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o Buddhassa!!!
상좌부,설일체유부,대승에서의
선정의 비교연구
월뽈라 라훌라
○ 上座部, 說一切有部, 大乘에서 禪定(dhyana)의 비교 연구
숫따삐타까Suttapitaka(經藏)의 빨리 니까야Nikaya에서 우리는 네 '형상의 영역의 靜慮(rupavacara-jhana)'(色界四禪)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비담마-삐타까Abhidhamma-pitaka>>(論藏)의 빨리 문헌에는 한편에서 四禪을, 다른 한편에선 五禪을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담마상가니Dhammasangani>>(法集論)는 경(sutta)들에 나오는 四禪을 먼저 열거한 다음 이것을 '네 가지 방식'(catukka-naya)이라 하고, 다시 다른 체계에 의서 五禪을 제시하고 이를 '다섯 가지 방식'(pancaka-naya)이라고 불렀다. <<비방가Vibhan ga>>(分別論) 또한 보통 그렇듯 먼저 四禪을 제시한 다음 이를 '經에 의한 분별'(suttanta-bhajaniya)라고 부르고, 다시 五禪을 제시하면서 이를 '阿毘達磨에 의한 분별'(Abhidhamma-bhajaniya)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나 <<아비담맛타상가하Abhidhammattha sangaha>>(攝阿毘達磨義論),<<아비담마바따라Abhidhammamavatara>>(入阿毘達磨論)와 같은 후대 아비달마 빨리 문헌들은 단지 五禪만 말할 뿐, '네 방식과 다섯 방식' 또는 '經 그리고 아비달마에 의한 분별' 같은 구분을 완전히 무시했다. 그러나 4세기 說一切有部의 아비달마 문헌인 바수반두 Vasubandhu(世親)의 <<阿毘達磨俱舍論>>(Abhidharma-kosa)은 물론 같은 세기의 순전히 大乘 아비달마 문헌인 아상가Asanga(無著)의 <<阿毘達磨
集論>>(Abhidharma-samuccaya)에는 단지 네 色界禪(rupavacara-dhyana) 만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여덟 가지의 도달'(attha-samapatti;八定)만을 들어보았다. 즉, 네 '형상의 영역의 靜慮'(rupavacara-jhana)(色界四禪)와 네 '형상이 없는 영역의 정려'(arupavacara-jhana)(無色界四禪)를 합한 八定을 들을 뿐 결코 色界五禪과 無色界四禪을 포함한 九定을 들어본 적이 없다. <<디가-니까야Digha-nikaya>>의 <<마하빠리닙바나-경Mahaparinibbana-sutta>>(大般涅槃經)은 부처님이 반열반에 들기 바로 직전에 色界四禪과 無色界四禪을 이루었으며, 또한 滅想定(sannavedayitanirodhasamapatti:지각과 감각이 그친 定)을 이루었다고 말하고 있다. 색계에 第五禪이 있었다면 부처님은 물론 그때 그것을 이루었을 것이고 그 사실이 여기에 언급되었을 것이다. 부처님이 色界의 第五禪을 이루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면 거기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빨리 원전의 經에는 나오지 않은 色界五禪의 목록이 아비달마에서 후대에 발전되었음이 명백하다. 그리고 <<비방가>>에서 '경전에 의한 분별'과 '아비달마에 의한 분별'이라는 용어는 바로 이를 가리키는 것 같다. 원전의 경에는 그러한 구분이 없다. 후대의 아비달마 빨리문헌은 정려의 요소, 구성원, 성분(jhahanga;禪支)들의 서로 다른 조합 때문에 五禪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문헌들에 의하면 第一禪은 다섯 개의 요소로 구성되었는데 그것들을 단계적으로 하나씩 제거하면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정려를 얻게 되며, 반면에 第五禪은 '행복'(sukha;樂)한 상태에서 '평정'(upekkha;舍)을 얻는다. 그 전체적인 구조는 다음과 같다.
