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음식 품
Āhāra-vagga
음식(자양분) 경(S12:11)
Āhār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이미 존재하는 중생들을 유지하게 하고 생겨나려는 중생들을 도와주는 네 가지 음식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거칠거나 미세한 덩어리진 먹는 음식이 첫 번째요,
감각접촉[觸食]에 의한 자양분이 두 번째요,
마음의 의도(마음의 생각)에 의한 자양분이 세 번째요,
의식에 의한 자양분이 네 번째이다.
(거칠거나 미세한 물질적 자양분, 접촉의 자양분, 의도의 자양분, 의식의 자양분)
비구들이여, 이미 존재하는 중생들을 유지하게 하고, 생겨나려는 중생들을 도와주는 이러한 네 가지 자양분(음식)이 있다.”
註) 네가지 자양분(음식) : cattara ahara. 음식(자양분)이라고 번역한 원어의 뜻은 '나르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자양분의 의미가 취착을 뜻하는 upadana 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upadana 는 땔감을 의미하는데 ahara도 역시 불이나 등불의 자양분으로 땔감을 의미한다. '기름이 소모된다면 등불은 자양분이 없어 꺼질 것이다.' 이 경구에서 ahara가 갈애를 통해서 조건지어진다는 사실은 연기의 요소에서, 취착 즉 upadana가 갈애를 통해서 조건지어진다는 사실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덩어리진 자양분(kabalimkaro aharo), 감촉에 의한 자양분(phasso aharo), 마음의 생각에 의한 자양분
(manosancetana aharo), 의식에 의한 자양분(vinnanam aharo)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이러한 네 가지 자양분은 무엇이 그 근원이며(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으로부터 발생하는가(무엇을 원천으로 하는가)?
네 가지 음식은 갈애가 그 근원이며, 갈애로부터 일어나고 갈애로부터 발생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갈애는 무엇이 그 근원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으로부터 발생하는가?
갈애는 느낌이 그 근원이며 느낌으로부터 일어나고 느낌으로부터 발생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느낌은 무엇이 그 근원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으로부터 발생하는가?
느낌은 감각접촉이 그 근원이며 감각접촉으로부터 일어나고 감각접촉으로부터 발생한다.”
6. “비구들이여, 그러면 감각접촉은 무엇이 그 근원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고, 무엇으로부터 발생하는가?
여섯 감각접촉은 여섯 감각장소가 그 근원이며 여섯 감각장소로부터 일어나고 여섯 감각장소로부터 발생한다.”
7. “비구들이여, 그러면 여섯 감각장소는 무엇이 그 근원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으로부터 발생하는가?
여섯 감각장소는 정신∙물질이 그 근원이며 정신∙물질(명색)로부터 일어나고 정신∙물질로부터 발생한다.”
8. “비구들이여, 그러면 정신∙물질은 무엇이 그 근원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으로부터 발생하는가?
정신∙물질은 의식이 그 근원이며 의식으로부터 일어나고 의식으로부터 발생한다.”
9. “비구들이여, 그러면 의식은 무엇이 그 근원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으로부터 발생하는가?
의식은 형성이 그 근원이며 형성으로부터 일어나고 형성으로부터 발생한다.”
10.“비구들이여, 그러면 의도적 행위들은 무엇이 그 근원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발생하는가?
형성은 무명이 그 근원이며 무명으로부터 일어나고 무명으로부터 발생한다.”
11.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의식을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13. “무명이 남김없이 소멸하여 소멸하기 때문에 형성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기 때문에 의식이 소멸하고, 의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물질이 소멸하고,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몰리야팍구나 경(S12:12)
Moḷyaphaggu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이미 존재하는 중생들을 유지하게 하고 생겨나려는 중생들을 도와주는 네 가지 음식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거칠거나 미세한 덩어리진 먹는 음식이 첫 번째요, 감각접촉[觸]이 두 번째요, 마음의 의도가 세 번째요, 의식이 네 번째이다.
비구들이여, 이미 존재하는 중생들을 유지하게 하고 생겨나려는 중생들을 도와주는 이러한 네 가지 음식이 있다.”
3. 이렇게 말씀하시자 몰리야팍구나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이 의식의 자양분을 먹습니까?”
