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30송 (론서)

[안양규] ■ 사고의 역기능과 그 해결 - 붓다의 가르침과 아론 벡(Aaron T. Beck)의 인지치료를 중심으로

수선님 2022. 7. 31. 12:03

思考(thinking)의 逆機能(dysfunction)과 그 해결

- 붓다(the Buddha)의 가르침과 아론 벡(Aaron T. Beck)의
인지치료(Cognitive Therapy)를 중심으로 -

 

안 양 규 / 동국대학교(경주)

불교학과 교수



 목 차 

 

I. 연구목표
II. 고통의 원인과 그 발생 과정
   1.파판차(papañca): 역기능적인 사고 과정
   2.인지왜곡(cognitive distortions)
III. 역기능적 사고의 종식과 고통의 해결
   1.불선한 사고(vitakka)를 통제하는 법
   2.인지치료의 기법
IV. 맺는 말



이 논문은 2006년 정부(교육인적자원부)의 재원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KRF-2006-신진교수지원(인문사회분야)-A00124).

 

국문 초록

인지치료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왜곡된 인지과정에 둔다는 점에서 불선(不善)한 사고가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붓다의 가르침과 상통한다. 그릇된 사고 과정을 교정함으로써 심리적인 장애를 제거할 수 있다고 인지치료가 주창하듯이 붓다도 바른 지혜를 성취하게 되면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涅槃, nirvana), 즉 완전한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마두핀디카 숫타(Madhupiṇḍika Sutta)』에서 붓다는 고통의 근원이 되는 망상(papañca)의 전개 과정을 자세히 분석하였다. 주변 세계와 자기 자신에 대한 개인의 망상의 소멸이야 말로 모든 고통의 해결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 아론 벡은 환자가 인지의 왜곡과정에 빠져 있기 때문에 심리 장애가 발생한다고 파악하고 11 가지 인지의 왜곡 유형을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붓다가 제시한 망상의 구체적인 내용이 아론 벡의 11가지 인지 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 『비탓카산타나 숫타』(Vitakkasaṇṭhāna Sutta)에서 붓다는 불선한 사고를 제어하는 5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5가지 방법과 인지치료 기법을 비교하였다. 불선한 사고를 선한 사고로 대치하는 첫째 방식은 인지치료에서 왜곡된 사고나 신념을 보다 나은 새로운 신념으로 대체하는 것과 상응한다. 불선한 사고의 유해성을 발견하는 두 번째 방법은 인지치료에서 왜곡된 신념이나 자동적 사고를 평가하는 인지치료의 방법과 유사하다. 불선한 사고의 기원을 찾는 네 번째 방법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자동적 사고에서 점차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신념을 찾아 들어가는 인지치료의 방법과 유사하다.
 

* 주제어
붓다. 망상, 인지치료, 아론 벡, 인지왜곡

 

 

I. 연구목표  ▲ 위로


사고의 역기능에 관한 붓다의 견해와 아론 벡(Aaron T. Beck)의 인지치료(Cognitive Therapy)를 살펴 사고의 부정적인 기능과 그 해결책을 연구한다. 붓다는 모든 행위의 근저에는 사고가 전제되어 있어 나쁜 생각이 악행을 초래하고 고통을 야기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부정적인 생각의 부작용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아론 벡도 왜곡된 인지 과정이 심리 장애를 일으킨다고 진단하고 있다.


본 연구에선 사고가 어떻게 고통을 만들어 내는 지 그리고 그 해결방안을 연구한다. 잘못된 사고가 만들어 놓은 파괴적인 일은 한 개인적인 차원에서부터 시작하여 인류전체에 걸쳐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붓다는 모든 사람들이 그릇된 사고에 의해 고통을 야기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아론 벡은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는 잘못된 인지 과정에 기인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붓다는 고통을 야기하는 불선(不善)의 사고(akusala-vitakka)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며 아론 벡도 나름대로 심리장애를 일으키는 인지왜곡을 해소할 수 있는 치료법을 제시하고 있다. 잘못된 사고에 발생하는 심리적인 고통과 그 해결방안에 대하여 붓다의 가르침과 아론 벡의 인지치료를 비교하고자 한다.


붓다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르쳤고, 그의 가르침은 초기경전에 남아 전하고 있다. 고통의 근원으로써의 사고에 관한 붓다의 가르침은 초기불교 경전 여기저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많은 경전 중에서 본 연구 과제에선 두 개의 경전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연구하고자 한다. 『마두핀디카 숫타(Madhupiṇḍika Sutta)』와 『비탓카산타나 숫타』(Vitakkasaṇṭhāna Sutta)는 맛지마 니카야(Majjhima Nikāya)에 소속되어 있는 경전으로 각각 몇 페이지 분량에 불과하지만 담겨 있는 내용은 심오하다. 이 두 경전은 서로 보완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마두핀디카 숫타』는 사고의 발생 과정 및 사고로 인한 고통의 발생에 중점이 주어져 있는데 비해 『비탓카산타나 숫타』는 고통을 발생시키는 사고를 어떻게 종식시킬 수 있는가에 중점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이 두 경전을 따로 분리해서 둘 것이 아니라 함께 고찰해야 사고의 발생에서 사고의 종식을 통한 고통의 해소라는 전모를 그려볼 수 있다.

 

 

II. 고통의 원인과 그 발생 과정

1.파판차(papañca): 역기능적인 사고 과정
 ▲ 위로

 

마두핀디카 숫타에선 사고의 발생과정에 관하여 그리고 사고가 어떻게 심리적인 고통을 발생시키는 지, 어떻게 하면 고통을 야기하는 왜곡된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경전을 깊이 연구하면 우리는 사고의 발생 과정을 위시하여 사고전반에 관하여 붓다의 통찰을 이해할 수 있다. 사고의 발생 과정 중 가장 핵심적인 논의는  파판차(papañca)에 집중될 것이다. 파판차의 일차적인 의미는 개념적 확산으로 사고가 끊임없이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운동 양상을 의미한다. 현실과 괴리된 언어적 유희(遊戱) 내지 망상(妄想)이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 본고에선 잠정적으로 망상이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기로 한다.


파판차의 어원(pra-pañc)을 살펴보면 그 일차적인 의미는 ‘펼쳐짐(spreading out)’, ‘확장(expansion)’, ‘放散(diffusness)’, ‘다양화(manifoldness)’이다. Ñāṇananda는 파판차의 일차적인 의미를 개념적 확산으로 설명하고 있다.330) 나냐몰리 비구(Bhikkhu Ñāṇamoli)는 파판차를 '다양화(diversification)'번역한데 비해 보디 비구는 Ñāṇananda의 번역을 따라 개념적 확산(mental proliferation)으로 번역하고 있다. 보디 비구(Bhikkhu Bodhi)는 “다양화‘라는 용어는 색경(色境) 등 감각 대상의 영역이 6경(境)으로 다양화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적절히 사용될 수 있지만 이 경전에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관념적으로 마음에서 여러 가지 망상과 상상을 일으켜 순수한 감각 데이터를 왜곡시키는 정신적인 작용 과정을 유희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개념적 확산’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하고 있다.331) 


『마두핀디카 숫타』(Madhupiṇḍika-sutta)에는 인간의 인식 과정에 대해 자세히 밝히고 있다. 중요한 부분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오만한 단다파아니(Daṇḍapāni)가 붓다에게 당신은 무엇을 가르치느냐고 거만하게 물었다. 이에 붓다는 대답하였다.
 

