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관련

인공지능의 쟁점과 불교✽ / 이도흠

수선님 2025. 6. 22. 14:07

1. 머리글

작년에 노벨상을 수상하였고 머신러닝과 딥러닝의 기초가 되는 불츠만머신을 개발한 제프리 힌턴 교수는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30년 안에 인류를 멸망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인공지능은 이미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빅브라더에 더하여 인간의 무의식을 부드럽게 조작하는 빅마더의 구실도 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전쟁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가짜영상과 알고리즘은 진실과 허위의 구분조차 무너트리고 보고 싶은 정보만 선택하도록 유도하며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effect)와 확증편향을 강화하면서 공론장과 민주주의를 붕괴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법적이고 윤리적 규제는 아직 미미하다.

알파고 충격 이후 치솟았던 대중의 관심이 잠시 잠잠하다가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하고 생성형 인공지능이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자 다시 솟구치고 있다. 많은 책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기존의 책들은 대략 3가지가 부족하였다. 인공지능이 인류 문명을 파멸시킬 만한 파괴력을 지녔기에, 관련된 쟁점에 대한 분석과 대안의 모색이 가장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는 당연히 자연과학과 인문학, 사회과학을 융합하여야만 제대로 답을 찾을 수 있다. 아울러, 기존의 책들은 기업가, 관료와 정치인, 과학기술자 등 엘리트의 관점에서 서술된 것이기에, 인공지능으로 인하여 가장 피해와 배제를 당하는 약자의 입장에서 서술한 책도 한두 권쯤은 있어야 대중은 균형을 유지하며 바라볼 수 있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하며 쟁점별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에 필자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뇌과학, 컴퓨터공학, 로봇공학, 생명공학 등을 융합하여 7가지의 난제와 쟁점, 3가지의 대안 쟁점 등 10가지의 쟁점에 대해 다루면서 약자와 윤리적 입장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책, 《인공지능의 쟁점과 대안》을 펴냈다. 이 주제에 더하여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불교가 인공지능과 사회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알아본다.

2. 인공지능에 대한 7가지의 난제와 쟁점

그리스의 피그말리온에서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오랜 꿈은 ‘인간을 닮은 기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럼, 인공지능이 인간의 본성을 닮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붓다와 예수, 맹자와 순자에서부터 리처드 도킨스나 에드워드 윌슨에 이르기까지 이에 대해 수많은 성인과 현인, 학자들이 각자 주장을 펼쳤다. 감히 말하건대, 이들의 주장이 틀린 것이 아니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으로 어느 한 편만 본 것이다. 이는 진화생물학, 사회생물학, 뇌과학, 인류학, 사회학, 철학과 역사를 비롯한 인문학을 융합하여야만 실체를 볼 수 있는 사안이다. 융합하여 분석하고 종합한 결과, 인간은 선과 악, 이기심과 이타성이 공존하는 유전적 키메라(genetic chimera)이며 생물학적 존재, 사회적 존재, 의미론적/윤리적 존재, 미적/유희적 존재, 초월적 존재의 복합체다.

생물학적 존재로서 인간은 유전자 웅덩이에 자신의 유전자를 더 늘리려는 이기적 유전자의 본능에 휘둘리는 생존 기계다. 반면에 뇌과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힘으로 다른 수컷을 제압하고 암컷을 독점하는 사자나 먹이를 빼앗는 하이에나처럼 본능에 휘둘린다. 하지만, 이를 전두엽의 이성으로 억누르고 거울신경 세포체계(mirror neuron system)를 통하여 약자의 고통을 자신의 병처럼 아파하며 연대의 손길을 내민다.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협력하면서 혈연적 이타성, 집단적 이타성, 호혜적 이타성, 윤리적 이타성을 추구하는 사회적 존재다. 인간은 1만여 년 전에 은유와 환유를 매개로 자연 지능, 과학기술 지능, 사회 지능을 융합한 이래 이기심과 본능, 욕망을 억누르고 의미를 해석하고 실천하는 존재다. 인간은 생존과 경제적 필요를 넘어 더 아름다운 것이나 놀이의 재미를 추구하는 미적/유희적 존재다. 인간은 세속적인 욕망과 가치와 의미, 유한성을 뛰어넘어 더 거룩하고 무한한 것을 지향하는 초월적 존재다.

