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굿따라 니까야(증일)

셋의 모음 - 제2장 마차공(마차를 제작하는 사람) 품(A3:11-A3:20. Rathakāra-vagga)

수선님 2018. 4. 8. 12:05

                                  제2장 마차공(마차를 제작하는 사람) 품

                                          Rathakāra-vagga


유명함 경(A3:11)

Ñāta-sutta

1.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으로 유명한 비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손해가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불행이 되고 많은 신과 인간들에게 해로움이 되고 손해가 되고 괴로움이 된다. 어떤 것이 셋인가?


다른 사람들에게 몸으로 가르침에 어긋나는 업을 짓도록 유혹하거나 부추기고, 

말로 가르침에 어긋나는 업을 짓도록 유혹하거나 부추기고, 

마음으로 가르침에 어긋나는 업을 짓도록 유혹하거나 부추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법으로 유명한 비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손해가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불행이 되고 많은 신과 인간들이게 해로움이 되고 손해가 되고 괴로움이 된다.”


2.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으로 유명한 비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이 되고, 많은 신과 인간들에게 이로움이 되고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된다. 무엇이 셋인가?


다른 자들에게 몸으로 가르침에 따르는 선한 업을 짓도록 격려하고, 

말로 가르침에 따르는 선한 업을 짓도록 격려하고, 

마음으로 가르침에 따르는 선한 업을 짓도록 격려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법으로 유명한 비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이 되고, 많은 신과 인간들에게 이로움이 되고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된다.”


기억 경(A3:12)

Sāraṇīya-sutta  

1. “비구들이여, 관정(灌頂)의 대관식을 거행한 끄샤뜨리야 왕은 세 가지 장소를 살아있는 동안에는 기억할 것이다. 어떤 것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관정의 대관식을 거행한 끄샤뜨리야 왕이 태어난 곳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관정의 대관식을 거행한 끄샤뜨리야 왕이 기억할 첫 번째 장소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관정의 대관식을 거행하고 끄샤뜨리야 왕이 된 곳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관정의 대관식을 거행한 끄샤뜨리야 왕이 기억할 두 번째 장소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관정의 대관식을 거행한 끄샤뜨리야 왕이 전쟁에서 이기고, 그 지역의 최고 지도자가 된 곳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관정의 대관식을 거행한 끄샤뜨리야 왕이 기억할 세 번째 장소이다.


비구들이여, 관정(灌頂)의 대관식을 거행한 끄샤뜨리야 왕은 이러한 세 가지 장소를 살아있는 동안은 기억할 것이다.”


2.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도 세 가지 장소를 살아있는 동안은 기억할 것이다. 어떤 것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수하고 집을 나와 출가한 곳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가 죽을 때까지 기억할 첫 번째 장소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 곳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가 죽을 때까지 기억할 두 번째 장소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가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무는 곳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가 죽을 때까지 기억할 세 번째 장소이다.


비구들이여, 비구도 이러한 세 가지 장소를 목숨이 붙어있는 한 기억할 것이다.”

註) 관정 [abhiseka, 灌頂]원래, 관정은 고대 인도 왕가의 대관의식(戴冠儀式)에서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제왕이 즉위할 때 사해(四海)에서 길어온 물을 금접시에 담아 군주의 머리에 뿌렸으며, 군주의 법정추정상속인(法定推定相續人)의 서임식(敍任式) 때도 역시 그렇게 했다.


〈화엄경 華嚴經〉 십지품(十地品)에 의하면, 보살이 십지 가운데 제9지에서 제10지 법운지(法雲地)에 들어갈 때 모든 부처가 지혜의 물로써 그의 머리를 씻어주어 법왕(法王)의 직(職)을 받았음을 증명하는 의식으로 삼으며, 이를 수직관정(受職灌頂)이라고 하였다. 또한 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에서는 보살 십지 가운데 제10지를 관정지(灌頂地)라고 하였다.


희망 없음 경(A3:13)

Nirāsa-sutta  

1.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셋인가?