靜慮 구성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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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一禪 vitakka vicara piti sukha ekaggata
추론(尋) 성찰(伺) 기쁨(喜) 행복(樂) 정신통일(一境性)
第二禪 ............ vicara piti sukha ekaggata
第三禪 ...................... piti sukha ekaggata
第四禪 ................................ sukha ekaggata
第五禪 ................................ upekkha ekaggata
평정(舍)
그러나 上座部, 說一切有部 그리고 大乘은 禪定(dhyana)에 대하여, 빨리 원전의 경에 얼마나 일치하고 있는가? 빨리 원전의 경은 보편적으로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근거 있는 기록으로 인정된다. 그래서 本稿에서는 가장, 그리고 궁극적 권위가 있는 근거로 삼는다.빨리 원전에서 第一禪을 기술한 전형적인 공식을 보면 다음과 같다.
vivica'eva ka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m savicaram vivekajam pitisukham pathamajjhanam.(감각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서, 불건전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서, 첫 정려(황홀경)에 이른다. 이것은 초연함(해방)을 낳는 것이다. 추론, 성찰, 기쁨, 행복을 얻는 것이다)
이 형식은 단지 第一禪을 묘사했을 뿐이며, 그것은 요소나 성분을 나열하여 분석하지 않았다. 구성 요소를 분석하고 나열한 것은 아비달마의 문헌이다. 그래서 <<비방가>>에 의하면 第一禪은 '추론'(vitakka;尋), '성찰'(vicara;伺), '기쁨'(piti;喜), '행복'(sukha;樂), 一境性(ekaggata)의 다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阿毘達磨集論>>에 의하면 '第一禪은 다섯 요소를 가진다. 그 다섯 요소는 추론, 성찰, 기쁨, 행복, 심일경성 이다.' <<阿毘達磨俱舍論>>에 의하면 '第一禪에는 추론, 성찰, 기쁨, 행복 그리고 정신집중이 있다.' <<아비담맛타상가하>>에 의하면 '第一禪은 추론, 성찰, 기쁨, 행복 그리고 심일경성으로 구성된다.'
모든 문헌들이 第一禪이 다섯개의 요소로 구성되었다는 것에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나 위에서 인용했던 원전의 문장에는 네 가지 요소, 즉 추론, 성찰, 기쁨, 행복은 발견되지만 심일경성(citt'ekaggata)이나 '정신집중'(samadhi;三昧)에 대한 언급은 없다. 붓다고사Buddhaghasosa는 이러한 사실을 명백히 주지시키는데, 그는 <<비숫디막가Visuddhimagga>> (淸淨道論)에서 비록 心一境性이 원래의 구절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비방가>>에서 언급되기 때문에 이것을 第一禪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선정은 心一境性을 가져야 하는 것이니 그래서 자유로이 추가했다는 입장을 취한다 하더라도, 원전의 경 구절에는 第一禪의 요소에 심일경성을 포함시킬 만한 근거가 없다. 어떤 유형의 생각을 하더라도 몇몇 정신활동에다 정신집중이 어느 정도 덧붙여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론, 즉 <<아비담맛타상가하>>에서 一境性을 모든 사고에 공통적인(sabbacittasadharana) 정신적 활동(cetasika)의 하나로 놓은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선정에 대해 말 할 때 한 요소로서 心一境性을 언급하는 것이 반드시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접촉'(passa;觸) 같은 다른 것도 언급될 수 있다. 第一禪에는 추론(vitakka)과 성찰(vicara)이 있다. 그런데 진정한 심일경성이 추론이나 성찰과 함께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착은 추론과 성찰은 '마음이 재잘대는 것'(manojalpa)이라 말했다. 추론은 무엇인가를 탐구할 때 마음이 재잘대는 것(paryesaka manojalpa)이며, 성찰은 무엇을 돌이켜보거나 반성할 때 마음이 재잘대는 것(pratyaveksaka manojalpa)이다. <<瑜伽師地論>>(Vijnaptimatrtasiddhi)에서 '탐구'란 '이것은 무엇인가?'하고 조사하는 것이고, '돌이켜 봄' 또는 '성찰'이란 이미 알려진 것을 '그것은 이것이다'라고 주목하거나 관찰하는 것이라 정의하였다. <<비숫디막가>>는 '추론'(vitakka)은 '탐구'하거나 '조사'(uhana)하는 것, 그리고 '성찰'(vicara)은 '따라서 움직이는' 또는 '둘레를 움직이는'(anusancarana) 것이라 정의하였다.
