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윳따 니까야(잡)

제12상윳따 - 제3장 십력품(Dasabala vagga. S12:21-S12:30)

수선님 2018. 3. 25. 11:58

                           제3장 십력 품

                                   Dasabala-vagga


십력(열가지 힘) 경1(S12:21)

Dasabal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 싸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타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열 가지 힘[如來十力]을 구족하고 네 가지 담대함[두려움 없음.四無所畏]을 구족하여 여래는 대왕의 위치를 얻었고 대중(회중)에서 다음과 같은 사자후를 토하고 법의 바퀴[法輪]를 굴린다.”


3. “이것이 물질[色]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受]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想]이다.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형성[行]이다. 이것이 형성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형성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의식[識]이다. 이것이 의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의식의 사라짐이다.”


4.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 

이것이 일어날 때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생겨남으로써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다. 

이것이 소멸할 때 저것이 소멸한다. (이것이 사라짐으로써 저것이 사라진다)

 Iti imasmim sati idam hoti

imassuppada idam uppajjati

imasmim asati idam na hoti

imassa nirodha idam nirujjhati


즉,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며,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며,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생겨나며,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며,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이 취착이 생겨나며,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며,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고,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다발)[苦蘊]가 발생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기 때문에 형성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기 때문에 의식이 소멸하고, 의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며,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접촉이 소멸하고, 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며,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고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주) 여래의 열가지 힘과 네가지 두려움없음에 대해서는 M012.사자후에 대한 큰 경(mahasihanada sutta), A6.64, A10.21그리고 잡아함684 십력경을 참조 할 것.

1. 열가지 힘(dasabala) : 여래의 열 가지 힘에는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의 두 가지가 있다. 여래의 육체적인 힘은 코끼리의 힘과 비교된다. 정신적인 힘은 다음과 같다. (1)장소와 장소 아닌 곳을 여실히 아는 것 (2)과거 현재 미래의 업의 수용에 관해 필연적으로 조건적으로 여실히 그 과보를 아는 힘 (3)모든 곳으로 인도하는 길에 관해 아는 힘 (4)다양한 요소로 구성된 다양한 요소의 세계에 관해 아는 힘 (5)다른 중생들이 여러 가지 믿는 것에 관해 아는 힘 (6)중생들의 능력의 높고 낮음에 관해 아는 힘 (7)선정 해탈 삼매에서 오염과 청정의 발생을 아는 힘 (8)전생에 살던 곳에 대한 기억을 아는 힘 (9)중생들의 죽음과 삶에 관해 아는 힘 (10)번뇌의 소멸에 관해 아는 힘

2. 네 가지 두려움 없음(catan vesarajjani)

1)'올바로 깨달은 자라고 당신이 스스로 인정하더라도 그 법들은 올바로 개달아진 것이 아니다'라고 나에 대해 사문이나 바라문 신 악마 범천이나 이 세상의 어떤 자라도 법에 따라 비난하려 해도, 나는 그것을 근거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것을 근거로 간주하지 않음으로써 안온에 도달하고 두려움 없음을 성취한다.

2)'번뇌를 부순자라고 당신이 스스로 인정하더라도 그 번뇌들은 부수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나에 대해 사문이나 바라문 신 악마 범천이나 이 세상의 어떤 자라도 법에 따라 비난하려 해도, 나는 그것을 근거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것을 근거로 간주하지 않음으로써 안온에 도달하고 두려움 없음을 성취한다.

3)'장애가 된 법이라고 정의된 것들이라도 탐닉하는 자에게는 장애가 될 수 없다'라고 나에 대해 사문이나 바라문 신 악마 범천이나 이 세상의 어떤 자라도 법에 따라 비난하려 해도, 나는 그것을 근거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것을 근거로 간주하지 않음으로써 안온에 도달하고 두려움 없음을 성취한다.

4)'그 목적을 위해서 법이 설해져도 그것은 그 법을 실천한 자를 올바른 괴로움의 소멸로 이끌지 못한다'라고 나에 대해 사문이나 바라문 신 악마 범천이나 이 세상의 어떤 자라도 법에 따라 비난하려 해도, 나는 그것을 근거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것을 근거로 간주하지 않음으로써 안온에 도달하고 두려움 없음을 성취한다.


십력 경2 (S12:22)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 싸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타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열 가지 힘[十力]을 구족하고 네 가지 담대함[四無畏]을 구족하여 여래는 대왕의 위치를 얻었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법의 바퀴[梵輪]를 굴린다.”


3.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의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이다.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형성이다. 이것이 형성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형성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의식이다. 이것이 의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의식의 사라짐이다.”


4.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     (Iti imasmim idam hoti)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일어난다.    (imassuppada idam uppajjati)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다.          (imasmim asati idam na hoti)

이것이 소멸할 때 저것이 소멸한다. (imassa nirodha idam nirujjhati)


즉,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며,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며,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생겨나며,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며,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이 취착이 생겨나며,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며,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고,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다발)

[苦蘊]가 발생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기 때문에 형성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기 때문에 의식이 소멸하고, 의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며,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접촉이 소멸하고, 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며,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고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말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5.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나는 법을 분명하게 설했고 드러내었고 밝혔고 천명했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와 같이 법을 분명하게 설했고 드러내었고 밝혔고 천명했으므로 신심(믿음)으로 출가한 선남자가 정진을 시작하기에 적당하다. ‘피부와 힘줄과 뼈가 쇠약해지고 몸에 살점과 피가 마르더라도 남자다운 근력과 남자다운 노력과 남자다운 분발로써 얻어야 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닦고 정진을 계속하리라.’라고.”


