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四相:生住異滅),
* 사각(四覺)의 자리
- 四位(범부각, 상사각, 수분각, 구경각)
대승기신론소별기, 은정희 역, 일지사 p140~163
(논)
각(覺)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심체(心體)가 망념을 여읜 것을 말함이니, 망념을 여읜 상(相)이란 허공계(虛空界)와 같아서 두루하지 않는 바가 없어 법계일상(法界一相)이며, 바로 여래의 평등한 법신이니, 이 법신에 의하여 본각(本覺)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본각의 뜻이란 시각(始覺)의 뜻에 대하여 말한 것이니 시각이란 바로 본각과 같기 때문이며, 시각의 뜻은 본각에 의하기 때문에 불각(不覺)이 있으며 불각에 의하므로 시각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 심원(心源)을 깨달았기 때문에 구경각(究竟覺)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심원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구경각이 아닌 것이다.
이 뜻이 무엇인가?
범부 정도의 사람은 먼저의 생각에 악이 일어난 것을 알기 때문에 뒤에 일어나는 생각을 그치게 하여 그 악의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는 또한 각(覺)이라고 이름을 붙이지만 바로 불각(不覺)이기 때문이다.
이승(二乘)의 관지(觀智)와 초발의보살(初發意菩薩) 등 정도의 사람은 생각의 이상(異相)을 깨달아 이상(異相)이 없으니, 이는 추분별집착상(麤分別執著相)을 버렸기 때문이며, 따라서 상사각(相似覺)이라 이름한다.
법신보살(法身菩薩) 등 정도의 사람은 생각의 주상(住相)을 깨달아 생각에 주상(住相)이 없으니, 이는 분별추념상(分別麤念相)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수분각(隨分覺)이라 이름한다.
보살지(菩薩地)가 다한 정도의 사람은 방편을 만족시켜서 일념(一念)이 상응하고 마음의 처음 일어나는 상(相)을 깨달아 마음에 초상(初相)이 없으니, 이는 미세념(微細念)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이며, 심성(心性)을 보게 되어 마음이 곧 상주하니, 이를 구경각(究竟覺)이라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경에서 '만약 어떤 중생이 무념(無念)을 볼 수 있다면 곧 불지(佛智)에 향함이 된다'고 말하였다.
<소>
마음의 생주이멸(生住異滅) 또는 사상(四相: 生相, 住相, 異相, 滅相)
生相:(生三) 업상(業相), 전상(轉相), 현상(現相)
住相:(住四) 아치(我癡)와 아견(我見)과 아애(我愛)와 아만(我慢)
異相:(異六) 탐(貪)· 진(瞋) · 치(癡)· 만(慢) · 의(疑) · 견(見)
滅相:(滅七) 살생 투도 사음 망어 기어 악구 양설
사상(四相)은 무명과 화합하는 힘에 의하여 심체(心體)로 하여금 생주이멸(生住異滅)케 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소승의 논의 중에 ‘마음이 미래에 있을 때는 아직 생멸을 하지 않다가 업력(業 力)에 의하여 사상을 끌어서 심법(心法)으로 하여금, 생주이멸하게 한다.’고 하는 것과 같다.
대승의 사상도 또한 그러함을 알아야 할 것이니, 이는 <부증불감경>에서 ‘곧 이 법신이 모든 번뇌에 의하여 요동하게 되어 생사에 왕래함을 중생이라 이름한다.’고 한 말과 같으며, 이 기신론 아래의 글에서 ‘자성청정심이 무명풍(無明風)에 의하여 움직인다’라고 한 말도 바로 이를 이르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설명하면 그러하나, 이 중에서 분별한다면 사상 안에 각각 차별이 있으니, 생삼(生三), 주사(住四), 이륙(異六), 멸칠(滅七)을 말한다.