이 모든 정의들에서 '추론'(vitakka)과 '성찰'(vicara)은 둘 다 마음의 움직임이나 활동을 가리킨다. <<비숫디막가>> 자체가 '추론'(vitakka)과 '성찰'(vicara)에 의해 야기된 혼란 때문에 第一禪은 파도에 의해 흔들리는 물과 같다고 인정한다. 아무리 혼란이 미미할지라도 이러한 상태에서는 진정한 심일경성이 불가능하다. <<아비담마-삐타까>>(論藏)의 문헌들과 후대의 저작, <<阿毘達磨集論>>, <<阿毘達磨俱舍論>>, <<아비담맛타상가하>> 같은 문헌들을 제외하고는 심일경성이 第一禪에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빨리 경전(sutta)들의 원래 구절에는 그렇게 나타내는 바가 없다. 진정한 심일경성이나 집중은 第二禪에서 나타나며 이 단계에서는 '추론'과 '성찰'이 억제된다. 이것은 公式에서의 말에 보면 명확하다. 즉, '정신의 통일'(cetaso ekodibhavam) 그리고 '집중이 생김'(samadhijam), 第二禪을 이렇게 묘사한다. 第二禪의 公式에서 '집중이 생김'(samadhijam)에 대비해서 第一禪에서는 '초연 또는 자유가 생김'(vivekajam)가 있다. 第一禪에 '집중이 생김'(samadhijam)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초연 또는 자유가 생김'(vivekajam)가 쓰인 것이 명백하다.
여기서 第二禪을 묘사한 公式을 살펴보자.
vitakkavicaranam vupasama ajjhattam sampasadanam cetaso ekodibhavam avitakkham avicaram samadhjam pitisukham dutiyajjhanam.(추론과 성찰을 억제(제거)하여 두 번째 정려를 얻는다. 그것은 안으로 고요하다. 마음이 통일된다. 추론과 성찰없이 집중이 생겨나서,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다.)
이 역시 第二禪을 묘사했을 뿐 구성요소를 열거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방가>>는 이렇게 말한다. 經에 의하면 第二禪이 네 가지 요소, 즉 고요함(sampasada), 기쁨(piti), 행복(sukha) 그리고 心一境性(cittassa ekaggata)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阿毘達磨의 방식에 의하면, 그것이 세 가지 요소 즉, 기쁨(piti), 행복(sukha), 一境性(ekaggata)으로 구성되거나, 네 가지 요소, 즉 성찰(vicara), 기쁨(piti), 행복(sukha), 一境性(ekaggata)로 구성된다고 한다.
여기서 같은 정려가 어떻게 세 개 그리고 네 개의 요소로 구성될 수 있는 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떤 第二禪은 경에서 네 요소로 구성되어있고, 다른 第二禪은 아비달마에서 셋에다가 ⅓짜리 하나를 더해서 네 개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경과 아비달마의 구분은 문자적인 작업이고, 선정은 그러한 고려와는 무관한 정신적인 문제이다. 수행자가 어떤 때는 經에 나온 선정에 이르고, 또 어떤 때는 아비달마에 나온 선정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모든 문자적인 구분과는 관계없이 선정에 이른다. 선정에 대해서 누가 어찌 설명하든 간에, 第二禪은 똑같을 뿐이다. 그 본래의 특질이 왔다갔다 할 수는 없다.
