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입법계품 29. 자재주 동자의 법문

선견 비구로부터 남쪽의 명문(名聞)이라고 하는 나라의 물가에 있는 자재주(自在主) 동자를 찾아가 법을 물으라는 가르침을 받고, 선재동자는 그를 찾아 나섰다.

 

공중에서 천룡, 건달바들이 동자가 지금 물가에 있다고 일러주는 것을 듣고 그곳에 가 보니, 그는 일만이나 되는 동자에게 둘러싸여서 모래를 모아 장난하고 있었다. 선재 동자는 그의 발에 예배하고 합장 공경하면서 보살행을 배우고 보살도를 닦는 법을 물었다.

이에 자재주 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옛날에 문수사리동자로부터 글 쓰는 법과 산수(算數)와 모든 것의 형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결인(結印) 등의 법을 배워서 ‘온갖 교묘한 신통 지혜의 법문(一切工巧神通智法門)’에 들어 갔노라. 나는 이로 인하여 세간의 글, 산수, 결인 등의 법을 알며 또 풍병, 간질, 조갈병, 귀신이 붙은 모든 병을 치료하며, 모든 건축, 약제, 농업, 공업, 상업도 잘 알아서 관리한다. 또한 중생들의 모습을 잘 분별할 수 있기 때문에 선악(善惡)을 지어서 좋은 곳과 나쁜 곳에 태어날 것을 알며, 성문의 법을 얻거나 연각의 도를 얻으며 ‘온갖 지혜(一切智)’의 경지에 들어가는 일들을 다 잘 안다. 그리고 중생들에게 이런 법을 배우게 하며, 증장케 하고 완수하게 하여 청정무구하게 한다. 선남자여, 나는 또한 보살의 계산하는 법을 알기 때문에 이 법으로 모든 세계의 갖가지 차별과 그 속에 있는 모든 것의 이름을 분명히 다 알 수 있다. 나는 오직 이 ‘온갖 교묘한 큰 신통 지혜의 광명법문(一切工巧大神通智光明法門)’만을 알 뿐이다.”

이와 같은 자재주 동자의 법문은 청정한 지계(持戒)생활을 바탕으로 하여 세간 속에서 중생을 여러가지로 이롭게 하는 법을 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자재주 동자가 강변에서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은 온갖 깨끗치 못한 것을 끊임없이 씻어버리는 물가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의미로서, 그가 평소에 지계생활을 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동자로 소개되어 있는 것은 지계생활이 청정해서 어떠한 오염도 없기 때문에 순진무구한 동자에 비유한 것이다. 그 이름이 자재주인 것은 지혜로써 세간을 벗어나는 것과 세속에 들어가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자유자재하기 때문에 그러한 명칭이 붙은 것이다.

범본(梵本)에 의하면 ‘자재주’는 Indriyesvara로서 ‘모든 인식기관이 자재하다(諸根自在)’고 하는 의미이다. 중생의 인식기관은 인식대상(경계)에 의해 오염되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지만 참된 수행인은 계행(戒行)이 청결하여 훌륭한 삶을 자재하게 펼칠 수가 있는 것이다. 자재주 동자 스스로 앞에서 “나는 문수사리동자로부터 여러가지 법을 배워서 ‘온갖 교묘한 신통 지혜의 법문’에 들어갔다”고 밝히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재주 동자가 일만이나 되는 동자에게 둘러싸여서 모래장난을 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은 깨끗한 환경 속에서 어떠한 경계에도 지배를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순진무구한 생활을 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그가 ‘온갖 교묘한 신통 지혜의 법문’에 들어가 세간의 서법(書法)·산수·결인·여러가지 병의 치료법·약만드는 법·각종 기술·농업과 상업·중생의 세간을 벗어나는 근기 등에 대해 알 수 있게 된 근본원인은 결국 모든 감각기관(즉 六根)이 청정하여 자재하게 활동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청정한 계행을 바탕으로 세간 속에서 다양하게 중생들에게 이로움을 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보살이 세간 속에서 스스로 깨달음을 구하면서 한편으로 중생을 교화하여 그들을 제도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간의 각종 지식과 기술 등에 대해 정통하는 것도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터득하고 싶어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도 이것이 잘 되지 않고 제대로 이룩한 사람이 많지 않은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본질적으로 청정한 삶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청정한 삶이 불가능한 것은 인식기관이나 인식주체가 외부의 각종 경계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갖가지의 계행을 지켜서 청정하고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생을 이롭게 하고 중생을 구제하는 대승보살행을 올바르게 행할 수 있는 근본이 되는 것이다. 대승보살의 대비이타행은 청정하고 진실한 삶에서 꽃피어 나오는 것이다.

자재주 동자는 이와 같이 진정한 대승보살행은 청정한 지계생활이 있음으로 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자재주 동자의 법문을 대하면서 깊이 느끼게 되는 것은 보살의 진정한 중생구제력은 지식이나 재주가 아니라 맑고 진실한 생활로 스스로를 지켜 나아가는 데에서 나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권탄준/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출처 : 忍土에서 淨土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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