<생상(生相): 무명으로 생기는 세 가지 모습, 업상 전상 현상, 제8식 아라야식>
생상(生相)이 셋이라는 것은, 첫째 업상(業相)을 말하니, 무명에 의하여 불각의 망념이 움직여 비록 생멸이 있지만 견분(見分: 객관의 사물이 인식하기에 적합하도록 주관에 나타나는 영상인 相分을 인식하는 작용)과 상분(相分: 심식이 인식작용을 일으킬 대 그와 동시에 인지할 그림자를 마음 가운데 떠오르게 하여 대상을 삼는다. 이것을 상분이라 함)이 아직 나뉘어지지 않은 것이니, 이는 마치 아직 오지 않은 생상이 장차 곧 작용하려는 때에 이른 것과 같다.
( 주관과 객관이 나뉘어지지 않음)
둘째는 전상(轉相)이니, 동념(動念)에 의하여 다음에 능견(能見)을 이루는 것을 말함이니, 이는 마치 아직 오지 않은 생상이 막 작용하는 때에 이른 것과 같다.
(주관으로 나타남)
셋째는 현상(現相)이니, 능견에 의하여 경상(境相)을 나타내는 것을 이름하니, 이는 마치 아직 오지 않은 생상이 현재시(現在時)에 이른 것과 같다.
(객관화 됨)
무명이 이 삼상(三相)과 화합하여 일심의 체를 움직여 전상(轉相)을 따라 현상(現相)에 이르는 것이, 마치 소승의 미래장심(未來藏心: 아직 현재시에 이르지 않은 마음)이 그 생상을 따라서 전전하여 현재에 이른 것과 같으며, 이제 대승 중에서 여래장심(如來藏心)이 생상을 따라 현재에 이른 것 또한 그 뜻이 이와 같다. 이 셋은 모두 아라야식 자리에서 가지는 차별이며, 이 중에 자세하게 다 말하는 것은 아래 문장에서 하겠다. 이를 매우 깊은 세 가지 생상(生相)이라 이름한다.
<주상(住相): 나로 바뀌어 머무는 4가지 모습, 제7식>
주상(住相)이 넷이라 함은, 이 무명이 생상과 화합함에 의하여 주상을 내는 마음에 아(我 )와 아소(我所)가 없는 것임을 모르기 때문에 네 가지의 주상을 일으켜 내는 것이니, 이른 바 아치(我癡)와 아견(我見)과 아애(我愛)와 아만(我慢)이다. 이러한 네 가지가 생상에 의하여 능상(能相)인 심체를 일으켜, 주상의 자리에 이르게 하여 안으로 반연하여 머물게 하기 때문에 주상이라 이름하며, 이 넷은 모두 제 칠식의 자리에 있다.
* 아(我)· 아소(我所)
① 아(我 Atman) : 주재(主宰), 자아(自我), 신체(身體)의 뜻.
자기의 자체, 곧 자기 주관의 중심. 일반 불교에서는 이것을 나누어 실아(實我) · 가아(假我) · 진아(眞我)의 3종으로 분멸. 실아는 인도 재래의 외도가 주장하는 것으로 범부의 망정(妄情)에 스스로 존재한 아(我)의 사상을 말한다. 이 我는 무상(無常)이 아니고 상주하여 독존하는 것으로 그 능동(能動)은 국왕 · 재상과 같이 자재한 것. 가아는 실제로 나라고 할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오온이 화합하여 인과가 상주하는 몸이기 때문에 다른 것과 구별하여 나라고 이름한 것. 진아는 대승에서만 말하는 것으로 열반의 4덕인 상(常) · 락(樂) · 아(我) · 정(淨)의 아덕(我德)을 말함. 진(眞)으로써 성품을 삼는 뜻으로 진아라 한다.
② 아소(我所) : 아소유(我所有)의 약어. 자신을 아(我)라 하며 자신 이외의 만물을 아소유라 말함. 아(我)의 정(情)이 있는 자는 자신 이외의 사물을 모두 나의 소유라 생각함.
* 아견, 아치, 아애, 아만 :4번뇌
① 아견(我見) : 도는 신견(身見). 보통으로 ‘나’라 함은 오온이 화합한 것으로서 참으로 ‘나’라 할 것이 없는데 ‘내’가 있는 줄로 잘못 아는 견해.
② 아치(我癡) : ‘我'의 진상을 알지 못하고 무아(無我)의 도리를 미(迷 )한 번뇌.
