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담마와 위빳사나는 어떤 관계가 있나?
문: 또 주제넘게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너무 궁금한게 많거든요.
답: 좋습니다. 무엇이던 질문해보세요. 단 아비담마와 관련이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문: 스님, 남방에서 발전되고 지금까지 잘 전승되어온 이 두 체계 즉 아비담마와 위빠사나는 서로 연관이 있습니까? 아비담마는 남방의 교학체계고 위빠사나는 그런 남방 교학체계에 튼튼히 뿌리한 수행법일거라는 생각이 스님과 대화하면서 강하게 드는데요?
답: 참 잘 말씀하셨습니다. 한마디로 그렇습니다. 아비담마 없는 위빠사나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요즘 상당수의 한국 분들이 아비담마에 대해서 전혀 사유해보지도 않고 위빠사나를 체험위주의 신비주의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 천만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아비담마를 배울 기회가 없어서이겠지만 그렇게 되면 위빠사나는 극단의 신비주의로 흐를 위험이 많습니다. 그래서 위빳사나 수행법에서는 인터뷰를 중시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절대 비방이 아님) 한국에서 위빳사나를 지도하는 분들 가운데서 제대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분이 몇분이나 되는지 걱정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벌써 온 몸에 기가 도는 것을 느낀다든지 몸 속이 보인다든지 힘을 몸의 특정부분으로 모을 수 있다든지 하는 경계에 빠져 그런 유희를 즐기는 것쯤으로 위빠사나를 호도하는 이야기를 자랑삼아 해대는 분들이 많거든요. 또 잘 못 경계에 집착하고 있는 것을 삐띠(희열)이라느니 행복(수카)라느니 평온(우뻬카)이라느니 초선의 경지라느니 이선 ... 사선 ... 무소유처라느니 하면서 인터뷰하는 분들이 오히려 부추기고 있기도 하지요. 경계는 대부분 위빳사나를 하지 않고 집중(선정)에 맛들이려는데서 생깁니다. 이것은 사마타의 경지에도 못들어가는 것이지요. 이런 것 쯤은 아비담마 길라잡이의 9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열가지 위빳사나의 경계 축에도 들지 못하는 참으로 가소로운 경계입니다.
남방의 제대로 공부하고 수행한 스님들은 아비담마가 위빠사나요 위빠사나가 아비담마라고 거듭 설하고 계십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아비담마길라잡이를 제일 먼저 출판한 이유도 위빠사나 수행법에 대한 튼튼한 이론 체계인 아비담마를 평이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중요한 핵심을 거듭 강조하면서 한국에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진지하게 위빳사나 수행을 하시는 몇 몇 한국 스님들과 재가 불자님들은 아비담마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위빳사나 수행은 진전이 없다면서 격려해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위빠사나 수행이 없는 아비담마는 그야말로 매마른 고담준론일 뿐입니다. 수행을 통한 확인이 없다면 그것은 그냥 어려운 빠알리어나 그것을 그냥 한문으로 옮긴 무슨 뜻인지도 전혀 알 수 없는 기호들의 나열인 듯한 무미건조한 것이 될 소지가 너무 많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이 뒷받침 될 때 아비담마는 지금 여기에서 살아있는 생생한 가르침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실제로 자기자신에서 벌어지고 있는 물-심의 현상에 대입하여 관찰하지 않고서는 결코 아비담마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아비담마길라잡이를 공동번역하면서 제가 절감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서양 학자들도 아비담마를 Philosophical Psychology(철학적 심리학)라고 소개하는데 이런 지적 탐구를 자신의 심리상태를 돌이켜보는데 적용시키는 가르침이라 이해하고 싶습니다.
문: 또 주제넘게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너무 궁금한게 많거든요.
답: 좋습니다. 무엇이던 질문해보세요. 단 아비담마와 관련이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문: 스님, 남방에서 발전되고 지금까지 잘 전승되어온 이 두 체계 즉 아비담마와 위빠사나는 서로 연관이 있습니까? 아비담마는 남방의 교학체계고 위빠사나는 그런 남방 교학체계에 튼튼히 뿌리한 수행법일거라는 생각이 스님과 대화하면서 강하게 드는데요?
답: 참 잘 말씀하셨습니다. 한마디로 그렇습니다. 아비담마 없는 위빠사나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요즘 상당수의 한국 분들이 아비담마에 대해서 전혀 사유해보지도 않고 위빠사나를 체험위주의 신비주의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 천만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아비담마를 배울 기회가 없어서이겠지만 그렇게 되면 위빠사나는 극단의 신비주의로 흐를 위험이 많습니다. 그래서 위빳사나 수행법에서는 인터뷰를 중시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절대 비방이 아님) 한국에서 위빳사나를 지도하는 분들 가운데서 제대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분이 몇분이나 되는지 걱정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벌써 온 몸에 기가 도는 것을 느낀다든지 몸 속이 보인다든지 힘을 몸의 특정부분으로 모을 수 있다든지 하는 경계에 빠져 그런 유희를 즐기는 것쯤으로 위빠사나를 호도하는 이야기를 자랑삼아 해대는 분들이 많거든요. 또 잘 못 경계에 집착하고 있는 것을 삐띠(희열)이라느니 행복(수카)라느니 평온(우뻬카)이라느니 초선의 경지라느니 이선 ... 사선 ... 무소유처라느니 하면서 인터뷰하는 분들이 오히려 부추기고 있기도 하지요. 경계는 대부분 위빳사나를 하지 않고 집중(선정)에 맛들이려는데서 생깁니다. 이것은 사마타의 경지에도 못들어가는 것이지요. 이런 것 쯤은 아비담마 길라잡이의 9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열가지 위빳사나의 경계 축에도 들지 못하는 참으로 가소로운 경계입니다.
남방의 제대로 공부하고 수행한 스님들은 아비담마가 위빠사나요 위빠사나가 아비담마라고 거듭 설하고 계십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아비담마길라잡이를 제일 먼저 출판한 이유도 위빠사나 수행법에 대한 튼튼한 이론 체계인 아비담마를 평이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중요한 핵심을 거듭 강조하면서 한국에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진지하게 위빳사나 수행을 하시는 몇 몇 한국 스님들과 재가 불자님들은 아비담마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위빳사나 수행은 진전이 없다면서 격려해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위빠사나 수행이 없는 아비담마는 그야말로 매마른 고담준론일 뿐입니다. 수행을 통한 확인이 없다면 그것은 그냥 어려운 빠알리어나 그것을 그냥 한문으로 옮긴 무슨 뜻인지도 전혀 알 수 없는 기호들의 나열인 듯한 무미건조한 것이 될 소지가 너무 많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이 뒷받침 될 때 아비담마는 지금 여기에서 살아있는 생생한 가르침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실제로 자기자신에서 벌어지고 있는 물-심의 현상에 대입하여 관찰하지 않고서는 결코 아비담마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아비담마길라잡이를 공동번역하면서 제가 절감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서양 학자들도 아비담마를 Philosophical Psychology(철학적 심리학)라고 소개하는데 이런 지적 탐구를 자신의 심리상태를 돌이켜보는데 적용시키는 가르침이라 이해하고 싶습니다.
출처 : 초기불전연구원
글쓴이 : 초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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