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사구게
절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아니한 시절이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 절 집 안 일에 익숙해 갈 무렵인데, 여름안거를 마치고 만행을 떠나던 어느 날, 노스님과 동행할 기회가 있었다.
가을 들판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어느 절에 찾아가는데, 갑자기 뱀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달아나다 더 이상 달아나지 못하고 똬리를 틀고는 혀를 내밀며 우리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뱀을 보기만 하면 웬일인지 소름이 돋고 불식간에 뒷걸음질을 친다. 그러나 그때, 노스님은 조용히 합장을 하고,
“나무대방광불화엄경”을 세 번 염하고 마지막으로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라고 아주 진지하게 외우셨다. 그 모습이 참으로 경건하고 병든 자식을 돌보는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아 보여서 나도 모르게 같이 합장을 했다. 그러고는 호기심에 살며시 지금 외우신 게송의 뜻이 무엇이냐고 여쭈었더니,
“이 게송은 가장 수승한 경전인 화엄경가운데 아주 중요한 대목으로서 미물을 만날 때마다 읽어 주면 이 중생이 보리심을 내고, 무덤 앞에서 외우게 되면 무덤 속의 영가가 천도되어 고통을 벗어나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 고 하셨다.
처음 불교를 접하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불교가 지향하는 세계관이 너무나 넓고 호방하고 또한 자상하고 섬세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 때 그 노스님이 하시는 말씀과 행동은 불교를 공부하는 나에게 가장 크고 새로운 개안이 아니었나 싶다. 그 뒤로부터 새벽에 鍾頌을 하면서,
원컨대 이 종소리 온 법계 두루하여
철위산 깊은 지옥 모두모두 밝아지고
삼도의 중생은 고통 여의고
도산지옥은 모두 부서져서
모든 중생은 정각을 이루게 하소서
하고 외운 뒤에 종을 한 번 탕 치면 그만큼 어둠이 밝아지는 듯이 느껴지고,
대방광불 화엄경을 세 번 외우고 탕 치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까워진 것 같고, 사구게를 외우고 탕 치면 마치 내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새벽에 종송을 하는 것이 무척 즐거웠으며 그 화엄경의 세계에 다가서려는 바람이 더욱 깊어졌다.
불교에는 만 가지 것은 못 가져가지만 오직 業만은 이 육신을 따라서 윤회한다고 하는 업 설이 있다. 중생은 자기가 지은 행위에 대하여 스스로 그 열매를 거둔다는 뜻이다. 이 업 사상을 잘못 이해하면 숙명론으로 알기 쉽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특히 願을 중시하여 숙명론의 오류를 극복하고 있다.
사람이란 진정으로 바라는 바를 간절히 염원하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적극적인 의미의 원력이 생기는데 그 원력은 인간으로 하여금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으로 지어나감을 말한다. 그 뒤로 나는 매일 아침 화엄경 읽기를 원력으로 세워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화엄경에 얽힌 이야기는 동양 삼국에 무수히 많다.
여기에 화엄경 사구게에 관한 영험담 한 가지를 소개해 보겠다.
당나라 예종 원년에 왕명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계율을 잘 지키지도 않고, 좋은 일을 남달리 많이 한 적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마침내 늙고 병들어 저승사자의 부름을 받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한 스님이 나타났다. (이분은 지장보살님의 화현이었다) 스님은 왕명간에게 한 게를 써 주며 외우라고 하였다.
이 게송이 앞의 화엄경 사구게인데 이것을 외우면 지옥을 벗어날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왕씨는 열심히 이 게송을 외웠고 이윽고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서 질문을 받게 되었다. “너는 무슨 공덕을 지었느냐?”
왕씨는 “저는 단지 사구게 한 구절을 외웠을 뿐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염라대왕은 감탄하여 왕씨를 마침내 석방시켰다.
더불어 대왕은 “이 게송을 외울 때에 이 게송을 듣는 사람은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서 해탈을 얻게 되리라.” 하였다. 왕씨는 죽은 지 사흘 만에 깨어났다. 이 영험담은 화엄경 세계의 작은 일화에 지나지 않지만, 화엄경이 제시하는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그에 따른 생명력은 인간 세계의 커다란 희망이다. 만일 모든 사람이 삼세일체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근본이 마음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지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다.
마음이 곧 조물주이다. 가령 열 사람이 한 방에서 같이 자다가 꿈을 꾸게 되면, 제각기 다른 꿈을 꿀 것이다.
꿈속에서 제 나름대로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A가 만든 세계를 B가 모르고,
C가 만든 세계를 D가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잠재의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깨어나면 하나의 방 속으로 돌아온다.
착한 마음을 쓰면 천당을 만들고, 악한 마음을 쓰면 지옥을 만들 것이다.
또 마음이 無心에 계합하면 열반의 경지요, 모든 사람이 착한 마음을 쓰면 이 땅이 바로 화엄 세계이다. 한 자락 망심이 사라지면 바로 海印三昧를 증득하는 것이다.
이렇듯이 화엄경 사구게는 인간의 마음에 그 바탕을 두고 세계의 발현을 제시하는 것이다. 괴롭고 어려울 때, 그 고통의 근원을 자기 마음에 돌리는 윤리적인 의미의 사구게만이 아닌 세계 존재의 인식으로서의 사구게의 위치는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인 것이다.
- 혜남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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