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

[스크랩] 무비스님, 임제록 강설-상당(上堂) 9-1. 9-2

수선님 2018. 1. 14. 13:17

무비스님, 임제록 강설-상당(上堂) 9-1. 9-2

 

9-1 삼구(三句)

上堂(상당)에 僧問(승문), 如何是第一句(여하시제링구)오 師云(사운) 三要印開朱點窄(삼요인개주점측)[()]하고 未容擬議主賓分(미용의의주빈분)이로다 問(), 如何是第二句(여하시제이구)오 師云(사운), 妙解豈容無著問(묘해기용무착문)이며 ?和爭負截流機(구화쟁부절류기)리오 問(), 如何是第三句(여하시제삼구)오 師云(사운), 看取棚頭弄傀儡(간취붕두농괴뢰)하라 抽牽都來裏有人(추견도래이유인)이로다

 

임제스님이 법상에 오르자,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제일구입니까?”

임제스님이 말씀하셨다.

삼요(三要)의 도장[()]을 찍었으나 붉은 글씨는 그 간격이 좁아서 숨어 있으니,

주객이 나누어지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 스님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제이구입니까?”

임제스님이 말씀하셨다.

묘해[문수]가 어찌 무착선사의 물음을 용납하겠는가만는

방편 상 어찌 뛰어난 근기[무착]를 저버릴 수 있으랴.”

그 스님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제삼구입니까?”

임제스님이 말씀하셨다.

무대 위의 꼭두각시 조종하는 것을 잘 보아라.

밀었다 당겼다 하는 것이 모두 그 속에 사람이 있어서 하는 것이다.”

 

(강의)

이 삼구법문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구구하다.

우선 임제스님이 직접 말씀하신 삼구에 대한 설명을 잘 이해하면

구구한 여러 가지의 이야기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제일구(第一句)[제일의 소식, 제일의 도리],

여기에 삼요라는 도장[제대로 갖춘 진리의 도장. 제법실상의 도장]이 하나 있다.

그 도장을 찍었을 때 아직 찍은 도장이 종이에서 떨어지기 직전이라 붉은 글씨가 나타나지 않았다.

주관에 해당되는 도장과 객관에 해당되는 붉은 글씨가 아직 나눠지기 전이다.

주객이 나눠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그 뜻이다.


다시 말해 주관과 객관이 나눠지기 이전 소식이다.

음양이전의 태극이나 무극의 경지라고 보면 쉽다.

그러나 무극이나 태극 송에는 이미 음과 양이 잠재되어 있다.

주객이 나눠지기 전에도 주객은 이미 잠재되어 있기는 하다.

한 생각 일어나기 이전[一念不生(일념부생)]의 소식이다. 무생(無生)의 경지다.

마치 도장을 허공에다 찍은 것과 같다 라고도 표현한다.

한 순간도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본래 그대로 여여한 자리다.

부처니, 보살이니, 조사니, 성인이니, 범부니, 중생이니 보리니,

열반이니 하는 소리가 아이들의 동화처럼 들리는 경지다.


그래서 제일구의 소식을 알면 부처님과 조사의 스승이 된다고도 했다.

또 조사선(祖師禪)의 경지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제이구(第二句)[제이의 소식, 제이의 도리], 무착선사가 오대산의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장안에서 오대산까지 일보 일배(一步一拜)를 하면서 정성을 다해 갔다.

오대산 입구에서 한 거지노인의 모습을 한 문수보살을 만나 대화를 나눈 것이 벽암록 35칙에도 보인다.

이러한 이야기의 사실여부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불교에는 거의가 뜻을 위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그러므로 그 이야기가 뜻하는 바를 알면 그뿐이다.


문수가 무착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남방에서 옵니다.”

남방의 불교는 어떤가?”

말세의 비구들이 계율이나 조금 지키며 삽니다.”

대중들은 얼마나 되는가?”

3백 명, 5백 명씩 모여 삽니다.”

이번에는 무착이 문수에게 물었다.

이곳에는 불교가 어떻습니까?”

범부와 성인이 함께 살고, 용과 뱀이 뒤섞여 이느니라.”

대중들은 얼마나 됩니까?”

전삼삼 후삼삼(前三三 後三三)이니라.”


문수보살이 무착의 그와 같이 답지 못한 질문을 받고 방편으로 일일이

대화를 받아 준 것은 무착선사 같은 그 정성스런 근기를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객이 나눠지긴 했으나 그렇게 흔적이 오래 남진 않았다.

제이구의 경지를물에다 도장을 찍은 것과 같다.”라고 했다.

찍을 때는 찍히는 것이 있으나 도장을 떼면 흔적이 없다.

허공에다 찍은 것과 비교해보라.

또 제이구의 소식을 알면 세상 사람들의 스승이 된다고 했다.