③ 아애(我愛) : 나라고 애착하는 번뇌. 이른바 자애심(自愛心)
④ 아만(我慢) : 나를 믿으며 스스로 높이는 양하는 교만.
<이상(異相: 번뇌로 달라진 6가지 모습, 生起識>
이상(異相)이 여섯이라 함은, 무명이 저 주상과 화합하여 계탁(計度)하는 바의 아(我)· 아소(我所)가 공한 것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여섯 가지의 이상(異相)을 일으키니, 이른바 탐(貪)· 진(瞋) · 치(癡)· 만(慢) · 의(疑) · 견(見)이다. 이는<新論>에서 ‘번뇌의 자성이 오직 여섯 가지가 있다“고 한 말과 같으니,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무명이 이 여섯 가지와 화합하여 능상(能相)인 주심(住心)을 이상(異相)의 자리에 이르게 하여 밖으로 향하여 반연케 하기 때문에 이상(異相)이라 이름하니, 이 여섯은 생기식(生起識)의 자리에 있다.
* 탐(貪)· 진(瞋) · 치(癡)· 만(慢) · 의(疑) · 견(見)
유식학의 오위(五位) 백법(百法) 중 51심소유법에서 근본번뇌에 해당하는 6가지임
탐(貪):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대하여 마음으로 애착케 하는 정신 작용
진(瞋) : 진에라 함.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경계에 대하여 미워하고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을
편안치 못하게 하는 심리작용
치(癡): 인생의 고통받는 근원과 모든 번뇌의 근본을 말하며
사물의 진상을 밝히 알지 못하므로 혼미함이 있다고 함.
만(慢) : 자기의 용모, 재력, 지위 등을 믿고 다른 이에 대해서 놓은 채 뽐내는 번뇌
의(疑) : 미(迷)의 인과나 오(悟)의 인과의 도리에 대하여 유예(猶豫)하고 결정치 못하는 정신 작용.
견(見) : 이는 악견(惡見)을 말함. 모든 법의 진리에 대하여 잘못된 견해
* 생기식(生起識)
전6식(前六識)을 말함. 이를 분별사식(分別事識)이라고도 하니, 6근(六根)에 의하여 그 대경(對境)을 대하며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자타의 여러 가지 사상(事相)을 분별하고 사려하는 뜻으로 이렇게 이름
<멸상(滅相):없어진 모양, 없애야할 7가지 모습, 살생 투도 사음 망어 기어 악구 양설>
멸상(滅相)이 일곱이라 함은 무명이 이상(異相)과 화합하여, 바깥 경계는 위(違)·순(順)의 성격을 떠난 것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일곱 가지의 멸상(滅相)을 일으키니, 이른바 신(身) ·구(口) 일곱 가지의 악업(惡業: 살생, 투도, 사음, 망어, 기어, 악구, 양설)이다. 이러한 악업이 이심(異心)을 없애어 악취(惡趣)에 떨어지게 하기 때문에 멸상이라 이름하며, 이는 마치 소승의 멸상이 현재심(現在心)을 없애어 과거에 들어가게 함과 같으니, 대승의 멸상도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 身, 口 일곱 가지 악업:身三口四를 말함
살생, 투도(偸盜: 남의 것을 훔치는 것), 사음(邪淫): 자기 처첩(남편)이 아닌 다른 여자나 남자와 음사하는 것, 망어(妄語:거짓말), 기어(綺語:교묘하게 꾸미는 것), 악구(惡口:남을 성내게 할만한 나쁜 말), 양설(兩舌: 두말하는 것)
이리하여 사상(四相)의 일어남은 일심(一心)이 유전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다 근본무명(根本無明)을 원인으로 하는 것이다.
이는 <승만경>에서 “무명주지(無明住地)가 그 힘이 가장 크다”고 하고, 이 <기신론>에서 “무명의 힘이 일체의 염법을 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한 말과 같다.
