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약 2,600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 부처님 제자들에 의해 전해진 가르침은 팔만대장경 속에 담겨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잘 아시는 경전들이 있지요. 『화엄경』, 『법화경』, 『천수경』, 『지장경』 등 많은 경전 중에 『금강경』은 어떤 경인가요? 『금강경』은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 약 500년 후에 부처님 제자들에 의해서 부처님 본뜻을 정립한 경전입니다.
『금강경』이 우리 중생들에게 전해주는 메시지의 핵심은 자유입니다. 우리의 삶은 자유정신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 『금강경』입니다. 오늘 이 시간은 『금강경』이 설하는 자유정신, 즉 『금강경』은 무엇을 설하는지 그 말씀을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생활공간에서 거미줄도 걷어내고 먼지도 털어내고 주변을 정리정돈하면 마음이 편해지지요. 하지만 정리해야 할 것은 비단 우리 주변만이 아닙니다. 그것을 대하는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탐진치로부터 우리 마음이 오염되거나 휘둘려 업을 행하게 됩니다. 삶과 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오해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원하게 됩니다.
탐진치의 습관은 우리들 몸과 마음을 휘두르고, 나로 하여금 떳떳한 마음을 가질 수 없게 합니다. 탐진치가 우리를 끌고 가기에, 주체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유롭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는 우리 목에 줄이 매여 말뚝에 고정된 것과 같습니다.
하나의 줄이 아니라 여러 줄에 묶여 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재물이지요. 또 이성을 갈구하는 마음, 음식에 대한 갈구,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 등 오욕락五欲樂이라 불리는 이러한 줄에 우리의 목이 매여 있어 자유를 잃고 있습니다.
『금강경』은 우리를 묶고 있는 이러한 목줄을 날카로운 도끼로 끊어버리도록 안내합니다. 그것이 바로 『금강경』의 가르침입니다. 금강은 인도범어의 ‘바즈라’를 번역한 말인데, 번쩍하고 내리치는 ‘벼락’이란 뜻입니다. 글자 그대로 다이아몬드같이 소중하다는 뜻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범어의 원뜻으로 보면, 벼락같이 내리쳐서 우리를 묶고 있는 목줄들을 끊어버리는 날카로운 도끼 같은 말씀이 『금강경』입니다.
오늘 금강산림법회에 제가 말씀드릴 부분은 『금강경』의 18분부터 22분까지입니다. 요약해서 읽고 살펴보겠습니다. 제 18분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무수한 중생들의 그 마음들은, 사실 마음이라 할 수 없고, 단지 이름 지어서 마음이라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수보리여,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마음과 관련해서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스님이 공부하기 위해 스승을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배가 고팠던 스님이 길에서 우연히 떡장수 할머니를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점심 좀 하게 떡 하나만 시주해 주시지요.” 그러자 할머니가 이렇게 반문합니다. “점심을 한다고요? 어느 마음에다가 점을 찍는다는 겁니까? 과거마음 현재마음 미래마음 어느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거요?” 순간 스님 말문이 턱 막혔다고 합니다.
마음이란 마음이라 할 수 없고 단지 마음이라고 이름 지어 부를 뿐입니다. 여러분 마음을 잘 살펴보세요. 마음이라는 것이 잘 들여다보면 실체가 없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눠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어 19분을 읽겠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상에 가득 찬 칠보를, 다른 사람에게 보시한다면, 복을 많이 받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굉장히 복을 많이 받은 것입니다. 수보리여 그렇지만, 그 복덕이라는 것이 실체가 있는 것이라면, 여래가 복덕이 많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복덕이라는 실체가 없으므로, 많은 복덕을 얻는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선을 행할 때 많은 공덕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한다.’ 하는 마음 자체에도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는지, 그 동기를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을 이 구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또 그 공덕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한 번 더 생각하게 합니다. 다음은 20분입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훌륭한 모습을 갖추었다고 부처로 봐야 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단지 이름지어 ‘훌륭한 모습을 갖췄다’고 여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부처님의 육신과 진실된 법신의 의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이어 21분을 읽겠습니다.
“수보리여 그대는 여래께서 설법하신 바가 있다고 말하지 말라, 만일 여래께서 설법하신 바가 있다고 말한다면,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다, 내가 설한 바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위하여 많은 법문을 말씀하셨음에도 설법한 바가 없다고 하십니다. 참선하는 분들도 『금강경』의 이 대목을 자주 인용 하시지요. 관세음을 찬탄하는 게송에도 “관음보살은 설함이 없이 설하고, 남순 동자는 들음 없이 듣는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깊은 말씀입니다.
22분에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보리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물론이고, 그 어떤 조그마한 법도 얻은 것이 없는데, 굳이 이름 지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하는 것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줄여서 보리라고 합니다. 보리, 지혜, 즉 깨달음입니다. 18분부터 지금까지 “마음” “복덕” “부처님의 몸” “설법”에 대해 거론하면서 그러한 것은 없고, 다만 이름지어 그렇게 부를 뿐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깨달음”도 없다고 합니다. 『반야심경』에서도 “깨달음도 없고, 깨달음을 얻을 것도 없다(無智亦無得)”는 같은 취지의 내용이 있습니다. 일상에서 ‘법을 구하자’ ‘깨달음을 구하자’ ‘깨달음을 설하자’ 고 늘 이야기하지만, 마음, 부처, 깨달음 등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참선하는 분들도 가끔 즉심즉불卽心卽佛, “마음이 곧 부처다”라고 하지만, 어떤 때는 비심비불非心非佛,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라고 합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금강경』의 가르침과 맥락을 같이 하기 때문입니다. 『금강경』은 우리가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마음, 부처, 깨달음이라는 개념으로부터 벗어나 매이지 않는 자유의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오늘의 이야기를 총정리하겠습니다. 『금강경』이 팔만대장경에서 으뜸이며, 기본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저 “자유정신”만을 말하지 않고, 동시에 선행, 자비행, 보시바라밀, 인욕바라밀 등 보살행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대자유를 말하면서 동시에 자비행을 강조합니다. 즉 『금강경』은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모두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혜(반야)를 통해 자유를 얻고, 자비를 실현하기 위해 보살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강경』은 팔만대장경의 왕이요, 한국불교가 최고로 존중하는 경전인 것입니다.
바다는 무릇 동쪽 바다나 서쪽 바다나 남쪽바다나 어디서나 짠맛이 있고, 향나무는 어느 부분이던지 모두 향기가 납니다. 이처럼 오늘 읽은 부분은 『금강경』의 일부이지만 그 속에는 『금강경』전편에서 강조하는 지혜와 자비, 대자유와 대바라밀행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금강경』의 말씀은 일상생활 속에서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삶속에서 벼락같은 도끼로 탐진치와 오욕락의 여러 말뚝들에 우리 목을 묶고 있는 줄을 끊고 사바세계에서 대자유의 삶을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말뚝들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정신으로 자비보살행을 실천하라고 강조합니다.
늘 『금강경』에서 말하는 자유의 정신과 매이지 않는 큰 자비행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이 법문은 2017년 11월 21일 송광사 금강산림법회 중 현응 스님의 법문을 일부 요약했습니다.
현응 스님.
1971년 해인사 홍제암 종성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강원을 졸업하고 봉암사, 해인사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했다. 해인 강원 강사, 강주를 역임했으며, 1994년 조계종개혁회의 기획조정실장으로 현 종헌종법 기틀을 마련했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중앙종회 종회의원, 해인사 주지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교육원장이다. 저서로 『깨달음과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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