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식득지(轉識得智)
알라야식이 변해 지혜로운 불심으로
불교의 근본목적은 부처님과 같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중생들이 자신의 마음을 갈고 닦아 부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대승불교에서 마음의 현상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분석한 학파가 유식학파이다. 유식학파는 우리 인간에게 고통과 번뇌를 가져다주는 근본으로서 실체적인 개념, 즉 영원불변한 절대적인 것이 있다는 관념은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 낸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하여 실체적인 개념이 생겨나는 마음의 구조와 그러한 개념을 떠난 진실된 마음의 구조를 상세히 밝혔다. 곧 우리의 마음은 서로 관계하여 연기하고 있는 까닭에 좋은 인연을 만나면 진실 되고 지혜로운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이 부처님과 같은 지혜로운 마음으로 바뀌어 지는 구조를 직접적으로 밝힌 것이 유식에서 말하는 전식득지(轉識得智)의 구조이다. 유식학파의 교리에 의하면 중생이 부처님과 같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다양한 수행의 단계를 밟아야 한다. 그 대표적인 수행의 단계가 자량위(資糧位), 가행위(加行位), 견도위(見道位), 수도위(修道位), 구경위(究竟位)의 5위의 단계이다. 각각의 단계를 거침으로써 중생의 마음은 부처님의 마음으로 변하게 되어 마침내 구경위에 이르러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한다. 이 수행의 과정에서 부처님과 같은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되는 것이 수도위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전식득지의 경계이다. 전식득지란 우리의 의식들이 지혜로 바뀐다는 것이다. 전식득지의 단계에 이르면 우리의 마음을 구성하는 의식의 세계가 지혜로운 마음으로 바뀌어 진다. 곧 우리의 의식 가운데 가장 심층적인 것으로 마음이라 불리는 제8 알라야식은 대원경지(大圓鏡智)라는 지혜로 바뀌게 된다. 대원경지란 청정하고 완전한 지혜라는 의미로 부처님의 지혜를 가리킨다. 이렇게 심층의 의식이 지혜로 바뀜으로써 나머지 의식도 지혜로 바뀌게 된다. 제7 말나식은 평등성지(平等性智)로 바뀐다. 평등성지란 자아의식을 버리고 모든 것을 평등하게 보는 지혜이다. 제6 의식은 묘관찰지(妙觀察智)로 바뀌게 된다. 묘관찰지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는 지혜이다. 그리고 전5식은 성소작지(成所作智)로 바뀌게 된다. 실제 행동하는 구체적인 행위가 모두 지혜롭다는 의미이다. 불교의 근본목적은 부처님과 같은 지혜를 얻는 것으로, 달리 말하면 전식득지를 통해 지혜로워 지는 것이다. 곧 전식득지는 불교가 목적으로 하는 지혜의 세계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를 분명하고 상세하게 규명한 것이다. 유식사상은 5위의 수행체계와 함께 전식득지의 구조를 밝힘으로써, 불교가 추구하는 근본목적이 지혜를 얻어 부처님이 되는데 있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이 전식득지의 구조에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부처님의 지혜는 미래에 계속된다는 것이다. 곧 우리의 의식이 지혜로 바뀐 순간부터 지혜는 계속하여 활동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대승불교에서 강조하는 보살의 이타행과 자비행이 지혜를 얻음으로써 더욱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혜가 증득되는 전식득지의 경계는 용수의 공사상(空思想)에서 보여지는 공을 체득하는 경계임을 알 수 있다. 공의 체득을 통해 열반의 경계가 나타나듯 전식득지 또한 이타행과 자비행의 근원으로서 대승보살의 위대한 정신적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위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불교신문 2171호/ 10월19일자]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전의 (불교)
전의(轉依, 변형, 질적 변형, 질적 전환, 산스크리트어: āśraya-parāvṛtti, āśraya-parivṛtti, 티베트어: gnas gyur pa, 영어: transformation of the basis,[1][2] changing the basis[3])는 깨달음을 증득하는 방법과 그 방법에 의해 성취되는 상태에 대한 유식유가행파의 교학으로, 유식리(唯識理) 즉 유식의 궁극적인 진리인 유식성(唯識性, vijñapti-mātratva) 즉 진여(眞如, tathatā)와 무분별지(無分別智, nirvikalpa-jñāna)를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4][5] 깨달음을 목표로 하는 불교의 한 종파로서는 당연한 말이지만, 《성유식론》 제1권에서는 전의(轉依)의 성취 즉 전식득지(轉識得智)의 성취가 유가유식행파의 목적이라고 말하고 있다.[4][5]
전의(轉依)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소의[依, basis] 즉 발동근거를 바꾼다[轉]'로, 성도(聖道) 즉 수행을 통해 번뇌에 오염된 8식을 지혜[智]로 변형(transformation)시키는 것 즉 질적 전환시키는 것을 말한다.[6] 전의는 소의이전(所依已轉) 또는 변주(變住)라고도 하는데, 소의이전(所依已轉)은 소의(所依)가 이미 변형되었다는 뜻이고 변주(變住)는 변형이 완료되어 그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는 뜻이다.[7]
전식득지
전의(轉依) 즉 식(識)이 지(智)로 변형되는 것을 달리 표현하여 전통적인 용어로 전식득지(轉識得智) 또는 전식성지(轉識成智)라고도 한다.[8][9] 전식득지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식(識)을 바꾸어서 지(智)를 득한다'이다. 전(轉)은 전변(轉變) 또는 능변현(能變現)의 뜻으로 능동적으로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고, 득(得)은 심불상응행법 가운데 하나로 획득(獲得)과 성취(成就)를 말한다. 즉, 수행자가 수행이라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자신의 8식을 지혜로 변형시키는 것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자신의 기체(基體, basis) 즉 자신의 존재 기반 자체를 허망한 상태(변계소집성)로부터 진실한 상태(원성실성)로 변형시켜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10][11]
전식득지는 구체적으로는 제8식인 아뢰야식이 대원경지(大圓鏡智)로, 제7식인 말나식이 평등성지(平等性智)로, 제6식인 의식이 묘관찰지(妙觀察智)로, 나머지 전5식이 성소작지(成所作智)로 완전히 변형되는 것을 말한다. 이 가운데 특히 대원경지는 일체종지(一切種智) 즉 우주의 모든 것을 아는 부처의 지혜[佛智] 즉 진여의 무분별지(無分別智)를 말한다. 그리고 평등성지(平等性智)는 모든 것을 알게 됢으로써 자타(自他)가 평등하며 둘이 아니라[不二]는 것을 여실히 아는 지혜로서, 이 지혜에서 발현되는 마음은 평등(平等)과 불이(不二)의 앎에서 조건 없이 일어나는 대자비심(大慈悲心), 즉 무연대비(無緣大悲: 인연이 없어도 자비를 베풀음, 즉 유위법이 아닌 무위법으로서의 자비심),[12][13][14] 즉 모든 유정의 성불을 염원하고 실천하는 모든 부처와 여래의 대자비(大慈悲)와 대비원(大悲願)의 마음이다.[15][16][17]
열반과 보리
불교 일반에서는 대체로 열반(涅槃)과 보리(菩提)와 깨달음[覺]이 같은 뜻으로 사용되지만, 유식유가행파에서는 열반(즉, 해탈)과 보리를 엄격히 구분한다.[18][19] 이 둘을 통칭하여 다소 느슨히 정의된 용어로 깨달음이라고 하며, 엄격히 완전한 깨달음 즉 구경각의 의미에서의 깨달음이라고 할 때는 유식유가행파의 용어로는 보리(菩提)가 구경각을 뜻한다. 따라서 유식유가행파의 교학에서는 전의(轉依)도 크게 번뇌장 즉 아집을 끊고 열반(즉, 해탈)을 증득할 때의 전의와 소지장 즉 법집을 끊고 보리를 증득할 때의 전의로 나뉘고, 열반(즉, 해탈)과 보리를 통칭하여 2전의과(二轉依果) 또는 2전의묘과(二轉依妙果) 또는 간단히 2전의(二轉依, 영어: two kinds of transformation of the basis[20])라 한다.[7][21][22][23][24]
후자의 전의 즉 소지장 즉 법집을 끊고 보리를 증득할 때의 전의가 곧 부처의 상태이며, 진실한 전식득지(轉識得智)의 상태이다.[10][11]
참고 문헌[편집]
고려대장경연구소 (K1340 (T.0246)).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 해제》. 2013년 4월 12일에 확인.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곽철환 (2003).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 네이버 지식백과.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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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허. 동국역경원 편집, 편집. 《불교 사전》.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성유식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614(17-510), T.1585(31-1).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영어) DDB. 《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電子佛教辭典)》. Edited by A. Charles Muller.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중국어) 구마라습 한역 (T.245).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 대정신수대장경. T8, No. 245,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중국어) 佛門網. 《佛學辭典(불학사전)》.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중국어)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중국어)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각주[편집]
1.↑ 佛門網, "轉依". 2013년 4월 21일에 확인
"轉依:
3.↑ 고려대장경연구소, "전의 轉依:". 2013년 4월 21일에 확인
"전의 轉依:
* ⓟ
* ⓣgnas gyur pa
* ⓢāśraya-parāvṛtti
* ⓔchanging the basis
1]의지하고 있는 근거를 바꿈. 번뇌를 열반으로 전환함. 아뢰야식 속의 온갖 오염된 종자를 소멸하고 청정한 종자만으로 가득 채우는 것. 아뢰야식에 있는 번뇌장의 종자를 버리고 열반을 얻으며, 소지장의 종자를 버리고 보리를 얻는 것. 전(轉)은 버리거나 새로 얻음으로써 바꾸는 것, 의(依)는 의지하고 있는 근거로서 전의 대상. 버려야 할 대상은 번뇌장과 소지장이며, 새로 얻어야 할 대상은 열반과 보리이다."
