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관(中觀)사상과 유식(唯識)사상>
용수 상(일본)
부처님 입멸 후 용수(龍樹, Nigarjuna, 150경~250경)와 같은 걸출한 사상가의 등장은 대승불교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가 됐다. 용수가 등장한 시기는 부파불교가 한창 분파를 거듭해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시기였다.
흔히 불교 발전을 「근본불교 → 부파불교 → 대승불교」의 순서로 전개됐다고 한다. 그렇다고 각 사상의 발생과 소멸이 이렇게 확연하게 구분돼 단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부파불교가 끝나고 대승불교가 시작된 것도 아니다. 부파불교는 부처님 입멸 후 100~400년 사이에 분열을 거듭했지만, 기원 전후의 대승불교 흥기 이후에도 무려 700년 정도를 더 건재해, 부파불교와 대승불교가 병행해서 함께 발전한 시기가 700여년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용수가 본격적인 대승사상을 전개한 시기는 부파불교시대의 종말이 시작된 시점이 아니라, 부파불교의 아비달마가 한창 번성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학자들은 인도에서 불교사상의 다양화는 서로 교류하기 어려울 정도의 지리적 환경이 다르고, 교통이 힘들 정도로 멀리 떨어져 각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나름의 교학이 형성되는 경향을 보였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제2의 붓다, ‘용수보살’이라고까지 칭송받으며, 대승의 핵심 내용인 「연기(緣起)ㆍ공(空)ㆍ중도(中道)」사상을 정립시킨 것이 용수였다. 용수의 불교철학은 그가 저술한 <중론(中論)>의 중관사상(中觀思想)으로 대표된다. 용수는 <중론>을 통해 대승사상의 근본을 차원 높게 설명했다. 그 내용을 중관사상이라고 한다. 용수는 <중론>의 삼제게(三諦偈)로 일컬어지는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 아설즉시공(我說卽是空) 역위시가명(亦爲是假名) 역시중도의(亦是中道義) ― 인연이 생기는 진리는 공(空)이라 하며, 또한 가(假)라고도 하며, 또한 이를 중도라 한다.」
이는 공(空)ㆍ가(假)ㆍ중(中)의 삼제사상(三諦思想)으로 발전해 먼 훗날 천태(天台)교학의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용수가 말하는 공(空)의 개념을 연기의 성품으로 해석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공(空)을 ‘허무’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주장하며 나타난 논리가 무착(無着, Asanga, AD 310~390)과 세친(世親, Vasubanhu, 320~400?)의 형제가 주창한 유식(有識)사상이다.
무착과 세친 형제는 원래 서북인도(현재의 파키스탄 페샤와르)에 있던 간다라국(Gandhara國, 건타라국/健馱邏國)의 브라만 출신이다. 세친은 처음 부파불교(설일체유부)로 출가해 활동하다가 후에 형 무착의 권유에 의해 대승으로 전환했다. 유식학을 완성한 이 두 형제는 용수보다 150여년 후에 「공성(空性)의 오해」를 들고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두 논사는 공의 논리 대신에, 마음의 인식작용인 「식(識)」을 주체로 모든 불법을 설명하려 시도했다. 간명하게 말하면, 용수의 중론은 공(空)으로 대변되고, 세친의 유식은 식(識)으로 대변된다.
유식(唯識)은 그 출발이 중관을 비판하기 위한 사상이므로 태생적으로 중관사상을 비판하는 입장이었다. 즉, 유가행파는 요가의 실천에 기반을 두면서, 이론적으로는 유식설(唯識說)이라는 독자적인 교의를 확립하고서, 중관파와 함께 인도에서 쌍벽을 이룬 대승불교의 학파를 가리킨다.
유식학을 완성한 세친(世親)은 굳이 ‘족보’를 쫓자면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부파는 대승의 최상승법인 「아공⋅법공(我空法空)」이 아닌 「아공⋅법유(我空法有)」를 주장해서 유부(有部)라고 부르고 있다. 세친은 이 부파에서 대승으로 건너오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유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면이 있다.
유부(有部)의 견해인,「나는 공(空)해도, 법은 공(空)하지 않고 실체가 있다.」라는 말이 세친 사상의 출발이자 종착지이기도 하다. 유부의 법유(法有)가 유식학의 유식(唯識)으로 변한 것이 다를 뿐이다.