벗이여, 신들의 세계, 마라의 세계, 브라흐마 신의 세계, 사문·브라흐민의 세계, 신·인간의 세계, 그 어느 세계에서도 다툼(viggayha)이 없는 것처럼, 감각적인 쾌락에서 벗어나고 의혹이 없고, 걱정이 없고, 온갖 존재(bhava)에 대한 갈애에서 벗어난 브라흐민에겐 상(想, saññā)은 더 이상 숨어 머물지 않는다. 이와 같이 말하고 이와 같이 가르친다.332)
 

이상 붓다의 대답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주목할 수 있다. 첫째 붓다의 가르침은 세상의 어느 누구와도 논박하거나 논쟁하지 않는다. 둘째 모든 감각적인 쾌락과 번뇌가 사라진 브라흐민(여기서는 붓다)에겐 상(想)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상은 왜곡된 인지과정의 한 부분으로 파판차와 관련되어 있다.333)  두 가지를 종합해 보면 붓다의 가르침은  다른 종교 사상가의 가르침과 상대하여 다투거나 논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이것이 가능한 것은 붓다 당신이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더 이상 상(想, saññā)에 구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이상 우리는 여기에서 무쟁(無諍)과 무탐(無貪)의 인식론적인 근거가 상(想, saññā)의 부재임을 주목하고 다음 단계를 살펴보자. 단다파아니가 붓다의 간략한 대답을 듣고 떠난 직후, 붓다의 제자들이 붓다의 대답을 듣고 그 의미를 부연해 달라고 하자 붓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사람을 괴롭히는 망상·상·수의 원천에 대하여 즐거워하지 아니하고 환영하거나 붙들지 아니한다면, 탐욕에 대한 수면, 증오에 대한 수면, 사견에 대한 수면, 의혹에 대한 수면, 존재의 갈애에 대한 수면, 무지에 대한 수면이 끝날 것이다. 그리고 몽둥이와 무기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다툼, 비방, 논박, 반소(反訴), 악의적인 말, 망어가 단절된다. 여기에서 모든 사악한 불선법(不善法)은 남김없이 사라진다.334)
 

처음에 붓다가 단다파아니에게 일러준 가르침과 제자들에게 부연한 내용을 비교하면 망상·상·수(papañcasaññāsaṅkhā)라는 용어가 눈에 띤다. 사람을 괴롭히는 망상·상·수의 의미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세 개의 단어가 결합된 복합어인 이 용어를 어떤 식으로 분석하고 관계지우냐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나냐난다(Ñāṇananda)는 마음의 확산적인 경향으로 특징 지워지는 개념(concepts characterized by the mind's prolific tendency)으로 번역하고 있다.335) 보디 비구는 정신적인 확산화에 의해 채색된 지각과 개념(perceptions and notions tinged by mental proliferation)로 영역하고 있다. 나냐난다가 saññā를 제대로 번역하지 않은 것에 주목하고  보디 비구는 saññā와 saṅkhā를 대등한 병렬어로 다루고 있다. 이 경전의 주석서는 saṅkhā를 부분(koṭṭhāsa)으로 정의하면서 saññā를 망상과 연계된 상 또는 망상 그 자체로 주석하고 있다.336) 주석서에 의하면 saññā는 망상과 직접적으로 긴밀한 관계에 있어 거의 동의어로 이해해도 무방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보디 비구는 다른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지각의 확산에 의해 일어난 개념( notions 〔arisen from〕the proliferation of perceptions)" 둘째 확산에서 일어난 지각적인 개념(perceptual notions 〔arisen from〕proliferation)337).


붓다는  단다파아니에게 한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간략히 이상과 같이 부연하고 곧 자리를 떠나버린다. 붓다의 부연설명을 들었지만 제자들은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붓다의 간략한 가르침을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는 마하카차나(Mahākaccāna)에게 찾아가 자세한 설명을 요청했다. 이에 마하카차나는 다음과 같이 범부의 인식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안(眼)과 색(色)을 인연하여 안식(眼識)이 일어난다. 이 세 개의 화합이 촉(觸)이다. 촉을 인연으로 하여 수(受)가 있다. 자신이 느낀 것을 자신이 지각한다. 자신이 지각한 것을 자신이 사유한다. 자신이 사유한 것을 자신이 망상한다. 자신이 망상한 것에 의존하여 일어난 망상․想․數는 과거 현재 미래의 색과 관련하여, 안식과 관련하여 그 사람을 괴롭힌다.338)
 

마하카차야나의 인식과정에 관한 설명은 3단계로 나누어 분석할 수 있다.


1) “안과 색을 인연하여 안식이 일어난다. 이 세 개의 화합이 촉이다. 촉을 인연으로 하여 수가 있다.”339) 감각기관인 근(根)과 감각대상인 경(境)을 의지하여 식(識)이 발생하고 근․경․식의 3자가 화합한 것이 촉이다. 촉을 인연으로하여 고(苦)․락(樂)․ 불고불락(不苦不樂)의 감정이 일어난다. 수(受)의 발생과정까지는 인칭동사가 사용되지 않고 있다. 즉 ‘나’, ‘나의 것‘이라는 인칭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 인식론적인 요소 혹은 심리적인 요소만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2) “자신이 느낀 것을 자신이 지각한다. 자신이 지각한 것을 자신이 사유한다. 자신이 사유한 것을 자신이 망상한다.”340) 1)의 단계와 비교하여 이 단계에서 문법적으로 중요한 특이점은 3인칭을 지칭하는 동사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느낀다(受)→지각한다(想)의 과정에서 인칭적인 요소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전이과정에서 나라는 자아의식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341) 기억과 의지를 갖춘 자아는 감각 경험을 자신과 관련하여 평가한다. 순수한 감각 경험에 대해 경험되는 찰나 즉시 ‘좋다’, ‘나쁘다’라는 주관적인 평가를 내리게 된다. 사실 자아의식은 물리적 정신적 과정의 결합에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한 것으로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일단 나라는 자아의식이 성립하게 되면 ‘사유한다(思)→망상한다’로 이어지면서 인식과정이 점차 왜곡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개념화(conceptualization)는 지각에서 일어난다.342) 자아의 이기적인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수(受)에서 발생한 주관적인 경험을 관념적으로 대상화하는 것이다. 각각의 외경은 독특하고 따라서 촉도 수도 독특하지만 자아는 자신과 관련하여, 자신의 과거·현재·미래의 경험내지 필요와 관련하여 사유한다. 상에 의존한 개념화(vitakka)는 망상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자아는 개념(thoughts)에 애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념이 선입견으로 전이되면 모든 인지과정은 오류로 왜곡된다. 상에 의존하여 일어난 개념은 어느 정도 왜곡되어 있지만 그렇게 심한 것은 아니다. 자아의식이 채색된 개념이 선입견으로 고착되면 인지과정 전체가 오류에 빠지게 된다.


