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경(確信經)(D28)
세존께 바치는 확고한 믿음
Sampasādanīya 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날란다에서 빠와리까 망고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무렵 사리뿟따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러한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
“사리뿟따여, 그대는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러한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라고 이처럼 황소같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하고 확신에 찬 사자후를 토하는구나.
사리뿟따여, 그런데 그대는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계를 가진 분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법을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통찰지를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머묾을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런 해탈을 성취한 분들이셨다.’라고 과거의 모든 세존∙아라한∙정등각들을 마음으로 마음을 통하여 알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여, 그러면 그대는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계를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법을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통찰지를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머묾을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런 해탈을 성취한 분들이실 것이다.’라고 미래의 모든 아라한∙정등각들을 마음으로 마음을 통하여 알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여, 나는 지금 이 시대의 아라한∙정등각이다. 그러면 그대는 ‘세존께서는 이러한 계를 가진 분이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법을 가진 분이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통찰지를 가진 분이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머묾을 가진 분이다. 세존께서는 이런 해탈을 성취한 분이다.’라고 나에 대해서 마음으로 마음을 통하여 알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여, 여기서 참으로 그대에게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아라한∙정등각들에 대해서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가 없다.
사리뿟따여, 그런데 어떻게 그대는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러한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라고 이처럼 황소같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하고 확신에 찬 사자후를 토하는가?”
2. “세존이시여, 제게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아라한∙정등각들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법다운 추론으로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는 튼튼한 기초와 튼튼한 성벽과 망루를 가지고 있고 하나의 대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지혜롭고 입지가 굳고 현명한 문지기가 모르는 자들을 제지하고 아는 자들만 들어가게 합니다. 그는 그 도시의 모든 다니는 길을 순찰하면서 성벽의 이음매와 갈라진 틈으로 고양이가 지나다니는 정도로까지는 보지 않습니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 도시를 들어오고 나가는 큰 생명체는 누구는 모두 이 대문으로 들어오고 나간다.’라고.
세존이시여, 그와 마찬가지로 저는 법다운 추론으로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과거의 모든 세존∙아라한∙정등각들께서는 다섯 가지 장애[五蓋]들을 제거하셨고 마음의 오염원들을 통찰지로써 무력하게 만드셨고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에 마음에 잘 확립되셨으며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들을 있는 그대로 닦으신 뒤 위없는 정등각을 완전하게 깨달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미래의 모든 세존∙아라한∙정등각들께서도 다섯 가지 장애[五蓋]들을 제거하시고 마음의 오염원들을 통찰지로써 무력하게 만드시고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에 마음이 잘 확립되시며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들을 있는 그대로 닦으신 뒤 위없는 정등각을 완전하게 깨달으실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현재의 세존께서도 아라한∙정등각이시니 다섯 가징 장애[五蓋]들을 제거하셨고 마음의 오염원들을 통찰지로써 무력하게 만드셨고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에 마음이 잘 확립되셨으며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들을 있는 그대로 닦으신 뒤 위없는 정등각을 완전하게 깨달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전에 법문을 듣기 위해서 여기 세존께 왔었습니다. 그런 제게 세존께서는 점점 더 높고 점점 더 수승하게, 검고 흰 부분들을 잘 갖추어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세존께서 점점 더 높고 점점 더 수승한, 검고 흰 부분들을 잘 갖추어 법을 설해 주실 때마다 저는 그 법에 대해서 최상의 지혜로 안 뒤, 법들 가운데서 여기 어떤 법을 통해서 완성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승님께 ‘세존께서는 정등각이시다.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다.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라는 청정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3.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 주신 유익한 법들에 대한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유익한 법들이란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다섯 가지 기능[五根]. 다섯 가지 힘[五力],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 여덟 가지의 성스러운 올바른 길[八正道]입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비구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뭅니다.
