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가 니까야(장)

정신경(淨信經)(Pasadika Sutta. D29)

수선님 2018. 4. 1. 11:53

정신경(淨信經)(D29)
청청한 믿음 내게 하는 가르침
Pāsādika 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삭까에서 웨단냐라 불리는 사꺄들의 망고 숲에 있는 중각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에 니간타 나따뿟따가 빠와에서 막 임종하였다. 그가 임종하자 니간타들은 분열하여 둘로 갈라져서 입의 칼로써 서로 다투며 지내고 있었다.


즉 ‘그대는 이 법과 율을 제대로 모른다. 나야말로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안다.’ 

‘어찌 그대가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알겠는가?’
‘그대는 그릇된 도를 닦는 자이고 나는 바른 도를 닦는 자이다.’
‘내 말은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는다.’
‘그대는 먼저 설해야 할 것을 뒤에 설했고 뒤에 설해야 할 것을 먼저 설했다.’
‘그대가 오랫동안 주장해오던 것은 한 마디로 논파되었다.’
‘나는 그대 교설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대는 패했다. 비난으로부터 도망가라. 혹은 만약 할 수 있다면 지금 설명해보라.’라고.
 

니간타 나따뿟따의 제자들 사이에서는 오직 논쟁과 투쟁만이 있는 듯 하였다. 니간타 나따뿟따의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들도 니간타 나따뿟따의 제자들에게 넌더리를 내고 질려 버리고 실망한 모습이 역력하였다. 그것은 법과 율이 제대로 설해지지 못하고 잘못 선언되고 출리(出離)로 인도하지 못하고 평정에 이바지하지 못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 아니며 탑이 부서진 것이고 귀의처가 없게 된 경우에 속하기 때문이다.

 

2. 그 당시 쭌다 사미가 빠와에서 안거를 마치고 사마가마로 아난다 존자를 만나러 왔다. 와서 아난다 존자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쭌다 사미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난다 존자시여, 니간타 나따뿟따가 빠와에서 막 임종하였습니다. 그가 임종하자 니간타들은 분열하여 둘로 갈라져서 입의 칼로써 서로 논쟁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즉 ‘그대는 이 법과 율을 제대로 모른다. 나야말로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안다.’ 

‘어찌 그대가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알겠는가?’
‘그대는 그릇된 도를 닦는 자이고 나는 바른 도를 닦는 자이다.’
‘내 말은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는다.’
‘그대는 먼저 설해야 할 것을 뒤에 설했고 뒤에 설해야 할 것을 먼저 설했다.’
‘그대가 오랫동안 주장해오던 것은 한 마디로 논파되었다.’
‘나는 그대 교설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대는 패했다. 비난으로부터 도망가라. 혹은 만약 할 수 있다면 지금 설명해보라.’라고. 

니간타 나따뿟따의 제자들 사이에서는 오직 논쟁과 투쟁만이 있는 듯합니다. 니간타 나따뿟따의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들도 니간타 나따뿟따의 제자들에게 넌더리를 내고 질려 버리고 실망한 모습이 역력합니다. 그것은 법과 율이 제대로 설해지지 못하고 잘못 선언되고 출리(出離)로 인도하지 못하고 평정에 이바지하지 못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 아니며 탑이 부서진 것이고 귀의처가 없게 된 경우에 속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이렇게 말하자 아난다 존자는 쭌다 사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 쭌다여, 이 소식은 세존을 뵙고 말씀드려야 할 것이다. 

쭌다여, 같이 세존을 뵈러가자. 뵈러가서 이 뜻을 세존께 말씀드리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쭌다 사미는 아난다 존자에게 대답했다.

 

3. 아난다 존자와 쭌다 사미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쭌다 사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니간타 나따뿟따가 빠와에서 막 임종하였습니다. 그가 임종하자 니간타들은 분열하여 둘로 갈라져서 입의 칼로써 서로 논쟁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즉 ‘그대는 이 법과 율을 제대로 모른다. 나야말로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안다.’ 

‘어찌 그대가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알겠는가?’
‘그대는 그릇된 도를 닦는 자이고 나는 바른 도를 닦는 자이다.’
‘내 말은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는다.’
‘그대는 먼저 설해야 할 것을 뒤에 설했고 뒤에 설해야 할 것을 먼저 설했다.’
‘그대가 오랫동안 주장해오던 것은 한 마디로 논파되었다.’
‘나는 그대 교설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대는 패했다. 비난으로부터 도망가라. 혹은 만약 할 수 있다면 지금 설명해보라.’라고. 

니간타 나따뿟따의 제자들 사이에서는 오직 논쟁과 투쟁만이 있는 듯합니다. 니간타 나따뿟따의 흰 옷을 입은 재가 제자들도 니간타 나따뿟따의 제자들에게 넌더리를 내고 질려 버리고 실망한 모습이 역력합니다. 그것은 법과 율이 제대로 설해지지 못하고 잘못 선언되고 출리(出離)로 인도하지 못하고 평정에 이바지하지 못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 아니며 탑이 부서진 것이고 귀의처가 없게 된 경우에 속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이렇게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쭌다여, 참으로 그와 같다. 그것은 법과 율이 제대로 설해지지 못하고 잘못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에 이바지하지 못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4. “쭌다여, ① 여기 스승이 바르게 깨달은 자[正等覺]가 아닌 경우가 있다. 게다가 법도 제대로 설해지지 못하고 잘못 선언되고 출리(出離)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에 이바지하지 못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제자도 그 법에서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바른 길을  닦으면서 머물지 않고 합당하게 바른 길을 닦지 않으며 법을 따라 행하지 않으며 마침내 그 법으로부터 퇴보해 버리고 만다.
 