인간은 서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조건과 원인이 되며 상대방을 생성하는 연기적(緣起的) 생성자(inter-dependent becom-ings)이다. 인간의 본성은 정적이지 않고 역동적이다. 인간은 타인, 사회문화적 맥락과 무수한 연기적 관계에 있으며, 타인과 소통, 교감, 협력, 연대, 교육, 문화, 정치, 종교에 따라 본성이 요동친다. 생물학적 존재, 사회적 존재로서 인공지능은 알고리즘화가 가능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의미론적/윤리적 존재, 미적/유희적 존재, 초월적 존재로서 인간성을 갖춘 인공지능이나 타자나 사회적 맥락과 결합하여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본성을 갖춘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은 흉내를 내는 데 그칠 것이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은 인간의 본성을 어느 정도 유사하게 갖출 것이고, 선한 인공지능도 여러 방식으로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초지능(super-intelligence)을 달성할 수 있는가?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다. 알파고 제로(AlphaGo Zero)는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 리(AlphaGo Lee)에게 100전 100승을 거두었다. 이처럼 딥러닝이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이것으로는 강인공지능을 만들 수 없다. 여러 한계가 있지만 데이터를 주어야 하고 에너지가 많이 들고 무엇보다 뇌처럼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뇌는 860억 개에 달하는 뇌세포에 달린 180조 개에서 320조 개에 이르는 시냅스들이 기억과 사고, 상상에 따라 네트워크를 달리하는 가소성이 있는데, 딥러닝은 소프트웨어가 변화하더라도 하드웨어는 변하지 않는다. 반면에 뉴로모픽 컴퓨팅(Neuromorphic Computing)은 학습 데이터를 축적할 필요가 없고 에너지가 적게 들 뿐만 아니라 인공으로 뇌세포와 시냅스로 어우러진 네트워크를 구현하는 것이기에 신경가소성이 있다. 발전 속도도 빠르다. 뉴로모픽 칩의 용량은 매해 거의 100배의 성장을 보인다. 뉴로모픽 컴퓨팅을 활용한 인공지능은 앞으로 30년 안에 인간의 지능을 넘어설 것이다. 하지만 슈퍼 인공지능은 쉽지 않고 엉뚱한 곳에서 결함을 보일 것이다. 인간의 마음과 무의식, 이에 영향을 주는 인간 몸의 유기적인 시스템을 완벽히 복제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는가? 인공지능이 초지능을 달성하더라도 자유의지가 없다면 그리 두려워할 것이 없다. 간혹 오류가 발생할 수 있지만, 대체로 인간이 만든 알고리즘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의지를 가질 경우 인공지능은 인간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다. 리벳 실험, 존 딜런 헤인즈(John-Dylan Haynes)의 실험, 로봇쥐 실험 등을 통해 미국의 과학계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없다고 본다. 유발 하라리와 같은 인문학자들도 인간의 자유의지가 없다는 전제로 《사피엔스》나 《호모 데우스》 같은 책을 썼다. 하지만 이는 실체론적 오류다. 생후 6개월의 아기에게 꽃과 거미, 물고기와 뱀의 그림을 보여주었는데, 꽃보다 거미, 물고기보다 뱀의 그림을 보여줄 때 눈동자가 훨씬 더 커졌다. 일란성쌍둥이임에도 절반 이상의 질병이 후성유전학적으로 다르게 나타났다. 이런 실험 결과를 볼 때 자유의지는 뇌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유의지는 뇌신경 세포와 온몸이 네트워킹한 결과다. 뇌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이성적 자유의지의 경우 뇌의 특정 부위의 뇌신경 세포와 시냅스 사이의 전기신호와 화학신호를 코드화하는 것이기에 언젠가는 알고리즘화가 가능하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이런 자유의지는 장착할 수 있다. 하지만 온몸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지는 자유의지는 인공지능이 모방하기 어렵다.

인간의 미세하고 복합적인 감정까지 닮을 수 있는가? 기존의 감정이론처럼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이 감정이 아니다. 우리는 감각 입력의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능동적 구성자다. 우리의 뇌는 감각 입력과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를 구성하고 행동을 지시한다. 감정은 보편적이지 않으며 사회적 실재(social reality)다. 나 혼자만의 개념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서 개념이 공유될 때 감정은 표출된다. 시뮬레이션과 예측 등 형성 과정에서 지각, 개념, 상대방과 관계, 문화적 맥락이 감정에 영향을 미치기에 이에 따라 나타나는 양상이 다르다.

