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으면서 무진장 많으니 꽃 있고 달 있고 누대까지 있다 - 헤능(慧能)선사
헤능(慧能)선사는 "본래 아무것도 없다(本來無一物)"고 하여 모든 것을 부정하고 공(空)을 주장했습니다. 선의 근본적인 입장에서는 이 "아무것도 없다(無一物)"는 표현도 부정해야 합니다. 부정의 부정은 절대 무(無), 절대 공(空)의 회귀점(回歸點)으로부터 다시 보는 관점입니다.
여행길에 같은 코스를 왕복하다보면 갈 때 보지 못한 풍경이 올 때 보이기도 합니다. 왕복해야 비로소 경치를 다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평균 수명을 절반으로 접은 나이, 즉 30대 후반이 인생의 회귀지점입니다. 한창때의 젊은 나이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인생의 풍경을, 돌아오는 늙은 여로에서 비로소 깊이 느끼는 것과 비슷합니다.
현실적ㆍ상대적인 인식을 구하는 것이 가는 길이라면, 그것을 한 번 부정하고 회귀하는 지접에서 다시 긍정하는 것이 오는 길(歸路)입니다.
이 심경을 글로 표현한 것이 모두 14자의 선어로, "아무 것도 없지만 무진장 많으니, 꽃 있고 달 있고 누대까지 있다(無一物中無盡藏 有花有月有樓台)"입니다. 그것은 추상적ㆍ철학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땅과 밀착한 인생의 생활태도를 가리킵니다.
"본디 한 물건도 없다"는 절대 공의 경지를 실감한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좁은 틀에 갇힌 작은 자아나 아집의 이기적인 사고방식을 버리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내 것이 됩니다. 예컨대 마음을 비우고 꽃을 보면, 그것이 공원에 피어 있건 이웃집에 피어 있건 모두 내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꽃이 무진장 많은 것입니다.
누대(樓臺), 즉 훌륭한 주택으로 상징되는 나 자신의 재산은 한정되어 있으나 우주에서 받은 것은 무진장합니다.
어느 선사는 이렇게 읊었습니다.
이 몸이 죽고 나면 남는 것은 모두가 부처님이로세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아집을 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 것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공(공)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공으로 돌린 것을 또 공으로 돌리고 나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진리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松元泰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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