여래선(如來禪)의 경지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제삼구(第三句)[제삼의 소식, 제삼의 도리], 꼭두각시나 인형을

움직일 때 잘 보면 모두가 무대 뒤에서 사람이 조종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인형으로 된 그 사람은 자신의 의지는 전혀 없다. 허수아비다.

사상(事相)과 경계와 사항들에 끌려 다니는 삶이다.

불교라는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수처작주, 즉 환경이나 대상이나 경계에 끌려 다니지 말고

어디서나 주제자로 있으라는 가르침이 절실히 요구되는 경지다.

마치 도장을 진흙에다 찍은 것과 같다.


걸음걸음이 상() 투성이요. 흔적 투성이다.

허공에다 도장을 찍은 것과 물에다 찍은 것과 함께 비교해 보라.

제삼구의 뜻은 알아봐야 자기 자신도 구제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의리선(義理禪)의 경지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삼구를 경절문(徑截門)과 원돈문(圓頓門)과 염불문에 비교해 보아도 이해에 도움이 되리라.

삼구, 이구, 일구의 차원과는 멀리 벗어난 향상일구(向上一句)가 있다.

무엇이 향상일구인가? “!”

 

 

9-2 삼현삼요(三玄三要)

師又云(사우운), 一句語(일구어)에 須具三玄門(수구삼현문)이요 一玄門(일현문)에 須具三要(수구삼요)니 有權有用(유권유용)이라 汝等諸人(여등제인)은 作?生會(자마생회)오 下座하(하좌)

 

임제스님이 또 말씀 하셨다.

한 구절의 말에 반드시 삼현문이 갖춰져 있고,

일현문에 반드시 삼요가 갖춰져 있어서 방편도 있고 작용도 있다.

그대들 모든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시고는 법상에서 내려 오셨다.

 

(강의)

진실한 자리에는 본래로 먼지 하나 두지 않는다. 그래서 공공적적하다.

이론이나 문자를 세우지도 않는다. 닦고 깨닫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의 근기를 섭수하고 교화불사를 일으키는 마당에는 한 가지 법도 버리는 일이 없다.

그래서 좀 어수선 하다. 이해하고 참아야 한다.

임제스님은 삼현삼요에 대해서 위의 말씀 외에는 없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구구한 설명이 따라다닌다.


우선한마디 말에는 반드시 삼현문이 갖추어져 있다.”라고 했는데

그 삼현이란 현중현(玄中玄)과 구중현(句中玄)과 체중현(體中玄)이다.

현중현은 말의 그 자체로서의 진실이다.

구중현은 말의 인식 위에 나타나는 진실이다.

체중현은 말의 실천 속에 나타나는 진실이다.

이러한 세 가지의 경우가 한 마디의 말에 다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또 이러한 설명도 가능하다.

한마디 말에 공관(空觀)의 입장과 가관(假觀)의 입장과 중도관(中道觀)의 입장이 있다.

진제(眞諦), 속제(俗諦), 중도제일의제(中道第一義諦)도 있을 수 있다.

한마디 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존재 모든 사물이 다 가능하다.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세 가지로 현묘하고 유현하게 볼 수 있다.


특히 사람을 만났을 때 또는 제자들을 훈도할 때 말의 활용을 나타낸 것이다.

법문의 깊고 얕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현문(一玄門)에 반드시 삼요(三要)가 갖춰져 있다는 삼요란 세 가지 중요한 것,

세 가지 요점, 즉 본질[()]과 현상[()]과 그 작용[()]이다.

이 본질과 현상과 작용이란 무슨 물건 어떤 말에도 다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사람을 제접할 때 근기의 활용을 나타낸 것이다.

법문의 얕고 깊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구 중에 삼현문이 있고, 일구 중에 구요(九要)가 갖추어져 있다.

다시 모르는 말 한마디 더한다.

제 일구를 운문종(雲門宗)으로 치면 다종다양한 부류의 근기들을 단칼에 다 잘라 버린다.

조동종(曹洞宗)으로 치면 바른 위치다. 그리고 소탕이다.

제 이구는 운문종으로 치면 하늘과 땅을 다 덮어 버린다.

조동종으로 치면 치우친 지위다. 그리고 건립이다.


제 삼구는 운문종으로 치면 파도를 따르고 물결을 쫒아 간다.

조동종으로 치면 모든 것을 함께한 가운데 이른 것이다.

임제록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삼구와 삼현과 삼요다.

하지만 순전히 엉터리다.

그렇다면 엉터리가 아닌 강설은 무엇인가.

이제 여러 분도 다 아는이다.

을 하는 나다. 활발발한 무위진인이다. 오로지 이 사실만 진실이다.


출처 : 제이제이
글쓴이 : 제이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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