3) “자신이 망상한 것에 의존하여 일어난 망상․상․수는 과거 현재 미래의 색과 관련하여, 안식과 관련하여 그 사람을 괴롭힌다.”343) 이 단계에선 사고의 부정적인 역기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망상의 결과로 개념이 사고의 주인이 되고 자신은 사고의 노예가 되어 여기저기 생각에 끌려 다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의 단계에선 사고하는 자가 능동적이었지만 이 단계에선 사고자가 오히려 자신이 사고하는 개념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특정 생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은 이 단계에 속한다. 관념강박증에 시달리는 환자는 이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 낸 허상에 의해 그 자신이 피해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즉 지나간 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생각하면 후회하거나 걱정하거나 불안해하면서 고통에 빠지게 된다.


붓다는 존재 대상에 대한 견해와 초월적인 것에 대한 상상에 집착하는 유해성에 대해 경계하였다. 문제의 핵심은 어떤  견해 자체가 객관적으로 타당한가 그렇지 않은가하는 것에 있기 보다는 그 특정 견해에 자아의식을 투영하여 그것을 진실이라고 집착하는데 있다. 이런 식으로 특정 견해 내지 관념을 붙들고 집착하게 되면 그 관념이 중심이 되어 자신의 세력을 강화하고 상반되는 관념이나 생각은 무시하게 된다. 이렇게 특정 관념이 고착화되면 고집불통의 독재자가 되어 인지 과정이 왜곡되어 그릇된 사고가 심신을 괴롭히게 되는 것이다.

 

 

2.인지왜곡(cognitive distortions) ▲ 위로

 

인지치료에서는 외부의 사건에 의해 내적으로 특정한 생각과 심상이 유발되고 이러한 생각과 심상의 내용이 특정한 감정 및 행동반응을 불러일으킨다고 본다. 벡의 인지치료는 개인의 정서와 행동은 자신과 주위 환경을 해석하는 인지 방식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하는 인지 모델에 기초하고 있다. 심리 장애를 안고 있는 사람에겐 왜곡된 역기능적인 사고가 공통적으로 존재하며, 이러한 역기능적인 사고는 환자의 기분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한다. 벡은 우울증을 개인이 자기 자신, 타인, 세상,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왜곡해서 발생하는 인지의 문제라고 보았다. 이런 부정적인 인지 과정이 우울증을 일으키고 지속시키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우울증 등 모든 심리 장애의 근원에는 왜곡된 인지과정이 놓여 있다고 본다.344)


벡은 왜곡된  인지 과정을 핵심신념(core beliefs), 중간신념(intermediate beliefs), 자동적 사고(automatic thinking)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345) 첫째 핵심신념은 가장 중심적인 신념으로 근원적이고 심층적인 신념이다.  핵심 믿음으로서, 인지의 가장 심층부를 말한다.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생활하고 있으며, 이 핵심 믿음에 의해서 부정적인 자동사고가 형성된다. 핵심 믿음에 의해서 부정적 자동사고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인지왜곡이다. 핵심 신념을 도식(schema)이라고 부르기도 한다.346) 벡은 도식을 마음속에 있는 인지구조로 핵심신념은 그 구조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보아 둘을 구분하였다. 그리고 그는 핵심 신념을 두 가지로 분류하였다. 하나는 자신이 무능하다는 핵심 신념이고 또 하나는 사랑 받을 수 없다고 하는 핵심신념이다.347)


둘째 중간신념은 태도(attitudes), 규칙(rules), 및 가정(assumptions)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핵심신념과 자동적 사고 사이를 매개하는 신념이다. 셋째 자동적 사고는 인지 과정의 가장 표면적인 부분으로, 어떤 상황이나 외부 자극에 의해 자동적이고 즉각적으로 진행되는 일련의 생각들을 말한다. 이것은 논리적이고 심사숙고한 사고와는 다르며, 어떤 노력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자기 내부에서 발생하므로 전혀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믿는다. 자동적 사고는 환경적 사건으로부터 심리적 증상이 유발되도록 매개하는 주요한 인지적 요인이 된다. 특정한 심리적 장애는 자동적 사고의 내용에 의해서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우울증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흔히 실패, 상실, 손실, 무능함 등의 주제와 관련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내용의 자동적 사고를 갖는다. 이 자동적 사고는 우리의 태도나 행동, 기분 등을 좌우하는 직접적인 원인이다.


심리 장애는 인지왜곡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여기는 벡은 인지적 왜곡을 역기능적 인지도식(dysfunctional schema)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지도식은 한 개인이 주위 환경이나 사건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체계화하는 인지적인 틀을 의미한다. 역기능적 인지도식(dysfunctional schema)은 인지왜곡의 가장 밑바닥에 숨어 있는 구조물이며 이 구조물 위에 인지왜곡과 자동적 사고가 작용하고 있다. 348)


인지왜곡의 발생 과정에서 표면에 자동사고가 있고 그 하부에 중간신념이 있으며 다시 그 아래에 핵심신념이 있다고 설명하지만 반드시 한 방향으로만 인과적 영향이 전달되는 것은 아니며 각 요인들 간에 상호적인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울한 정서상태는 자동적 사고의 내용을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며 이러한 지속상태는 중간 및 핵심신념의 내용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렇듯 심리장애가 지속되는 단계에서는 부정적 감정과 역기능적 인지간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악순환적 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349)


사건을 해석하는 정보처리과정에서 범하는 체계적인 잘못을 인지적 오류(cognitive error) 또는 인지적 왜곡(cognitive distortion)이라고 부른다. 벡은 인지 왜곡의 전형적인 양상을 11가지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간략히 살펴보자.350)


① 터널 시야(tunnel view): 시야가 좁은 사람은 자신에게만 맞는 것만 보고 그렇지 않는 것은 무시해 버린다. 사소한 측면만 보고 나머지 주요한 측면을 외면해 버린다. 대체로 대상 전체를 보지 아니하고 부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어 보는 인지 오류이다.


② 선택적 추상화(selective abstraction): 선택적 추상화는 앞의 터널 시야와 유관한 현상으로 전체 상황 중에서 특정 말이나 특정 사건만 보고 그릇된 해석을 내리는 인지왜곡이다.


③ 임의적 추론(arbitrary inference): 아무런 근거 없이 오로지 자신의 생각대로 사건 내지 상황을 해석하는 오류이다. 상대방의 웃음을 자신을 비웃는 것으로 해석하는 예를 들 수 있다.


④ 과일반화(overgeneralization): 가장 심각한 인지 왜곡 중의 하나이다. 충분한 증거나 논리가 부족한 상태에서 과일반화는 일부의 경험 혹은 거기서 얻은 결론을 가지고 지나치게 전체에 적용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어쩌다가 늦게 귀가한 남편을 남편은 항상 늦게 귀가한다고 아내가 판단한다는 아내는 과일반화의 인지 오류에 빠진 것이다.


