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들이야기 60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8. 한암중원 - 경허스님 법맥 이은 ‘한국불교 나침반’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8. 한암중원 경허스님 법맥 이은 ‘한국불교 나침반’ 맑고 깨끗한 계행과 넓고 깊은 학문 그리고 일행삼매(一行三昧)의 정진으로 수행 승가의 참 모습을 보여 준 한암중원(漢巖重遠, 1876~1951)스님. 한암문도회(회장 현해스님)와 오대산 월정사(주지 정념스님)는 어른스님의 선양사업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한국불교의 방향을 제시한 한암스님의 가르침은 지금도 유효한 출가사문의 나침반이다. 내장사 조실 동성스님과 조계종 원로의원 현해스님의 증언과 을 통해 한암스님의 수행을 살펴보았다. 선교능통 / 한학조예 경허스님 법맥 이은 ‘한국불교 나침반’ ○…스님은 수행자가 반드시 지켜야할 다섯 가지 덕목으로 참선, 염불, 간경, 예식, 가람수호 등 승가오칙(僧伽五則)을 제시했다. 어느 ..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7. 석두보택 - 번뇌 망상 끊어지면 생사도 끊어지는 것이다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7. 석두보택 번뇌 망상 끊어지면 생사도 끊어지는 것이다 올해 탄신 120주년을 맞이하는 효봉(曉峰,1888~1966)스님은 일제 강점기 판사직을 던지고 도인(道人)을 찾아 나섰다가 금강산 법기암에 스승을 만난다. “호랑이 눈에는 호랑이만 보인다”고 했다. 시대를 풍미하며 수행의 기준을 몸소 보이며 불법을 널리 편 효봉스님이 가능했던 것은 은사 석두보택(石頭寶澤, 1882~1954) 스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석두스님 제자인 석정(石鼎)스님의 생생한 증언으로 선지식의 삶을 복원했다. “번뇌 망상 끊어지면 생사도 끊어지는 것이다” 효봉.향봉.석정 스님 등 ‘한국불교 동량’ 길러 참선 수행과 검소한 생활로 후학들에게 귀감 돼 “화상은 어디서 나오셨습니까?” ○…1909..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6. 성암석구 - 만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 물처럼 살아라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⑥ 성암석구 만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 물처럼 살아라 동안거 해제이다.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오고 있다. 어김없이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가는 무상(無常)의 도리를 확인하는 시기이다. 분초를 쪼개 치열하게 수행하며 후학을 인되杉� 한 스님이 있었다. 높은 학식에 자만하지 않고 참선과 자비행을 실천한 성암석구(性庵錫九, 1889~1950) 스님의 삶을 원로의원 성수(性壽)스님의 증언을 통해 복원했다. “만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 물처럼 살아라” ‘일일부작 일일불식’ 백장청규 지켜 참선 정진 자비실천으로 후학 인도 “거지야 따라 오너라” ○… 풍요로운 농사를 위해 만든 저수지가 3년 만에 터지는 참담한 일을 겪은 뒤 집을 나왔다. “내가 그릇이 작아 주민에게 피해를 끼쳤으니, 더 ..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5. 석우보화 - 수심결 첫 대목 읽고 출가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⑤ 석우보화 “진정한 도는 부처님 문중에 있구나” 고결한 성품과 자상한 언어로 대중을 인도했던 석우보화(石友普化, 1875~1958)스님.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스님은 비록 불혹(不惑)이 가까운 나이에 출가했지만 수행 정진은 그 누구보다 치열했다. 수행자의 본분사(本分事)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던 석우스님이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올해 입적 50주기를 맞이한 스님의 수행을 되돌아 보았다. “진정한 도는 부처님 문중에 있구나” 조계종 출범 당시 종정으로 추대 동화사 금당선원 개설해 수좌 ‘지도’ 수심결 첫 대목 읽고 출가 ○…동래 범어사에 머물던 스님은 고려 말 보조국사가 지은 ‘수심결(修心訣)’ 첫 대목을 읽고 출가를 결심했다. “삼계를 윤회하는 고통은 마..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4. 만공월면 - 덕숭산 머물며 선풍 올곧이 세운 ‘대 자유인’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4. 만공월면 덕숭산 머물며 선풍 올곧이 세운 ‘대 자유인’ 불교에서 달은 깨달음을 상징한다. 에는 “달을 보라고 하니 손가락을 본다”는 구절이 나온다. 부처님 가르침은 깨달음에도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강을 건너면 뗏목이 필요 없듯 정각을 성취한 수행자는 자유로워야 한다. 전월사(轉月舍). ‘달을 굴리는 집’이란 뜻이다. 경허스님 법맥(法脈)을 계승한 만공월면(滿空月面, 1871~1946)스님이 만년(晩年)에 머물던 곳으로, 선지식의 경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불교 선풍(禪風)을 일으키고, 자유자재하게 살았던 만공스님 처럼 눈이 내려앉은 덕숭산을 찾았다. 덕숭산 머물며 선풍 올곧이 세운 ‘대 자유인’ 경허 법맥 이어‘진리의 길’로 납자 인도 조선 독립 염원하며 일본 ..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3. 만암종헌 - 도제양성.총림 개설로 한국불교 위상 제고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목차 바로가기☜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3. 만암종헌 도제양성.총림 개설로 한국불교 위상 제고 조선 팔경의 하나로 으뜸 경치를 뽐내는 장성 백암산 백양사. 사계절 언제나 아름다운 도량이다. 백양사가 지금의 사격(寺格)을 갖춘 것은 만암종헌(曼庵宗憲, 1875~1957)스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부분 전각이 만암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불사한 건물이다. 또한 광성의숙과 심상학교, 정광중고등학교를 세워 인재양성에 주력하는 한편, 왜색불교에 맞서 조선불교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조선불교 교정과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을 역임하는 등 불교중흥의 원력을 실천했다. 한없는 자비심으로 대중을 인도한 만암스님의 삶을 지난 16일 영광 불갑사에서 전법제자 수산스님(고불총림 방장)에게 ..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2. 용성진종 - 모든 것이 무상하고 만법이 다 고요하다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목차 바로가기☜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2. 용성진종 모든 것이 무상하고 만법이 다 고요하다 지난 11일 서울에 첫 서설(瑞雪)이 내린 날 종로 대각사를 찾았다. 서울을 하얗게 덮은 흰 눈을 맞으며 들어선 대각사는 용성진종스님(龍城震鐘, 1864~1940)이 창건한 도량으로, 스님의 향기와 온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조선 말기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를 관통하며 독립운동과 부처님 가르침을 펼치기 위해 정진했던 스님의 일생은 우리 민족과 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치열하게 정진했던 스님의 발자국은 눈밭 위에 고스란히 흔적을 남겨 지금도 후학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모든 것이 무상하고 만법이 다 고요하다” 평생 독립운동과 佛法 선양으로 ‘조국의 미래’ 준비 헌신 3.1운..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1. 경허성우 - 삼천 대천 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목차 바로가기☜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1. 경허성우 삼천 대천 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세상의 인간사야 모두 다 모두 다 부질없는 것, 덧없이 왔다가 떠나는 인생은 구름 같은 것…” 뇌졸중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던 가수 방실이의 노래 ‘서울탱고’ 가운데 일부다. 투병 중인 그녀는 지난 연말 한 공중파 방송에 출연해 동료들이 부르는 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보였다. 동료와 시청자들도 눈물을 훔쳤다. 누구도 부럽지 않은 명예와 재산을 가졌던 그녀의 쓸쓸한 모습은 한번 뿐인 인생에 집착하며 다투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삼천 대천 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동학사.천장암 정진후 호서 영호남 돌며 선풍 다시 일으켜 혜월.수월.만공.한암 스님 등 법맥 계승 한국..