“그것은 타당한 질문이 아니다.”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중생이나 사람이 음식을 먹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만일 내가 ‘중생이나 사람이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면,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음식을 먹습니까?’라는 그대의 이 질문은 타당하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세존이시여, 그러면 이 의식의 자양분은 어떤 법의 조건이 됩니까?’라고 물어야 그것이 타당한 질문이다.
만일 그대가 이렇게 묻는다면 여기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타당한 설명을 할 것이다.
‘의식의 음식(의식의 자양분)은 내생에 다시 태어남[再生]의 발생이라 불리는 정신∙물질의 조건이 된다. 그러한 정신∙물질(명색)이라는 존재가 있을 때 여섯 감각장소가 있고,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하여 감각접촉이 있다.’라고”
註) - 팍구나 비구는 음식이 있다면 그 음식을 먹는 자도 있어야 한다고 가정하고 이렇게 질문을 드린 것이다. 만일 의식도 음식이라 부른다면 이러한 음식을 먹는 어떤 상주불변하는 자아가 의식의 배후에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인 것이다. 이것은 불교의 근본인 무아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가정이다.
-팍구나(moliya phagguna). moliya는 moli(cula)의 형용사로 길게 자란 머리를 머리 위까지 따올려 보석으로 장식한 것을 말한다. 팍구나는 수행승이었다. 그는 언제나 비구니들에게 친절했고 비구들과의 토론에서 비구니편을 들었다고 한다. 후에 환속했다고 전한다.
4.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감각접촉을 합니까?”
“그것은 타당한 질문이 아니다.”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중생이나 사람이 감각접촉을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만일 내가 ‘중생이나 사람이 감각접촉을 한다.’고 한다면,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감각접촉을 합니까?’라는 그대의 이 질문은 타당하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감각접촉이 생겨 납니까?’라고 물어야 그것이 타당한 질문이다.
만일 그대가 이렇게 묻는다면 여기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타당한 설명을 할 것이다.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하여 감각접촉이 있고,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라고.”
5.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느낍니까?”
“그것은 타당한 질문이 아니다.”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중생이나 사람이 느낀다.’고 말하지 않는다. 만일 내가 ‘중생이나 사람이 느낀다.’고 한다면,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느낍니까?’라는 그대의 이 질문은 타당하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엇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습니까?’라고 물어야 그것이 타당한 질문이다. 만일 그대가 이렇게 묻는다면 여기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타당한 설명을 할 것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라고.”
6.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갈애합니까?”
“그것은 타당한 질문이 아니다.”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중생이나 사람이 갈애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만일 내가 ‘중생이나 사람이 갈애한다.’고 한다면,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갈애합니까?’라는 그대의 이 질문은 타당하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갈애가 있습니까?’라고 물어야 그것이 타당한 질문이다.
만일 그대가 이렇게 묻는다면 여기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타당한 설명을 할 것이다.
‘느낌을 조건으로 하여 갈애가 있고, 갈애를 조건으로 하여 취착이 있다.’라고.”
7.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취착합니까?”
“그것은 타당한 질문이 아니다.”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중생이나 사람이 취착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만일 내가 ‘중생이나 사람이 취착한다.’고 한다면,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취착합니까?’라는 그대의 이 질문은 타당하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취착이 있습니까?’라고 물어야 그것이 타당하다.
만일 그대가 이렇게 묻는다면 여기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타당한 설명을 할 것이다.
‘갈애를 조건으로 하여 취착이 있고, 취착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가 있다.'라고.
8.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존재합니까?"
“그것은 타당한 질문이 아니다.”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중생이나 사람이 존재한다고 .’고 말하지 않는다. 만일 내가 ‘중생이나 사람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존재합니까?’라는 그대의 이 질문은 타당하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가 있습니까?’라고 물어야 그것이 타당하다.
만일 그대가 이렇게 묻는다면 여기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타당한 설명을 할 것이다.
‘취착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가 있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라고.
9.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태어납니까?"
“그것은 타당한 질문이 아니다.”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중생이나 사람이 태어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만일 내가 ‘중생이나 사람이 태어난.’고 한다면,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태어납니까?’라는 그대의 이 질문은 타당하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태어남이 있습니까?’라고 물어야 그것이 타당하다.
만일 그대가 이렇게 묻는다면 여기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타당한 설명을 할 것이다.
