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

[스크랩] 68. 微風吹幽松 近聽聲愈好 - 산들바람 소나무에 불어와…

수선님 2018. 4. 15. 12:39


산들바람 소나무에 불아와 가까이 들으니 그 소리 더 좋아라 - 한산시(寒山詩)


이 구절 앞에는 "몸 평안히 할 곳을 얻고 싶다면 한산이 제일이라네[欲得安身處 寒山可長保]"하고 읊은 구절이 있습니다. 다시 풀이하면 "몸과 마음의 안식을 얻으려 한다면 이곳 한산이야말로 으뜸"이라는 뜻입니다. '한산(寒山)'은 땅이름인 동시에 사람이름인데, 여기서는 순수한 마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순수한 마음을 응시하고 개발해야 비로소 몸과 마음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구절 다음으로 "산들바람 소나무에 불어와, 가까이 들으니 그 소리 더 좋아라[微風吹幽松 近聽聲愈好]"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산이라면 종요하고 나무 그늘도 있어서 서늘한 곳으로 상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좋은 입지조건도 '추울 한(寒)'이라는 글자로 부정하여, 추운 산이라는 뜻의 '한산(寒山)'이란 이름으로 산에 대한 우리들의 상대적인 지식을 비웁니다. 여기에 더해 '미풍취유송'이라 읊고 있습니다. '유(幽)'는 감각으로는 느낄 수 없는 존재를 뜻합니다. 감각의 대상이 도지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소나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겠습니다.


이 일련의 시는 「한산시」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며, 언너나 글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깊은 뜻이 있다고 하여 옛날부터 선 수행자들이 깊이 음미해 왔습니다.


'산들바람 소나무에 불어와 가까이 들으니 그 소리 더 좋아라"는, 시를 읊는 나와 소나무와 미풍이 하나로 융화된 경지를 표현합니다.


듣는 자와 즐리는 자는 엄연히 주체와 객체로 나뉘어 있습니다. 하나가 되어도 소나무는 소나무요, 나는 나입니다. 소나무와 나는 동일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서로 대립하거나 반발하지 않는 ㅅㅔ계를 동양인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자아를 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자아를 다 비운 것이 바로 '유(幽)'입니다.


여기에 다시 다음 구절이 이어집니다.


"소나무 아래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있어, 소리내어 노자를 읽고 있네. 십년이나 돌아가지 않고 있으니 온 길조차 잊어버렸네[下有斑白人 暔暔讀黃老 十年歸不得 忘却來時道]."


마음의 고향 한산에 머물러 계속해서 도를 깨치고 있었으므로, 깨달음마저도 잊어버릴 수가 있었습니다. '집착하지 않음'조차 비운 이 경지를 "온 길조차 잊어버렸네[忘却來時道]"라 읊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순수의지입니다.


松原泰道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