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불교 Early Buddhism

[스크랩] 초기불교 - 8. 최초의 설법(初轉法輪)

수선님 2018. 4. 1. 13:15

 

초기불교 마성스님 / 동국대강사

 

최초의 설법(初轉法輪)

    붓다께서는 아지비까(Ājivika, 邪命外道)교도였던 우빠까(Upaka)와 헤어진 뒤, 계속 여행하여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Isipatana, 仙人住處)에 있는 녹야원에 도착하여 마침내 다섯 비구들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갔다. 빨리 [율장(律藏)] 「대품(大品)」에서는 분명히 ‘다섯 비구’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때는 아직 불교교단인 상가(Sangha, 僧伽)가 성립되기 전이었다. 그런데 이들을 ‘비구(比丘, Bhikkhu, 걸식이라는 뜻)’라고 존칭하고 있다. 지금은 ‘비구’라는 말이 불교승단의 남자 수행자를 일컫는 말이 되었지만, 붓다 당시에는 수행을 위해 집을 나와 유행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걸식’에 의존함으로 ‘비구’라고 불렀던 것 같다. 
    다섯 비구들은 멀리서 세존께서 다가오는 것을 보고 말했다. 
    “벗들이여, 수행자 고따마(Gotama)가 오고 있다. 그는 타락한 자로서 고행을 싫어하여 사치스런 생활로 되돌아갔다. 우리는 그에게 인사를 해서도 안 되고, 일어서서 영접해서도 안 되고, 그릇이나 옷을 받아서도 안 된다. 단지 그가 앉을 자리만은 비워 두어 앉고자 하면 앉을 수 있게 하자.” 
    그러나 세존께서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그들은 자신들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일어나서 세존을 영접했다. 한 사람은 그릇과 옷을 받아 들었고, 한 사람은 자리를 준비했고, 한 사람은 발 씻을 물과 발판과 수건을 가져왔다. 세존께서는 준비된 자리에 앉아 발을 씻으셨다. 그런데 그들은 세존을 부를 때 이름을 부르거나 “벗이여!”라고 하였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래(如來)를 이름이나 벗이라는 말로 불러서는 안 된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마땅히 공양을 받아야 할 분이며,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으신 분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나는 불사(不死)의 경지를 증득하였다. 이제 법을 설하겠다. 설한 대로 수행하는 자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이 출가할 때 품었던 목적인 범행(梵行)의 궁극적인 완성을 스스로 잘 알고 똑똑히 보아 현생에서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러자 다섯 비구는 말했다. 
    “벗 고따마여, 고행을 닦고 실천하고 수행하여도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성스러운 지견(智見)을 얻기 어려운데 하물며 타락하여 고행을 싫어해서 사치스런 생활로 되돌아간 그대가 어떻게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성스러운 지견을 얻었겠는가?” 
    다시 세존께서 다섯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타락하지 않았다. 고행을 싫어하여 사치스런 생활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으신 분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이제 법을 설하겠다. 설한 대로 수행하는 자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이 출가할 때 품었던 목적인 범행의 궁극적인 완성을 스스로 잘 알고 똑똑히 보아 현생에서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러자 다섯 비구는 세 번 반복하여 세존께 물었다. 세존은 세 번 반복하여 똑 같은 답변을 하셨다. 그리하여 결국 세존께서는 다섯 비구의 생각을 돌릴 수 있었다. 그들은 세존의 말씀에 귀를 기울려 잘 들으려 했고, 참된 앎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켰다. 