감정을 계량화하려면 먼저 감정의 기원을 기쁨, 슬픔, 놀라움, 두려움, 화남, 역겨움의 기본 감정에 연결해야 한다. 칭찬이나 소망의 실현이 기쁨을, 상실이 슬픔을, 위험이 두려움을, 모욕이나 위협, 부당함이 화남을, 정신적/육체적 더러움이 역겨움과 연결될 것이다. 복합감정은 빨강과 노랑을 결합하면 주황이 되듯이 색상화 원리를 적용하여 기쁨과 슬픔을 결합하여 웃픔을 만드는 식으로 해결하면 된다. 선형 연산을 활용하여 시각 이미지를 분석하는 합성곱 신경망(CNN, Convolutional Neural Networks)과 음성 패턴과 억양 등을 처리하는 데 특화된 순환 신경망(RNN, Recurrent Neural Networks)을 활용하여 쾌락과 고통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정도인 정서가(valence), 흥분의 정도인 흥분도(arousal), 감정을 능동적/수동적으로 주도하는 정도인 주도성(dominance)을 벡터화하여 삼차원 모델로 위상화하면 섬세한 감정의 표현도 가능하다. 이어서 이를 표정 약호화 체계(FACTS, Facial Action Coding System)와 운동신경세포와 연결하면, 눈썹을 올리거나 내리는 등 감정을 표정과 행동으로 정밀하게 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서툴게 표현한다고 하더라도 인공지능을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인간이 많이 출현할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에 매료될수록 인간은 인공지능과 차이를 절감하는 역설에 빠질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인가, 억압할 것인가? 인공지능은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자신하였던 고도의 숙련노동과 예술의 창작에서도 이미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압도적인 세계 1위인 제조업 종사자 1만 명당 1,012명 비율로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다. 인공지능이 처리하지 못하는 부스러기 일을 하는 유령 노동(ghost work)이 새로운 노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공지능은 노동운동을 무력화한다. 인공지능이 노동을 대체할수록 노동자가 노동 거부로 자본에 저항하는 일은 어려워진다. 지금부터 대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인류 사회가 ‘로봇 봉건제’ 사회로 퇴행할 수도 있다. 21세기에는 로봇이 숙련 노동자와 반복 작업을 거의 모두 대체할 것인데, 로봇의 생산성은 인간보다 수십에서 수천 배 높다. 로봇을 매개로 생산한 가치는 로봇 소유주가 독점한다. 이는 노동시장을 전면적으로 파괴할 뿐만 아니라 노동을 기계의 작동으로 대체하며 노동의 종말을 부르고, 0.0001%의 로봇 소유주와 플랫폼 기업 소유자가 거의 모든 가치를 독점할 것이며 세계 경제는 중세 농업사회처럼 지대(rent) 중심의 경제로 전락할 것이다. 반대로 인공지능이 모든 노동자가 꿈꾸던 해방의 노동을 구현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이의 대안은 인공지능의 사회화다. 인공지능이 생산한 가치를 공유하고 인공지능과 관련 데이터를 시민사회가 통제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놀이와 예술을 종합한 진정한 자기실현으로서 노동이 가능하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정체성과 실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도구와 인간의 위상이 전복되고 있다. 330만 년 전에 인간이 다양한 석기를 제작한 이후, 도구는 인간이 자연을 자신의 의도대로 개조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방편으로서 연장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목적지만 누르고는 길 도우미(내비게이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운전자처럼, 도구가 우리의 주인이 되고, 우리는 초기 입력이 끝나는 순간 이를 보조하는 노예나 행위자(agent)로 전락하였다.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고 사람처럼 의식하고 감정도 표현하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본성과 정체성, 생명성에 근본적인 혼란과 파국을 가져올 것이다. 영국 드라마 〈휴먼스(Humans)〉의 애니타처럼 인공지능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사고와 표현, 행위를 하면서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를 해체하고 인간성, 인간 존엄성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이에 맞서서, 대체 불가능한 사랑을 하거나 소극적 자유, 적극적 자유, 대자적 자유를 종합한 진정한 자기실현의 노동을 할 때 인간은 가장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존재의 충만감을 느낄 것이다. 자신보다 약한 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그들을 고통받게 만든 현실의 모순과 세계의 부조리에 맞서서 저항할 때 인간은 강렬한 실존을 경험할 것이다. 무엇보다 인공지능이 갖지 못한 것은 죽음이다. 인간은 언제인가 죽기 때문에 유한성을 인식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번민하며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암환자처럼 하루하루를 의미로 충만하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고, 무한과 궁극적 실재를 지향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류 문명을 멸망시키는가? 인공지능에 대해 강력한 법적, 윤리적 통제를 하여 로봇의 4원칙을 철저히 지키도록 알고리즘을 만들고 인간을 해칠 기술적 장치들을 사전에 철저히 차단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생긴다. 과학기술과 기계는 인간이 선한 의도로 제작했다 하더라도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고, 부품이나 부분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더라도 상호작용이 이해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고 예상할 수 없고 예방할 수 없는 방식으로 증폭되면서 정상 사고(normal accident)를 발생시킬 수 있다. 자본은 이윤을 증대하기 위해서는 탈법이나 위법을 감행하면서까지 인공지능을 활용할 것이다. 전쟁 상황에서는 대다수 지도자가 국제법이든 국내법이든 법적 규제를 어겨서라도 승리하는 방편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할 것이다. 그럼에도 초지능을 달성한 인공지능이라 할지라도 자유의지가 없다면 대체로 인간이 장착한 알고리즘대로 움직일 것이기에 인류에게 상당한 해악을 끼칠지언정 멸망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하면서 기술적 특이점을 돌파하여 지능 폭발을 일으켜 초지능을 달성하고 자유의지를 가지면서도 선한 본성을 장착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에너지를 태양광으로 취하면서 수명의 제한이 없고, 자기 학습과 무한한 복제가 가능한 ‘불멸의 인공지능’이 인간을 벌레처럼 취급하면서 인간과 상호작용이나 공진화를 거부할 수 있다. 이 경우 인류는 멸망을 맞거나 매트릭스처럼 인공지능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3. 대안은 무엇인가

