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반수의경

[스크랩] 중국에 소승불교를 전파한 파르티아의 왕자 안세고(安世高)

수선님 2018. 2. 18. 12:28

[[인물]] 중국에 소승불교를 전파한 파르티아의 왕자 안세고(安世高)

번호:380 글쓴이: 클라우디우스 조회:20 날짜:2002/08/20 14:48


안세고는 원래 안식국(파르티아)의 왕자였다. 안식국 출신이기 때문에 성을 안(安)이라 하였다. 이름은 청(淸), 자(字)는 세고(世高)이다.
본명은 안청(安淸),자는 세고(世高)이며 부왕이 죽은 뒤 숙부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출가(어떤 사람들은 출가승이 아니라 재가신도인 우바새라고 한다.)이후 여러 나라를 순력하다가 동한 환제 건화 초(147년)에 낙양(당시 동한의 수도)에 와서 그 이듬해부터 영제 건녕2년(169)까지 22여년간 역경 작업을 하였다. 지루가참이 환제 말(166년 경)에 낙양에 왔으니 지루가참보다 약 20년 앞선 셈이다. 동한 영제 말년에 중국 천하가 전란에 휩싸이고 삼국 정립시대의 조짐이 보이자 안세고는 난을 피해 강남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곧 안세고는 강남 지역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한 인물이기도 하다.

강남에서 지낸 행적은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여산, 예장(지금 강서성 남창), 심양(지금 강서성 구강)에서 지낸 적이 있으며 회계(지금 절강성 소흥)에서 임종했다고 한다. 안세고가 회계의 한 저자거리를 지나갈 때 한 옆에서 싸움판이 벌어졌는데 그 불똥이 잘못 튀어 죽었다고 하니 객사한 셈이다.


안세고, 중국의 불교전파에 일익을 담당한 인물이고
각국의 언어에 능통하여 수 많은 불경을 번역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수 많은 그의 역전이 다 그의 작품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불교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기에 검색엔진에서 안세고로 번역하면 수 많은 자료가 쏟아져 나온다.)

그렇지만 안세고로 인한 불교의 전파보다 더욱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가 안식국(安息國:파르티아)의 왕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아버지가 죽자 상을 마친후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고 숙부(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에서는 동생이라고 하는데 숙부가 맞다.)에게 왕위를 넘긴 다음 여러 나라를 거친후 중국에 와서 불전의 번역과 불교의 전파에 힘썼다고 한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당시 파르티아에 관해 조사를 해 보았다.

시오노의 말대로 파르티아는 내전에 많은 나라다.
파코루스 2세 사후(105년) 지금의 이란 북부의 볼로가세스 3세와 그 외 지역의 오스로에스로 나라가 나뉘어졌다.
(두 사람이 로마의 사제정치처럼 지역을 나누어서 정치를 했던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113년 트라야누스의 파르티아 원정으로 파르티아는 수도가 함락되고 오스로에스는 수도가 함락되기 전에 몸을 숨긴다.
129년 오스로에스 사후 미트라다테스 4세가 왕위에 오른다(두 사람은 혈연관계가 없는 듷하다.).
그리고 2년후인 131년에 지금의 쿠웨이트 부근의 도시 카락스(Charax ㄸ또는 mesene)에서 또 다른 미트리다테스 란 인물이 왕을 칭한다.
이대 미트라다테스 4세와 그의 아들 볼로가세스 2세 사이에 이름모를 왕이 주화에 보인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서기 140년에 왕위에 올랐던 것으로 추측되는 인물이다.

북부의 볼로게세스 3세, 중부의 이름모를 왕, 남부의 미트라다테스.

117년 하드리아누스의 즉위로 로마와의 전쟁의 위협이 줄어든 파르티아는 그후 오랜 세월동안 나라가 갈라져 있었다.
아마 안세고가 정말로 왕이었다면 140년에 왕위에 올랐다가 그 후의 행적을 알 수 없는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 그 왕이 아닐까?
(미트라다테스 4세가 140년에 사망했다는 자료도 있고 147년(이게 더 우세하다.) 사망했다는 자료도 있다.)

우연히 알게된 안세고 란 인물때문에 흥분해서 오늘하루 폭주해 버렸다.

