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23

[김택근의 성철 스님 평전] 11. “아무리 둘러봐도 중이 없구나, 너만은 스님이라 부를만하다.” ~ 15. 어머니를 업고 금강산을 구경하다

[김택근의 성철 스님 평전] 11. “아무리 둘러봐도 중이 없구나, 너만은 스님이라 부를만하다.” "성철은 용성 스님의 손상좌였다. 용성은 성철이 정진하는 모습을 기특하게 바라봤다. 흡사 할아버지가 손자의 글공부를 지켜보듯 했다. 용성이 보기에 성철은 큰 그릇이었다. 제대로 배워 제대로 간다면 크게 깨칠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성철이 선방에 앉아있으면 그대로 그득했고, 그 뒤태만 봐도 안심이 되었다." 성철은 1936년 스승 동산 스님을 따라 부산 금정산 범어사로 옮겨갔다. 의상대사가 문무왕(678년) 때 창건했다고 알려진 범어사는 신라 화엄십찰이었다. 금정산과 범어사라 부르게 된 연유가 ‘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다. ‘동래현 북쪽 20리 쯤에 명산이 있고, 산꼭대기에 금빛을 띤 우물이 항상 가득 차 있..

성철스님 2023.05.28

[김택근의 성철 스님 평전] 6. “그러고도 당신들이 중이랄 수 있습니까” ~ 10. “중이 못되면 급히 죽을 사주랍니다”

[김택근의 성철 스님 평전] 6. “그러고도 당신들이 중이랄 수 있습니까” 『"스물세 살 청년은 대원사의 가을 속으로 들어갔다. 대원사는 일제강점기는 물론이고 해방 후에도 대처승들의 절이었다. 작정하고 공부하러 들어간 그해 가을의 대원사 광경을 성철은 훗날 또렷하게 기억해냈다. 마당에는 속가의 옷들이 빨랫줄에 늘어져 있었고, 바람이 풍경을 울릴 때면 기저귀나 여자 속옷이 나부꼈다. 승려들이 왜경에게 술을 따르고 함께 고기를 뜯었다. 중들의 얼굴이 대원사계곡에 떨어진 단풍보다 붉었다."』 영주는 불교를 더 알고 싶었다. ‘문자가 없는 경’의 세계를 체험하고 싶었다. 아예 절집에 머물며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었다. 영주는 대원사를 자주 찾았다. 몸이 약해서 어릴 때부터 들렀던 절이었다. 영주가 요양(療養)이..

성철스님 2023.05.21

[김택근의 성철 스님 평전] 1. 저 언덕 너머로 ~ 5. 선승의 노래가 가슴을 쳤다 “아아 이런 공부가 있었구나”

[김택근의 성철 스님 평전] 1. 저 언덕 너머로 가야산 호령하던 호랑이, 스스로 낸 길 따라 영원의 세계에 들다 노승이 언덕을 건너가고 있었다. 해인사의 아침은 맑고 고요했다. 새소리만 퇴설당 작은 마당에 떨어졌다. 성철은 제자 원택의 가슴에 기대어 있었다. 몸은 무척 가벼웠다. 제자는 스승의 작은 숨소리에 제 숨소리를 포갰다. 아침공양을 마친 스님 몇이서 마당을 쓸고 있었다. 비질은 조심스럽고 섬세했다. 낙엽을 모아 태우며 연기가 사라진 쪽을 바라봤다. 오늘 ‘가야산 호랑이’가 저 연기처럼 사라질지도 몰랐다. 성철이 백련암에 올라 포효하면 가야산이 울었다. 그 일렁임과 그 울음은 어디로 스며들 것인가. 불생불멸이지만 빈 하늘은 쓸쓸했다. 비질을 멈추고 퇴설당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막 생겨난 햇살이..

성철스님 2023.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