‘존재를 조건으로 하여 태어남이 있고, 존재를 조건으로 늙고 죽음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하여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이 함께 생겨난다."라고.
10. “팍구나여, 그러나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가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註)질문 방식에 대한 세존의 지적 : 이 말에 대해 붓다고사는 이렇게 주석을 달고 있다. '나는 어떠한 중생이나 개인도 자양분을 취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팍구나가 네 가지 자양분을 섭취하는 자아를 상정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임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사문∙바라문 경1(S12:13)
Samaṇabrāhmaṇ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늙음∙죽음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늙음∙죽음의 일어남(발생)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늙음∙죽음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늙음∙죽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태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태어남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태어남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존재를 꿰뚫어 알지 못하고 존재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존재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뜷어 알지 못하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취착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취착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취착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갈애를 꿰뚫어 알지 못하고 갈애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갈애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느낌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느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감각접촉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감각접촉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감각접촉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여섯 감각장소를 꿰뚫어 알지 못하고 여섯 감각장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여섯 감각장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정신.물질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정신.물질(명색)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정신.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닦음을 꿰뚫어 알지 못하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의식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의식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형성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형성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면,
그 누구든지, 사문들 가운데서는 사문이라 불릴 수 없고 바라문들 가운데서는 바라문이라 불릴 수 없다. 그 사람들은 사문 생활의 결실이나 바라문 생활의 결실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내지 못한다.”
3. “비구들이여, 그러나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늙음∙죽음을 꿰뚫어 알고 늙음∙죽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늙음∙죽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늙음∙죽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태어남을 꿰뚫어 알고 태어남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태어남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태어남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존재를 꿰뚫어 알고 존재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존재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존재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취착을 꿰뚫어 알고 취착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취착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취착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갈애를 꿰뚫어 알고 갈애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갈애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갈애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느낌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감각접촉을 꿰뚫어 알고 감각접촉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감각접촉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감각접촉의 태어남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여섯 감각장소를 꿰뚫어 알고 여섯 감각장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여섯 감각장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여섯 감각장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정신.물질(명색) 꿰뚫어 알고 정신.물질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정신.물질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정신.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의식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형성(행)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면,
그 누구든지, 사문들 가운데서는 사문이라 불릴 만하고 바라문들 가운데서는 바라문이라 불릴 만하다. 그 존자들은 사문 생활의 결실이나 바라문 생활의 결실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다.”
사문∙바라문 경2(S12:14)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러한 법들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러한 법들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러한 법들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러한 법들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철저히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그들은 어떠한 법들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어떠한 법들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어떠한 법들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어떠한 법들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는가?”
3. “그들은 늙음∙죽음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늙음∙죽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늙음∙죽음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늙음∙죽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며,
그들은 태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태어남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태어남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태어남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며,
그들은 존재를 꿰뚫어 알지 못하고 존재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존재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존재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며,
그들은 취착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취착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취착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취착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며,
그들은 갈애를 꿰뚫어 알지 못하고 갈애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갈애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갈애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며,
그들은 느낌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느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느낌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며,
그들은 감각접촉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감각접촉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감각접촉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감각접촉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며,
그들은 여섯 감각장소를 꿰뚫어 알지 못하고 여섯 감각장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여섯 감각장소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여섯 감각장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며,
그들은 정신.물질(명색)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정신.물질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정신.물질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정신.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며,
그들은 의식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의식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의식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며,
그들은 형성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형성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형성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갈울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들은 이러한 법들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러한 법들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러한 법들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러한 법들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그들은 사문들 가운데서 사문이라 불릴 수 없고 바라문들 가운데서 바라문이라 불릴 수 없다. 그 들은 사문 생활의 결실이나 바라문 생활의 결실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내지 못한다.”
4.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러한 법들을 꿰뚫어 알고 이러한 법들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이러한 법들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이러한 법들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그들은 어떠한 법들을 꿰뚫어 알고 어떠한 법들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어떠한 법들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어떠한 법들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아는가(철저히 아는가)?