희망이 없는 사람과 

희망을 가진 사람과 

이미 희망을 이루어 더 이상 희망을 갖지 않는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자가 희망이 없는 사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비천한 가문에 태어나나니, 천민의 가문이나 사냥꾼의 가문이나 죽세공의 가문이나 마차공(마차를 만들거나 수리하는 사람)의 가문이나 넝마주이 가문에 태어난다. 그는 가난하고 먹고 마실 것이 부족하고 생계가 곤란하여 거친 음식이나 겨우 몸을 가리는 천조차도 아주 어렵게 얻는다. 그는 못생기고 보기 흉하고 기형이고 병약하고 눈멀고 손이 불구이고 절름발이이고 반신불수이다. 그는 음식과 마실 것과 의복과 탈것과 화환과 향을 바르는 것과 침상과 숙소와 불을 얻지 못한다. 그는 ‘끄샤뜨리야들이 어떤 특정한 끄샤뜨리야 사람을 왕으로 모시는 관정의식을 거행했다.’라는 소식을 들을 때 ‘언제 끄샤뜨리야들이 나를 왕으로 모시는 관정의식을 거행할 것인가?’라는 생각은 아예 내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희망이 없는 사람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자가 희망을 가진 사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관정의 대관식을 올린 끄샤뜨리야 왕의 첫째 왕자가 있다. 그는 왕으로 모시는 관정의식을 올릴 만하고 성숙했지만 아직 관정의식을 거행하지 않았다. 그가 ‘끄샤뜨리야들이 어떤 특정한 끄샤뜨리야 사람을 왕으로 모시는 관정의식을 거행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그는 ‘언제 끄샤뜨리야들이 나를 왕으로 모시는 관정의식을 거행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희망을 가진 사람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자가 [이미 희망을 이루어] 더 이상 희망을 갖지 않는 사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관정의 대관식을 거행한 끄샤뜨리야 왕이 있다. 그가 ‘끄샤뜨리야들이 어떤 특정한 끄샤뜨리야 사람을 왕으로 모시는 관정의식을 거행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그는 ‘언제 끄샤뜨리야들이 나를 왕으로 모시는 관정의식을 거행할 것인가?’라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것은 왕으로 모시는 관정의식을 거행하지 않았을 때 왕이 되고 싶었던 이전의 희망을 이미 성취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이미 희망을 이루어] 더 이상 희망을 갖지 않는 사람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2.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들 가운데도 세 부류의 비구가 있다. 어떤 것이 셋인가?


희망이 없는 비구와 

희망을 가진 비구와  

이미 희망을 이루어 더 이상 희망을 갖지 않는 비구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자가 희망이 없는 비구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는 계행이 나쁘고 사악한 성품을 지녔고 불결하고 의심하는 습관을 가졌고 비밀리에 행하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자처하고 청정범행을 닦지 않으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고 떠벌리며 안이 썩었고 번뇌가 흐르며 청정하지 않다. 

그가 ‘어떤 특정한 비구가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라는 소식을 들으면 ‘나는 언제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까?’라는 생각은 아예 내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희망이 없는 비구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자가 희망을 가진 비구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는 계를 지니고 선한 성품을 지닌다. 

그는 ‘어떤 비구가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라는 소식을 들으면 ‘언제 나도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까?’라는 생각을 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희망을 가진 비구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자가 [이미 희망을 이루어] 더 이상 희망을 갖지 않는 비구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번뇌 다한 비구가 있다. 

그는 ‘어떤 비구가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라는 소식을 들으면 ‘언제 나도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까?’라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번뇌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이전의 희망을 [이미] 성취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이미 희망을 이루어더 이상 희망을 갖지 않는 비구라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들 가운데도 이러한 세 부류의 비구가 있다.”


전륜성왕 경(A3:14)

Cakkavatti-sutta  

1. “비구들이여, 정의로운 법왕인 전륜성왕도 그가 의지할 왕이 없으면 법륜을 굴릴 수 없다.”

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 어떤 비구가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전륜성왕의 왕입니까?”

“비구여, 그것은 바로 법이다.”


