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선의 의미-
죽이는 칼(殺人刀)과 살리는 칼(活人劍),
이것은 존재의 본래 모습이자 살아 흐르는 삶의 알맹이다.
그러니 죽임에 대해 말하더라도 터럭 하나 다치지 않고,
삶에 대해 말하더라도 곧 목숨을 잃고 만다.
깨달음 그 자리는 어떤 성인도 전할 수 없는 것이니 어거지로 깨닫고자하는 이는
물 속의 달을 건지려는 원숭이와 같다.
殺人刀活人劍 乃上古之風規 亦今時之樞要. 若論殺也 不傷一毫. 若論活也喪身失命.
所以道 向上一路 千聖不傳 學者勞形 如猿捉影.
-『벽암록』제12칙. 洞山麻三斤-
조사선(祖師禪)이란 깨달음을 완성한 모든 조사들이 본래 이뤄져있는
깨달음의 세계를 바로 눈앞에 들어 보인 법문이다.
이 법문에 들면 말길과 생각의 길이 끊어지고 스스로가 본래 부처임을
명확히 깨달아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자재한 삶을 누리게 된다.
체로금풍(體露金風)이라는 말이 있다.
가을 바람에 잎이 다 떨어지면 나무의 본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에
맑은 가을 바람이 충만한 것을 표현한 말이다.
이와 같이 누구라도 조사선의 법문을 들으면 말과 생각이라는 자아의 존재방식이
허물어져 법계의 참 모습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조사선이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마흔다섯 해 동안 길에서 길로 다니며 쉼 없이 가르침을 펴다가
마침내 스스로 체득하신 깨달음의 세계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방법으로 마하가섭 존자에게 전하니,
이 일의 기연(機緣)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한 송이 연꽃을 들어 많은 대중 앞에 보이셨는데
그 대중들 가운데 오직 마하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부처님께서 연꽃을 들어 마음을 보이시자 가섭존자가 그 마음을 바로 깨닫고
미소로 화답해 드린 것이다.
“꽃을 드시자 빙그레 웃네” 이른바 “염화미소(拈花微笑)”가 바로 이것이다.
선(禪)은 염화미소의 뜻 깊은 기연으로 탄생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이 염화미소의 기연 외에도 두 번 더 이심전심의 방법으로
가섭존자에게 마음을 전하였으니 이것을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 한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전해주신 법은 그 뒤로도
스승과 제자 사이에 끊어짐이 없이 계승되었다.
인도에서 스물여덟 번째로 이 법을 물려받은 분은 보리 달마(菩提 達摩)조사이다.
달마조사는 중국으로 건너와 부처님의 진정한 선법禪法을 전하여
동토東土의 첫 조사가 되었던 것이다
-조사선의 흐름-
중국의 선종(禪宗)은 인도의 스물여덟 번째 조사이자 중국 조사선의
첫 번째 조사인 달마선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리 하여 부처님께서 전하신 선법은 초조 달마(達摩 ?~?), 이조 혜가(慧可 487~593),
삼조 승찬(僧璨 ?~606), 사조 도신(道信 580~651), 오조 홍인(弘忍 594~674),
육조 혜능(慧能 638~713) 선사를 통해 면면히 계승되어 선종의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였다.
마하 가섭존자로부터 혜능선사까지 선법을 이어온 전법조사들은 모두 서른세 분이다.
그래서 삼십삼 조사 또는 삽삼조사(?三祖師)라 일컫고 있다.
선은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마하 가섭존자에게 마음을 보여주신 일에서 싹이 텄다.
이 선법이 여러 조사들을 거쳐 중국에 이르게 되었으니, 달마 조사께서는
소림사에서 면벽구년(面壁九年)으로 마음자리를 보이셨고 역대 조사들께서도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가며 전해 왔기에 이를 조사선이라 한다.
조사선을 중국에 실질적으로 정착시킨 분이 육조 혜능(六祖 慧能)선사이다.
혜능선사는 모든 사람이 본래 지닌 자성自性을 직시하여 바로 그 자리에서
몰록 깨치는 돈오견성(頓悟見性)을 천명하였다.
중국의 선종이 면면히 흐를 수 있었던 것은 혜능선사가 이러한 돈오 선법을
온몸으로 펼쳐 냈기 때문이다.
혜능선사의 선법을 확고히 다진 분은 선사의 제자인 하택 신회(荷澤 神會 670~762)선사이다.
그는 오조 홍인선사의 문하에서 선법을 익혔던 신수(神秀 606~706)선사와
그의 문하 보적(普寂 651~739)선사가 가르친 선을 북종선(北宗禪)이라 부르고,
혜능 선사의 선법을 남종선(南宗禪)이라 하였다.
신회선사는 북종선이 점차적인 닦음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점수법(漸修法)으로 조사선의
방계(傍系)이며, 혜능선사의 남종선이 달마 조사가 전한 돈오법(頓悟法)으로 정통이라 하였다.
곧 신수선사의 북종선은 점차적으로 이르는 점수법인 반면 혜능선사의 남종선은
마음을 단도직입하여 견성하는 돈오법으로 이 두 선법은 수행과 깨달음의 길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신회선사 이후 조사선을 크게 융성시킨 분들은 마조 도일(馬祖 道一 709~788)선사와
석두 희천(石頭希遷 700~790)선사 문하의 선지식(善知識)들이다.
이들은 양자강 남쪽에 위치한 강서(江西)와 호남(湖南) 지방을 중심으로
조사선풍을 크게 진작시켰다.
마조선사의 법은 남악 회양(南岳 懷讓 677~744)선사가 전했고,
석두선사의 법은 청원 행사(靑原 行思 ?~741)선사가 전했다.
마조와 석두선사는 조사선의 가르침을 널리 펼쳐 뛰어난 제자들을 많이 거두어
선종을 역사 속에 확고히 뿌리내리게 하였다.
예를 들면 마조선사의 많은 제자 중에 백장 회해(百丈 懷海 749~814)선사가 있다.
백장선사는 선원(禪院)의 청규(淸規)를 제정하고 중국에 최초의 선 수행공동체인
총림(叢林)을 만들었다.
또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생활 원칙을
스스로 실천하여 자급자족하면서 수행에 전념하는 선원공동체의 기틀을 다져
선종을 역사의 반석 위에 우뚝 서게 하였다.
마조선사와 석두선사 문하의 많은 선지식들은 또 그 문하에 수 많은 선사들을 배출하여
선법이 중국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에 널리 확산되게 하였다.
9세기에서 10세기 중반에 이르면 석두계에서는 조동종,운문종,법안종이,
마조계에서는 임제종,위앙종의 오가(五家)가 성립되었고, 다시 11세기 중반에 들면
임제종에서 황룡파와 양기파가 분립되니 이른바 오가칠종(五家七宗)이라는
중국 선종의 황금기를 누리게 된다.
이후 오가칠종이 점차 쇠퇴하여 12세기 중반이 되면 조동종 계통의
굉지 정각(宏智 正覺 1091~1157)선사가 묵조선(?照禪)을 선양하게 되었고,
임제종 계통의 대혜 종고(大慧 宗? 1089~1163)선사는 이를 비판하면서
간화선(看話禪)을 체계화하여 널리 확산시켰다.
그러므로 조사선은 다시 수행방법상 묵조선과 간화선으로 나뉘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에 이른다.
대혜 종고선사가 체계화한 간화선은 조사선의 핵심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수행법이다.