세친은 유식학 이전에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을 집필했다. 논서의 제목대로 법의 실체를 갈래갈래 분류해, 5위 75법(五位七十五法)으로 정리한 부파불교의 대표적 논서이다. 줄여서 <구사론>으로 불리는 이 논서는 산스크리트 본, 티베트 본, 한역 본 3종이 현존하고 구사종(俱舍宗)이라는 단일 종파의 소의경전이 될 정도로 비중 있는 저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서의 한계는 법은 실체가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해야 75법으로 분류가 가능하다는 소승의 법유(法有) 논리에 묶여 있음이다.
유식사상도 공(空)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건 애초에 공 자체를 부정한 유식학이 다시 공의 논리로 말한다는 해석 자체가 접근의 방식에 오류가 있는 것이다.
『설령 그 주장을 부분적으로 인정한다 해도 마음작용인 식(識)을 단계로 나누는 것은 유연해 보이지 않다. 유식학을 처음 접하면 마음을 해부하듯 해 놓은 작업에 매료돼 꽤 정교한 체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식의 체계가 상당 부분 인위적이고 이론적인 부분이 있다. 즉, 우리 마음은 예상이 불가능할 정도로 미묘해 식(識)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
예건대, 유식학의 제7식 말나식[분별, 사량식]과 8식 아뢰야식[함장식]의 경계는 구별이 아주 어렵다. 마치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깔 중 미세하게 ‘중간색’이 존재하듯, 7식이나 8식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마음작용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제8식이 전변(轉變)해 깨달음의 식이 된다는 유식학의 논리 역시, 그럴 경우 본래 더럽지도 않고 청정하지도 않은 근본 마음인 제8식의 정체에 의문이 생긴다. 그런 의문이 바로 여래장(如來藏)이라는 사상으로 그 미진한 부분을 보충하게 만드는 요소로도 작용하고 있다.』 ― 黔丹善士
중관파가 현상의 공성(空性)을 설파한 것에 대해 유식파는 현상의 발생근거에 대한 정밀한 고찰을 전개했다. 즉, 현실존재는 공(空)에 기초한다고 하는 점에서는 중관파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단지 이 현상세계가 일시적인 가상일지라도 현실에서 차별의 모습을 띠면서 존재하는 것은, 일정한 원인이 될 만한 근거가 있기 때문인데, 그것을 종자(種子)라고 했다. 이 종자는 순수한 정신작용으로서의 식(識)이고, 모든 현상은 단지 이 식에 의해 현현(顯現)한 것[유식(唯識)]이라고 했다.
세친(世親)의 유식에서는 제8식이 전변(轉變)해 청정무구한 깨달음에 이른다고 하지만, <반야심경>에서는 오히려 모든 마음의 움직임과 실체를 공(空)하다 하니, 잘 살피면 유식과는 오히려 상반되는 것이다.
1) 중관사상(中觀思想)
중관(中觀)사상은 용수(龍樹, 나가르주나)로부터 시작돼, 유식학파와 더불어 인도 대승불교의 양대 산맥을 형성했다.
용수는 불교의 궁극적 진리를 중도(中道)로 봤으며, 그렇게 중도로 보는 것을 중관(中觀)이라 해서, 중관학(中觀學) 혹은 반야중관학(般若中觀學)이라 한다. 그리고 중관사상이란 용수의 대표적인 저술인 <중송(中頌)>을 중심으로 한 사상으로서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사상의 이론적 체계를 수립한 것이다. 즉, <반야경>의 공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시킨 사람이 바로 용수(龍樹)이다.
초기불교의 연기설에서는, 현상세계는 연기의 이법(理法)에 따라 생기거나 사멸하거나 하는 개물(個物)의 집합에 지나지 않지만, 연기 이법 자체는 불변의 법칙(달마)으로 전제돼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용수는 연기 이법 자체도 본질적으로는 공(空)이라고 비판했다. 즉, 사물이 존재한다(有)고 하는 판단도,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다(無)는 판단도, 모두 「연기(緣起)=공(空)」의 입장에서는 부정되는 것이며, 이런 존재론적인 유와 무 두 견해를 끝없이 부정해가는 바에 참된 중도가 있다고 했다. 결국 중관학은 철학적으로 왜 이 몸과 정신이 연기이고, 공(空)인지를 밝혀놓은 학문이다.