세존이시여, 유익한 법들에 대한 이것이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이것을 남김없이 초월해서 아시기 때문에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유익한 법들에 관한 한 이것을 능가하여 세존보다 더 초월해서 안다고 주장할 다른 가르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4.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 주신 감각장소[處, 入]의 천명에 대한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눈과 형상,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마노(마음)와 법(마음현상)이라는 이들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六內外處]들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감각장소의 천명에 대한 이것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이것을 남김없이 초월해서 아십니다. 세존께서는 이것을 남김없이 초월해서 아시기 때문에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감각장소의 천명에 관한 한 이것을 능가하여 세존보다 더 초월해서 안다고 주장할 만한 다른 가르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5.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 주신 입태(入胎. 태어남)에 대한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들 네 가지 입태가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모태에 들어가고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모태에 머물고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모태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입태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알아차리면서 모태에 들어가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모태에 머물고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모태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입태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알아차리면서 모태에 들어가고 알아차리면서 모태에 머물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모태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입태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알아차리면서 모태에 들어가고 알아차리면서 모태에 머물고 알아차리면서 모태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네 번째 입태입니다. 이것이 네 가지 입태입니다.
세존이시여, 입태에 대한 이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6.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 주신 예언의 분류에 대한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네 가지 예언의 분류가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표상을 통해서 예언을 합니다. ‘이런 것이 당신의 마음이오, 당신의 마음은 이러하오. 당신의 마음은 이와 같소.’라고 그가 아무리 많은 것을 예언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와 같고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예언의 분류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표상을 통해서 예언을 하지 않습니다. 인간들이나 비인간들이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예언을 합니다. ‘이런 것이 당신의 마음이오, 당신의 마음은 이러하오. 당신의 마음은 이와 같소.’라고. 그가 아무리 많은 것을 예언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와 같고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예언의 분류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표상을 통해서 예언을 하지 않습니다. 인간들이나 비인간들이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예언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에 기인한 일으킨 생각에 따라 퍼져 나오는 소리를 듣고 예언을 합니다. ‘이런 것이 당신의 마음이오, 당신의 마음은 이러하오. 당신의 마음은 이와 같소.’라고 그가 아무리 많은 것을 예언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와 같고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예언의 분류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표상을 통해서 예언을 하지 않습니다. 인간들이나 비인간들이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예언을 하지도 않습니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에 기인한 일으킨 생각에 따라 퍼져 나오는 소리를 듣고도 예언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이 고찰이 없는 삼매를 구족한 마음으로 마음을 통하여 꿰뚫어 압니다. ‘이 존자의 마음작용이 이렇게 향하고 있으니 이런 마음은 즉시에 이러한 생각을 일으킬 것입니다.’라고. 그가 아무리 많은 것을 예언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와 같고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네 번째 예언의 분류입니다.
이것이 네 가지 예언의 분류입니다.
세존이시여, 예언의 분류에 대한 이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7.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견(見)의 증득에 대해서 가르침을 해주신 이것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네 가지 견의 증득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을 기울이고 집중하여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삼매를 얻습니다. 마음이 삼매에 들어서 이 몸은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머리털 끝에서부터 아래로, 살갗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관찰합니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몸털∙손발톱∙이빨∙살갗∙살∙힘줄∙뼈∙골수∙콩팥∙염통∙간∙근막∙지라∙허파∙큰창자∙작은창자∙위∙똥∙담즙∙가래∙고름∙피∙땀∙굳기름∙눈물∙[피부의] 기름기∙침∙콧물∙관절활액∙오줌 등이 있다.’라고. 이것이 첫 번째 견의 증득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을 기울이고 집중하여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삼매를 얻습니다. 마음이 삼매에 들어서 이 몸은 발바닥에서부터 이로, 머리털 끝에서부터 아래로, 살갗으로 둘러쌰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한 것으로 가득 차있음을 관찰합니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몸털∙손발톱∙이빨∙살갗∙살∙힘줄∙뼈∙골수∙콩팥∙염통∙간∙근막∙지라∙허파∙큰창자∙작은창자∙위∙똥∙담즙∙가래∙고름∙피∙땀∙굳기름∙눈물∙[피부의] 기름기∙침∙콧물∙관절활액∙오줌 등이 있다.’라고. 그리고 나아가서 피부와 살과 피로 에워싸인 인간의 해골을 반조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견의 증득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을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을 기울이고 집중하여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삼매를 얻습니다. 마음이 삼매에 들어서 이 몸은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머리털 끝에서부터 아래로, 살갗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있음을 관찰합니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몸털∙ … 관절활액∙오줌 등이 있다.’라고. 그리고 나아가서 피와 살과 피로 에워싸인 인간의 해골을 반조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도 확고하게 머물고 저 세상에도 머물고, 둘로 끊어지지 않는 인간의 의식의 흐름을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세 번째 견의 증득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을 기울이고 집중하여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삼매를 얻습니다. 마음이 삼매에 들어서 이 몸은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머리털 끝에서부터 아래로, 살갗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있음을 반조합니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몸털∙ … 관절활액∙오줌 등이 있다.’라고. 그리고 나아가서 피와 살과 피로 에워싸인 인간의 해골을 반조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도 확고하게 머물지 않고 저 세상에도 확고하게 머물지 않고, 둘로 끊어지지 않은 인간의 의식의 흐름을 알아 차립니다. 이것이 네 번째의 견의 증득입니다.