즉 간화선은 조사선이 강조하는 견성 체험을 그대로 이어받았을 뿐만 아니라,
조사스님들께서 마음의 본래 면목을 바로 보였던 말길이 끊어진 말씀을 화두라는
형태로 잘 정형화해서 이 화두를 통해 지금 이 자리에서 마음을 깨치게 하는 탁월한 수행법이다.
-한국선의 역사와 전통-
한국의 간화선은 육조 혜능선사가 정착시킨 조사선의 흐름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는 조사선의 정맥이다.
한국에 이 선법이 처음 들어온 것은 신라 말과 고려 초기로 당시 당나라에서 유학한
구법승들이 중국에서 선법을 받아와 이 땅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부분 혜능 선사의 제자들에게 선법을 받아왔고 이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 바로 구산선문(九山禪門)이다.
고려시대에 이르자 이 구산선문을 통칭하여 “조계종(曹溪)”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혜능 선사의 선법을 이은 선종이라는 뜻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조계종”이라는 종명 또한 혜능선사가 머물며
돈오선법을 펼쳤던 산 이름에서 유래한다.
당송시대부터 혜능 선사를 조계 혜능(曹溪 慧能)으로 불려 온 점 으로 볼 때 조계종은
그 정체성을 조사선의 정맥을 잇고 있는데 두고 있음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구산선문과 그 선문을 연 개산조(開山祖)는 『선문조사예참문禪門祖師禮懺文』
1600年 正月 八公山 夫人寺 開板 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① 가지산문 도의(道義 783~821)국사
② 사굴산문 범일(梵日 810~889)국사
③ 사자산문 도윤(道允)국사
④ 성주산문 무염(無染)국사
⑤ 봉림산문 현욱(玄昱 787~869)국사
⑥ 희양산문 도헌(道憲 824~882)국사
⑦ 동리산문 혜철(惠哲 785~861)국사
⑧ 수미산문 이엄(利嚴 870~936)국사
⑨ 실상산문 홍척(洪陟)국사
『선문조사예참문』에서는 가섭 존자로부터 육조 혜능선사에 이르는 서른세 분의
삽삼조사 법계를 기록하고 난 뒤 구산 산문의 개산조를 위와 같이 밝히고 있다.
조계종의 종조인 도의국사는 혜능선사의 4세인 서당 지장(西堂智藏 735~814)
선사에게 선법을 받아왔다.
도의국사는 지장선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참구하여 의심 뭉치인 의단(疑團)을 풀고
드디어 막힌 체증을 뚫었다.
이를 본 지장선사는 마치 돌 속에서 아름다운 옥을 고른 듯, 조개 껍질 속에서 진주를 주워낸 듯
기뻐하면서 “진실로 이런 사람에게 법을 전하지 않고 누구에게 전하랴!”
洪州開元寺, 就於西堂智藏大師處, 頂謁爲師, 決疑釋滯. 大師猶若?石間之美玉, 拾蚌中之眞珠謂曰 ...
“誠可以傳法, 非斯人而誰” -『조당집』제17권. 하면서 법명을 ‘도의道義’로 고쳐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조사선은 우리나라 스님으로서는 최초로 도의 국사에게 전해진 것이다.
그런데 도의국사가 의단을 풀었다는 내용을 보면 국사는 지장선사에게 참문(參問)하여
가르침을 받고 스승이 전해준 말씀을 간절하게 참구하다가 깨달았음을 알 수가 있다.
물론 당시 조사선의 수행법은 간화선이 체계화되기 전의 선법이었다.
그렇지만 간화선이 체계화되기 이전 조사선에서도 화두 참구와 같은 방식의
수행법이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의 건국이념은 불교였다.
성종 이후에는 유학이 정치 이념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불교는 지금까지 기능해 왔던
역사 형성력이 약화 되었고 기존의 문벌 귀족과 유착되면서 보수 세력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각국사 의천스님이 출현했고 스님은 문벌귀족과 결탁한 왕권강화라는
왕실의 정책에 부응하여 경전을 수집하고 속장경을 조판하고 천태종을 개창하였다.
한편 왕실의 강력한 후원을 받는 천태종의 출현으로 선종은 다소 위축되었는데,
12세기에 접어들어 교단을 정비하면서 새로운 기반을 다져 나갔다.
가지산문의 원응 학일(學一1052 ~1144)국사와 사굴산문의 대감 탄연(坦然1070~1159)국사는
선종의 부흥을 위해 활약 했던 분들이다.
또한 선승들과 폭넓은 교류를 하면서 당시 고려 선에 사상적 영향을 크게 미쳤던
이자현(1061~1125)거사는 활기찬 거사불교시대를 꽃피웠다.
이러한 두 흐름은 사상과 실천에서 상호 교류를 통해 북송에서 들어 온 새로운
선사상을 수용하면서 이전의 선풍을 새롭게 변화시켜 나갔다.
당시 송나라에서는 『능엄경』이 유행했는데 중국에 유학한 의천스님은
『능엄경』을 들여와 능엄도량을 개설하고 주석서를 정리하여 『능엄경』을 크게 펼쳤다.
이자현거사는 이 영향으로 처음에는 선사상을 기본 입장으로 하여
『능엄경』을 받아들였으나 뒷날 설봉(雪峰991~1067)선사의 어록을
이 무렵의 고려 선승을 대표하는 선사 가운데는 담진(曇眞)선사가 있다.
선사는 송나라에 세 해 동안 유학하면서 부산 법원(浮山 法遠 991~1067)선사에게
선법을 받고 변경에 있는 정인사(淨因寺)의 주지로 주석하기도 했다.
스님은 유학을 통해 북송 선종 계의 동향과 사상적 흐름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스님은 예종 13년 안화사(安和寺) 주지로 있으면서 유학생활을 통해 익힌 선법과
좌선규칙을 폈는데 이것은 고려 선풍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활성화시키는 큰 계기가 되었다.
담진선사의 법을 이은 제자들이 왕사, 국사에 오르면서 담진선사 문하의
선승들이 불교계를 이끄는 주된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탄연선사도 임제종의 황룡 혜남의 선법을 이은 개심(介諶1080~1148)에게
서신을 통해 인가를 받고 그의 제자들과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선사가 개심선사에게 인가 받은 일은 선종사서인 『오등회원(五燈會元)』에 수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담진선사를 비롯한 탄연선사와 학일선사 같은 분들이 북송의 선사들과 교류 하면서
고려에는 새로운 선적(禪籍)이 들어와 송의 선문학이 도입되었고
공안선이라는 새로운 선풍이 자리를 잡게 된다.
-간화선의 수용과 정착-
고려시대 무신집권기에 보조 지눌(普照 知訥 1158~1210)선사의 등장으로
다시 한번 선풍이 크게 일어나게 되었다.
보조국사가 수선사(修禪社) 지금의 순천 송광사에서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수행운동인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전개하자, 선을 닦는 수행자들이 사방에서 모여 들었다.
이때 비로소 대혜(大慧 1089~1163)선사가 세운 간화선법이 보조국사에 의해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다.
국사는 수행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과 더불어
간화경절문(看話徑截門)이라는 세 가지 방법을 세웠다.
여기서 간화경절문이란 화두를 들고 바로 질러가는 간화선 수행법을 말한다.
국사는 뛰어난 근기의 수행자를 위해 간화선을 제시했던 것이다.
