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스크랩] 입법계품 27. 자행동녀의 법문

수선님 2018. 2. 18. 13:05

연화사 앨범 > 십우도 6. (기우귀가 ...선재동자는 승열바라문으로부터 남쪽 사자분신성(獅子奮迅城)에 있는 자행동녀(慈行童女)를 찾아가서 법을 물으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사자분신성에 이르러 그녀를 찾아보니, 그녀는 사자당왕(獅子幢王)의 딸로서 비로자나장 궁전에 머물면서 묘법을 연설한다는 말이 들리었다. 무량한 대중들이 자행동녀의 법문을 듣기 위해 궁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선재동자도 왕궁에 들어가보니 과연 자행동녀가 비로자나 궁전에서 법을 설하고 있었다.


선재동자가 앞에 나아가 예배하고 보살행을 배우고 닦는 법을 묻자, 자행동녀는 “선남자여, 그대는 나의 궁전의 장엄을 보라”고 말하였다. 선재가 무수한 장엄을 두루 구경하니, 낱낱의 장엄 가운데에 온 법계의 여러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발심하고, 보살행을 닦아 큰 서원을 만족하고, 공덕을 갖추어 정등각을 이루고, 묘한 법륜을 굴리다가 열반에 들어가시는 일이 영상(影像)처럼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깨끗한 물 속에 해와 달을 비롯한 모든 사물의 모습이 비치는 듯하였는데, 이러한 것은 모두 자행동녀가 지난 세상에 심은 선근(善根)의 힘에 의한 것이었다.


선재동자가 궁전의 장엄에서 본 부처님들의 여러가지 모습을 생각하고 있는데, 자행동녀가 선재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이것은 반야바라밀로 두루 장엄하는 문인데, 내가 삼십육 항하사의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이 법을 얻었는데, 저 모든 부처님들은 각각 다른 법으로써 나를 이 문에 들어가게 하셨다.”


이 말을 듣고 나서 선재동자는 자행동녀에게 이 반야바라밀로 두루 장엄하는 문의 경계가 어떠한가를 물었다. 이에 자행동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것이었다.


“선남자여, 내가 이 반야바라밀로 두루 장엄하는 문에 들어가서 수순(隨順)하여 생각하고 관찰하고 기억하고 분별할 적에 보문(普門)다라니를 얻으니, 백만 아승지 다라니문이 앞에 나타났느니라.”


이와 같이 말하면서, 자행동녀는 부처님 ·법·중생·공덕·지혜·행(行)·마음다스림 등에 관한 다라니를 모두 일백일곱 가지나 말하였다. 그리고 나서 “선남자여, 나는 이 반야바라밀로 두루 장엄하는 문(門)만을 안다”라고 하였다.


위에서 설하고 있는 내용은 반야바라밀에 의해서 불국토를 장엄하는 공덕을 두루 갖추는 법을 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행동녀가 이러한 법문을 설하고 있는 것은 어떤 것에도 오염되지 않는 청정한 동녀(童女)의 마음이기 때문에 부처님국토를 장엄하는 공덕을 낼 수 있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 생각된다. 자행동녀는 이것은 ‘반야바라밀로 두루 장엄하는 법문’으로서 구체적으로 신증(身證)해서 나타내 보이는 법문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자행동녀가 평소에 생활하는 주변환경과 온갖 기물(器物)속에서 온 법계의 여러 부처님들의 거룩한 행적을 영상(影像)처럼 나타나게 한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바로 일상의 모든 생활 가운데에서 항상 공덕을 지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자행동녀의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숙세에 수행해서 심은 선근의 힘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행동녀는 과거 무량한 부처님 계신 곳에서 반야바라밀로 두루 장엄하는 법을 얻었으며, 그 부처님들이 각기 다른 문으로써 여기에 들어가게 하였다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행동녀는 이 반야바라밀다로 부처님 경계를 두루 장엄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지혜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모든 것을 생각하고 관찰하고 기억하고 분별하는 것이라고 설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무량한 다라니를 얻게 된다고 하면서 자신의 체험을 다라니로써 표현하고 있다.


다라니는 모든 가르침을 이해해서 잊어버리지 않는 기억력 또는 여러가지 의미를 간단한 언어로 요약한 것을 말한다. 자행동녀의 법문에서 반야바라밀로 부처님의 경계를 두루 장엄하는 공덕을 갖추는 것을 무량한 다라니로써 나타내고 있는 것은 진실로 주목할만한 내용이다.


부처님 경계를 장엄하는 공덕을 갖추어서 나타낼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념(正念)으로 사유(思惟)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조용히 사색하여 가는 가운데에 깨달음의 가르침이 바르게 이해되고 분명하게 기억되어 진실한 세계가 열리어 오고,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무량한 다라니를 얻었다고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반야바라밀로 두루 장엄한다고 하는 것은 반야바라밀의 입장에서 무진(無盡)의 세계를 장엄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결국 지혜에 근거를 두고 지혜의 작용을 일으켜서 공덕을 원만하게 갖추는 것이다.


권탄준/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출처 : 忍土에서 淨土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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