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윳따 니까야(잡)

[스크랩] [상윳따 니까야] 아누라다 경(S22:86) 일부 -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을 천명

수선님 2018. 3. 4. 13:35

 

"아누라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누라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

인식은 ...

심리현상들은 ...

알음알이는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누라다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건 ...

그것이 어떠한 인식이건 ...

그것이 어떠한 심리현상들이건 ...

그것이 어떠한 알음알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아누라다여, 이와 같이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심리현상들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아누라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물질을 여래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대는 느낌을 ...

인식을 ...

심리현상들을 ...

알음알이를 여래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누라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물질 안에 여래가 있다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대는 느낌 안에 ...

인식 안에 ...

심리현상들 안에 ...

알음알이 안에 여래가 있다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누라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물질과 느낌과 인식과 심리현상들과 알음알이가 [모두 합해진 것이] 여래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누라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러면 그대는 물질도 아니요 느낌도 아니요 인식도 아니요 심리현상들도 아니요 알음알이도 아닌 것이 여래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누라다여, 이처럼 그대는 지금 여기(현재)에서도 여래는 실재하고 견고하다고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대가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즉 '도반들이여, 그분 여래는 최상의 사람이며, 최고의 사람이며, 최고에 도달한 분입니다.

여래께서는 이러한 [자신에 대해서] '여래는 죽고 난 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죽고 난 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죽고 난 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죽고 난 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이러한 네 가지 경우 가운데 하나로 천명하십니다.'라고."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고 장하구나, 아누라다여, 아누라다여,

나는 이전에도 지금에도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을 천명할 뿐이다."

 

주)

이 경의 흐름을 살펴보면,

세존께서는 먼저 개념적 존재를 오온으로 해체하시어 이 오온 각각이 무상이고 괴로움이고 무아임을 천명하신다.

이렇게 하여 각각 강한 위빳사나-도-아라한과-반조로 설명이 되는 염오-이욕-해탈-해탈구경지를 성취하여 아라한이 됨을 천명하신다.

그런 뒤 여러 방법으로 지금 여기에서 전개되고 있는 오온을 여래라고 볼 수 없다고 단정하신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내생에 여래가 존재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하는 언급 자체가 전혀 잘못되었음을 결론짓고 계신다.

 

마지막 말씀은 두가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세존께서는 사후의 문제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시지 않고 지금 여기(현재)에서 괴로움의 소멸에 도달하는 실천적인 길을 설할 뿐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해만으로는 여래에 대한 관찰과는 연결짓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둘째는 여래란 무상한 여러 현상들이 합성된 것이요 그래서 괴로움이요 그래서 불변하는 실체가 없는 것이며 그래서 이것은 단지 인습적 표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한 모든 사유나 설명은 단지 인습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습적인 것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고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인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만을 천명한다는 것이다.

 

- '상윳따 니까야(각묵 스님 옮김, 초기불전연구원) 제3권의 <무더기 상윳따>(S22) 중에서 -

출처 : 붓다 담마
글쓴이 : 호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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