만약 第二禪이 어떤 한 방식으로 네 요소의 집합으로 구성되었거나, 다른 방식으로 다른 네 요소의 집합로 구성되었거나, 또다른 방식으로 세 요소의 집합으로 구성되었다면 그것이 하나가 아니라 세 개의 다른 선정이라고 인정되어야 한다. 왜? 어떤 선정이란 다만, 몇 개의 정신-신체적 성질들이 일어나는 것을 주어진 조합으로 가리키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들의 조합과 다르게 선정의 조합이라고 취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 선정의 조합이 추가하거나, 빼거나, 치환해서 바뀐다면, 특정한 선정은 그 성격이 변하거나 다른 것이 되고 만다.
언어 표현 상의 편의를 위하여 우리는 보통 이러저러한 선정이 여러 요소들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이러저러한 선정이란 이러저러한 요소들의 조합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비방가>>는 그 자체에 요소들의 목록을 나열해서만 선정을 정의하였다. 그래서 예를 들면 第一禪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그 정려는 추론, 성찰, 기쁨, 행복, 심일경성을 뜻한다.' <<비숫디막가>>는 이 점을 더욱 명확히 하고 있다. '이들 다섯(성질들)이 일어날 때 그 정려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그 정려의 다섯 구성요소라 불린다. 그리하여 그것들로 구성되는, 정려라 부르는 다른 것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된다.' <<비숫디막가>>는 이렇게 결론 짓는다. 비록 <<비방가>>는 第二禪이 經에 있는 것들 중에 하나인 '고요함'(sampasada)이 포함된 네 요소로 구성된다고 말하지만, 아비달마 체계에 따른다면 '고요함'(sampasada)을 빼버린 세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결론 짓는다. 그러나 아비달마 문헌과 주석서들 보다는 원전의 經의 구절을 권위있게 받아들이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다. 第二禪을 기술할 때 (위에 있는) 원래의 公式에서 몇 개의 요소를 볼 수 있는가?
다음과 같은 말들, '추론과 성찰의 억제(제거)에 의하여'(vitakka-vicaranam vupasama), 그리고 '추론과 성찰이 없이'(avitakkham avicaram)는 추론과 성찰이 第一禪에는 있었지만 여기서는 없음을 가리킨다. 두 번때 정려에 있는 것은 '내면의 고요함'(ajjhattam sampasadanam), '마음의 통일'(cetaso ekodibhavam), '집중이 생김'(samadhjam), '기쁨과 행복'(pitisukham)등으로 표현된다.
이 용어들에서 본다면, 第二禪으로서 세 요소보다 네 요소, 즉 '고요함'(sampasada), '기쁨'(piti), '행복'(sukha), 心一境性(cittassa ekaggata)을 인정하게 된다. 'ajjhattam sampasadanam'은 '고요함'(sampasada)을 가리키며, 'cetaso ekodibhavam'과 'samadhjam'은 心一境性(citt'ekaggata)을 정의한다. 'piti'와 'sukha'는 분명히 '기쁨'과 '즐거움'이다. <<아비달마집론>>은 經의 원문에 충실히 따르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第二禪은 네 요소로 구성된다. 즉, '내면의 고요함'(adhyatmasamprasada), '기쁨'(priti), '행복'(sukha) 그리고 心一境性(cittaikagrata)이다.' <<아비달마구사론>> 또한 第二禪으로서 위의 네 요소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 第三禪으로 넘어가서 빨리 원전의 經 구절을 보자.
pitya ca viraga upekkako ca viharati, sato ca sampajano, sukhan ca kayena patisamvedeti, yam tam ariya acikkhanti 'upekkhako satima sukhavihari'ti tatiyajjhanam.(기쁨에도 초연하여, 평정에 (머무르고), 깨어있고 알아차리면서, 몸소 행복함을 누린다. 그리고 第三禪을 얻는다. 거룩한 이는 이를 "평정, 깨어있음 그리고 행복에 머무는 것"이라 부른다.)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第一禪, 第二禪의 정의보다 명확하지 않다.
