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 : 전에 사야도께서 괴로움(苦)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제거하기 어려운 모든 것이 괴로움이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한 번에 모두 제거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일시적으로만 제거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까?
사야도 : 제거하기 어려운 것은 어떤 것이든 괴로움이다.
어떤 것이 더 제거하기 어려운가?
탐욕인가 아니면 분노인가?
수행자 : 둘 다 어렵습니다.
사야도 : 탐욕이 더 어렵고 더 미세하다.
어리석음은 가장 어렵다.
솔직히 둑카(dukkha)라는 단어를 괴로움이나 고통이라는 단어로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
대부분의 수행자들은 괴로움의 진리(dukkha-sacca)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이해하는 괴로움은 괴로운 느낌(dukkha-vedanā)이다.
이런 식으로 괴로움을 이해하면 혐오감이 일어난다.
괴로움에 대한 이해는 이런 것이 아니다.
많은 수행자들이 무상하기 때문에 괴롭다고 말한다.
또한 일어나고 사라짐이 무상이라고 알고 있다.
사람들은 수행에 대한 진보가 있기를 열망하기 때문에, 일어나고 사라짐을 보려고 무척 애를 쓴다.
이렇게 보려고 애를 쓸 때, 이렇게 배워왔던 교리를 기억해내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으로 해석하려고 든다.
이것을 수행에 진척이 있다는 표시로 알기 때문에 마음은 괴로움으로 향하고,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움은 수동적인 분노(dosa)이다.
때때로 수행자들은 너무 두려워서 좌절하고 울기도 한다.
괴로움은 단지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괴로움을 겪는 것보다 더 넓고 더 깊은 의미를 지닌다.
아주 분명하게 일어나는 괴로움이나 슬픔에서부터 미세한 개념까지, 즉 불쾌함, 불확실, 불만족, 신뢰할 수 없음, 예측할 수 없음, 모호함, 불안정 등까지, 모두가 가장 거친 수준의 괴로움이다.
불교교리에 따르면 이 수준의 괴로움을 고고(苦苦, dukkha-dukkha)라고 부른다.(*고고는 고통에 기인한 괴로움이다.)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 슬픔, 분노, 두려움, 절망. 낙담, 초조,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지 못하는 괴로움,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야하는 괴로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 원하지도 않는 것을 얻는 괴로움, 이 모든 것이 교리에 열거되고 있는 첫 번째 수준의 괴로움이다.
다음 수준의 괴로움은 괴고(壞苦, viparināma-dukkha)이다.(*괴고는 변화에 기인한 괴로움이다.)
이것은 미세하고 보기 어렵다.
감각적 즐거움, 황홀감, 행복이라는 것은 아무리 미세하고 오래가더라도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다.
계속해서 되풀이하는 것, 얻으려고 하는 것도 이 범주의 괴로움에 속한다.
명상수행을 할 때마다 삼매(samādhi), 희열(piti), 경안(passaddhi)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항상 그런 상태로 있을 수 없다.
그런 상태를 경험하는 것도 끝이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괴로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든 행복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수준의 괴로움은 행고(行苦, saṅkhāra-dukkha)이다.(*행고는 형성됨에 기인한 괴로움이다.)
이것을 존재론적 괴로움이라고 한다.
정신-물질(rāma-rūpa)이 괴로움이고,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괴로움이다.
괴로움을 느끼는 것과 이해하는 것의 차이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미세하든 거친 것이든, 육체적 정신적 괴로움은 자동적으로 혐오감과 함께 일어난다.
괴로운 느낌 또는 정신적 괴로움(domanassa)은 항상 화(dosa)와 함께 일어난다.
이 모든 경험은 해로운 마음상태를 일어나게 하고, 그래서 더 큰 괴로움을 초래한다.
괴로움을 이해하는 것이 정신적인 괴로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괴로움을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다.
괴로움을 이해하는 것은 유익한 마음 상태이고, 괴로움을 이해하면 해탈하게 되고, 삶에 변화가 일어난다.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면 그때마다 마음을 놓아버리게 되고(방하착), 그만큼 마음은 더 자유로움을 느낀다.
괴로움을 이해하게 되면 마음을 더 선한 상태로 이끌고 더 강하게 만든다.
괴로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른 가르침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르게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붓다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괴로움을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끝없는 윤회의 덫에 걸리는 것이다.”
괴로움을 이해하지 못하면 더 행복한 삶, 더 나은 삶을 끝없이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끝없는 실망만 남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괴로움과 싸우느라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세상을 바꾸려고 애쓰느라 시간을 낭비한다.
이렇게 괴로움에 저항하는 것은 심신을 피로하게 만들고 더 큰 괴로움을 낳는다.
바른 생각은 괴로움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괴로움을 보고 받아들이는 것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 마음자세가 잔뜩 힘을 주어 엉킨 에너지를 풀어 수행으로 돌리게 한다.
괴로움을 인지하는데 익숙해지면, 새로운 괴로움을 스스로 만들 때마다 더 자주 괴로움을 인지하게 된다.
나의 스승께서는 생고(生苦, jāti-dukkha)를 이해할 때만이 마음이 열반을 향하여 열심히 정진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생고는 태어남의 괴로움이다.)
존재의 일어남도 괴로움이고, 사라짐도 또한 괴로움이다.
생고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얻기를 원하고 제거하기를 원한다.
괴로움을 이해한 마음은 행복을 원하지도 않고, 불행에 저항하지도 않는다.
괴로움을 이해한 마음은 무엇이 일어나더라도 완벽한 평화 속에 머문다.
모든 존재는 괴로움을 겪지만 괴로움을 인지한 사람만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괴로움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받아들이면 내면에서 해탈이 일어난다.
붓다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괴로움을 보는 자가 괴로움의 소멸을 본다.”
괴로움을 진정으로 이해했을 때에야 열반을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정진하게 된다.
세상에서 해야 할 일 중에 열반만큼 가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우떼자니야 사야도 법문/무념스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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