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불교미술의 기본 원리 / 유홍준

수선님 2022. 10. 30. 12:52

※ 본 글은 유홍준저, 한국미술사 강의 1, 눌와에서 일부를 옮겨온 것입니다.

 

탄생불

 

불교는 석가모니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된다. 기원전 6세기 중엽, 지금의 네팔 국경 부근에 있던 카필라Kapilla 성城의 정반대왕에게는 고타마 싯다르타Gautama Siddhartha(기원전 563 또는 기원전 567~기원전 483년경)라는 태자가 있었다. 그의 탄생설화를 보면 어머니인 마야Maya 부인이 해산기가 있어서 친정집으로 가는 도중 룸비니 동산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어린애가 오른쪽 옆구리로 튀어나와 일곱 발자국 앞으로 걸어가더니 오른손으로 하늘을, 왼손으로 땅을 가르키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외쳤다. 천하에서 자신만이 홀로 존엄한 존재라고 예언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하늘에서 내려온 9마리의 용이 물을 뿜어 이 갓난애를 목욕시켜 주었다고 한다. 삼국시대 탄생불誕生佛은 4월 초파일 석탄일의 욕불제浴佛祭 또는 관불제灌佛祭를 위해 만든 아기 불상이다.

 

항마촉지인

 

싯다르타 왕자로서 호화로운 궁정생활을 하며 자라 결혼하여 라훌라Rahula라는 아들도 두었다. 그러나 그는 호의호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엄격한 출입통제에도 불구하고 동서남북 성문 밖으로 나아가 생노병사生老病死라는 인간의 실존적 문제를 고뇌하였다.

 

그는 운명적으로 고행자를 만났고 결국 29세에 몰래 궁궐을 빠져나가 출가出家하여 머리를 깎고 설산雪山에서 도를 닦기 시작했다. 이때 설산에는 자이나교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명상, 요가, 극기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법을 구하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대부분의 수행자들이 개인적인 극복을 추구하는 것과 달리 인간 모두의 보편적 고뇌를 극복하는 길을 찾았다. 싯타르타는 설산에서 고행苦行한 지 6년만에 마침내 마가다국Magada 보드가야Bodh-Gaya 보리수菩提樹 아래 금강보좌金剛寶座에서 득도하였다.

 

이때 싯다르타 주위에는 많은 마귀들이 그의 득도를 방해하였다. 마왕 마라Mara는 아리따운 세 딸을 보내 온갖 교태를 부리며 싯다르타를 유혹하게 하였는데 끝내 싯다르타가 흔들리지 않자 세 딸은 파파 할머니로 변하고 싯타르타의 대좌 아래서 용서를 빌었다. 이때 싯타르타는 오른손을 가만히 무릎위에 얹고서는 땅을 짚어서 지신地神을 불렀다. “지신은 나와서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깨들은 자임을 증언하라”고 한다. 이를 가리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즉 마귀를 항복시키고 땅을 가리킨 모습이라고 한다. 석굴암 본존불의 모습이 바로 항마촉지인이며, 이는 석가모니의 상징적 모습이다.

 

팔성도

마침내 성도한 싯다르타를 사람들은 석가모니釋迦牟尼, Sakyamuni, 즉 샤카족의 성자聖者라고 불렀고, 부다佛陀 Buddha, 즉 진리를 깨친 사람 또는 보리菩提를 얻은 사람이라고 했다. 《금강반야경》에서는 “온 데도 없고 간 데도 없다(無所從來 亦無所去)”는 뜻에서 여래如來라 부른다고 했다. 석가모니가 된 싯다르타는 바라나시Varanasi에 있는 녹야원鹿野園에서 처음으로 설법을 베풀었고 이후 무수한 제자를 거느리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수많은 법륜法輪을 펼치다가 쌍림雙林에서 열반涅槃에 들었다. 이러한 싯다르타의 일대기를 8개의 도상으로 그린 것이 팔상도八相圖이다.

 

도솔내의兜率來儀 도솔천에서 내려왔다.