또 소상(所相)의 심(心: 사상이 所依로 하는 심을 말함)은 일심에서 오는 것이며, 능상의 상[四相]은 무명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일어난 상이 그것이 이르는 곳에 따라서 그 작용에 차별이 있어서 경계의 별상을 취하는 것을 수법(數法:心所有法, 心數法)이라 이름하니, 이는 참으로 그 근본무명이 평등성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 소상(所相)의 심이 이르는 곳마다 총괄하는 주인이 되어 경계의 통상(通相)을 요달함을 심왕(心王)이라 말하니 그 본래의 일심이 모든 법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이는 중변론에서 “오직 경계만을 아는 것을 심(心 )이라 하고, 차별하는 것을 심법(心法)이라 한다”고 하고, 장행(長行)에서 이를 해석하여 “만약 경계의 통상을 요달한다면 이를 心이라 하며, 경계의 별상을 취하는 것을 心法이라고 한다”고 한 말과 같다. <유가론> 중에도 이 설과 똑같다. 이리하여 모든 외도들이 흔히 심왕을 재주(宰主)니 짓는 자니 받는 자니라고 계탁하는데 이는 그것(심왕)이 자성이 없이 연을 따라 유전하는 것임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四位: 범부각, 상사각. 수분각. 구경각>
이 사상을 총괄하여 일념(一念)이라 하며, 이 일념·사상에 의하여 사위(四位)의 단계적인 강하를 밝혔다.
이는 본래 무명불각의 힘에 의하여 生相 등 여러 가지 몽념(夢念:허망한 생각)을 일으켜 그 심원(心源)을 움직여 점차로 멸상(滅相)에 이르며, 오래토록 삼계(三界)에 잠들어 육취(六趣)에 유전하다가, 이제 본각의 불사의훈(不思議熏)에 의하여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찾는 마음을 일으켜 점점 본원으로 향하여 비로소 멸상과 내지 생상을 쉬고 환하게 크게 깨달아 자심(自心)이 본래 동요한 바가 없음을 깨닫고, 이제는 고요한 바도 없으며 본래 평등하여 일여(一如)의 자리에 머물게 됨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니, 이는 <금광명경>에서 말한 꿈에 하수(河水)를 건너는 비유와도 같은 것이다. 이 중에서 말한 꿈에 하수(河水)를 건너는 비유와도 같은 것이다. 이 중에서 널리 설명한 대의도 이와 같다.
* 몽념: 꿈 생각, 실체가 없이 무명에 의하여 나타나는 허말한 생각이란 뜻.
불사의훈 :不可思議熏이라 함. 진여가 무명을 훈습하는 것을 말하며, 이는 훈습할 수 없는 곳에 훈습을 하기 때문에 불가사의훈이라 함.
다음은 그 글을 해석하는 것이니, 사상에 의하여 사위(四位 )를 분별하는 것이며, 사위 중에 각각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능각인(能覺人:깨닫는 사람)이요, 둘째는 소각상(所覺相:깨달아진 모양)이요, 셋째는 깨달음의 이익이요, 넷째는 깨달음의 분제(分齊:범위)이다.
처음의 위(位) 중에 ‘범부 정도의 사람’이라고 한 것은 능각인이니, 위치가 십신(十信)에 있다. ‘앞의 생각에서 악이 일어남을 알았다’는 것은 소각상을 나타냄이니, 아직 십신에 들어가기 전에는 身·口의 일곱 가지 악업을 갖추어 일으켰다가 이제 신위(信位)에 들어가서는 일곱 가지 악업이 실로 나쁜 것임을 잘 알게 되기 때문에 ‘앞의 생각에서 악이 일어남을 알았다’고 말한 것이며, 이는 멸상(滅相)을 깨달은 뜻을 밝힌 것이다. ‘뒤의 생각을 그쳐서 일어나지 않게 한다’는 것은 覺의 이익이니, 앞에서는 불각으로 인하여 일곱 가지 악념(惡念)을 일으켞다가 이제는 이미 깨달았기 때문에 멸상을 그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覺이라 이름을 붙였으나 바로 不覺이다’라고 한 것은 각의 분제(分齊)를 밝힌 것이니, 멸상이 실로 나쁜 것임을 알았지만 오히려 멸상이 꿈이라는 것은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다.
두 번째의 位 중에 ‘이승의 관지(觀智)와 초발의보살 정도의 사람들’이라 한 것은 십해(十解) 이상의 삼현보살(三賢菩薩: 십주, 십행, 십회향位)이며, 십해의 초심(初心)을 발심주(發心住)라 한다.