세존께서는 다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여, 여기 정의로운 법왕인 전륜성왕은 오직 법을 의지하고 법을 존경하고 법을 중히 여기고 법을 경모하고 법을 승리의 표상으로 지니고 법을 깃발로 가지며 법을 지배자로 여기고 법답게 왕가와 사람들을 보호하고 지킨다.


다시 비구여, 정의로운 법왕인 전륜성왕은 오직 법을 의지하고 법을 존경하고 법을 중히 여기고 법을 경모하고 법을 승리의 표상으로 지니고 법을 깃발로 가지며 법을 지배자로 여기고 법답게 끄샤뜨리야들과 신하들과 군대와 바라문들과 장자들과 도시와 시골에 사는 자들과 사문들과 바라문들과 짐승과 새들을 보호하고 지킨다.


비구여, 그 정의로운 법왕인 전륜성왕은 오직 법을 의지하고 법을 존경하고 법을 중히 여기고 법을 경모하고 법을 승리의 표상으로 지니고 법을 깃발로 가지며 법을 지배자로 여기고 법답게 끄샤뜨리야들과 신하들과 군대와 바라문들과 장자들과 도시와 시골에 사는 자들과 사문들과 바라문들과 짐승과 새들을 보호하고 지키고서 법륜을 굴린다. 어떤 사람도, 살아있는 원수라도 그것을 멈출 수 없다.”


2. “비구여, 마찬가지로 여래∙아라한∙정등각도 정의로운 법왕이니 그는 오직 법을 의지하고 법을 존경하고 법을 중히 여기고 법을 경모하고 법을 승리의 표상으로 지니고 법을 깃발로 가지며 법을 지배자로 여기고 법답게 몸의 행위를 보호하고 지킨다. ‘이런 몸의 업은 받들어 행해야 하고 이런 몸의 업은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비구여 다시 여래∙아라한∙정등각도 정의로운 법왕이니 그는 오직 법을 의지하고 법을 존경하고 법을 중히 여기고 법을 경모하고 법을 승리의 표상으로 지니고 법을 깃발로 가지며 법을 지배자로 여기고 법답게 말의 행위를 보호하고 지킨다. ‘이런 말의 업은 행해야 하고 이런 말의 업은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비구여, 다시 여래∙아라한∙정등각도 정의로운 법왕이니 그는 오직 법을 의지하고 법을 존경하고 법을 중히 여기고 법을 경모하고 법을 승리의 표상으로 지니고 법을 깃발로 가지며 법을 지배자로 여기고 법답게 마음의 행위를 보호하고 지킨다. ‘이런 마음의 업은 받들어 행해야 하고 이런 마음의 업은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비구여, 여래∙아라한∙정등각도 정의로운 법왕이니 그는 오직 법을 의지하고 법을 존경하고 법을 중히 여기고 법을 경모하고 법을 승리의 표상으로 지니고 법을 깃발로 가지며 법을 지배자로 여기고 법답게 몸의 업과 말의 업과 마음의 업을 보호하고 지키고 법답게 최상의 법륜을 굴린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범천도,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그 법륜을 멈출 수 없다.”


빠쩨따나 경(A3:15)

Pacetaṇ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녹야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이전에 빠쩨따나라는 왕이 있었다. 

비구들이여, 한때 빠쩨따나 왕은 마차 만드는 사람에게 물었다.

‘마차공이여, 6개월 후에 전쟁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새 바퀴 한 짝을 만들어줄 수 있겠는가?’

마차공은 ‘왕이시여, 만들어드리겠습니다.’라고 빠쩨따나 왕에게 대답했다. 

비구들이여, 마차공은 6일을 제외한 6개월 동안 오직 한 개의 바퀴밖에 만들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그때 빠쩨따나 왕이 마차공에게 물었다.

‘마차공이여, 오늘부터 6일 후에 전쟁이 있을 것이다. 한 짝의 새 바퀴를 완성했는가?’

‘왕이시여, 6개월 중에서 6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오직 한 개의 바퀴밖에 만들지 못했습니다.’