그러면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도반이여, 이러한 상황이니 그대에게는 이익이 되겠습니다. 이러한 상황이니 그대에게는 큰 이익이 되겠습니다. 그대의 스승은 바르게 깨달은 자가 아닙니다. 게다가 법도 제대로 설해지지 못하고 잘못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에 이바지하지 못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대도 그 법에서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바른 길을 닦으면서 머물지 않고 합당하게 바른 길을 닦지 않으며 법을 따라 행하지 않으며 그 법으로부터 퇴보해 버리고 맙니다.’라고.


쭌다여, 이 경우에는 스승도 비난받아 마땅하고 법도 비난받아 마땅하고 제자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쭌다여, 그런데도 이와 같은 제자에게 ‘여보시오, 존자여. 그대의 스승이 가르치고 천명한 법대로 바른 길을 닦으시오.’라고 훈계한다면 그렇게 인도하는 자도, 인도하는 것도, 인도되는 자도, 모두 큰 삿된 업을 쌓게 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쭌다여, 그것은 법이 제대로 설해지지 못하고 잘못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에 이바지하지 못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5. “쭌다여, ② 여기 스승이 바르게 깨달은 자[正等覺]가 아닌 경우가 있다. 게다가 법도 제대로 설해지지 못하고 잘못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에 이바지하지 못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제자는 그 법에서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바른 길을 닦으면서 머물고 합당하게 바른 길을 닦으며 법을 따라 행하며 그 법을 수지한다.
 

그러면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도반이여, 이러한 상황이니 그대에게는 손해가 되겠습니다. 이러한 상황이니 그대에게는 큰 손해가 되겠습니다. 그대의 스승은 바르게 깨달은 자가 아닙니다. 게다가 법도 제대로 설해지지 못하고 잘못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에 이바지하지 못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 법에서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도를 닦으면서 머물고 합당하게 도를 닦으며 법을 따라 행하며 그 법을 수지합니다.’라고.
 

쭌다여, 이 경우에 스승도 비난받아 마땅하고 법도 비난받아 마땅하고 제자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쭌다여, 그런데도 이와 같은 제자에게 ‘여보시오, 존자여, 참으로 합당하게 바른 길을 닦으면 바른 방법을 터득할 것이오.’라고 훈계한다면 그렇게 칭송하는 자도, 칭송하는 것도, 칭송받는 자도, 모두 큰 삿된 업을 쌓게 된다. 그것은 무슨 이유때문인가? 

쭌다여, 그것은 법이 제대로 설해지지 못하고 잘못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에 이바지하지 못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6. “쭌다여, ③ 여기 스승이 바르게 깨달은 자[正等覺]인 경우가 있다. 게다가 법도 제대로 설해졌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에 이바지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다. 그러나 제자는 그 법에서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바른 길을 닦으면서 머물지 않고 합당하게 바른 길을 닦지 않으며 법을 따라 행하지 않으며 마침내 그 법으로부터 퇴보해 버리고 만다.


그러면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도반이여, 이러한 상황이니 그대에게는 손해가 되겠습니다. 이러한 상황이니 그대에게는 큰 손해가 되겠습니다. 그대의 스승은 바르게 깨달은 자입니다. 게다가 법도 제대로 설해졌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에 이바지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 법에서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도를 닦으면서 머물지 않고 합당하게 도를 닦지 않으며 법을 따라 행하지 않으며 그 법으로부터 퇴보해 버리고 맙니다.’라고.

 

쭌다여, 이 경우에 스승도 칭송되어야 마땅하고 법도 칭송되어야 마땅하지만 제자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쭌다여, 그런데도 이와 같은 제자에게 ‘여보시오, 존자여, 그대의 스승이 가르치고 천명한 법대로 바른 길을 닦으시오.’라고 훈계한다면 그렇게 인도하는 자도, 인도하는 것도, 인도되는 자도, 모두 큰 삿된 업을 쌓게 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쭌다여, 그것은 법이 제대로 설해졌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에 이바지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기 때문이다.”

 

7. “쭌다여, ④ 여기 스승이 바르게 깨달은 자[正等覺]인 경우가 있다. 게다가 법도 제대로 설해졌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에 이바지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다. 그리고 제자도 그 법에서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바른 길을 닦으면서 머물고 합당하게 바른 길을 닦으며 법을 따라 행하며 그 법을 수지한다.
 

그러면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도반이여, 이러한 상황이니 그대에게는 이익이 되겠습니다. 이러한 상황이니 그대에게는 큰 이익이 되겠습니다. 그대의 스승은 바르게 깨달은 자입니다. 게다가 법도 제대로 설해졌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에 이바지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도 그 법에서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바른 길을 닦으면서 머물고 합당하게 바른 길을 닦으며 법을 따라 행하며 그 법을 수지합니다.’라고.
 

쭌다여, 이 경우에 스승도 칭송되어야 마땅하고 법도 칭송되어야 마땅하고 제자도 칭송되어야 마땅하다. 

