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은 금강경에 나와 있는 아주 중요한 부처님의 설법이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이 말씀도 제대로 알아야지,
잘못 알면 십만팔천리 샛길로 빠져버리기 쉽다.
각각의 뜻을 살펴보자.
凡所有相
범소유상
<무릇 있는 바의 상>이란 뜻이다.
있다는 것은 인연화합으로 만들어져 생겨난 것들을 말한다.
상[相]은 단순히 형상/모습만을 뜻하는게 아니다.
상[相]의 의미는 특징/특성의 개념도 포함한다.
그러므로 아주 광범위한 것이다. 즉 존재하는 그 모든게 다 상[相]이다.
눈으로 보여지는 것도 모습이라는 상이고
귀에 들려지는 것도 소리라는 상이고,
오온에서는 색은 막혀 걸린다는게 상, 즉 특징이고
수는 받는다는게 특징이고,
행은 취한다는게 특징이며,
행은 짓는다는게 특징이며,
식은 안다는게 특징이다.
이런게 모두 다 相이다.
모든 것에는 모습/특징이 있다.
그러므로 범소유상[凡所有相]이라는 뜻은
<무릇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의 특성/특징>이라는 의미다.
皆是虛妄
개시허망
모든 것은 곧 허망하다는 뜻이다.
무엇이 허망하냐면, 범소유상이다.
[凡所有相] 무릇 존재하는 모든 것들 및 그것들의 특성/특징은
[皆是虛妄] 모두 다 허망하다.
허망하다는 뜻을 잘 이해해야 한다.
허망하다는 진실하지 않다는 뜻이다.
진실하지 않다는 뜻은 거짓이란 의미다.
가짜이며, 거짓이다.
이 의미다.
왜 가짜이며 거짓인가?
이걸 알아야 한다.
진짜는 진실하다.
진실하다면 영원히 변화가 없어야 한다.
변하는 것은 진실함이 없다.
즉 변하는 것은 모조리 다 가짜이기에 허망하다.
[凡所有相] 무릇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의 특징/특성/모습은
모조리 다 변하기에....
[皆是虛妄] 죄다 싸그리 진짜가 아니고 가짜이다...라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깨달음이 없는 중생들은
보여지고 들려지고 느껴지는 그 모든 것들을 진짜라고 여긴다.
진짜라고 여기기 때문에 집착한다.
만약 가짜라는 걸 명확히 안다면 집착하라고 해도 집착할 수가 없다.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은
모습이 있는 것이든 모습이 없고 특징/특성만이 있는 것이든간에
모조리 다 변한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존재하려면 변해야만 한다.
왜냐면 인연화합으로 생겨났기에 변할 수 밖에 없다.
지수화풍 사대에서
지대의 특성은 딱딱한 것인데 이 단단한 특성도 영원한게 아니고 변한다.
쇠는 단단한 지대의 특성을 지녔는데,
열을 가하면 녹아서 물의 특성을 지닌 수대로 변한다.
또한 물의 특성은 축축한 수대의 특성을 지녔지만,
물을 얼리면 단단한 지대의 특성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오온에서 정신에 해당하는 수/상/행/식도 끊임없이 변해간다.
이렇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조건에 의해서 변해간다.
변해가는 것들은 진짜가 아니다.
우리는 이걸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변해가는 것은 가짜다.
진짜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은 진짜가 없다.
싸그리 거짓이다.
남녀의 모습/특성도 또한 가짜다.
왜냐면 영원하게 그런 특성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생들은 수없이 많은 윤회를 끝없이 이어가는데, 성별을 바꾸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즉 여자에서 남자로 윤회하기는 극도로 힘들다.
그러나 여자에서 남자로 윤회가 가능하다.
만약 이렇게 여자에서 남자로 윤회하고,
그 반대로 남자에서 여자로 윤회한다면
남자/여자라는 고정된 특성/특징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뭐가 남자고 뭐가 여잔가?
그저 잠시 여자였고, 또 남자로 변하니...
남자 여라자는 고정불변의 영원한 특성/특징은 아예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의 모습, 여자의 모습은 진실이 아닌 거짓이다.
또한 남자건 여자건 젊을 때는 이쁘고 잘생겼지만,
늙으면 추하고 못생겨지는데....
또 죽으면 뼈다구만 남아버리는데,
또 뼈조차 다 사라져 아무것도 안 남는데,
거기에 무슨 남자 여자의 영원한 특징이 있는가?
물론 이 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이 다 마찬가지다.
변하는 것들엔 고정된 특징/특성/모습이라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다 가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은 인연화합에 의해서 생겨났으므로, 변할 수 밖에 없다.
변하는 것들은 모조리 진짜가 아닌 거짓이다.
싸그리 거짓이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중생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해서,
이런 허망한 것들을 진짜로 여기고 집착하면서 사니까 괴로운 것이다.
결코 못잡는 것을 붙잡으려는게 바로 욕망이다.
若見諸相非相
약견제상비상
[若見] 만약 본다면,
[諸相] 모든 상이
[非相] 상이 아님을.....