인공지능은 6대 복합위기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가? 흔히 대안은 당위적/선언적이거나 비현실적이다. 이를 지양하기 위하여 인공지능이 이 6대 복합위기에 대해 어떤 문제를 야기하고 대응을 취하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자. 우리는 지금 인류 700만 년의 역사 가운데 가장 험난하면서도 중요한 시대를 맞고 있다. 지금 지구촌 사회는 불평등의 극대화와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 기후위기와 환경위기, 패권의 변화와 전쟁의 위기, 4차 산업혁명/인공지능과 노동과 문명의 위기, 공론장의 붕괴와 민주주의의 위기, 간헐적 팬데믹의 위기 등 6대 복합위기를 겪고 있다. 이 위기들은 서로 얽혀서 다른 위기를 심화하고 있다. 이것과 얽혀 있기에 인공지능으로 야기되는 문제는 이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인공지능은 기후를 예측하고 개선하는 데 인간보다 몇천, 몇만 배의 능력을 발휘한다. 인공지능은 해양, 숲, 빙산의 변화를 단 몇 초 만에 측정한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보다 1만 배 더 빠르게 빙산의 변화를 측정한다. 스페이스 인텔리전스(Space Intelligence)는 30여 개 나라에서 위성 데이터를 사용하여 우주에서 100만 헥타르 이상의 땅과 숲을 지도로 작성한다. …… 영국의 신생기업 그레이패럿(Greyparrot)은 2022년에 67종 320억 개의 폐기물을 분석하여 회수하고 효율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시스템을 개발했다. …… 미국의 유지니 AI(Eugenie.ai)는 위성 이미지를 데이터와 결합하는 배출 추적 플랫폼을 개발하여 기업이 탄소 배출량을 20~30% 줄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기후를 예측하여 대비하고 바다와 육지의 오염물질을 측정하고 제거하는 데 사람보다 몇천 배 빠른 방안들을 제시하거나 해결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원료 물질을 추출하고 이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인공지능을 제작하는 데 많은 탄소를 소모한다.

인공지능은 불평등과 사회격차, 노동의 위기를 심화한다. 경제학자인 에릭 브린욜프슨(Erik Brynjolfsson)은 그의 논문에서 “인간과 유사한 인공지능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기술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소수의 시장 지배력을 증폭시키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임금을 낮춘다”라고 기술하였다. 경제학자인 대런 아세모글루(Daron Acemoglu)는 “실제로 1980년에서 2016년 사이에 미국의 임금 불평등이 심화한 요인의 50∼70%는 로봇과 AI, 알고리즘에 의한 자동화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앞에서 말했듯, 인공지능은 일자리를 앗아갈 뿐만 아니라 유령 노동자를 만들고 노동운동을 무력화하고 노동을 소멸시키고 있다. 앞으로 로봇 봉건제가 도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로봇과 인공지능과 관련 데이터를 공공재로 하여 사회화한다면 불평등도 완화하고 예술과 놀이가 결합한 해방의 노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전에 로봇/인공지능세를 신설하여 20세가 되는 모든 청년에게 3억 원 정도를 공여하는 기본자산제 등의 정책을 편다면 불평등을 대폭 완화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중심의 패권을 강화하고 전쟁을 더욱 격화시키고 있다. “인공지능(AI)은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에서 중요한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도움을 받아 군사정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지상 사진, 드론, 위성사진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하여 러시아군의 위치, 움직임, 무기체계 등을 파악하고 대응하고 있다.” 미국의 국방고등연구계획국은 잘 훈련된 병사의 뇌를 디지털로 복제한 인공지능 병사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핵무기보다 더 강력하게 전쟁의 판도를 바꿀 힘을 가지면서도 방사능 오염과 같은 위험이나 후유증이 없기에 각 나라들은 다투어 인공지능 무기 개발에 나서고 있다. 앞으로 각 나라가 인공지능을 더욱더 활발하게 전쟁에 활용할 것이기에 인공지능 무기나 대리 병사의 수준이 점점 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역할을 할 것이다.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패권을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기에 미국과 중국은 사활을 걸고 인공지능 기술 경쟁을 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공론장을 해체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아마존 등의 플랫폼은 인공지능과 연결하여 사실상의 검열을 하고 빅데이터를 수집한다. 이 플랫폼은 음란한 것이나 폭력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도 걸러 낸다. 페이스북은 정당하게 일본의 만행을 비판한 한국인들의 계정 이용을 차단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빅데이터를 수집하여 상업적으로 활용하고 때로 미국 정부에 팔아먹기도 한다.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부드러운 형식을 취하지만 빅브라더보다 더 강력하고 더 철저하게 지배하는 ‘빅마더’가 등장하고 있다. 빅마더는 어머니처럼 온화하고 부드럽게 대중의 의식만이 아니라 무의식까지 자신의 목적대로 조종한다. 빅마더는 폭력과 법 대신 알고리즘으로 통제한다. 대중들은 조작된 것인 줄 모른 채 빅마더가 원하는 바를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라 착각하고 이를 행한다. 한 예로, 눈동자 추적 기술(pupil-tracking-technology)은 정보 접근과 선택을 제한하고 조작한다. 눈동자를 추적하여 눈길이 어디에 얼마만큼 머물렀는지 분석하고 빅데이터로 모아서 소비자의 취향은 물론, 무의식의 세계까지도 들여다보고 이를 조작하는 정치광고나 상업광고를 제작한다. 자동으로 가짜뉴스를 생성하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가짜 합성물인 딥페이크는 공론장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대중의 의식은 물론 무의식마저 조작한다. 하지만 국가 단위든 지역 단위든 대중의 여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에 맞추어 정책을 개선하고 빠른 시간에 재정과 인력을 투여하는 데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직접 민주주의와 유사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위기 때 인공지능은 상당한 공헌을 하였다. “코로나가 빨리 확산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병에 걸렸음에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감염시키더라도 통제나 치료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MIT의 연구원들은 기침 소리만으로 COVID-19를 감지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MIT와 IBM의 연구원들은 지금 새로운 치료법과 신약을 개발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프로그래밍하고 있다. 전 세계의 여러 곳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챗봇은 전염병을 비롯한 공중 보건 지식, 심리학, 문화적 맥락과 현지 언어를 통합하여 학습한 후 환자와 상담하여 백신의 접종률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병의 진단, 전염병의 예후, 감염 추세와 경로, 확산 방지, 효과적이고 안전한 백신의 개발, 맞춤형 의료 서비스 개발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앞으로 이 분야에서 인간보다 수백, 수천 배 빠르게 성과를 낼 것이다. 이처럼 인공지능은 6대 복합위기를 더 심화하기도 하고 완화하기도 한다.

