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스크랩] 7. 관중생품(觀衆生品)

수선님 2018. 1. 14. 13:35

7. 관중생품(觀衆生品)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보살은 중생을 어떻게 관(觀)해야 합니까?"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예를 들면, 마술사[幻師, mykra]가 마술로써 만들어 낸 꼭두각시를 보는 것과 같이, 보살은 중생을 이처럼 보아야 합니다. 


(보살은) 지혜로운 사람이 물에 비친 달 그림자를 보는 것처럼,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을 보는 것처럼, 뜨거운 여름날[熱時]의 아지랑이처럼, (사람을) 부르는 소리에 (답하는) 메아리처럼, 하늘에 뜬구름처럼, 파도의 물보라처럼, 물에 뜬 거품처 럼, 파초(芭蕉)의 단단한 줄기처럼, 오랫동안 머무르는 (일이 없는) 번갯불처럼,14)(地·水·火·風의 4大 외에) 제5대(第五大)처럼, 15)(色· 受·想·行·識의 5陰 외에) 제6음(第六陰)처럼, (6識이 일으키는 6情 외에) 제7정(第七情)처럼, (12入處) 외에 제13입(第十三入)처럼, (18界 외에) 제19계(第十九界)처럼 이와 같이 중생을 보아야 합니다. 


무색계(無色界)의 물질[色]을 보듯이, 불탄 곡식[燋穀]의 싹과 같이, (身見을 끊은) 수다원(須陀洹)이 신견(身見)을 갖는 것처럼, (다시는 胎를 통하여 태어나지 않는) 아나함(阿那含)이 다시 태에 들어 생을 받음과 같이, (貪·瞋·痴의 3독을 모두 끊어 버린) 아라한이 갖는 3독(毒)과 같이, 진리를 깨달은 경계에 안주[得忍]하는 보살이 탐욕과 성냄과 계율을 범하고자 함과 같이, 부처님께 남아 있는 번뇌의 습기[餘習]와 같이, 장님이 형상[色]을 보는 것과 같이, 마음의 작용이 이미 다한 경지[滅盡定]에 든 사람의 호흡(呼吸)과 같이, 공중을 날아간 새의 자취와 같이, 석녀(石女)가 낳은 아이와 같이, 꼭두각시[化人]가 일으키는 번뇌와 같이, 이미 잠에서 깨어나 생각해 보는 꿈과 같이, 열반[滅度]에 든 자가 다시 몸을 받는 것과 같이, 연기(煙氣) 없는 불과 같이, 보살은 이와 같이 중생을 보아야 합니다."


문수사리가 물었다.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중생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관한다면, 어떻게 자(慈, maitr)를 행할 수 있습니까?"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보살은 이와 같이 관을 하고 나서 스스로 다짐합니다. 나는 마땅히 중생을 위하여 이와 같은 가르침[法]을 설할 것이니, 이것이 진실한 자(慈)입니다. 


열반의 경지[寂滅]에서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보살에게는) 이미 생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며, 

번뇌의 불에 타지 않는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보살에게는) 번뇌가 없기 때문이며, 

평등한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보살에게는) 과거·현재·미래의 3세가 없기 때문이며, 

다툼이 없는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보살에게는 다툼이) 일어날 곳이 없기 때문이며, 

차별이 없는[不二, advaya]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보살에게는) 안팎에 얽매임이 없기[內外不合] 때문이며, 

무너지지 않는[不壞]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필경에 가서는 다하기 때문이며, 

견고한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그 마음이 깨질 수 없기 때문이며, 

청정한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제법(諸法)의 자성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끝이 없는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보살의 마음이) 허공처럼 끝없기 때문이며, 

아라한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번뇌라고 하는 도적[結賊]을 물리치기 때문이며, 

보살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중생을 편안하게 하기 때문이며, 

여래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제법의) 진실한 모습[如相]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중생들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며, 

자연(自然, svarasamaya)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인연이 없이 스스로 깨달았기[無因得] 때문이며, 

보리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평등하여 일미(一味)이기 때문이며, 

모든 것을 초월한[無等, anropa]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온갖 애욕을 끊어 버렸기 때문이며, 

대비(大悲)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대승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며, 

싫증내지 않는[無厭]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공(空)과 무아(無我)를 관하기 때문이며, 

진리를 베푸는[法施]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남겨 두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기 때문이며, 

계를 지키는[持戒]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계율을 범한 이[毁禁]들을 교화하기 때문이며, 