이에 대해 <<비방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전에 의하면 第三禪에는 다섯 요소가 있는데, '평정'(upekkha), '깨어있음'(sati;念), '알아차림'(sampajanna;正知), '행복'(sukha) 그리고 心一境性(cittassekaggata)이다. 아비달마에 의하면 두 요소, 즉 '행복'(sukha)과 心一境性(cittassekaggata)이 있다. <<비숫디막가>>는 먼저, 아비달마의 방식이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결정해 버린다. <<아비달마집론>>은 역시 원전에 충실히 따르면서, 第三禪이 다섯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말한다. 즉, '평정'(upeksa), '깨어있음'(smrti), '알아차림'(samprajanya), '행복'(sukha) 그리고 심일경성(cittaikagrata)이다. <<아비달마구사론>>은 第三禪이 다섯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평정'(upeksa), '깨어있음'(smrti), '지혜'(prajna), '행복'(sukha) 그리고 '안정'(sthiti)이다. 여기서는 '알아차림'(samprajanya) 대신에 '지혜'(prajna;般若), 심일경성(cittaikagrata) 대신에 '안정(sthiti)'을 대치시킨 것만 다르다. <<비방가>>는 'sampajanna'(산.samprajanya)라는 용어는 곧 'panna'(산.prajna)고, 'samadhi'(三昧)라는 용어는 곧 '마음의 안정'(cittassa thiti)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정신통일'(cetaso ekodibhavam)은 '마음의 안정'(cittassa thiti)이라 설명한다. 그래서 '알아차림'(samprajanya)을 '지혜'(prajna)로, 심일경성(cittaikagrata)을 '안정'(sthiti)으로 대체시킨 것은 아주 타당하다. (여기서,<<阿毘達磨俱舍論頌>>(Abhidharmakosakarika)이 운문으로 쓰여 있듯이,이 짧은 상당어는 운율을 맞추기 위해 필수적임을 알아두어야 한다.)원전의 經의 公式에 의하면 第三禪에 몇 개의 요소가 있을까? '기쁨으로부터도 초연함'(pitiya ca viraga)이란 말은 第二禪에 있었던 기쁨이여기서는 소멸되었음을 보여준다. 그 다음에 나오는 용어들은 第三禪을구성하는 요소들을 가리킨다. '평정에 머무름'(upekkhako ca viharati)이라는 말에 의하여 '평정'(upekkhako)이 한 구성요소임이 분명해 진다. '깨어있고 알아차리는'(sato ca sampajano)이란 말이 '깨어있음'(sati), '알아차림'(sampaianna)을 제공한다. '그리고 몸소 행복을 누린다'(sukhan ca kayena patisamvedeti)에서 '행복'(sukha) 또한 구성요소의 하나로 포함시켜야 한다. 그리고 다시 세 요소, '평정'(upekkha), '깨어있음'(sati), '행복'(sukha)이 다음 구절에서 반복되고 있다. 즉, '거룩한 이는 이를 평정, 깨어있음 그리고 행복에 머무는 것이라 부른다.'(yam tam ariya acikkhanti upekkhako satima sukhavihariti) 결국 원전의 구절에는 네 요소, 즉 '평정'(upekkha), '깨어있음'(sati), '알아차림'(sampajanna), '행복'(sukha)이 第三禪에 있는 것이다. 이 구절에는 심일경성을 가리키는 특정한 단어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第二禪에서 언급되었기 때문에, 일경성(ekaggata)은 第三禪의 요소로 합당하게 취해질 수 있다.