국사는 그의 나이 마흔한 살 때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에서
『대혜어록(大慧語錄)』을 보다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대혜어록』은 중국에서 간화선을 정착시킨 대혜선사의 어록이다.
이 글을 읽고 깨친 보조국사는 간화선의 수행법과 이치에도 저절로 눈이 열렸을 것이다.
국사는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과 『절요사기(節要私記)』에서 간화선 수행의
필요성과 무자(無字) 화두를 들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하여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간화선을 고려불교에 본격적으로 수용한 분은 진각 혜심(眞覺 慧諶 1178~1234)국사이다.
혜심선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안(公案) 모음집이라 할 수 있는
『선문염송(禪門拈頌)』 을 편찬하였다.
이 공안집은 수행승들이 화두(話頭)로 공부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길을 열어 놓았다.
또한 혜심선사는 『구자무불성화간병론(狗子無佛性話揀病論)』을 저술하여
수행자들이 “무자화두(狗子無佛性話)”에 들어 공부할 때 생길 수 있는
구체적인 병통과 그 증상에 대하여 자세히 밝혀 놓았다.
혜심선사 이후 간화선의 수행법과 가풍은 수선사의 열여섯 국사를 통하여 계승되었다.
물론 이분들이 활동하던 시기에도 중국에서 간화선 수행법이 몇 차례 고려에 들어오기도 하였다.
1270년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왕정복고가 이루어지면서 고려는 본격적으로
원나라의 간섭기에 접어들게 된다.
무신집권기에 고려불교를 주도하던 수선사와 백련사 계통이 퇴조하고 충렬왕 이후
선종의 가지산문과 천태종의 묘련사 계열과 법상종 계통이 고려불교의
역사 전면에 새롭게 떠오르게 된다.
수선사가 퇴조하면서 간화선의 흐름은 새롭게 떠오른 일연(一然1200~1289)선사를
중심으로 한 가지산문이 주도하기에 이른다.
일연선사는 젊은 시절 밀교와 관음신앙에 뜻을 두었으나 그 뒤 사상적 변화를 일으켜
멀리 목우자 화상의 법을 잇고(遙嗣牧牛和尙) 1249년에는 남해 정림사에서
『선문염송』을 열람하고 『선문염송사원(禪門拈頌事苑)』을 저술하였다.
이 무렵 고려의 많은 선승들은 원나라에 들어가 구법활동을 하였고 이들을 통해
많은 선적과 새로운 선법이 도입되면서 고려 선종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간화선의 발전과 완전한 정착-
간화선이 이 나라에 확고하게 정착된 것은 고려 말에 활약한 세 선지식에 의해서였다.
이 세 선지식은 태고 보우(太古 普愚 1301~1381), 나옹 혜근(懶翁 惠勤 1320~1376),
백운 경한(白雲 景閑 1299~1375)선사를 말한다.
이분들은 몸소 중국으로 들어가 선문의 진정한 종사들과의 거량을 통해
임제종의 바른 법맥을 이은 뒤 고려로 돌아왔다.
이렇게 해서 세 선지식은 당시 고려 선문의 새로운 가풍으로 형성된 몽산 선사의
가르침대로 깨달은 뒤 본색종사를 찾아가 인가를 받는 엄정한 전통을 세웠던 것이다.
태고 보우국사는 스무 해 동안의 뼈를 깎는 정진으로 서른일곱 살에
오매일여(寤寐一如)가 되고 서른여덟 살 때 활연히 대오(大悟)했다.
선사는 그 뒤 원나라 하무산(霞霧山)에 머물던 석옥 청공(石屋 淸珙 1272~1352)선사를
찾아가 임제종의 정맥을 이어 왔다.
나옹 혜근선사는 스물일곱 살에 크게 깨치고 원나라에 들어가 그곳에서 십 년 동안 머물렀다.
스님은 원나라에 머무는 동안 처음에는 평산 처림(平山 處林 1279~1361)선사에게
가사와 불자(拂子)와 함께 그의 선법을 전해 받았고, 다음에는 인도에서 건너온 선지식인
지공(指空)선사에게 가사와 불자 및 범어로 쓴 서신을 받아 왔다.
백운 경한선사는 어려서 출가하여 크게 깨달은 뒤 중국에 가서
태고 국사와 마찬가지로 석옥 청공선사의 법을 받아왔다.
백운선사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 의 편저자이기도 하다.
나옹 혜근과 백운 경한선사의 활약이 두드러진 것도 사실이지만 간화선을 고려 말에
널리 확산하여 정착시킨 분은 역시 태고 보우국사이다.
보우국사는 본분종사의 가풍으로 부처를 초월하고 조사를 뛰어넘는 초불월조(超佛越祖)의
격외선지(格外禪旨)에 따라 “대장경의 모든 가르침과 천칠백 공안과 임제의 할(喝)과
덕산의 방(棒)일지라도 본분상에서 볼 때 다 부질없는 것”이라 설파했다.
국사는 간화선 수행을 하되 화두를 참구하여 의심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고,
화두를 타파한 뒤에는 본색종사를 찾아가 깨달은 경지를 확인 받으라고 가르쳤다.
곧 태고선사는 화두를 참구하여 깨달은 뒤 본색종사를 찾아가 묻고 바른 깨달음인지
아닌지를 결택 받아야 한다는 간화선 수행체계를 명확히 세워 놓은 것이다.
태고 보우국사가 대한불교조계종의 중흥조로 숭앙받는 이유는 이러한 간화선의
수행 체계를 확립한 점과 더불어 중국에서 임제종의 정맥을 이어 와서
이 법맥이 조선불교를 통해 끊어짐이 없이 전해 내려 왔기 때문이다.
다음은 보우국사가 석옥 청공선사를 만나 법을 거량하여 임제선법을 전해 받은 내용이다.
석옥화상이 『태고암가』의 발문을 써주면서 물었다.
“우두(牛頭) 선사가 사조(四祖)를 만나기 전에는 무엇 때문에 온갖 새들이 꽃을 입에 물고 왔는가?”
-부귀하면 사람들이 다 우러러보기 때문입니다.-
“사조를 만난 뒤에는 무엇 때문에 꽃을 입에 문 새들을 찾아볼 수 없었는가?”
-가난하면 아들도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공겁(空劫) 이전에도 태고(太古)가 있었는가, 없었는가?”
-허공이 태고 가운데서 생겼습니다.-
석옥화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불법이 동방으로 가는구나.”
화상은 다시 가사를 주며 믿음을 표하며 말했다.
“이 가사는 오늘 전하지만 이 법은 부처님께서 전하시어 오늘에 이른 것이요.
이제 그대에게 전해 주니 잘 보살펴 지녀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오.”
또 주장자를 집어 들면서 이렇게 당부했다.
“이것은 노승이 평생토록 지녔던 것이오.
오늘 그대에게 주니 그대는 이것으로 길잡이를 삼으시오.”
屋跋 所獻歌以授 乃問牛頭未見四祖時 因甚百鳥啣花 曰富貴人皆仰 曰見後因 甚百鳥啣
花覓不得 曰淸貧子亦?屋又問空劫已前 有太古耶 無太古耶 曰空生太古中 屋微笑云
佛法東矣 遂以袈裟表信曰 衣雖今日 法自靈山 流傳至今 今附於汝 汝善護持 毋令斷絶拈?杖囑云
是老僧平生用不盡的 今日附? ?將這箇 善爲途路.