이 발심주의 사람을 들어서 겸하여 후위(後位)가지 취하므로 초발의보살(初發意菩薩) 등이라 말한 것이니 이는 능각인을 밝혔다. ‘생각의 이상(異相)을 깨달았다’는 것은 소각상을 밝힌 것이니, 앞서 말한 여섯 가지의 이상(異相)과 같으며 이는 내외를 분별하여 我와 我所라고 계탁하는 것이다. 이 삼승인(三乘人:성문 연각 보살)은 我가 없음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생각의 이상을 깨달았다고 한 것이다. 이는 소상(所相)인 심체가 무명에 잠든 바 되어 異相을 꿈꾸어서 모든 번뇌를 일으키다가 이제 점차 지혜와 상응하여 이상의 꿈으로부터 조금 깨닫게 됨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생각에 異相이 없다’는 것은 각의 이익이니, 이미 이상의 꿈에서 깨어났기 때문에 저 여섯 가지 이상이 영구히 없어진 것이며, 그러므로 생각에 이상이 없다고 한 것이다. ‘추분별집착상(麤分別執着相)을 버렸기 때문에 상사각(相似覺)이라 이름한다’는 것은 각의 분제이니, 역경계(逆境界)와 순경계(順境界)를 분별하여 탐(貪)· 진(瞋) 등을 일으킴을 추분별집착상이라 이름하며, 이러한 추한 집착상을 버리긴 했으나, 아직 무분별(無分別)의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므로 상사각이라 하는 것이다.
세 번째의 위 중에 ‘법신보살(法身菩薩) 등’이라 한 것은 초지(初地) 이상 십지(十地)의 보살이니, 이는 능각인이다. ‘생각의 주상(住相)을 깨달았다’는 것은, 住相 중에서는 마음 밖에 경계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인(人)· 법(法)을 고집[人我執, 法我執]하여 안으로 반연하여 머물렀으나, 법신보살이 되어서는 이공(二空: 我空·法空)을 통달하게 된 것이다. 이는 소상(所相)의 심체가 이미 異相을 깨달았으나 아직도 住相의 꿈에 잠들어 있다가, 이제 무분별지(無分別智)와 상응하여 주상의 꿈으로부터 깨닫게 되었음을 밝히려 하기 때문에 ‘생각의 주상을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이니, 이는 소각상이다. ‘생각에 주상이 없다’는 것은 네 가지 주상이 없어져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니, 이는 각의 이익이다. ‘분별추념상(分別麤念相)을 떠났다’는 것은, 인(人)·아(我)의 집착을 분별이라 한 것이니, 앞서의 異相의 추분별과 구별하기 위하여 ‘추(麤)’라 이름하지 않은 것이며, 법아집(法我執)을 추념이라 하였으니, 뒤에 생상의 미세념(微細念)과 다르기 때문에 추념이라 한 것이다. 비록 이미 무분별각(無分別覺)을 얻었지만 아직도 生相의 꿈에 잠들어 있기 때문에 수분각(隨分覺)이라 이름하니, 이는 각의 분제이다.
* 이공(二空): 我空과 法空을 말함. 즉 인아집과 법아집을 깨친 것. 아공이란 것은 중생은 5온이 화합한 것이므로 我라고 할 실체가 없다는 것. 법공이란 것은 5온의 自性도 공하다는 것.