⑤ 양극화된 사고(polarized thinking): 전부 아니면 전무(all-or-nothing)라는 양극화된 사고 방식이다.  ‘흑 아니면 백’,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사고방식으로서, 모든 현상을 양극단의 범주 중 하나로 평가한다. 흑백논리는 친구 아니면 적 등 자기 자신과 세상을 이분법적으로만 도식화한다. 흔히 완벽주의자들이 이런 인지오류에 잘 빠진다.


⑥ 과장(magnification): 상대방의 행동이나 특정 상황의 특징을 지나치게 확대시하고 특정 사건의 결과가 지닌 심각성을 부풀려 파국으로 몰고가는 사고 유형이다. 알고 보면 별 것 아닌 일임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일로 사고하는 방식이다. 벡은 이런 사고 방식은 앨리스(Ellis)의 끔찍하게 여기기(awefulizing)과 유사하다고 설명하고 있다.351)


⑦ 편향된 설명(biased explanation): 어떤 부정적인 사건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불행한 부부는 자신이 불행의 원인을 찾을 때,  배우자의 행위를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⑧ 부정적 낙인(negative labeling): 부정적 낙인은 합리적인 증거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이름(예: ‘비열한 인간’)을 붙이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낙인을 찍은 다음에 상대방을 그런 사람인 것처럼 대한다. 엘리스(Ellis)가 분류한 ‘악마취급’(devilizing)의 단계까지 나아간다.


⑨ 개인화(personalization): 다른 사람의 행위를 모두 자신을 향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류이다. 자신과 무관한 타인의 행위도 자신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는 인지 오류이다. 자신을 추월하는 차주를 두고 자신을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로 생각한다.


⑩ 마음 읽기(mind-reading):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다 알고 있다는 사고 방식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상대방이 그릇된 생각과 악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부정적 마음읽기는 주로 피해망상적인 사고가 많다. 즉, 상대방의 표정이나 행동을 자신을 무시하거나 싫어한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인지 오류이다.


⑪ 주관적 추론(subjective reasoning): 어떤 감정을 경험할 때 이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내가 슬픈 것은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주관적 추론의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번스(D. Burns)가 제시한 감정적 추론(emotional reasoning)과 유사하다.352)


이상 벡이 제시한 인지왜곡은 외부의 사건 자체보다 사건에 대한 비합리적인 처리, 즉 외부 세계에 그릇된 해석을 다양하게 분석하고 분류한 것이다. 이러한 인지왜곡은 여러 가지 심리적 장애의 원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벡은 우울증 환자들이 임의적 추론, 선택적 추상화, 과일반화, 과장과 축소, 개인화, 흑백논리 등과 같은 체계적인 사고의 오류를 범한다고 기술한다.353) 김정호는 비합리적 인지와 비합리적 인지를 생성하는 비합리적 인지책략을 구분하고, 여러 가지 기존의 비합리적 인지책략들을 크게 흑백논리, 과장과 축소, 독심술사고, 과일반화의 4가지로 구분하여 비합리적인 인지가 스트레스에 어떻게 작용하는 지 다루고 있다.354)


앞에서 우리는 붓다가 가르친 망상의 발생 과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망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중생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지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들을 수 없었다. 우리는 여기서 아론 벡의 전형적인 열한가지 인지왜곡에 대해 살펴보았다. 아론 벡은 구체적으로 인지왜곡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인지왜곡의 양상에 관하여 자세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붓다나 아론 백은 그릇된 사고가 고통의 원인이라고 진단한 점에선 동일하지만 붓다는 인지왜곡의 발생 과정에 더 자세하고 아론 벡은 인지 왜곡 현상 자체에 더 자세한 분석을 하고 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붓다와 아론 벡을 연계시키면 하나의 온전한 그림이 완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론 벡의 열한가지 인지왜곡은 붓다의 망상을 더 자세히 설명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III. 역기능적 사고의 종식과 고통의 해결

1.불선한 사고(vitakka)를 통제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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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초래하는 고통을 종식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붓다는 여러 곳에서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마두핀디카경』을 살펴보자.


사람을 동요하게 하는 망상․상(想)․수(數)가 무엇이든, 거기에 대해 즐거워하지 않고, 동조하지 않고, 집착하지 아니하면, 탐욕 수면이 종식되고, 증오 수면이 종식되고, 탐욕 수면이 종식되고, 견(見) 수면이 종식되고, 의심 수면이 종식되고, 만(慢) 수면이 종식되고, 유애(有愛) 수면이 종식되고, 무명(無明) 수면이 종식된다. 몽둥이를 잡거나, 무기를 잡거나 언쟁하거나 다투거나 분쟁하거나 비난하거나 비방하거나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이들 모든 불선법은 남김없이 사라진다.”355)
 

망상에 의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어떠한 망상에 대해서도 평정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라고 처방하고 있다. 어떤 특정 생각에 대해 즐거워하거나 동조하거나 애착하지 않으면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인류사에서 사상투쟁이라는 이념갈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였다. 생각은 행동으로 표출되므로 다른 생각들은 다른 행동으로 나타난다. 바로 여기에 물리적인 폭력이 발생하게 된다고 붓다는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마두핀디카 수타』(Madhupiṇḍika-sutta)에 의하면 불선한 사고(vitakka)가 인식과정의 초기 단계에 위치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파판차는 감각-인식 과정에서 마지막 단계에 위치하고 있다. 망상과 불선한 사고를 비교해 보면 vitakka는 사고가 이제 막 시작하려는 단계인데 비해 망상은 사고의 확산으로 혼돈되어 있는 것이다.356) vitakka는 망상에 비해 좀 덜 사유하고 있는데 비해 망상은 산만하게 사고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은 망상의 전단계에 있기 때문에 불선한 사고인 vitakka를 통제한다는 것은 곧 망상(papañca)을 통제한다는 의미이다. 고통을 야기하는 망상을 제어하는 것 보다 그 전단계인 심을 제어한다는 것이 전술적으로 효과적이다. 이미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잡는 것 보다 발화되고 있는 것을 잡는 것이 용이하듯이 파판차보다 불선한 사고를 잡는 것이 쉬운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비탓카산타나 숫타』(Vitakkasanthana Sutta)의 존재 의의와 그 가치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경전에선 불선한 사고를 탐진치와 연계된 생각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런 저급한 생각을 통제하여 보다 높은 마음을 추구할 수 있는 5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증상심(adhicitta)을 추구하려는 비구들은 5가지 상(相, nimitta)을 수시로 주의해야 한다.”357) 증상심(adhicitta)이란  선정심을 일컫는다. 색계 사선과 무색계 사선의 8선정심이거나 비파사나 선정심으로 주석서에서 해석하고 있다 .358) 상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본문에선 불선의 사고를 제거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방법을 의미한다.359)


첫째, 저급한 생각이 일어날 때 그 저급한 생각을 상쇄할 수 있는 고상한 생각을 일으킨다.
 

"비구가 어떤 상에 주의를 둘 때, 그 상(相)으로 인해 그에게 탐, 진, 치 와 연결된 악ㆍ불선의 생각이 발생할 때, 선과 연결된 다른 상에 주의를 두어야 한다. 이렇게 선한 상에 주의를 두면 자연히 탐, 진, 치와 연계된 악한 생각은 사라지게 된다. 나쁜 생각이 사라짐에 따라 비구의 마음은 내적으로 안정되고, 침착해지고, 한 대상에 두게 되고 집중하게 된다.”360)


마치 목수가 거친 쐐기 목을 뽑아내고 더 잘 다듬어진 쐐기 못을 박는 것과 같다. 불선의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을 대체할 선한 생각을 하라는 것이다.