6. “비구들이여, 나쁘고 해로운 법들과 섞여 지내는 게으른 자는 괴롭게 머물고 위대한 자신의 이상을 버려버린다. 그러나 열심히 정진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멀리 여읜 자는 행복하게 머물고 위대한 자신의 이상을 성취한다.”


7. “비구들이여, 저열한 것으로는 으뜸가는 것을 얻지 못한다. 으뜸가는 것으로 으뜸가는 것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청정범행은 최상의 음료이고 또한 스승이 그대들의 면전에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고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닦고 정진을 시작하라.”


8. “비구들이여, ‘우리의 출가는 헛되지 않고 결실이 있고 이익이 있을 것이고, 우리가 의복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약품을 수용하도록 해준 그들의 행위는 그들에게 많은 결실과 많은 이익을 가져올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닦고 정진하여야 한다.


10. “비구들이여,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보는 자는 이와 같이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성취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남에게 이로운 것을 보는 자는 이와 같이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성취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둘 모두에게 이로운 것을 보는 자는 이와 같이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성취해야 한다.”


연유(기반) 경(S12:23)

Upanis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 싸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타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알고 보는 자는 번뇌들이 소멸한다고 나는 말하고,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는 번뇌들이 소멸하지 않는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는 자에게 번뇌들이 소멸하는가?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원인)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소멸)이다. 이것이 느낌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이다. 이것이 인식(지각)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형성[行]이다. 이것이 형성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형성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의식이다. 이것이 의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의식의 사라짐이다.’라고 이와 같이 알고 보는 자에게 번뇌가 소멸한다.”


3. “비구들이여, 번뇌가 소멸할 때 그 소멸에 대한 지혜에는 연유가 있으며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소멸의 지혜의 연유인가? 

해탈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해탈도 연유가 있는 것이지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해탈의 연유인가? 

갈애의 떠남(벗어남. 소멸)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갈애의 떠남에도 연유가 있는 것이지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갈애의 떠남의 연유인가? 

염오(싫어하여 떠남)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염오도 연유가 있는 것이지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염오의 연유인가? 

있는 그대로 알고 봄[如實知見]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있는 그대로 알고 봄도 연유가 있는 것이지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의 연유인가? 

삼매(samādhi)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삼매도 연유가 있는 것이지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삼매의 연유인가? 

행복(sukha. 즐거움)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행복도 연유가 있는 것이지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행복의 연유인가? 

청정함(passaddhi)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청정함도 연유가 있는 것이지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청정함의 연유인가? 

희열(piti. 기쁨)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희열도 연유가 있는 것이지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희열의 연유인가? 

만족(pamojja.환희)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환희도 연유가 있는 것이지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환희의 연유인가? 

믿음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믿음도 연유가 있는 것이지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믿음의 연유인가? 

괴로움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괴로움도 연유가 있는 것이지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연유인가? 

태어남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태어남도 연유가 있는 것이지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태어남의 연유인가? 

존재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존재도 연유가 있는 것이지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존재의 연유인가? 

취착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취착도 연유가 있는 것이지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취착의 연유인가? 

갈애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갈애도 연유가 있는 것이지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갈애의 연유인가? 

느낌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느낌도 연유가 있는 것이지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느낌의 연유인가? 

감각접촉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감각접촉도 연유가 있는 것이지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감각접초의 연유인가? 

여섯 감각장소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여섯 감각장소도 연유가 있는 것이지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여섯 감각장소의 연유인가? 

정신∙물질(명색)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정신.물질도 연유가 있는 것이지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신.물질의 연유인가? 

의식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정신.물질도 연유가 있는 것이지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신.물질의 연유인가? 

형성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형성도 연유가 있는 것이지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형성의 연유인가? 

무명이라고 말해야 한다.”


4.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무명을 연유로 형성이, 형성을 연유로 의식이, 의식을 연유로 정신∙물질이, 정신∙물질을 연유로 여섯 감각장소가, 여섯 감각장소를 연유로 감각접촉이, 감각접촉을 연유로 느낌이, 느낌을 연유로 갈애가, 갈애를 연유로 취착이, 취착을 연유로 존재가, 존재를 연유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연유로 괴로움이, 괴로움을 연유로 믿음이, 믿음을 연유로 환희가 , 환희를 연유로 희열이, 희열을 연유로 청정함이, 청정함을 연유로 행복이, 행복을 연유로 삼매가, 삼매를 연유로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을 연유로 염오가, 염오를 연유로 탐욕의 사람짐이, 탐욕의 사라짐을 연유로 해탈이, 해탈을 연유로 소멸의 지혜가 있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이러한다. 산꼭대기에 억수같이 비가 내리면 경사진 곳을 따라 빗물이 흘러내려서 산의 협곡과 계곡과 지류를 가득 채운다. 협곡과 계곡과 지류들을 가득 채우고는 다시 작은 연못을 가득 채운다. 작은 연못을 가득 채우고는 다시 큰 연못을 가득 채운다. 큰 연못을 가득 채우고는 다시 작은 강을 가득 채운다. 작은 강을 가득 채우고는 다시 큰 강을 가득 채운다. 큰 강을 가득 채우고는 다시 바다와 대해를 가득 채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무명을 연유로 형성이, 형성을 연유로 의식이, 의식을 연유로 정신∙물질이, 정신∙물질을 연유로 여섯 감각장소가, 여섯 감각장소를 연유로 감각접촉이, 감각접촉을 연유로 느낌이, 느낌을 연유로 갈애가, 갈애를 연유로 취착이, 취착을 연유로 존재가, 존재를 연유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연유로 괴로움이, 괴로움을 연유로 믿음이, 믿음을 연유로 환희가, 환희를 연유로 희열이, 희열을 연유로 청정함이, 청정함을 연유로 행복이, 행복을 연유로 삼매가, 삼매를 연유로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을 연유로 염오가, 염오를 연유로 탐욕의 사람짐이, 탐욕의 사라짐을 연유로 해탈이, 해탈을 연유로 소멸의 지혜가 있다.”