-『太古和尙語錄』『韓國佛敎全書』-
-조선시대의 간화선 전승과 근세의 간화선 재흥-
간화선법은 보우국사에 의해 우리나라에 완전히 정착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간화선은 한국불교의 주된 수행법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보우국사의 선맥은 환암 혼수(幻菴 混修 1320~1392), 구곡 각운(龜谷 覺雲), 벽계 정심(碧溪 正心),
벽송 지엄(碧松 智嚴 1464~ 1534), 부용 영관(芙蓉 靈觀 1485~1571)선사로 이어졌고,
영관선사에 이르러 다시 청허 휴정 (淸虛 休靜 1520~1604) 선사와
부휴 선수(浮休 善修 1543~1615)선사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게 된다.
서산선사 문하에는 편양 언기(鞭羊 彦機 1581~1644)선사와 사명 유정(四溟 惟政 1544~1610)
두 거장이 나왔고 나왔고 이 가운데 편양 언기선사의 문파가 뒷날까지 번창하게 되었다.
이 선맥은 다시 편양 선사에서 풍담 의심(楓潭 義諶 1592~1655), 월담 설제(月潭 雪霽 1632~ 1704),
환성 지안(喚惺 志安 1664~1729)선사로 이어진다.
근세에 와서 조계종의 간화선풍을 크게 진작시킨 분은 경허 성우(鏡虛 惺牛 1846~1912)선사와
용성 진종(龍成震鍾 1864~1940)선사이다.
경허선사는 용암 혜언(龍巖 慧彦)선사의 법을 이었다.
경허선사의 출현은 꺼져가는 간화선의 선풍을 되살리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경허선사의 제자로는 수월(水月 1855~1928)· 혜월(慧月 1855~1928)· 만공(滿空 1871~1946)·
한암(漢岩 1876~1951)선사 같은 분들이 있다.
용성선사는 환성 지안선사에게 법맥을 이었다.
간화선에서는 무엇보다도 법을 더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환성선사 이후 적막하던 종문이 이분들로 말미암아
다시 활기를 되찾아 오늘에 이르렀다.
이분들의 선풍은 모두 조사선에 바탕을 둔 간화선 일맥이었다.
-재개자도 간화선 수행을 할 수 있는가?-
간화선은 출·재가를 구별하지 않는다.
선 수행에는 출가자와 재가자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남녀노소, 빈부귀천도 상관이 없다.
이 점은 혜능선사가 『육조단경』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다.
선지식들아, 만약 수행하기를 바란다면 재가도 할 수 있으니
수행하려고 꼭 절에 있을 필요는 없다.
절에 있으면서 닦지 않는다면 서방정토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악한 사람과 같고,
재가에서도 만약 수행하면 동방예토의 사람이 선(善)을 닦는 것과 같다.
다만 스스로 원을 세워 집에서도 청정함을 닦는다면 그곳이 곧 서방정토이다.
善知識 若欲修行 在家亦得 不由在寺. 在寺不修 如西方心惡之人
在家若修行 如東方人修善. 但願自家修淸淨 卽是西方.
-『六祖壇經』-
이렇듯 혜능선사는 수행하는 데에 재가와 출가, 마을 집과 절의 구분이 없다고 한다.
어느 곳에서든 진정으로 발심하여 간절하게 마음을 닦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조사선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간화선에서도 재가와 출가의 구별이 없다.
이는 대혜선사의 『서장』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대혜선사와 편지를 주고받은 증시랑· 강급사· 부추밀· 이참정 같은 대부분의
사람이 모두 재가자였다.
또한 태고 보우선사의 『법어』를 봐도 선사가 법어를 베푼 대상이
공민왕· 오수· 장해원사· 최진사· 백충거사 같은 재가자들이 많다.
대혜선사와 보우선사 당시 간화선을 수행했던 많은 사람들이 사대부나
거사들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대 선사 스님들은 출가자와 마찬가지로 재가자들에게 아무런 차별 없이
자상하게 지도하였다.
이러한 점은 간화선이 살림살이를 하며 살아가는 재가자들도 수행할 수 있는
보편적인 수행법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도는 일상 속에 있다.
오늘날 한국불교의 수행 풍토로 보면 간화선을 출가수행자들만이 하는 특별한 수행법으로
여기거나 간화선 수행을 하려면 반드시 선원에 가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출가하여 선지식을 모시고 오롯하게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출가자들이
수행하기에 가장 좋은 여건 속에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화두 공부는 재가자라고 하지 못할 까닭이 전혀 없다.
선의 본질에서 보면 세상사 모두가 불법이 팔팔하게 드러나 있는 법의 현장이다.
그래서 일찍이 부대사(傅大師)는 『행로난(行路難)』에서
“불성의 온 모습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全體現前)”고 했으며,
마조스님은 “평상시 마음이 도(平常心是道)”라 했다.
장작 패고 나물 캐는 일상생활에 도가 있다는 말이다.
진리는 그저 평범하다.
그것은 밥 먹고 세수하고 일하는 데에 있지 다른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우리들의 앞에도 옆에도 뒤에도 어디에나 현전해 있다.
이 살아있는 삶의 현장을 떠나 따로 도가 없기에 일상 속에서
수행하는 것이 선수행의 바른 길이다.
서산선사의 다음 말씀은 이러한 수행경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배고프면 밥을 먹고 곤하면 잠을 자네.
맑은 물 푸른 산을 내 멋대로 오가고
어촌과 주막거리도 내 집인양 편쿠나.
세월이 가나오나 내 알 바 아니건만
봄이 오니 옛처럼 풀잎 다시 푸르네.
飢來卽食 困來卽眠 緣水靑山 任意逍遙 漁村酒肆
自在安閑 年代甲子 總不知 春來依舊草自靑.
-『禪家龜鑑』-
운문 문언(雲門 文偃, 864~949)선사도 말한다.
현전하고 있는 큰 작용에는 특별한 법칙이 없다.
두두물물 모든 것이 진리가 드러난 모습이다.
大用現前不存軌則. 物物皆眞現.
-『雲門錄』-
운문선사는 “현실에 있는 현상세계 그대로가 공안”이라는 말이다.
일상과 진리의 세계는 둘이 아니다.
다만 착각에 빠져 둘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화두 공부는 바로 이 둘로 나누기 이전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대혜선사는 일상 속에서 어떤 일을 하던 끊임없이
화두를 들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간화선은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 할 수 있는 수행법이다.
어떤 사람은 “간화선은 농경문화 속의 목가적인 옛 풍경 속에서나
가능한 수행법이 아니냐”고 묻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진리는 농경문화 속에만 있고 산업사회에는 없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분주한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놓치지 않고 간절히 수행해 나간다면
이 척박한 삶의 현장이 바로 극락세계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깨달음이란 무엇이며 어떤 세계가 펼쳐지는가?-
화두를 타파하여 깨치게 되면 꿈에서 깨어난 것과 같고 하늘에 백천 개의 해가 비치는 것과 같다.
그 세계는 허공과 같이 무한히 넓어 한정이 없다.
그 속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평등해서 우열이 없고, 귀천도 없고, 친소도 없고, 시비도 없다.
대립과 갈등 그리고 투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만이 있을 뿐이다.
또 모든 존재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기에 남을 위하는 것이 자기를 위하는 것이고,
자기를 위하는 것이 남을 위하는 것이 된다.
깨달으면 자주적이고 자율적이며,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며, 내게도 남에게도 한없이 자애로우며,
모든 순역 경계에 자유자재하는 대자유인이 된다.
