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일아함경

[스크랩] 증일아함경 : 괴로움을 겪어야 즐거움에 이른다.

수선님 2018. 2. 11. 13:16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석시가비라위(釋翅迦毗羅衛)의 니구루원(尼拘屢園)에 계셨다.

  이 때 석가족 마하남(摩呵男)이 세존께서 계신 곳에 찾아와 세존의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그 때 석가족 마하남이 세존께 아뢰었다.

 

  "저는 여래로부터 직접 이렇게 들었습니다.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3결사(結使)를 끊으면 수다원(須陀洹)을 이루리니, 이를 불퇴전(不退轉)이라 한다. 그는 반드시 도(道)의 결과를 이루어 다시는 어떤 외도들도 찾지 않고 또 다른 사람들의 말도 깊이 새기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저는 난폭한 소나 말이나 낙타를 보면 곧 두려움이 생겨 온 몸의 털이 곤두서곤 합니다. 그 때 저는 '만일 내가 지금 이렇게 두려움을 품고 목숨을 마친다면 어디에 태어나게 될까'하고 생각합니다."

 

  세존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지 말라. 설사 목숨을 마친다 하더라도 세 갈래 나쁜 길에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것을 소멸하는 세 가지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세 가지 이치란 무엇인가?

 

  설사 음욕에 집착해 번민과 어지러운 생각을 일으키고, 또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일으켰다 하더라도 이미 그런 음욕이 없어지고 나면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현세에서 고뇌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또 온갖 나쁘고 좋지 않은 법으로 자기를 해치려 했더라도 만일 그것이 없어지고 나면 곧 혼란스러움이 없어지고 근심 걱정이 없어질 것이다.

 

  마하남아, 이른바 이 세 가지 이치는 나쁘고 좋지 않은 법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모든 착한 법을 위로 올라오게 하느니라. 그것은 마치 소(?)를 담은 병이 물 속에서 깨졌을 때 깨어진 조각들은 곧 물밑으로 가라앉지만 소는 물 위로 떠오르는 것과 같다. 그와 마찬가지로 온갖 나쁘고 좋지 않은 법은 아래로 가라앉고 모든 착한 법은 위로 떠오르느니라.

 

  마하남아, 알아야 한다. 나는 옛날 부처가 되기 전 우류비(優留毗)에서 6년 동안 고행할 때에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아 몸이 야위어 1백 살이나 먹은 사람 같았으니, 그것은 다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때 나는 일어나려고 하다가는 곧 땅에 쓰러졌다. 이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만일 내가 지금 죽는다면 어디에 태어나게 될까?'

  그리고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죽더라도 결코 나쁜 곳에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치로 보아 즐거움으로 즐거움에 이를 수는 없다. 반드시 괴로움을 말미암은 후에 즐거움에 이를 것이다.'

 

  나는 그 때 선인굴(仙人窟)에서 노닐고 있었다. 그 때 어떤 니건자(尼?子)가 그곳에서 도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 니건자는 손을 들어 해를 가리키면서 햇볕에 맨몸을 드러내는 공부를 하고 혹은 쭈그리고 앉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때 니건자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왜 자리를 떠나 손을 들고 까치발을 하고 있는가?'


  그 니건자는 대답하였다.

  '구담이여, 알아야 한다. 옛날 우리 스승이 착하지 못한 것을 행하였다. 지금 내가 이렇게 고행하는 것은 그 죄를 소멸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몸을 드러내어 창피스럽고 욕을 당하지만 이것 역시 죄를 소멸시키는 것이다. 구담이여, 알아야 한다. 행(行)이 다하면 괴로움[苦]도 다하고 괴로움이 다하면 행도 다하며, 괴로움과 행이 다하면 열반에 이르게 된다.'

 

  그 때 나는 다시 니건자에게 말하였다.

  '그것은 그렇지 않다. 행이 다한다고 괴로움이 다할 수는 없고, 괴로움이 다한다고 행이 다해 열반에 이를 수도 없다. 다만 괴로움과 행을 다하면 열반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그럴 수 있다. 다만 즐거움으로 즐거움에 이를 수 없을 뿐이다.'

 

  니건자가 말하였다.

  '빈비사라왕(頻毗娑羅王)은 즐거움으로 즐거움에 이르니, 무슨 괴로움이 있겠는가?'

 

  나는 그 때 다시 니건자에게 말하였다.

  '빈비사라왕의 즐거움이 어찌 나의 즐거움만 하겠는가?'

  '빈비사라왕의 즐거움이 당신의 즐거움보다 낫다.'

 

  나는 그 때 다시 그 니건자에게 말하였다.

  '빈비사라왕이 나를 이레 낮 이레 밤 동안 가부좌하고 앉아 몸을 움직이지 않게 할 수 있는가? 단 엿새·닷새·나흘·사흘·이틀 내지 하루만이라도 가부좌하고 앉아있게 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구담이여.'

  '나는 능히 가부좌하고 앉아 몸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어떤가? 니건자여, 누가 더 즐거운가? 빈비사라왕이 더 즐거운가, 내가 더 즐거운가?'

  그러자 니건자는 '사문 구담이 더 즐겁다'고 말하였다.


  이와 같나니 마하남아, 부디 이런 방편을 구해 즐거움으로 즐거움에 이를 수 없고 반드시 괴로움에서 즐거움에 이르는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마하남아, 마치 큰 마을 좌우에 세로와 가로 1유순에 물이 가득 찬 큰 연못이 있는 것과 같다.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한 방울의 물을 떴다면 어떤가? 마하남아, 어느 물이 많은가? 한 방울의 물이 많은가, 연못의 물이 많은가?"


  마하남이 대답하였다.

  "연못의 물이 더 많지 한 방울의 물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이것도 그와 같다. 현성의 제자는 모든 괴로움이 이미 다하고 다시는 생기지 않아 남은 것은 겨우 그 한 방울의 물과 같은 정도이다. 내 제자 중에서 가장 도가 낮은 사람도 일곱 번 죽고 일곱 번 태어남을 넘기기 전에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난다. 다시 더 용맹스레 정진하면 곧 가가(家家)6)가 되어 도를 얻을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는 마하남을 위해 거듭 미묘한 법을 말씀하셨다. 그는 그 법을 듣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그 때 마하남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출처 : 무인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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