중관사상은 용수의 제자인 제바(提婆, Kanadeva)에 의해 <백론(百論)이 발표되고, 그 후 청목(靑目/Piṅgala, 4세기 전반)에 의해 <중송>을 해석한 <중론(中論)>이 발표됨으로써 중관학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이 <중론> 속에 <중송>이 모두 포함돼 있으므로 <중송>을 <중론>이라고도 하며, 따라서 <중론>의 저자를 용수라고도 한다. 그리고 중관학파의 성립은 그 후 청변((淸辨, Bhavaviveka, 500~578) 등에 의해서 확립됐다고 본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중관사상에 의한 삼론종(三論宗)이 성립됐다.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에 의해 중관학 저서들이 한역(漢譯)돼, 당나라시대의 길장(吉藏, 549~623)에 의해 삼론종으로 확립됐다. 길장은 중관사상의 성격을 ‘잘못된 것을 타파해 올바른 것을 드러내는 것[파사현정(破邪顯正)]’으로 규정했다.
중관사상은 인간의 언어논리의 진실성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인간은 언어논리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인간 간의 교감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부처님도 언어논리에 의존함이 없이는 설법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언어가 없었다면 부처님 가르침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깨달음이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수단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인간의 언어논리에 의한 사물의 변별은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궁극적인 목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수단임이 틀림없다.
이와 같은 수단으로서의 지식을 갖는 것을 방편지(方便智)라고 한다. 그러므로 방편지 없이 깨달음의 길로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불교교학의 중요성이 있다. 인간의 언어논리에 의한 판별은 깨달음의 수단은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궁극적인 진리가 될 수는 없다.
이와 같이 단지 인간의 언어논리에 의해서는 궁극적인 진리를 증득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중관사상이다. 그리고 중관사상에서는 궁극적인 깨달음의 수단으로 반야지(般若智)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용수는 <중론> 속에 공사상의 이론적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중론> 제24장 18게에서,
「무릇 연기하고 있는 것, 그것을 우리들은 공성(空性)이라 설한다. 그것은 임의로 시설되어진 가명(假名)이며, 그것은 중도(中道) 그 자체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게송에서 볼 수 있듯이, 용수는 <반야경>에서 공이라고 설했던 것은 그것이 바로 연기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임을 명확히 밝힘으로써 공사상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분명하게 제시히고 있다.
이것은 곧 우리가 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실제는 모든 사물이 각기 독자적인 존재의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연기의 관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기의 관계로 이루어진 까닭에 연기의 관계를 떠나있는 독자적인 성질로서 자성(自性)이나 실체(實體)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용수는 이러한 연기의 인연관계를 떠나 있는 것을 자성(自性)이라고 부르고 따라서 자성이란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무자성(無自性)이며 공」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약 사물이 연기적인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독자적인 실체인 자성에 의해 생긴다고 한다면, 그 때는 자성이 서로 연기한다는 모순이 될 것이라고 설하고 있다. 곧 자성(自性)이란 인(因)과 연(緣)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자립적인 것이며, 또한 다른 것에 의존하는 일없는 항상 고정불변한 존재이지만 실제로 그와 같은 것은 생겨날 수도 없음을 용수는 지적하고 있다.
곧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의 상호관계로 생겨나는 것이고, 따라서 그와 같은 것은 곧 자성이 없는 까닭에 공(空)인 것이다. 이처럼 용수가 고정불변한 자성의 개념을 부정한 것은 그 자성의 관념이 우리 인간들의 망상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론>은 그와 같은 불변적인 성질로서 자성이란 존재하지 않고 그 자성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가 우리 삶의 세계가 연기의 이치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혔던 것이다.
<중론>이 이처럼 연기법을 바탕으로 「무자성 - 공」에 대한 논리를 수립해 <반야경>의 공관에 대한 이론적인 체계를 세우고 있지만, 이러한 이론적 체계에 무엇보다 중요한 관점을 용수는 이제설(二諦說)의 정립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이제(二諦)에 대한 교설은 공에 대한 이해와 직접적인 관계를 보이는 것은 물론, 동시에 용수 이후 <중론>의 주석가들 사이에서 그 견해 차이로 인해 중관파가 둘로 나뉠 정도로 중요한 쟁점이 되었던 교설이기도 하다.