    세존께서는 다섯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두 가지 극단이 있으니 출가자들은 결코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두 가지란 무엇인가? 하나는 여러 가지 애욕에 빠져 그것을 즐기는 것이니, 그것은 열등하고 세속적이고 범부의 짓이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 되는 바가 없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짓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니, 그것도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 되는 바가 없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원만히 잘 깨달았다. 중도는 눈을 뜨게 하고 앎을 일으킨다. 그리고 고요함과 수승(殊勝)한 앎과 바른 깨달음과 열반에 도움이 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여래가 원만히 잘 깨달았고, 눈을 뜨게 하고 앎을 일으키고, 고요함과 수승한 앎과 바른 깨달음과 열반에 도움이 되는 중도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곧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팔정도]를 말하는 것이니,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가 원만히 잘 깨달았고 열반에 도움이 되는 중도이다. … 
    비구들이여, 만약 내가 이 사성제(四聖諦)를 이와 같이 세 번씩 열두 단계로 관찰하지 않아, 있는 그대로 깨끗하게 알지 못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나는 천신, 악마, 범천의 세계와 사문(沙門), 바라문(婆羅門), 인간의 세계에서 가장 높고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훌륭히 성취하였다고 선언할 수 없다. 
    비구들이여, 나는 사성제를 이와 같이 세 번씩 열두 단계로 관찰하여, 있는 그대로 깨끗하게 알았기 때문에, 나는 천신, 악마, 범천의 세계와 사문, 바라문, 인간의 세계에서 가장 높고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훌륭히 성취하였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또한 나는 알고 보게 되었다. 나의 해탈은 흔들림이 없다. 이것이 최후의 생존이니, 이제 다시 괴로운 존재를 받지 않는다.” 
    세존께서 이 가르침을 설하시자, 꼰단냐(Kondannna, 憍陳如) 장로는 먼지와 때를 멀리 여윈 법안(法眼)을 얻었다. 곧 ‘모여서 이루어진 것은 모두 소멸한다.’고 깨달았던 것이다. 
    세존께서 법륜을 굴렀을 때, 땅의 신(神)들이 소리쳤다. 
    “세존께서 바라나시에 있는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서 가장 훌륭한 법륜을 굴리셨다. 이것은 사문, 바라문, 천신, 악마, 범천 등 세상의 어떤 누구도 굴리지 못한 것이다.” 
    이와 같이 순식간에 범천에까지 그 소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그때 일천세계(一千世界)가 격렬하게 진동했고, 신들의 위엄을 능가하는 한량없는 광채가 세상에 나타났다. 
    그때 세존께서는 감흥을 읊으셨다. 
    “아! 참으로 꼰단냐는 깨달았구나.
    아 참으로 꼰단냐는 깨달았구나.” 
    이리하여 꼰단냐 장로는 그때부터 안냐 꼰단냐(Annna Kondannna)로 불리게 되었다. 
    진실로 안냐 꼰단냐는 법을 보았고, 법을 얻었고, 법을 알았고, 법을 꿰뚫었다. 의심에서 벗어났고, 망설임을 제거했고, 두려움이 없었고, 스승의 가르침 외에 다른 것은 필요없게 되었다. 
    그가 세존께 청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고자 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오라, 비구여, 내 이미 교법을 잘 설해 놓았다. 바르게 괴로움을 소멸시키고자 한다면 청정한 수행을 하라.” 
    안냐 꼰단냐는 이렇게 구족계를 받았다. 
    세존께서는 나머지 비구들에게도 교법을 설하셨다. 그때 밥빠(Vappa) 장로와 밧디야(Bhaddiya) 장로가 먼지와 때를 여윈 법안을 얻었다. 곧 ‘모여서 이루어진 것은 모두 소멸한다.’고 깨달은 것이다. 
    세존께서는 가져온 음식을 드시고 난 뒤, 나머지 비구들에게 교법을 설하셨다. 이렇게 비구들은 세 비구가 걸식해 온 음식을 먹으며 지냈다. 
    세존의 교법을 듣던 사이에 마하나마(Mahanama) 장로와 앗사지(Assaji) 장로가 먼지와 때를 멀리 여윈 법안을 얻었다. 곧 ‘모여서 이루어진 것은 모두 소멸한다.’고 깨달았던 것이다. 이들도 모두 세존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출처 : 미주현대불교
글쓴이 : 염화미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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