5. “그들은 늙음∙죽음을 꿰뚫어 알고 늙음∙죽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늙음∙죽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늙음∙죽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며,
그들은 태어남을 꿰뚫어 알고 태어남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태어남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태어남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며,
그들은 존재를 꿰뚫어 알고 존재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존재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존재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며,
그들은 취착을 꿰뚫어 알고 취착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취착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취착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며,
그들은 갈애를 꿰뚫어 알고 갈애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갈애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갈애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며,
그들은 느낌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며,
그들은 감각접촉을 꿰뚫어 알고 감각접촉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감각접촉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감각접촉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며,
그들은 여섯 감각장소를 꿰뚫어 알고 여섯 감각장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여섯 감각장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여섯 감각장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며,
그들은 정신.물질(명색) 꿰뚫어 알고 정신.물질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정신.물질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정신.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며,
그들은 의식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며,
그들은 형성(행)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안다.
그들은 이러한 법들을 꿰뚫어 알고, 이러한 법들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이러한 법들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이러한 법들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그들은 사문들 가운데서 사물이라 불릴 만하고 바라문들 가운데서 바라문이라 불릴 만하고 그들은 사문 생활의 결실이나 바라문 생활의 결실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다.”
깟짜나곳따 경(S12:15)
Kaccānagot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깟짜나곳따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깟짜나곳따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세존이시여, ‘올바른 견해[正見.sammaditthi], 바른 견해’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올바른 견해는 어떻게 해서 있게 됩니까?”
4. “깟짜나여, 이 세상은 대부분 두 가지를 의지하고 있나니 그것은 '있다(atthi)'거나 '없다(natthi)'는 것이다(관념이다).
깟짜나여, 세상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는 사람에게는 세상에 대해(세상들이) 없다는 그런 견해가 없다.
깟짜나여, 세상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는 사람에게는 세상에 대해(세상들이) 있다는 그런 견해가 없다.”
5. “깟짜나여, 세상은 대부분 갈애와 사견으로 인해 집착과 취착에 묶여 있다. 그러나 바른 견해를 가진 성스러운 제자는, 마음이 머무는 곳이요 취착하는 곳이요 잠재하는 곳인 그러한 집착과 취착을 ‘나의 자아’라고 가까이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고집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괴로움이 일어날 뿐이고, 단지 괴로움이 소멸할 뿐이다.’라는 데 대해서 의문을 가지지 않고 의심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한 그의 지혜는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
깟짜나여, 이렇게 해서 올바른 견해가 있게 된다.”
6. “깟짜나여, ‘모든 것은 있다.’는 이것이 하나의 극단이고 ‘모든 것은 없다.’는 이것이 두 번째 극단이다.
깟짜나여, 이러한 양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중도[中.majjhena]에 의해서 여래는 법을 설한다.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의식을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지고 소멸하기 때문에 형성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기 때문에 의식이 소멸하고, 의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물질이 소멸하고,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주) 한역 아함경은 잡아함301 가전연 경(迦전延經)이다.
설법자[法師] 경(S12:16)
Dhammakathik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법을 설하는 비구(설법사), 법을 설하는 비구’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서 법을 설하는 비구가 됩니까?”
“비구여, 만일 늙음∙죽음을 싫어하여 떠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비구여, 만일 늙음∙죽음을 싫어하여 떠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하기 위해서 가르침을 실천하면 그를 '법에 따라 가르침을 실천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비구여, 만일 늙음∙죽음을 싫어하여 떠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게 하여 취착이 없이 취착 없이 해탈하면 그를 ‘지금∙여기[現法]에서 열반을 이룬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주) 법을 설하는 자(dhammakathiko), 법에 따라 가르침을 실천하는 자(dhammanudhammappatipanno), 현세에서 열반을 이룬 자(ditthadhammanibbanappatto)
2. “비구여,
만일 태어남을 싫어하여 떠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존재를 싫어하여 떠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취착을 싫어하여 떠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갈애를 싫어하여 떠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느낌을 싫어하여 떠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감각접촉을 싫어하여 떠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여섯 감각장소를 싫어하여 떠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정신.물질(명색)을 싫어하여 떠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의식을 싫어하여 떠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형성을 싫어하여 떠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무명을 싫어하여 떠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3. “비구여, 만일 무명을 싫어하여 떠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여 취착 없이 해탈하면 그를 ‘지금∙여기[現法]에서 열반을 실현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주)한역 아함경은 잡아함25 다문경등 25-29(多聞經), 을 참조하면 된다.