4.↑ 이동: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1권. p. T31n1585_p0001a12 - T31n1585_p0001a18. 유가유식행파의 목적
5.↑ 이동: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1권. pp. 3-4 / 583. 유가유식행파의 목적
"또한 그릇되게 자아와 법으로 집착하여 유식(唯識)15)에 미혹한 자에게 열어 보여서, 두 가지 공을 통달함으로써 유식의 궁극적인 진리[理]16)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17)
또한 유식의 궁극적인 진리에 미혹하거나 잘못 아는 자가 있다. 혹은 외부대상이 식(識)처럼 없는 것이 아니라고 집착한다.18) 혹은 내부의 식이 외부대상처럼, 존재하지 않는다고 집착한다.19) 혹은 모든 식이 작용은 다르나 자체[體]는 같다고 집착한다.20) 혹은 심왕(心王)21)에서 떠나서 별도의 심소(心所)22)는 없다고 집착한다.23) 이런 갖가지 집착들을 없애고, 유식의 심오하고 미묘한 도리 속에서 참된 지혜를 얻게 하기 위해서 이 논서를 짓는다.24)
16) 유식의 궁극적인 진리[唯識理]는 일반적으로 유식성(唯識性, vijñaptimātra- tā)으로 말해진다. 곧 진여(眞如, tathatā)와 무분별지(無分別智)이다. 이것은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의 이치를 깨쳐서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을 소멸하고, 열반(涅槃)과 보리(菩提)를 증득한 상태이다. 다시 말하면 전의(轉依)로써 전식득지(轉識得智)를 이루어, 여덟 가지 식(識)이 네 가지 지혜로 전환된 상태이다.
17) 화변(火辨, Citrabhāna) 등이 논서를 짓는 취지를 나타낸다.
18)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Sarvāsti-vāda) 등에서 주장한 삼세실유 법체항유설(三世實有法體恆有說)을 가리킨다.
19) 『성유식론술기』에 의하면 중관학파의 청변(淸辨, Bāviveka) 등의 악취공(惡取空)의 견해를 말한다.
20) 대승 중에서 일부 보살들이 주장한 8식체일설(識體一說)을 말한다.
21) 심왕(心王, citta)은 식별작용을 비롯한 정신현상의 주체로서, 구체적으로 8식(識)을 가리킨다.
22) 심소(心所, caitta)는 심왕에 수반되는 심리작용이다. 유식학에서는 모두 51가지 심소가 있으며, 심왕과 심소는 체(體)를 달리하며 상응하여 함께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23) 경량부(經量部, Sautrāntika), 설일체유부의 각천(覺天) 등의 주장으로서, 다만 수(受) · 상(想) · 사(思)의 세 가지 심소를 인정한다.
24) 호법(護法, Dharmapāla) 등이 논서를 저술하는 취지를 나타낸 것이다."
6.↑ 곽철환 2003, "전의(轉依)". 2013년 4월 21일에 확인
"전의(轉依): 산스크리트어 āśraya-parāvṛtti 산스크리트어 āśraya-parivṛtti 소의(所依)를 변혁한다는 뜻으로, 소의는 팔식(八識) 가운데 특히 아뢰야식(阿賴耶識)을 가리킴. 번뇌에 오염되어 있는 아뢰야식을 청정한 상태로 변혁함. 번뇌에 오염되어 있는 마음의 근원을 청정한 열반의 상태로 변혁함. 분별하는 마음 작용을 분별하지 않는 상태로 변화시킴. 분별하는 인식 주관의 작용을 소멸시킴."
11.↑ 이동: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3권. p. 118 / 583. 변행심소(遍行心所: 5가지)
"이 식(識)은 몇몇 심소(心所와 상응하는가?1) 항상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와 상응한다. 아뢰야식은 아득한 옛적부터 전의(轉依)2)를 이루기 이전3)까지 모든 지위에서 항상 이 다섯 가지 심소와 상응한다. 이것은 두루 작용하는 심소[遍行心所]4)이기 때문이다.
1) 이하 아뢰야식과 상응하는 5변행심소(遍行心所) 각각에 관하여 설명한다. 이것을 심소상응문(心所相應門)이라고 한다.
2) 전의(轉依, āśraya-parāvṛtti) 수행에 의해 ‘소의(所依:依他起)를 전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즉 자기 존재의 기체(基體:의타기성, 8식 혹은 持種依인 아뢰야식)를 허망한 상태(변계소집성)로부터 진실한 상태(원성실성)로 질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번뇌에 오염된 8식이 네 가지 지혜로 전환된다[轉識得智]. 곧 아뢰야식은 대원경지(大圓鏡智)로, 말나식은 평등성지(平等性智)로, 의식은 묘관찰지(妙觀察智)로, 5식은 성소작지(成所作智)로 전환된다.
3) 금강무간도(金剛無間道)를 가리킨다.
4) 변행심소(遍行心所)는 8식 모두에 언제나 상응해서 함께 작용하는 보편적인 심리작용이다. 이 심소는 선(善) · 악(惡) · 무기(無記)의 3성(性) 모두에 두루 일어나며[遍起], 3계(界) · 9지(地) 어디에서나 작용한다[一切地]. 유심무심(有心無心)의 모든 순간에 일어나고[一切時], 변행의 5심소는 언제나 반드시 함께 일어난다[一切俱]. 이에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의 다섯 가지 심소가 있다."
12.↑ 한국학중앙연구원 (2010).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관음신앙(觀音信仰)", 네이버 지식백과. 2013년 4월 12일에 확인.
"모든 경전에 나타나 있는 관세음보살의 공통점은 세상을 구하고 생명 있는 자들에게 이익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절대적 자비심인 무연대비(無緣大悲:인연이 없어도 자비를 베풀음)를 중생에게 베풀어서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권능을 실행하는 힘이 관세음보살이다. 그러므로 모든 불행한 중생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지송하고, 항상 마음속에 새겨서 공경하고 예배하면 해탈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13.↑ 구마라습 한역 T.245, 상권 〈3. 보살교화품(菩薩敎化品)〉. p. T08n0245_p0826c21 - T08n0245_p0826c28. 적멸인(寂滅忍)
14.↑ 구마라습 한역, 번역자 미상 K.19, T.245, 상권 〈3. 보살교화품(菩薩敎化品)〉. p. 14 / 50. 적멸인(寂滅忍)
"또 적멸인(寂滅忍)76)은 부처님과 보살이 같이 이 인(忍)으로써 금강삼매에 들어가느니라. 하인(下忍)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보살이라 하고, 상인(上忍)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살바야라 하느니라. 같이 제일의제(第一義諦)를 관하여 삼계의 마음의 습기[心習]와 무명(無明)을 끊어 모양이 다하면[盡相] 금강이라 하며, 모양과 모양이 없음[相無相]을 다하면 살바야라 하며, 세제(世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의 밖을 뛰어넘으면 제11지(地)의 살바야라 하느니라.
있지도 않고[非有] 없지도 않음[非無]을 깨달아 고요하고 청정하며 항상 머물러서 변하지 아니하며 진제(眞際)와 같고 법성과 같으며 무연대비(無緣大悲)77)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매 살바야의 수레를 타고 오셔서 삼계를 교화하시느니라.
76) 모든 혹(惑)을 끊어서 적정(寂靜)에 안주하는 제10지 및 불과(佛果). 여기에 상ㆍ하의 인(忍)을 나누어 하인은 보살, 상인은 일체지(一切智:佛智)라고 한다.