쭌다여, 그러므로 이와 같은 제자에게 ‘여보시오, 존자여 참으로 합당하게 바른 길을 닦으면 바른 방법을 터득할 것이오.’라고 훈계한다면 그렇게 칭송하는 자도, 칭송하는 것도, 칭송받는 자도, 모두 큰 공덕을 쌓게 된다. 물론 이 경우 칭송받는 자는 더욱더 정진을 하여야 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쭌다여, 그것은 법이 제대로 설해졌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에 이바지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기 때문이다.”

 
8. “쭌다여, 여기 아라한이요 바르게 깨달은 자[正等覺]인 스승이 세상에 출현하였다. 게다가 법도 제대로 설해졌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에 이바지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바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모든 단계들이 그 안에 모아져 있으며 출리의 기적을 만들고 인간들 사이에서 잘 설명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청정범행을 드러내지 못하고 명백하게 하지 못한다. 그런데 스승이 그들로부터 임종하여 버렸다.
 

쭌다여, 이러한 스승이 임종하면 그것은 제자들에게 큰 자책거리가 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쭌다여, ‘아라한이요, 바르게 깨달은 분인 우리의 스승이 세상에 출현하셨다. 게다가 법도 제대로 설해졌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에 이바지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바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모든 단계들이 그 안에 모아져 있으며 출리의 기적을 만들고 인간들 사이에서 잘 설명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청정범행을 드러내지 못하고 명백하게 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스승이 임종하셨다.’라고 자책하기 때문이다. 

쭌다여, 이러한 스승이 임종하면 그것은 제자들에게 큰 자책거리가 된다.


9. “쭌다여, 그러나 여기 아라한이요 바르게 깨달은 자[正等覺]인 스승이 세상에 출현하였다. 게다가 법도 제대로 설해졌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에 이바지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도 그 바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제대로 알고, 모든 단계들이 그 안에 모아져 있으며 출리의 기적을 만들고 인간들 사이에서 잘 설명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청정범행을 드러내고 명백하게 한다. 그러자 스승이 그들로부터 임종하였다.
 

쭌다여, 이러한 스승이 임종하더라도 그것은 제자들에게 큰 자책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쭌다여, ‘아라한이요 바르게 깨달은 분인 우리의 스승이 출현하셨다. 게다가 법도 제대로 설해졌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에 이바지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바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제대로 알고, 모든 단계들이 그 안에 모아져 있으며 출리의 기적을 만들고 인간들 사이에서 잘 설명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청정범행을 드러내고 명백하게 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스승이 임종하셨다.’라고 하면서 자책하지 않기 때문이다. 

쭌다여, 이러한 스승이 임종하면 그것은 제자들에게 큰 자책거리가 되지 않는다.”


10. “쭌다여, 만일 이러한 구성요소들을 잘 갖춘 청정범행이 있지만, 익숙하고 출가한지 오래되었으며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 스승이 없다면, 그런 청정범행은 이런 구성요소에 의해서 완성되지 않는다. 

쭌다여, 이런 구성요소들을 잘 갖춘 청정범행이 있고 익숙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 스승이 있을 때, 그런 청정범행은 이런 구성요소 때문에 완성된다.”

 

11. “쭌다여, 만일 이러한 구성요소들을 잘 갖춘 청정범행이 있고, 익숙하고 출가한지 오래되었으며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 스승이 있지만,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 유가안은(瑜伽安隱. 열반)을 얻었으며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법으로 잘 논파하며 논파한 뒤 올바른 닦음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는 장로 비구 제자들이 없으면, 그런 청정범행은 이런 구성요소 때문에 완성되지 않는다.”

 

12. “쭌다여, 그러나 이러한 구성요소들을 잘 갖춘 청정범행이 있고, 익숙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 스승이 있고,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 유가안은(열반)을 얻었으며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법으로 잘 논파하며 논파한 뒤 올바른 닦음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는 장로 비구 제자들이 있을 때, 그런 청정범행은 이런 구성요소 때문에 완성된다.
 

쭌다여, 만일 이러한 구성요소들을 잘 갖춘 청정범행이 있고, 익숙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 스승이 있고,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 유가안은(열반)을 얻었으며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법으로 잘 논파하며 논파한 뒤 올바른 닦음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는 장로 비구 제자들이 있지만, 중진 비구 제자들이 없다면 이러한 청정범행이 번창하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대중적이어서 인간들 사이에서 잘 설명되더라도 최상의 후원과 최상의 명성을 얻지 못하면, 그런 청정범행은 이런 구성요소 때문에 완성되지 않는다.


쭌다여, 중진 비구 제자들이 있지만 신참 비구 제자들이 없다면 … 신참 비구 제자들이 있지만 장로 비구니 제자들이 없다면 … 장로 비구니 제자들이 있지만 중진 비구니 제자들이 없다면 … 중진 비구니 제자들이 있지만 신참 비구니 제자들이 없다면 … 신참 비구니 제자들이 있지만 재가자이며 흰 옷을 입고 청정범행을 닦는 청신사 제자들이 없다면 … 재가자이며 흰 옷을 입고 청정범행을 닦는 청신사 제자들이 있지만 재가자이며 흰 옷을 입고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청신자 제자들이 없다면 … 재가자이며 흰 옷을 입고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청신사 제자들이 있지만 재가자이며 흰 옷을 입고 청정범행을 닦는 청신녀 제자들이 없다면 … 재가자이며 흰 옷을 입고 청정범행을 닦는 청신녀 제자들이 있지만 재가자이며 흰 옷을 입고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청신녀 제자들이 없다면 … 재가자이며 흰 옷을 입고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청신녀 제자들이 있지만 이러한 청정범행이 번창하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대중적이어서 인간들 사이에서 잘 설명되지 못하면 … 이러한 청정범행이 번창하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대중적이어서 인간들 사이에서 잘 설명되더라도 최상의 후원과 최상의 명성을 얻지 못하면, 그런 청정범행은 이런 구성요소 때문에 완성되지 않는다.”