용수의 반대자는 <중론> 제24장에서 말했듯이 만약 일체가 공(空)이라면 사성제(四聖諦), 사향사과(四向四果), 삼보(三寶) 등의 일체도 공해 모두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용수는 그 반대자가 공용(空用), 공성(空性), 공의(空意)에 대해 무지한 까닭에 그와 같이 스스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한 뒤 이제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세속제(世俗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의 2제는 불타가 의거해 설하는 것으로 이 2제에 대한 바른 이해는 진실한 뜻을 아는 관건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2제에 대한 본격적 논의는 용수 이후 <중론>의 주석가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나아가 용수는 ‘연기와 공성을 파괴한다면 세간의 일체 언어습관을 파괴하는 것이 된다.’라고 해서 연기와 공의 이치야말로 세간을 성립시키는 근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용수는 <중론>에서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관을 연기설과 같은 위치에 놓음으로써 공관을 이론적으로 해명하고 대승불교의 역사적 위상을 확립시켰다고 하겠다. 이로 인해 <반야경>으로 대표되는 대승불교는 역사적으로 그 연원이 불타에게 유래됐음을 분명히 하고, 아울러 대승불교의 역사적 의미를 더욱 공고히 했다. 훗날 세친(世親)의 유식에서는 제8식이 전변(轉變)해 청정무구한 깨달음에 이른다고 하지만, <반야심경>에서는 오히려 모든 마음의 움직임과 실체를 공(空)하다 한다.
2) 유식(有識)사상
세친 상(일본)
유식사상은 외계(外界-外境)에 실재한다고 생각되는 것은 다만 심식(心識)의 투영이며, 심식만이 실재한고 봤다.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는 말이 바로 유식의 근본 대의를 나타내는 말이다.
즉, 유식학이란 불교에서 마음의 역할과 구조기능, 마음현상을 밝히는, 불교심리학이라 할 수 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심리학일 것이다. 유가행파(瑜伽行派)의 선구적인 유가사(瑜伽師, 요가수행자)들은 선정을 닦는 과정에서 자각한 갖가지 영상은 다만 식(識, vijñãna)일 뿐이라는 지각이 ‘유식(唯識)’이고, 이 유식에 바탕 해 현상계의 모든 것은 마음을 반영하는 표상(Vijñapti)에 불과하므로, 오직 표상식(表象識) 뿐이라는 명제가 이 학설의 기본을 이루고 있다. 즉, 외계의 존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인식론사상이다. 이러한 유식학은, 마음의 세계가 인간에게 어떻게 번뇌를 일으키는가 하는 그 근본적인 원인을 탐구하려는 데에서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유식의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유식학의 목적은 제8 아뢰야식을 정화해서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중관파(中觀派)에 의해 주장된 공사상(空思想)의 불충분한 점을 보충하는 한편 중관파와 대립하면서 발전했다. 그리고 유식은 유가행(瑜伽行)이라는 수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유식유가행파라 불린다. 즉 요가의 실천(瑜伽行)이 이 학파의 성격을 특징짓는 명칭이 된 것이다.
요가(yoga)라는 것은 인도에서 옛날부터 행해진 정신통일의 실수법(實修法)이었다. 요가라는 말이 특정한 실수법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기원전 3∼4세기경에 성립된 <우파니샤드> 때부터라고 한다. 요가의 실수법에는 다양한 방법이 보이지만 대체로 자세를 바로하고 호흡을 조절해 명상에 이르는 것이다.
유식사상을 추구하는 유가행파(瑜伽行派, Yogācāra)의 소의(所衣)한 경전은 <화엄경> ‘십지품’의 삼계유심(三界唯心)의 가르침이었다. 유식학파는 <화엄경> 유심설의 직접적인 계승자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의경전이 <해심밀경(解深密經)>이다. 깊고 비밀스러운 법의 이치를 풀어낸다는 뜻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해심밀경>에서는 이러한 법의 이치, 곧 존재원리와 수행방법을 설하고 있다. 즉, 이 경의 ‘분별유가품’에서는 유가행(瑜伽行)의 실천방법을 설하면서 사마타(奢摩他, śamatha)와 위빠사나(Vipassana)의 지관(止觀)을 닦는 것에 대해 설하고 있다.