비람강생毘藍降生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났다.

사문유관四門遊觀 4문 밖으로 나가 중생의 고통을 보았다.

유성출가逾城出家 성문을 넘어 출가하였다.

설산수도雪山修道 설산에서 수도했다.

수하항마樹下降魔 나무 아래에서 마귀를 항복시켰다.

녹원전법륜鹿苑轉法輪 녹 원에서 법을 전했다.

쌍림열반雙林涅槃 쌍림에서 열반에 들었다.

 

십대제자

 

석가모니에게는 열 명의 뛰어난 제자가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12제자가 있어 그들이 스승의 말씀과 법을 대중에게 전파한 것과 똑같다. 다만 석가모니의 제자들은 불교가 종교로 신비화해가면서 이 십대제자들에게도 진설적인 이야기들이 생겼고 이에 따라 제자마다 특징이 붙게 되었다.

 

지혜제일智慧第一 사리불

신통제일神通第一 마하 목건련

두타제일頭陀第一 대가섭

해공제일解空第一 수보리

설법제일說法第一 부루나

논의제일論議第一 가전연

천안제일天眼第一 아나율

지율제일持律第一 우바리

밀행제일密行第一 라훌라

다문제일多聞第一 아난

 

훗날 불교의 세계에서는 십대제자를 비롯하여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고 성자로 된 이를 아라한阿羅漢 혹은 나한羅漢이라고 하여 십육나한, 오백나한으로 표현된다.

원시소승불교

 

석가모니가 고행 끝에 얻은 깨달음이란 인과의 법칙 업業, Karma에 따라 생기는 윤회輪回로부터 벗어나는 길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4성제四聖諦와 8정도八正道의 개념을 제시하였다. 사성제란 고·집·멸·도苦集滅道로 존재의 모든 요소는 고뇌〔苦〕인데, 고뇌의 근본 원인은 욕망에서 나오는 아집〔集〕에 있으므로 이를 멸滅하여야 고난이 종식된다. 이를 위해서는 여덟 가지 올바른 길〔八正道〕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팔정도란 정견正見,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근正勤, 정념正念, 정정 正定으로 올바로 보고, 올바로 생각하고, 올바로 말하고, 올바로 행동하면 비로소 생사를 되풀이 하는 윤회의 사슬을 끊고 열반涅槃, Nirvana에 들게 된다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깨달음이란 이처럼 간명했기 때문에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더욱이 기존 인도의 종교에서는 카스트제도에 시달리는 민중들의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묵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석가모니는 만민이 평등하다는 주장과 운명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을 부여한다는 큰 매력이 있었기 때문에 종교로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엄격해서 탁발승으로 세상과 인연을 끊고 엄격한 수도 생활을 한 자만이 그 길을 갈 수가 있다고 했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이후 불교는 서서히 민간에 전파되다가 마침내 신흥종교로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장려된 것은 인도의 아쇼카왕(아육왕阿育王, Asoka 약 기원전 272~기원전 232)때이다. 아쇼카왕은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석가모니를 다비茶毘(화장) 할 때 나온 사리를 모신 8만4000탑塔, Stupa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이후 많은 사원이 세워졌고, 많은 통치자들이 독실한 불교신도가 되어 불교는 인도 전역과 스리랑카, 간다라(파키스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불상은 제작되지 않았다. 초월자를 인간의 모습으로 만든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당시 예배의 대상은 석가모니의 분신격인 사리를 장치한 탑이었다. 따라서 당시 불교미술품은 산치의 탑(기원전 1세기)처럼 탑파 주위의 문과 난간에 장식한 본생담本生譚, 불전도佛傳圖, 보리수, 법륜法輪, 불족佛足 등의 조각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 시기를 미술사에서는 무불상시대라고 한다.