 

13. “쭌다여, 그러나 이러한 구성요소들을 잘 갖춘 청정범행이 있고, 익숙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 스승이 있고,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 유가안은(열반)을 얻었으며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법으로 잘 논파하며 논파한 뒤 올바른 닦음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는 장로 비구 제자들이 있고 … 중진 비구 제자들이 있고 … 신참 비구 제자들이 있고 … 장로 비구니 제자들이 있고 … 중진 비구니 제자들이 있고 … 신참 비구니 제자들이 있고 … 재가자이여 흰 옷을 입고 청정범행을 닦는 청신사 제자들이 있고 … 재가자이며 흰 옷을 입고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청신사 제자들이 있고 … 재가자이며 흰 옷을 입고 청정범행을 닦는 청신녀 제자들이 있고 … 재가자이며 흰 옷을 입고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청신녀 제자들이 있고 … 이러한 청정범행이 번창하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대중적이어서 인간들 사이에서 잘 설명되고 … 최상의 후원과 최상의 명성을 얻을 때, 그런 청정범행은 이런 구성요소 때문에 완성된다.”

 

14. “쭌다여, 나는 지금 이 시대에 아라한이요 바르게 깨달은 자[正等覺]인 스승으로 세상에 출현하였다. 게다가 법도 제대로 설해졌고 잘 선언되고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에 이바지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도 그 바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제대로 알고, 모든 단계들이 그 안에 모아져 있으며 벗어남(出離)으로 인도하고 인간들 사이에서 잘 설명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청정범행을 드러내고 명백하게 한다. 쭌다여,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시대에 노련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 스승이다.”

 

15. “쭌다여,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 유가안은을 얻었으며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법으로 잘 논파하며 논파한 뒤 올바른 닦음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는 장로 비구 제자들이 있고 … 지금 이 시대에 중진 비구 제자들이 있고 … 지금 이 시대에 신참 비구 제자들이 있고 … 지금 이 시대에 장로 비구니 제자들이 있고 … 지금 이 시대에 중진 비구니 제자들이 있고 … 지금 이 시대에 신참 비구니 제자들이 있고 … 지금 이 시대에 재가자이며 흰 옷을 입고 청정범행을 닦는 청신사 제자들이 있고 … 지금 이 시대에 재가자이며 흰 옷을 입고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청신사 제자들이 있고 … 지금 이 시대에 재가자이며 흰 옷을 입고 청정범행을 닦는 청신녀 제자들이 있고 … 지금 이 시대에 재가자이며 흰 옷을 입고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청신녀 제자들이 있고 … 지금 이 시대에 이러한 청정범행이 있어 번창하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대중적이어서 인간들 사이에서 잘 설명되었다.”

 

16. “쭌다여, 지금 이 시대에 [여러] 스승들이 세상에 출현하였지만 나는 어떤 한 스승도 나와 같은 이런 최상의 후원과 최상의 명성을 얻은 자를 보지 못한다. 

쭌다여, 지금 이 시대에 [여러] 승가와 무리가 세상에 출현하였지만 나는 어떤 한 승가도 이 비구 승가와 같은 이런 최상의 후원과 최고의 명성을 얻은 것을 보지 못한다.
 

쭌다여, 참으로 바르게 말하는 자가 말하기를 ‘모든 형태를 원만하게 갖추고 모든 형태를 완전하게 채우고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게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청정범행을 잘 설하고 잘 드러내었다.’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쭌다여, 웃다까 라마뿟따는 ‘보면서 보지 못한다.’라는 이런 말을 한다. 그러면 무엇을 보면서 보지 못한다고 하는가? 

날카롭게 날이 선 칼날을 보면서 그것의 끝은 보지 못한다. 그래서 ‘보면서 보지 못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쭌다여 그러나 이것은 웃다까 라마뿟따가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칼을 두고 한 말이다.
 

쭌다여, 바르게 말하는 자가 말하기를 ‘보면서 보지 못한다.’라고 하는 것은 다음을 두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무엇을 보면서 보지 못하는 것은 다음을 두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무엇을 보면서 보지 못한다고 하는가? 

이러한 ‘모든 형태를 원만하게 갖추고 모든 형태를 완전하게 채우고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게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청정범행을 잘 설하고 잘 드러내었다.’라고 이것을 보는 것이다. 이러한 [구성요소들을 갖춘 청정범행] 가운데서 어떤 [부분을] 첨가해야 그 [청정범행]은 완벽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나는 보지 못한다.
 

쭌다여, 바르게 말하는 자가 말하기를 ‘보면서 보지 못한다.’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쭌다여, 참으로 바르게 말하는 자가 말하기를 ‘모든 형태를 원만하게 갖추고 모든 형태를 완전하게 채우고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게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청정범행을 잘 설하고 잘 드러내었다.’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17. “쭌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내가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설한 법들을 그대들은 모두가 함께 모이고 평등하게 모여서 서로서로 뜻과 뜻을 합치하고 문장과 문장을 합치하여 합송해야 하며 분쟁을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이 청정범행이 길이 전해지고 오래 머물게 해야 한다. 이것이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는 것이다.