그래서 빨리 원전에는 第三禪이 다섯 요소로 구성되었다. 즉, '평정'(upekkha), '깨어있음'(sati), '알아차림'(sampajanna), '행복'(sukha), 一境性(ekaggata)인데, 이것은 <<아비달마집론>>과 <<아비달마구사론>>에서 언급한 바와 완전히 일치한다.
그러면 경에서 第四禪을 묘사한 내용을 보자. '행복과 괴로움을 여의어서, 기쁨과 슬픔은 이미 사라져서, 第四禪을 얻게 된다. 이것은 행복하지도 괴롭지도 않으며, 평정과 깨어있음의 순수이다.'(sukhassa ca pahana dukkhassa ca pahana pubbe'va somanassad omanassanam atthangama adukkham asukham upekkhasatiparisuddhim catuttha jjhanam.) 이것도 第四禪을 묘사했을 뿐이고 그 요소들을 열거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방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전에 의하면 이것은 세 요소, 즉 '평정'(upekkha), '깨어있음'(sati), 심일경성(cittekaggata)으로 구성되었으며, 아비달마에 의하면 두 요소, 즉 '평정'(upekkha), '깨어있음'(sati)으로 구성되었다. <<비방가>>는 다섯 가지 정려를 고려하는 데, 第四禪이 '행복'(sukha)과 일경성(ekaggata)으로 구성되어 있고, 第五禪은 '평정'(upekkha)과 일경성(ekaggata)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수디막가>>는 第四禪이 '평정'(upekkha)과 일경성(ekaggata)의 두 요소를 가진다고 결정했다. <<아비달마집론>>과 <<아비달마구사론>>은 둘 다 第四禪이 네 요소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즉, '평정의 순수'(upeksaparisuddhi), '깨어있음의 순수'(smrtiparisuddhi), '고통도 행복도 느끼지 않음'(aduhkha-asukhavedana), '심일경성'(cittaikagrata)으로 구성된다.
당연히 원전의 經의 구절에서 第四禪의 요소를 몇 개나 볼 수 있을까 하고 묻게 된다. '행복과 괴로움을 여의어서 . . . 기쁨과 슬픔은 이미 사라져서'(sukhassa ca pahana dukkhassa ca pahana . . . somanassadomanassanam atthangama) 이 말에서 미루어보아 第四禪에는 행복, 고통, 기쁨, 슬픔의 느낌이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어떤 아비달마 문헌에서 주장하는 것 같은, 第四禪에 '행복'(sukha)이 있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행복하지도 괴롭지도 않으며, 평정하고 깨어있음의 순수이다.'(adukkham asukham upekkhasatiparisuddhim)라는 말에서 구성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비방가>>는 第四禪에 '행복하지도 괴롭지도 않으며'를 요소로써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상가와 바수반두는 둘 다 이를 그 요소로 취했다.
다음에 'upekkhasatiparisuddhim'은 분석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이것이 '평정의 순수와 깨어있음의 순수'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평정하여 일어나는 깨어있음의 순수'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비수디막가>>는 <<비방가>>에서 설명한 것 처럼 후자를 받아들였다. 즉, '깨어있음은 평정에 의해서 열리고, 깨끗해지고, 정화된다. 그러므로 '평정에 의한 깨어있음의 순수'(upekkhasatiparisuddhi)라 부른다.' 이것은 그 표현이 평정하여 일어나는 깨어있음의 순수를 의미하지, 평정의 순수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런데도 <<비방가>>는 위에서 보았듯이 평정을 第四禪의 요소에 포함시킨다.
아상가와 바수반두는 둘 다 그 표현이 '평정의 순수'(upeksaparisuddhi)와 '깨어있음의 순수'(smrtiparisuddhi)를 정의한다고 확신하였다. 그서 그 둘을 第四禪의 요소로 하였다.
대승 아비달마와 설일체유부 아비달마에 나오는 禪定(dhyana)에 대한 교설이 상좌부 아비달마, 특히 후대의 상좌부 아비달마 문헌들보다 빨리 원전 經(sutta)에 더 부합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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