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아는대로 끄적여 보겠습니다.
고통의 정체..
괴로움의 정체..
탐욕입니다.
다 아시듯이.. 탐욕이지요.
자신이 바라는 일이 안돼서, 자기 맘대로 안돼서 화가나고 괴로운 것 이지요.
탐욕이란 뭘까요?
먼저 탐욕의 정체를 알아야 합니다.
탐욕이란 생각입니다.
그래서 결국 괴로움의 정체는 생각입니다.
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그 생각이 괴로움의 주범입니다.
오온에서 생각은 수상행식에 속합니다.
그래서 오온을 괴로운 것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래는 부처님의 게송입니다.
탐욕아, 내 너의 근본을 아나니
너는 생각만으로 생겨나는 것
내가 너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너는 존재하지 못을 것이다. --- 증일아함경 ---
괴로움의 정체는 탐욕이고 그 탐욕의 근본은 생각입니다.
근데 생각은 누가합니까?
내가 합니다. 자기 자신이 합니다.
생각은 자유지요.
이 생각하건 저 생각하건 생각은 자유입니다.
내가 생각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이 생기는 것 입니다.
괴로운걸 생각하고 그 생각을 잡고 놓지 않는거지요.
잡고 놓지 않고 있는 상태를 집착이라고 합니다.
정신적인 고통은 내가 만들어서 가집니다.
누가 주는게 아니고요. 내가 괴로운걸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근데 이걸 모르면 남탓을 합니다.
그 생각이 나인줄 알기 때문에 남탓을 합니다.
그냥 생각은 생각입니다.
생각은 "나"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원효대사 유명한 일화 다 아실 겁니다. 해골바가지 물
물이 먹고 싶어 죽겠는데, 밤에 깜깜한 밤중에 그릇에 담긴 물을 먹었는데..
그게 목이 말라서 그런지 아주 꿀물이네요.
근데 깨고 보니 그게 해골바가지에 담겨진 물이라는 걸 알고는 마음이 확 변합니다.
여기서 변하는건 생각입니다.
어제 잘 때는 아무것도 안보이니까 아 그냥 그릇이겠지..라고 생각했고,
또 아침에 깨서는 아, 끔찍한 해골이네..아 끔찍하다..라고 생각했고요.
똑같은 해골인데도, 두가지로 따로따로 생각을 합니다.
생각에 따라 하나는 극락이요, 또 하나는 지옥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결국 나의 생각이지요.
어떤 생각을 갖냐.. 이게 관건입니다.
상황이 있으면 반응이 있습니다.
위에서의 예처럼 어떤 반응을 할 것인가.........이것이 중요합니다.
그 반응이 행복과 불행을 판가름합니다.
그럼 다른 사람은 뭘까요?
다른 사람도 일종에 상황입니다. 즉 원인만을 제공할 뿐이지요.
최종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내 몫입니다. 결과를 만드는 건 나입니다.
그 반응(결과)은 결국 생각입니다.
이렇게 반응할 것이냐, 저렇게 반응할 것이냐............
똑같은 상황인데도 반응이 달라질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배가 고플 때 라면을 먹는 것과 배가 부를 때 라면을 먹는 것은 맛에 천지차이가 있습니다.
똑같은 라면인데 말이지요.
변하는건 라면이 아닙니다.
내 마음이 변하는거지요.
내 마음이 변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상대방이 변하는게 아니고!
그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바로 생각입니다.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오해를 당해서 고생하신 경험 가끔 있으실 겁니다.
어떤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 오해가 발생합니다.
무섭지요. 오해..착각..
거의 다 자기 마음에 속고 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듯 합니다.
일체유심조 !
괴롭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괴롭습니다.
괴롭다는 생각을 꽉 잡고 안놓기 때문에 계속 괴로운 겁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아주 쉽습니다.
꽉 잡고 있던 걸 놓으면 됩니다.
그 괴로운 생각을 내려 놓으면 됩니다.
놓기 어렵다면, 다른 생각을 해버리는 거지요.
그러면 순식간에 그 괴로움에서 벗어납니다.
