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문답禪問答 / 문학비평용어사전
선문답이란 석가가 영산(靈山) 설법에서 말없이 꽃을 들자, 제자인 가섭(迦葉)이 그 뜻을 알았다는 데서 연유한 것으로, 이심전심(以心傳心), 즉 말을 통하지 않고 통하는 진리 또는 불립문자(不立文字), 즉 문자로 세울 수 없는 진리를 종지(宗旨)로 삼는 선종(禪宗)에서의 화두를 말한다.
선문답을 중시하는 선종의 태도의 기저에는 언어기호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의 정신이 담겨있다. 불가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는 도저히 언어를 통해서 밝힐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언어의 소통관계를 해체하고 전복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유형으로 선문답이 태생하게 되는 것이다.
기실 언어기호에 대한 회의는 동양 정신의 기본을 이루는 것이다. 『장자(莊子)』에는 수레 장인 --의 우화와 같은 문자가 지니는 한계에 대한 숱한 우화가 등장한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도 聖人立象而眞意, 즉 성인은 상(象)을 통해 본 뜻을 밝히다고 하여, 언어를 넘어서는 상징적 이미지의 가치를 강조한 바 있다. 이런 동양의 기본적 정신이 불가의 선이라는 수행방법과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이 선문답이라고 할 수 있다.
선문답이 지니는 언어에 대한 회의 정신은 데리다를 비롯한 후기구조주의자들이 언어기호의 확정성을 의심하고 그것을 해체하려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언어기호의 확정성에 대한 의심은 모더니즘이 지닌 인과성, 결정론적 세계관에 대한 해체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선문답과 불교의 불립문자(不立文字)하는 정신은 서구의 탈현대적 흐름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우리 문학에서도 김지하나 이승훈에 의해 선문답적 주제의식을 담은 시들이 새로이 창작되고 있다. 다만 김지하가 우리 전통에 기반을 두어서 선문답적 문제의식을 끌어온다면 이승훈은 탈현대적 서구철학의 흐름을 통해 우리 전통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다.(최민성)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선문답 [禪問答]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1. 30., 국학자료원)
● 선문답이란 선종에서의 화두입니다.
화두란 불가의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참구(參究)하는 문제를 뜻하는 말입니다..
선종은 불교종파 중 하나로 화엄종(華嚴宗) ·법상종(法相宗) 등 교학(敎學)을 중시하는 교종(敎宗)에 대하여, 직관적인 종교체험으로서 선(禪)을 중시하는 불교의 종파입니다. 원래 선종은 석가가 영산(靈山) 설법에서 말없이 꽃을 들자, 제자인 가섭(迦葉)이 그 뜻을 알았다는 데서 연유한 것으로, 이심전심(以心傳心)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종지(宗旨)로 삼고, 종파로 성립된 것은 개조(開祖)로 전해지는 달마(達磨)가 650년경 중국에 입국하면서 비롯되는데, 혜가(慧可) ·홍인(弘忍) ·혜능(慧能) 등으로 계승되면서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것은 784년(선덕왕 5) 중국 당(唐)나라의 서당지장(西堂智藏)에게서 법을 받아온 도의(道義)가 가지산문(迦智山門)을 개창한 것을 비롯, 이후 선종 9산문이 성립되면서 크게 번창하였습니다. 고려 전기에는 화엄종 ·법상종 등의 교종이 번성하면서 쇠퇴하였다가, 고려 명종 때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조계산(曹溪山)에 수선사(修禪寺)를 세우고,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설립하면서 다시 번성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에 의해 점차 쇠퇴하였다가 1424년(세종 6)에는 당시 불교 7종파를 선종과 교종의 두 종파로 폐합하면서 조계종(曹溪宗) ·천태종(天台宗) ·총남종(摠南宗)의 세 종파가 선종으로 단일화되었고, 1565년(명종 20) 양종제도가 폐지되면서 국가권력에 의해 종파가 폐지되었습니다. 불교 암흑기로 불리는 산중 불교시대를 거쳐 휴정(休靜)과 선수(善修)에 의해 중흥되어 이후 활발하게 선법의 계통을 이어가다가, 포교활동이 자유로워진 한말 이후 원종(圓宗) ·임제종(臨濟宗) 등으로 불리다가, 1941년에는 오늘날과 같은 조계종이라는 종파의 명칭을 확정하였습니다.
선문답은 당대의 승려인 협산 선회(夾山善會)의 일화에서 유래한 화두입니다.
한 승려가 협산에게 ‘어떤 것이 협산의 경계입니까?’라고 묻자,
협산은 ‘원숭이는 새끼를 안고 푸른 산 뒤로 돌아가고, 새는 푸른 바위 앞으로 꽃을 물고 온다.’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에 협산은 영천선원(속칭 협산사)에 불법을 펴고 있었고 승려가 협산의 경계를 물은 것은 협산이라는 산의 경치를 물은 것이 아니라 협산 선회가 얻은 깨달음의 경지를 물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협산 선회는 오히려 협산의 경치를 이야기하여 산의 아름다운 풍경처럼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고 있음을 암시하였습니다. 뒤에 법안종을 일으킨 법안 문익(法眼文益)은 ‘나는 20년 동안이나 경계라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하였다고 전해지며 이 이야기는 고려의 승려 혜심(慧諶)이 편찬한 《선문염송》에 나옵니다.
출처 네이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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