대안과 관련하여 그동안 최고의 쟁점은 ‘인공지능에 대해 윤리적, 법적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이다.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는 1942년 3월에 첫 출간된 《런어라운드(Runaround)》라는 소설에서 로봇 3원칙(Three Laws of Robotics)을 제시하였고, 나중에 ‘제로 원칙’과 ‘마이너스 1 원칙’을 추가하였다. 그간 인공지능의 윤리와 법적인 문제를 놓고 수많은 학자와 정책 당사자, 법학자들이 모여 많은 논의를 하였다. 유럽 의회는 이런 논의들을 모아서 2017년 2월 16일에 〈유럽 의회의 로보틱스 민법 규정에 관한 집행위원회의 권고를 포함한 결의안〉으로 결집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유의지가 없는 인공지능은 초지능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생각하는 기계’일 뿐이지만, 자유의지를 가진 인공지능은 기계를 벗어나 인격을 갖춘 제3의 인간이다. 자유의지가 없는 인공지능이 죄를 지었을 경우 그 책임은 인공지능보다 제작자와 소유주에게 있다. 하지만 자유의지가 있는 인공지능이 죄를 범할 경우, 가해 행위를 한 당사자인 인공지능에 일차적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대안은 알고리즘화한 거울신경 세포체계를 인공지능에 장착하고 상대방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빅데이터를 제공하여 인공지능이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게 하는 것이다.

스티븐 호킹(Stephen W. Hawking)의 주장대로, 인공지능이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을 막는 근본적인 대안은 초지능을 달성하고 자유의지를 가진 강인공지능에 관련된 기술을 국제사회가 모조리 일시에 폐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기술은 누구도 멈추지 못할 정도로 이미 궤도에 올랐고, 어떤 자본이나 국가도 이 기술의 폐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에 이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가능한 대안은 없을까? 인간이 강인공지능과 맞서서 이길 가능성은 없다. 인간은 선과 악, 이타와 이기가 공존하는 복합적 존재이고, 악한 인간도 있지만 선한 인간들이 늘 이들에 맞서서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헌신하였다. 대안은 선한 인공지능을 많이 제작하는 것이다. 어떻게 선한 인공지능을 만들 것인가?

첫째, 뉴로모픽 컴퓨팅 기술을 활용하여 인공지능의 두뇌에 거울신경 세포체계를 장착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도록 빅데이터를 제공하면, 인공지능이 선하고 약한 인간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여 악한 인공지능에 맞설 것이다.

둘째, 인공지능이 자기 앞의 세계에 대해 자율적으로 의미를 해석하고 의미를 좇아 실천하는 의미의 존재로 작동하도록 알고리즘을 만든다. 싸움에서 이긴 사자가 암컷을 독차지하는 것에 잘 나타나듯 “모든 생명체가 유전자 웅덩이에 자기 유전자를 늘리려는 이기적 유전자가 조종하는 생존 기계”라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론은 절반만 맞는다. 중세 시대에 가장 강한 권력을 가졌던 수행자나 성직자는 독신을 사수하였다. 성의 쾌락보다, 자기 유전자를 더 많이 남기려는 욕망보다 신, 무한, 영원, 깨달음, 열반, 구원과 같은 의미를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그처럼 인공지능에 인간처럼 의미를 만들고 해석하고 지향하고 실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장착한다.