‘마차공이여, 6일 동안 나머지 한 개의 바퀴를 만들 수 있겠는가?’

‘왕이시여, 만들어드리겠습니다.’라고 마차공은 대답했다.”


3. “그러자 마차공은 6일 동안 나머지 바퀴를 만들어 한 짝의 새 바퀴를 가지고 빠쩨따나 왕에게 갔다. 가서는 빠쩨따나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이시여, 이것이 한 짝의 새 바퀴입니다.’

‘마차공이여, 이것은 6일을 제외한 6개월을 걸려 만든 것이고 이것은 6일 만에 만든 것이다. 이 둘에 차이점이 있는가? 나는 어떤 차이점도 볼 수 없구나.’

‘왕이시여, 차이점이 있습니다. 차이점을 보십시오.’

비구들이여, 그때 마차공은 먼저 6일 만에 만든 바퀴를 굴렸다. 그것은 힘이 미친 곳까지 가서 선회하고는 땅바닥에 넘어졌다. 이번에는 6일을 제외한 6개월을 걸려 만든 바퀴를 굴렸다. 그것은 굴러 힘이 미친 곳까지 가서 차축에 끼워 넣어진 것처럼 멈추었다.”


4. “그러자 왕이 말했다.

‘마차공이여, 6일 만에 만든 바퀴는 굴러 힘이 미친 곳까지 가서 선회하고는 땅바닥에 넘어지는데 그것은 무슨 이유와 무슨 조건 때문인가? 그러나 6일을 제외한 6개월을 걸려 만든 바퀴는 굴러 힘이 미친 곳까지 가서는 차축에 끼워 넣어진 것처럼 멈추는데 그것은 무슨 이유와 무슨 조건 때문인가?’

‘왕이시여, 6일 만에 만든 바퀴는 테두리가 휘었고 결점이 있고 불완전합니다. 바퀴살도 휘었고 결점이 있고 불완전하고, 중심도 휘었고 결점이 있고 불완전합니다. 그것은 테두리가 휘었고 결점이 있고 불완전하고, 바퀴살도 휘었고 결점이 있고 불완전하고, 중심도 휘었고 결점이 있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굴러갈 때 힘이 미친 곳까지 가서 선회하고는 땅바닥에 넘어집니다.


왕이시여, 그러나 6일을 제외한 6개월을 걸려 만든 바퀴는 그것의 테두리가 휘지 않았고 결점이 없고 완전합니다. 바퀴살도 휘지 않았고 결점이 없고 완전하고, 중심도 휘지 않았고 결점이 없고 완전합니다. 그것은 테두리가 휘지 않았고 결점이 없고 완전하고, 바퀴살도 휘지 않았고 결점이 없고 완전하고, 중심도 휘지 않았고 결점이 없고 완전하기 때문에 굴러갈 때 힘이 미친 곳까지 가서는 차축에 끼워 넣어진 것처럼 멈춥니다.'”


5.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때 그 마차공은 어떤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때 그 마차공은 바로 나였다.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나무가 휘었고 결점이 있고 불완전한 것을 잘 알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아라한, 정등각이니 몸이 삐뚤어지고 결점이 있고 불완전한 것을 잘 알고, 말이 삐뚤어지고 결점이 있고 불완전한 것을 잘 알고, 마음이 삐뚤어지고 결점이 있고 불완전한 것을 잘 안다.


비구들이여, 비구, 비구니를 막론하고 그 누구든지 몸의 삐뚤어짐(vaṅka)과 결점(dosa)과 불완전함(kasāva)을 버리지 않고, 말의 삐뚤어짐과 결점과 불완전함을 버리지 않고, 마음의 삐뚤어짐과 결점과 불완전함을 버리지 않으면 법과 율에서 떨어진다. 그것은 6일 만에 만든 바퀴가 땅바닥에 넘어지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이와 같이 닦아야 한다. 

‘몸의 삐뚤어짐과 결점과 불완전함을 버리리라. 말의 삐뚤어짐과 결점과 불완전함을 버리리라. 마음의 삐뚤어짐과 결점과 불완전함을 버리리라.’라고 닦아야 한다.”


