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함경 해설] 92.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기도
부처님이 코살라국 싱사파 숲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구라단두 바라문이 부처님의 명성을 듣고 찾아와 제사지내는 법에 대해 물었다.
"저는 부처님이 3종류의 제사와 16가지에 이르는 제사기구에 대해 밝은 식견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들은 큰제사를 지내기 위해 500마리의 숫소와 500마리의 암소, 500마리의 숫송아지와 500마리의 암송아지, 500마리의 숫염소와 500마리의 암염소를 준비하여 그것을 희생하여 제사를 지내고자 합니다."
부처님은 직답을 대신해 옛날 어떤 왕의 고사를 들려주었다.
"옛날 어떤 왕이 동물을 희생해 제사를 지내려 하면서 대신들에게 제사법을 물었다. 그때 대신들이 이렇게 아뢰었다.
'제사를 지내기 전에 먼저 집안과 백성을 편안하게 해야 합니다. 왕으로서 백성을 마음대로 때리거나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신하에게는 필요한 물건을 주고,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재물을 주고,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는 소와 종자를 주어 각각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경영하게 하십시오. 백성을 핍박하지 않으면 인민은 안온하여 그 자손을 기르면서 서로 즐겁게 지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다음에 제사를 지낼 때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시하면서 10선행을 가르치십시오. 이것이 가장 훌륭한 제사입니다.'
왕은 대신들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했다. 즉 소나 염소, 모든 중생을 죽이지 않고 우유 깨기름 꿀 흑밀 석밀을 써서 제사를 지냈다. 왕은 제사를 지낼 때 처음도 기쁘고 중간도 기쁘고 나중도 기쁘게 했다. 그랬더니 나라는 안온하고 백성들은 즐겁게 살게 되었다."
부처님의 비유설법에 깨우침을 받은 바라문은 다시 물었다.
"16가지 제구를 써서 3종류의 제사를 지내는 것보다 더 큰 과보를 얻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항상 여러 수행자를 공양하는 것이 제사를 지내는 것보다 더 큰 공덕이다. 이것보다 더 큰 공덕을 쌓는 것은 각지에서 온 초제승(招提僧)을 위하여 승방이나 강당을 짓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큰 공덕은 환희심으로 삼보에 귀의하고 이것을 입으로 외우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큰 공덕은 환희심으로 5계를 받들어 평생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큰 공덕은 잠깐이나마 자비심으로 일체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큰 공덕은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였을 때 출가하여 도를 닦아 모든 어리석음과 무명을 없애고 밝은 지혜를 구족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은 구라단두 바라문은 이렇게 다짐했다.
"저는 이제 제사를 위해 준비한 모든 소와 염소를 놓아주어서 그들이 물이나 풀을 마음대로 먹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저는 삼보에 귀의하여 우바새가 되겠습니다."
- 장아함 15권 23경 <구라단두경(究羅檀頭經)>
여기서 말하는 제사란 죽은 사람을 위해 올리는 추선의식(追善儀式)이 아니라 신에게 올리는 기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과거 원시사회에서는 신에게 은총과 가피를 빌기 위해 동물희생제를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 같다. 잡아함 <장신경> <우파가경>고 같은 경전에도 동물희생제에 관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들은 이 같은 희생제가 선업을 쌓아 뒷날 복을 받게 된다고 믿었던 것 같다.
이에 대해 부처님의 일관된 입장은 남의 생명을 희생하며 지내는 제사나 기도는 아무 공덕이 없다는 것이다. 정말로 좋은 선업을 지어 복을 받고 싶다면 남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우선 남의 생명이나 권리를 희생시키는 일을 하지 말 것,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도와줄 것,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받아 실천할 것, 자비심으로 일체중생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할 것 등이다. 이렇게 하면 복을 받기 싫어도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불교에서 복을 받는 일이란 아주 쉬운 일이면서 동시에 아주 어려운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매일같이 작은 일이라도 선업을 짓는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게 돼있으니 쉽다면 아주 쉬운 일이다. 반대로 매일 같이 악업을 짓는 사람은 어떤 제사나 기도를 해도 복 받을 길이 없으니 어렵다면 이처럼 어려운 일이 없으니 말이다.
홍사성 〈불교평론〉 편집위원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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