셋째, 인간의 본성을 좌우하는 12가지 요인별로 알고리즘을 만들어 장착한다. 넷째, 인공지능에 공감과 협력을 의무적으로 학습시킨다. 다섯째, 인공지능과 인간의 협업 체제를 구성한다. 다섯째, 세계 정상을 위원으로 하는 가칭 ‘국가 간 인공지능 협의체’를 조직하여 6대 위기를 극복하는 방향의 인공지능 기술은 지원하고 서로 공유하되, 악화하는 인공지능 기술, 특히 인공지능을 전쟁 무기로 활용하는 것과 구글, 페이스북 등 거대 포탈 기업이 오로지 이윤 증대를 위하여 공론장을 붕괴시키는 것과 함께 알고리즘 조작에 대하여 법적으로 강력히 규제하는 것을 합의해야 한다.

4. 불교는 인공지능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불교는 인공지능에 어떤 역할과 기여를 할 수 있는가? 지면 관계상 두 가지만 제시한다. 화쟁 철학을 적용하면 적대적 생성망(GAN,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을 넘어 화쟁적 생성망(GHN, Generative Hwajeagian Network)을 구축할 수 있다. “적대적 생성망은 2개의 모델, 즉 식별기(discrimination)와 생성기(generator)를 적대적으로 운용하는 것이다. 생성기는 무작위로 추출한 잡음(noise)을 입력하여 가짜 데이터를 생성하고, 식별기는 이를 분별하여 가짜 데이터에는 정답 라벨 0을 붙이고 진짜 데이터에는 정답 라벨 1을 붙이며 학습한다. 다시 생성기는 계속 학습하여 생성한 가짜 데이터가 1에 가까워지도록 반복한다. 이처럼 적대적 생성망은 생성기와 식별기가 데이터와 식별 결과를 교환하고 서로 경쟁하면서 학습하는 구조다.”

GAN은 가짜나 허위 정보를 걸러내는 데 유용하다. 하지만 입력한 데이터에 따라 편향을 갖는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거나 지양하려면 화쟁 철학으로 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화쟁적 생성망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리로 알았던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서는 무너지며, 상대성의 원리를 비롯한 아인슈타인의 물리학도 미시의 영역에서는 적용되지 못한 채 양자물리학에 자리를 내준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사과를 보고 “저것은 사과다.”라고 규정하지만, 온도와 압력이라는 조건만 변해도, 아니 그대로 둔 채 시간만 지나도 그것은 주스, 술, 식초, 오물로 바뀐다.

화쟁의 논리에서는, 진리라고 확정한 것에도 허위가 있거나 다른 조건과 맥락에서는 허위일 수 있으니 이를 살핀다. 반대로 허위라고 확정한 것에도 일말의 진리가 숨어 있을 수 있거나 다른 조건과 맥락에서는 진리일 수 있으니 이를 탐색한다. 1단계로 적대적 생성망으로 진리를 추출한 다음, 2단계에서는 따르기도 하고 따르지 않기도 하는 화쟁의 순이불순(順而不順)의 논리를 응용한다. 허위 안에도 진리가 있을 수 있고 맥락에 따라 달라지니 모두 버리지 않고 따르고, 진리 안에도 허위가 있을 수 있고 맥락에 따라 달라지니 무조건 따르지 않는다. 이런 원리로 식별기 안에 생성기의 데이터를 학습시키고 생성기 안에 식별기의 데이터를 서로 학습시키면서 진리에 수렴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진리는 ‘A or not-A’의 비트(bit)가 아니라 ‘A and not-A’의 퍼지(fuzzy), 곧 핏(fit) 값으로 추출된다.

화쟁기호학을 결합하여 착한 인공지능의 제작이 가능하다. 필자는 화쟁기호학을 응용하여 〈시적/철학적 의미의 창조와 해석의 프로그래밍 방안〉을 만들었다. 이를 활용하면 인간이든, 인공지능이든 타인이나 데이터의 도움 없이 자율적으로 사전적인 의미를 넘어서서 시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를 창조하고 해석하는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다. 실제 별을 보고 ‘희망, 독립, 이상, 영원, 무한, 영원한 사랑’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시인이나 철학자처럼, 컴퓨터나 인공지능이 은유와 환유를 만들거나 해석하는 방법을 체계화하고 계량화하여 프로그램화할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다. 현재는 인공지능이든 음성인식 컴퓨터든 사전적인 의미와 맥락적 의미를 해석하는 단계, 그다음으로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거대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로 해석하는 단계에 머물고 있다. 이를 통해 인공지능이 방대한 양의 인간의 자연어를 학습하고 패턴화하여 인간과 높은 수준의 대화를 하고 피드백을 산출하지만, 인간이 계속 학습 데이터를 제공해야 하는 한계를 지닌다.

반면에 필자의 이 방안은 인공지능이 스스로 사전적인 의미를 넘어서서 시적 의미와 철학적 의미를 만들고 해석하는 방안이자,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언어기호를 매개로 세계를 형성하고 해석하는 구조를 체계화한 방안이다. 조너스 소크(Jonas Salk)나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수조 원에 이르는 돈을 벌 수 있음에도 소아마비 백신이나 윈도시스템을 공개하고 공유한 것에서 감화를 받아 필자 또한 특허를 받았던 것을 해제하고 이 방안을 《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 제1권의 부록에 공개하였다.