이 역동적인 현상은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 글로도 표현할 수 없다.
본인 스스로 물을 마셔보아야 차고 더운 것을 아는 이치와도 같다.
그렇다고 해서 깨달음이 어떤 별천지의 세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역력하게 살아 있는 삶의 모습일 뿐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해서 새삼 일러 준다는 것조차 맨살에 상처를 내는 꼴이 된다.
이것은 조주선사가 말했듯이 차나 한잔 마시는 일이다.
더 이상 다시 보태고 얻을 바가 없다.
이미 그 자체로 완전히 갖추어져 있기에 불가득(不可得)이요 불가설(不可說)이다.
조사어록이나 경전 속에는 깨달음에 대하여 언급해 놓은 구절들을 발견할 수 있다.
대혜선사는『서장』에서 깨달은 사람의 경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확철대오하면 가슴 속이 환히 밝음이 마치 백천의 해와 달 같아
시방세계를 한 생각에 밝게 요달하며 가는 털끝만큼의 다른 생각도 없으니,
비로소 구경과 상응하게 된다. ……
모름지기 당사자가 스스로 볼 수 있고 깨칠 수 있다면 자연히 옛 사람의
언구에 휘둘리지 않고 도리어 옛 사람의 언구를 굴릴 수 있다.
廓徹大悟 胸中皎然 如百千日月 十方世界 一念明了 無一絲毫頭異想 始得與究竟相應. …
須是當人自見得自悟得 自然不被古人言句轉 而能轉得古人言句.
-『書狀』-
이렇듯 깨치면 환하게 밝아진다.
추호의 의심도 없으며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갈 길이 정확하고 또렷이 보인다.
그래서 불안해하거나 방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서고 앉는 자리 자리마다
완성된 삶의 모습을 환히 드러내 보인다.
또한 홀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어디에도 의존함이 없다.
이것을 독탈무위(獨脫無爲)라고 한다.
그는 의존할 바가 없기 때문에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으므로
정신적으로 고요하고 안정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옛 사람의 언구에 휘둘리지 않고 옛 사람의 언구를 굴릴 수 있다는 것”은
이렇게 어디에도 의존함이 없는 깨달은 이의 경지를 일컫는 것이다.
대혜선사의 스승인 원오 극근선사는 무심무념無心無念의 본래면목을 철저하게 증득해야
바른 깨달음이며 이 무심무념의 경지가 바로 견성성불이라 하였다.
그는 깨달은 사람을 대요사인大了事人이라고 했다.
대요사인이란 모든 일과 현상을 남김없이 요달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원오선사는 이 대요사인의 경지를 이렇게 말한다.
한생각도 일어나지 않은 곳에 이르러 근원을 사무쳐 꿰뚫으면
흘연히 본체가 허공과 같음을 깨닫게 된다.
이 깨달음은 모든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는지라 삼라만상도
그것을 가두지 못하고 성인과 범부도 그것을 어찌하지 못한다.
언제나 남김없이 드러나고 어디서나 숨김없이 드러나니
본래면목이 바로 이것이며 본지풍광이 바로 이것이다.
한 번 얻으면 영원히 얻는 것이니, 오는 시간이 다하도록
깨달은 이를 얽어 멜 생사윤회가 어떻게 있겠는가?
이와 같은 무심한 경계와 무념의 참된 가르침은
참으로 날카로운 사람이라야 거뜬히 실증하게 된다.
본래의 현묘한 마음을 바로 꿰뚫으면 옛과 지금을 꿰뚫어
담연히 움직이지 않으니 만년이 한 생각이요,
한 생각이 만년이다.
영원히 세어나감이 없이 한 번 깨치면 영원히 깨쳐 뒤바뀌는 일이 없으니,
이것을 ‘마음을 가리킴에 자성을 보고 바로 부처를 이룬다’고 한다.
대도를 체득한 이는 무심을 철저히 “증득한” 이다.
그러니 만 가지 일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더라도 어찌
그의 정신을 흔들어 생각을 어지럽힐 수 있겠는가.
다만 한가롭고 한가로운 경지만을 지키는 것이 마치 바보 같고 천치 같으나,
문득 일에 부딪치면 회오리바람 돌고 번개치듯 하여 깨달음의 기틀에 합당치 않음이 없다.
到一念不生處 透徹淵源 忽然自得 體若虛空. 莫窮邊量 亘古亘今 萬像羅籠不住
凡聖拘碍不得 淨裸裸赤灑灑謂之本來面目 本地風光. 一得永得 盡未來際
更有甚生死 可爲滯碍. 此箇無心境界無念眞宗 要猛利人 方能著實. 直透本來妙心
亘古亘今 湛然不動 萬年一念 一念萬年. 永無?漏 一得永得 無有變易 乃謂之直指人心
見性成佛. 得道之士 徹證無心 雖萬機頓赴 豈撓其神干其慮哉.
只守閑閑地 如痴似兀及至臨事 風旋電轉 靡不當機.
-『圓悟心要』-
깨달은 이는 허공과 같아 어떤 사물도 그를 가두지 못한다.
깨달은 이는 범부에도 성인에도 구속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다.
이렇게 깨달음은 크나큰 자유로 어떤 경계에도 구속 받지 않는다.
깨달은 이는 마음이 쉬고 무심한 일 없는 도인인지라
만 가지 일들이 함께 닥친다 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도인은 일이 없는 세상 밖에서 노니는 한가한
신선쯤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깨달은 이는 그 한가한 마음, 일 없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빈틈없이 바르게 처리하기 때문이다.
선종사(禪宗史)
1. 선(禪)의 의의
禪이란 범어로 드야나(Dhyana)인데 이를 음사해서 한자로 선나(禪那),
다시 줄여서 선(禪)이라 한다.
그 뜻을 해석하면 고요히 생각함(靜慮), 생각으로 닦음(思惟修)이다.
그리고 참선(參禪)이란." "첫째는 禪하는데 참여한다는 뜻이 있고,
둘째는 "참례선지식(參禮善知識)하여 문선(問禪)한다"고 하여 이 말을 줄여서 "참선"이라 한다.
선을 행하다가 의심나는 점이 있으면 곧 선지식을 찾아 묻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이러한 참선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고락(苦樂)의 양 극단을 피하고 중도의 깨달음을 성취하신 수행법인 것이다.
2. 선(禪)의 기원
전통적으로 선의 기원은 부처님의 삼처전심(三處傳心)에서 찾는다.
삼처전심이란 부처님께서 마하가섭에게 세 곳에서 마음을 전했다고 하여
선가(禪家)에서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종지(宗旨)로 삼고 있다.
① 다자탑전 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부처님이 중인도 북쪽에 있던 다자탑 앞에서 설법하고 계실때 남루한 차림의
마하가섭이 늦게 도착하자제자들이 멸시의 눈초리를 보낼 때 부처님께서
자신의 자리를 반쯤 내어 주어 같이 앉으신 일.
② 영상회상 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영축산에서 부처님이 말없이 꽃을 들어보인 마음을 읽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서 말없이 미소를 지은 일.
③ 사라쌍수하 곽시쌍부(沙羅雙樹下槨示雙趺):
부처님이 80생을 마감하시고 사라쌍수 밑에서 조용히 열반에 잡겨 법신의 모습으로
돌아가셨을 때 가섭이 늦게 도착하여 열반하시는 모습을 못본 것을 안타까워하며 울자
부처님은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밀어 보인 일.
