해달라고 해야만, 우리는 경전 속에 담긴 풍부한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 의단(疑團) : 의심덩어리, 늘 풀리지 않고 남아있는 큰 의심. 수행 중에 일어나는 의문.

 

일체의 염불법문 중에서도 가장 간단하고 쉬우며 온당한 방법을 찾는다면,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을 갖추고 마음을 모아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우익대사〈아미타경요해〉

 

* 지명(持名)이란 명호를 굳게 지니는 것을 말한다. 집지명호(執持名號))의 줄임말이다. 〈정토법어〉에 「마음이 부처님을 떠나지 않고, 부처님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지(持)’의 뜻이다.」 라고 하였다.

 

* 우익대사는 〈아미타경요해〉에서 「한 부처님의 명호만 집지(執持)해도 모든 부처님께서 호념해주시니, 이것은 모두 아미타불의 대원(大願)의 행(行 )이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공덕의 이익이라고 한다. 또한 수행자가 믿음과 발원을 가지고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 부처님의 공덕을 모두 거두어 자기의 공덕으로 만드니, 고로 또한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공덕의 이익이라 한다.」 라고 하였다.

 

* 인광대사께서 우익대사를 찬탄한 글인 〈연종9조송(蓮宗九祖頌)〉에서, 「선종과 교종의 이치에 두루 통달하시고, 깨달음은 부처와 다름이 없으셨네, 미혹된 업 끊지 못하면 부서진 그릇과 같으니 법비[法雨]를 만나신 후 이전에 쌓은 공명 버리셨네. 이 힘으로 염불수행 하여 결정코 현생에서 윤회를 벗어나고자 하셨네. 도 닦는 이들에게 고구정녕(苦口丁寧)히 권하신 말씀이 있으니 “서방정토에 왕생하는 것이야말로 부처님을 계승하는 것이니라.」 라고 하였다.

 

나무아미타불은 문자로 말하면 단지 여섯 자에 불과하지만, 그 작용을 가지고 논한다면 삼장三藏 십이분十二分의 교리가 모두 그 속에 갖추어져 있고, 석가모니부처님의 49년 설법이 한 자도 남김없이 모두 그 속에 갖추어져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방륜〈정법개술〉

 

* 한국의 한탑스님은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는 부처님의 무량하신 공덕과 원력이 잘 갈무리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무아미타불 하는 것은 부처님의 원력으로 내 참 생명으로 돌아감을 말하며, 나무아미타불로 일체 모든 번뇌, 근심, 걱정, 어리석음, 성냄, 다툼을 버리고 가장 수승한 공덕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본래 한 생명인 아미타부처님생명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무아미타불로 내가 바뀌어야 합니다. 불법을 배오는 것은 나를 배우는 것이요. 나를 배우는 것은 중생인 나를 부정하고 나의 참 생명인 부처님 생명을 찾는 길입니다.」 라고 하였다.

 

윤회하는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자 하려거든 지명염불로 극락왕생을 구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고, 반드시 극락에 왕생하고자 하려거든 믿음을 전도前導로 삼고, 발원을 後鞭으로 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만약 믿음이 굳세고 발원이 간절하면 비록 흐트러진 마음으로 염불해도 반드시 왕생할 수 있지만, 믿음이 진실치 못하고 발원이 강하지 못하면, 일심으로 염불하더라도 왕생하지 못한다. -우익대사

 

* 방륜은 〈정법개술〉에서 「신원행(信願行)이 정토의 삼자량(三資糧)인 것은 이미 말한 적이 있거니와, 이 자량(資糧)을 다 갖추지 못하면 절대 왕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발원은 정토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미타불이 옛적에 48원을 발함으로써 극락국의 연기(緣起)가 되었고, 그 후로 시방 중생들도 왕생을 발원함으로써 정행(淨行)의 근거가 되었으니, 부처님께서는 접인(接引)하기를 원하셨고, 중생은 왕생하기를 원하여 이 두 원(願)이 구전(俱全)하여야만 자타이력(自他二力)이 비로소 완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업(淨業)을 닦는 자는 반드시 왕생하겠다는 발원(發願)을 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우익대사는 또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생사고해를 빨리 벗어나 단박에 불도를 이루도록 하게 하기 위하여, 아미타불을 염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정토법문을 말씀하셨다. 이 정토법문에 의지함으로써 일체 중생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이번 생에서 바로 윤회고를 벗고 부처를 이루게 된다.」 라고 하였다.

 

* 옛 고덕께서 「고통과 번뇌의 세계는 끝이 없으나, 마음을 돌리면 곧 피안(彼岸)에 이른다. 여기 극락에 가는 길이 있나니, 믿음만 일으키면 바로 극락에 왕생하느니라.」 라고 하였다.

 

* 《화엄경》십회향품(十廻向品)에 다음과 같은 ‘발원’이 있다.