이것이 네 가지 견의 증득입니다. 세존이시여, 견의 증득에 대한 이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8.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 주신 일곱가지 사람들에 대한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일곱 가지 인간이 있나니 ① 양면으로 해탈[兩面解脫]한 자 ② 통찰지로 해탈[慧解脫]한 자 ③ 체험한 자 ④ 견해를 얻은 자 ⑤ 믿음으로 해탈한 자 ⑥ 법을 따르는 자 ⑦ 믿음을 따르는 자입니다.
세존이시여, 일곱 가지 사람들에 대한 이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9.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주신 노력에 대한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가 있나니 ① 마음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念覺支) ② 법의 선별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擇法覺支) ③ 정진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精進覺支) ④ 희열(기쁨)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喜覺支) ⑤ 편안함(평온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輕安覺支) ⑥ 삼매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定覺支) ⑦ 평정으로 이루어진 요소(捨覺支)입니다.
세존이시여, 노력에 대한 이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10.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주신 닦음(수행. 정진)에 대한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네 가지 닦음이 있나니 닦음도 어렵고 초월지(신통지)도 더딘 것, 닦음은 어려우나 초월지는 빠른 것, 닦음은 쉬우나 초월지가 더딘 것, 닦음도 쉽고 초월지도 빠른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기서 닦음도 어렵고 초월지도 더딘 이러한 닦음은 어렵고 더디기 때문에 양쪽 다 저열하다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여기서 닦음은 어려우나 초월지는 빠른 이러한 닦음은 어렵기 때문에 저열하다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여기서 닦음은 쉬우나 초월지가 더딘 이러한 닦음은 더디기 때문에 저열하다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닦음도 쉽고 초월지도 빠른 이러한 닦음은 쉽고 빠르기 때문에 양쪽 다 수승하다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도닦음에 대한 이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11. “나아가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해주신 말의 품행에 대한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거짓말과 관련된 말을 하지 않고, 이간질을 하지 않고, 중상모략하지 않고, 다른 것을 둘러대어 이기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는 이유가 분명하고 시의 적절한 지혜로운 말을 합니다.
세존이시여, 말의 품행에 대한 이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12.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주신 인간의 도덕적 품행에 대한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진실하고 믿음이 있으며, 간교스러지 않고, 꾸며낸 말을 하지 않고, 암시를 주지 않고, 비방하지 않고, 이득으로 이득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는 감각의 대문을 잘 지키고 음식에서 적당함을 알고, 몸과 말과 마음으로 바르게 행하며 깨어있음에 전념하고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마음챙김을 유지하고 명료하게 표현하고, 행위와 열렬함과 논리를 뒷받침하는 통찰지를 갖추었고 감각적 쾌락에 대해서 탐착하지 않으며 마음챙기고 현명합니다.
세존이시여, 도덕적 품행에 대한 이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13. “나아가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해주신 증득의 분류에 대한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네 가지 증득의 분류가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지혜로운 마음 기울임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이 사람은 설한 대로 닦아,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預流者]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가 될 것이다.’라고 아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지혜로운 마음 기울임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이 사람은 설한 대로 닦아,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一來者]가 되어, 한 번만 더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의 끝을 만들기를.’이라고 한다면 계를 완전하게 갖춘 자가 될 것이다.’라고 아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지혜로운 마음 기울임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이 사람은 설한 대로 도를 닦아, 다섯 가지 낮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을 것이다.[不還者]’라고 아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지혜로운 마음 기울임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이 사람은 설한 대로 도를 닦아,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阿羅漢]’라고 아십니다.
세존이시여, 증득의 분류에 대한 이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14.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주신 다른 사람의 해탈을 아는 지혜에 대한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네 가지 다른 사람의 해탈을 아는 지혜가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지혜로운 마음 기울임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자[預流者]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가 될 것이다.’라고 아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지혜로운 마음 기울임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一來者]가 되어, 한 번만 더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라고 아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지혜로운 마음 기울임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다섯 가지 낮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을 것이다.[不還者]’라고 아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지혜로운 마음 기울임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라고 아십니다.