 

대승불교와 제불의 탄생

 

불교의 교리가 커다란 발전을 이루게 된 것은 2세기 쿠샨 왕조의 카니시카왕이 불전편찬회의를 소집하면서였다. 석가모니 사후 600년이 넘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경전으로 찬술하는 셈이었기 때문에 《아함경阿含經을 비롯한 초기 경전들을 보면 부처님 말씀 앞에 ‘여시아문如是我聞’ 즉 “내가 들은 바로는...”이라는 관형구가 붙어 다닌다.

이 과정에서 불교는 근본 교의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부처란 석가모니만이 아니라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신神적인 존재라는 개념으로 발전하였다. 이리하여 경전의 찬술과 함께 제불諸佛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렇게 등장한 참신하고 개방적인 불교 종파는 자신들을 대승大乘, Mahayana이라 칭하고, 기존의 보수적인 분파를 소승小乘, Hinayana이라고 불렀다.

 

제불의 탄생과정을 보면 부처는 원래 보통명사이고 석가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석가모니는 역사상 실존했던 인물에 대한 고유명사이고 점차 많은 부처가 존재했다는 관념이 퍼지면서 삼신불三身佛 개념이 나왔다. 삼신불이란 응신불應身佛, 보신불報身佛, 법신불法身佛이다.

 

◦ 응신불 사람의 형태에 응應하여 역사적으로 지구상에 나타난 부처로 석가모니불이 이에 해당된다.

◦ 보신불 보처報處에서 부처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분으로 아미타여래 등이 이에 해당된다.

◦ 법신불 불법佛法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비로자나불이 이에 해당된다.

 

부처의 개념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그 논리를 충족시켜갔다. 즉 석가모니는 지구상에 다녀간 여러 부처 중 최근에 나타난 분일 뿐 석가모니 이전에도 지구상에 다녀간 부처가 있고, 석가모니 이후에도 다녀갈 부처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과거칠불過去七佛과 미래불未來佛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과거칠불이란 석가모니 이전에 지구상에 다녀간 적이 있는 일곱 분의 부처로 최로초 다녀간 분은 연등불練燈佛이고 석가모니 직전에 다녀간 분은 다보불多寶佛이다. 그래서 《법화경法華經》에서는 석가모니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설법하는 것을 천상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다보불이 “선善하도다”라고 찬미하며 우화雨花, 즉 꽃비를 뿌려주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불국사 앞마당에 있는 쌍탑을 다보탑과 석가탑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불병좌상二佛並坐像이라 하여 두 부처가 나란히 앉아 있는 상은 다보불과 석가불을 의미하여, 절집 건물 중 설법하는 건물에 우화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이 많아 부여 무량사의 우화궁雨花宮, 완주 화암사의 우화루雨花樓 등을 볼 수 있다. 과거 칠불은 불상의 광배조각으로 자주 나타난다.

 

미래불은 미륵彌勒이다. 미륵의 경우는 아직 천상에서 내려올 때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부처의 전단계인 미륵보살로 존재한다. 그러나 반드시 부처가 되어 지구에 내려오기로 예정되어 있는 ‘부처님 당선자’이기 때문에 미륵불이라고도 부른다. 미륵은 현재 도솔천兜率天을 주재하고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틀고 중생을 구제할 생각〔思惟〕을 하고 있지만 56억 7천만 년 뒤가 되면 하생下生하여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는다고 한다.

 

미륵을 모시는 전각을 미륵전 또는 용화전이라고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반가사유상의 보살 형태로 나타나곤 한다. 또 미륵은 의자에 앉아 있는 의상椅像이나 다리를 교차하고 의자에 앉아 있는 교각상交脚像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미륵이 보살로써 쓰고 있는 보관에는 탑塔이 그려져 탑형보관이라고 한다.

 

미륵은 미래불인 만큼 미륵신앙은 곧 구세주가 나타난다는 메시아 신앙으로 연결되어 난세에는 미륵신앙이 크게 일어나곤 했다. 후고구려를 일으킨 궁예가 미륵을 자처한 것이나 조선시대 말기에 미륵신앙이 크게 일어나 수많은 돌미륵인 민불民佛의 형태로 곳곳에 제작되기도 했고, 은진 관촉사의 관세음보살상이 은진미륵으로 바뀌어 불리게 된 것도 이런 연유이다.

