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 심경 에세이

[스크랩] ♡ 반야 심경 에세이(29)

수선님 2017. 11. 12. 13:27



♡ 반야 심경 에세이(29)

시고(是故)
모든 불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해 고해의 바다를 건너셨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도 또 한 이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해

위없는 무상정등각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으셨다.

...

반야바라밀은 모든 중생들의 고민과 갈등 괴로움을 말끔히 씻어주는 위대한 가르침이다.
자기의 모순에서 깨어나는 것이 반야 바라밀이다.
온 나라가 자기 모순에 빠진 한 사람의 아집으로

국민이 도탄에 빠져 온 국민이 마음 아프다.
자기 모순(이기심) 보다 무서운 병은 없다.
깨어 나거나 깨치거나 의식의 전환이 새로워 지지않으면 자기 도탄에 빠진다.

불상을 보고 부처님 이라 믿는 것은 모순이다.
불상에는 부처가 없다.
부처는 언제나 중생의 마음 속에 있다.

불상에 복을 비는 수준은 어린아이 수준이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볼 때 천방지축인 손자가 하는 일은

모두가 위험하다는 것을 미리알고 예견하여 보살펴 주신다.

불상을 보지 않고 부처님의 법을 봐야 한다.
법을 보는 자 나를 본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이다.

불상 조각 형상으로 나를 보거나 장엄하다고 믿는 사람은 어린아이와 똑같다.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는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체험을 통한 깨우침에서 번개같이 일어나는 자기성찰의 유심(唯心)을 말하는 것이다.

갈등과 번뇌가 없는 깨달음은 없다.
백척간두에 진일보-천길 낭떠러지에서 한 발을 앞으로 내 딛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고난과 시련 고통없이는 깨달음을 얻을수 없다.
비바람 눈보라가 모든 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진리란 인도땅이나 중국땅이나 미국땅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란 십자가에도 불상에도 성경이나 불경 어느학문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이치와 도리를 아는 것이 空의 도리다. 제법이 공하다.
일체만법이 공하다는 것을 볼 줄 알고 느낄 줄 알고 인식 할 줄 알야야 한다.

공의 원칙에서 벗어나면

혼란이 벌어지고 자기 주장만 고집하여 배를 함몰시키게 만든다.
남의 허물을 보았으면 나의 허물을 고쳐야 한다.

모든 사람들의 기도 방식은 자기만을 위한 성취기도 방식이다.

자기의 소원과 출세를 도와 주신다 거나 하느님과 천지 신명이 도와 주신다 거나

부처님이 도와 주신다고 빌고 있다.
신에게 빌고 부처에게 빌고 천지심명께 빈다 .
이루어 주시고 도와 주시면 신명을 다하여 보답하겠다고 맹세도 한다.
중생의 어리석음이 이와 같다.

시어머니가 밥을 먹고 난후 자기 밥그릇을 가지련히 씻어 놓으면

며느리가 자연스럽게 시어머님께 존경심을 가진다.
자기 밥그릇을 씻지 않고 방치하여 그냥 놓아 두면 존경은 받지 못한다.

모든 일에 남을 배려한 사람이 존경 받게 되 있다.

아들에게 불만이 있더라도 남의 자식이라 생각하면 모두가 고맙다.

나의 자식이기 때문에 섭섭하고 나의 며느리기 때문에 불만이 가득한 것이다.

자기가 남의 집에 있다고 생각하면 재워 주고 밥해 주고 빨래 해 주는 머느리가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가?
가끔식 용돈주고 인사하고 친절한 아들이 얼마나 대견한가?

기적은 하느님이나 부처님 천지신명이 주시는 것이 아니다.

기적은 자신이 배풀고 양보하는 마음에서 일어 난다.

남을 배려하고 남을 이해하고 남에게 양보하면 존경의 기적이 일어난다.
배려하고 이해하고 양보하면 철통같은 너와 나 여야(與野)가 남과 북 38선도 무너진다.

시고-모든 진리가 이와 같다.



출처 : 하남 광덕사
글쓴이 : 우현훈(道正도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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