세존이시여, 다른 사람의 해탈을 아는 지혜에 대한 이 가르침도 위없는 것이다.”
15.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주신 영속론[常見]에 대한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 가지 영속론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마음을 기울이고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삼매를 얻습니다.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어 여러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합니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데 대해 기억합니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는 이러했고, 피부색(인종)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인종)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은 여러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쟁의 거처를 기억해냅니다.
그는 이와 같이 말합니다. ‘나는 과거를 아나니 세상은 무너지고 이루어졌다. 나는 미래도 아나니 세상은 무너지고 이루어질 것이다. 자아와 세계는 영속하나니 그것은 황무지와 같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있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유전하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자아와 세계는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존재한다.’라고. 이것이 첫 번째 영속론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마음을 기울이고 닦아서 거기에 걸맞은 마음의 삼매를 얻습니다.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어 여러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합니다. 즉 하나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 두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 세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 네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 다섯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 열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을 기억합니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는 이러했고, 피부색(인종)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인종)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은 여러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쟁의 거처를 기억해냅니다.
그는 이와 같이 말합니다. ‘나는 과거를 아나니 세상은 무너지고 이루어졌다. 나는 미래도 아나니 세상은 무너질 것이고 이루어질 것이다. 자아와 세계는 영속하나기 그것은 황무지와 같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있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유전하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자아와 세계는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존재한다.’라고. 이것이 두 번째 영속론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마음을 기울여 닦아서 거기에 걸맞은 마음의 삼매를 얻습니다.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어 여러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합니다. 즉 열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 스무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 서른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 마흔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을 기억합니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는 이러했고, 피부색(인종)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인종)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은 여러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쟁의거처를 기억해냅니다.
그는 이와 같이 말합니다. ‘나는 과거를 아나니 세상은 무너지고 이루어진다. 나는 미래도 아나니 세상은 무너질 것이고 이루어질 것이다. 자아와 세계는 영속하나기 그것은 황무지와 같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있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유전하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자아와 세계는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존재한다.’라고. 이것이 세 번째 영속론입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세 가지 영속론입니다.
세존이시여, 영속론[常見]에 대한 이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16.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주신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에 대한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을 기울이고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삼매를 얻습니다.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어 여러 전생을 기억합니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천 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데 대해 기억합니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는 이러했고, 피부색(인종)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인종)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은 여러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쟁의 거처를 기억해냅니다.
세존이시여,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에 대한 이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17. “나아가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해주신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에 대한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을 기울이고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삼매를 얻습니다.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天眼]으로 중생들을 봅니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 차립니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사견업.邪見業]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공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정견업.正見業)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의 세계에 태어난다.'라고 .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줄생들을 알아 차립니다.
세존이시여,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알아 차리는 지혜에 대한 이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18.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주신 신통변화[神足通]에 대한 이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두 가지 신통변화가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번뇌가 있고 취착이 있으며 성스럽지 못한 것이라 불리는 신통이 있고, 번뇌가 없고 취착이 없으며 성스러운 것이라 불리는 신통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가 있고 취착이 있으며 성스럽지 못한 것이라 불리는 신통입니까?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마음을 기울이고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삼매를 얻습니다.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어 여러 가지 신통변화를 체험합니다. 하나가 된 후 여럿이 되기고 여럿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습니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습니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위에서와 같습니다.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 달린 새와 같습니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습니다. 브라흐마(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써 위력을 미칩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번뇌가 있고 취착이 있으며 성스럽지 못한 것이라 불리는 신통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가 없고 취착이 없으며 성스러운 것이라 불리는 신통입니까?
세존이시여, 여기 비구가 ① 만일 ‘혐오스러운 것에 대해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고 원하면 그는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뭅니다. ② 만일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고 원하면 그는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뭅니다. ③ 만일 ‘혐오스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고 원하면 그는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뭅니다. ④ 만일 ‘혐오스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고 원하면 그는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뭅니다. ⑤ 만일 ‘혐오스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것 둘 다를 제거한 뒤 평온한 자가 되어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머무르리라.’고 원하면 거기서 평온한 자가 되어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머뭅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번뇌가 없고 취착이 없으며 성스러운 것이라 불리는 신통입니다.