쭌다여, 그러면 나는 어떤 법들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설하였는가? 

그것은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다섯 가지 기능[五根], 다섯 가지 힘[五力],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 여덟 가지의 성스러운 바른 길 [八支聖道]이다.
 

쭌다여, 나는 이런 법들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설하였나니, 그대들은 모두가 함께 모이고 평등하게 모여서 서로서로 뜻과 뜻을 합치하고 문장과 문장을 합치하여 합송해야 하며 분쟁을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이 청정범행이 길이 전해지고 오래 머물게 해야 한다. 이것이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는 것이다.”

 
18. “쭌다여, 이러한 그대들이 모두가 조화롭고 서로 법담을 나누고 분쟁을 하지 않으며 수행할 때 어떤 동료 비구가 승가에서 법을 말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만일 그대들에게 ‘이 존자는 뜻도 잘못 파악하고 있고 문장도 잘못 드러내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를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뒤 그에게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도반이여, 이 뜻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장들이 더 타당합니까, 아니면 저런 문장들이 더 타당합니까? 그리고 이런 문장들에서는 이 뜻이 더 타당합니까, 아니면 저 뜻이 더 타당합니까?’라고.

그러면 만일 그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이 뜻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장들이 더 타당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장들에서는 이 뜻이 더 타당합니다.’라고 한다면 그를 우쭐하게 하지도 말고 나무라지도 말아야 한다. 우쭐하게도 하지 않고 나무라지도 않은 뒤 그 뜻과 그 문장들을 준수하도록 그에게 잘 인식시켜야 한다.”

 

19. “쭌다여, 또 다른 동료 비구가 승가에서 법을 말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만일 그대들에게 

‘이 존자는 뜻은 잘못 파악하고 있는데 문장은 바르게 드러내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를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뒤 그에게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도반이여, 이런 문장들에서는 이런 뜻이 더 타당합니까, 아니면 저 뜻이 더 타당합니까?’라고. 

그러면 만일 그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이런 문장들에서는 이 뜻이 더 타당합니다.’라고.

한다면 그를 우쭐하게 하지도 말고 나무라지도 말아야 한다. 우쭐하게도 하지 않고 나무라지도 않은 뒤 그 뜻을 준수하도록 그에게 잘 인식시켜야 한다.”

 

20. “쭌다여, 또 다른 동료 비구가 승가에서 법을 말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만일 그대들에게 ‘이 존자는 뜻은 바르게 파악하고 있는데 문장을 잘못 드러내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를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뒤 그에게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도반이여, 이 뜻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장들이 더 타당합니까, 아니면 저런 문장들이 더 타당합니까?’라고. 

그러면 만일 그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이 뜻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장들이 더 타당합니다.’라고 한다면 그를 우쭐하게 하지도 말고 나무라지도 말아야 한다. 우쭐하게도 하지 않고 나무라지도 않은 뒤 그 문장들을 준수하도록 그에게 잘 인식시켜야 한다.

 

21. “쭌다여, 또 다른 동료 비구가 승가에서 법을 말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만일 그대들에게 ‘이 존자는 뜻도 바르게 파악하고 있고 문장도 바르게 드러내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에게 ‘좋습니다.’라고 말해야 하고 기뻐해야 한다. 그에게 ‘좋습니다.’라고 말하고 기뻐한 뒤 그에게 ‘도반이여, 우리가 이처럼 뜻을 갖추고 문장을 갖춘 존자와 같은 동료 수행자를 만났으니, 우리는 참으로 이익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22. “쭌다여, 나는 단지 지금 여기에서의 번뇌들만을 단속하기 위해서 그대들에게 법을 설하지 않는다. 쭌다여, 나는 단지 미래의 번뇌들만을 물리치기 위해서 법을 설하지도 않는다. 쭌다여, 나는 지금 여기에서의 번뇌들을 단속하고 아울러 미래의 번뇌들을 물리치기 위해 법을 설한다.
 

쭌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나는 그대들에게 옷 입는 것을 허락하였나니, 오직 그대들이 추위를 물리치고, 더위를 물리치고, 파리, 모기, 바람, 햇빛, 파충류와 닿는 것을 물리치게 하기 위해서이며,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대들에게 탁발 음식을 허락하였나니, 오직 그대들이 '이것은 즐김이나 사치나 장식이나 치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몸을 지탱하고 유지하고 해를 당하지 않고 청정범행(淸淨梵行)을 잘 지키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불편했던 경험을 물리치고 새로운 괴로움이 느낌을 일어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허물없이 안온하게 머물 것이다.’라고. 