나체수행자 깟사빠 경(S12:17)
Acelakassap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라자가하의 벨루바나에 있는 깔란다까나바빠에 계셨다.)
2. 그 무렵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시고 걸식을 위해서 라자가하로 들어가셨다.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서 멀리서 오시는 것을 보고 세존께 다가왔다. 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한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만일 고따마 존자께서 저의 질문에 대한 설명을 해주실 기회를 내어주신다면 저는 고따마 존자께 어떤 문제를 질문 드리고자 합니다.”
“깟사빠여, 지금은 질문할 적당한 때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두 번째로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만일 고따마 존자께서 저의 질문에 대한 설명을 해주실 기회를 내어주신다면 저는 고따마 존자께 어떤 문제를 질문 드리고자 합니다.”
“깟사빠여, 지금은 질문할 적당한 때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세 번째로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만일 고따마 존자께서 저의 질문에 대한 설명을 해주실 기회를 내어주신다면 저는 고따마 존자께 어떤 문제를 질문 드리고자 합니다.”
“깟사빠여, 지금은 질문할 적당한 때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3. 이렇게 말씀하시자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저는 고따마 존자께 많은 것을 여쭙지 않을 것입니다.”
“깟사빠여, 그대가 원한다면 질문을 하라.”
“고따마 존자시여, 괴로움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입니까?”
“깟사빠여, 그렇지 않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괴로움은 남이 만드는 것입니까?”
“깟사빠여, 그렇지 않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괴로움은 스스로가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한 것입니까?”
“깟사빠여, 그렇지 않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괴로움 스스로가 만드는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드는 것도 아니고 우연히 생기는 것입니까?”
“깟사빠여, 그렇지 않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괴로움이란 없습니까?”
“깟사빠여, 괴로움은 없는 것이 아니다. 깟사빠여, 괴로움은 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고따마 존자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합니까?”
“깟사빠여, 나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깟사빠여, 나는 참으로 괴로움을 안다. 깟사빠여, 참으로 나는 괴로움을 본다.”
4. “그런데 제가 ‘고따마 존자시여, 괴로움은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까?’라고 여쭈면 ‘깟사빠여,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하시고, 제가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괴로움은 남이 만드는 것입니까?’라고 여쭈면 ‘깟사빠여,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하시고, 제가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괴로움은 스스로가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까?’라고 여쭈면 ‘깟사빠여,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하시고, 제가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괴로움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드는 것도 아니고 우연히 생기는 것입니까?’라고 여쭈면 ‘깟사빠여,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하시고, 제가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괴로움이란 것은 없습니까?’라고 여쭈면 ‘깟사빠여, 괴로움은 없는 것이 아니다. 깟사빠여, 괴로움은 있다.’라고 대답하시고, 제가 ‘그렇다면 고따마 존자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합니까?’라고 여쭈면 ‘깟사빠여, 나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깟사빠여, 나는 참으로 괴로움을 안다. 깟사빠여, 나는 참으로 괴로움을 본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부디 제게 괴로움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부디 제게 괴로움에 대해서 가르쳐 주십시오.”
5. “깟사빠여, ‘행위하는 자와 경험하는 자가 동일하다'고 처음부터 주장하여 '괴로움은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말하면 그것은 영원주의(상견. vadam sassata)에 떨어지고 만다.
깟사빠여, ‘행위하는 자와 경험하는 자가 다르다'고 주장하여 괴로움을 받게 되므로 '괴로움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다'이라고 이와 같이 말하면 그것은 허무주의(단견. vadam cchedam]에 떨어지고 만다.”
6. “깟사빠여, 이러한 양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중도(majjhena)에 의해서 여래는 법을 설한다.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며,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며, 명색을 조건으로 6입(여섯 감각장소)이 생겨나며, 6입을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며,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생겨나며,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며,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고.죽음.우울.슬픔.고통.불쾌.절말이 생겨난다. 이와같이 해서 모든 괴로움의 다발(무더기)들이 생겨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 형성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기 때문에 의식이 소멸하고, 의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물질이 소멸하고,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7. 이렇게 말씀하시자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8. “깟사빠여, 전에 외도였던 자가 이 법과 율에 출가하여 구족계 받기를 원하면 그는 넉 달의 견습기간을 거쳐야 한다. 넉 달이 지나고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하게 하여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받게 한다. 물론 여기에 개인마다 차이가 있음을 나는 인정한다.”
