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도달한 이 법은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숭고하다. 단순한 사색에서 벗어나 미묘하여 슬기로운 자만이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집착하기 좋아하여, 아예 집착을 즐긴다. 그런 사람들이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도리와 연기의 도리를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또한 모든 행(行)이 고요해진 경지, 윤회의 모든 근원이 사라진 경지, 갈애가 다한 경지, 탐착을 떠난 경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경지 그리고 열반(涅槃)의 도리를 안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내가 비록 법을 설한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만 피곤할 뿐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자신의 심정을 다음과 같은 시로 토로하셨다.
애를 써서 내가 얻은 이 진리를
지금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
탐욕과 노여움에 패배한 사람들에게
이 진리는 쉽게 깨닫기 어렵다.
이것은 세속의 흐름을 거스르고,
미묘하고 심원하며 이해하기 힘들고 섬세해서,
욕망을 탐내고 암흑에 덥힌 사람들은 볼 수가 없으리.
이와 같이 깊이 사색한 세존께서는 법을 설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때 사함빠띠(Sahampati)라는 범천(梵天)은 세존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렇게 탄식했다.
‘아! 이 세상은 멸망하는구나. 아! 세상은 소멸하고 마는구나. 여래, 응공, 정등각자(正等覺者)가 법을 설하지 않으신다면.’
이때 범천은 겉옷을 한 어깨에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세존을 향해 합장하며 간청했다.
“세존이시여, 법을 설하소서. 선서(善逝)께서는 법을 설하소서. 삶에 먼지가 적은 유정(有情, satta)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법을 듣는다면 알 수 있을 것이나, 법을 설하지 않으신다면 그들조차 쇠퇴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범천은 세 번 반복하여 세존께 법을 청했다. 세존께서는 범천의 청이 지극함을 아시고, 중생에 대한 자비심을 일으켜 부처의 눈[佛眼]으로 세상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여러 부류가 있음을 아셨다. 이른바 더러움이 적은 사람, 더러움이 많은 사람, 영리한 사람, 둔한 사람, 착한 사람, 악한 사람, 가르치기 쉬운 사람, 가르치기 어려운 사람이 있음을 보셨다. 아물러 후세의 죄과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후세의 죄과에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음을 보셨다.
비유하면 연못의 연꽃과 같다. 연못에는 푸른 연꽃, 붉은 연꽃, 흰 연꽃이 있다. 연꽃은 모두 물속에서 나서 자라고 물의 보호를 받는다. 어떤 연꽃은 물에 잠긴 채 자라고, 어떤 연꽃은 물의 표면에 있고, 어떤 연꽃은 물 위로 솟아 나와 물에 젖지 않은 채 있다.
그와 같이 세상을 내려다보니 참으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더러움이 적은 사람, 더러움이 많은 사람, … 후세의 죄과에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음을 보셨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사함빠띠 범천에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귀 있는 자들에게
불사의 문을 열겠으니
죽은 자에 대한 근거 없는 제사는 그만두어라.
범천아,
나는 단지 피로할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사람들에게 덕스럽고 숭고한 법을 설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함빠띠 범천은 세존께서 설법하기로 결심하였음을 알고는 공손히 절하고 오른쪽으로 도는 예를 표하고 사라졌다. 이렇게 하여 붓다는 교법을 설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누구에게 처음으로 법을 설할까? 누가 이 법을 빨리 이해할까? 그렇다 실로 알라라 깔라마(Ālara Kalama)가 있다. 그는 박식하고 경험이 풍부하고 지혜로웠다. 오랫동안 마음의 먼지가 적은 자였다. 알라라 깔라마에게 먼저 이 법을 설해야겠다. 그라면 이 법을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7일 전에 죽었음을 신통한 지혜로 알았다. 세존께서는 다시 생각했다.
‘이제 누구에게 처음으로 법을 설할까? … 그렇다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amaputta)가 있다. … 그라면 이 법을 곧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전날 밤에 죽었음을 신통한 지혜로 알았다.
그때 세존께서는 자신이 고행할 때 늘 자신을 보살펴주고, 자신에게 큰 도움을 주었던 다섯 비구(고행자)들에게 먼저 이 법을 설하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바라나시 근처의 이시빠따나(Isipatana)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있었다. 세존은 바라나시를 향해 길을 떠났다.
그런데 도중에서 아지바까(Ājivaka, 邪命外道) 교도였던 우빠까(Upaka)를 만났다. 우빠까는 세존께 여쭈었다.
“벗이여, 그대의 감관은 매우 깨끗하고 모습은 아주 밝습니다. 그대는 누구를 모시고 있으며, 그대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또 그대는 누구의 법을 따르고 있습니까?”
이와 같은 말을 들었을 때,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모든 것을 이긴 이요.
모든 것을 아는 이요.
모든 것을 버리고, 욕망을 다 없애고 해탈하였소.
스스로 깨달았으니, 누구를 스승이라 할까?
내게는 스승이 없소.
나와 같은 사람도 없소.
신들을 포함한 이 세상에 나와 견줄 이는 없소.
나야말로 이 세상에서 ‘숭배하기 합당한 이[阿羅漢]’이요.
나는 위없는 스승이요.
나는 오직 한 사람 ‘바르게 깨달은 이[정등각자]’요.
나는 상쾌하고 마음이 편안하오.
법의 수레[法輪]를 굴리기 위해 나는 카시로 가오.
캄캄한 이 세상에서 죽음이 없는 북을 치려하오.
우빠까는 반신반의하며 말했다.
“벗이여, 그대의 말대로라면 당신은 무한의 승리자일 수밖에 없군요.”
그러자 세존께서는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번뇌를 다 없앨 수 있는 이들은
나와 같이 이긴 이요.
나는 온갖 악덕을 이겼소.
우빠까여, 그러므로 나는 승리자요.”
그러자 우빠까가 말했다.
“벗이여,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리고 그는 머리를 가로 저으면서 다른 길로 가 버렸다.
만일 우빠까가 세존을 알아보았다면, 최초의 불제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참으로 불행했던 사람이다. 붓다가 법을 설하기로 결심하고 길을 떠나는 도중에 만났으나, 그는 세존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