나는 거처를 허락하였나니, 오직 그대들이 추위를 물리치고, 더위를 물리치고, 파리, 모기, 바람, 햇빛, 파충류와 닿는 것을 물리치고 기후의 변화에서 생기는 위험을 없애고, 홀로 머뭄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대들에게 병구완을 위한 약품을 허락하였나니, 오직 그대들이 일어난 고통스러운 느낌들을 물리치고, 병 없음을 최상으로 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23. “쭌다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이 ‘사꺄의 후예인 사문들은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지낸다.’라고 말하는 이런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쭌다여, 이렇게 주장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는 ‘도반들이여, 어떤 것이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입니까?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참으로 많고 하나가 아니며 여러 형태가 있습니다.’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쭌다여 네 가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있으니, 이것은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한 것이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며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욕망이 사라짐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무엇이 넷인가?
쭌다여, 여기 어떤 어리석은 자는 생명들을 계속 죽이면서 자신은 즐거워하고 기뻐한다. 이것이 첫 번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쭌다여, 여기 어떤 자는 주지 않은 것을 계속 가지면서 자신을 즐거워하고 기뻐한다. 이것이 두 번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쭌다여, 여기 어떤 자는 거짓말을 계속 하면서 자신은 즐거워하고 기뻐한다. 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쭌다여, 여기 어떤 자는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에 빠지고 사로잡혀 지낸다. 이것이 네 번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쭌다여, 이러한 네 가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한 것이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며,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욕망이 사라짐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24. “쭌다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이 ‘사꺄의 후예인 사문들은 이러한 네 가지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지냅니까?’라고 묻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그들은 그대들에게 바르게 말하는 자로서 말한 것이 아니며 사실이 아닌 거짓으로 헐뜯는 것이다.


쭌다여, 이러한 네 가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있으니, 전적으로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고, 욕망이 사라짐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쭌다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를 지닌, 떠나버림(떨쳐버림)으로부터 생겨난 희열[기쁨. 喜]과 행복[즐거움, 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첫 번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쭌다여, 비구는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 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두 번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쭌다여, 비구는 희열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지녀, 행복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행복이 머문다고'고 하는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쭌다여, 비구는 행복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슬픔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을 지닌 제4선(四禪)을 구족하며 머문다. 

이것이 네 번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쭌다여, 이러한 네 가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전적으로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고, 욕망이 사라짐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한다.
 

쭌다여, 그런데도 외도 유행승들이 ‘사꺄의 후예인 사문들은 이러한 네 가지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지낸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그렇습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그들을 그대들에게 바르게 말하는 자로서 말한 것이며 그들은 사실이 아닌 거짓으로 그대들을 헐뜯는 것이 아니다.”


25. “쭌다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이 ‘벗들이여, 그러면 이러한 네 가지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지내면 어떠한 결실이 있고 어떠한 이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쭌다여, 이렇게 말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는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벗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지내면 네 가지 결실이 있고 네 가지 이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벗들이여, 여기 비구는 세 가지 족쇄들을 완전히 없애서 흐름에 든자[預流者]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가 됩니다. 이것이 첫 번째 결실이고 첫 번째 이익입니다. 


다시 벗들이여, 비구는 세 가지 족쇄들을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一來者]가 되어, 한번만 더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의 끝을 만듭니다. 이것이 두 번째 결실이고 두 번째 이익입니다.


다시 벗이여ㅡ 비구는 다섯 가지 낮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습니다.[不還者] 이것이 세 번째 결실이고 세 번째 이익입니다.


다시 벗들이여, 비구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뭅니다.[阿羅漢] 이것이 네 번째 결실이고 네 번째 이익입니다.


벗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지내면 이러한 네 가지 결실이 있고 이러한 네 가지 이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라고.”

 
26. “쭌다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이 ‘사꺄의 후예인 사문들은 일관성이라고는 없는 법들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쭌다여, 이렇게 말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는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벗들이여, 알고 보시는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는 제자들에게 목숨이 있는 한 범하지 못하는 법들을 설하셨고 천명하셨습니다. 

벗들이여, 예를 들면 심연에 뿌리 하였으며 튼튼히 박혔고 요지부동이고 침투해 들어갈 수 없는 석주나 철기둥과 같습니다. 

벗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알고 보시는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는 제자들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넘어서지 못하는 법들을 설하셨고 천명하셨습니다.

벗들이여, 아라한이어서 번뇌가 다하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삶의 족쇄가 멸진되었으며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한 비구는 아홉 가지 경우들을 범할 수가 없습니다.


 ① 벗들이여, 번뇌 다한 비구는 의식적으로 산 생명의 목숨을 빼앗을 수가 없습니다.
 ② 번뇌 다한 비구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도둑질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③ 번뇌 다한 비구는 성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④ 번뇌 다한 비구는 고의적인 거짓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⑤ 번뇌 다한 비구는 전에 재가자였을 때처럼 축적해두고 감각적 욕망을 즐길 수가 없습니다.
 ⑥ 번뇌 다한 비구는 열의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⑦ 번뇌 다한 비구는 성냄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⑧ 번뇌 다한 비구는 어리석음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⑨ 번뇌 다한 비구는 두려움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벗들이여, 아라한이어서 번뇌가 다하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삶의 족쇄가 멸진되었으며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한 비구는 이런 아홉 가지 경우들을 범할 수가 없습니다.”


27. “쭌다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이 ‘사문 고따마는 과거에 대한 제한 없는 지(知)와 견(見)은 천명하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제한 없는 지와 견을 천명하지 못한다. 무엇에 대해서 그러하며 왜 그러한가?’라고 말하는 이런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외도 유행승들은 다른 것에 관계된 지와 견을 가지고 또 다른 것에 관계된 지와 견을 천명하려 들기 때문에 어리석은 바보들에 지나지 않는다.


쭌다여, 과거에 대해서 여래에게는 이전의 것을 기억하는 의식이 있다. 그는 원하는 만큼 무엇이든지 기억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해서는 여래에게는 ‘이것이 마지막 생이다.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는 알아 차림에서 생긴 지혜가 생긴다.”