또 ‘지바라밀다품’에서는 보살이 닦아야 하는 10가지 수행단계를 설하면서 이 과정을 모두 이수해야 보살도가 성취된다고 했다. 그리고 10바라밀에 대해 설하면서 보살이 10바라밀을 실천해 큰 원력으로 중생들을 모두 지혜의 길로 인도해야 한다고 했다.
유가행(瑜伽行)이란 호흡을 조절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등의 지관(止觀;선정과 지혜) 수행과 관상(觀想) 등을 통해 바른 이치[正理]와 상응하려고 하는 수행법이다. 이러한 유가행의 체험을 바탕으로 아뢰야식이라는 새로운 심식(心識)과 이에 따른 체계를 도입함으로써 일체의 존재는 심식의 변전이며, 오로지 심식만이 실재한다고 하는 것이 유식사상이다.
유식학은 수행방법으로서 유가(瑜伽-yoga)를 중요시하므로 유가행파(瑜伽行派) 또는 유가파라고도 한다.
이러한 사상의 맹아는 이미 초기불교에도 있었지만, 부파불교시대에 더욱 논리화됐다. 붓다 교의를 보다 조직적으로 설명하는 데는 소승교리만으로는 너무나 부족해 소승불교의 부족한 교리를 보충하기 위해 인간의 심성론이 대두하게 됐다. 이것이 AD 4세기경에 나타난 유식학(唯識學)이다.
이 유식학의 이론적인 체계화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은 중관파(中觀派)와 함께 대승불교의 양대 학파를 형성한 유가행파(瑜伽行派)의 논사들이었다.
미륵(彌勒, Maitreyanatha, A.D 270~350)이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과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등을 지어 그 학설을 발전시켜 사실상 유식학파 시조가 됐다. 그래서 그런지 유식종 불교의 주불은 미륵불이다.
미륵의 제자 무착(無著, Assanga, AD 310~390)은 <섭대승론(攝大乘論)> 등을 저술해, 아뢰야식(阿賴耶識)을 근본으로 하는 인간 의식구조에 대한 조직적인 학설을 정립했다.
특히 무착(아상가)의 동생인 세친(世親, Vasubandha, 320~400)은 미륵과 무착의 논서들을 주석하면서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과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 등의 많은 저작을 통해서 유식학을 집대성함으로써 마음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불교적 언어로 표현했다. 이후 유식학은 인도는 물론 중국을 거쳐 한국에도 도입됐으며, 특히 신라시대에 많이 연구됐다.
그 후 유식학파는 세친(世親)을 계승한 진나(陳那, 480~540) 계통과 덕혜(德慧, Gunamati, 5세기 후반~6세기 전반)와 안혜(安慧, Sthiramati, 6세기)의 계통으로 나뉘었고, 전자는 호법(護法, 530~561, 다르마팔라/Dharmapāla), 법칭(法稱, 7세기)이 계승했다. 특히 6세기 호법(護法, 530~600)은 이론과 실천 전반에 걸친 내용을 담은 논서 <성유식론(成唯識論)>을 저술해 아뢰야식의 존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증명했다. 그리고 이 유파의 학설은 진제(眞諦, 499~569)에 의해 중국에 전파돼 섭론종(攝論宗)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호법의 제자 계현(戒賢, śīlabhadra)은 호법의 가르침을 받고, 그의 뒤를 이어 나란타사를 총괄했으며, 현장(玄奘, 602-664)의 스승이었다. 630년 당 현장이 그곳에 이르러서 계현에게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을 비롯해 여러 논서를 배웠다고 한다.
유식학의 역사는 크게 3기로 나뉘는데,
제1기는 미륵(彌勒)과 무착(無着)의 유식학이고,
제2기는 세친(世親)의 유식학이며,
제3기는 호법(護法)과 안혜(安慧) 등의 10대 논사의 유식학이다.