 

사방불

 

부처의 개념이 과거불, 현세불, 미래불이라는 시간적인 구성으로 짜인 것과 동시에 공간적으로 동서남북의 사방불 四方佛 개념도 생겼다. 경주 굴불사지 사면석불 등은 바로 이러한 사방불 개념이 조각으로 구현된 예이다. 동서남북 사방불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이해되고 있으며 모시는 전각의 이름이 다르다.

 

◦ 남방 : 석가모니불 인도는 남쪽 이라는 개념. 대웅전大雄殿, 영산전靈山殿

◦ 북방 : 미륵불 하늘나라는 북쪽이라는 생각. 미륵전彌勒殿, 용화전龍華殿

◦ 서방 : 아미타불 서방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보신불. 극락전極樂殿, 무량수전無量壽殿

◦ 동방 : 약사여래 동방 유리광세계에 살고 있는 보신불 약사전藥師殿

(일본 불교미술에서는 아촉여래阿閦如來를 동방불로 모시고 있다)

 

비로자나불은 불교에서 늦게 나타난 화엄경의 주존불로 방위를 초월한 존재이며 추상적인 불법佛法이 신격화된 법신불로 대적광전大寂光殿, 대광명전大光明殿 또는 비로전에 모셔진다.

 

32상 80종호

 

불경에서는 부처님의 모습에 대해서 32가지, 또는 80가지로 설명한다.(불교에서는 8이라는 숫자를 길하게 생각한다). 이를 32상相 80종호種好라고 한다. 가령 그중 일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족하이륜상足下二輪相 발바닥에 法輪법륜이 그려져 있다.

견원호상肩圓好相 어깨가 등글다.

백아상 白牙相 이가 하얗다.

신광장등상身廣長等相 두 팔을 벌린 길이가 키와 같다.

금색상金色相 몸이 금색으로 빛난다.

백호상白毫相 이마에 백호가 있다.

음장상陰藏相 음경(남근)이 속에 감추어져 있다.

정계상頂髻相 정수리에 육계肉髻가 있다.

 

요컨대 신비롭고 이상화된 인간상으로 설명되어 있으며 불상의 광배, 육계, 백호, 법륜 등은 32상 80종호에 근거하고 있다.

 

보살

보살菩薩, Boddhisattva은 부처를 보필하면서 중생을 구제하고 궁극적으로는 부처가 되기 위해 맹렬히 수도하는 자를 말한다. 많은 보살 중 최고참자는 특정부처의 비서실장 격으로 수행하며 곁에 선다. 이를 협시보살이라 하며 두 보살과 부처가 하나로 나타내는 것이 삼존불이다.

 

◦ 석가모니 협시보살 문수文殊보살(대좌가 사자로 나타난다)

보현 普賢보살(대좌가 코끼리로 나타난다)

◦ 아미타불 협시보살 관세음觀世音보살(보관에 화불化佛이 그려 있다)

대세지大勢至보살(보관에 정병淨甁이 그려 있다)

◦ 약사여래 협시보살 일광日光보살

월광月光보살

◦ 미륵보살 미래불이기 때문에 미륵전, 용화전에 따로 모셔진다.

 

◦ 관세음보살 줄여서 관음보살로 불린다. 아미타불의 협시보살이지만 대자대비大慈大悲의 화신으로 대중에게 인기가 있어 관음전, 원통전에 모셔진다. 관음보살은 ‘세상의 소리를 보는〔觀世音〕’보살이기 때문에 “나무南無(귀의한다는 뜻) 관세음보살”만 염불로 외우면 그 소리를 보고(듣고) 달려와 도와준다고 한다. 손에는 버드나무 가지와 정병을 들고 있다.