3. 선의 종지(宗旨)
가) 불립문자(不立文字)
나) 교외별전(敎外別傳)
다) 직지인심(直指人心)
라) 견성성불(見性成佛)
禪은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표방한다.
언어이전의 생명 그 자체, 다시 말해서 활발발한 깨달음을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다.
깨달음 그 자체는 언어와 문자, 형식과 논리를 초월해 있기 때문에
심인(心印)으로 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가) 불립문자(不立文字)
또한 '언어나 문자에 얽매이지 않는다.' 라는 말마저 버려야 한다.
불립문자의 진정한 뜻은 문자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지
결코 문자를 완전히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나) 교외별전(敎外別傳)
진정한 법(法)이나 도(道)는 오직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경전은 단지 우리의 참된 면목을 바르게 일깨우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인 것이다.
물맛을 직접 보아야 제 맛을 알 수 있듯이 설명만으로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경전공부가 중요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언어나 문자가 미치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는데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세계는
교(敎) 밖에 따로 전한 삼처전심(三處傳心)으로부터 시작된다.
삼처전심은 부처님과 제자 가섭 사이에 이루어진 마음의 형태이다.
다) 직지인심(直指人心)
뚜렷이 밝은 우리의 마음을 바로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상으로서의 마음은
결코 참마음(眞心)이 아니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참마음인 것이다.
마음은 주체이므로 그것이 대상화되면 벌써 그 본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된다.
라) 견성성불(見性成佛)
본래의 성품이란 어느 때나 청정무구하여 절대의 그 경지이며 영원불변한 것이다.
이런 차별 없는 본성을 보았다 함은 법신의 부처님과 하나 되는 것이며
그것은 내심의 부처가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4. 선의 전래
삼처전심 이래로 부처님의 법은 마하가섭에게로 전하여 졌고,
마하가섭은 아난존자에게 아난존자는 상나화수존자에게
그리고 28대 보리달마존자까지 인도에서 전하여져 오다가
보리달마존자가 중국으로 건너가서 혜가대사, 승찬대사, 도신대사, 홍인대사,
혜능대사 까지는 법의 전수를 의미하는 의발(衣鉢)을 오직 한분에게 전해져
내려 왔지만 혜능대사 이후로는 의발을 전하는 전통이 끊어지고 法을
여럿에게 전하게 되어 禪의 황금시대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후 마조도일(馬祖道一)下의 법을 이은 석옥청공선사에게서
태고보우국사가 법을 전해 받으니 해동에 선종이 발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선중기 서산과 부휴로 나뉘어지게 되고 서산문하에서
환성지안선사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 오다가 잠시 그 전등의 불꽃이
희미해지던 차에 구한말 경허선사가 근대선의 중흥조로서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린 이후 만공, 혜월, 혜봉 등의 선지식이 배출되었고
만공선사의 법을 전강선사께서 이으셨던 것이다.
법맥이란 법(法)을 바탕으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이어지는
견고하고도 도도한 흐름을 의미한다.
법이란 진리인 것이다.
특히 선종에서는 법맥을 선맥이라고 하여 강조하고 있고
어느 종파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선종에서의 법은 깨달음이고 깨달음의 역사가 선종의 역사이며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선맥인 것이다.
5. 부처님의 법맥(전등의 역사)
-가섭 존자: 법이라는 본래 법은, 법도 없고 법이 아닌 것이 없음이니,
어찌 한 법 가운데 법과 법 아닌 것이 있으랴.
-아난 존자: 본래 있음의 법(有法)을 전했더니, 전한 뒤엔 없음의 법(無法)이라 하더라.
제각기 깨달았으니, 깨달은 뒤엔 없음의 법(無法)도 없더라.
-상나화수 존자: 법도 아니요,마음도 아니며, 마음도 없고 법도 없도다.
이 마음의 법을 말할 때에, 이 법은 마음의 법이 아니다.
-우바국다 존자: 마음은 본래부터 마음이니, 본래 마음에는 법이 없도다.
법도 있고 본래의 마음도 있으나, 마음도 아니요 본래의 법도 아니다.
-제다가 존자: 근본 법과 그 마음을 통달하면, 법도 없고 법 아닌 것도 없다네.
깨달았다고 하면 깨닫지 않음과 같나니, 마음의 법도 본래 없기 때문이라네.
-미차가 존자: 마음은 실체가 없어 얻을 수 없나니, 얻을 수 있다면 참된 법이 아니라네,
마음이 마음 아닌줄 깨달아 알면, 마음과 마음의 법을 알 수 있으리.
-바수밀 존자: 마음은 허공 같아, 허공 같은 법을 보인다.
허공의 묘한 법을 알면, 옳고 그름도 법도 없다.
-불타난제 존자: 허공이 안팎이 없듯, 마음의 법도 그러하다.
허공의 이치를 밝게 깨달은 것, 그것을 참된 이치를 바로 안 것이라 한다.
-복타밀타 존자:
진리는 본래 이름이 없지만, 이름에 의해 모습을 드러 내나니,
진실된 이치를 깨달으면, 참도 거짓도 사라지고 없네.
협 존자: 진리는 본래 이름이 없지만, 이름에 의해 모습을 나타내나니,
진실한 법을 알아 들으면, 참도 아니요 거짓도 아니다.
-부나야사 존자: 미혹과 깨달음은 숨음과 드러남, 밝음과 어둠이 서로 떠나지 않는다.
이제 숨음과 드러남의 법을 너에게 전하노니,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니라.
-마명 존자: 들어나고 숨음이 한 집안 소식이요, 밝고 어두움이 원래 둘이 아니로다.
이제 네게 깨달은 법을 주노니, 갇지도 말고 버리지도 말라.
-가비마라 존자: 드러남도 숨음도 아닌법을 ,진실의 경지라고 한다.
숨고 드러남의 이치를 깨달으면, 지혜롭고 어리석음을 넘어서리.
-용수 존자: 숨고 드러나는 법을 밝히려고, 해탈의 이치를 말하네.
법에는 마음도 얻을 수 없나니, 성냄도 기쁨도 본래 없는 것이라네.
-가나제바 존자: 사람에게 법을 전하는 뜻은, 해탈의 이치를 설하기 위함일세,
법에는 진실로 얻을 것이 없나니, 끝도 없고 시작도 없다네.
-라후라다 존자: 법에는 진실로 증득할 것이 없어서, 취할 수도 버릴 수도 없다네,
법은 있고 없는 것이 아니니, 어찌 안 밖이 생기리.
-승가난제 존자: 마음의 법이 원래 나는 것 없으나, 인(因)의 땅에 연(緣)을 따라 일어난다네.
인연과 종자가 서로 방해하지 않듯, 꽂과 열매도 그러하네
-가야사다 존자: 종자가 있고 마음땅(心地)이 있으니, 인연이 싹을 나게 하도다.
싹이 나건 안 나건,인연의 법칙은 걸림이 없도다.
-구마라다 존자: 성품에는 태어남이 없지만, 구하는 이를 위해 말하는 것이다.
법에는 이미 얻을 것이 없거늘, 어찌 결정하고 못함을 걱정하리요.
-사야다 존자: 말끝에 무생법(無生法)에 맞으면, 법계의 성품과 같아지리니,
이렇게 바로 알면, 사(事)와 이(理)를 통달하리라.
-바수반두 존자: 거품도 허깨비도 걸림이 없거늘,
어찌 알지 못하는가 법이 그 가운데 있는 줄 알면, 지금도 옛도 아니리라.