안세고 이야기의 진위를 어찌되었든 파르티아와 인도 및 중국 과의 교류의 새로운 면을 알게된 것 같아서 나름대로 기쁘다.


PS) 우연히 퀸투스 라비에누스의 이야기를 알게된 것 처럼 안세고의 이야기를 알게되어서 조금 끄적거렸습니다.
그리고 당시 파르티아의 정황은 부족한 자료로 짜집기 한 것이라 틀린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래는 안세고에 대한 기사 한문 원문이 있는 곳의 주소입니다.
http://www.muhupin.x-y.net/cj5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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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네이버에서 찾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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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청(안세고) 문제제기


오픈백과 디렉토리 : 역사, 인물 > 인물 > 철학자



본명은 안청(安淸),자는 세고(世高)이며 안식국의 태자였으며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였으며 학업에 뛰어났고 배우려는 욕망 또한 대단히 왕성하였다. 불교에는 특별히 심취하였다. 외국의 서적들과 칠요(七曜=일,월,화, 수,목,금,토의 학문)의 학문, 의술, 그밖의 진기한 술법은 물론이요, 나아가 새나 짐승의 울음소리에 이르기까지 연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어느날 길을 걷다가 떼지어 앉아 지저귀는 제비들의 소리를 듣고 동행하던 사람에게 말하기를 "조금있으면 먹을 것을 가져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저 제비들은 저렇게 지저귀고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과연 얼마 안있어 먹을 것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에게는 그런 안청이 신기하게 보였다. 그러므로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소문은 일찍이 서역 전 지역의 여러나라에 퍼져 있었다.
세고(안청)는 집에 있어서도 계율을 지키는 데 있어서는 엄격하였다. 부왕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인생이란 괴롭고 공(空)한 것을 깨닫고는 자신의 육체를 혐오하게 되었다.
부왕의 상을 마친 후에 숙부에게 왕위를 선양하고 출가하였다. 특히 아비담(阿毘曇:<부파불교> 붓다의 입멸 후, 교단은 차츰 확대·발전하고, 특히 BC3세기 전반에 인도에 처음으로 출현한 통일국가인 마우리아왕조, 그리고 그 황금시대를 쌓은 아소카왕의 불교 신앙은 불교의 세력을 전인도에 비약적으로 늘렸다. 교단의 확대와 함께 아소카왕 때보다 조금 앞서서 교단은 보수파와 진보파의 대립으로 인해 분열되어, 각기 상좌부와 대중부라고 했다. 그로부터 100여 년 사이에 대중부가 다시 분열되어 전부 약 20개의 부파가 성립되었다. 뒤에 일어난 대승불교도(大乘佛敎徒)는 이것을 소승이십부라고도 했다. 각 부파는 저마다 구전의 가르침(阿含)을 불경으로 고정시킨 뒤에, 각자의 해석에 따라 그 교리·교의를 조직화, 체계화했다. 이 정밀(精密)한 교의대계(敎義大系)는 아비다르마(abhidharma;阿毘達磨, 또는 阿毘曇)라고 하며, 서양의 신학 특히 스콜라철학과 대등하다. 현재 아비다르마는 남방불교가 전하는 상좌부의 칠론(七論)과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有部)의 한역인 칠론이 전해지며, 그 밖에 소속불명의 한역이 2∼3개 있다. 부파불교는 거의 출가자의 독점에 맡겨져서 그들은 오직 자기의 수행에 정진하고, 교단에 속하는 장원(莊園)에 의존하였다. )에 정통하였으며 선관(禪觀)을 설하는 경전을 완전히 외어 그 경전의 진수를 속속들이 깊이 연구하였다. 그는 각 지방을 돌면서 부처의 가름침을 널리 펴고 또 여러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많은 공부를 하였으며, 한나라 환제(後桓帝:147~167) 초기에는 마침내 중국에 이르렀다.
그는 재주와 깨달음이 남달리 기민해서 한번 들으면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였다. 그래서 중국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 중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고 완전히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수많은 경전을 번역하였는데 범어를 한문을 옮긴 것이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음지입경(陰持入經)>, 대소 이종의 <십이문론(十二門論)> 등이다.
처음에 외국의 삼장법사인 중호가 여러 경전의 긴요한 뜻들을 모두어 만든 27장중에서 7장을 뽑아 한문으로 역출하였는데 그것이 <도지경(道地經)>이다.