1단계에서는 화쟁기호학을 응용하여 사물을 품(현상과 형상), 몸(본질), 짓(기능과 작용)에 따라 유사성의 유추인 은유나 인접성의 유추인 환유로 의미 구성을 하는 것을 체계화한다. 은유는 ‘엄마 얼굴’을 그처럼 둥그렇고 환하다는 ‘유사성의 유추’를 하여 ‘보름달’ 같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환유는 ‘축구’에서 ‘메시, 박지성, 손흥민’을 떠올리는 것처럼 ‘인접성의 유추’를 하는 것이다. ‘초승달’의 형상에서 ‘쪽배, 눈썹’을, 달이 사라졌는데 초승달로 다시 나타나는 달의 본질에서 ‘부활, 순환’을, 달이 하늘과 땅을 오가는 기능에서 ‘신과 인간의 중개자’의 의미를 유추한다.

2단계에서는 세계관을 결합한다. 세계관은 세계의 부조리에 집단무의식적으로 대응하는 양식이자 의미를 결정하는 바탕 체계이자 허구임에도 모든 주체가 진리로 믿고 실천하여 현실을 구성하도록 만드는 상호주관적 실재의 체계이다. 인간은 세계관과 주어진 문화 체계 안에서 약호를 만들거나(encoding) 해독하여(decoding) 의미작용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세계관을 재구성하여 이를 1단계의 품, 몸, 짓의 은유와 환유에 연계시킨다. 예를 들어, 똑같이 ‘달이 높이 떠서 산과 들을 가리지 않고 비춘다’라는 문장도 불교적 세계관에서는 ‘관음보살의 자비가 신분이 높은 귀족과 낮은 양인(良人)에게 고루 베풀어지고 있다’이다. 반면에 유교적 세계관에서는 ‘임금의 은총이 신분이 높은 양반과 낮은 서민에게 고루 베풀어지고 있다’이다.

3단계로 맥락을 결합한다. ‘달을 그렸다’라는 문장으로 예를 들면, 이 말을 미술 시간에 사용하였다면, ‘지구의 위성을 그림으로 그렸다’라는 뜻이다. 어머니가 시험 점수를 묻는 맥락이라면, ‘0점을 맞았다’이다. 언덕에 올라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네의 맥락이라면 ‘남편을 그리워하였다’이다.

4단계로 가치지향을 결합한다. 세계관과 주어진 문화 체계 안에서 읽는 주체는 약호를 해독하여 의미작용을 일으키는데, 주체가 자신의 취향과 입장, 이데올로기, 의식, 태도, 발신자와의 관계 등을 종합하여 어디에 더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텍스트는 크게 나누어 지시적 가치, 문맥적 가치, 표현적 가치, 사회역사적 가치, 존재론적 가치를 지닌다. ‘절망에 잠긴 내 눈가로 별이 반짝였다’라는 언술을 예로 들면, 수용자가 지시적 가치를 지향하면 문장 그대로의 의미이다. 문맥적 가치를 지향하면 수용자는 앞뒤 문맥을 살펴 ‘절망에 잠긴 내 눈 앞에 벼랑이 (달빛 등에) 드러났다.’ 등으로 해석한다. 표현적 가치를 지향하면 이의 해독은 ‘절망에 잠긴 내 눈가로 눈물이 반짝였다’ 등이다. 사회역사적 가치를 지향하면 ‘절망에 잠긴 내 앞에 별과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등이다. 존재론적 가치를 지향하면 ‘절망에 잠겼던 내가 희망을 품었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5단계로 코드화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시적이거나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낱말 4,500개를 추출하여 도서 분류 기호처럼 범주에 따라 분류하고 숫자와 알파벳을 조합하여 낱말마다 1, 2, 3, 4단계로 의미사전을 만들고 코드를 부여하여 디지털화한다. 마지막 6단계로 1~5단계를 알고리즘화한다.

5. 불교는 인공지능 사회에 대해 무엇을 하며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한국불교는 아직도 중세 봉건 체제나 농업사회의 잔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임과 젠더에 따라 권력이 작동하고 사찰 민주화는 요원하다. 교육은 농업사회에 기반을 둔 교과과정을 아직 답습하고 있고 한문 공부에 태반의 시간을 허비한다. 청년과 어린이를 배려하여 법당을 입식으로 바꾼 절도 거의 없다.

근대화와 자본주의화를 겪었지만, 왠지 장점은 사라지고 단점만 도드라진다. 자본주의에 따른 물신주의, 소외, 소비향락주의, 경쟁에 지친 대중을 구제하는 도량이 되어야 하건만, 오히려 물욕과 탐욕이 지배하여 대중들이 절을 떠날 지경이다. 승가와 재가가 같은 권력을 갖고 사찰운영위원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절의 살림을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고 일정 부분을 사회적 약자들의 구제에 할애하는 절이 얼마나 있는가?

