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46.도봉본연
한바탕 웃고 가노니 지옥과 천당을 가릴소냐
일제의 침탈에 맞서 조선불교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설립된 선학원(禪學院)은 1921년 남전(南泉, 1868~1936).석두(石頭, 1882~1954).도봉(道峯)스님이 설립을 발의했다. 남전스님과 석두스님 행장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도봉스님에 대해선 구체적인 내용이 전하지 않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조선불교월보(朝鮮佛敎月報>와 <유심(唯心)>그리고 해방직후 발간된 <불교신보(佛敎新報)> 등을 참고해 도봉본연(道峯本然, 1873~1949)스님의 행장을 정리했다.
“한바탕 웃고 가노니 지옥과 천당을 가릴소냐”
남전 · 석두스님과 선학원 설립 3대 조사
만해스님과도 교류 ‘조선불교 수호’ 발원
○…도봉스님은 남전.석두스님과 함께 선학원 3대 설립 조사(祖師)이다. 범어사 출신의 남전스님과 금강산의 석두스님, 북녘 최대 사찰인 석왕사의 도봉스님 등 세 스님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조선불교 수호와 선학 중흥의 기치를 내걸었다. 선학원 설립 당시 석왕사 경성포교당에 주석하던 도봉스님은 선학원 창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후 선학원은 스님과 불자들의 구심점이 되어 조선불교를 지키는 전위대 역할을 담당했다.
○…1918년 창간된 <유심>에 실려 있는 도봉스님의 ‘반본환원(反本還元)’이란 글은 참선 수행과 마음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도봉스님은 이 글에서 “心者(심자)는 萬法(만법)의 本(본)이며 衆生(중생)의 願(원)이라……”고 했다. 이는 “마음이라는 것은 모든 것의 근본이며, 중생이 바라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어 도봉스님은 “깨달음은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것으로, 오로지 마음으로 생각하여 추측해도 형태가 없는 허공”이라고 지적했다.
○…도봉스님은 만해(卍海, 1879~1944)스님과 각별한 사이였다. 세수도 6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두 스님은 일제에 항거해 조선불교 수호운동을 전개한 것은 물론, 지속적으로 교류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사실은 1927년경 경성복심법원 검사국에서 작성한 요시찰 명부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왜정시대 인물사료(倭政時代人物史料)’에 게재 된 만해 한용운 스님 기록에서 가장 가까운 인물로 도봉스님이 표기되어 있다. 대인관계를 적은 ‘사회관계’ 첫 부분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도봉스님이다. 만해스님과 도봉스님이 매우 가까운 사이였음을 증명하는 자료이다.
○…1944년 만해스님이 입적한 후에 쓰인 도봉스님의 서찰에서도 두 스님의 각별한 관계를 알 수 있다. 경봉(鏡峰, 1892~1982)스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도봉스님은 “용운화상의 불행은 우리 문중의 불행이니, 누가 탄식하지 않겠소”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고 있다. <삼소굴소식>에 실려 있는 도봉스님의 편지 원문 가운데 일부는 다음과 같다. “龍雲和尙之不幸(용운화상지불행) 吾門中不幸(오문중불행) 熱不感嘆哉(열불감탄재)”
○…도봉스님은 1949년 8월26일(양력) 오전7시 서울 선학원에서 원적에 들었다. 사바세계와 인연을 다하면서 남긴 임종게(臨終偈)에서 도봉스님은 “오늘에야 무상을 알았다”면서 “한바탕 웃고 간다”고 했다. 비록 죽음에 직면했지만 부처님의 무상(無常) 가르침을 이제야 알았다는 겸손함과 ‘한바탕 웃음’으로 생을 마감하는 수행자의 모습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임종게 원문은 다음과 같으며, 한글풀이는 법광스님(전 백양사 강주)이 했다.
“吾年七十七(오년칠십칠) 今日示無常(금일시무상)
呵呵大笑去(가가대소거) 地獄與天堂(지옥여천당)”
“내 나이 일흔 일곱 / 오늘에야 무상을 알았노라 /
한바탕 웃고 가노니 / 지옥과 천당을 가릴소냐!”
<불교신보>에 실린 임종게에는 吾(오)가 五(오)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도봉스님에 대한 기록은 전하는 것이 드물다. <조선불교월보> <유심> 등에 실려 있는 4건의 기고문이 전부나 마찬가지이다. 이들 잡지에 게재된 글을 통해 도봉스님의 행장과 생각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도봉스님은 무엇보다 참선을 중심으로 수행했다. 수좌들과 함께 선학원과 선우공제회(善友公濟會) 설립을 주도했으며, 한때 설봉산 석왕사 선실(禪室, 선원)의 좌주(座主)를 지내기도 했다. 좌주는 수법(修法).수계(受戒)를 담당하는 승강(僧鋼)과 같은 소임으로, 도봉스님이 석왕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스님은 1942년 10월 만해.성월.만공스님 등 당대 선지식들과 함께 <경허집(鏡虛集)> 발간에도 참여했다. 한편 1923년 8월25일자 <동아일보>에는 조선불교총무원(朝鮮佛敎總務院)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참석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 도봉스님의 강연 제목은 ‘해도현(解倒懸)’으로, 구체적인 강연 내용은 알 수 없다.