티 없음 경(A3:16)

Apsṇṇaka-sutta  

1.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구족한 비구는 바른 도 닦음을 행하는 자이니 그는 번뇌들을 소멸하기 위한 중요한 기초를 갖추었다. 어떤 것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기능들의 문을 잘 보호하고, 

음식에 적당량을 알며, 

깨어있음에 전념한다.”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감각기능들의 문을 잘 보호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상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 nimitta]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 anuvyañjana]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기능[眼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 잘 보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귀로 소리를 들음에 그 표상[全體相, nimitta]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 anuvyañjana]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기능[眼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 잘 보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코로 냄새를 맡음에 그 표상[全體相, nimitta]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 anuvyañjana]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기능[眼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 잘 보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혀로 맛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 nimitta]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 anuvyañjana]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기능[眼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 잘 보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으로 감촉을 느낌에 그 표상[全體相, nimitta]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 anuvyañjana]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기능[眼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 잘 보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마노[意.마음]로 법(마음현상)을 지각함에 그 표상을 취하지 않으며, 그 세세한 부분상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마노의 기능[意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보호하고,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감각기능들의 문을 잘 보호한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음식에 적당량을 아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음식을 수용하나니 이것은 즐김이나 사치로나 장식이나 치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몸이 살아있는 한 그 몸을 유지하고 해를 입지 않도록 하고 청정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예전의 불편했던 경험을 제거하고 새로운 고통을 초래하지 않겠다. 이것으로 나는 허물없이 안온하게 살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음식에서 적당량을 안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깨어있음에 전념하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낮 동안에는 경행하거나 앉아서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밤의 초경에는 경행하거나 앉아서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한밤중에는 발에 발을 포개어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면서[正念正知] 일어날 시간을 인식하여 마음에 집중하여 오른쪽 옆구리로 사자처럼 눕는다. 밤의 삼경에는 일어나서 경행하거나 앉아서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깨어있음에 전념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법을 구족한 비구는 바른 닦음을 행하는 자이니 그는 번뇌들을 소멸하기 위한 중요한 기초를 갖추었다.”


자기를 해침 경(A3:17)

Attavyāpādha-sutta  

1. “비구들이여, 세 가지는 자기도 해치고 남도 해치고 둘 모두를 해친다. 어떤 것이 셋인가?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 

말로 짓는 나쁜 행위, 

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위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는 자기도 해치고 남도 해치고 둘 모두를 해친다.”


2. “비구들이여, 세 가지는 자기도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고 둘 모두 해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셋인가?


몸으로 짓는 좋은 행위, 

말로 짓는 좋은 행위, 

마음으로 짓는 좋은 행위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는 자기도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고 둘 모두 해치지 않는다.”


신의 세계 경(A3:18)

Devaloka-sutta  

1. “비구들이여, 만약 외도 유행승들이 ‘도반들이여, 그대들은 천상세계에 태어나기 위해 사문 고따마 아래서 청정범행을 닦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당혹스럽고 창피스럽고 혐오스럽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2. “비구들이여, 만약 그대들이 신들의 수명에 대해 당혹스러워하고 창피스러워하고 혐오스러워하고, 신들의 용모와 신들의 행복과 신들의 명성과 신들의 지배력에 대해 당혹스러워하고 창피스러워하고 혐오스러워한다면 먼저 그대들의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 말로 짓는 나쁜 행위, 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위에 대해 당혹스러워해야 하고 창피스러워해야 하고 혐오스러워해야 한다.”


상인 경1(A3:19)

Pāpaṇika-sutta  

1. “비구들이여, 세 가지 특징을 가진 상인은 아직 얻지 못한 재산은 얻을 수 없고 이미 얻은 재산은 늘릴 수 없다. 어떤 것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상인이 새벽에도 성실히 일을 돌보지 않고, 

낮 동안에도 성실히 일을 돌보지 않고, 

저녁에도 성실히 일을 돌보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특징을 가진 상인은 아직 얻지 못한 재산은 얻을 수 없고 이미 얻은 재산은 늘릴 수 없다."