주) 연유(upanisa): 이에 대한 번역은 다양한다. 이유나 원인을 의미하는 위 번역 이외에도 전제, 인과관계로 번역하기도 한다.


외도 경(이교도 경)(S12:24)

Aññatitthiy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 있는 대나무 숲에서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사리뿟따 존자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걸식을 위해서 라자가하로 들어갔다. 그때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걸식을 위해서 라자가하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 이르다. 나는 이제 외도 유행승들의 원림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


그러자 사리뿟따 존자는 외도 유행승들의 원림으로 갔다. 가서는 외도 유행승들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말했다.


3. “벗이여 사리뿟따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업을 설하는데(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만든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벗이여 사리뿟따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업을 설하는데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벗이여 사리뿟따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업을 설하는데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벗이여 사리뿟따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업을 설하는데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 만들지도 않고 남이 만들지도 않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벗이여 사리뿟따여, 그러면 사문 고따마께서는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설하며 어떻게 가르칩니까? 우리가 어떻게 설명하면 사문 고따마께서 설하신 것과 일치하게 되며, 사문 고따마를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사문 고따마께서 설하신 것을 반복하여 설한 것이 됩니까? [사문 고따마께서 설했다고 전해진 이것을 반복하더라도] 어떤 동료 수행자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겠습니까?”


4. 외도 수행승들이 이와 같이 질문하자 사리뿟따 존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벗이여, 괴로움은 연기된 것[. 연유가 있어 생겨나는 것 緣而生]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연유로 해서 괴로움이 있습니까?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납니다. 이렇게 설하면 세존께서 설하신 것과 일치하게 되며, 세존을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반복하여 설한 것이며, 어떤 동료 수행자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게 됩니다.


벗이여, 여기서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합니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남이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합니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합니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만들지 않고 남이 만들지도 않는 우연히 발행하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합니다.


벗이여, 여기서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남이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만들고 남도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만들지 않고 남이 만들지도 않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5.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가 외도 유행승들과 나눈 대화에 대해서 들었다. 그리고 아난다 존자는 라자가하에서 걸식하여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와서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가 외도 유행승들과 나눈 대화를 모두 세존께 아뢰었다.


6. “장하고도 장하구나, 아난다여, 사리뿟따는 바르게 설명하였다. 

아난다여, 괴로움은 연기된 것[緣而生]이라고 나는 말했다. 그러면 무엇을 연유하여 괴로움이 있는가?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이렇게 설하면 내가 설한 것과 일치하게 되며, 나를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내가 설한 것을 반복하여 설한 것이며, 어떤 동료 수행자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여지를(조건을) 만나지 않게 된다.


아난다여, 여기서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남이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만들지 않고 남이 만들지도 않는 우연히 발행하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아난다여, 여기서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남이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만들고 남도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만들지 않고 남이 만들지도 않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7. “아난다여, 한번은 내가 여기 라자가하에서 대나무 숲의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렀다. 

아난다여, 그 무렵 나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걸식을 위해서 라자가하로 들어갔다.


아난다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걸식을 위해서 라자가하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 이르다. 나는 이제 외도 유행승들이 머물고 있는 숲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아난다여, 그러자 나는 외도 유행승들이 머물고 있는 숲으로 갔다. 가서는 외도 유행승들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나에게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말했다.”


8. “‘벗이여 고따마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을 업을 설하는데(업보를 믿는 자로서)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짓는 것(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벗이여 고따마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업을 설하는데 괴로움은 남이 짓는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벗이여 고따마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업을 설하는데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짓고 남도 짓는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벗이여 고따마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업을 설하는데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짓지 않고 남이 짓지도 않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벗이여 고따마여, 그러면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설하며 어떻게 가르칩니까? 

우리는 어떻게 설명하면 고따마 존자께서 설하신 것과 일치하며, 고따마 존자를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고따마 존자께서 설하신 것을 반복하여 설한 것입니까? [고따마 존자께서 설했다고 전해진 이것을 반복하더라도] 어떤 동료 수행자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겠습니까?’”


9. “아난다여, 이렇게 말하였을 때 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벗이여, 괴로움은 연기된 것[緣而生]이라고 나는 말합니다(연유가 있어 생겨나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러면 무엇을 연유로하여 괴로움이 있는가? 감각접촉을 연유로한다. 이렇게 설하면 내가 설한 것과 일치하게 되며, 나를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내가 설한 것을 반복하여 설한 것이며, 어떤 동료 수행자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게 됩니다.


벗이여, 여기서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남이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만들지 않고 남이 만들지도 않는 우연히 발행하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벗이여, 여기서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남이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만들고 남도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만들지 않고 남이 만들지도 않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10. 이렇게 말하였을 때 아난자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하나의 문장으로 모든 뜻을 설하여 말씀하십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신 뜻을 상세하게 설하시어 그 뜻을 심오하게 하고 또한 심오하게 드러내실 수 있습니까?”