77) 분별할 대상이 없어진 대자비, 평등한 대자비를 말한다."
15.↑ 운허, "佛智(불지)". 2013년 4월 21일에 확인
"佛智(불지): 부처님의 지혜. 우주의 진리를 깨달은 성지(聖智). 공간적으로는 10방(方)을 다하고, 시간적으로는 3세(世)를 다하는 완전하고 원만한 지혜. 이 지혜를 근본으로 하고, 무한한 자비 동정(同情)을 일으켜 법계를 거두어 교화하는 큰 사업을 일으키니, 이 지혜가 진리를 나타낸 방면으로 보아 이(理)와 지(智)가 둘이 아닌 지혜라 하고, 또 대자비심을 일으키는 점으로 보아 비(悲)와 지(智)가 둘이 아닌 지혜라 함. 이렇게 완전 무결한 지혜를 얻은 이가 부처님. 이 불지를 2지(智)ㆍ3지ㆍ4지ㆍ5지 등으로 나눔."
16.↑ 운허, "平等性智(평등성지)". 2013년 4월 21일에 확인
"平等性智(평등성지): 5지(智)의 하나. 제7식을 전(轉)하여 얻은 무루 지혜니, 통달위(通達位)에서 그 일부분을 증득하고, 불과(佛果)에 이르러 그 전체를 증득한다. 일체 모든 법과 자기나 다른 유정들을 반연하여 평등 일여한 이성(理性)을 관하고 너와 나의 차별심을 여의어 대자대비심을 일으키며, 보살을 위하여 여러 가지로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지혜."
17.↑ 운허, "大悲願(대비원)". 2013년 4월 21일에 확인
"大悲願(대비원): 불ㆍ보살이 모든 중생을 구제하려는 대자 대비한 서원."
18.↑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5권. p. T31n1585_p0001a08 - 편집자 번역지금 이 논서를 저술하는 이유는 이공(二空: 두 가지 공)에 대해서 미혹하고 오류가 있는 사람들이 이공(二空)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공(二空)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 무거운 장애(二重障: 번뇌장과 소지장)를 끊기 위한 때문이다.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의 (두 가지) 집착으로 인해 이 두 가지 장애가 함께 일어난다. 이공(二空)을 증득하게 되면 그에 따라 이들 (두 가지) 장애도 끊어진다. (이들 두 가지) 장애를 끊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 뛰어난 과보(二勝果: 열반과 보리, 또는 해탈과 보리)를 얻기 위한 때문이다. (이것을 더 자세히 말하자면) 윤회하는 삶(生)을 계속되게 만드는 원인인 번뇌장(煩惱障)을 끊음으로써 참다운 해탈(眞解脫: 유식학에서 해탈은 열반과 같은 것이다)을 증득하게 되기 때문이며, 지혜(解: 앎 · 이해 · 지식)를 장애하는 소지장(所知障)을 끊음으로써 대보리(大菩提: 큰 깨달음 · 완전한 깨달음 · 출세간의 무분별지혜 · 무상정등보리 ·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1권. p. 2 / 583. 열반(涅槃)과 보리(菩提)
"두 가지 공을 증득하면, 그 장애도 따라서 끊어진다. 장애를 끊는 것은 두 가지 뛰어난 증과(열반 · 보리)를 얻기 위해서이다.12)
12) 아공의 도리를 깨쳐서 번뇌장을 끊으면 해탈, 즉 열반을 증득한다. 법공의 도리를 깨쳐서 소지장을 끊으면 곧 큰 깨달음[大菩提]을 성취해서 붓다가 된다."
20.↑ DDB, "二轉依". 2013년 4월 21일에 확인
"二轉依:
21.↑ 운허, "轉依(전의)". 2013년 4월 5일에 확인
"轉依(전의): 전은 전사(轉捨)ㆍ전득(轉得)의 뜻, 의는 소의(所依), 곧 제8식. 제8식은 의타기(依他起)한 것으로, 원성실성(圓成實性)의 열반을 성(性)으로 삼고, 그 속에 번뇌장(煩惱障)ㆍ소지장(所知障)과 무루(無漏)의 종자를 함장(含藏)한 것이니, 전사(轉捨)한 것은 번뇌장ㆍ소지장이고, 전득(轉得)할 것은 보리ㆍ열반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 의지할 곳인 의(意)를 의(依)라 한다. 제8식 가운데 번뇌장을 전사하고 그 실성인 열반을 전득하며, 소지장을 전사하고 그 가운데 있는 무루의 진지(眞智)를 전득하는 것을 2전의(轉依)의 묘과(妙果)라 한다."
22.↑ 운허, "二轉依果(이전의과)". 2013년 4월 21일에 확인
"二轉依果(이전의과): 이전의(二轉依). 또는 이전의묘과(二轉依妙果)라고도 함. 보리ㆍ열반의 2과를 말함. 전(轉)은 전사(轉捨)ㆍ전득(轉得)의 뜻. 의(依)는 소의(所依)라는 뜻. 곧 제8식(識). 제8식은 의타기성(依他起性)의 법으로 그 가운데 번뇌장ㆍ소지장(所知障)의 종자와 무루지(無漏智)의 종자를 포함. 또 제8식의 실성은 원성실성(圓成實性)의 열반. 그러므로 제8식의 의지하여 성도(聖道)를 닦아서 제8식 중의 번뇌장의 종자를 전사(轉捨)하고, 그 실성인 열반을 얻으며, 제8식 중의 소지장을 전사하고, 그 중의 무루지인 보리를 얻는 것. 그러므로 이 전득(轉得)한 보리와 열반을 이전의(二轉依)의 과(果)라 함. ⇒이전의묘과(二轉依妙果)"
23.↑ 운허, "二轉依妙果(이전의묘과)". 2013년 4월 21일에 확인
"二轉依妙果(이전의묘과): 제8식을 전(轉)하여 얻는 보리ㆍ열반의 2과(果)는 승묘(勝妙)한 증과이므로 묘과라 함. ⇒이전의과(二轉依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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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교리 삶의 교리 <35> 전식득지
“번뇌없는 지혜를 얻다”‘안다는 것’은 언어분별로무엇을 헤아리는 것미혹의 세계 돌이켜깨달음 세계 지향해야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할 때의 그 ‘안다는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언제 안다’는 것이며,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은 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인식론은 지식의 원천이 무엇이고, 지식의 확실성을 어떻게 확보하며,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냐 등등의 문제를 논구하는 담론입니다. 앎은 인간이 자신을 성찰하면서부터 문제되어왔지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된 것 ‘앎의 문제’는 중세를 거쳐 근세에 이르면서 데카르트에 의해 철저한 분석이 시도되었습니다. 철학의 가장 큰 문제는 내용적 측면에서 볼 때 도덕적 선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지요. 존재, 지식(앎), 가치(윤리)의 문제에 있어 어느 것이 옮고 그른가를 가리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때문에 여기에다 방법론으로서의 논리의 문제가 추가되었지요. 이에 비해 석존과 공자와 노자는 그러한 ‘말’과 ‘논리’를 매개하는 ‘앎의 문제’를 수용하면서도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의 문제’를 깊이 천착했습니다.‘안다는 것’은 언어 분별을 매개하여 무엇을 헤아린다는 의미입니다. 미혹의 세계를 벗어나 아직 자기화되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불교의 지향은 ‘미혹의 세계를 돌이키어 깨달음의 세계를 여는 것’(轉迷開悟)입니다. 유식에서는 번뇌 있는 의식(有漏識)을 전환시켜 번뇌 없는 의식(無漏智)에 상응하는 네 가지 지혜를 얻고자 합니다. 즉 진리의 발견 단계인 견도위(見道位)에 들어갈 때에 의식을 전환하여 제8식을 대원경지, 제7식을 평등성지, 제6식을 묘관찰지, 전5식을 성소작지로 바꾸는 것이지요. 이는 부처님의 세계(佛界)에 이르기 위해 유루의 8식을 닦아서 무루의 4지를 얻는 것을 말합니다. 전5식은 제6식이 전5식 중의 어느 것과도 함께 생겨나므로 오구(五俱)의식이라고 하지요. 전5식을 전환하여 얻게되는 성소작지는 범부와 이승 등을 이롭고 즐겁게 하기 위해 시방에서 3업으로 여러 가지 변화하는 일을 보여 각기 이로움과 즐거움을 얻게 하는 지혜입니다. 즉 불과에 이르러 유루의 전5식과 그 상응심품(相應心品)을 전사(轉捨)하고 얻은 지혜이지요. 제6식인 의식(了別境識)은 대상을 분별하기 때문에 ‘식’이라고 하고 의식 그 자체만으로 홀로 생겨나므로 독두(獨頭)의식이라 합니다. 여기에는 정중(定中)독두의식, 산위(散位)독두의식, 몽중(夢中)독두의식의 3종이 있지요. 이 독두의식이 모든 법의 모습을 묘관찰하여 설법을 베풀고 의혹을 끊게하는 지혜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묘’는 불가사의한 힘의 자재를 말하고, ‘관찰’은 모든 법을 살피는 것을 말하지요. 모든 법을 관찰하여 정통하고, 중생의 근기를 알아서 헤아릴 수 없는 자재한 힘을 나타내며, 공교하게 법을 설하여 갖가지 의심을 끊게 하는 지혜입니다. 제7식인 말라(思量)식은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헤아리기 때문에 의(意)라고 하지요. 평등성지는 일체의 모든 법과 자기나 다른 유정들을 반연하여 평등 일여(一如)한 이성을 관찰하고 ‘나’와 ‘남’이라는 차별심을 여의어 대자비심을 일으키며, 보살을 위해 갖가지로 교화하여 이롭게 하는 지혜입니다. 유식의 수행5위의 통달위(3위)에서 그 일부분을 증득하고, 불과에 이르러 그 전부분을 증득하지요.제8식인 아뢰야(集起)식은 경험을 축적하고 행위를 일으키므로 심(心)이라고 합니다. 성불한다는 뜻을 지닌 해성(解性)아뢰야, 18계를 반연한다는 뜻에서 과보(科報)아뢰야, 진여의 경계를 반연하여 네 가지 비방을 일으키는 염오(染汚)아뢰야라 하지요. 거울에 한 점의 티끌도 없이 삼라만상이 그대로 비추어 모자람이 없는 것과 같이 원만하고 분명한 지혜이므로 대원경지(大圓鏡智)라 합니다. 유루의 8식을 비추어서 얻는 무루의 지혜이자 불과(佛果)에서 처음으로 얻는 지혜이지요. 제9식인 아마라(無垢)식은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또는 법계체성지(法界體性智)라 합니다. 이는 만유 제법의 체성인 지혜의 몸체(智體)이지요. 진여를 체로 삼으며 진여 또는 실제라고 하고 무구식(無垢識) 또는 본각(本覺)이라 합니다. 이와같이 ‘유루식을 돌이키어 무루지를 얻는’ 전식득지는 유식의 목표이자 불교의 궁극적 지향이지요. 고영섭/동국대 강사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정의
마음 외에는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으며, 마음에 의하여 모든 것이 창조된다는 사상.