유정과 관련하여 탐욕과 연계된 불선한 생각이 일어나면 부정관(不淨觀)을 닦아야 하고 무정물과 관련하여 탐욕과 연계된 불선한 생각이 일어나면 무상관(無常觀)을 닦아야 고 유정(有情)과 관련하여 증오와 연계된 불선한 생각이 일어나면 자비관(慈悲觀)을 닦아야 하고 무정물과 관련하여 증오와 연계된 불선한 생각이 일어나면 계분별관(界分別觀)을 닦아야 한다. 무지와 관련된 불선의 생각을 제어하기 위해선 법을 잘 숙지하고 있는 스승을 찾아가 지혜를 개발해야 한다.361) 생각 치환법은 동일한 대상에 대하여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는 방법과 완전히 다른 대상을 떠올려 생각하는 방법으로 대별할 수 있다. 어떤 이성에 관하여 두 방법을 적용해 보면 첫 번째 방법은 그 이성의 부정한 측면을 생각하여 탐욕스러운 생각을 없애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탐욕의 생각을 대치할 수 있는 붓다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불선의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의 위험을 생각하는 것이다. “탐, 진, 치와 관련된 악, 불선의 생각이 일어나면, 저들 생각의 위험을 조사해야 한다. 이들 생각들은 선하지 아니하고, 비난받을 만하고 고통을 초래한 것이다”362) 이렇게 불선의 생각이 가져온 위험 유해, 불이익을 생각하면 그 나쁜 생각이 사라진다. 뱀의 시체를 목에 걸면 소녀는 겁에 질리고 두려워한다. 마찬가지로 나쁜 생각이 일어나면 나쁜 생각의 위험을 조사해야 한다. 나쁜 생각을 계속 품고 있으면 결국 언어로 표현되고 행동으로 나아가게 된다. 악업을 짓게 되어 괴로운 과보를 받게 된다. 인과응보의 업보 중 악인악과의 원리를 생각하여 즉시 나쁜 생각을 쫓아낸다.


셋째 방식은 불선의 생각을 무시하는 것이다. “저들 생각을 잊고 저들 생각에 주의를 주어서는 안 된다.”363) 마치 시야에 어떤 대상이 들어오면 시선을 돌려 보지 않거나, 눈을 감거나 몸을 피해 보지 않는 것과 같다고 경전에서 부연하고 있다. 이 방법은 마치 떼를 쓰고 있는 아이에게 일부러 주의를 주지 않는 것과 같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주의를 주면 더 떼를 쓰며 우는 경우가 흔히 목격된다. 따라서 이런 것을 막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주의를 받지 못한 아이는 결국 울음을 그친다. 주의를 받지 못한 불선의 생각은 결국 사라지게 된다.


주석서에선 불선의 생각을 무시하기 위해서 경전을 암송하거나 염송하라고 제안하고 있다. 주석서는 불선의 생각을 무시하는 방법으로 주머니를 열어 주머니 속에 든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며 마음속으로 그 물건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설하고 있다. 또는 옷을 수선하거나 사원을 고치거나 하는 등 일시적으로 생각을 쉬게 해야지 너무 명상에서 멀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하고 있다. 선정 수행이 너무 조급하게 진행될 때 그 속도를 적절히 조절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선정에 대한 지나친 생각을 다스리는 것이다.364)


넷째 방식은 생각의 발생 원인을 제어하는 것이다. “저들 생각의 사행을 중지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365) 어떤 사람이 빨리 걷고 있다가 이렇게 생각한다.  ‘왜 이렇게 빨리 걷고 있지? 천천히 걸으면 어떨까? ’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천천히 걷는다. “사행의 중지”란 “생각의 원인의 중지(stopping the cause of the thought)를 의미한다.366) 이 방식은 질문, 탐구 자세가 들어 있다. 나쁜 생각이 일어나면 ‘왜 이런 나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지’라고 그 원인을 조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질문해 들어가면 생각의 흐름에 단절이 일어나게 되고 결국 불선의 생각이 사라지게 된다. 행동의 이면에는 생각이 있다. 행동을 살펴보면 그 심리를 짐작할 수 있다. 자기도 모르게 하는 습관적인 행동의 이면엔 습관적인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을 멈추고, 그 행동을 일으킨 습관적인 생각에 대해 질문하게 되면 자동화되어 있던 생각이 상습적으로 이론처럼 일어나지 못한다. 이 방식은 자동적인 사고(automatic thoughts)를 제어하기 위한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우 실라난다 사야도(Sayadaw U Silananda)는 “생각의 원인의 원인(the cause of the cause of thoughts)”으로 이해하고 있다.367) 어떤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을 일으킨 원인을 조사하는 것이다. 특정 생각을 일으킨 원인을 찾아내고, 다시 그 원인의 원인을 찾아 들어가면 갈수록 미세한 생각이 발견될 것이다. 그 생각을 없애버리면 그 이후의 생각들은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거친 생각에서 미세한 생각으로 그 원인을 찾아들어가는 것도 아론 벡의 핵심 신념 찾기 과정에 비견할 수 있다. 자동사고을 일으킨 중간 신념을 찾고, 그 중간 신념 배후에 있는 핵심 신념을 찾아 찾아들어가는 방식이다. 핵심 신념의 변화는 곧 바로 자동사고의 변화로 이어진다.


다섯 번째 이자 마지막 방식은 강인한 의지가 필요로 한다. 이전의 4가지 방식이 지적인 능력이 요구되었는데 비해 지금 이 방법은 물리적인 측면이 강하다.  “이를 굳게 악물고 혀를 이 천장에 딱 붙이고 마음으로 마음을 때리고, 억제하고 부순다.”368) 마치 아주 건장한 장부가 병약한 사람의 머리나 어깨를 붙잡아 때리거나 묶거나 부수는 것처럼, 나쁜 생각을 적으로 간주하여 물리적인 공격을 하라는 것이다. 이를 악물고 혀를 입천장에 붙이는 자세는 강인한 의지력, 용기, 임전불퇴의 자세를 상징한다. 붓다가 고행하던 시점이나 보리수 하에 정각 직전 앉을 때의 자세를 연상할 수 있다. ‘마음으로 마음을 때려 부순다.’는 것은 선한 생각으로 나쁜 생각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현존하는 불선의 생각을 정확히 확인하고 포착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사야도는 앞의 네 가지 방식에 비하여 이 방법은 단기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369) 이전의 방식들은 오래 시간을 두고 수행하는데 비해 지금 이 방식은 단기간에 수행하는 자에게 유익하다고 보고 있다.