「나는 모든 중생의 집이 되리라. 그들의 고난을 없애 주기 위하여

나는 모든 중생의 구호자가 되리라. 그들을 번뇌로부터 해탈시켜 주기 위하여

나는 모든 중생의 귀의처가 되리라. 그들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나는 모든 중생의 목적지가 되리라. 그들이 모든 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나는 모든 중생의 안락처가 되리라. 그들이 지혜의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도록 하기 위하여

나는 모든 중생의 횃불이 되리라. 그들이 무명을 깨뜨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나는 모든 중생의 등불이 되리라. 그들이 청정한 나라에서 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나는 모든 중생의 길잡이가 되리라. 그들을 진리의 세계로 안내하기 위하여

나는 모든 중생의 큰 스승이 되리라. 그들이 걸림 없는 자유를 얻게 하기 위하여」

 

* 전도(前導)는 앞에서 인도한다는 뜻이고, 후편(後鞭)은 뒤에서 채찍질한다는 뜻임. 즉 앞에서는 당기고 밀어준다는 의미임.

 

염불이야말로 수행의 지름길이다. 그중에서도 지명염불은 지름길중의 지름길이다.

-원영대사〈아미타경요해강의〉

 

* 원영대사께서 직접 겪은 자신의 체험담을 소개한다.

「‘사람의 목숨은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에 있다.’ 는 말씀은 나에게 조금도 거짓이 아니었다. 심근경색을 앓고 있던 나는 3년 동안 몇 번이나 심장발작을 겪었다. 고비를 넘긴 후 자세히 회상해보니 그때 내가 받은 고통은 바로 내가 집에서 도살한 돼지가 겪은 고통과 같은 것이었다. 1993년 당시 진(우리나라의 면과 같은 행정단위)의 대표를 맡고 있던 장금문 선생이 나를 찾아와 차를 좀 밀어줄 것을 청하였다. 나는 감기가 든 상태여서 몸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힘껏 차를 밀고 나서 갑자기 심장에 격렬한 통증이 오면서 쓰러졌다. 장 선생이 그때의 이야기를 나중에 해주었다.

 

당시에 이미 나는 쇼크 상태여서 만약 즉시 응급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이미 죽었지만, 심식의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심장의 통증이 심해질수록 몸의 상태가 분리되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생각 생각에 끊어지지 않고 항상 염불해야 임종에 이르러 비로소 정념(正念)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장 선생이 쓰러진 나를 차에 실어 자신의 집으로 옮겨 놓고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장 선생이 집안사람들을 고함쳐 부르는 소리와 서로 나누는 대화를 명료하게 듣고 있었다.

 

일찍이 내가 그 가족에게 염불을 권해서 장 선생의 부인과 그 모친이 모두 와서 나를 위해 염불을 해주었다. 그때 신기한 일이 생겼다. 그들이 염하는 부처님 명호 한 마디 한 구절이 허공에서 빛을 발하면서 나타났다. 즉시 내 몸도 가벼워지면서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나는 사람마다 염불하면서 발하는 광명의 밝기와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장 선생의 부인이 평소에 아침저녁으로 염불을 해온 까닭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밝고 오래 지속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인도를 받으면서 불편 듯 나도 염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염불을 했다.

 

그때 나는 자신이 직접 하는 염불의 광명이 특히 더 밝고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위해 염불할 때는 우리는 그 공덕의 7분의 1만 받는다고 한 《지장경》의 말씀이 조금도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장발작으로 심신이 압박받고 있을 때, 나는 다행히 장 선생 가족이 도와주는 조념염불(助念念佛)의 광명과 인도로 정념을 유지하면서 염불할 수 있었고, 그래서 고통을 덜고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구급차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상태가 너무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그 병원의 의사도 나를 보고는 이미 저승으로 갔으니 의학적인 처치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직계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시술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장 선생은 그 말에 화가 나서 다투었다. 그는 직계가족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한 참 걸릴 텐데 그러면 환자를 살리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며 화를 냈다.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조급한 마음에 그만 전심(專心)으로 염불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때 내 옆에 있던 사람은 장 대표 한 사람뿐이어서 염불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고, 따라서 부처님의 가피를 받을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정말로 참담한 심정이었다. 즉시 나는 내가 깊은 곳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구름 비행기를 탄 것같이 빠르게 줄곧 떨어지는데 마치 한빙지옥에 이른 것 같았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어둡고 추웠다. 온 몸을 칼로 베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때 내가 느낀 감각을 표현하자면, 경전에 이른 것과 같이 ‘바람칼로 온 몸을 도려내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평소에 염불을 열심히 해온 공덕이 있어서 위기일발의 시점에 선근이 작용하였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가운데 염불 일념이 문득 떠오른 것이었다. 슬프게 한 구절의 ‘아미타불’을 토해내었다.(나중에 들었는데, 이때 내가 한 염불소리가 커서 병원사람들이 모두 들었다고 한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은 그 즉시 눈앞에 조그만 광명이 나타났다. 곧 이어 다시 ‘나무아미타불’을 염하자 그 광명은 앞에서 더 크게 커졌다. 그러자 몸이 가벼워졌고 눈을 뜨고 다시 깨어나게 되었다. 사람들의 휘둥그레진 눈을 보면서, 나는 내가 저승의 귀신문에서 나와 죽음에서 벗어난 것을 알았다.」

 

 

 

 

 

 

 

 

 

 

 

 

이것이 염불이다

출처 /염불수행대전(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97188284)에서 일부 발췌1. 이것이 염불이다 오직 아미타불만 생각하면서 다른 생각 없으면 손가락 튕길 수고도 없이 극락세계에 왕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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