“아난다여, 그렇다면 그대가 그것을 드러내 보아라.”


11. “세존이시여, 만일 저에게 묻기를 ‘벗이여 아난다여, 늙음∙죽음은 무엇이 그 근원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며,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으로부터 발생합니까?’라고 한다면, 이렇게 질문을 받은 저는 ‘벗이여여, 늙음∙죽음은 태어남이 그 바탕이며, 태어남으로부터 일어나고, 태어남으로부터 생기며, 태어남으로부터 발생합니다.’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12. “세존이시여, 만일 저에게 묻기를 ‘벗이여 아난다여, 태어남은 무엇이 그 바탕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으로부터 발생합니까?’라고 한다면, 이렇게 질문을 받은 저는 ‘벗이여여, 태어남은 존재가 그 바탕이며, 존재로부터 일어나고, 존재로부터 생기며, 존재로부터 발생합니다.’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13. “세존이시여, 만일 저에게 묻기를 ‘벗이여 아난다여, 존재는 무엇이 그 바탕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으로부터 발생합니까?’라고 한다면, 이렇게 질문을 받은 저는 ‘벗이여, 존재는 취착이 그 바탕이며, 취착으로부터 일어나고, 취착으로부터 생기며, 취착으로부터 발생합니다.’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저에게 묻기를 ‘도반 아난다여, 취착은 무엇이 그 바탕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으로부터 발생합니까?’라고 한다면, 이렇게 질문을 받은 저는 ‘도반들이여, 취착은 갈애가 그 바탕이며, 갈애로부터 일어나고, 갈애로부터 생기며, 갈애로부터 발생합니다.’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저에게 묻기를 ‘벗이여 아난다여, 갈애는 무엇이 그 바탕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으로부터 발생합니까?’라고 한다면, 이렇게 질문을 받은 저는 ‘벗이여, 갈애는 느낌이 그 바탕이며, 느낌으로부터 일어나고, 느낌으로부터 생기며, 느낌으로부터 발생합니다.’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저에게 묻기를 ‘벗이여 아난다여, 느낌은 무엇이 그 바탕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으로부터 발생합니까?’라고 한다면, 이렇게 질문을 받은 저는 ‘벗이여, 느낌은 감각접촉이 그 바탕이며, 감각접촉으로부터 일어나고, 감각접촉으로부터 생기며, 감각접촉으로부터 발생합니다.’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저에게 묻기를 '벗이여 아난다여, 감각접촉은 무엇이 그 근원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으로부터 발생합니까?’라고 한다면 이렇게 질문을 받은 저는 이렇게 설명할 것입니다. ‘벗이여, 감각접촉은 여섯 감각장소가 그 근원이며, 여섯 감각장소로부터 일어나고, 여섯 감각장소로부터 생기며, 여섯 감각장소로부터 발생합니다. 그러나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가 남김없이 사라지고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합니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합니다.’라고 저는 이렇게 설명할 것입니다.”


주) 업의 신봉자 : 업설의 신봉자는 모든 행위, 즉 업은 좋건 나쁘건 그것에 합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현세에 영향을 끼치거나 내세에 그 영향을 끼친다고 하며 우리의 현세의 존재는 과거의 행위의 결과라고 본다. 여기서 소개된 네 가지 종류의 업설은 업에 관한 네 가지 명제형식, 즉 X 는 Y이다. X는 -Y이다. X는 Y이고 -Y이다. X는 Y도 아니고 -Y도 아니다'라고 하는 일반적인 무기(無記)의 논리 형식에 포함되는 1)자(自) 2)타(他) 3)공(共) 4)무인(無因)의 사구분별(四句分別.catuskoti)이다.

1)의 입장은 자아원인설로 영원불변의 자아를 가정하고 그 전개를 설명하는 형이상학적 이론으로 우빠니샤드 시대에 와서는 창조 또는 전변(轉變)의 자아론과 연결되었다.

2)의 입장은 외부원인설로 시간, 신, 자성, 업, 운명등의 다른 것(타자)에 의해 괴로움이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3)의 입장은 내적외적인과설에 소속되며 자이나교에서 취하는 입장으로 다양한 원인설을 주장한다.

4)의 입장은 어떠한 인과론도 부정하는 철저히 유물주의적인 것이다.


부미자 경(S12:25)

Bhūmij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 싸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부미자 존자가 해거름에 명상을 풀고 일어나 사리뿟따 존자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부미자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 “도반 사리뿟따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업을 설하는데(업보를 믿는 자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짓는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업을 설하는데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짓는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업을 설하는데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짓고 남도 짓는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업을 설하는데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짓지 않고 남이 짓지도 않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세존께서는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설하며 어떻게 가르칩니까? 우리가 어떻게 설명하면 세존께서 설하신 것과 일치하게 되며, 세존을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반복하여 설한 것입니까? [세존께서 설했다고 전해진 이것을 반복하더라도] 어떤 동료수행자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겠습니까?”


4. “도반 부미자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연기된 것[緣而生]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은 연유가 있어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연유로하여 [즐거움과 괴로움이] 있습니까?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납니다. 이렇게 설하면 세존께서 설하신 것과 일치하게 되며, 세존을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반복하여 설한 것이며, 어떤 동료 수행자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게 됩니다.


부미자 존자여, 여기서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납니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남이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납니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납니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만들지 않고 남이 만들지도 않는 우연히 발행하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납니다.


부미자 존자여, 여기서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남이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만들고 남도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만들지 않고 남이 만들지도 않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5.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와 부미자 존자와 나눈 대화에 대해서 들었다. 그리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가 부미자 존자와 나눈 대화를 모두 세존께 아뢰었다.