 

◦ 지장地藏보살 중생구제를 위해 부처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영원히 보살로 나아 있기를 맹세한 보살이다. 따라서 지장보살은 스님처럼 삭발한 승형僧形이나 모자를 쓴 피모被帽지장으로 표현된다. 지장보살은 죽은 이들이 들어오는 명부冥府의 세계에서 염라대왕을 비롯한 시왕十王과 명부의 판관判官, 사자使者 등 많은 권속眷屬을 거느리고 있다. 죽은자는 명부에서 49일간 심판을 받고 천상의 자기 자리를 배정받는다고 한다. 명부전 또는 지장전에 모셔진다.

 

천, 천왕, 팔부중

 

불교의 세계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경호실 같은 체계가 있어서 천, 천왕, 금강역사, 팔부중이 지키고 있다.

 

◦ 천天, Deva 불교를 수호하는 일체의 신상을 말한다.

 

◦ 범천梵天 불교출현 이전의 인도에서 최고가는 신으로 불교 탄생후 범천이 되어 불법을 수호하게 되었다.

 

◦ 제석천帝釋天, 힌두교의 인드라Indra이며 불법 수호신으로 사천왕을 부하로 거느리고 불교를 믿는 나라를 수호한다.

 

◦ 사천왕四天王 국토를 지키는 무신武神으로 도깨비를 밟고 서 있는 입상으로 표현된다.

동방 : 지국천왕持國天王 검劍을 들고 있다.

서방 : 광목천왕廣目天王 붓과 종이를 들고 있다.

남방 : 증장천왕增長天王 극戟을 들고 있다.

북방 : 다문천왕多聞天王 탑을 들고 있다.

 

◦ 금강역사金剛力士 인왕仁王이라고도 불리며 사찰의 수호신으로 문 좌우에 배치된다. 입을 벌리고 있는 아상啊像은 공격하는 자세이고 입을 다물고 있는 우상吽像은 수비하는 자세이다.

 

◦ 팔부중八部衆 팔부신중八部神衆이라고도 부르며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신이다. 손이 6개인 아수라阿修羅를 비롯하여 각기 이름과 독특한 도상이 있다.

 

자세와 수인

 

□ 자세

 

불상의 자세는 입상, 좌상, 반가상, 유희좌, 환희불 등이 있고 팔의 자세와 손가락 모양은 수인手印이라고 해서 각기 상징성을 갖는다.

 

◦ 입상立像 서 있는 상으로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입상은 통상 여원인, 시무외인을 한 경우가 많다. 이 수인을 여래통인 如來通印이라고 한다.

여원인與願印 왼손바닥을 아래로 향한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뜻이다.

시무외인施無畏印 오른손 바닥을 위로 향한다. 두려움을 없애 준다는 뜻이다.

 

◦ 좌상坐像 가부좌를 틀고 있다고 해서 결가부좌結跏趺坐라고 한다. 책상다리를 하는 자세로 오른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올린 다음 왼발을 들어 오른발에 올려 발바닥이 모두 위로 향하게 한다. 수인은 결가부좌를 한 다리 위에 왼손을 펴 놓고 그 위에 오른손을 가볍게 올려 놓는 선정인禪定印이 제일 먼저 나타난다.

 

◦ 반가상半跏像 의자에 앉아 한쪽 발은 내리고 오른쪽 다리를 왼족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반만 가부좌를 틀었다고 해서 반가상이라고 한다. 미륵의 자세다.

 

◦ 유희좌遊戲座 앉은 자세에서 한족 무릎을 세우고 거기에 편안히 기댄 자세로 보살상에 나타난다.

 

◦ 삼굴三掘, Tribhanga 몸의 중심을 한쪽 다리에 두고 다리, 엉덩이, 목이 S자로 휜 자세로 삼곡 三曲의 자세라고도 한다. 보살상의 자연스런 푠현에 나타난다.

 

□ 수인 手印, Mundra 부처와 보살의 내증內證으로 각기 나타내는 바에 따라 손 모양이 다르다.

 

◦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석가모니가 마귀를 항복시키고 땅을 가리키는 모습이다. 선정인의 자세에서 왼손은 다리 위에 두고 오른손을 무릎 위에 얹으며 가볍게 땅을 가리키는 자세이다.