이상 5가지 방법을 제대로 사용하게 되면 생각을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게 된다. 5가지 방법을 모두 수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경전에서도 첫 번째 방법이 맞지 않으면 두 번째 방법을 사용하고, 두 번째 방법이 효과적이지 못하면 세 번째 방법을 사용하라고 권하고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의 진행 방식을 통제할 수 있는 자는 무슨 생각이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생각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이다. 그는 갈애를 끊고 결박을 풀고 바르게 아만을 통찰하고 고통을 단절한다. 370)
 

생각의 노예가 아니라 생각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의지대로 생각할 수 있어 악한 생각은 멀리하고 선한 생각을 하여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악한 생각에 지배받는 범부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2.인지치료의 기법 ▲ 위로

 

인지치료의 기본 원리는 환자의 인지왜곡을 교정하는데 있다. 인지치료는 심리적 장애의 치료에 있어서 환자가 자신의 내면적 정보처리 과정을 잘 이해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환자가 자신의 내면적 인지 왜곡 과정을 스스로 이해하고 바로 잡아, 인지 왜곡에 의한 심리장애에서  벗어나는 것이 인지치료의 목표가 된다.


인지치료는 비교적 구조화된 치료법이지만 그 구체적인 과정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융통성 있게 달라질 수 있다.371) 여기에서는 인지치료의 전형적인 상담과정을 크게 준비 단계, 본격적인 치료 단계, 종결단계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준비 단계에선 환자에게 인지치유의 기본 원리를 설명한다. 본격적인 치료단계는 인지왜곡과정을 교정하는 작업으로  첫째 자동적 사고를 교정하고, 둘째 중간 믿음을 교정하고 셋째 핵심 믿음을 교정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왜곡된 인지 과정이 교정되면 심리 장애 문제에서 벗어나 치유가 종결된다. 마지막으로 종결단계에선 인지왜곡이 재발되지 않도록 주지시킨다.


(1) 준비단계


준비단계에선 무엇보다도 치유자가 환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인다.372) 환자가 호소하는 심리 문제와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며 신뢰하고 상호존중적인 관계형성에 노력한다. 그 바탕위에서 인지치료의 기본 이론과 치유 과정을 설명하여 환자가 인지치료의 기본개념과 원리에 대해서 익숙해지도록 노력한다. 환자로 하여금 문제의 증상을 치유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는 것이 다음 치유 단계에 나아가기 위한 기반이 된다. 붓다의 제자가 붓다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붓다에게 자발적으로 찾아가 가벼운 법문을 듣는 단계로 비견할 수 있다. 불교에서 제자들이 붓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거나 인지치료에서 환자가 치유자를 찾는 과정에서 가장 주요한 덕목은 신심 내지 신뢰이다.


(2) 본격적인 치유 단계


1) 자동적 사고의 발견 및 교정


인지치료에선 상황 그 자체보다 상황에 대한 해석 즉 자동적 사고가 환자의 주요한 심리 문제, 이상 행동 불쾌한 생리적인 반응 등을 야기한다고 본다. 왜곡된 자동적 사고가 심리 문제나 정서 문제를 발생시킨다고 여기기 때문에 먼저 자동적 사고에 초점을 맞추어 하나씩 집중적으로 다루어 간다. 역기능적인 자동적 사고는 대체로 매우 단편적이면서 자발적으로 발생하며 의도적이거나 심사숙고해서 형성된 것이 아니다. 환자는 자신의 자동적 사고를 평가하거나 심사숙고하지 아니하고 진실로 받아들여 자동적 사고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된다. 자동적 사고의 발생 과정과 그 영향에 놓이게 되는 과정은 파판차의 발생과정과 그 영향애 놓이는 과정과 비교할 수 있다.


자동적 사고는 빠르게 스쳐 지나가서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면 파악하기 어렵다. 환자는 사고 그 자체보다는 자동적 사고의 결과로 발생한 감정을 더 잘 인식하게 된다. 환자로 하여금 문제가 야기되는 상황이나 사건에 대한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며 객관적인 기술을 하게 하고 그 상황에서 환자가 느낀 감정 및 행동반응을 자세히 보고하게 하여 역기능적인 자동적 사고를 발견한다. 자동적 사고를 발견하기 위한 방법은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즉 환자에게 “바로 그때 마음 속에 무엇이 스쳐갓습니까?”라고 물음으로써 환자로 하여금 자동적 사고를 발견하도록 유도한다. 환자의 감정적인 변화 징후가 포착될 때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 효율적이다.373) 자동적 사고를 찾아내는 방법으로 질문법 대신에 역기능적 사고 기록지(Dysfunctional Thought Record)를 사용할 수 있다. 환자로 하여금 매일매일 문제되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사건과 인지를 기록하게 하는 숙제를 주고 다음 상담시간에 그 기록지의 내용을 근거로 구체적인 내용을 다루어간다. 역기능적 사고 기록지(Dysfunctional Thought Record)에는 날짜/시간, 상황, 감정, 자동적 사고, 적응적 반응, 결과 등의 항목이 들어 있다.374)


자동적 사고가 확인되고 나면 치료자는 환자가 자신의 자동적 사고의 타당성을 검증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정상황에서 환자가 지니는 자동적 사고 내용이 그 상황에 대한 적절한 해석인가를 검증하기 위해 환자에게 적절한 질문을 한다. 적절한 물음을 던짐으로써 내담자 스스로 자신의 사고내용이 상황에 대한 과장되고 왜곡된 해석이었음을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체가 될 수 있는 다른 설명을 해주는 것이 맞지 않는 자동적 사고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환자는 자신의  다양한 인지적 오류를 알 수 있다. 치유자는 인지적 오류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명명(labeling)해줌으로써 환자가 자신이 흔히 범하는 인지 오류를 자각하도록 돕는다.375)


2) 중간신념의 발견과 교정


자동적 사고를 효과적으로 다룬 뒤 자동적 사고 보다 더 깊이 박혀 있는 중간신념을 교정한다. 자동적 사고를 다르면서 치유자는 처음부터 중간신념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자동적 사고는 자동적 사고를 일으키는 보다 깊은 수준의 신념을 찾아 교정한다. 가정, 규칙, 태도로 구성되어 있는 중간 신념을 수정하는 것은 자동적 사고의 교정 보다 쉽지 않지만 핵심 신념보다 어렵지 않다.


치료자가 중간신념을 발견하기 위한 방법을 간략히 살펴보자.376) 첫째 환자는 신념을 자동적 사고로 표현하므로 자동적 사고를 잘 살핀다. 둘째 치료자는 가정의 전반부를 제시하여 환자의 전체가정을 유도해 낸다. 일반적으로 규칙이나 태도보다는 가정의 형태로 표현된 중간신념을 다루는 것이 더 쉽다. 셋째 치료자는 직접적인 유도를 통해 환자의 중간 신념을 알 수 있다. 넷째, 하향식 화살기법을 사용한다. 우선 치료자는 역기능적인 신념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을 것 같은 주요한 자동적 사고를 찾아 이 자동적 사고에 대하여 질문한다. 자동적 사고가 옳다고 가정할 경우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환자에게 물어본다. 이런 식으로 질문을 계속함으로써 중간 신념을 찾아낼 수 있다.377) 다섯 번째 여러 상황에서 발생하는 자동적 사고들의 공통적인 주제를 찾아낸다. 여섯 번 째 환자에게 직접 자신의 신념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마지막으로 역기능적 태도 척도(Dysfunctional Attitude Scale)와 같은 설문지를 작성하도록 하여 중간 신념을 발견한다.