6. “장하고도 장하구나, 아난다여, 사리뿟따는 바르게 설명하였다. 

아난다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연기된 것[緣而生]이라고 나는 말했다. 그러면 무엇을 연유하여 [즐거움과 괴로움이] 있는가? 감각접촉을 연유로 한다. 이렇게 설하면 내가 설한 것과 일치하게 되며, 나를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내가 설한 것을 반복하여 설한 것이며, 어떤 동료 수행자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게 된다.


아난다여, 여기서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줄거움과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만들지 않고 남이 만들지도 않는 우연히 발행하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아난다여, 여기서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만들고 남도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만들지 않고 남이 만들지도 않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7. “아난다여, 또한 몸(육체)이 있으면 몸의 형성을 원인으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난다. 

아난다여, 또한 언어가 있으면 언어적 형성을 원인으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난다. 

아난다여, 또한 정신이 있으면 정신적 형성을 원인으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8.“아난다여, 무명을 연유로 자신이 육체적 형성을 일으키면 그것을 연유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나거나, 무명을 연유로 다른 사람들이 육체적 형성을 일으키면 그것을 연유로 그 자신들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난다. 

무명을 연유로 의식적(의도적)으로 육체적 형성을 일으키면 그것을 연유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나거나, 

무명을 연유로 무의식적으로 육체적 형성을 일으키면 그것을 연유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난다. 


아난다여, 무명을 연유로 자신이 언어적 형성을 일으키면 그것을 연유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난다. 

무명을 연유로 다른 사람들이 언어적 형성을 일으키면 그것을 연유로 그 자신들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난다. 

무명을 연유로 의식적으로 언어적 형성을 일으키면 그것을 연유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나거나, 무명을 연유로 무의식적으로 언어적 형성을 일으키면 그것을 연유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난다. 


아난다여, 무명을 연유로 자신이 정신적 형성을 일으키면 그것을 연유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난다. 

무명을 연유로 다른 사람들이 정신적 형성을 일으키면 그것을 연유로 그 자신들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난다. 

무명을 연유로 의식적으로 정신적 형성을 일으키면 그것을 연유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나거나, 무명을 연유로 무의식적으로 정신적 형성을 일으키면 그것을 연유로 자신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난다.


9. 아난다여, 이 여섯 가지 경우는 무명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조건으로 한다).

아난다여,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함으로써 그것을 연유로 스스로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나게 나는 육체적 형성이 소멸하고, 그것을 연유로 스스로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나게 하는 언어적 형성이 소멸하고, 그것을 연유로 스스로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나게 하는 정신적 형성이 소멸하고, 그것을 연유로 스스로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나게 하는 기반(터전)이 소멸하고 영역이 소멸하고 관계가 소멸한다."


註) - 부미자(Bhumija): 인도의 토착종족에게 사용된 이름으로 추정된다.

- 육체 언어 정신적 형성: 육체적 형성(신행.kayasamkhara), 언어적 형성(구행. vacisamkhara), 정신적 형성(의행. manosamkhara)으로부터 윤회를 규정하는 업이 구성된다. 

여기서 행이란 의도적 행위를 말한다. 


우빠와나 경(S12:26)

Upavāṇ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 싸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우빠와나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우빠와나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업을 설하는데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짓는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업을 설하는데 괴로움은 남이 짓는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업을 설하는데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짓고 남도 짓는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업을 설하는데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짓지 않고 남이 짓지도 않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세존께서는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설하며 어떻게 가르칩니까? 우리가 어떻게 설명하면 세존께서 설하신 것과 일치하게 되며, 세존을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반복하여 설한 것입니까? [세존께서 설했다고 전해진 이것을 반복하더라도] 어떤 동료 수행자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겠습니까?”


2. “우빠와나여, ‘벗이여, 괴로움은 연기된 것[緣而生]이라고 나는 말한다(연유가 있어 생겨나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러면 무엇을 연유로하여 괴로움이 있는가? 감각접촉을 연유로한다. 이렇게 설하면 내가 설한 것과 일치하게 되며, 나를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내가 설한 것을 반복하여 설한 것이며, 어떤 동료 수행자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게 된다.


우빠와나여, 여기서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남이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만들지 않고 남이 만들지도 않는 우연히 발행하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


우빠와나여, 여기서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남이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만들고 남도 만드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만들지 않고 남이 만들지도 않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조건 경(S12:27)

Paccay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 싸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타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ㅔ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며, 의식을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생겨나고,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생겨나며,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생겨나고,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며,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생겨나며,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며,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늙음인가?

이런저런 중생들의 무리 가운데서 이런저런 중생들의 늙음, 노쇠함, 치아빠짐, 주름진 피부, 수명의 감소, 감각기능[根]의 쇠퇴되는 이를 일러 늙음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죽음인가?

이런저런 중생들의 무리로부터 이런저런 중생들의사라짐, 이동, 파괴, 소멸, 죽음, 끝남, 온의 파괴,신체의 소진, 생명기능[命根]의 끊어지는 이를 일러 죽음이라 한다.”


3. “태어남이 일어나면 늙음∙죽음이 일어나고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죽음이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늙음∙죽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태어남인가? 

이런저런 중생들의 무리로부터 이런 저런 중생들의 유형에 따라 각각의 삶들이 태어남, 시작됨, 나타남, 자라남, 온의 드러남, 감각기관을 얻는(육입처의 획득)이것을 태어남이라 한다. 존재가 생겨남으로써 태어남이 생겨나고, 존재가 소멸함으로써 태어남이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태어남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존재인가? 