네 번째의 위(位) 중에 ‘보살지가 다한 사람들’이란 무구지(無垢地)를 말하는 것이니, 이는 전체적으로 든 것이다. 아래 두 구절은 따로 이도(二道)를 밝혔다. ‘방편을 만족하게 했다’는 거은 방편도(方便道)이며, ‘일념이 상응한다’는 것은 무간도(無間道)이다. 이는 <대법론>에서 “구경도(究竟道)란 금강유정(金剛喩定)을 말하며, 여기에 두 종륙 있으니 방편도섭(方便道攝)과 무간도섭(無間道攝)이다”라고 한 말과 같으니, 이는 능각인을 밝힌 것이다. ‘마음이 처음 일어남을 깨닫는다’는 것은 소각상을 밝힌 것이니, 마음이 처음 일어난다는 것은 무명에 의하여 생상이 있어 심체를 미혹하여 생각을 움직이게 하다가, 이제 본각을 떠나서는 불각이 없으며 바로 동념(動念)이 정심(靜心)임을 증득하여 알기 때문에, 마음이 처음 일어나는 것을 깨닫는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방향을 모를 때에는 동쪽을 서쪽이라고 하다가 방향을 알았을 때 서쪽이 곧 동쪽임을 아는 것과 같으니, 이 중에 있는 각의 뜻도 그와 같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마음에 초상(初相)이 없다’는 것은 각의 이익을 밝힌 것이니, 본래 불각에 의하여 마음이 원래 일어난 것인데, 이제는 이미 깨달았기 때문에 마음에 일어나는 바가 없으니, 그러므로 마음에 초상이 없다고 한 것이다. 앞의 세 가지 자리[三位] 중에서는 여윈 바가 있기는 하나 그 동념(動念)이 오히려 일어나 아직 다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에 주상(住相) 등이 없다고 말하였고, 이제 구경위(究竟位)에서는 동념이 모두 없어지고 오직 일심만이 있기 때문에 마음에 初相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미세념)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에...’ 이하는 각의 분제를 밝힌 것이니, 이 중에 두 구절이 있다. 첫째는 바로 각의 분제를 밝혔고, ‘그러므로’ 이하는 경전을 인용하여 이론이 성립됨을 증명하였다.
업상(業相)의 동하는 생각은 생각 중에 가장 미세하므로 미세념(微細念)이라 하였으며, 이 相이 모두 없어져서 영구히 남는 바가 없기 때문에 멀리 여의었다고 말하였다. 멀리 여의었을 때가 바로 불지(佛地)에 있는 것이니, 앞의 세 자리에서는 심원(心源)에 아직 이르지 못하여 생상이 아직 다 없어지지 않아서 마음이 오히려 무상(無常)하였으나, 이제 이 구경위의 자리에 와서는 무명이 영구히 없어지고 일심의 근원에 돌아가 다시는 동념을 일으킴이 없게 되었으므로 ‘심성(心性)’을 보게 되어 마음이 곧 상주한다‘고 말하며, 다시 나아갈 바가 없는 것을 구경각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또한 아직 심원에 이르지 못하여 夢念이 다 없어지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을 없애려고 피안(彼岸)에 이르기를 바랬으나, 이제는 이미 심성을 보아서 몽상이 다 없어지고 자심이 본래 유전함이 없는 줄 깨달아 이제 고요히쉬는 것도 없어지고 항상 스스로 일심이 일여(一如)의 자리에 머무르기 때문에 ’심성을 보게 되어 마음이 바로 상주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시각(始覺)이 본각과 다르지 아니하므로, 이런 도리에 의하여 구경각이라 이름하니 이는 바로 각의 분제를 밝힌 것이다.
*방편도 : 방편을 만족한 단계를 방편도라 함. 여기서 방편이란 진리를 증득하기 위하여 그 전에 닦는 가행(加行)을 말하므로 資量位 삼십심(십주, 십행, 십회향)을 지나 난(煖), 정(頂), 인(忍), 세제일법(世第一法)의 순결택분(順決擇分)을 닦은 가행위까지 말함.
*무간도: 방편을 만족한 후 다시 노력 정진한 공이 현저하여 진지(眞智)를 발하고 번뇌를 모두 끊은 무루지(無漏智)의 자리를 말함. 번뇌 때문에 간격(間隔)되지 않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구경도 : 이(理)의 지극함을 말함.
*금강유정: 금강이 견고하여 다른 것을 깨뜨리는 것과 같이 모든 번뇌를 끊어 없애는 선정을 말함, 대승에서는 제 십지보살이 소지장과 번뇌장의 종자를 한꺼번에 끊고 불지에 들어가기 위하여 드는 선정.
*범부각의 능각인: 十信
* 상사각의 능각인 : 이승(성문, 연각)과 삼현보살(十住, 十行, 十廻向)
*수분각의 능각인 : 十地
*구경각의 능각인 : 번뇌가 다 사라진 무구지(無垢地)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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