내용
선과 악도 마음이 발생하는 것이며 악을 명하고 선을 실행하는 것도 마음이 하면 범부의 무지를 정화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도 마음이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유식사상은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등 육식에 의하여 업력이 조성된다고 하는 원시불교와 소승불교에도 있다.
그런데 소승불교는 심·의·식(心意識)으로 육식(六識)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심은 모든 업력을 보존하였다가 다른 과보를 받게 하는 마음이며, 의는 모든 것을 생각하는 마음이며, 식은 모든 것을 인식하는 마음을 뜻한다. 그러나 이들 심, 의, 식은 그 체성(體性:근본 성품)이 일체(一體)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대승불교에서는 심의식을 팔식(八識)으로 나누고 팔식의 심체(心體:마음을 이루는 근본 성질)는 각각 다르다고 하였다.
신라의 고승인 원측법사의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에 의하면 대승불교를 주창한 용수보살은 육식 외에 말나식(末那識:제7식)과 아뢰야식(阿賴耶識:제8식)의 사상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 뒤 유식사상을 체계화한 무착(無着)은 아뢰야식(阿賴耶識) 등을 팔식으로 확정하여 인간의 심체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유식사상의 역사와 사상은 다음과 같다.
대승불교를 완성하였다고 할 수 있는 무착논사(無着論師)가 4세기경에 정신세계를 좀더 진리롭게 설명하고자 유식사상을 성립시켰다. 무착은 ≪해심밀경 解深密經≫과 ≪십지경 十地經≫ 등 대승경전의 유심사상(唯心思想: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며 유일의 존재라는 사상)을 종합하여, 모든 것은 마음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고 마음에 의하여 현상계가 창조되고 실현된다는 유식사상을 창립한 것이다. 역사적인 인물인 무착보살이 유식사상을 전수하게 된 유래는 다음과 같다.
무착이 신봉한 미륵보살(彌勒菩薩)은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분별유가론(分別瑜伽論),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변중변론(辨中邊論), 금강반야바라밀경론(金剛般若波羅密經論) 등을 설하였다. 무착은 이들 논전을 편집하여 간행하였으며 후세에 유식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뜻에서 오대부론(五大部論)이라고 하였다.
무착보살은 ≪해심밀경≫과 ≪십지경≫과 ≪아비달마경 阿毘達磨經≫의 경전과 미륵이 설한 오대부론 등의 유식사상을 다시 체계화하였다. 그가 저술한 서적들은 ≪섭대승론 攝大乘論≫과 ≪현양성교론 顯揚聖敎論≫과 ≪아비달마집론 阿毘達磨集論≫ 등 많은 저술이 있으며 이들 저술은 유식학연구에 중요하다.
이와 같이 여러 대승경전과 미륵과 무착의 논전에 나타난 유식사상을 초기유식학(初期唯識學)이라고 한다. 초기유식학을 다시 크게 발전시킨 학자는 무착의 친동생인 세친논사(世親論師)이다. 세친은 처음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라는 소승불교의 종파에 귀의하여 ≪아비달마구사론 阿毘達磨俱舍論≫이라는 유명한 소승논전을 저술하여 소승불교를 포교하다가 친형인 무착보살의 권유에 의하여 대승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다.
세친은 곧 미륵보살과 무착보살의 저술을 연구하고 유식학을 체계화하는 데 공이 컸다. 그의 유식학을 조직유식학(組織唯識學)이라고 칭한다. 조직유식학은 팔식의 심체와 심체의 작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이들 정신계와 물질계의 인연관계도 체계적으로 설명한 것을 말한다. 이러한 세친이 저술한 ≪유식삼십론 唯識三十論≫과 ≪대승백법명문롬 大乘百法明門論≫에 잘 나타나고 있다.
≪유식삼십론≫은 모든 유식학을 삼십송(三十頌)에 집약하여 체계화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또 ≪대승백법명문론≫은 모든 유식사상을 백 가지 단어에 포함시켜 체계화한 논전을 말한다. 이와 같은 ≪유식삼십론≫과 ≪대승백법명문론≫은 모든 유식학을 잘 정돈하여 축소하였기 때문에 몇 사람의 학자만이 그 뜻을 알 수 있었고 그 밖에 일반인은 알 수 없었다. 그리하여 안혜논사(安慧論師)와 호법논사(護法論師) 등 28명의 학자들이 해설서를 간행하였으며, 그 가운데 열 사람의 해설서가 가장 훌륭하였다.
그 열사람은 난타(難陀), 친승(親勝), 화변(火辨), 덕혜(德惠), 안혜(安慧), 호법(護法), 정월(淨月), 최승자(最勝子), 승우(勝友), 지월(智月) 등을 말하며 이들은 각각 열 권씩 저술하였다. 이들은 유식학의 대학자라는 뜻에서 후세에 십대논사(十大論師)라고 부르게 되었다. 십대논사들이 유식학을 크게 발전시켰다고 해서 이 시대를 유식발전기(唯識發展期)라고 한다.
인도의 유식학은 한국과 중국으로 전래되어 더욱 발전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중국에는 보리유지(菩提流支)가 전한 지론종(地論宗)과 진제삼장(眞諦三臟)이 전한 섭론종(攝論宗)의 유식학이 있다. 그리고 중국의 현장법사(玄裝法師:600∼664)가 인도에 유학하여 나란타사(那爛陀寺)에서 계현논사(戒賢論師)의 지도를 받으며 유식학을 전공하였다. 이곳에서 유식학에 관한 서적들을 수집하여 귀국한 후 이들은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이 가운데 십대논사가 저술한 논전들을 열 권으로 축소하여 번역하고 이름을 ≪성유식론 成唯識論≫이라고 하였다. 이 ≪성유식론≫과 함께 ≪해심밀경≫과 ≪유가사지론≫과 ≪섭대승론≫ 등이 한역되면서 중국불교를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법상종(法相宗)이라는 종파가 성립하게 되었다. 법상종의 종조는 사실상 현장법사이지만 유식학이 제일의 사상이라는 교판사상을 논리화하여 종파를 조직한 규기법사(窺基法師:632∼683)가 제1대조가 되었다.