이 말씀의 뜻은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이 그 자체만의 고유한 영원한 상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본다면>이라는 의미다.
[非相]의 의미는 고유함을 지닌 진실한 상이 아니다라는 의미다.
그 모든 것들은 변하니 어찌 진실한 상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若見諸相非相의 의미는
만약 모든 것들의 모습/특성/특징들이 진실한 상이 아님을 본다면...이라는 뜻이다.
卽見如來
즉견여래
곧 여래를 본다는 의미다.
여기서의 여래[如來]란,
인격적인 모습의 부처님을 뜻하는게 아니고, 불성[佛性]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곧 空을 본다는 걸 뜻한다.
불성[佛性]이 곧 空이다.
空이 곧 반야바라밀이고,
반야바라밀이 부처님의 어머니...즉 불모[佛母]이다.
즉견여래[卽見如來]란 용어는
실제로 우리가 사람 만나듯이, 부처님을 직접 대면한다는 뜻이 아니고,
내면에서 불성인 空을 본다는 걸 의미한다.
空은 볼 수 있는가?
못 본다.
공한데 볼게 뭐가 있겠는가?
당연히 없다.
보여진다면 그것은 어떠한 相인데, 그게 空인가?
그리고 그 모든 相은 죄다 가짜이다.
空은 볼 수없는데 왜 즉견여래[卽見如來]라는 용어를 쓰셨는가?
이걸 정말 잘 이해해야 한다.
견성[見性]도 역시 마찬가지다.
성품 자체는 공하여 보여지는게 없다.
그러나 역시 본다라는 용어가 들어가 있다.
왜 그런가?
왜냐면 진제의 방식을 속제의 방식으로 표현하셨기 때문이다.
이걸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진제는 공/열반/반야바라밀/진여과 같은 의미다.
이 진제는 말과 언어로써 절대 표현할 수가 없다. 왜냐면 특징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은 볼래야 볼 수도 없고, 봐봐야 보여지는 것도 없다.
그러나 "본다"라는 용어를 쓰신 것은
진제의 방식을 속제의 방식을 빌어서 쓰셨기 때문이다.
왜냐면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생을 이해시키려면, 속제의 방법을 써서 설명해야만 되기 때문이다.
성품 자체가 공하다고 해서 볼게 없으므로 불견성[不見性]이라고 말한다면,
그 어떤 중생이 마음을 들여다 볼 생각을 하겠는가?
중생들은 "볼게 없으므로 보지 말자" 이렇게 생각해버리고 나자빠져 버린다.
그러므로 보여지지 않고 보여지는게 없지만,
중생들을 위해서 속제의 방식을 빌어서 견성[見性]이라고 표현하신 것이고,
즉견여래[卽見如來]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즉견여래[卽見如來]에서 如來란 空을 의미한다.
즉 공을 본다...라는 의미인데,
이 뜻의 본래 의미는 아무것도 보지 않음을 뜻한다.
공하여 보여질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진제를 다만 중생을 위해 속제의 방식으로 "본다"라고 표현하신 것이다.
본다...라고 해야 들여다 볼게 아닌가?
들여다 봐야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그 모든 것이 실체가 없어 다 허망하여 거짓이라면, 볼게 어디있겠는가?
볼게 아무것도 없을 때 마음은 여래...즉 공을 깨닫는다.
마음이 그 어떤 것도 집착하지 않게 되면, 마음은 텅비어 고요하게 된다.
그때 卽見如來하게 된다.
空은 볼게 아무것도 없다.
고요하며, 적멸일 뿐이다.
空, 즉 여래를 보려면, 그 모든 相을 버려야 한다.
그래서 <불취어상 여여부동>이다.
<여여부동>이 곧 여래이다.
여래는 부동, 즉 움직이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실하다.
오로지 변하지 않고 진실한 것은 곧 空 그 자체이다.
空이 최고, 최상의 진리이다.
불취어상이 생각대로 잘 되는가?
잘 안된다.
왜 안되는가?
마음이 모든 것들의 허망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걸 알기 위해서 그 모든 것들의 변화, 즉 무상함을 관찰하는 것이다.
변한다면 그것은 진짜가 아닌 가짜다.
가짜라는 걸 안다면, 당연히 놓아버리게 된다. 잡지 않는다.
그러므로 공을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무상을 관해야 한다.
이것이 정석이다.
마음이 그 모든 걸 관찰했을 때, 그 모든게 변하는 걸 안다면 마음은 고요히 쉬게 된다.
그럴 때 공을 쉽게 깨닫게 된다.
그래서 아함경에서 그렇게 수도 없이 반복적으로 무상을 관찰하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취어상....
마음 속에서 그 모든 것을 다 놓아버렸을 때, 문득 空을 깨닫게 된다.
문득 空을 정말 깨달았다고 한들,
그건 부처를 이룬게 아니고 겨우 잠시 동안 불성[空]을 힐끗 본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그런 성불을 이루려면, 까마득한 것이고
겨우 이 첫 돈오가 시작점에 불과하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해석/뜻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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