세존이시여, 신통변화[神足通]에 대한 이 가르침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것을 남김없이 초월해서 아십니다. 세존께서는 이것을 남김없이 초월해서 아시기 때문에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신통변화에 관한 한 이것을 능가하여 세존보다 더 초월해서 안다고 주장할 다른 가르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19. “세존이시여, 부지런히 정진하고 굳세고 근력이 있고 용감하고 분투하고 인내력이 있는 신심을 가진 선남자가 성취해야 할 것을 세존께서는 이미 성취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한 것이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감각적 쾌락들에 대한 탐닉에 몰두하는 것에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자기 학대에 몰두하는 것에도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세존께서는 높은 마음에 속하며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무는 그 네 가지 선정[四種禪]을 원하는 대로 얻고, 힘들이지 않고 얻고, 어렵지 않게 얻으시는 분이십니다.”
20. “세존이시여, 누가 만일 제게 ‘도반 사리뿟따여,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과거에 있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누가 만일 제게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미래에 있을 것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누가 만일 제게 ‘도반 사리뿟다여, 그러면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현재에는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누가 만일 제게 ‘도반 사리뿟따여,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과 동등한 사문이나 바라문이 과거에 있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누가 만일 제게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과 동등한 사문이나 바라문이 미래에 있을 것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누가 만일 제게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과 동등한 사문이나 바라문이 현재에는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누가 만일 제게 ‘그런데 왜 사리뿟따 존자는 한 사람은 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은 전적으로 인정하지 않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설명할 것입니다. ‘도반이여, 나는 세존의 면전에서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과거의 아라한∙정등각들은 나와 동등하였다.’라고 들었고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도반이여, 나는 세존의 면전에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미래의 아라한∙정등각들은 나와 동등할 것이다.’라고 들었고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도반이여, 나는 세존의 면전에서 ‘하나의 세계에 두 분의 아라한∙정등각들이 전도 아니고 후도 아닌 [동시에] 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치에 맞지 않다. 그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들었고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라고.
세존이시여, 제가 이와 같이 질문을 받아서 이와 같이 설명을 하면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하는 것입니까? 혹시 거짓으로 세존을 헐뜯는 것은 아닙니까? 법에 따라서 법을 설명한 것입니까? 누구든 함께 법을 닦는 동료가 이것을 따라 말하더라도 비난받아야 할 경우를 만나지 않겠습니까?”
“사리뿟따여, 참으로 그러하다. 그대가 이와 같이 질문을 받아서 이와 같이 설명을 하면 내가 말한 대로 말하는 것이 된다. 거짓으로 나를 헐뜯는 것이 아니다. 법에 따라서 법을 설명한 것이다. 누구든 함께 법을 닦는 동료가 이것을 따라 말하더라도 비난받아야 할 경우를 만나지 않는다.”
21.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우다이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소욕(少慾)과 지족(知足)과 번뇌의 제거는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여래께서는 이와 같은 큰 신통과 이와 같은 큰 위력을 가지셨는데도 불구하고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외도 유행승들이 자기 안에서 단 하나의 법이라도 관찰하게 된다면 그들은 그것 때문에 깃발을 드날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소욕과 지족과 번뇌의 제거는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여래께서는 이와 같은 큰 신통과 이와 같은 큰 위력을 가지셨는데도 불구하고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우다이여, 참으로 그러하다. 그대는 여래의 소욕과 지족과 번뇌의 제거를 보라. 여래는 이와 같은 큰 신통과 이와 같은 큰 위력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만일 외도 유행승들이 자기 안에서 단 하나의 법이라도 관찰하게 된다면 그들은 그것 때문에 깃발을 드날릴 것이다.
우다이여, 그대는 여래의 소욕과 지족과 번뇌의 제거를 보라. 여래는 이와 같은 큰 신통과 이와 같은 큰 위력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22. 세존께서는 사리뿟따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사리뿟따여, 그러므로 그대는 자주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에게 이 가르침을 설해야 한다.
사리뿟따여, 배우지 못한 범부들에게 여래에 대한 의문과 혼란이 생기게 되면 그들은 이 가르침을 듣고 여래에 대한 의문과 혼란이 제거될 것이다.”
이처럼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의 면전에서 확고한 믿음[確信]을 드러내 보였다. 그러므로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함이 이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의 제목이다.
(확신경이 끝났다.)
실론섬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808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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