유식학은 인간의 마음이 주체가 돼 삶의 현상을 창조한다는 대승적인 학문이며, 동시에 인간의 심성을 가장 세분화해 설명해 주는 학문이기도 하다. 그 사상의 핵심을 보면,
• 번뇌로운 마음을 중심으로 한 선악의 개념과 윤회하는 중생의 심성을 설명하는 학설,
• 청정무구한 불성(佛性)과 여래장(如來藏), 진여심(眞如心)을 설명하는 학설,
• 선악의 범부심을 정화,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추구하는 보살도 수행을 설명하는 학설이다.
• 용수(龍樹)의 중관사상 또는 공(空)사상이 지나치게 공허한 사변으로 치우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유식학파는 종파로 성장하지 못하고 소멸됐다. 비록 종파로서 성장하지 못하고 소멸됐지만 그 사상은 불교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므로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유식학을 몰라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유식학은 상당히 어려운 교의이다. 교학과 함께 실참 수행도 함께 해야만 접근 가능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경전에 “마음이 청정하면 중생도 청정하고 마음이 고뇌하면 중생도 고뇌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마음이 생기면 여러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여러 법이 멸한다.”라고도 했다. 이러한 말들은 모두 유식사상과 상통한다.
3) 중관(中觀)사상과 유식(唯識)사상의 관계
유식(唯識)사상은 용수(龍樹)가 정립한 중관(中觀)사상에서의 공(空)사상이 지나치게 공허한 사변으로 치우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용수가 죽고 80여년이 지난 4세기 전반에 대두됐다.
그리하여 유식사상은 중관사상의 공사상을 받아들이면서도 이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해석을 발전시켰다. 즉, 용수가 말하는 공(空)의 개념을 연기의 성품을 해석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공(空)을 ‘허무’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주장하며 내세운 논리가 유식(唯識)사상이다.
그리하여 유가행파(瑜伽行派)는 용수의 중관파(中觀派)와 더불어 대승불교의 두 기둥을 이루었다. 유가행파란 유식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래서 흔히 유가유식(瑜伽唯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유식사상과 중관사상은 대승불교의 기반을 이루고 있으므로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대승불교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 만큼 중요한 사상들이다.
불교의 목적은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서 고통의 현실 세계를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와 나와 우주의 배후에 있는 진리는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현실 세계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현실을 부정하고 있으며, 그 부정을 뒷받침해 주는 진리가 연기법(緣起法)이다. 부처님은 연기법에서 온갖 현상들은 다만 인연 따라 존재할 뿐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후에 부파불교에서는 만법(萬法)은 무아(無我)ㆍ무상(無常)이지만 그 만법을 이루는 요소(실체)는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반발로 다시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 부파불교의 실체설을 부정하는 공(空)의 반야사상이 나타났다.
그런데 공(空)사상의 공을 설명하기가 난해하므로 보충적으로 설해진 것이 중관사상(中觀思想)이지만 중관사상 역시 현실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있어 다시 나타난 사상이 바로 유식(唯識)사상이다.
용수(龍樹)의 중관사상에 의해 이론적 기반을 구축했던 공(空)사상은 필연적으로 ‘절대적 진리’를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인식의 문제가 쟁점이 됐다.
유식설은 이러한 인식 문제를 해명하면서 고도의 심리학적 이론을 전개해 나갔다. 이러한 유식사상은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인간 인식의 한계성 및 심층심리와 거기에 잠재한 이기성(利己性)의 실태를 정면에서 추구하고, 진실한 자기의 모습, 그리고 마음에 대한 성찰과 탐색을 했다.
중관사상이 현상의 공성(空性)을 설파한 것에 대해 유식사상은 현상의 발생근거에 대한 정밀한 고찰을 전개했다. 즉, 현실존재는 공(空)에 기초한다고 하는 점에서는 중관파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단지 이 현상세계가 일시적인 가상일지라도 현실에서 차별의 모습을 띠면서 존재하는 것은, 일정한 원인이 될 만한 근거가 있기 때문인데, 그것을 종자(種子)라고 했다.