그것들 가운데는 세가지 존재 즉 감각적 쾌락의 존재(욕계), 형상의 존재(색계), 무형상의 존재(무색계)가 있으니 이것을 존재라 부른다. 취착이 생겨남으로써 존재가 생겨나고 취착이 소멸함으로써 존재가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취착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6.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취착인가? 

그것들 가운데는 네 가지 취착, 즉 감각적 쾌락에 대한 취착, 견해에 대한 취착, 미신적 관습에 대한 취착, 자아이론(견해)에 대한 취착이 있으니 이것을 취착이라고 부른다. 갈애가 생겨남으로써 취착이 생겨나고 갈애가 소멸함으로써 취착이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존재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7.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갈애인가? 

그것들 가운데는 여섯 가지 갈애의 무리 즉 형상에 대한 갈애, 소리에 대한 갈애, 냄새에 대한 갈애, 맛에 대한 갈애, 감촉에 대한 갈애, 사물에 대한 갈애가 있으니 이것을 갈애라고 부른다. 느낌(감수)이 생겨남으로써 갈애가 생겨나고 느낌이 소멸함으로써 갈애가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갈애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8.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느낌인가? 

그것들 가운데는 여섯 가지 느낌의 무리 즉 시각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 청각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 후각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 미각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 촉각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 정신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이 있으니 이를 느낌이라고 한다. 접촉이 생겨남으로써 느낌이 생겨나고 접촉이 소멸함으로써 느낌이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9.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감각접촉(접촉)인가? 

그것들 가운데는 여섯 가지 접촉의 무리 즉 시각의 접촉, 청각의 접촉, 후각의 접촉, 미각의 접촉, 촉각의 접촉, 정신의 접촉이 있으니 이것을 접촉이라고 부른다. 여섯 감각장소가 생겨남으로써 접촉이 생겨나고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함으로써 접촉이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감각접촉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10.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여섯 감각장소인가? 

그것들 가운데는 여섯 가지 감각 장소의 무리 즉 시각의 감각장소, 후각의 감각장소, 미각의 감각장소, 촉각의 감각장소, 정신의 감각장소가 있으니 이것을 여섯 감각장소라고 부른다. 명색이 생겨남으로써 여섯 감각장소가 생겨나고 명색이 소멸함으로써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여섯 감각장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11.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명색(정신∙물질)인가? 

그것에는 느낌, 지각, 사유, 접촉, 숙고가 있으니 이것을 명(정신)이라고 하고 네 가지 물질의 요소 또는 네 가지 물질요소로 이루어진 형태를 물질(색)이라고 부른다. 의식이 생겨남으로써 명색이 생겨나고 의식이 소멸함으로써 명색이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명색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1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의식인가? 

그것들 가운데는 여섯 가지 의식 즉 시각의 의식, 청각의 의식, 후각의 의식, 미각의 의식, 촉각의 의식, 정신의 의식이 있으니 이를 의식이라고 부른다. 형성이 생겨남으로써 의식이 생겨나고 형성이 소멸함으로써 의식이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1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형성인가? 

그것들 가운데는 세 가지 형성 즉 신체의 형성, 언어의 형성, 정신의 형성이 있으니 이것을 형성이라고 부른다. 무명이 생겨남으로써 형성이 생겨나고 무명이 소멸함으로써 형성이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14.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조건을 꿰뚫어 알고, 이와 같이 조건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이와 같이 조건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이와 같이 조건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을 꿰뚫어 알면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견해를 구족했다고도 하고, 봄[見]을 구족했다고도 하고, 정법에 도달했다고도 하고, 정법을 보았다고도 하고, 지혜를 구족했다고도 하고, 명지를 구족했다고도 하고, 법의 흐름을 얻었다고도 하고, 성스러운 꿰뚫는 통찰지를 얻었다고도 하고, 불사(不死)의 문에 도달하여 머문다고도 한다.”


비구 경(S12:28)

Bhikkhu-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 싸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타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늙음∙죽음을 꿰뚫어 알고(철저히 알고) 늙음∙죽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늙음∙죽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늙음∙죽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며, 

여기 비구는 태어남을 꿰뚫어 알고 태어남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태어남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태어남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둟어 알며, 

여기 비구는  존재를 꿰뚫어 알고 존재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존재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존재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둟어 알며, 

여기 비구는 취착을 꿰뚫어 알고 취착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취착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취착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둟어 알며, 

여기 비구는 갈애를 꿰뚫어 알고 갈애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갈애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갈애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둟어 알며, 

여기 비구는 느낌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둟어 알며, 

여기 비구는 감각접촉을 꿰뚫어 알고 감각접촉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감각접촉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감각접촉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둟어 알며, 

여기 비구는 여섯 감각장소를 꿰뚫어 알고 감각장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감각장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감각장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둟어 알며, 

여기 비구는 정신∙물질을 꿰뚫어 알고 정신.물질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정신.물질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정신.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둟어 알며, 

여기 비구는 의식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둟어 알며, 

여기 비구는 형성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안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늙음인가?

이런저런 중생들의 무리 가운데서 이런저런 중생들의 늙음, 노쇠함, 치아빠짐, 주름진 피부, 수명의 감소, 감각기능[根]의 쇠퇴되는 이를 일러 늙음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죽음인가?

이런저런 중생들의 무리로부터 이런저런 중생들의사라짐, 이동, 파괴, 소멸, 죽음, 끝남, 온의 파괴,신체의 소진, 생명기능[命根]의 끊어지는 이를 일러 죽음이라 한다.


