爾時 長者維摩詰自意 寢疾于床 世尊大悲 寧不垂愍 佛知其意 卽告舍利佛 汝行詣維摩詰問疾 舍利佛白佛言 世尊 我不堪任詣彼問疾 所以者何 億念 我昔曾於林中 宴坐樹下 時維摩詰來謂我言 唯舍利佛 不必是坐爲宴坐也 不宴坐者 不於三界現身意 是爲宴坐 不起滅定 而現諸威儀 是爲宴坐 不舍道法 而現凡夫事 是爲宴坐 心不住內 亦不在外 是爲宴坐 於諸見不動 而修行三十七品 是爲宴坐 不斷煩惱 而入涅槃 是爲宴坐 若能如是坐者 佛所印可 時我世尊 聞說是語 默然而止 不能加報 故我不任詣彼問疾 - <維摩經>
그때 장자(長者) 유마힐이 생각하되, 병으로 누워있으니 부처님이 크신 자비로 어찌 불쌍히 여기시기 않으랴. 부처님은 그 뜻을 아시고 곧 사리부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유마힐의 병문안 가거라."
사리부타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 저는 그를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 숲 속 나무 아래에서 좌우하던 일이 생각압니다. 그때 유마힐은 제게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사리부타님, 앉아 있다고 해서 그것을 좌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삼계(三界)에 있으면서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좌선이라고 합니다. 마음과 그 작용이 쉬어 버린 무심한 경지에 있으면서도 온갖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을 좌선이라 합니다. 진리에 나아가는 길을 버리지 않고, 그러면서도 범부의 일상 생활을 하는 것이 좌선입니다. 마음이 안으로 고요에 빠지지 않고 또 밖으로 흩어지지 않는 것을 좌선이라 합니다.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에 드는 것을 좌선이라 합니다. 만약 이와 같이 앉을 수 있다면 이는 부처님께서 인정하시는 죄선일 것입니다.' 부처님 저는 그때 이런 말을 듣고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삼당 할 수가 없습니다."
유마힐의 말에 따르면 유도 없고, 무도 없고, 무에 얽매이는 일도 없는, 집착을 떠난 경지야말로 좌선이라고 이해됩니다. 결가부좌하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는 좌선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리부타가 생각하고 있던 좌선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러나 유마는 명백히 그렇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좌선은 심신의 동요를 멈추는 것이 아니고, 무심의 상태인 동시에 밖을 향해 적극 움직이는 실천을 무한히 지니고 있어서, 그것이 언제나 작용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사리부타는 좌선으로 번뇌를 끊을 때 열반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마는 번뇌를 지닌 채 열반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며, 열반에 있다 해도 번뇌를 떠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열반은 번뇌가 있으니까 비로소 열반인 것이고 번뇌를 지닌 채 열반을 얻는 것이 좌선의 본 모습니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리부타의 선에 대한 개념은 이제 완전히 두집힙니다. 사리부타는 다만 입을 다물 도리밖에 없었다고 실토합니다. 이는 두 사람이 있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 아닐까요? 평면의 2차원적 사고에 굳오진 자는 입체의 3차원적 사고는 꿈에도 생각하기 힘들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3차원에 사는 우리가 4차원 세계에 대해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좌선을 새롭게 탁마(琢磨)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습니다.
이정우 「길을 묻는 그대에게」
느린걸음 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1024511/6862214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
'큰스님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0) | 2018.01.28 |
---|---|
[스크랩] 인간의 생명은 숨쉬는 사이에 있느니 (0) | 2018.01.28 |
[스크랩] 네 마음을 가져와라 (0) | 2018.01.28 |
[스크랩] 진리를 등불로 삼아 (0) | 2018.01.28 |
[스크랩] 어디를 가든 주인공이 되어라 (0) | 2018.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