이와 같이 중국에는 유식학을 이념으로 한 지론종과 섭론종, 그리고 법상종이 생겼다. 이에 대하여 한국의 유식학은 원광법사(圓光法師)가 섭론종을 수학하였고, 다음으로 신라의 원측법사(圓測法師:613∼696)가 종합적으로 연구하였다. 원측법사는 15세에 중국에 유학하여 처음에는 섭론종의 유식학을 전공하였고 그 밖에 대승과 소승의 교학을 연구하고 어학도 뛰어나 6개 국어를 잘 하였다고 한다.
원측법사는 이어서 현장법사가 도입한 법상종의 유식학을 연구하여 성유식론과 유가사지론 등에 대한 연구서도 규기법사보다도 먼저 발표하였다. 이와 같이 원측법사는 규기법사를 비롯한 중국계의 학자들과는 달리 모든 유식학을 종합하여 일승(一乘)적인 사상을 건립하였다.
이러한 학문의 특성 때문에 중국에 유학한 학승은 물론 중국승려들까지도 원측법사로 부터 사사를 받았다. 원측은 서명사에 오래 주석하였기 때문에 원측의 호를 서명(西明)이라 하였으며, 서명을 추종한 학자들은 서명학파 또는 신라의 유식종이라고 칭하였다. 원측법사의 직계제자로는 도증(道證)이 있으며 도증은 원측의 학문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성유식론요집 成唯識論要集≫을 저술하여 중국계 학자들의 비판을 타파하였다.
신라의 신방(神防)법사는 현장법사의 번역사업에 참여하였고 승장(勝莊)법사와 자선(慈善)법사도 매우 훌륭한 유식학자였다. 국내에서 유식학을 전공한 학자로는 제일 먼저 원효(元曉)대사를 들 수 있다. 원효대사는 ≪해심밀경 解深密經≫과 ≪성유식론≫과 ≪유가사지론≫ 등 많은 유식학의 경전과 논전을 연구하여 주소(註疏)를 썼다. 현재 남아있는 저술 가운데 가장 먼저 저술된 것으로 보이는 ≪이장의 二障義≫를 비롯하여 ≪유가사지론소≫와 ≪성유식론소≫ 등이 있다.
원효는 ≪기신론소≫와 ≪금강삼매경론≫ 등 현존의 저술에 유식학을 가장 많이 인용하고 있다. 원효는 진제(眞諦)가 전한 아마라식(阿摩羅識)설과 현장(玄奘)이 전한 아뢰야식(阿賴耶識)설을 함께 인용한 것으로 봐서 섭론종과 법상종의 유식학을 모두 통달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수경(順璟)법사의 인명학(因明學)은 중국에서도 유명할 만큼 뛰어났고, 경흥(璟興)과 둔윤(遁倫)과 태현(太賢) 등의 유식학도 중국과 일본에까지 크게 영향을 끼쳤다.
현재 남아 있는 원측법사의 ≪해심밀경소 解深密經疏≫와 둔윤법사의 ≪유가론기 瑜伽論記≫ 등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저술이다. 이들 저술에 의하여 신라의 유식학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고 현재도 일본과 중국의 불교학자들은 이들 저술을 연구하여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유식학은 신라의 고승인 지통(智通)과 지달(智達)과 지봉(智鳳) 등 법사들이 일본에 건너가 전달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 유식학은 동양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저술을 통계하여 보더라도 일본은 물론 중국보다도 더 많았다. 이러한 학풍은 고려시대까지 이어졌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쇠퇴하였다.
경전에 “마음이 청정하면 중생도 청정하고 마음이 고뇌하면 중생도 고뇌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마음이 생기면 여러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여러 법이 멸한다.”라고 한 말들은 모두 유식사상과 통한다. 그런데 보다 대승적인 유심사상이면서 유식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화엄경의 유심사상이다.
화엄경에 의하면 “마음은 미술가와 공예사와 같이 각종의 오온(五蘊)을 만들어 낸다.”라는 말이 있다. 오온은 몸과 마음의 체성과 작용이 집합하여 이루어진 인격체를 뜻한다. 이와 같은 인격체는 마음에 의하여 만들어진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 된다[心爲法本]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유식사상은 ≪해심밀경≫과 ≪유가사지론≫ 등의 만법유식(萬法唯識)사상과 ≪화엄경≫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사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성유식론에 의하면 유(唯)는 마음 밖에 다른 경계가 있다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고 식(識)은 오직 심체뿐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경지를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고 한다. 유식무경은 오직 마음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며, 다른 것은 마음에 의지하여 존재하여 마음 밖에 어떤 것도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마음의 소유자로서 모든 것은 오관을 통하여 마음에 나타나고, 마음에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이러한 정신계를 유식(唯識)이라고 한다.
옛부터 유식의 뜻을 설명할 때 마음내용을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여 왔다. 이를 사분설(四分說)이라고 하며 그 사분은 상분(相分), 견분(見分), 자증분(自證分), 증자증분( 自證分) 등을 말한다. 이러한 사분은 마음이 어떤 대상을 인식할 때 식 자체가 대상을 변화하여 인식한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식은 주관과 객관을 변화시켜서 인식하게 된다.
이와 같이 마음 위에 나타난 모든 모습을 경상(境相)이라 하며 이를 상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 모습을 상대하여 인식하는 것을 견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 상분과 견분은 자증분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시계를 종합적으로 관찰하여 보면 모든 물질계와 정신계가 마음에 의하여 인식되고, 나아가서 물질계도 마음을 떠나서 따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며 이로써 유식사상이 성립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유식학에서는 마음의 체성을 유식실성이라고 한다. 유식의 실성은 진실하고 변화가 없는 진여성(眞如性)을 뜻한다. 마음의 실성은 영원히 변하지 않기 때문에 시작도 없고 종말도 없으면서 마음속을 빛나게 하는 지혜를 발생한다.
이러한 지혜와 깨달음을 유지하는 것을 불성(佛性)이라 하며 불성에서 발생하는 지혜를 사지(四智)라고 한다. 사지는 성소작지(成所作智)와 묘관찰지(妙觀察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대원경지(大圓鏡智) 등 네 가지 지혜를 말한다.
① 성소작지는 모든 중생을 관찰하며 근기에 따라 이익을 주는 지혜이다. 이 지혜는 본심에서 발생하는 원력(願力)에 따라 이타적인 자비의 사업을 성취하는 것이다.
② 묘관찰지는 모든 물질계와 정신계의 자체에서 나타내는 자상(自相)과 서로 의존하고 상부상조하며 공동의 모습을 이루고 있는 공상(共相)을 무애자재하게 관찰하는 지혜이다. 이 지혜가 있는 수행인은 공덕과 보배를 대중들에게 베풀며 큰 진리를 가르쳐서 모든 의심을 없애주고 큰 이익과 즐거움을 베풀어주게 된다.
③ 평등성지는 일체의 법과 자타의 유정들을 모두 평등하게 이익을 주는 대자대비의 지혜이다.
④ 대원경지는 마치 크고 둥근 거울에 모든 사물의 영상이 비치듯이 모든 진리를 환하게 관찰하는 지혜이다. 이 지혜는 모든 번뇌가 정화되어 발생하는 지혜로서 관찰하기 어려운 미세한 진리의 모습을 능히 관찰한다. 그러므로 이 지혜는 이타적인 지혜[菩提]로서 매우 미세하여 알기 어렵다. 그리고 모습[境相]에 우매하지 않고, 체성과 형상이 모두 청정하며 원만한 덕성을 지니게 되며 이러한 공덕을 중생과 보살들에게 베풀어주는 지혜이다.
이상과 같이 마음의 실성은 네 가지 지혜를 발생하며 자비를 실현하게 된다. 그리고 실성은 사열반(四涅槃)을 실현한다. 사열반은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과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과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과 자성청정열반(自性淸淨涅槃)을 말한다.
첫째, 유여의열반은 마음의 번뇌가 거의 정화되었으나 아직도 미세한 번뇌가 남아 있지만 고통이 없는 열반을 실현한다. 둘째, 무여의열반은 번뇌가 완전하게 정화되어 열반이 구현된 것을 말한다. 셋째, 무주처열반은 어떠한 거주처에서든지 항상 안정과 즐거움을 실현하는 열반을 뜻한다. 넷째, 자성청정열반은 본래 자성이 청정하고 진실한 진리를 간단없이 보존하고 있는 열반성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유식의 실성은 사지와 사열반을 실현하는 것이며 진여의 본성이기도 한다. 이 경지는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을 실현하는 진리의 세계이다. 즉 아공은 아집이 없는 무아(無我)를 실현하는 것이고, 법공은 모든 현상계가 인연의 집합체로서 그 인연의 법체가 본래 공한 것임을 증득한 경지이다. 이는 편견의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이 없는 절대평등한 일진법계(一眞法系)를 실현하는 경지를 뜻한다.