인욕(忍辱)하는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나와 남을 지켜 주기 때문이며, 

정진(精進)하는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중생들의 무거운 짐을 져 주기 때문이며, 

선정(禪定)하는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감각적인 기쁨[味]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며, 

지혜(智慧)로운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교화하는) 올바른 때를 모르는 일이 없기 때문이며, 

방편(方便)을 갖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모든 것을 나타내 보여 주기 때문이며, 

숨김이 없는[無隱]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올곧은 마음[直心]은 청정하기 때문이며, 

깊은 마음[深心]으로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잡되게 행함이 없기 때문이며, 

속임수 없는[無誑]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헛되거나 거짓되지 않기 때문이며, 

안락(安樂, sukha)한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부처님의 행복을 얻도록 해 주기 때문입니다. 

보살의 자는 이와 같아야 합니다."


문수사리가 또 물었다.

"무엇을 비(悲, karu)라고 합니까?"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보살이 지은 공덕을 모든 중생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희(喜, mudit)라고 합니까?"

"이익을 얻으면 그것을 마음으로부터 기뻐하며 후회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엇을 사(捨, upeka)16)라고 합니까"

"복을 지어 도와주지만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문수사리가 또 물었다.

"생사에 두려움이 있는 보살은 무엇에 의지해야만 합니까?"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보살이 생사의 두려움에 있을 때에는 여래의 공덕의 힘에 의지해야만 합니다."

  

문수사리가 또 물었다.

"보살이 부처님의 공덕의 힘에 의지하고자 할 때에는 어디에 머물러야만 합니까?"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보살이 여래의 공덕의 힘에 의지하고자 할 때 마땅히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시키는[度脫] 일에 머물러야 합니다."

  

또 물었다.

"중생을 제도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무엇을 제거해야 합니까?"

답하였다.

"중생을 구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번뇌를 제거해야 합니다."

  

"번뇌를 제거하고자 하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올바른 마음을 내어야[正念] 합니다."

  

"어떻게 하면 올바른 마음을 쓸 수 있습니까?"

"마땅히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도록 마음을 써야[行] 합니다."

  

"어떠한 것을 생하지 않게 하고, 어떠한 것을 멸하지도 않게 해야 합니까?"

"불선(不善)은 생하지 않게 하고, 선법(善法)은 멸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선과 불선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몸[身, kya]을 근본으로 합니다."

 

"몸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욕심과 탐심을 근본으로 합니다."

  

"욕심과 탐심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허망한 분별을 근본으로 합니다."

  

"허망한 분별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도리에 어긋난 그릇된 생각[顚倒想]을 근본으로 합니다."

  

"도리에 어긋나는 그릇된 생각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의지하는 곳이 없는 상태[無住]17)를 근본으로 합니다."

  

"의지하는 곳이 없는 상태는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의지하는 곳이 없는 상태는 근본이 없습니다. 문수사리여, 이 의지하는 곳이 없는 상태가 근본이 되어 모든 법(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때 유마힐의 방안에는 한 천녀(天女)가 있어서 여러 보살들이 설법하는 것을 보고 듣고서 그녀는 곧 몸을 나타내 하늘 꽃을 보살들과 (부처님의) 대제자들 위에 뿌렸다. 보살들 위에 뿌려진 꽃은 땅에 떨어져 버렸지만, 대제자들 위에 뿌려진 꽃은 그들의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제자들은 신통력으로 꽃을 떼어내 버리려 하였으나 떼어내지 못하였다.


천녀가 사리불에게 물었다.

"왜 꽃을 떼내려고 하십니까?"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이 꽃은 법답지[如法, yogya] 못하므로 떼내 버리려 합니다.

  

천녀가 말하였다.

"이 꽃을 법답지 못하다고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이 꽃은 아무런 분별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킨 것일 뿐입니다. 만약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받들어 출가하고서 분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법답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분별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법다운 것입니다. 저 보살들을 보시오. 꽃이 달라붙지 않는 것은 이미 분별하는 마음[分別想]을 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사람이 두려운 마음을 지니고 있을 때에 비인(非人)에 홀리기 쉬운 것과 같이, 제자들은 생사를 두려워하고 있으므로 빛깔[色]과 소리[聲], 냄새[香], 맛[味], 감촉[觸] 등으로 홀리는 것입니다. 이미 두려움에서 벗어난 사람에게는 5욕 등이 전혀 힘을 미치지 못합니다. 번뇌의 습기[結習]가 아직 다하지 않았으므로 꽃이 몸에 달라붙은 것 뿐입니다. 번뇌의 습기가 없어진 이는 꽃이 달라붙지 않습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그대 천녀는 이 방에 머무른 지 오래되었습니까?"