 

28. “쭌다여, 만일 과거가 사실이 아니고 옳지 않고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여기면 여래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만일 과거가 사실이고 옳더라도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여기면 여래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만일 과거가 사실이고 옳고 이익을 줄 수 있다하더라도 여래는 그 질문을 설명해줄 바른 시기를 안다.
 

쭌다여, 만일 미래가 사실이 아니고 옳지 않고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여기면 여래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만일 미래가 사실이고 옳더라도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여기면 여래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만일 미래가 사실이고 옳고 이익을 줄 수 있다 하더라도 여래는 그 질문을 설명해 줄 바른 시기를 안다.
 

쭌다여, 만일 현재가 사실이 아니고 옳지 않고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여기면 여래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만일 현재가 사실이고 옳더라도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여기면 여래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만일 현재가 사실이고 옳고 이익을 줄 수 있다 하더라도 여래는 그 질문을 설명해 줄 바른 시기를 안다.
 

쭌다여, 이처럼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법들에 대해서 여래는 시기에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유익한 것을 말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는 자이다. 그래서 여래라 부른다.

 

29. “쭌다여, 그리고 신들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바라문들을 포함하고 신과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들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을 여래는 모두 철저하고 바르게 깨달았다. 그래서 여래라 부른다.
 

쭌다여, 여래가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철저하고 바르게 깨달은 그 밤으로부터 업으로 받은 몸이 없는 무여열반의 요소로 반열반에 드는 그 밤사이에 설하고 말하고 가르친 그 모든 것은 여실한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여래라 부른다.
 

쭌다여, 여래는 설한 그대로 행하는 자이고 행하는 그대로 설하는 자이다. 이처럼 설한 그대로 행하는 자이고 행하는 그대로 설하는 자이다. 그래서 여래라 부른다.
 

쭌다여, 여래는 신들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바라문을 포함하고 신과 인간을 포함한 중생들 가운데서, 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오류가 없이 보는 자요, 자재자이다. 그래서 여래라 부른다.”

 
30. “쭌다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이 ‘벗들이여, 그러면 ‘여래는 죽고 난 후에도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습니까?’라고 말하는 이런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쭌다여, 이렇게 말하는 외도 유해응들에게는 ‘벗들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죽고 난 후에도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고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쭌다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이 ‘벗들이여, 그러면 ‘여래는 죽고 난 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습니까?’라고 말하는 이런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쭌다여, 이렇게 말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는 ‘벗들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죽고 난 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고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쭌다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이 ‘벗들이여, 그러면 ‘여래는 죽고 난 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습니까?’라고 말하는 이런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쭌다여, 이렇게 말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는 ‘벗들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죽고 난 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고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쭌다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에게 ‘벗들이여, 그러면 여래는 죽고 난 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습니까?’라고 말하는 이런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쭌다여, 이렇게 말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는 ‘벗들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죽고 난 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고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31. “쭌다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이 ‘벗들이여, 그러면 왜 사문 고따마는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하는 이런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쭌다여, 이렇게 말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는 ‘벗들이여, 이것은 참으로 이익을 주지 못하고, [출세간]법에 바탕한 것이 아니며, 청정범행의 시작에도 미치지 못하고,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욕망이 사라짐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32. “쭌다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이 ‘벗들이여, 그러면 사문 고따마는 무엇을 설명하였습니까?’라고 말하는 이런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쭌다여, 이렇게 말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는 

‘벗들이여, 세존께서는 이것은 괴로움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벗들이여, 세존께서는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벗들이여, 세존께서는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벗들이여, 세존께서는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33. “쭌다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이 ‘벗들이여, 그러면 왜 사문 고따마는 이것을 설명하셨습니까?’라고 말하는 이런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쭌다여, 이렇게 말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는 ‘벗들이여, 이것은 참으로 이익을 주고, 이것은 [출세간]법에 바탕한 것이며, 이것은 청정범행의 시작이고, 전적으로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고, 욕망의 사라짐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이것을 설명하셨습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34. “쭌다여, 과거에 대한 견해들 가운데 설명되어야 하는 것은 내가 그대들에게 모두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설명해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내가 어떻게 그대들에게 그대로 설명을 하겠는가? 

쭌다여, 미래에 대한 견해들 가운데 설명되어야 하는 것은 내가 그대들에게 모두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설명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을 내가 어떻게 그대들에게 그대로 설명을 하겠는가?
 

쭌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과거에 대한 견해들 가운데 설명되어야 하는 것을 내가 그대들에게 모두 설명한 것인가? 

쭌다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이러한 주장을 하고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①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②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③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④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지 않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⑤ ‘자아와 세상은 끝이 있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⑥ ‘자아와 세상은 끝이 없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⑦ ‘자아와 세상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⑧ ‘자아와 세상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⑨ ‘자아와 세상은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⑩ ‘자아와 세상은 남이 만든 것이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⑪ ‘자아와 세상은 자기가 만들기도 했고 남이 만들기도 했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⑫ ‘자아와 세상은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⑬ ‘자아와 세상은 남이 만든 것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⑭ ‘자아와 세상은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① ‘즐거움과 괴로움은 영원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② ‘즐거움과 괴로움은 영원하지 않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③ ‘즐거움과 괴로움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④ ‘즐거움과 괴로움은 영원하지 않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⑤ ‘즐거움과 괴로움은 끝이 있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⑥ ‘즐거움과 괴로움은 끝이 없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⑦ ‘즐거움과 괴로움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⑧ ‘줄거움과 괴로움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⑨ ‘즐거움과 괴로움은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⑩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⑪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가 만들기도 했고 남이 만들기도 했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⑫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⑬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⑭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이것만이 진리이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35. “쭌다여, 여기서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다. 이것만이 진리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라는 이런 주장을 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바라문들이여, 그대들이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다고 말하는 이것이 사실입니까?’ 그러자 그들은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쭌다여, 여기에 대해서 다른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쭌다여, 이러한 개념들에 관한 한 나는 나 자신과 동등한 [지혜를 가진] 자를 관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더 뛰어난 자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참으로 높은 개념에 관한 한 내가 더 뛰어나다.”