중관사상은 공의 논리를 전개했으나 체계적인 학설을 세우지 않았다. 이에 대해 현실적 존재가 어째서 이 같은 질서 위에 성립돼 있는가 하는 까닭을 체계적으로 고찰한 것이 유식사상이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은 오로지 식(識, 인식작용)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사상의 요점은 상식적으로는 인식작용으로부터 독립된 실재라고 믿어지는 물질적인 것일지라도 그것은 모두 인식작용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인식작용이 보는 것이라면 그 대상, 즉 경계(境界)는 보여지는 현상세계라는 것이다.
반야사상이 지나치게 출가자 중심의 사상이었다면 유식사상은 중생과 깨달은 자를 구분해 현실성을 인정하면서 인간의 심층심리를 다루고 있다.
이와 같이 중관불교와 유식불교는 공이란 무엇인가, 마음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을 했고, 인간의 심원한 인간 심성을 정면에서 바라보면서 공과 마음의 해탈을 가르치고자 했다.
중관불교가 초기불교이래의 예지를 강조하고, 인간존재의 이법을 탐구하며 반야와 공의 실천을 강조했다면, 유식불교는 마음의 심층세계와 해탈의 심리를 탐구했다.
이와 같이 불교의 유심론적(唯心論的)인 경향이 첨예화돼 하나의 특별한 학파를 이룬 것이 유가행파라 할 수 있다. 유식설을 주장하는 유가행파가 독립된 학파로 등장하게 된 데에는 공(空)사상을 바르게 이해하고자 하는 요구가 있었다. 즉, 중관학파의 공사상을 허무주의로 해석하려는 사고방식을 시정할 필요가 대두됐던 것이다.
그리고 유가행파에서는 인간의식을 탐구하다가 아뢰야식(阿賴耶識/alaya-vijnana)이라는 근본식(根本識)을 획기적으로 발견을 한 것이다. 이 위대한 발견으로 그동안 교리 상 항상 문제가 돼 왔던 윤회의 주체를 해결할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이 학파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존재를 산출해 내는 근본식(인식작용)으로서 제8식인 아뢰야식이라는 것을 설정하고, 이것을 근본바탕으로 해서 그 위에 제7말나식(末那識, Manas)과 6식을 배치한 8식설을 주창한 것이다.
유식학은 중관학의 형이상학적인 측면을 보완하기 위해 현실성을 받아들여 일단 대승불교를 완성시킨 것이다. 따라서 이후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는 유식학의 바탕 위에 여러 종파가 부침하게 됐다.
그런데 중관학파의 <중론>에서는 자성(自性)이 있다고 가정할 때의 논리적 모순을 지적해 논파하고, 공성(空性)은 자성(自性)의 부재[무자성(無自性)]에 근거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연기(緣起) → 무자성(無自性) → 공(空)」 사상은 중관학의 창시자인 용수(龍樹) 철학의 근간이었다.
그러나 4세기 무렵 등장한 세친(世親, 바수반두/Vasubandhu)이 정립한 유식불교에서는 이러한 중관파의 입장을 방편적인 관점이라고 다시 비판했다. 그리하여 중관학파에서 「무자성(無自性) ― 공(空)」을 주장했음에 비해 유식학에서는 「자성(自性) ― 공(空)」을 주장했다. 다시 자성론을 긍정한 것이다.
인간존재엔 근본 마음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 근본 마음자리를 자성(自性)이라고 했다. 생각이나 인식작용(정신작용)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끝없이 반복하지만, 자성(自性)은 한 번도 생기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인식작용이 일어났다고 해서 늘어나거나, 인식작용이 사라졌다고 해서 줄어들지 않는다. 불생불멸(不生不滅) 부증불감(不曾不減)이다.
이 자성(自性)은 어떤 모습이나 형태도 없으며 무엇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다. 그래서 이것을 ‘공(空)’이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성-공」이라 하고, 자성(自性)에서 온갖 인식작용(정신작용)이 일어난다고 했고, 자성(自性)은 정신의 근원이라고 했다. 이후 중국의 선종(禪宗)에서도 대체로 이러한 유식사상의 입장을 존중했다.
이와 같이 중관학에서는 「무자성(無自性) ― 공」이라 하고, 유식학에서는 「자성(自性) ― 공(空)」이라 해서,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함으로 해서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자성이 있다고 했다가 자성이 없다고 했다가 하는 등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이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이 글을 작성함에 많은 분들의 글을 참조하고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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