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스크랩] 아뢰야식이란 무엇인가?

수선님 2018. 6. 3. 13:15

아뢰야식이란 무엇인가?

(월뽈라 라훌라)

불교의 유가瑜伽학파(Yogacara, 유식唯識학파;Vijnanavada)에서 아뢰야식阿賴耶識(alayavijna -na)은 아상가(無著)에 의해 발전된 가장 중요 한 교리 중의 하나이다. 그는 식온識蘊을 세 가지 별개의 면 또는 층인 心(citta), 意(manas), 識(vijnana)으로 구분하였다. 빨리 주석서들은 물론 상좌부의 삼장三藏에서도 이 세 가지 용어, 心, 意, 識은 서로 같은 것을 정의하는 동의어로 보고 있다.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또한 이 들을 동의어로 취한다.

 

심지어는 순전히 대승경전인 <<능가경>>도 비록 기능을 구분하여서 언급하지만 다른 여러 곳에서 동의어라 부른다. 바 수반두(世親) 또한 그의 <<유식이십론>>에서 이들을 동의어로 보았다. 이 세 가지, 心, 意, 識 중의 하나는 다섯 번째 온蘊인 식온의 어떤 면 을 표현하기 때문에, 식온의 모든 면은 아닐 지라도 거츨게 동의어로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상가에 있어서 이 心, 意, 識은 식온의 세 가지 다른, 구분되는 면이다. 그는 식온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識蘊의 정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citta;心), 정신적인 기관 (mental organs)(manas;意), 그리고 또한 識(vijnana)이다.'

 

'그러면 거기에서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뢰야식(藏識)이다. 모든 종자種子를 담고 있으며, 모임(蘊), 요소(界), 영역(處)의 흔적 (인상;習)을 잉태하고 있다. .... ' '정신적인 기관(manas;意)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뢰야식의 대상이 다. 언제나 네 가지 번뇌, 즉 자아에 대한 거짓된 관념과 자기애, '나 는~'이라는 자만심, 무지(avidya;無明)이 결합된 자아관념(자만심)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

 

'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여섯 가지 識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즉,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같이 識은 감각 기관이 외부 대상과 접촉할 때 일어나는 단순한 반사작용이나 반응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식온의 가장 겉 면 또는 윗 층을 의미한다. 意(manas)는 識의 생각하고, 추론하고, 이해하는 정신적인 기능을 가리킨다. 그런데 아뢰야식이라 부르는 心(citta) 은 식온의 가장 깊고 섬세한 면 또는 층을 말한다. 이것은 좋은 것, 나쁜 것을 막론하고 과거 행위의 모든 흔적, 인상, 그리고 미래에 있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담고있다. <<해심밀경>> 또한 아뢰야식을 心(citta; 티베트어sems)이라 부른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아뢰야식은 순전히 대승의 교리이며 소승에서는 거기에 대해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아상가는 <<섭대 승론>>에서 스스로 성문승聲聞乘(즉, 소승)에서도 동의어로써 아뢰야식 을 언급하고 있다고 하면서 <<증일아함경>>에 있는 구절을 소개한다. '사람들는 아뢰야를 좋아하며, 아뢰야를 사랑하며, 아뢰야를 기뻐하며, 아뢰야에 집착한다. 아뢰야를 멸하기 위해 法이 가르쳐졌을 때, 그들은 듣고 싶어하고, 귀를 기울이고, 완전한 앎을 위해 의지력을 발휘하고, 진리의 길을 따른다. 여래께서 이 세상에 출현했을 때, 이 놀랍고, 비범한 法이 세상에 나온다.'

라모뜨Lamotte는 이 <<증일아함>>의 구절을 빨리 <<앙굿따라-니까 야>>(增支部, A.Ⅱ, p.131)의 다음의 귀절과 동일시했다.

 

'Alayarama bhikkhave paja alayarata alayasammudita, sa Tathagatena analaye dha mme desiyamane sussuyati sotam odahati annacittam upattapeti. Tath agatassa bhikkhave arahato sammasambuddhassa patubhavaayam pathamo acchariya abbuto dhammo patubhavati.'

 

이 <<앙굿따라-니까야>>의 구절 이외에도 이와 동일한 의미의 아뢰야 는 빨리 경전의 몇몇 다른 곳에서 발견된다. 빨리 주석서들은 이 용어 를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이라 설명하며, 그 이상 더 깊 이 다루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아뢰야식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능가경>>에서 여래장은 아뢰야식의 동의어로 사용되며, '본성으로 빛나는', '본성에 의해 순수한' 것 이지만, '예기치 않게 번뇌에 물들 기 때문에' 더러워져서 나타난다고 기술하고 있다. <<앙굿따라-니까 한 번뇌에 물든다'고 기술한다. 여기서 아뢰야식(또는 여래장)과 '마 음'(citta;心)은 거의 같은 용어로 기술되고 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해심밀경>>에서 아뢰야식이 또한 '마음'으로 불린다는 것 을 보았다. 아상가 또한 아뢰야가 곧 '마음'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 '자아' 또는 '아뜨만'이라고 [그릇되게] 여 기는 것이 바로 이 아뢰야식 또는 '마음'(citta;心)이다. 그 구체적인 실예로서, 부처님의 제자였던 사띠Sati가 識이 그런 의미라고 생각하자 부처님이 그 그릇된 견해를 나무랐던 일을 알아두어야 한다. 열반의 성취는 '아뢰야식의 개혁'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것을 전의 轉依라 부른다. 이와 동일한 개념이 '아뢰야를 뿌리 뽑음'인데, 이것은 빨리 경전에서 열반과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아뢰야가 없음'도 열반의 또 다른 동의어임을 알아야 한다.

 

전의(아뢰야식의 개혁)를 때때로 '종자의 개혁'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種子(bija)는 번뇌의 '씨앗'들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윤회가 계속되는 원인이 된다. 우리는 '이 종자들의 개혁'을 통해 열반을 성취한 다. 다시, 빨리 용어 'khinabja'는 '번뇌의 씨앗이 소멸된' 아라한을 정의하는데 쓰여서 같은 의미를 표현한다.

 

결국 상좌부에서는 아뢰야식이 대승에서처럼 발전되지는 않았지만, 그 원래의 개념은 이미 상좌부의 빨리 경전에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최안 " 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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