-마노라 존자: 마음이 만 경계를 따라 움직이니,움직이는 곳마다 모두 그윽하다.
흐름에 따라 본 성품 깨달으면,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으리라.
-학륵나 존자: 마음을 깨달을 때를, 부사의(不思議)하다 말 할 수 있나니,
분명하되 얻을 수 없고, 얻을 때는 안다고 할 수 없다.
-사자 존자: 깨달음을 말할때, 지(知)와 견(見)이 모두가 마음이다.
이 마음이 바로 지견이니, 지견은 언제나 지금 속에 있다.
-바사사다 존자: 성인이 지견을 말씀하시니, 경계를 만날 적마다 그 아닌 것 없도다.
내가 이제 참 성품을 깨달으니, 도도 없고 이치도 없도다.
-불여밀다 존자: 참성품이 心地에 숨었으니,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도다.
인연따라 중생을 교화하니,방편으로 지혜라 부른다.
-반야다라 존자: 마음 땅이 숱한 종자를 내네, 일이 일어나면 다시 이치도 생기네.
수행의 열매가 무르익어 깨달음이 원만해지니,꽂이 피듯 한 세계가 열리네.
-보리달마 존자: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것은, 법을 전해 어리석은 이를 제도하려는 것인데,
한송이의 꽃에 다섯 꽃잎이, 열매는 자연히 이루어지리라.
-혜가 존자: 본래부터 마음 땅이 있었기에, 그 땅에 씨를 심어 꽃이 피지만,
종자도 있는 것이 아니며,꽃도 나는 것이 아니다.
-승찬 존자: 꽃은 땅을 의지해 심고, 땅에 심었던 꽃이 피지만,
씨를 뿌려주지 않는다면, 꽃도 땅도 나지 않는다.
-도신 존자: 꽃과 종자는 나는 성품이 있나니, 땅에 의하여 꽃은 나고 또 난다.
큰 인연과 믿음이 어울릴 때에 나지만, 이 남은 남이 없는 것이다.
-홍인 존자: 유정(有情)이 와서 씨를 뿌리니, 인연의 땅에 열매 절로 열리네.
무정(無情)은 이미 종자가 없으므로, 성품도 태어남도 없다.
-혜능 존자: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맑은 거울도 집이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찌 먼지를 일으키랴?
지각 있는 존재의 씨앗이 뿌려져, 밭마다 열매를 맺게 되리라.
지각 없이는 씨앗이 자랄 수 없고, 성(性)없이는 생(生)도 없다.
6. 선의 유형
가) 닦는 사람의 마음에 따른 분류
나) 깨침의 정도에 따른 분류
다) 지역에 따른 분류
라) 수행하는 방법에 따른 분류
가) 닦는 사람의 마음에 따른 분류
⑴ 외도선(外道禪): 외도들이 천상에 나기위해 닦는 禪
⑵ 범부선(凡夫禪): 건강을 위하거나 액난을 소멸시키기 위해 범부들이 닦는 禪
⑶ 소승선(小乘禪): 무상을 관(觀)하고 부정관(不淨觀)등을 하면서 세상을 멀리하며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며 고요한 것만을 즐기는 禪
⑷ 대승선(大乘禪): 법계의 공(空)을 관(觀)하고 중도와 실상을 관하는 禪
⑸ 최상승선(最上乘禪): 관(觀)하는 선이 아니라 그대로 존재의 실상을 깨닫는 禪
나) 깨침의 정도에 따른 분류
⑴ 의리선(義理禪): 경전이나 禪의 이론을 보고 눈치채서 체득하는 禪
⑵ 여래선(如來禪): 여래선이란 말은 <능가경(能伽經)>에서 규봉종밀(圭峯宗密)스님은
이것으로써 교선일치라 주장하여 최상승선이라 하였다.
그러나 여래선의 판별은 오히려 문자의 알음알이인 이(理)에 떨어져 달마가 전한 선과
다르다고 하여 여기에서 조사선(祖師禪)이란 말이 생기게 되었다.
⑶ 조사선(祖師禪): 남종선(南宗禪)이라고도 한다.
육조인 혜능스님에게서 시작된 선종의 오가칠종(五家七宗)은 전부 이 조사선에 포함 된다.
조사선은 조사의 언행을 실마리로 삼아 선을 실수(實修)하게 된다.
그래서 인도로부터 전래된 경전보다는 가까운 조사의 언행을 중시하고
그것이 일종의 공식과 같은 것이 됨으로써 공안(公案)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이러한 공안에는 의미상, 과거의 조사들이 남긴 언행을 내용으로 하는
고측 공안(古則公案)과 현재 생성되어 있는 것은 모두 움직일 수 없는 진리라고
보는 입장에서 생긴 현성공안(現成公案)이 있다.
다) 지역에 따른 분류
하나는 인도선이고 두번째는 중국선인데 중국선은 법화종 계통에서 하는
천태선과 달마선사(達摩禪師)이후의 달마선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므로 오늘날 전체적 유형은 인도선, 천태선, 달마선으로 구분하고 있다.
⑴ 인도선(印度禪)
인도선의 기원은 요가(Yoga)에서부터 찾아진다.
요가는 인도 고유의 수련법으로서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불교의 禪과 요가의 다른 점은 요가수행의 최고 경지는 마음의 움직임이
일체 끊어진 지멸(止滅)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요가의 최고 경지를 의식이 없으면서 의식이 없는 그것마저도
아닌 상태인 비상비비상정(非想非非想定)이라고 하는데
부처님이 볼 때는 이것은 완전한 해탈의 경지는 아니었다.
인도선에서는 수식관(數息觀), 부정관(不淨觀), 백골관(白骨觀)등이 있다.
수식관(비파싸나, Vipasvana)은 좌선하는 자세로 자신의 호흡을 세는 데에
집중하여 마음의 산란함을 방지하는 관법이다.
부정관은 육신의 부정한 모양을 관하여 탐욕을 다스리는 관법이며,
백골관은 인간의 백골을 관하여 집착을 없애는 관법이다.
⑵ 천태선(天台禪)
천태선은 중국에 와서 천태지자대사(天台智者大師, 538-597)가 세운 법화종에서 강조되었다.
천태선은 법화경을 비롯한 대승교리가 그 내용이 되고 방법에 있어서는
인도의 요가 수련법을 그대로 형식상으로 옮겨와서 이루어졌다.
이리하여 천태선은 법화경 사상과 인도의 요가 형식이 한데 어우러져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천태선에서는 지관법(止觀法)을 쓰고 있는데, 즉 마음을 거두어 망념을 쉬고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깊은 진리의 마음의 세계를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⑶ 달마선(達摩禪)
달마선의 기원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견해와 학술적인 입장으로 크게 나뉘어져 있다.
전통적인 견해에 의하면 부처님의 삼처저심(三處傳心)이 달마선의 기원이라고 본다.
부처님께서 다자탑 앞에서 법을 설하고 계셨는데 가섭존자가 늦게 왔다.
가섭존자가 자리가 없어서 앉지 못하고 있을 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아무 말없이
앉아 계시는 자리의 반을 내어주자 가섭이 아무 말없이 앉았다.
이와 같이 제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같이 앉은 것은 부처님의 입장에서 볼 때
마음을 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달마선은 조사선(祖師禪)이라고도 하며 묵조선(默照禪)과 간화선(看話禪) 등이 있다.