이와 같이 유식실성은 진여와 법계 또는 실제(實際), 불성(佛性), 공(空), 승의(勝義), 법성(法性) 등 여러 가지로 표현하며 이는 하나의 진리를 이 그 이치에 따라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진리는 마음 외에 따로 있을 수 없으며 마음의 실성에 의하여 실현되는 것을 유식이라고 한다.
유식학은 인간의 마음을 심성과 심상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 보통이다. 심성은 모습이 없어 이름을 칭하기가 어렵지만 방편으로 진여 또는 불성 및 공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이 진여를 바탕으로 하여 마음의 모습을 이루고 있는 것을 심상(心相)이라고 한다. 심성은 진제(眞諦)로서 평등하여 차별이 없지만 심상은 속제(俗諦)로서 차별이 있으며 차별의 마음을 나누어 설명하게 된다.
그러므로 유식학에서는 심상의 체성을 팔 종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며 이것이 팔식(八識)설이다. 이는 심의식(心意識)을 분류한 것으로서 심(心)은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 하고 의(意)는 말나식(末那識)이라 하며 식(識)은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등 6종의 심체로 나누어 설명하며 이들 심체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아뢰아식
아뢰야식은 모든 업력을 함장(含藏)하고 보존한다는 뜻으로 장식(藏識)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뢰야식은 생명을 보존하고 유지시키는 마음이라는 뜻에서 아다나식(阿陀那識 -집지식執持識)이라는 별명을 갖는다. 그리고 선업과 악업의 힘에 따라 과보를 바꾸어 받아 출생하는 마음이라는 뜻에서 이숙식(異熟識)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아뢰야식은 다양한 성능을 갖고 있으며 이 식이 작용하는 모습을 자상(自相), 과상(果相), 인상(因相) 등 삼상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들 삼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상에는 능장(能藏), 소장(所藏), 집장(執藏)의 뜻이 있다. 능장은 눈, 귀, 코, 혀, 몸, 뜻 등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조성된 업력을 능동적으로 보존한다는 뜻이고, 소장은 능동적으로 훈습하고 있는 업력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보존하는 것을 말하며, 집장은 말나식에 의하여 집착되어진 것을 뜻한다.
말나식에 의하여 집착되는 동안을 윤회의 기간으로 하며 그 집착이 없어지면 윤회에서 해탈하게 된다. 왜냐하면 집착하는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수행에 의하여 정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상은 아뢰야식이 업력에 의하여 태생(胎生)과 난생(卵生)과 화생(化生) 등의 출생으로 과보를 받는 것을 뜻한다. 과보는 개인이 수용하는 사회적인 과보가 있고 여타 생명체와 함께 수용하는 사회적인 과보가 있다. 예를 들면 자연계는 공동으로 수용하는 공동의 과보라고 할 수 있다.
인상은 아뢰야식 내에 보존된 업인을 뜻한다. 중생각자가 조성한 업력은 아뢰야식에 보존되었다가 인연을 만나면 정신과 육체의 행동을 발생하는 것이며 자신의 몸과 자신이 사는 세계까지도 창조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뢰야식을 종자식(種子識)이라고도 칭한다. 이와 같은 아뢰야식의 삼상(三相)을 현재의 생활에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행동은 아뢰야식 내의 업인[因]에 의하여 발생한 결과이며 동시에 그 행동은 업인이 되어서 아뢰야식 안에 보존된다. 그리고 보존된 업인은 미래에 출행할 때 개인업[不共業]이 있고 여타의 생명체와 함께 수용하는 공동의 업[共業]이 있다. 이러한 업력이 개인과 공동의 과보를 받게 하며 모든 세계를 창조하는 원인이 된다는 뜻에서 아뢰야연기(阿賴耶緣起)라고 칭한다.
(2) 말나식(末那識)
말나는 의(意)의 뜻이 있으며 의는 사량(思量)의 뜻이다. 사(思)는 인위적으로 선과 악을 조작(造作)한다는 뜻이며 량(量)은 인식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말나식은 아뢰야식을 상대하여 무아(無我)의 진리를 망각하고 아상(我相)을 조작하여 집착하는 인식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말나식을 사량식이라고도 하며 사량식은 아치(我痴),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애(我愛) 등의 번뇌를 지속적으로 야기하게 된다.
아치는 무아에 대한 망각을 뜻하고, 아견은 자아의 실체가 있다고 집착하는 망견을 뜻하며, 아만은 자신만이 제일이라는 생각을 뜻하고, 아애는 자신을 집착하고 애착하는 번뇌를 말한다. 이들 네 가지 번뇌는 모든 번뇌의 근원이 되며 여타의 식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근본번뇌라 하고 말나식을 번뇌의 발생처로서 윤회의 근본이라고 말한다.
(3) 의식(意識)
의식은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생각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마음을 뜻한다. 현재는 눈, 귀, 혀, 몸을 통하여 외부의 색깔, 소리, 냄새, 맛, 촉감 등을 인식할 때 선과 악을 결정하며 모든 생각을 결정하여 정신작용을 나타내고 몸의 행동도 결정하는 마음이다. 의식은 생각이 깊고 넓으며 모든 것을 반연하며 생각한다는 뜻에서 광연의식(廣緣意識)이라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의식은 별명이 많으며 그 별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분별하고 결정짓는 의식이라는 뜻에서 분별의식(分別意識)이라 한다.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등 오식(五識)과 함께 외부의 색깔, 소리, 냄새, 맛, 촉감 등의 물질계를 분별한다는 뜻에서 오구의식(五具意識)이라 한다. 산란하고 고통스러우며 가치를 판단하지 못하고 어지러운 생각을 발생하며 정신과 육체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므로 이를 산란의식(散亂意識)이라 한다.
잠잘 때 꿈속에서 온갖 환상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과거세에 경험하고 체험했던 것이 아뢰야식에 보존되었다가 의식을 통하여 발생한다고 해서 몽중의식(夢中意識)이라 한다. 잡념과 번뇌망상이 : 마음이 항상 안정되고 지혜로우며 모든 것을 진리답게/로웁게 판단하는 의식이라는 뜻에서 정중의식(定中意識)이라고 한다. 정직한 의식생활은 정중의식의 생활이며 정중의식에는 마음이 억압과 고통이 없으며 진리로운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지속하게 된다.
(4) 오식(五識)
오식은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등 다섯 가지 마음을 뜻한다. 안식은 외부의 색깔을 대상[色境]으로 하여 인식하는 마음이고, 이식은 소리를 대상[聲境]으로 하여 인식하며, 비식은 냄새를 대상[香境]으로 하여 인식하고, 설식은 맛을 대상[味境]으로 하여 인식하며, 신식은 접촉한 것을 대상으로 인식하는 마음을 말한다.
이와 같이 오식은 외부의 물질계를 주로 접촉하고 인식하는 마음으로서 물질의 업인을 조성하는 정신을 뜻한다. 이들 오식은 각각 선악과 고락을 인식하지만 분별력은 뚜렷하지 못하고 의식의 도움을 받아 인식하게 된다. 이들 팔식설은 법상종(法相宗)의 학설이고 섭론종(攝論宗)에서는 청정심에 해당하는 아마라식(阿摩羅識)을 더하여 구식설(九識說)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법상종은 아마라식은 중생들이 본래 지니고 있는 진여심(眞如心)에 해당하는 정분(淨分)에 불과하기 때문에 따로 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원측법사는 팔식설에 동조하였고 원효대사는 아마라식을 가끔 인용하였다.
마음은 본래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함께 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몸에 의지하여 활동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몸이 없는 마음이 있을 수 없고 마음이 없는 육체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마음의 의지처를 좀더 자세하게 말하면 안식은 안근(眼根)에 의지하여 색깔을 인식한다. 그리고 이식은 이근(耳根)에 의지하고, 비식은 비근(鼻根)에 의지하며, 설식은 설근(舌根)에 의지하고, 신식은 신근(身根)에 의지한다.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은 육체의 구조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 육체인 것이다. 근(根)은 의지처의 뜻이며 인간의 모습을 장엄한다는 뜻도 있으나 마음은 몸에 의지하고 몸은 마음에 의지하며 인간의 삶을 유지시키는 과보인 것이다. 만약 아뢰야식이 몸에서 벗어난다면 곧 죽음이라고 한다.