안세고(安世高)의 「십이문경(十二門經)」과 주역서 필사본이 일본에서 발견됐다. 석가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12단계의 명상을 기록한 「십이문경」은 최초의 한문 경전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수(隋)나라 시대 경전목록인 「인수록(仁壽錄)」(602년)이 이미 「사라졌다」고 적었고 중국에서는 사본조차 발견되지 않는 등 「환상의 경전」으로 여겨져 왔다.

오사카(大阪) 가와치나가노(河內長野)시 곤고지(金剛寺)가 소장한 가마쿠라(鎌倉·1192~1333년)시대의 「일체경(一切經)」 약 4,000권을 조사하던 오사카대학 고토 아키오(後藤昭雄)교수 연구팀이 「대안반경(大安般經)」이란 표제가 붙은 같은 내용의 2권의 책속에서 찾아냈다. 각각 한 줄에 약 17자씩 모두 584줄로 이뤄진 이 책의 284~366줄이 십이문경, 367~584줄이 그 주해서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주해서는 중국 불교 확립에 기여한 도안(道安·312~385년)이 쓴 「십이문경 주해」인 것으로 확인됐다.
고토교수는 6세기초 중국의 불교논문집인 「홍명집(弘明集)」이 인용한 십이문경의 일부 내용과 대조한 결과 기술이 거의 일치했다고 밝혔다. 언제 누가 베껴 썼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일체경」과 함께 보관돼 있던 점이나 서체로 보아 가마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도에서 중국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기원전 1세기경이나 경전은 2세기 중엽 안세고가 번역한 것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이란 부근에 있었던 팔티아왕국, 즉 안식국(安息國)의 왕자였던 안세고는 왕위 계승자 지위를 버리고 인도에서 수행한 후 147년경 후한(後漢)의 도읍지인 낙양(洛陽)에서 35부 41권의 불경을 번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제불교학대학원대학 가마타 시게오(鎌田茂雄)교수는 『대량의 불경이 가지런히 갖춰진 「돈황(敦煌)사본」도 남북조시대에서 당(唐)시대에 걸친 경전일 뿐 후한 시대의 불경은 없었다』면서 『획기적인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안세고(安世高)의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이 경전은 <불설대안반수의경(佛說大安般守意經)> <대안반경> <안반경> <수의경> 등으로 불리는 경전이다. 한역으로는 후한시대 안세고(安世高)가 상하 두 권으로 번역한 것이 있다. ‘안반수의(安般守意)’란 범어 ‘아나빠나싸띠(Anapanasati)’를 소리와 뜻에 따라서 한자로 번역한 말이다. 이 의미를 분석하면 ‘아나(ana)’는 들숨이고, ‘아빠나(apana)’는 날숨이고, ‘싸띠(sati)’는 의식집중이다. 한자로 보면 ‘안반’은 들숨과 날숨이고 ‘수의’는 의식집중이므로 ‘안반수의’란 곧 들숨과 날숨에 정신을 집중하는 선정 수행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경의 제목으로 본다면 초기 선정수행의 오정심관(五停心觀) 중의 하나인 수식관(數息觀)과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방법적으로도 이 선정은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세는 것부터 시작하나, 내용상으로 볼 때 이 선정법은 ‘안반수의법’ 또는 ‘안반념법’이라고 하는 것이 합당하다.