 

36. “쭌다여, 여기서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도 않기도 하다. …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지 않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기도 하다. … 자아와 세상은 끝이 있다. … 자아와 세상은 끝이 없다. … 자아와 세상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 자아와 세상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 자아와 세상은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 자아와 세상은 남이 만든 것이다. … 자아와 세상은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 자아와 세상은 남이 만든 것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 자아와 세상은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즐거움과 괴로움은 영원하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영원하지 않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영원하지 않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기도 하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끝이 있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끝이 없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가 만들기도 했고 남이 만들기도 했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라는 이런 주장을 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그대들이 즐거움과 괴로움이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것이 사실입니까?’ 그러자 그들은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난 나는 그들의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쭌다여, 여기에 대해서 다른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쭌다여, 이러한 개념들에 관한 한 나는 나 자신과 동등한 [지혜를 가진] 자를 관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더 뛰어난 자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참으로 높은 개념에 관한 한 내가 더 뛰어나다.
 

쭌다여, 이것이 과거에 대한 견해들 가운데 설명되어야 하는 것을 내가 그대들에게 [모두]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설명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을 내가 어떻게 그대들에게 그대로 설명을 하겠는가?


37. “쭌다여, 미래에 대한 견해들 가운데 설명되어야 하는 것은 내가 그대들에게 [모두]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설명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을 내가 어떻게 그대들에게 설명을 하겠는가?  

쭌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미래에 대한 견해들 가운데 설명되어야 하는 것을 내가 그대들에게 [모두] 설명한 것인가? 

쭌다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이러한 주장을 하고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① ‘물질[色]을 가진 자아는 죽고 난 후에 인식을 가지고 병들지 않는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② ‘물질을 가지지 않은 자아는 …’
③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하는 자아는 …’
④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자아는 …’
⑤ ‘인식을 가진 자아는 …’
⑥ ‘인식을 가지지 않은 자아는 …’
⑦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자아는 죽고 난 후에 인식을 가지고 병들지 않는다.’
⑧ ‘자아는 단멸하고 파멸하여 죽은 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38. “쭌다여, 여기서 ‘물질[色]을 가진 자아는 죽고 난 후에 인식을 가지고 병들지 않는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라는 이런 주장을 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바라문들이여, 그대들이 ‘물질을 가진 자아는 죽고 난 후에 인식을 가지고 병들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이것이 사실입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쭌다여, 여기에 대해서 다른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쭌다여, 이러한 개념들에 관한 한 나 자신과 동등한 [지혜를 가진] 자를 관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더 뛰어난 자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참으로 높은 개념에 관한 한 내가 더 뛰어나다.”


39. “쭌다여, 여기서 ‘물질을 가지지 않은 자아는 …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하는 자아는 …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자아는 … 인식을 가진 자아는 … 인식을 가지지 않은 자아는 …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자아는 죽고 난 후에 인식을 가지고 병들지 않는다. … 자아는 단멸하고 파멸하여 죽은 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라는 이런 주장을 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바라문들이여, 그대들이 ‘자아는 단멸하고 파멸하여 죽은 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이것이 사실입니까?’ 그러자 그들은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쭌다여, 여기에 대해서 다른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쭌다여, 이러한 개념들에 관한 한 나는 나 자신과 동등한 [지혜를 가진] 자를 관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더 뛰어난 자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참으로 높은 개념에 관한 한 내가 더 뛰어나다.

 

쭌다여, 이것이 미래에 대한 견해들 가운데 설명되어야 하는 것은 내가 그대들에게 [모두]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설명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을 내가 어떻게 그들에게 그대로 설명을 하겠는가?”


40. “쭌다여, 이러한 과거에 대한 견해들과 이러한 미래에 대한 견해들을 제거하고 뛰어넘기 위해서 나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가르치고 천명하였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쭌다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 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근심(혐오)을 제거하면서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 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근심(혐오)을 제거하면서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 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근심(혐오)을 제거하면서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 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근심(혐오)을 제거하면서 머문다. 

 

쭌다여, 이러한 과거에 대한 견해의 국집들과 이러한 미래에 대한 견해들을 제거하고 뛰어넘기 위해서 나는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가르치고 천명하였다.”

 

41. 이렇게 말씀하시는 동안 우빠와나 존자가 세존의 뒤에서 세존께 부채질을 해드리고 있었다. 그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문은 지극히 청정한 믿음을 줍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우빠와나여, 그렇다면 이 법문은 ‘청정한 믿음을 주는 것’이라고 호지하라.”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우빠와나 존자는 마음이 흡족해져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정신경이 끝났다.)














론섬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808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