“세존이시여, 만일 전에 외도였던 자가 이 법과 율에 출가하여 구족계 받기를 원하면 그는 넉 달의 견습기간을 거쳐야 하고 넉 달이 지나고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하게 하여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받게 하신다면 저는 4년의 견습기간을 거치겠습니다. 4년이 지나고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하게 하시어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받게 해주소서.”
9.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깟사빠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를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깟사빠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띰바루까 경(S12:18)
Timbaruk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띰바루까 유행승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띰바루까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고따마 존자시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입니까?”
“띰바루까여, 그렇지 않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만드는 것입니까?”
“띰바루까여, 그렇지 않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즐거움과 괴로움은 스스로가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까?”
“띰바루까여, 그렇지 않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즐거움과 괴로움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드는 것도 아니고 우연히 생기는 것입니까”
“띰바루까여, 그렇지 않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즐거움과 괴로움이란 없습니까?”
“띰바루까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없는 것이 아니다. 띰바루까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있다.”
“그렇다면 고따마 존자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합니까?”
“띰바루까여, 나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띰바루까여, 나는 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안다. 띰바루까여, 참으로 나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본다.”
2. “그런데 제가 ‘고따마 존자시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입니까?’라고 여쭈면 ‘띰바루까여,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하시고, 제가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만드는 것입니까?’라고 여쭈면 ‘띰바루까여,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하시고, 제가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즐거움과 괴로움은 스스로가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까?’라고 여쭈면 ‘띰바루까여,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하시고, 제가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즐거움과 괴로움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드는 것도 아니고 우연히 생기는 것입니까?’라고 여쭈면 ‘띰바루까여,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하시고, 제가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즐거움과 괴로움이란 없습니까?’라고 여쭈면 ‘띰바루까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없는 것이 아니다. 띰바루까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있다.’라고 대답하시고, 제가 ‘그렇다면 고따마 존자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합니까?’라고 여쭈면 ‘띰바루까여 나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잘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띰바루까여, 나는 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안다. 띰바루까여, 참으로 나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본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부디 제게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부디 제게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해서 가르쳐주십시오.”
3. “띰바루까여, ‘느낌과 느끼는 자가 동일하다'고 처음부터 주장하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말하면 그것은 영원주의(상견. vadam sassata)에 떨어지고 만다.
띰바루까여, ‘느낌과 느끼는 자가 자가 다르다'고 주장하여 즐거움과 괴로움을 받게 되므로 '즐거움과 괴로움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다'이라고 이와 같이 말하면 그것은 허무주의(단견. vadam cchedam]에 떨어지고 만다.”
4. “띰바루가여, 이러한 양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중도에 의해서 여래는 법을 설한다.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行]이,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識], 의식을 조건으로 정신∙물질[名色]이,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六入]가,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觸]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受]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愛]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取]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老死]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憂悲苦惱]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 형성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기 때문에 의식이 소멸하고, 의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물질이 소멸하고,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5. 이렇게 말씀하시자 띰바루까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은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청신사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합니다.”
우현(愚賢) (바보와 현자)경(S12:19)
Bālapandi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ㅔ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서 어리석은 자의 이 몸은 이와 같이 생겨난다. 이처럼 이 몸과 밖의 정신∙물질이 생겨난다. 이렇게 해서 한 쌍이 존재하게 된다. 한 쌍을 조건으로 하여 감각접촉이 있고,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에 닿거나 이들 가운데 하나에 닿아서 어리석은 자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
“비구들이여,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서 현명한 자의 몸도 이와 같이 생겨난다. 이처럼 이 몸과 밖의 정신∙물질이 생겨난다. 이렇게 해서 한 쌍이 존재하게 된다. 한 쌍을 조건으로 하여 감각접촉이 있고,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에 닿거나 이들 가운데 하나에 닿아서 현명한 자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의 차이점은 무엇이고, 특별한 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인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법은 세존을 근원으로 하며, 세존을 길잡이로 하며, 세존을 귀의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방금 말씀하신 이 뜻을 직접 밝혀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세존으로부터 듣고 비구들은 그것을 잘 받아 지닐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4.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서 어리석은 자의 몸은 이와 같이 생겨난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에게는 그 무명이 제거되지 않고 갈애가 다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어리석은 자는 바르게 괴로움을 멸진하기 위해서 청정범행을 닦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다른 몸을 받게 된다. 그는 다른 몸을 받아서는 태어남과 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서 현명한 자의 몸도 이와 같이 생겨난다. 그러나 현명한 자에게는 그 무명이 제거되고 갈애가 다하게 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현명한 자는 바르게 괴로움을 멸진하기 위해서 청정범행을 닦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명한 자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다른 몸을 받지 않게 된다. 그는 몸을 받지 않아서 태어남과 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한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의 차이점이고, 이것이 특별한 점이고, 이것이 다른 점이다.”