전체의 내용을 보면 상권은 안반수의법의 이론과 실제를 설명하고 하권은 상권의 내용을 강조하면서 그 공덕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행법만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안반수의법을 통하여 많은 교학적인 사상을 함께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일견 매우 복잡한 듯하나 그 전체의 구성은 상하권이 다음과 같이 유기적인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상권에는 안반수의법에 의해서 여섯가지의 진전 단계를 1)들숨과 남숨의 수를 헤아리는 수(數), 2)호흡에 의식이 따라가 하나가 되는 상수(相隨), 3)마음이 호흡을 의식하지 않고 고요히 안정되는 지(止), 4)사물을 관찰하게 되는 의식집중 상태인 관(觀), 5)다시 고요한 자기의 주체로 돌아오는 환(還), 6)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는 청정한 세계인 정(淨)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하권에는 이러한 여섯단계에 이르렀을 때 얻는 공덕을 1)수의 단계에서는 네가지 마음의 힘을 얻게 되는 사념처(四念處), 2)상수의 단계에서는 마음의 힘으로 네가지 악을 없애고 바른 노력을 하는 사정근(四正勤), 3)지의 단계에서는 네가지 신통력을 얻게 되는 사신통(四神通), 4)관의 단계에서는 다섯가지 악을 처부수는 힘을 얻는 오력(五力). 5)환의 단계에서는 일곱가지 지혜를 얻게 되는 칠각지(七覺支), 6)정의 단계에서는 여덟가지 올바른 길인팔정도(八正道)를 얻는다고 설명한다.

이상과 같은 수행의 진전 단계와 그에 따른 공덕은 최초의 수(數)의 단계에서부터 수동적·자발적인 과정으로 이루어 진다. 따라서 이 안반념법의 수행의 시작은 단순히 호흡을 헤아리는 행법에서부터 출발한다. 선정수행이 이처럼 동물의 원초적인 본능작용에 바탕을 둔 까닭은 선정수행을 모든 중생에게 보편화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이 경의 첫머리에 “이 때 부처님께서는 앉아서 안반수의를 90일 동안 하셨다. 다시 90일을 홀로 앉아 생각을 가다듬고, 온 세상의 모든 인간과 날아다니는 새와 꿈틀대는 동물들을 구제하시고자 하셨다”이 의미는 선정수행을 쉽게 대중화시키고자 하는 의미일 것이다. 또한 수행을 쉬운 방법으로 시작하는 것은 부처님의 중도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의 육년고행 중에는 숨을 멈추고 참는 방법이 있었는데, 이 고행으로 머리는 쪼개지듯이 또는 칼로 베듯이 아프고 몸은 불에 타는 것과 같았다고 한다. 이러한 고행은 부처님과 같은 분에게도 궁극적인 해탈을 위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일반 범부로서는 감히 실행하기 어려운 행법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극단적인 고행을 버리고 안반수의라는 중도적 수행을 택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살아있는 인간으로서는 아주 당연한 생명현상인 숨의 움직임에 의식을 집중하는 방법인 안반수의는 선정을 쉽게 일반화한 것이다. 그러나 숨을 헤아린다든가 하는 의식집중은 단순한 마음의 안정이나 생각의 멈춤과 같은 상태(止, 사마타)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교학을 바탕으로 한 지혜로 비추어 봄이 있다. 예를 들면 들숨인 안과 날숨인 반은 곧 생·멸 또는 유·무와 같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세계를 의미하고, 여기에 집중하는 수의는 중도이고 비춰보는 지혜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반수의는 지의 수행만이 아니라 관(觀, 위빠싸나)의 수행을 함께 갖추고 있는 지관겸수의 선정법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왕위계승자였으나 숙부에게 양위하고 출가하였다.그후에 불학연구에 몰두하여 서역 각지를 돌아다니다 건원초년에 낙양에 도래하여 불경의 역술에만 20년간 매달렸다. 그당시의 낙양에는 불교신봉자가 일종의 신선방술도 연마하는 분위기여서 제축의 대상으로서 기구장생되고 분향되는 숭배의 대상이었던 시기였다. 안세고로 인하여 불경이 번역됨으로서 비로서 불교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중국불교사상 제일위의 역사로 평가된다. 그를 따라서 비로서 중국에서 불학연구가 본격화되었다. 말년엔 소흥에 안거하였다.

녹야원(鹿野苑)
고대 중인도 바라나국(波羅奈國)에 있었던 숲의 이름. 석가모니가 성도한 후 최초로 5비구에게 설법하였던 장소.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로 꼽힌다. 녹림(鹿林), 시록원(施鹿園), 녹원(鹿園), 선인주처녹야원(仙人住處鹿野苑), 선인녹야원(仙人鹿野苑), 신선녹원(神仙鹿苑), 선인타처시록림(仙人墮處施鹿林). 녹원(鹿苑).



출 처 : [인터넷] http://www.muhupin.x-y.net/cj56.htm

출처 : nirvana
글쓴이 : 무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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