묵조선은 정려(靜慮), 즉 생각을 고요히 맑히는 禪이고,
간화선은 1700공안(公案)을 사용하여 화두를 간(看)하는 禪이다.
라) 수행하는 방법에 따른 분류
부처님으로부터 28대 조사인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전한 선(禪)은 순수한 인도의
관심선(觀心禪)이었지만 차츰 중국적인 것으로 면모를 바꾸면서 체계화되어 갔다.
달마대사로부터 전승된 선(禪)이 6조 혜능(慧能)대사 이후에는 여러 계파가 형성되어
9세기부터 11세기 사이에 5家 7宗이 생겨나 선풍(禪風)을 드날리게 되었다.
이 중에서 南宋이후에 청원계(靑原系)의 조동종(曹洞宗)에서 나온
천동정각(天童正覺)선사가 널리 편 묵조선과
임제종(臨濟宗)의 대혜종고(大慧宗)가 확립한 간화선이 가장 대표적인 선풍이었다.
⑴ 묵조선(默照禪)
오로지 침묵만을 지언(至言)으로 삼는 것으로서 묵묵히 안으로 관찰하여
그 마음을 청정케 하고 그 법(法)의 근원을 철견(徹見) 하는 것,
즉 인간의 마음이란 묵조(默照)하면 스스로 드러나는 것이지 화두를 가지고
의심하고 참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조동종(曹洞宗)의 선법으로 묵조선의 입장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로
지관타좌(只管打坐)란 말이 있다.
지관이란 '오직 한 길' 의 의미이며, 타는 '강조' 의 의미이고
좌는 '좌선'의 뜻으로, 잡념을 두지 않고 오직 성성적적한 마음으로 좌선할 따름이라는 말이다.
묵조선이란 이름은 묵조선가(默照禪家) 자신들이 부르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묵조선의 거장 천동정각(天童正覺,1091-1157) 선사가
'오직 앉아서 묵묵히 말을 잊고 쉬어가고 쉬어가게 한다' 하였는데
이에 대혜선사(大慧禪師)께서 그의 가르침을 비난하여
'묵조사선(默照邪禪)' 이라 지칭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⑵ 간화선(看話禪)
간화선(看話禪)이란 우주와 인생의 근원을 규명해 나가는데 있어
화두(話頭)라는 문제를 가지고 공부해 나가는 참선법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간(看)은 '본다' , '참고한다'는 의미이고 화(話)는 화두로 '말'이다.
여기서의 '말'의 의미는 보통의 '말'이 아니라 "말 이전의 말"이고 "말 밖의 말"을 의미한다.
이와같이 화두는 부처님과 祖師스님들의 말씀이나, 행동, 그리고 문답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논리적으로 풀 수 없고 생각이 끊어진 세계를 나타내는 말 이전의 말인 것이다.
이러한 화두를 참구하여 항상 그것을 의심해 나감으로써 궁극에 가서는
의단(疑團, 의심덩어리)이 타파되어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수행법이 바로 간화선이다.
흔히 간화선하면 임제종(臨濟宗)의 선풍을 일컫는데
현재 우리나라 선원에서 행해지고 있는 선법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① 사구선(死句禪) ; 화두를 부처님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해석하고 분석해 들어가는 죽은 參禪
① 활구선(活句禪) ; 이치길(理路)도 없고 말길(語路)도 없이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禪. 語句에 대해 배우면서도
그 어구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고 어구의 참된 의미를 체득하는 것이 중시된다.
해동선사(海東禪史) = 선의 한반도 전래
가) 삼국시대
한국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서기 372년) 중국의 전진왕 부견이
순도스님과 불상, 불경을 고구려에 보냄으로써 비롯되었고, 백제는 고구려보다 12년 뒤인
침류왕 원년(서기 384년)에 마라난타가 인도로부터 들어옴으로써 전파되었으며,
신라는 제19대 눌지왕 때 사문 묵호자가 고구려로부터 신라에 옴으로써 전래되었으나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에 의해 국교로 인정되게 되었다.
나) 통일신라시대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자 불교도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고승대덕이 배출되었으니,
교종(敎宗)은 열반종(涅槃宗), 율종(律宗), 화엄종(華嚴宗), 법상종(法相宗),
법성종(法性宗)의 오종(五宗)이 흥성하여 이를 오교(五敎)라고 한다.
선종에 있어서는 신라 선덕여왕 당시 당나라에 건너가서 4조 도신(道信) 선사의 법을 이은
법랑(法郞)스님을 들 수 있으나 그의 귀국년대가 확실치 않아 그 다음에 선(禪)을
우리나라에 전래한 도의국사(道義國師)를 해동선(海東禪)의 초조(初祖)로 삼게 된다.
도의국사(道義國師)는 법명이 명적(明寂)으로 선덕왕5년(서기784년)에 당나라에 들어가
강서(江西)의 개원사에 이르러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제자 서당지장(西堂智藏)에게서 법을 전해 받고
법호를 도의(道義)로 받았으며 백장회해(百丈懷海)께 나아가 뵈오니
"강서의 선맥이 모두 해동의 스님에게로 돌아간다"라는 격찬을 들었다.
이후 헌덕왕13년(서기821년)에 귀국하였으나 교종의 융성으로 선(禪)을 신봉하는 이가 없어
강원도 진전사에 은둔하시다가 법을 염거화상(廉居和尙)에게 전하시고 입적하였다.
또한 도의국사(道義國師)와 동시대인으로 서당지장(西堂智藏)의 법을 전해 받은
홍척국사(洪陟國師)가 있으며, 홍척국사(洪陟國師) 이후에 선종(禪宗)에서도
고승대덕이 배출되어 흥덕왕조부터 신라말에 이르기까지 약 130여년간
선(禪)의 구산(九山)이 형성되었으니 교(敎)의 5宗과 함께 신라불교를
오교구산(五敎九山)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九山은 모두 6조 조계혜능(曹溪慧能)선사의 법손에 해당하므로
조계종(曹溪宗)이라고도 한다.
다) 고려시대
이후 고려시대에 들어오면서 구산(九山)은 점차 쇠퇴해 가다가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
수입한 천태종이 선의 재부흥을 일으켜 바야흐로 오교양종(五敎兩宗)의 시대가 되었다.
그 뒤 해동선(海東禪)의 중흥조 보조지눌국사(普照知訥國師)가 선교양종(禪敎兩宗)을 통합하여
정혜쌍수(定慧雙修)의 종지를 내세워 종풍을 회복하였으며, 혜충왕때 가지산문의 법손인
태고보우국사(太古普愚國師)는 선의 구산문을 통일하여 조계일종(曹溪一宗)을 만들었으니
한국의 수행자들은 태고보우국사(太古普愚國師)의 법손(法孫)이 아닌 이가 없다 할것이다.
라) 조선 및 현대
조선시대에 들어와 정부의 배불정책으로 불교는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다시 나뉘어졌고
일제시대에 이르러 전국 31본산이 통합되어 조계종(曹溪宗)으로 불리우게 되었으니
우리 해동선(海東禪)은 태고보우국사(太古普愚國師)를 종조(宗祖)로 삼고
총본산 사명(寺名)도 태고사(太古寺)로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60년대 비구·대처의 대립으로 총본산이 조계사(曹溪寺)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이와같이 한국불교는 오교구산(五敎九山) → 오교양종(五敎兩宗) → 선교이종(禪敎二宗)에서
조계일종(曹溪一宗)으로 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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