조건 경(S12:20)
Paccay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연기(緣起)와 연기된[緣而生] 법들에 대해서 설하리라.
註)paticcasamuppada는 연기(연기)를 뜻하고,paticcasamuppanna는 연기된 것, 즉 연기소생(緣起所生)을 뜻하는데 한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줄여서 연생(緣生)이라고 한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연기인가?
비구들이여,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 이것은 여래들께서 출현하거나 출현하지 않거나 도리가 정해져 있으며 법으로 확립된 것이고, 법으로 결정된 것이며, 그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比緣性]. 여래는 이것을 완전하게 깨달았고 철저하게 알았다. 완전하게 깨닫고 철저하게 안 뒤
‘보라!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라고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한다.
비구들이여,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 이것은 여래들께서 출현하거나 출현하지 않거나 도리가 정해져 있으며 법으로 확립된 것이고, 법으로 결정된 것이며, 그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比緣性]. 여래는 이것을 완전하게 깨달았고 철저하게 알았다. 완전하게 깨닫고 철저하게 안 뒤
‘보라!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라고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한다.
비구들이여,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다. 이것은 여래들께서 출현하거나 출현하지 않거나 도리가 정해져 있으며 법으로 확립된 것이고, 법으로 결정된 것이며, 그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比緣性]. 여래는 이것을 완전하게 깨달았고 철저하게 알았다. 완전하게 깨닫고 철저하게 안 뒤
‘보라!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라고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한다.
비구들이여,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있다. 이것은 여래들께서 출현하거나 출현하지 않거나 도리가 정해져 있으며 법으로 확립된 것이고, 법으로 결정된 것이며, 그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比緣性]. 여래는 이것을 완전하게 깨달았고 철저하게 알았다. 완전하게 깨닫고 철저하게 안 뒤
‘보라!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라고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한다.
비구들이여,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 이것은 여래들께서 출현하거나 출현하지 않거나 도리가 정해져 있으며 법으로 확립된 것이고, 법으로 결정된 것이며, 그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比緣性]. 여래는 이것을 완전하게 깨달았고 철저하게 알았다. 완전하게 깨닫고 철저하게 안 뒤
‘보라!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라고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한다.
비구들이여,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이것은 여래들께서 출현하거나 출현하지 않거나 도리가 정해져 있으며 법으로 확립된 것이고, 법으로 결정된 것이며, 그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比緣性]. 여래는 이것을 완전하게 깨달았고 철저하게 알았다. 완전하게 깨닫고 철저하게 안 뒤
‘보라!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라고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한다. …
비구들이여,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있다. 이것은 여래들께서 출현하거나 출현하지 않거나 도리가 정해져 있으며 법으로 확립된 것이고, 법으로 결정된 것이며, 그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比緣性]. 여래는 이것을 완전하게 깨달았고 철저하게 알았다. 완전하게 깨닫고 철저하게 안 뒤
‘보라!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라고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한다.
비구들이여,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있다. 이것은 여래들께서 출현하거나 출현하지 않거나 도리가 정해져 있으며 법으로 확립된 것이고, 법으로 결정된 것이며, 그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比緣性]. 여래는 이것을 완전하게 깨달았고 철저하게 알았다. 완전하게 깨닫고 철저하게 안 뒤
‘보라!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라고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한다.
비구들이여, 의식을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있다.이것은 여래들께서 출현하거나 출현하지 않거나 도리가 정해져 있으며 법으로 확립된 것이고, 법으로 결정된 것이며, 그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比緣性]. 여래는 이것을 완전하게 깨달았고 철저하게 알았다. 완전하게 깨닫고 철저하게 안 뒤
‘보라!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라고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한다.