이상의 방법을 통해 중간신념이 발견되면 치료자는 역기능적인 중간신념의 수정에 초점을 맞춘다. 신념은 타고나면서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학습된 것이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주지시킨다. 역기능적인 신념 대신에 보다 적응적인 신념을 가지도록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법을 살펴보자.378) 역기능적인 신념을 교정하는 기법엔 자동적 사고의 교정에 사용되었던 기법이 일부 포함되어 있는데 다음에 제시하는 기법은 부정적인 신념의 교정에 주로 사용되는 기법이다. 첫째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사용하여 환자가 중간신념을 평가할 수 있도록 한다. 둘째 치료자는 환자가 신념의 타당성을 평가해 볼 수 있는 행동실험을 고안하도록 돕는다. 적절한 행동실험은 언어적 기법보다 효과적이다. 셋째 인지적 영속성(cognitive continuum)은 환자의 양극화된 신념을 교정할 때 효과적이다. 인지적 영속성에 대한 이해는 환자의 경직된 신념을 유연하게 만들 수 있다.  넷째 이성적-감정적 역할 연기(rational-emotional role-play)는 환자가 자신의 신념이 역기능적이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감정적으로 여전히 사실로 받아들일 때 효과적이다. 다섯 번째 다른 사람을 준거점(reference)으로 사용한다. 환자들은 다른 사람의 신념을 검토함으로써 자신들의 역기능적인 신념에 대한 심리적인 거리를 두게 된다. 타인의 신념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게 되어 자신이 지니고 있는 신념의 역기능을 알 수 있게 된다. 환자의 역기능적인 신념과 유사한 신념을 가진 이를 찾아 환자 자신의 신념을 교정하는 것이다. 여섯 번째 "마치 인 것처럼 행동하기(acting "as if")" 기법은 신념과 행동의 연결성을 이용한 것이다. 인지 모델에선 신념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를 가져온다. 신념과 행동의 상호 연관성을 이용하여 역으로 행동의 변화를 통해 신념의 변화를 가져온다. 일곱 번째 자기노출(self-disclosure)은 환자들이 자신의 신념을 다른 각도에서 보도록 도와준다.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은 붓다가 제자를 가르칠 때 빈번히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런 붓다의 교설 특징에 근거하여 리즈 데이비스(Rhys Davids)은  디그나가 니카야(Dīgha Nikāya)를 번역하면서 The Dialogue of the Buddha라고 서명으로 삼았다.379) 인지적 영속성(cognitive continuum)과 상관하여 언급하면 양극단적인 사고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붓다는 중도를 가르치고 있다. 행동의 교정을 통해 신념을 교정하는 방식은 십악업의 순서를 보면 알 수 있다. 다른 어떤 기법보다도 신념을 행동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것은 붓다의 가르침 중 자증(自證)의 가르침에 가장 유사하다. 『칼라마 숫타』에서 보듯이 어떤 주장을 맹신하거나 배척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주장이 참인지 거짓인지 검증하라는 가르침과 상통한다.


3) 역기능적 핵심신념의 발견과 교정


자동적 사고와 중간신념의 근저에는 보다 근본적이며 심층적인 역기능적 핵심신념이 놓여 있다. 역기능적 핵심신념을 교정하는 것은 곧 중간신념과 자동적 사고의 변화를 의미하므로 핵심신념의 교정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치료방법이다.


역기능적 핵심신념을 발견하고 교정하기 위해선 자동적 사고와 중간신념의 발견 및 교정에 사용된 기법들이 적용될 수 있으며 특별히 핵심신념의 발견과 교정을 위한 기법도 고안될 수 있다. 본고에선 핵심신념의 교정과 관련된 주요한 치료 기법 사항만 요약하기로 한다.380) 부정적인 핵심신념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자신이 무능하다는 핵심신념과 자신은 사랑받을 수 없다는 핵심신념이다. 치료자는 먼저 환자의 핵심신념이 어떤 범주에 소속되는지 파악해야 한다. 치료자는 환자의 중간신념을 발견할 때 사용한 기법으로 환자의 핵심신념을 찾아낸다. 하향식 화살 기법뿐만 아니라 환자의 자동적 사고에서 중심 주제를  찾아내고, 자동적 사고의 형태로 표현되는 핵심신념을 파악하며, 직접적으로 핵심신념을 발견한다. 환자에게 핵심신념의 본성과 그 작동 기능을 이해시키고 핵심신념을 관찰하도록 한다.381) 치료자는 순기능적인 새로운 신념을 환자에게 제시하여 이전의 부정적인 핵심신념을 교정한다.382) 환자의 핵심신념과 극단적으로 대조적인 인물을 환자 자신과 비교하도록 하여 핵심신념을 교정할 수 있다. 치료자는 환자의 어린 시절에서 핵심신념을 지지했을 것으로 보이는 증거들을 조사하고 또한 그것과 반대되었던 증거들을 밝혀내도록 돕는다. 환자의 핵심신념이 어떻게 시작되고 유지되는지 알 수 있다. 383)


벡이 제시한 두 가지 종류의 핵심신념은 모두 자아의식에 근거한 것이다. 붓다는 고통을 야기하는 자아의식의 해소를 위해 무아(無我)를 설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지치료의 핵심신념의 교정과 다르다.
 

(3) 마무리 단계


만족스러울 정도로 환자의 심리적 문제가 호전을 보이고 안정된 상태가 되면 치료의 종결을 위해 준비한다. 이 시기에 이루어져야 할 주요 사항을 살펴보자. 치료 진척을 환자의 공(功)으로 돌린다. 환자가 자신의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였음을 숙지시켜 격려한다. 치료과정에선 배운 기법을 재검토 한다. 치료의 종결 후에 치료적 퇴보가 생길 경우 어떻게 할 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적은 대처 카드를 작성하도록 한다. 만약 추가적인 치료 약속이 필요한 경우 치료자는 환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장애가 있는 지 발견하도록 돕고 대처 방안을 세우도록 한다.


인지치료 기법을 요약하면 심리적인 증상을 초래하는 왜곡된 인지 과정을 규명하고 변경하는 것이다. 먼저 정서 문제 및 행동장애를 가져오는 자동 사고를 찾아내고 그 그릇된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자동사고의 기저에 있는 중간 신념 그리고 그 이면에 놓여 있는 역기능적인 핵심 신념을 찾아내어 바로잡는 것이다. 왜곡된 역기능적 인지 과정의 교정을 통해서 심리적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는 것이 인지치료의 기법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환자와 치유사간의 유기적인 관계가 중시되며 특히 치유사의 자질이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IV. 맺는 말  ▲ 위로


인지치료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왜곡된 인지과정에 둔다는 점에서 불선한 사고가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붓다의 가르침과 상통한다. 그릇된 사고 과정을 교정함으로써 심리적인 장애를 제거할 수 있다고 인지치료가 주창하듯이 붓다도 바른 지혜를 성취하게 되면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涅槃, nirvana) 즉,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가르친다.