어린 애들은 단순합니다.
애들 기분 나쁘거나 아파서 막 울 때, 갑자기 주의를 돌려버리면 그자리에서 울음이 뚝 그칩니다.
다른 생각을 나게 해버리면 그 순간 울음이 멈춰지지요.
이건 애나 으른이나 매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만 봐도 괴로움의 정체는 생각입니다.
아, 나는 괴로워 죽겠네...라고 하지 말고요.
아, 나는 괴로워 죽겠네..라는 생각을 하고 있구나..이걸 알면 됩니다.
현재 내가 뭔 생각을 하고 있나를 알고 있으면 괴로움에 당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그게 사띠(sati)지요.
팔정도에서 정념 !
이거 잘만 생각해봐서 한번만 터득하면, 평생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모든게 다 생각이잖아요.
사람이 한번에 뭐 여러가지 생각하나요?
그저 한두가지 정도고, 주된 생각 그 하나에 몰두합니다.
사람은 이 생각했다가..저 생각했다가 계속 생각해댑니다.
그 생각과 생각의 연속작용..
그걸 사람은 "나"라고 합니다. 그걸 내 마음이라고 하지요.
그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지니까,
그게 계속 존재하는 줄 알기 때문에 그걸 나라고 믿습니다.
근데 그게 나는 아닙니다.
그게 끊어지거든요.
순간순간마다 어떤 인연에 따라 그냥 생각이 저절로 생겨버립니다.
로봇트처럼요.
고통의 정체를 알아야 고통에서 벗어납니다.
근데 불교, 즉 부처님 가르침은 고통의 진리입니다.
고통의 진리/고통을 멸하는 진리를 배우면서 고통에서 못벗어나면 안되지요.
고집멸도 사성제
이걸 교리적으로 어느 정도 잘 이해만 하면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기는 쉽다고 판단됩니다.
정신적인 고통이 왜 생기냐하면,
그 생각..괴롭다는 그 생각을 나 자신이라고 여겨서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생각, 즉 오온에서 수상행식은 "나"도 아니요, "나"의 것도 아니요, 내가 그것의 것도 아니다.
그러니 생각을 버려라.
나 자신이 뭔 생각을 하는가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행복할 때는 행복한 생각을 해서 행복하고요.
불행할 때는 불행한 생각을 해서 불행하고요.
화가날 땐 화나는 생각을해서 화가납니다.
아무생각 없으면,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고집멸도 사성제 중에서 고성제에 일곱가지 고통이 있습니다.
이중에 정신적인 고통 세가지가 있는데..
첫째, 싫어하는 사람을 만날 때의 정신적인 고통
둘째, 좋아하는 사람과의 이별할때의 정신적인 고통
셋째, 구하거나 바라는 일이 되지 않았을 때의 정신적인 고통
즉, 정신적인 고통은 위의 세가지에서 비롯됩니다.
좋아함/싫어함/바램
이 세가지가 사라지면, 일상적인 고통은 모두 사라집니다.
이 세가지는 모두 다 생각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생각을 버려라. 마음을 움직이지 말라, 번뇌에 집착하지 말라..라고 하십니다.
탐욕, 고통의 정체에 대해 알고나니까,
예전에 제 모습을 되돌아보면.. 왜 혼자 스스로 학대를 했나..싶더군요.
또 다른 사람들을 살펴봐도..이젠 알겠더군요.
전부 스스로가 스스로를 학대하면서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대개가 고통의 원인을 외부에서.. 즉 남탓으로 돌립니다.
불행한 사람일수록 남탓을 많이하지요.
남탓만 해대는 이유는 사람의 의식은 거의 언제나 외부로 나가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속에..즉 내부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원인과 결과를 모두 다 밖에서만 찾으려고 합니다.
자신의 내부를 살펴보는 시간,...
이것이 곧 명상이고 좌선이지요.
마음의 움직임...즉 생각을 잘 살펴야 합니다.
이뭣꼬란 뭘까요?
생각과 생각 사이의 그 빈틈에 촛점을 맞춰야 답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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