다음 의식의 의지처를 의근(意根)이라고 하며 이 의근은 말나식(末那識)을 뜻한다. 의근이라는 명칭은 원시불교와 소승불교에서도 사용하여 왔으나 그때는 전념(前念)은 후념(後念)의 의지처가 되기 때문에 전념을 의근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소승의 의근설은 의식불명이 되었을 때의 의근의 뜻이 없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대승불교에서는 졸도하거나 의식불명의 경우에도 의식이 단절하지 않고 항상 작용을 유지하는 말나식을 의근으로 정하고, 의식의 의지처라는 사상을 확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뢰야식도 그 체성이 단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나식과 서로 의지하며 부단하게 유지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식이 간혹 불명하고 작용이 단절된다고 하더라도 말나식인 의근에 의지하여 있다가 다시 의식이 소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의근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다음 팔식이 서로 의지하면서도 공동으로 의지하는 공의(共依)와 단독으로 의지하는 불공의(不共依)의 뜻이 있다. 불공의는 안근은 오직 안근에만 의지하고 내지 신식은 신근에만 의지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안식 내지 신식 등 오식은 의식에게 함께 의지하게 되며 외부의 사물을 인식할 때 의식으로부터 분별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의식을 오식에게 분별의 도움을 주는 의지처라고 해서 분별의(分別依)라고 칭한다.
말나식은 의식과 오식 등 육식(六識)에게 부정과 청정의 영향을 끼치는 데 많은 역할을 한다고 해서 염정의(染淨依)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말나식이 번뇌를 야기하고 있는 한 육식도 번뇌가 있게 되고 말나식이 청정하면 육식도 청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염정의라고 한다.
아뢰야식은 앞에서 말한 모든 식의 근본적인 의지처가 되는 것이라고 해서 근본의(根本依)라고 한다. 그러므로 아뢰야식을 모든 식의 뿌리가 된다고 해서 근본식(根本識)이라고 하며 다른 칠식[七轉識]은 아뢰야식에 의거하여 가지처럼 발생하여 활동하는 마음이라고 해서 지말식(枝末識)이라고 한다.
이상과 같이 모든 마음은 서로 의지하고 또 몸과도 의지하면서 물질계를 반연하게 된다. 그 반연처는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하지만 그 내용을 구분하면 인연(因緣), 등무간연(等無間緣), 소연연(所緣緣), 증상연(增上緣)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들 사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인연은 아뢰야식 내의 업인을 반연하는 것을 말하고, ② 등무간연은 한 마음이 간단없이 앞의 생각과 뒷생각이 인연이 되는 것을 말하며, ③ 소연연은 마음이 번연하여 인식하는 대상을 뜻하며, ④ 증상연은 마음과 관계되는 모든 것은 뜻하며 동시에 마음의 활동을 도와주는 모든 것을 뜻한다. 이상과 같은 사연(四緣)은 마음과 관계되는 인연관계를 뜻하며 마음의 활동은 잘 도와주는 인연관계이며 마음을 중심한 유식의 뜻을 더해주고 있다.
심체는 위에서 설명한 팔식의 체성을 뜻한다. 이들 팔식설은 법상종(法相宗)에서 말하는 심체설이고 이에 대하여 섭론종(攝論宗)은 아마라식(阿摩羅識)을 더하여 구식설(九識說)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법상종은 아마라식은 마음의 정분(淨分)인 청정한 진여성에 해당한 것이므로 따로 정할 필요가 없으며 중생들의 마음인 팔식만을 설명하면 된다고 주장하였다.
팔식의 체성에서는 51종의 작용이 발생한다고 한다. 심체와 심작용은 불가분이한 세 가지 관계가 있다. 첫째 심작용은 항상 심체에 의거하여 야기하는 것이며, 둘째 심작용은 심체와 더불어 상응(相應)하며, 셋째 심작용은 심체에 소속되는 관계가 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뜻이 있기 때문에 심체를 왕(王)에 비유하여 심왕(心王)이라 칭하고 심작용은 왕에 소속된 신하(臣下)에 비유하여 심왕소유법(心王所有法)이라고 한다.
심체는 왕처럼 결정권이 있으며 심소는 심체의 결정에 의하여 선과 악을 발생하게 된다. 이와 같이 발생하는 심작용의 수는 헤아릴 수 없으나 그 가운데 긴요한 것만을 간추려서 51종으로 정하고 있다. 51종을 내용별로 크게 나누면 변행심소(遍行心所), 별경심소(別境心所), 선심소(善心所), 번뇌심소(煩惱心所),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 부정심소(不定心所) 등으로 나누어진다. 이들을 육위심소(六位心所)라고 하며 이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변행심소는 모든 식(識)에 두루 나타나는 마음의 작용이라는 뜻이며 여기에는 다섯 가지 작용이 있다. 다섯 가지는 모든 인식대상을 접촉[觸]하고, 접촉할 때 경각심[作意]을 야기하고, 고와 락의 감수성[受]을 야기하며, 마음속의 모습을 생각[想]하며, 선과 악을 조작하는 생각[思]을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② 별경심소는 마음의 내용이 각각 다른 경계를 나타내는 작용을 뜻하며 여기에도 다섯가지가 있다. 그 다섯 가지는 희망을 갖고자 하는 것[欲], 결정적이고 수승한 이해력을 발생하는 것[勝解], 마음에 확실하게 기록해 두는 생각[念], 마음을 통일하고 안정을 유지하는 선정[定], 모든 것을 지혜롭게 관찰하는 것[智慧] 등을 말한다.
③ 선심소는 착한마음에서 작용하는 것을 뜻하며 11종의 작용이 있다.
11종의 선작용은 진리를 확신하는 것[信], 양심에 어긋난 일을 했을 때 곧 마음속으로 반성하는 것[慚], 사회와 대중들에게 잘못을 했을 때 곧 참회하는 것[愧], 비진리적 탐욕을 내지 않는 것[無貪], 성내지 않는 것[無瞋], 정신과 물질 등 모든 것을 지혜롭게 아는 것[無痴], 선행에 근면하는 것[勤], 마음을 가볍고 편안하게 하는 것[輕安], 진리의 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놀지 않는 것[不放逸], 마음을 평등하고 정직하게 하는 것[行捨], 모든 생명체를 보호하고 해롭게 하지 않는 것[不害] 등이다.
이러한 11종의 선심소는 금생에 행복을 가져다 주고 내생에는 극락세계에 인도하는 업력을 많이 조성하는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것이 유식학의 수행사상이다.
④ 번뇌심소는 번뇌는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요란하게 하는 번요(煩擾)의 뜻이며 마음을 고뇌케 하는 고뇌의 뜻도 있다. 번뇌는 여러 작용을 나타내므로 별명이 많다.
첫째로 지혜로운 마음[四智]를 방해하고 덮는다는 뜻에서 부장(覆障)이라고 하며, 둘째 번뇌는 안정된 마음을 파괴하고 구속하며 결박한다고 해서 결박(結縛)이라 하고, 셋째 번뇌는 죄를 짓고 윤회하게 하며 삼계(三界)의 악도에 출생하게 하고 설사 선도에 출생하더라도 곧 그 생명체를 구속하는 작용을 한다고 해서 계속(繫屬)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번뇌는 말나식과 의식이 중심이 되어 발생하게 되며 여기에는 뿌리가 되는 번뇌를 근본번뇌(根本煩惱)라 하고, 근본번뇌에 의하여 발생하는 번뇌를 지말번뇌(枝末煩惱)라고 한다. 근본번뇌는 여섯 가지가 있는데 탐(貪), 진(瞋), 치(痴), 만(慢), 의(疑), 악견(惡見) 등을 말한다.
탐은 정신과 물질의 모습이 인연의 집합인 것을 망각하고 자신과 사물에 대해서 탐욕을 갖는 것, 진은 성내는 것을 뜻하고, 치는 정신과 물질에 대한 무지를 뜻하며, 만은 자신만을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의는 진리를 의심하고 자신과 남을 의심하는 것이며, 악견은 인과법과 윤회의 법 그리고 무상의 도리와 인연법을 모르는 망견을 뜻한다.
⑤ 수번뇌심소는 위에서 말한 근본번뇌에서 파생된 지말적인 번뇌를 말한다. 이 수번뇌심소는 20종의 번뇌가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분을 참지 못하고 성내는 것[忿], 원한을 품고 한탄하는 것[恨], 자신의 죄를 숨기는 것[覆], 한탄하고 고뇌하는 것[惱], 자신의 명리만을 생각하고 남의 영광을 질투하는 것[疾嫉], 재물과 진리를 아끼는 것[慳], 영리와 명예를 얻기 위하여 속이는 것[誑], 아첨하는 것[諂], 남을 해롭게 하는 것[害], 교만하는 것[憍], 자신의 부덕을 생각하지 않고 어질고 착한 것을 가볍게 여기며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것[無慚]이 있다.