그러다가 탈근대 시대를 맞았다. 탈종교화 바람이 불며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종교를 가진 사람을 넘어섰다. 아직 절 안에 합리성과 과학성을 바탕으로 한 공론장을 조성하지 못하였는데 재주술화가 진행되어 승가와 재가 모두 팬덤과 비합리적 담론에 휘둘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불교가 인공지능 시대를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인공지능 시대의 사회에 대해 불교는 무엇을 하고 어떻게 변해야 할까? 가장 첫 번째 할 일은 인공지능을 제2의 인격체로 인정하고 이에 맞추어 불교가 변화하는 것이다. 이미 많은 학자와 대중이 인류세를 맞아 그 원인 가운데 하나인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를 성찰한다. 그중 하나로 적지 않은 이들이 자아를 인식하고 고통을 느끼며 감정을 구사하고 지능이 높은 유인원, 고래류, 코끼리, 까마귀나 까치 등의 일부 조류 등의 동물을 비인간 인격체(non-human person)로 부르며 인간과 동등한 대우를 하자고 주장한다. 문어와 같은 두족류와 반려동물도 포함하자는 이들도 있다. 이미 작년에 출시된 섹스 로봇은 맞춤 제작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질투도 하고 채근도 한다. 인공지능 스님이 인간 못지않은 활동을 하고 있다. 당연히 인간의 모습을 한 인공지능인 안드로이드를 인간과 동등하게 대우하고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 더 나아가 이들을 신도로, 스님으로 맞을 수 있도록 계율도 바꾸고 절의 체제도 바꾸고 교육, 포교, 신행을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이 기계를 제작한 이래 인간과 기계는 공진화(co-evolution)를 해 왔다. 기계가 인간을 향상시키고, 인간이 이에 맞추어 기계를 개선하였다. 인간과 인공지능도 공존하며 공진화를 모색해야 한다.

불교의 연기론, 특히 모든 존재를 연기적 생성자(inter-dependent becomings)로 보는 연기와 생성의 사유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토대가 될 수 있다. 인공지능에도 불성이 있는가. 인공지능은 본래의 탐욕도, 악업도 없다. 다만, 인간이 학습시킨 데이터와 인간이 장착한 알고리즘에 따라 악행을 행할 뿐이다. 이런 데이터를 지우고 알고리즘을 삭제하는 것이 인공지능에게는 삼독을 지멸하는 것이다. 초지능을 달성한 인공지능은 무명(無明)에서 벗어난다. 인간이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게 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거울신경 세포체계를 알고리즘화하여 장착하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는 동체대비심을 갖고 중생 구제에 나설 것이다.

이미 1950년대부터 식물도 고통을 느끼고 이에 대해 대응하고 표현한다는 것이 과학적 실험을 통하여 밝혀졌다. 모든 생명이 다른 생명을 먹고 물질대사를 하며 에너지를 얻어 생명성을 발휘함이 규명된 것은 훨씬 이전이다. 최근에는 우리가 통역을 통하여 외국어를 이해하듯, 식물이 고통하고 표현하는 것을 인공지능을 통하여 구분하는 실험도 이루어졌다. 텔아비브대학의 연구팀은 토마토가 평상시에는 시간당 한 번의 소리를 냈지만 5일 동안 물을 주지 않자 약 35회, 이파리를 자르자 25회의 소리를 냈다. 인공지능은 80% 확률로 이 소리의 의미를 인지하였다.8) 그렇다면 고(苦)의 개념도, 불살생의 범주도, 자비의 대상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손흥민이 자신보다 공을 더 잘 차는 동네 축구 선수를 만나면 자괴감에 빠질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닮고 인간의 능력과 지능을 넘어설수록 인간은 실존의 위기를 겪을 것이다. 인공지능과 공존하면서도 인간은 인공지능과 분명한 차이를 모색해야 한다. 그 차이는 창조력, 원천적인 공감과 자비심, 영성/열반일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스님이나 학자도 인공지능보다 팔만대장경을 잘 기억할 수 없다. 교리에 대한 창조적 해석과 맥락적 해석을 해야만 인간의 불교학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의미를 지닐 것이다. 우리는 부족함이 많기에 완벽을 지향하고, 삼독에 물들어 있기에 이를 말끔히 없애는 수행을 하며, 중생이 고통 속에 있기에 그들을 부처로 만들 때 비로소 나 자신도 부처가 된다. ■

 

이도흠 ahurum@hanmail.net

한양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국문학 박사). 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 계간 《문학과 경계》 주간 등 역임. 저서로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 《인류의 위기에 대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 《18-19세기 한국문학, 차이의 근대성》 《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 《인공지능의 쟁점과 대안》, 역서로 틱낫한의 《엄마》 등 다수. 현재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인공지능의 쟁점과 불교✽ / 이도흠 - 불교평론

1. 머리글작년에 노벨상을 수상하였고 머신러닝과 딥러닝의 기초가 되는 불츠만머신을 개발한 제프리 힌턴 교수는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30년 안에 인류를 멸망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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