이것이 늙음이고 이것이 죽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늙음∙죽음이라 한다.

태어남이 일어나면 늙음∙죽음이 일어나고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죽음이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늙음∙죽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챙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태어남인가? 

이런저런 중생들의 무리로부터 이런 저런 중생들의 유형에 따라 각각의 삶들이 태어남, 시작됨, 나타남, 자라남, 온의 드러남, 감각기관을 얻는(육입처의 획득)이것을 태어남이라 한다. 존재가 생겨남으로써 태어남이 생겨나고, 존재가 소멸함으로써 태어남이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태어남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존재인가? 

그것들 가운데는 세가지 존재 즉 감각적 쾌락의 존재(욕계), 형상의 존재(색계), 무형상의 존재(무색계)가 있으니 이것을 존재라 부른다. 취착이 생겨남으로써 존재가 생겨나고 취착이 소멸함으로써 존재가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취착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6. “비구들이여, 그러면떤 것이 취착인가? 

그것들 가운데는 네 가지 취착, 즉 감각적 쾌락에 대한 취착, 견해에 대한 취착, 미신적 관습에 대한 취착, 자아이론(견해)에 대한 취착이 있으니 이것을 취착이라고 부른다. 갈애가 생겨남으로써 취착이 생겨나고 갈애가 소멸함으로써 취착이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존재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7.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갈애인가? 

그것들 가운데는 여섯 가지 갈애의 무리 즉 형상에 대한 갈애, 소리에 대한 갈애, 냄새에 대한 갈애, 맛에 대한 갈애, 감촉에 대한 갈애, 사물에 대한 갈애가 있으니 이것을 갈애라고 부른다. 느낌(감수)이 생겨남으로써 갈애가 생겨나고 느낌이 소멸함으로써 갈애가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갈애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8.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느낌인가? 

그것들 가운데는 여섯 가지 느낌의 무리 즉 시각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 청각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 후각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 미각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 촉각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 정신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이 있으니 이를 느낌이라고 한다. 접촉이 생겨남으로써 느낌이 생겨나고 접촉이 소멸함으로써 느낌이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9.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감각접촉인가? 

그것들 가운데는 여섯 가지 접촉의 무리 즉 시각의 접촉, 청각의 접촉, 후각의 접촉, 미각의 접촉, 촉각의 접촉, 정신의 접촉이 있으니 이것을 접촉이라고 부른다. 여섯 감각장소가 생겨남으로써 접촉이 생겨나고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함으로써 접촉이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감각접촉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10.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여섯 감각장소인가? 

그것들 가운데는 여섯 가지 감각 장소의 무리 즉 시각의 감각장소, 후각의 감각장소, 미각의 감각장소, 촉각의 감각장소, 정신의 감각장소가 있으니 이것을 여섯 감각장소라고 부른다. 명색이 생겨남으로써 여섯 감각장소가 생겨나고 명색이 소멸함으로써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여섯 감각장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11.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정신∙물질인가? ∙

그것에는 느낌, 지각, 사유, 접촉, 숙고가 있으니 이것을 명(정신)이라고 하고 네 가지 물질의 요소 또는 네 가지 물질요소로 이루어진 형태를 물질(색)이라고 부른다. 의식이 생겨남으로써 명색이 생겨나고 의식이 소멸함으로써 명색이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명색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1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의식인가? ∙

그것들 가운데는 여섯 가지 의식 즉 시각의 의식, 청각의 의식, 후각의 의식, 미각의 의식, 촉각의 의식, 정신의 의식이 있으니 이를 의식이라고 부른다. 형성이 생겨남으로써 의식이 생겨나고 형성이 소멸함으로써 의식이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1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형성인가? 

그것들 가운데는 세 가지 형성 즉 신체의 형성, 언어의 형성, 정신의 형성이 있으니 이것을 형성이라고 부른다. 무명이 생겨남으로써 형성이 생겨나고 무명이 소멸함으로써 형성이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진리[八支聖道=팔정도]가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새김, 바른 집중(삼매)이다.”

 

14.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늙음∙죽음을 꿰뚫어 알고, 늙음∙죽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늙음∙죽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늙음∙죽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안다(철저하게 안다).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태어남을 꿰뚫어 알고, 태어남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태어남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태어남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안다.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존재를 꿰뚫어 알고, 존재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존재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존재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안다.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취착을 꿰뚫어 알고, 취착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취착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취착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안다.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갈애를 꿰뚫어 알고, 갈애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갈애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갈애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안다.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느낌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안다.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감각접촉을 꿰뚫어 알고, 감각접촉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감각접촉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감각접촉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안다.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여섯 감각장소를 꿰뚫어 알고, 여섯 감각장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여섯 감각장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여섯 감각장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안다.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정신∙물질을 꿰뚫어 알고, 정신.물질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정신.물질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정신.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안다.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의식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안다.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형성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안다."


15.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견해를 구족했다고 하고, 봄[見]을 구족했다고도 하고, 정법에 도달했다고도 하고, 정법을 보았다고도 하고, 지혜를 구족했다고도 하고, 명지를 구족했다고도 하고, 법의 흐름을 얻었다고 하고, 성스러운 꿰뚫는 통찰지를 [얻었다]고도 하고, 불사(不死)의 문에 도달하여 머물렀다고도 한다.”