천녀가 답했다.

"제가 이 방에 머문 것은 고덕[耆年]께서 해탈(解脫)하신 것 만큼 오래되었습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여기에 오래도록 머물렀습니까?"

천녀가 답했다.

"고덕이 해탈하신 것도 얼마나 오래되셨습니까?"

사리불은 묵묵히 대답하지 않았다. 


천녀가 말하였다.

"웬일로 고덕(古德)의 뛰어난 지혜를 지니고 계시면서 침묵하십니까?"

사리불이 답했다.

"해탈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에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천녀가 말하였다.

"말씀[言說]과 문자(文字)야말로 모두가 해탈의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해탈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 안이나, 마음 밖이나, 또 그 사이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자도 이와 같아서 안에도 밖에도, 또 안과 밖의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덕이시여, 문자를 떠나서는 해탈을 말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모든 것[法]은 그대로가 해탈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은 말하였다.

"그러나 탐심[]과 성냄[怒]과 어리석음[癡]을 떠나는 것을 해탈이라 하지 않습니까?"

천녀가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증상만(增上慢)에 사로잡힌 이들을 위해서만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떠나는 것이 해탈이라고 설하셨을 뿐입니다. 만약 증상만이 없는 사람이라면,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자성이 곧 그대로 해탈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천녀여, 그대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깨달았기에 그와 같이 훌륭히 설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까?"

천녀가 대답했다.

"저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고, 깨달은 것도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얻었다든가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는 증상만에 사로 잡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 천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세 가지 가르침[三乘] 가운데 어느 것에 뜻을 두고 있습니까?"

천녀가 대답하였다.

"저는 성문법(聲聞法)으로 중생을 교화하므로 성문(聲聞)이며, 인연법(因緣法)으로 중생을 교화하므로 벽지불(辟支佛)이기도 하며, 대비법(大悲法)으로 중생을 교화하므로 대승(大乘)이기도 합니다.

  

사리불이여, 첨복(瞻蔔, Campaka. 황금색의 꽃을 피우는 식물로 향기가 좋고, 껍질과 잎과 꽃에서 향료를 취한다.)의 숲에 들어가면, 오직 첨복의 냄새만을 맡을 뿐, 다른 냄새를 맡을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만약 이 방안에 들어오면 오직 부처님의 공덕의 향기를 맡을 뿐, 성문이나 벽지불의 공덕의 향기를 좋아하지 않게 됩니다.


사리불이여, 대체로 제석천이나 범천, 사천왕, 온갖 천신들, 용(龍), 귀신일지라도 이 방안에 들어온 자는 (유마힐이라고 하는) 훌륭한 분[上人]이 설하는 정법을 듣고, 모두가 부처님 공덕의 향기를 좋아하며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킨 다음에 나가게 됩니다. 사리불이여, 저는 이 방에 머문 지가 이미 12년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성문, 벽지불의 법을 설하는 것을 듣지 않고, 오직 보살의 대자대비(大慈大悲)와 불가사의한 제불(諸佛)의 가르침만을 들어 왔습니다.


사리불님, 이 방에는 항상 일찍이 한 번도 없었고[未曾有], 있기 어려운 일[難得之法] 여덟 가지가 나타났는데,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이 방은 항상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어 밤과 낮의 차이가 없으며, 태양과 달의 빛도 더 밝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또 이 방에 들어온 사람은 온갖 번뇌에 괴로워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이 방에는 항상 제석천[釋], 범천[梵], 사천왕천(四天王天), 그리고 타방(他方)의 보살들이 모여 와서 끊이질 않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이 방에는 항상 6바라밀과 불퇴전(不退轉)의 법이 설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네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또 이 방에서는 항상 천상과 인간[天人]의 가장 훌륭한 음악이 연주되고, 가야금의 줄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르침과 교화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이 방에는 네 개의 커다란 창고가 있어서 온갖 보배가 가득 차 있어서 가난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전부를 베풀어 주지만 그 바닥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여섯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이 방에서는, 석가모니불·아미타불·아촉불(阿佛, Akobhya.(無動) 혹은 무동불(無動佛)이라 번역. 노(怒)와 음욕(淫欲)을 끊고서 서원하여 부처가 되었다. 정토(淨土)의 해화불(解化佛).)·보덕(寶德)·보염(寶炎)·보월(寶月)·보엄(寶嚴)·난승(難勝)·사자향(獅子響)·일체리성(一切利成.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는 부처님의 다른 이름이다.)등 시방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부처님을 이 훌륭한 분[上人 : 유마힐]이 염(念)하기만 하면 곧 나타나 제불의 비밀한 가르침[秘要法藏]을 설하고 돌아갑니다. 이것이 일곱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이 방에는 제천의 엄숙하게 장식된 궁전이나 제불의 정토(淨土)가 모두 나타납니다. 이것이 여덟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사리불이여, 이 방에는 항상 여덟 가지 전에 없던 일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같은 불가사의한 일을 보면서도 누가 성문의 법 따위를 좋아하고 바라겠습니까?"


