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들이야기 60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27. 수월음관 - 도를 닦는 다는 것은 마음을 모으는 거여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27. 수월음관 도를 닦는 다는 것은 마음을 모으는 거여 외세가 밀물처럼 조선을 침략하던 19세기말. 백성들은 집 잃은 나그네처럼 처참한 생활로 연명했다. 이때 출현한 경허스님은 ‘조선의 등불’로 암울한 시대를 밝히며 수행의 길을 열었다. 경허스님 문하에는 수월.혜월.만공.한암 스님 등 걸출한 선지식들이 배출되어 법을 계승하고 불교의 생명을 이었다. 수월(水月, 1885~1928)스님의 행장을 일제강점기 를 비롯한 각종 자료와 증언으로 살펴보았다. “도를 닦는 다는 것은 마음을 모으는 거여” 경허스님 제자로 북장에서 가르침 전파 일심으로 천수주력 삼매일여 경지 도달 ○…설정스님(덕숭총림 수좌)이 혜암스님과 벽초스님에게 들은 이야기 가운데 수월스님의 출생과 관련된 내용이 있는데..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26. 금오태전 - 자기 보물 알고 쓰면 苦中에도 樂이 있다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26. 금오태전 자기 보물 알고 쓰면 苦中에도 樂이 있다 혜월스님 상좌 도암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금오태전(金烏太田, 1896~1968)스님은 만공스님 법제자 보월스님의 법맥을 이어 정진했다. 혜월스님과 만공스님은 경허스님 제자로 한국불교 중흥조이다. 전국 주요 선원에서 조실로 후학을 인도했던 금오스님은 해방 후 정법수호를 위해 정화불사를 추진했다. 금오스님의 수행을 원로의원 월서스님(금오사상연구소 이사장)과 혜광스님(수원 팔달사 주지)의 증언, 그리고 을 참고로 조명했다. “자기 보물 알고 쓰면 苦中에도 樂이 있다” 경허-만공-보월스님 법맥 이은 선지식 결제 해제 따로 없이 화두참구 수행정진 ○…“참선은 나를 찾는 것이야. 나를 모르면서 책만 많이 보는 것은 소용없어.” 금오..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25. 보월성인 - 만공스님과 염화미소 나눈 ‘첫 전법제자’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25. 보월성인 만공스님과 염화미소 나눈 ‘첫 전법제자’ 경허스님 법맥을 이은 만공스님의 첫 법제자인 보월성인(寶月性印,1884~1924)스님은 40세라는 젊은 나이에 입적한 탓에 뚜렷한 행장이 남아있지 않다. 보월스님 법맥은 금오태전(金烏太田,1896~1968)스님과 동산혜일(東山慧日)스님으로 이어져 한국불교 중흥의 꽃을 피웠다. 동산(덕숭총림 수덕사). 설정(덕숭총림 수좌).월서(금오사상연구소 이사장) 스님의 증언과 각종 자료를 중심으로 보월스님 행장과 수행일화를 조명했다. 만공스님과 염화미소 나눈 ‘첫 전법제자’ 예산 보덕사 조실로 주석하며 납자 지도 금오태전.동산혜일 스님에게 법맥 계승 ○…만공스님의 속가 형님으로 출가한 대은스님이 있었다. 대은스님은 충남 홍성에 있는..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24. 운허용하 - 남을 헐뜯지 말라…부처님 공덕만은 분명하다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24. 운허용하 남을 헐뜯지 말라…부처님 공덕만은 분명하다 “남을 헐뜯지 말라…부처님 공덕만은 분명하다” 평생동안 ‘독립 교육 역경 수행’ 실천 80 고령에도 ‘큰방 공양’ 빠지지 않아 운허(耘虛龍夏,1892~1980)스님의 평생 화두는 ‘독립.교육.역경.수행’이었다. 젊은 시절 조국 독립을 위해 나섰으며 학교를 설립해 인재양성에도 힘썼다. 교육불사는 출가수행자가 되어서도 일관되게 실천했다. 또한 역경(譯經)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우리 시대의 스승이었다. 운허스님의 삶과 수행을 월운스님(月雲, 남양주 봉선사 조실)과 신용철 경희대 명예교수, 고흥택 전 광동고 교장의 증언과 비문을 참고해 정리했다. ○…1972년 12월. 운허스님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이한상 전 불교신문 사..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23. 고암상언 - 삼천대천 세계에 佛恩 나퉈 자비광명 영원하라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23. 고암상언 삼천대천 세계에 佛恩 나퉈 자비광명 영원하라 종정을 3차례 역임한 고암상언(古庵祥彦,1899~1988)스님은 자비와 인욕으로 대중을 맞이하며 수행자의 위의를 잃지 않고 정진한 우리 시대의 선지식이다. 계.정.혜 삼학을 두루 갖추고 중생을 인도했다. 스님의 삶을 전법제자 대원스님(공주 오등선원 조실)의 회고와 비문을 비롯한 관련 문헌을 참고하여 재구성했다. “삼천대천 세계에 佛恩 나퉈 자비광명 영원하라” 계정혜 구비 종정 3차례 역임… 자비와 인욕으로 대중을 섭수 ○…나주 다보사에 주석할 무렵. 마침 보살계 법회를 하루 앞두고 신도들이 절에서 잠을 잤다. 그때 한 할머니가 밤중에 일어나 요강에다 볼일을 보았다. 예전에는 잠자리에 요강을 두는 일이 예사였다. 문제..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22. 동산혜일 - 위로는 은혜 보답하고 아래로는 중생 제도하라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22. 