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스님을 그리며
성철(性徹, 1912~1993) 큰스님 입적 소식을 듣고
이튿날 해인사 퇴설당에 모셔진 스님의 영전에 분향하고 마주 서니 실로 감회가 무량했다.
2년 전 바로 이 방에서 스님을 친견했던 일이 마지막 대면이 될 줄은 미처 몰랐었다.
내게는 또 이 퇴설당이 선문(禪門)에 첫걸음을 내디딘 인연 터이기도 하다.
퇴설당(堆雪堂)은 원래 해인사의 선원(禪院)이었다.
선종의 제2조인 혜가(慧可) 스님이 달마대사를 찾아가 허리께까지 눈이 쌓이도록
물러가지 않고 법을 구해 몸과 목숨을 돌보지 않았던 구도의 고사에 서 유래된 이름이다.
그래서 정면 벽에 혜가(慧可)의 설중단비도(雪中斷臂圖)가 걸려 있었다.
선원(禪院)이던 퇴설당이 방장실(方丈室)로 개조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성철(性徹) 큰스님을 내가 처음 친견한 것은 1960년으로,
그때는 스님이 팔공산 파계사 성전암에서
사람들을 피하려고 암자 둘레에 철책을 둘러치고 안거하던 시절이다.
불교사전 편찬 일로 자문(諮問)을 얻기 위해 운허(耘虛) 스님을 모시고 찾아갔었다.
그때 스님이 기거하던 방에 산비둘기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자 비둘기가 날아와 내 어깨에 앉았다.
무섭고 엄하다고 알려진 스님이 한 방에 비둘기를 거느리고 계시는 걸 보고 친화력이 내 마음에 전해 왔었다.
큰 인물 주변에서는 흔히 신화와 전설이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야기 들은 스님의 처지에서 볼 때 본분사(本分事)는 결코 아니다.
스님이 출가 수행자로서 평생을 한결같이
투철한 구도(求道) 정신으로 일관해 왔던 일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자신에게 엄격했고 후학들에게는 옛 부처님과 조사들의 자취를 따르도록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하였다.
스님은 수행자가 지켜야 할 수칙으로 다섯 가지를 강조했다.
잠 많이 자지 말라.
말 많이 하지 말라.
간식하지 말라.
책 보지 말라.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
바꾸어 말하면 적게 자고, 적게 말하고, 적게 먹고,
지식에 안주하지 말고, 제자리를 지키라는 가르침이다.
진정한 수행자는 소욕(少欲)으로 지족(知足)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
그 연배의 스님네 중에서 스님처럼 책을 많이,
그리고 널리 읽은 분은 없을 듯, 싶은데 책을 보지 말라고 한 것이다.
참선 수행자에게는 그것이 설사 부처나 조사의 가르침이라 할지라도 눈엣가시와 같다는 것.
스스로 탐구해서 몸소 체험하는 일만이 참으로 자기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신문사에서 기획물로 인터뷰를 하기 위해 사전에 의논이 되어 기자들이 갔다.
일을 막 시작하려던 참인데 갑자기 안 하시겠다는 것이다.
까닭인즉, 몸도 고단하고 이런 때 사진을 찍으면 잘 안 나온다는 것이다.
기자들이 난감해하면서 어쩔 바를 몰라-하기에, 내가 대신 큰스님 방에 들어가 설득하기로 했다.
큰스님께는 대단히 죄송한 표현이지만,
어린아이 달래듯이 듣기 좋은 말로 차근차근 말씀드렸더니 못 이긴 듯이 인터뷰에 응하셨다.
인터뷰 끝에 기분이 좋으셔서 기자들과 함께 사진도 여러 장 찍으셨다.
이렇듯 어린아이 같은 면이 큰스님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스님은 어린아이들을 무척 좋아하셨다.
그들은 때 묻지 않은 천진한 부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해 여름 부탁받은 일이 있어 백련암으로 스님을 뵈러 갔더니,
나를 보시자마자 “법정 스님도 변했네.”라고 하셨다. 왜요? 라고 물으니,
전에는 무명옷만 입더니 이제는 화학섬유로 된 옷을 입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사실 나는 고집스럽게도 면직 옷만을 입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혼자서 자취를 하면서부터는 때도 덜 타고 빨아서 입기도 간편한 섬유 옷을 걸치기도 한다.
그리고 시주 것을 얻어 입는 처지에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주는 대로 입어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큰스님께서는 당신이 입으려고 챙겨둔 무명옷 한 벌을 내 성미에 맞도록 행건까지 챙겨 주셨다.
나는 아직도 그 옷을 기워가면서 잘 입고 있다.
큰스님의 자상하고 인자한 성품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일이었다.
스님은 다음과 같은 열반송(涅槃頌)을 남기셨다. 음색을 달리해서 옮겨 보았다.
한평생 무수한 사람들을 속였으니
그 죄업 하늘에 가득 차 수미산보다 더하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이리.
한 덩이 붉은 해 푸른 산에 걸려 있다.
선사들은 마지막 남긴 말조차 그 표현이 거칠고 과격하다.
산 체험을 죽은 언어와 문자를 빌려서 쓰자니 부득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열반송을 후학들은 자신의 선 자리를 되돌아보는 간절한 법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 덩이 붉은 해가 푸른 산에 걸려, 온 누리를 환히 비추고 있다.
<법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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