사리불이 말했다.

"그대는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습니까?"

천녀가 대답했다.

"저는 지난 12년 동안 (변치 않는) 여인의 상(相)을 찾아보았지만 찾아낼 수가 없었는데, 무엇을 바꾼단 말입니까? 비유하자면 마치 마술사가 마술로 허깨비 여인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허깨비에게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는가?'고 묻는다면, 이 사람의 물음이 옳은 것일까요?"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아니지요. 허깨비에게는 정해진 상[定相]이 없는데 바꿀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천녀가 말하였다.

"일체제법도 이와 같아서 정해진 상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느냐고 물으십니까?"

  

천녀는 즉시에 신통력으로 사리불을 천녀와 같이 바꾸고, 천녀 자신은 사리불과 같은 모습으로 몸을 바꾸고 물었다.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으십니까?"

사리불이 천녀의 모습을 하고 답하였다.

"나는 지금 어떻게 여인의 몸으로 바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천녀가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만약 당신께서 그 여인의 몸을 바꿀 수가 있게 되면 모든 여인들도 몸을 바꿀 수가 있게 됩니다. 사리불께서 여인이 아니지만 여인의 몸을 나타내고 있는 것과 같이, 모든 여인들도 이와 같아서 여인의 몸을 나타내고 있지만 여인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일체제법은 '남자도 아니며 여자도 아니다'고 설하신 것입니다."

  

천녀는 곧 신통력을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사리불의 몸은 본래와 같이 되었다. 


천녀는 사리불에게 물었다.

"여인의 몸의 특성[女身色相]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사리불이 답하였다.

"여인의 몸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닙니다."

 (티베트 본에서는 "여인의 몸의 특징은 만들어지지도(krta) 않았고, 변해지지도(vikrta) 않았습니다"고 되어 있다.)

천녀가 말하였다.

"일체제법도 그와 같아서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사리불이 천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곳에서 죽으면 어디에 가서 태어날 것입니까?"

천녀가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화신(化身, nirma)으로 태어나시는 곳에 저도 같이 태어날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화신으로 태어나시는 것은 죽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지요."

천녀가 말하였다.

"중생도 그와 같아서 죽어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리불이 천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앞으로 얼마 만큼 지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게 됩니까?"

천녀가 말하였다.

"만약 사리불님께서 다시 태어나 범부로 되돌아간다면, 그 때 저는 아뇩다라삼먁보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내가 또다시 범부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천녀가 말하였다.

"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일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니, 왜냐하면 깨달음[菩提]에는 머무를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도 없습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현재에 제불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고, 과거에 이미 얻은 부처님과 앞으로 얻을 부처님이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많은데, 이것은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천녀가 말하였다.

"이것은 모두 세속에서 쓰이고 있는 문자와 이치[數]를 빌렸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가 있음)을 설하였을 뿐, 깨달음에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천녀는 물었다.

"사리불이여, 당신은 아라한과[羅漢道]를 얻었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아무런 얻을 만한 것도 없으므로[無所得] 얻었습니다."

천녀는 말하였다.

"제불 보살님도 그와 같이 얻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얻은 것입니다."


유마힐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이 천녀는 지금까지 92억의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나서 이미 보살의 신통력을 마음대로 쓰면서 소원을 모두 이루고[具足], 무생법인[無生忍]을 얻었고, 이미 물러섬이 없는 경지[不退轉]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본원력(本願力) 때문에 마음대로 모습을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하고 있습니다."

출처 : 붓다의 옛길
글쓴이 : 실론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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