동산혜일 위로는 은혜 보답하고 아래로는 중생 제도하라 부산 범어사는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으로 한국불교의 종가(宗家)나 마찬가지. 수많은 선지식이 범어사에서 수행정진하며 깨달음의 향기를 세상에 드러냈다. 이 가운데 동산혜일(東山慧日, 1890~1965) 스님은 퇴락한 조선불교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교단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누구보다 앞장섰다. 동산스님의 삶과 수행을 비문과 법어집 등 각종 문헌과 후학들의 증언으로 다시 구성했다. “위로는 은혜 보답하고 아래로는 중생 제도하라” 퇴락한 한국불교 중흥 원력 앞장서 실천 예불 도량청소 울력 지키면 ‘불화 없어’ ○…지금도 범어사는 새벽 예불이 끝나면 대중들이 비를 들고 도량을 청소한다. 어둠이 채 가시기 전에 일주문부터 마당..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21. 진응혜찬 - 덕의 기운 순수하게 넘치는 해동 제일 강사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21. 진응혜찬 덕의 기운 순수하게 넘치는 해동 제일 강사 한국불교의 근.현대 강맥(講脈)은 한영정호(漢永鼎鎬. 1870∼1948)스님과 진응혜찬(震應慧燦, 1873∼1941)스님에게서 시작됐다. ‘남진응 북한영’으로 불릴 만큼 영향력이 컸던 두 스님은 경운스님 문하에서 함께 공부하기도 했다. 한영스님 행장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진응스님 행장은 구체적으로 전하지 않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문헌과 본지가 입수한 자료를 중심으로 스님의 발자취를 찾아보았다. “덕의 기운 순수하게 넘치는 해동 제일 강사” 왜색불교 침탈 맞서 임제종 설립 추진 화엄사 신명학교 개교 인재양성 앞장 ○…출가 전에 한학을 배우고, 출가 후에는 10년간 내전을 두루 익혔지..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20. 학명계종 - 도를 닦고 덕을 밝혀 불조에 부끄럽지 말라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20. 학명계종 도를 닦고 덕을 밝혀 불조에 부끄럽지 말라 일제강점기 ‘선농일치(禪農一致)’를 몸소 실천하며 조선불교 정체성을 지키고, 불법을 널리 펴고자 했던 학명계종(鶴鳴啓宗, 1867~1929) 스님. 고난의 세월에 맞서 고고한 학처럼 살다간 우리 시대의 선지식이다. 말과 구호에 멈추지 않고, 실제로 부처님 가르침을 구현했던 스님의 삶을 과 김종진 박사(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의 논문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도를 닦고 덕을 밝혀 불조에 부끄럽지 말라” 반농반선 몸소 실천하며 불교 혁신 원력 실천 황무지 개간 ‘앞장’ … 만해스님 최남선 ‘극찬’ ○…스님이 태어난 19세기 후반의 조선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외세의 침략과 부실해질 대로 부실해진 왕조는 민초들의 삶을 피폐하게..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19. 경운원기 - 덕을 쌓아야 부처되니 하나도 소홀히 말라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19. 경운원기 덕을 쌓아야 부처되니 하나도 소홀히 말라 1911년 일제는 친일 승려들을 앞세워 일본 조동종(曹洞宗)과 연합맹약(聯合盟約)을 맺고 조선불교를 장악하려고 했다. 이때 만해(卍海).석전(石顚).진응(震應) 스님 등은 임제종(臨濟宗)을 설립하여 조선불교 수호에 나섰다. 일제에 맞서는 조선불교의 중심으로 설립한 임제종의 관장(대표)으로 추대된 고승이 경운원기(擎雲元奇, 1852~1936)스님이다. 일제 암흑기 조선불교를 지키려는 스님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스님은 교학은 물론 조선불교 수호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비문과 등을 통해 경운스님의 삶과 수행을 살펴보았다. “덕을 쌓아야 부처되니 하나도 소홀히 말라” 만해스님 등과 임제종 세워 조..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18. 청호학밀 - 보시를 행하여 무쟁삼매 경지 얻었노라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18. 청호학밀 보시를 행하여 무쟁삼매 경지 얻었노라 1925년 여름 을축년 대홍수. 역사상 가장 큰 홍수로 한강을 덮친 수재(水災)였다.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8%에 해당하는 1억 300만원의 재산상 손실과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대참사(大慘事)였다. 당시 봉은사 주지 청호학밀(晴湖學密, 1875~1934)스님은 708명의 인명을 구하는 선행으로 세인의 칭송을 받았다. 정인보, 오세창, 이상재 선생 등이 을 발간해 스님의 뜻을 기렸을 정도. 청호스님의 삶을 행장 복원 차원에서 정리했다. 과 일제강점기 신문 내용을 참고했다. “보시를 행하여 무쟁삼매 경지 얻었노라” 1915년 ‘을축년대홍수’ 708명 인명 구제 오세창 정인보 등 ‘불괴비첩’ 선행 기려 ○…청호스님 행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