사문∙바라문 경1(S12:29)

Samaṇabrāhmaṇ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 싸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타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여기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늙음∙죽음을 철저하게(parijjanati) 알지 못하고, 늙음∙죽음의 일어남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늙음∙죽음의 소멸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늙음∙죽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며, 

여기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태어남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태어남의 일어남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태어남의 소멸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태어남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며, 

여기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존재를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존재의 일어남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존재의 소멸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존재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며, 여기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취착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취착의 일어남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취착의 소멸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취착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며, 여기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갈애를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갈애의 일어남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갈애의 소멸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갈애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며, 여기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느낌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느낌의 일어남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느낌의 소멸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며, 여기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감각접촉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감각접촉의 일어남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감각접촉의 소멸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감각접촉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며, 

여기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여섯 감각장소를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여섯 감각장소의 일어남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여섯 감각장소의 소멸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여섯 감각장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며, 

여기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정신∙물질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정신.물질의 일어남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정신.물질의 소멸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정신.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며, 

여기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의식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의식의 일어남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의식의 소멸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며, 여기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형성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형성의 일어남을 철저히 알지 못하고, 형성의 소멸을 철저히 알지 못하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는 자들은 


그 누구든지, 사문들 가운데서는 사문이라 불릴 수 없고 바라문들 가운데서는 바라문이라 불릴 수 없다. 그 존자들은 사문 생활의 결실이나 바라문 생활의 결실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드러내지 못한다.”


4. “비구들이여, 여기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늙음∙죽음을 철저하게 알고, 늙음∙죽음의 일어남을 철저하게 알고, 늙음∙죽음의 소멸을 철저하게 알고, 늙음∙죽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철저하게 알며, 

여기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태어남을 철저하게 알고, 태어남의 일어남을 철저하게 알고, 태어남의 소멸을 철저하게 알고, 태어남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철저하게 알며, 

여기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존재를 철저하게 알고, 존재의 일어남을 철저하게 알고, 존재의 소멸을 철저하게 알고, 존재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철저하게 알며, 

여기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취착을 철저하게 알고, 취착의 일어남을 철저하게 알고, 취착의 소멸을 철저하게 알고, 취착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철저하게 알며, 

여기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갈애를 철저하게 알고, 갈애의 일어남을 철저하게 알고, 갈애의 소멸을 철저하게 알고, 갈애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철저하게 알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느낌을 철저하게 알고, 느낌의 일어남을 철저하게 알고, 느낌의 소멸을 철저하게 알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철저하게 알며, 

여기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감각접촉을 철저하게 알고, 감각접촉의 일어남을 철저하게 알고, 감각접촉의 소멸을 철저하게 알고, 감각접촉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철저하게 알며, 

여기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여섯 감각장소를 철저하게 알고, 여섯 감각장소의 일어남을 철저하게 알고, 여섯 감각장소의 소멸을 철저하게 알고, 여섯 감각장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철저하게 알며, 

여기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정신∙물질을 철저하게 알고, 정신.물질의 일어남을 철저하게 알고, 정신.물질의 소멸을 철저하게 알고, 정신.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철저하게 알며, 

여기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형성을 철저하게 알고, 형성의 일어남을 철저하게 알고, 형성의 소멸을 철저하게 알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철저하게 아는 자들은 


그 누구든지, 사문들 가운데서는 사문이라 불린 만하고, 바라문들 가운데서는 바라문이라 불릴 만하다. 그 존자들은 사문 생활의 결실이나 바라문 생활의 결실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다.”


사문∙바라문 경2(S12:30)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 싸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타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늙음∙죽음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늙음∙죽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늙음∙죽음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늙음∙죽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면서도 늙음∙죽음을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태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태어남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태어남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태어남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면서도 태어남을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존재를 꿰뚫어 알지 못하고, 존재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존재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존재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면서도 존재를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취착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취착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취착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취착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면서도 취착을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갈애를 꿰뚫어 알지 못하고, 갈애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갈애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갈애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면서도 갈애를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느낌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느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느낌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면서도 느낌을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감각접촉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감각접촉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감각접촉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감각접촉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면서도 감각접촉을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여섯 감각장소를 꿰뚫어 알지 못하고, 여섯 감각장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여섯 감각장소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여섯 감각장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면서도 여섯 감각장소를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정신∙물질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정신.물질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정신.물질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정신.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면서도 정신.물질을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의식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의식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의식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면서도 의식을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형성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형성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형성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면서도 형성을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3.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늙음∙죽음을 꿰뚫어 알고, 늙음∙죽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늙음∙죽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늙음∙죽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면 늙음∙죽음을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태어남을 꿰뚫어 알고, 태어남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태어남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태어남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면 태어남을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존재를 꿰뚫어 알고, 존재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존재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존재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면 존재를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취착을 꿰뚫어 알고, 취착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취착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취착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면 취착을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갈애를 꿰뚫어 알고, 갈애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갈애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갈애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면 갈애를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느낌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면 느낌을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감각접촉을 꿰뚫어 알고, 감각접촉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감각접촉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감각접촉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면 감각접촉을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여섯 감각장소를 꿰뚫어 알고, 여섯 감각장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여섯 감각장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여섯 감각장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면 여섯 감각장소를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정신∙물질을 꿰뚫어 알고, 정신.물질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정신.물질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정신.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면 정신.물질을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의식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면 의식을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형성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면 형성을 완전히 건너서 머물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제3장 십력 품이 끝났다.


세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 ② 십력 ③ 기반 ④ 외도 ⑤ 부미자 ⑥ 우빠와나 ⑦ 조건 ⑧ 비구 ⑨ ~ ⑩ 사문∙바라문이다.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837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