[야운스님] 자경문(自警文)

주인공아! 나의 말을 들어라. 수 많은 사람들이 공허로운 문( 空門 ) 안에서 도를 얻었지만 너는 어찌하여 이토록 오랫동안 괴로움 속에서 전전하고 있는가? 너는 시작함도 없는 예전부터 금생에 이르기까지 깨달음을 등지고 세상의 티끌에 부합한 채 어리석고 어리석은 지경에 떨어져 항상 여러 악업을 지어 삼도( 三途 )의 괴로운 수레바퀴 아래로 들어갔으며 모든 선업을 수행하지 않았기에 사생( 四生 )의 업바다로 빠진 것이다. 신체는 여섯 도적(六賊 )을 따른 까닭에 언제나 악취에 떨어지니 곧 지극히 고통스러운 것이며, 마음은 일승( 一乘 )을 등진 까닭에 언제나 사람의 길로 태어나도 곧 부처님의 이전이거나 이후인 것이다. 금생에도 다행히 사람의 몸을 얻었으나 때는 바야흐로 부처님 이후의 말세이니 오호 애통하도다..

[성철스님] 삶에는 정답이 없다.

삶에는 정답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삶에서의 그 어떤 결정이라도 심지어 참으로 잘한 결정이거나 너무 잘못한 결정일지라도 정답이 될 수 있고 오답도 될 수 있는 거지요. 참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정답을 찾아 끊임없이 헤매고 다니는 것이 습(習)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답이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모두가 정답이 될 수도 있고 모두가 어느 정도 오답의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지나온 삶을 돌이켜 후회를 한다는 것은 지난 삶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정답이 아니었다고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가 정확히 내 자리가 맞습니다. 결혼을 누구와 할까에 무슨 정답이 있을 것이며 대학을 어디를 갈까에 무슨 정답이 있겠고 어느 직장에 취직할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