비구들이여,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있다. 이것은 여래들께서 출현하거나 출현하지 않거나 도리가 정해져 있으며 법으로 확립된 것이고, 법으로 결정된 것이며, 그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比緣性]. 여래는 이것을 완전하게 깨달았고 철저하게 알았다. 완전하게 깨닫고 철저하게 안 뒤
‘보라!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라고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한다.
비구들이여,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있다. 이것은 여래들께서 출현하거나 출현하지 않거나 도리가 정해져 있으며 법으로 확립된 것이고, 법으로 결정된 것이며, 그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比緣性]. 여래는 이것을 완전하게 깨달았고 철저하게 알았다. 완전하게 깨닫고 철저하게 안 뒤
‘보라!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라고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여기서 진실함, 거짓이 아님, 다른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님, 이것의 조건 짓는 성질, 이것을 일러 연기라 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연기된[緣而生]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늙음∙죽음은 무상하고 형성되었고[有爲]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고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며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탐욕이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소멸하는 현상으로 연생이다)
비구들이여, 태어남은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고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며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탐욕이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비구들이여, 존재는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고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며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탐욕이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비구들이여, 갈애는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고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며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탐욕이 빛바래기 마련인 법이며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느낌은 감각접촉은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고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며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탐욕이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여섯 감각장소는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고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며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탐욕이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정신∙물질은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고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며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탐욕이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의식은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고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며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탐욕이 빛바래기 마면인 법이며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형성은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고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며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탐욕이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무명은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고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며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탐욕이 사라기지 마련인 법이며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5.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런 연기와 연기된[緣而生] 법들을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분명하게 보기 때문에 ‘나는 정말 과거에 존재했는가? 아니면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는가? 나는 과거에 무엇이었을까? 나는 과거에 어떠했을까? 나는 과거에 무엇이 되었다가 무엇이 되었을까?’라고 하면서 과거로 달려 가는 그런 경우는 있지 않다.
그는 ‘나는 정말 미래에도 존재할까? 아니면 미래에는 존재하지 않을까? 나는 미래에 무엇이 되어 있을까? 나는 미래에 어떠할까? 나는 미래에 무엇이 되었다가 무엇이 될까?’라고 하면서 미래로 달려 가는 그런 경우는 있지 않다.
그는 지금 현재의 상태에 대해서는 안으로 의심이 없다.
‘나는 존재하는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떠한가? 이 중생은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라고 하면서 현재에 의혹을 갖게 되거나 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러한 연기와 연기된[緣而生] 법들을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분명하게 보기 때문이다.”
주)네 가지 연기에 대한 정의 : 붓다고사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1) '그 도리가 정해진 것'이란 그 고전의 속성이 정해져 있으며 조건 없는 태어남과 늙고 죽음은 결코 없다는 뜻이다.
2) '법으로 확립되어 있는 것'이란 조건에 의해 발생한 현상이 존속한다는 뜻이다.
3) '법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란 조건이 법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4) '그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란 이와 같이 늙고 죽음등의 이러한 것을 조건으로 한다는 말이다.
제2장 음식 품이 끝났다.
① 음식 ② 몰리야팍구나 ③ ~ ④ 사문∙바라문 ⑤ 깟짜나곳따 ⑥ 설법자 ⑦ 나체수행자 깟사빠
⑧ 띰바루까 ⑨ 우현 ⑩ 조건이다.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837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
'상윳따 니까야(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2상윳따 - 제4장 깔라라캇띠야 품(Kalarkhattiya vagga. S12:31-S12:40) (0) | 2018.03.25 |
---|---|
제12상윳따 - 제3장 십력품(Dasabala vagga. S12:21-S12:30) (0) | 2018.03.25 |
제12상윳따 - 인연 상윳따(Nidana samyutta) - 제1장 부처님 품(Buddha-vagga: S12:1 - S12:10) (0) | 2018.03.25 |
제11상윳따 - 삭까(제석천)상윳따(Sakka samyutta. S11:1-S11:25) (0) | 2018.03.25 |
제10상윳따 - 약카(야차) 상윳따(Yakkha samyutta. S10:1-S10:12) (0) | 2018.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