그리고 세상의 질서를 지키지 않고 세간의 잘못을 범하고 참회하지 않은 것[無愧], 마음이 흔들리는 것[掉拳], 마음이 침체되는 것[惛沈], 진리와 덕성과 인과 등을 믿지 않은 것[不信], 선법을 실천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는 것[懈], 선행을 실천하지 않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放逸], 모든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失念], 마음이 산란한 것[散亂], 모든 것을 바로 알지 못하는 것[不正知] 등이다.
이와 같은 20종의 수번뇌는 근면하게 수행하면 곧 정화될 수 있는 번뇌들이며 6종의 근본번뇌는 보살의 수행을 성불할 때까지 부단히 하여야 정화될 수 있는 것이다.
⑥ 부정심소는 일정하지 않은 심작용을 말하며 이 부정심소는 네 가지가 있다. 혐오의 나쁜 생각을 갖고 회상하는 것[悔], 마음을 어둡게 하고 몸을 무겁게 하는 것[眠], 마음이 언어의 모습과 같은 영상을 따라 추종하고 찾아 헤매는 것[尋], 물질과 정신을 대상으로 보다 섬세하게 관찰하고 살피면서도 안정되지 못하는 것[伺]을 말한다.
이상과 같이 유식학에서는 마음의 작용을 모두 51종으로 해석하고 있다. 51종의 작용은 팔식이 모두 야기하는 것이 아니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뢰야식은 다섯 가지 변행심소만을 야기하고 그 성질은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이다. 무부무기성은 아뢰야식 자체에는 번뇌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지혜와 불성을 장애하는 성질이 아닌 것이며, 선과 악의 성질이 아닌 무기(無記)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아뢰야식은 선업과 악업을 보존할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말나식은 변행심소 5종과 별경심소 가운데 혜(慧)심소와 수번뇌심소 가운데 혼침, 도거, 불신, 해태, 빙일, 실념, 산란, 부정지 등 8종의 심소와 아치, 아견, 아마, 아애 등 4종의 심소 등 18종의 심작용만을 야기한다. 이 말나식의 성직은 유부무기성(有覆無記性)이라고 하는바 그것은 말나식의 번뇌가 항상 지혜를 장애하는 번뇌(所知障)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아(無我)의 진리를 망각한 아집(我執)과 진리의 법칙을 망각한 법집(法執)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불성에 발생하는 지혜를 부장(覆障)하는 번뇌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부장의 번뇌를 야기한다고 하더라도 그 번뇌가 미세하기 때문에 악업을 조성할 만큼 강한 작용은 아니라는 뜻에서 무기성이라고 한다.
의식은 51종의 심작용을 모두 야기하며 그 성질은 선성과 악성 그리고 무기성 등 삼성(三性)의 작용을 항상 야기한다고 해서 선악무기성(善惡無記性)이라고 한다.
오식은 51종의 심작용 가운데서 변행과 별경 등 34종의 작용만을 야기하며 그 성질은 선행과 악행 그리고 무기행 등 삼성의 행동을 야기한다.
이상으로 심체와 심작용의 내용을 요약하여 살펴보았다. 모든 현상계는 이들 심체와 심작용에 의거하여 조성되며 인간의 정신생활도 이들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물질보다도 정신계가 우선하며 심작용보다도 심체가 우선하다는 뜻에서 유식이라는 말이 있게 되며 유식사상에 의거한 현상계의 정법순서를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첫째 심체[心體], 둘째 심작용[心所], 셋째 물질[色], 넷째 정신도 아니고 물질도 아닌 것[色心不相應行], 다섯째 불변의 진리[無爲] 등 오법(五法)의 순으로 정하고 있다. 이는 마음이 모든 것보다 우선하고 물질은 마음과 관계를 맺고 하나의 진리를 이루고는 있지만 인식의 대상이므로 오근(五根)과 오경(五境) 그리고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 등 11종을 합쳐서 세 번째에 배정하였다.
부상응행법(不相應行法)은 24종으로서 무상(無常)한 것과 윤회의 생명체 등 정신과 물질의 틈새에 형성된 법칙이므로 네 번째에 배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위법(無爲法)은 6종으로서 정신과 물질의 본바탕인 진여성을 뜻하며, 진여성은 시작도 없고 종말도 없으며 생과 멸이 없는 진리이기 때문에 만법의 진리로서 다섯 번째에 배정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전사위법(前四位法)은 인연으로 형성된 변천의 현상계[有爲法]을 뜻하고 제오위의 무위법은 본래 청정하며 불변의 진리를 뜻한다. 다시 말하면 인연법으로 이루어진 현상계를 의타기성(依他起性)이라 하고 의타기성의 본성은 변화하지 않고 영원한 진리의 체성을 구족하고 있다는 뜻에서 원성실성(圓成實性)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은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은 지리로서 함께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범부들은 이를 망각하고 무명(無明)과 탐진치(貪瞋痴) 등 번뇌를 야기하여 악업을 짓게 되면 이를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이라고 한다. 변계소집성은 번뇌를 뜻하며 번뇌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수행하면 없어질 수 있다.
유식사상은 팔식(八識)을 정화하여 지혜를 얻게 하는 데 있다. 이를 전식득지(轉識得智)라고 한다. 지혜의 증득은 안이비설신 등 오식이 정화되면 성소작지(成所作智)를 증득하고, 의식이 정화되면 묘관찰지(妙觀察智)를 증득하며, 말나식이 정화되면 평등성지(平等性智)를 증득하고, 아뢰야식이 정화되면 대원경지(大圓鏡智)를 증득하게 된다.
이와 같이 팔식이 정화되면 사지를 증득하게 된다. 이는 자신만을 고집한 아집(我執)의 마음을 비우는 아공관(我空觀)의 경지이다. 그리고 사물과 현상계의 모든 것은 인연의 집합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망각하고 집착하여 탐욕을 발생하는 법집(法執)의 마음을 비우는 법공관(法空觀)의 경지를 말한다. 이와 같은 아공과 법공은 곧 말나식과 의식의 아집과 법집의 번뇌를 정화하는 것이고 그 밖의 모든 번뇌도 함께 정화하게 된다.
번뇌는 마음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며 마음을 정화하면 번뇌도 정화된다. 번뇌가 정화된다는 것은 번뇌 자체가 실체가 아니며, 가상의 생각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실체가 없는 번뇌라 할지라도 마음이 자아의 모습[我相]과 삼라만상의 모습[法相]을 확고하게 집착하고 있는 한 쉽게 정화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유식학에서는 먼저 자각을 야기하고 이타적인 보살의 수행을 하여야만 그 번뇌들이 정화될 수 있다.
수행은 육바라밀(六婆羅密)을 수행하는 것으로서 육바라밀은 남에게 보시를 하고[布施],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하고 대중을 교화하는 계율을 지키고[持戒], 고난을 참고 진리를 탐구하며[忍辱], 진리를 깨닫고 중생을 구제하는 일에 용맹정진하고[精進], 번뇌를 없애고 마음을 안정하여[禪定], 번뇌를 퇴치하여 지혜를 밝게 하는 것[知慧] 등을 말한다.
이와 같은 수행은 반드시 마음이 번뇌가 정화되어 보리와 열반을 증득할 수 있다는 뜻에서 바라밀이라고 한다. 이러한 수행위(修行位)는 청정한 마음으로 청정한 업력을 쌓는 것으로 이를 인위(因位)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 인위는 자량위(資糧位)·통달위(通達位)·수습위(修習位)·구경위(究竟位) 등 오위의 절차를 밟으며 수행하게 된다.
이들 오위를 수행하는 기간은 삼겁을 수행해야 한다. 삼겁 동안 중생을 교화하고 고통을 없애주는 보살행을 수행하며 그 수행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정화되고 번뇌가 없어지며 정화된 마음에서는 지혜가 발생하고 고통이 없는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하여 유식실성인 마음의 진여(眞如)가 차별이 없는 평등의 진리를 구현하게 된다. 이와 같이 유식사상은 팔식의 상태를 설명하고 팔식을 정화하여 유식의 실성인 진여심을 발생케 하며 복덕과 지혜를 구족한 인격자를 양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참고문헌
•「유식사상의 성립사」(오형근, 『승가』 2, 중앙승가대학, 1984)
•「신라유식사상의 특성과 그 역사적전개」(오형근, 『한국철학』 上, 1977)
•「유식교학에서의 수행과 증과)」(오형근, 『불교학보』 12, 불교문화연구소, 1975)
•「원측의 유식사상」(원의범, 『한국불교사상사』 제2편, 원광대학교 출판부, 1974)
•「중국불교의 유식학설」(김동화, 『불교학보』 7, 불교문화연구소, 1970)
•「대승론부상의 심식설」(김동화, 『불교학보』 6, 불교문화연구소,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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