 

◦ 설법인說法印 부처가 설법하는 자세로 두 팔을 가슴 앞에 올리고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는 자세이다.

 

◦ 지권인智拳印 비로자나 불의 수인으로 이 세상의 모든 지혜를 감싼 것을 상징한다. 두 팔을 가슴 앞에 모으고 왼손의 검지를 곧게 세우고 이를 오른손으로 감싸면서 오른손 엄지가 왼손 검지와 맞닿는 모습으로 한다. 이를 금강권金剛拳이라고 한다. 비로자나불은 모든 지혜의 모태이면서 다이아몬드처럼 견고하다는 뜻이다. 지권인은 밀교의 태장계胎藏界와 금강계金剛界중 금강계 만다라의 비로자나를 표현한 것이다.

 

◦ 아미타여래 구품인九品印 극락에 왕생하는 중생을 상품상생上品上生에서 하품하생 下品下生까지 나누어 표현한 것이다. 품위 표시는 엄지가 어느 손가락과 만나는가로 정해진다. 손가락이 검지와 닿으면 상푸므 가운데 손가락과 닿으면 중품, 약지와 닿으면 하품으로 나타낸다. 생의 푠현은 자세로 결정된다. 상생은 선정인, 중생은 설법인, 하생은 래영인이다.

 

선종

 

선종禪宗은 인도 28대 교주인 달마達摩대사가 520년경 중국에 들어와 북위의 낙양 동쪽에 있는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서 면벽구년面壁九年의 좌선坐禪을 하고나서, 경전에 얽매이는 교종을 극복한 혁신적인 불교사상이었다.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벽을 바라보면서〔安心觀壁〕’ 깨달음을 얻는 참선법에 의한 수행을 제시하였다. 이것이 선종이다.

 

선종은 제자 혜가에게 전수되었고 이후 계속 그 논리를 발전시켜 갔다. 5조 홍인弘忍의 뒤를 잇는 6조에 와서는 둘로 갈라져 신수神秀의 북종선北宗禪과 조계曹溪 혜능惠能(638~713)의 남종선南宗禪으로 나뉜다.

 

북종선은 차근차근 수행하는 점수漸修의 선법을 강조하였음에 반하여 남종선은 어느 순간 홀영히 깨닫는 돈오頓悟를 강조하였다.

 

남종선은 “경전에 입각하지 않고 본연의 품성을 보면 부처가 될 수 있다.〔不立文子 見性成佛〕”고 외치기에 이르렀다. 혜능이후 더욱 발전하여 8대조인 마조도일馬祖道一(739~788)은 “타고난 마음이 곧 부처〔自心則佛〕”이라고 선언하였다. 마조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마조가 있던 지명을 따 홍주종洪州宗이라 불리었다.

 

그리고 마조의 뒤를 이은 홍주종의 9대조가 홍주 개원사開元寺의 서당지장 西堂智藏(739~814)인데 서당지장에게는 도의道儀, 홍척洪陟,惠哲 등 신라인 제자가 3명 있었다.

선종이 처음 신라에 들어온 것은 지리산 단속사의 신행神行선사가 북종선을 전한 것에서 시작되지만 그때는 세를 얻지 못하였고 묻혀버렸다. 그리고 도의선사가 서당지장의 법맥을 이어받아 현덕왕 13년(821)에 귀국하면서 본격적인 선종이 뿌리내렸다.

 

도의 자신은 경주에서 선종을 포교하는 데 실패하여 설악산 진전사의 장로가 되었지만 그의 제자인 염거에게 배운 체징이 장흥 가지산 보림사에서 선종사찰을 개창함으로써 퍼지기 시작했다.

 

서장지장의 또 다른 제자인 홍척은 남원 지리산 실상사, 혜철은 곡성 동리산 태안사를 세우면서 하대신라에 선종사찰이 속속 개창되어 나중에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을 형성하면서 선종의 전성시대를 맞이한다.

 

오늘날 도의선사는 개정된 조계종 종헌에서 종조宗祖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