2.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세 가지 특징을 가진 비구는 아직 얻지 못한 유익한 법[善法]은 얻을 수 없고 이미 얻은 유익한 법은 늘릴 수 없다. 어떤 것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새벽에도 성실히 삼매의 표상에 집중하지 않고, 

낮 동안에도 성실히 삼매의 표상에 집중하지 않고, 

저녁에도 성실히 삼매의 표상에 집중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특징을 가진 비구는 아직 얻지 못한 유익한 법은 얻을 수 없고 이미 얻은 유익한 법은 늘릴 수 없다.”


3. “비구들이여, 세 가지 특징을 가진 상인은 아직 얻지 못한 재산은 얻을 수 있고, 이미 얻은 재산은 늘릴 수 있다. 어떤 것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상인이 새벽에도 성실히 일을 돌보고, 

낮 동안에도 성실히 일을 돌보고, 

저녁에도 성실히 일을 돌본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특징을 가진 상인은 아직 얻지 못한 재산은 얻을 수 있고 이미 얻은 재산은 늘릴 수 있다."


4.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세 가지 특징을 가진 비구는 아직 얻지 못한 유익한 법은 얻을 수 있고 이미 얻은 유익한 법은 늘릴 수 있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새벽에도 성실히 삼매의 표상에 집중하고, 

낮 동안에도 성실히 삼매의 표상에 집중하고, 

저녁에도 성실히 삼매의 표상에 집중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특징을 가진 비구는 아직 얻지 못한 유익한 법은 얻을 수 있고 이미 얻은 유익한 법은 늘릴 수 있다.”


상인 경2(A3:20)  

1. “비구들이여, 세 가지 특징을 가진 상인은 머지않아 재산이 많게 되고 가득하게 된다. 어떤 것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상인이 지혜의 눈을 가졌고 부지런하고 후원자를 가진다."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상인이 지혜의 눈을 가졌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상인이 상품을 안다. 이 상품을 이렇게 사서 이렇게 팔면 자본은 이만큼 들 것이고 수익은 이만큼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상인은 지혜의 눈을 가졌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상인이 부지런한가?

비구들이여, 여기 상인이 상품을 사고파는데 능숙하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상인은 부지런하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상인이 후원자를 가지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많은 재산과 재물을 가진 부자인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이 상인은 [지혜의] 눈을 가졌고 부지런하고 처자를 부양하는 능력이 있고 우리에게 때때로 이윤을 남겨줄 것이다.’라고 안다. 그러므로 그들은 ‘상인이여, 이 상품을 가져가서 돈을 벌어 처자를 부양하고 우리에게도 때때로 이윤을 주시오.’라고 말하면서 그에게 상품을 넘겨준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상인이 후원자를 가진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특징을 가진 상인은 머지않아 재산이 많게 되고 가득하게 된다.”


3.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세 가지를 가진 비구도 머지않아 거룩한 선법을 많이 얻는다. 어떤 것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의 눈을 가졌고 부지런하고 후원자를 가진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지혜의 눈을 가졌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바른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지혜의 눈을 가진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부지런한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해로운 법[不善法]을 버리고 유익한 법[善法]을 일으키기 위해 열심히 정진하면서 머문다. 그는 굳세고 분투하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짐을 내팽개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부지런하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후원자를 가지는가?

비구들이여, 많이 배웠고 전승된 가르침에 능통하고 법(경장)을 호지하고 율[장]을 호지하고 논모(論母, 마띠까)를 호지하는 비구들이 있다. 비구가 그들에게 다가가서 묻고 질문한다. ‘존자들이시여, 이것은 어떻게 되며 이 뜻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그에게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고 명확하지 않은 것을 명확하게 해주고 여러 가지 의심되는 법에 대해서 의심을 없애준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후원자를 가진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를 가진 비구는 머지않아 거룩한 선법을 많이 얻는다.”


제2장 마차공 품이 끝났다.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945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