고통의 근원으로서의 망상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과 왜곡된 인지가 심리적 장애를 일으킨다는 벡의 인지치료를 비교하였다. 『마두핀디카 숫타』(Madhupiṇḍika Sutta)에서 붓다는 고통의 근원이 되는 망상(papañca)의 전개 과정을 자세히 분석하였다. 개인 간의 다툼이나 집단간의 물리적인 폭력도 결국 개개인이 망상의 지배하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주변 세계와 자기 자신에 대한 개인의 망상의 소멸이야 말로 모든 고통의 해결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 아론 벡은 환자가 인지의 왜곡과정에 빠져 있기 때문에 심리 장애가 발생한다고 파악하고 11가지 인지의 왜곡 유형을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붓다는 망상(papañca)의 왜곡 과정을 분석하고 있어 아론 벡보다 인식론적으로 더 깊은 통찰을 보여 주고 있다. 반면 아론 벡은 보통 사람들이 범하게 되는 인지 오류를 자세히 분석하고 제시하여 더 구체적이고 더 경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붓다가 제시한 망상의 구체적인 내용이 아론 벡의 11가지 인지 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


왜곡된 사고를 어떻게 교정할 것인가에 대한 붓다와 벡의 견해를 비교하였다. 『비탓카산타나 숫타』(Vitakkasaṇṭhāna Sutta)에서 붓다는 불선한 사고를 제어하는 방법으로 5가지를 제시하였다. 붓다의 가르침에서 불선한 사고를 선한 사고로 대치하는 첫째 방식은 인지치료에서 왜곡된 사고나 신념을 보다 나은 새로운 사고나 신념으로 대체하는 것과 상응한다. 불선한 사고의 유해성을 발견하는 두 번째 방법은 인지치료에서 왜곡된 신념이나 자동적 사고를 평가하는 인지치료의 방법과 유사하다. 불선한 사고의 기원을 찾는 네 번째 방법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자동적 사고에서 점차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신념을 찾아 들어가는 인지치료의 방법과 유사하다. 자동적 사고, 중간 신념, 핵심신념의 순서로 심층적으로 분석해 들어가는 인지 치유과정은 네 번째 방식을 구체화 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역기능적인 사고의 일일기록표나 소크라테스식 질문법 등 인지치료에서 사용된 방법은 불교에 비해 현대인에게 방법론적으로 더 구체적이고 더 실천하기 쉽다.


인지과정에 지대한 관심을 표방하는 인지치료나 붓다의 가르침은 현대의 정보산업사회에 무엇보다도 긴요하다. 인터넷 등 언론매체나 휴대폰 등 통신수단의 급속한 발달로 막대한 양의 정보가 쏟아지고 있다. 이런 정보화 사회에서 그릇된 사고를 하게 되면 자신에게나 사회전체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가할 수 있다. 정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사고과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사고가 가져올 수 있는 역기능을 방지하거나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사고의 역기능에 관한 보다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 위로

 

 
참고문헌


1. 원전류

*MN: Majjhima Nikāya(Pali Text Society 본)

Bhikkhu Ñāṇamoli and Bhikkhu Bodhi, The Middle Length Discourses of the Buddha, Boston: Wisdom Publications, 1995.

Rhys Davids, The Dialogue of the Buddha, Pali Text Society, 1945.


2. 단행본류

아론 벡,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다』, 제석봉 옮김, 서울:학지사, 2002.

아론 벡, 『우울증의 인지치료』, 원호택 외 공역, 서울: 학지사, 1996.

Beck, J., 『인지치료』 (Cognitive therapy), 최영희, 이정흠 공역, 서울: 하나의학사, 1997.

Beck, J., Cognitive Therapy: Basics and Beyond, The Guilford Press, 1995.

Beck. A. T., Rush J., Shaw. B., & Emery, G. Cognitive therapy of depression, New York: Guilford press. 1979.

D. Burns, Feeling Good, New York: New American Library, 1980.

Ñāṇananda, Concept and Reality in Early Buddhist Thought, Kandy: Buddhist Publication. 1986.
 

3. 논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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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adaw U Silananda, “How to deal with distracting thoughts" in www.tbsa.org/articles/pdf/Soma Thera.

Sayadaw U Silananda, The Removal of Distracting Thoughts, Kandy: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1971. in www.accesstoinsight.org/lib/authors/soma/

권석만,「Beck의 인지치료」. 청소년 대화의 광장(편), 『청소년의 인지상담』, 서울: 청소년 대화의 광장, 1998, pp. 123-158.

김정호,「비합리적 인지책략과 스트레스」 『건강』 7호, 한국심리학회, 2002. pp.287-315.

인경.  「유식의 변계소집성과 인지치료의 통합적 접근」 『보조사상』 제22집, 보조사상연구원, 2004.

 

 
<Abstract>
 

Dysfunction of Thoughts and its solution

- in terms of Teachings of the Buddha and

Aaron Beck's Cognitive Therapy -
 

An, Yang-gyu / Professor, Buddhist Department,

Dongguk University(Kyoung-Ju)
 

The Buddha and Aaron Beck put a heavy emphasis on the dysfunction of thoughts. The Buddha teaches that people are suffering thinking of unwholesome thoughts while Aaron Beck diagnoses that faulty negative thoughts cause mental disorders.


In the Madhupindika Sutta, the Buddha analyses negative process of thinking. "The meeting of three(eye, forms, eye-consciousness) is contact. With contact as condition there is feeling. What one feels, that one perceives. What one perceives, that one thinks about. What one thinks about, that one mentally proliferates. With what one mentally proliferates as the source, perceptions and notions tinged by mental proliferation beset a man."


Aaron Beck's Cognitive Therapy assumes that a patient's erroneous cognitions causes him sufferings. The distorted cognitions include arbitrary inference, selective abstraction, over-generalization, magnification and minimization, personalization, dichotomous thinking and so forth.


In the Vittakasanthana Sutta the Buddha proscribes the five ways to remove distracting thoughts: ① giving attention to wholesome thoughts ② examining the danger in unwholesome thoughts ③ ignoring unwholesome thoughts ④ stilling the thought formation of unwholesome thoughts ⑤ beating down unwholesome thoughts.


According to Aaron Beck's Cognitive Therapy, correction of distorted thoughts can lead to clinical improvement of a patient. The patient should become aware of his cognitive distortions.  By finding and correcting cognitive errors in automatic thinking, intermediate beliefs, core beliefs, a patient becomes free from mental disorders.
 

* key words
the Buddha, Aaron Beck,  Cognitive Therapy, dysfunction of thought  ▲ 위로



[출처: 보조사상 28집]

 

 

 

 

 

 

 

 

 

[안양규] ■ 사고의 역기능과 그 해결 - 붓다의 가르침과 아론 벡(Aaron T. Beck)의 인지치료를 중심

思考(thinking)의 逆機能(dysfunction)과 그 해결 - 붓다(the Buddha)의 가르침과 아론 벡(Aaron T. Beck)의인지치료(Cognitive Therapy)를 중심으로 - 안 양 규 / 동국대학교(경주) 불교학과 교수 ▒ 목 차 ▒ I.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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