■ 도봉스님의 ‘심즉시불’ ■
“광대한 신심을 발하라”
도봉스님은 <조선불교월보>에 게재한 ‘심즉시불(心卽是佛)’이란 글에서 불법에 정진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 글에서 스님은 사람 몸을 받았을 때 열심히 정진하고, 신심을 내어 현묘한 도리를 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은 도봉스님의 ‘심즉시불’ 가운데 일부이다.
“…… 人身(인신)을 逸失(일실)하면 萬劫不復(만겁불복)하나리 可不哉(가불신재)며 不哀哉(불애재)아 然則箇箇人人(연즉개개인인)의 昭昭靈靈(소소영영)한 一點妙體(일점묘체)는 本來(본래) 不生不滅(불생불멸)하야 無古無今(무고무금)하며 無去無來(무거무래)라 …… 現今時代(현금시대)에 一般(일반) 同胞兄弟(동포형제)는 모쪼록 廣大(광대)한 信心(신심)을 發(발)하야 自己(자기)의 精神的(정신적)을 深深硏究(심심연구)하야 玄妙(현묘)한 道理(도리)를 透得(투득)하여 三界諸法(삼계제법)에 自由分(자유분)을 得(득)하며 天上人間(천상인간)에 獨尊權(독존권)을 行(행)하야 自他相(자타상)이 盡(진)하고 彼此見(피차견)이 斷(단)하면 平等性地(평등성지)에 安住(안주)하야 寸步不離(촌보불리)하고 天堂極樂(천당극락)을 坐以受用(좌이수용)할 뿐만 아니라 世世生生(세세생생)에 生死(생사)에 自在(자재)하야 十方世界(시방세계)에 隨念降誕(수념강탄)하야 廣度群品(광도군품)하야 自利利他(자리이타)에 二利俱成(이이구성)하며 自覺覺他(자각각타)에 三覺(삼각)이 圓滿(원만)하리니 千萬注意(천만주의)하며 千萬注意(천만주의)어다.”
■ 행장 ■
설봉산 석왕사 출가
경성포교당서 ‘포교’
도봉스님은 1873년 출생했다. 속성은 강(康)씨이다. 고향이 어딘지 그리고 유년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불명확하다.
스님은 23세 되던 1896년 함경남도 안변군 설봉산 석왕사에서 득도했다. 훗날 선학원 설립의 뜻을 같이 낸 석두스님도 1898년 석왕사에서 출가했다. 도봉스님은 1908년 7월15일 합천 해인사에서 비구계를 수지했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근세 선지식 경허스님이 북방으로 향하면서 들렸던 도량이 바로 석왕사라는 점이다. 1900년대 초반 경허스님은 석왕사 나한전 불사에 증명법사로 참여한 후 몸을 감추었는데, 도봉스님이 석왕사에 주석할 무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도봉스님은 1913년 2월10일 금정산 범어사에서 대교과를 졸업했는데, 이 같은 기록으로 보아 가야산 해인사에서 비구계를 받은 후 4년간 범어사에서 머물며 교학을 연찬했음이 확실하다. 따라서 1900년대 중반부터 1910년대 초반까지 해인사와 범어사 등 남방에 머물며 선교를 두루 익혔던 것으로 보인다.
1915년 석왕사 선실(禪室) 좌주(座主) 소임을 보면서 참선 수행을 한 도봉스님은 1918년 석왕사 경성포교당 포교사 소임을 맡아 상경(上京)한다. 이곳에 머물며 조선 각지의 스님들과 교류했으며, 일제의 침탈에 맞서 조선불교 수호에 적극 나섰다. 남전.석두스님과 선학원을 설립한 것이 1921년이며, 이듬해에는 선우공제회 창설에도 힘을 보탰다. 1922년 선우공제회 평의원을 지낸 도봉스님은 1923년과 1924년에도 선우공제회 이사를 역임했다. 1939년 9월1일 출가도량인 설봉산 석왕사에서 대종사(大宗師) 법계를 품수 받았다.
해방 후에 중앙선학원 상벌위원(賞罰委員)을 지낸 도봉스님은 1949년 8월26일(음력 7월3일) 오전7시 서울 안국동 선학원에서 입적했다. 세수 77세, 법납 54세. 영결식및 다비식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고, 당시 <불교신보>에 부고 기사만 실려 있다.
이성수 기자
[출처 : 불교신문 2498호/ 2009년 2월0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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